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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으로 떠나는 음악 여행 | 의사소통 | 유아 | 솔솔 상쾌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여름날, 푸른 숲 속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 보세요.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나요? 자, 그럼 우리 함께 숲 속으로 음악 여행을 떠나요. 구불구불 산길을 걸으니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느껴져요. 삐죽삐죽 나뭇가지에 달린 작은 잎들은 ‘통통통’ 리듬을 타는 작은북처럼 빠르게 움직여요. 팔랑팔랑 바람에 흔들리는 기다란 나뭇잎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바이올린을 켜네요. 땅속에서 고개를 쏙 내민 여린 싹들은 크기가 제각각이에요. ‘딩동딩동’ 실로폰 소리처럼 경쾌함이 느껴져요. 형형색색 아름다운 들꽃은 수줍은 듯 조금씩 몸을 흔들어요. ‘삐리리~ 삐리리~’ 가늘고 고운 플루트의 소리처럼 들려요. 나비는 알록달록 예쁜 날개를 펄럭이며 세상의 모든 멜로디를 표현하지요. 어머나! 작은 꽃씨들이 날리고 있어요. 꽃을 피우던 날을 생각하면서 추억의 노래를 읊조리는 듯 훨훨 날아가네요. 커다란 고목나무에서는 살아온 세월만큼 깊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와요. 마치 콘트라베이스의 낮은음처럼 말이에요. 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층층이, 겹겹이 어우러진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서 있네요. 든든한 모습이 마치 음악의 흐름을 잡아 주는 큰북과 심벌즈 같아요. 세찬 바람이 불어와요. 나뭇잎도, 꽃들도 바람의 흐름을 따라 더 큰 소리로 신나게 연주하네요. 휘이잉~ 차츰 바람이 멈추고 숲은 잠시 고요해지더니 둥근달이 떠올라 숲을 비추어요. 은은한 달빛을 받은 숲은 잔잔한 선율로 첼로를 연주해요. 여러 가지 모습의 나뭇잎들이 달빛 속에서 각자의 개성에 맞춰 소리 내기 시작하네요. 삐쭉삐쭉, 둥글둥글. 넓적넓적, 길쭉길쭉. 오밀조밀, 성글성글.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도 작은 속삭임으로 트라이앵글을 연주해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 보세요. 바람 소리. 물 소리.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꽃망울 터지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숲에서 나는 온갖 소리들이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숲의 교향곡을 들려줘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음악. 우리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솔솔 부는 바람 소리도.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음악 소리가 되고. 하늘거리는 꽃들의 모습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 미술, 문학 작품 등 모든 예술은 결국 사람의 생각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악보대로만 연주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연주가는 그 곡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의 느낌을 살려서 연주해야만 진정한 음악을 전달할 수 있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음악은 마음속 깊이 생각을 하여 나오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열매 맺기. 나도 숲 속의 지휘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여러분이 느끼는 대로 음악을 만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만의 음악 철학이 되는 거예요. 진달래, 장미, 개나리, 무궁화, 봉숭아, 나팔꽃, 튤립 등 꽃들은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라이프니츠.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힘이 있는 것만 실체라고 생각했으며. 이 세상에는 힘이 있는 실체인 단자들만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단자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뜻합니다. 단자에는 돌처럼 물질로 된 단자도 있고. 식물이나 동물도 있으며. 인간도 있습니다. |
앨리스와 떠나는 미술 여행 | 의사소통 | 유아 | 헤나는 앨리스와 '문들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어요. 앨리스는 문들의 나라 안내자였어요. "문들의 나라에 가면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모든 미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단다." 앨리스는 헤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어요. 문들의 나라에 가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어요. "앨리스, 문들의 나라에 빨리 가 보고 싶어." 헤나는 문들의 나라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꽃들이 활짝 핀 어느 날, 헤나는 드디어 앨리스를 따라 문들의 나라에 가게 되었어요. "옛날 그림들까지 볼 수 있다니까 무척 설렌다, 앨리스." 앨리스의 손을 잡고 문들의 나라를 향해 날아가는 헤나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어요. 잠시 후, 헤나와 앨리스는 문들의 나라에 도착했어요. 첫 번째 문인 회색 문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동굴 벽화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어요. 헤나는 동굴 벽화를 그리고 있는 원시인에게 다가가서 물었어요. "벽에 동물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뭐예요?" "원시 시대에는 주로 소원을 빌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렸단다. 나는 사냥이 잘되기를 빌며 그림을 그리는 중이야." 원시인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이번에는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헤나의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유리들은 어떻게 예쁜 색깔을 갖게 된 거죠?" "유리에 색을 입혀서 그런 거야. 햇빛에 반사되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거란다." 유리에 색을 칠하고 있던 사람이 대답해 주었어요. "자, 이제 노란 문으로 가 보자." 앨리스는 헤나를 노란 문 앞으로 데려갔어요. 헤나가 노란 문을 열자 눈앞에 노란 꽃들이 펼쳐졌어요.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었어요. 노란 문 옆에는 파란 문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헤나는 살며시 파란 문을 열었어요. 파란 문 안에는 피카소의 그림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피카소의 그림은 알쏭달쏭,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시나요?" 헤나가 피카소에게 물었어요.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개성 있게 표현해서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만들었단다." 피카소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파란 문을 벗어나니 반짝반짝 빛으로 된 문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머나!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할 때마다 문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잖아?" 헤나는 깜짝 놀랐어요. "이곳에는 빛을 이용해 만들어진 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단다." 앨리스가 설명해 주었어요. 다음에는 빛을 이용한 입체적인 작품들을 보러 갔어요. 그림에 불이 들어오면 불쑥 탑이 생겼다가, 불이 꺼지면 탑이 사라졌어요. 또 불이 들어올 때마다 계단과 문이 생겼어요. 빛은 숨어 있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어머나! 이제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빨리 분홍 문을 열어 보렴." 앨리스가 헤나를 재촉했어요. 헤나가 분홍 문을 열자 마술이 펼쳐졌어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장이 높아지고 흰 벽에 집과 길이 그려졌어요. 쉿! 누군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헤나와 앨리스는 살금살금 분홍 문을 빠져나왔어요. 어느덧 헤나와 앨리스는 마지막 문인 거울 문 앞에 서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거울로 만든 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꽃잎 하나하나가 사람 모양으로 되어 있네." "정말 신기하고 예쁜 꽃이야.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은 사람인 것 같아." 헤나의 말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든 미술 작품들도 모두 아름다운 거란다." "헤나야, 이제 미술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걸 알았지?" "응, 나도 앞으로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 볼래." 헤나와 앨리스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거울 문을 닫고 문들의 나라를 나왔어요. |
풍선처럼 배를 부풀린 황소개구리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숲속 작은 연못에 개구리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어요. "개굴 개굴!" "개굴 개굴!" 어느 날, 커다란 황소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이 연못을 나 혼자 차지해야지.' 욕심 많은 황소개구리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모두들 저리 비켜! 이제부터 이 연못은 내 거야!" 황소개구리는 몸을 크게 부풀리며 말했어요. 개구리들은 커다란 황소개구리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달아나자! 개굴 개굴!" 겁에 질린 개구리들은 모두 팔딱팔딱 뛰어서 도망쳤어요. "하하, 이제부터는 내가 왕이다!" 그 후로 황소개구리는 제멋대로 행동했어요. 또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개구리들은 마구 괴롭혔지요. 그러던 어느 날, 꾀 많은 개구리가 나타났어요. "못된 황소개구리를 혼내 줘야겠다." 꾀 많은 개구리는 황소개구리를 황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세상에! 저렇게 큰 동물이 있었다니.' 황소개구리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황소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황소개구리님, 저 황소를 이길 수 있으세요?" 꾀 많은 개구리가 황소개구리에게 물었어요. 하지만 황소개구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요. "아무리 황소개구리님이라도 커다란 황소를 이길 수는 없겠지요?" 꾀 많은 개구리의 말에 황소개구리는 슬슬 약이 올랐어요. "무슨 소리! 내 몸을 부풀리면 저 황소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황소개구리는 뻥뻥 큰소리를 쳤어요. "자, 잘 보라고!" 황소개구리는 펌프 호스를 입 속에 넣고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황소개구리의 배는 점점 부풀었어요. 마침내 황소개구리의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어요. "어때? 이제 내가 황소보다 더 크지?" 황소개구리가 의기양양한 말투로 물었어요. "아니요, 조금 더 커져야 해요." 꾀 많은 개구리가 대답했어요. 그러자 황소개구리는 몸을 더욱 크게 부풀렸어요. "어때? 이제 내가 황소보다 더 크지?" 황소개구리가 물었어요. "아니요, 더 많이 커져야 해요." 다른 개구리들이 대답했어요. "알았어, 더 크게 부풀리지 뭐." 황소개구리가 몸을 더 크게 부풀리는 순간. '펑!' 하고 배가 터져 버렸어요.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몸을 부풀린 황소개구리는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말았어요. "쯧쯧, 개구리가 어떻게 황소인 나처럼 커질 수가 있담. 너 자신을 알아라!" 황소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어요.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개구리가 아무리 몸을 부풀린다고 해도 황소처럼 커질 수는 없습니다. 황소개구리는 이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황소처럼 커지기 위해 몸을 힘껏 부풀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답니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할 수 없으면서 할 수 있는 척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특히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남들과는 다른 개성, 현재 처해 있는 상황 등을 잘 판단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에는 델포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으며,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을 찾아가 신탁(기도자의 요청에 대한 신의 응답)을 들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닙니다. 이 격언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말이라고도 하고, 스파르타의 킬론이 한 말이라고도 하며, 또 다른 현자가 한 말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인용하여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랍니다. 스스로 무지하다고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는 “만인 중에 소크라테스가 제일 현명하다.”라는 신탁을 전해 들은 후, 그 신탁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현자들조차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확실히 알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 속에서 괴로워하며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
로봇은 무슨 일이든 척척! | 의사소통 | 유아 | "멍멍아, 어서 춤춰 봐!" 오늘도 원이는 로봇 강아지와 함께 춤을 추며 놀았어. 신나게 놀다 보니 원이는 슬슬 배가 고팠지. "슈퍼 로봇,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와." 원이는 집안일을 하는 슈퍼 로봇에게 말했어. 하지만 슈퍼 로봇은 꼼짝도 하지 않았지. "내 말 안 들려? 먹을 것 좀 가져오라고!" 원이는 슈퍼 로봇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쳤어. 그러자 슈퍼 로봇이 대답했지.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명령을 내려 주세요." 그때 엄마가 말했어. "슈퍼 로봇, 원이에게 우유와 빵을 가져다 주렴." "네, 알겠습니다." 슈퍼 로봇은 그제야 주방으로 갔어. "엄마, 슈퍼 로봇이 왜 내 말은 안 듣고 엄마 말만 듣는 거예요?" 원이가 엄마에게 물었어. "아마도 네가 슈퍼 로봇이 알아듣도록 또박또박 말하지 않아서 그럴 거야. 아빠가 들어오시면 자세히 물어보렴." 저녁 때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자 원이는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 "아빠, 슈퍼 로봇은 왜 엄마 말만 듣는 거예요?" "그건 원이가 명령을 잘못해서 그래." "먼저 로봇의 이름을 부른 다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콕 집어서 말해야 한단다. 빵이면 빵, 우유면 우유를 가져다 달라고 말이야." "아하! 그렇구나." 원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어. "아빠,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는 로봇은 없어요?" "아직 그런 로봇은 만들 수가 없어. 하지만 옛날의 로봇과 비교하면 지금 로봇들도 대단한 거야." "옛날의 로봇이요? " "그건 어떤 건데요?" "마침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아빠 회사에 함께 가서 구경해 볼까?" "네, 좋아요." 다음 날, 원이는 아빠와 함께 회사에 갔어. 로봇을 만드는 아빠네 회사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로봇들이 전시되어 있었지. "우아! 정말 굉장하다." 원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어. "아빠, 이 로봇은 어디에 사용하는 거예요?" 원이는 팔뿐인 로봇을 가리키며 물었어. "그건 산업용 로봇이란다. 자동차를 조립하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데 쓰이지." 또 다른 방에 들어서니 마치 병원에 온 것 같았어. "여기는 수술에 쓰이는 의료용 로봇을 개발하는 방이란다." "로봇이 수술도 해요?" "그럼! 의료용 로봇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조종하는 거란다." 원이와 아빠는 또 다른 방으로 갔어. "이건 사람이 갈 수 없는 우주 공간에 보내지는 탐사용 로봇이란다. 지금도 우주에는 지구에서 보낸 탐사 로봇이 많이 활동하고 있어." "그런데 아빠,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로봇은 없나요?" "아직 그런 로봇은 없어. 로봇은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 "생각하는 로봇이 있지 않아요?" "로봇의 생각도 결국 사람이 넣어 준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른 거란다. 그러니까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것과는 다른 거야." 아빠의 말에 원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어. 아빠는 원이의 마음을 눈치챈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즉, 로봇과 인간의 차이는 경험에 있다고 할 수 있단다." 경험이라고요?" "그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단다. 그러면서 어떤 일에 대한 해결 방법을 익혀 나가지. 하지만 로봇은 스스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을 할 수 없고, 사람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단다." "아빠, 만약 생각하는 로봇이 만들어지면 사람과 서로 도우며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구나." 아빠와 원이는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어. |
엄마가 제일 좋아요! | 의사소통 | 유아 |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뮤지컬 공연을 해요. 이번에 공연할 뮤지컬은 미녀와 야수예요. 야수 역할을 맡은 나는 매일 엄마와 함께 연습을 했어요. "내 장미를 꺾은 벌로 너의 세 딸 가운데 한 명을 데려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나는 양팔을 쳐들어 사납게 휘두르며 말했어요.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제가 야수에게 가겠어요." 엄마는 미녀의 대사를 읽으면서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어요. 내가 노래 연습을 할 때면 '딩동딩동' 피아노도 쳐 주었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기운 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어요. "엄마, 왜 그러세요?"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구나. 아무래도 엄마가 할머니한테 가 봐야 할 것 같다." 엄마는 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어요. 엄마의 말에 나는 불쑥 화가 났어요. "그건 안 돼요. 엄마가 없으면 뮤지컬 연습은 어떻게 해요!"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어요. 그날 밤, 아빠가 나를 달래 주려고 내 방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어요. 엄마도 아빠도 모두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자는가 보구나. 잘 자라." 아빠가 나가자 나는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어요. 다음 날 잠에서 깬 나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어요. '왜 엄마는 내 생각을 해 주지 않는 거야?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엄마 속을 썩일 테야.' 나는 이렇게 결심했어요.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식탁 앞에 앉았어요. "왜 세수를 하지 않니?" 엄마가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거실로 나가 오전 내내 텔레비전만 보았어요. 오후에는 방을 마구 어지럽혔어요. "이런 거 이제 다 필요 없어!"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장난감을 마구 집어 던졌어요. 그런데 그만 작년에 외할머니가 사 준 인형의 귀가 '찌익!' 찢어지고 말았어요. 내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방 좀 깨끗이 치워라. 인형 귀는 엄마가 꿰매 줄 테니까." 엄마는 인형을 가지고 나갔어요. 하지만 나는 엄마가 다시 내 방에 올 때까지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어요. "아무래도 네겐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하지만 네가 화를 내니까 엄마도 속상해." 다음 날 잠에서 깬 나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는 엄마와 얘기를 하기 위해 거실로 나갔어요. 그런데 소파에서 엄마와 아빠가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본 순간 또 화가 났어요. '역시 엄마는 내 걱정 따윈 안 하는 게 틀림없어. 이제 절대로 엄마와 말하지 않을 거야.' 나는 방으로 되돌아와 문을 '쾅!' 닫아 버렸어요. 온종일 방 안에 혼자 있기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뮤지컬 생각만 하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어요. '흥, 두고 보라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가 나는 스르르 잠들고 말았어요. 나는 꿈속에서 엄마와 만났어요.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너도 엄마가 아프면 엄마를 간호해 주잖아. 그러니까 엄마도 할머니를 돌봐 줘야 하지 않겠니?" 엄마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러자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엄마는 내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놀다가 먼지투성이가 되면 깨끗이 씻겨 주고, 재미있는 동화책도 읽어 주었지요. '엄마.' 항상 나를 돌봐 주는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요. 할머니도 딸인 엄마를 그렇게 돌봐 주셨겠지요. 나는 엄마가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다음 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달려가 말끔하게 세수를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차려 준 밥도 맛있게 먹었어요. 엄마 아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밝은 미소를 지었어요. 오늘 뮤지컬 연습 시간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연습했어요. 야수와 함께 살게 된 미녀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야수인 내게 말했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잠시 집에 다녀와야겠어요." 그러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알았어요. 그 대신 곧 돌아와야 해요."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이 부분을 연습할 생각을 하니 뛸 듯이 기뻤어요. |
지혜로운 여우와 어리석은 닭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숲 속에 늙은 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 "아이코, 배고파." 사자는 며칠 동안 쫄쫄 굶었지만 너무 늙어서 사냥할 기운조차 없었어. 이리저리 궁리하던 사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옳거니! 아픈 척을 하면 동물들이 병문안을 오겠지? 그때 잡아먹으면 되겠구나.' 사자는 곧 동굴 안에 드러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어. 잠시 후,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와서 물었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배가 고파서 그래." 사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람쥐를 덥석 잡아먹어 버렸어. 이튿날, 토끼 한 마리가 깡충깡충 뛰어와서 물었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배가 고파서 그래." 사자는 큰 입을 쩍 벌려 토끼를 꿀꺽 삼켜 버렸어. 다음 날에는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이 찾아왔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배가 고파서 그래." 사자는 순식간에 사슴을 잡아먹어 버렸어. 그다음 날에는 여우가 찾아왔어. 지혜로운 여우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물었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그러자 사자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어. "그래, 이리 가까이 와서 나를 좀 돌봐 다오." 하지만 여우는 사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주변부터 살폈어. '다람쥐, 토끼, 사슴이 동굴 안으로 들어간 발자국은 있는데 동굴 밖으로 나온 발자국은 없는 걸 보니 모두 사자에게 잡아먹혔구나.' 동굴에 들어간 다람쥐는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동굴에 들어간 토끼도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동굴에 들어간 사슴도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므로 동굴에 들어가면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이렇게 생각한 여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닥닥 도망쳐 버렸어. 결국 여우는 지혜로운 판단으로 목숨을 구했지. 그럼, 지혜롭지 못해서 목숨을 잃은 닭 이야기도 들어 볼래? 닭장 주인은 매일 아침 9시가 되면 닭에게 모이를 주었어. 그러자 닭은 이렇게 생각했어.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항상 아침 9시가 되면 모이를 주었으니까 내일도 아침 9시에 모이를 주겠지?'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자 닭은 모이를 받아먹기 위해 닭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어. 그러자 주인의 커다란 손이 닭의 목을 홱 낚아채는 게 아니겠어? "잠깐만요! 왜 저를 잡아가시는 거죠? 아침 9시에는 항상 모이를 주셨잖아요." 닭이 묻자,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어. "매일 아침 9시에 모이를 줬다고 해서 오늘도 그러라는 법은 없잖아." '아! 날마다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닭은 울면서 후회했어. 결국 어리석은 닭은 목숨을 잃고, 맛있는 닭 요리가 되고 말았지. 귀납 논증의 결론이 항상 참일 수는 없어요. 이 이야기에서 지혜로운 여우는 다음과 같은 추리를 하였습니다. ‘동물들이 사자가 있는 동굴에 들어간 발자국은 있다.
하지만 동굴에서 나온 발자국이 없다. 그러므로 동굴에 들어가는 모든 동물은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즉, 여우는 두 가지 전제를 이용하여 “동굴에 들어간 동물은 사자에게 잡아먹힌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전제들이 결론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긴 하지만 전제가 참이라고 해서 반드시 결론도 참인 것은 아닙니다. 토끼, 다람쥐, 사슴 등 여러 동물들이 동굴 속에서 나온 발자국이 없었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또 사자가 지금까지는 동굴 속에 들어온 동물들을 잡아먹었다고 해도 다음부터는 안 잡아먹으려고 마음을 바꾸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귀납 논증에서는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닭의 이야기에서처럼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답니다. 귀납 논증. 귀납법은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로부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명제 및 법칙을 이끌어 내는 추리 방법입니다. 하지만 귀납 논증에서는 전제들이 결론을 그럴듯하게 해 줄 뿐, 결론의 참을 완전히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아침이면 언제나 해가 동쪽에서 떴다. 그러므로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다.”라는 논증은 전제가 참이라고 해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내가 오늘 본 까마귀는 검다. 내가 어저께 본 까마귀도 검다. 내가 그저께 본 까마귀도 검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 이 논증의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지요?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까마귀나 앞으로 태어날 까마귀가 검지 않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알비노 까마귀’는 흰색입니다. 이처럼 귀납 논증은 전제의 참에서 결론의 참이 그럴듯하게 나오기 때문에 전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결론은 더 그럴듯 해집니다. 또 귀납 논증의 결론은 전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으므로 지식을 넓혀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납 논증은 주로 과학적 주장에서 많이 쓰인답니다. |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따뜻한 오후, 엄마가 시장에 간 동안 형이는 동생 윤이를 돌보고 있었어요. “윤아, 우리 '이웃집 토토로' 볼래?” “좋아, 언니.” '이웃집 토토로'는 형이와 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예요. 형이는 비디오테이프를 가져다가 '이웃집 토토로'를 틀었어요. '이웃집 토토로'의 이야기는 주인공 사즈키와 메이 자매가 이사하는 날로부터 시작되지요. 작은 시골집에 도착한 사즈키와 메이는 새집에서 검고 동글동글한 동구리 ‘검댕먼지 신’을 만나요. “저게 뭐지?” 호기심이 생긴 윤이는 텔레비전 안의 검댕먼지 신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가 텔레비전 속으로 ‘휘리릭’ 빨려 들어가고 말았어요. “윤아!” 형이는 재빨리 윤이의 발을 잡았어요. 그 바람에 형이도 텔레비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형이는 울창한 나무숲에 누워 있었어요. “대체 여기가 어디지? 윤이는 또 어디 있는 거야? 윤아! 윤아!” 형이는 큰 소리로 윤이를 불렀어요. 그 무렵, 윤이도 형이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었어요. “언니, 엉엉엉!” 그때, 갑자기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비를 맞으며 길을 걷던 윤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사즈키와 메이를 만났어요. “넌 누구니?” 메이가 물었어요. “난 윤이야.” “어머나! 손이 왜 그렇게 더럽니?” 사즈키가 윤이의 검은 손을 보며 물었어요. “동구리 검댕먼지 신을 만져서 그런가 봐. 나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언니 좀 찾아 줘. 응?” 윤이가 사즈키에게 부탁했어요. “알았어. 아빠가 오시면 부탁해 볼게.” 그때 숲의 신 토토로가 나타났어요. “토토로다!” 메이와 윤이가 동시에 소리쳤어요. “비를 흠뻑 맞았네요. 우산 빌려줄까요?” 사즈키가 토토로에게 우산을 내밀며 물었어요. 토토로는 사즈키가 건넨 우산을 썼어요. 토토로는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었어요. “토토로, 이 아이를 언니한테 데려다주지 않겠어요?” 사즈키는 용기를 내어 토토로에게 부탁했어요. 그러자 우산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톡톡! 토독! 톡톡!” 그러자 토토로는 마치 누군가를 부르듯 크게 소리 질렀어요. “쿠앙!” 곧이어 우스꽝스럽게 생긴 고양이 버스가 나타났어요. 토토로는 윤이를 버스에 태웠어요. “잘 가, 윤이야. 언니를 꼭 찾길 바랄게.” 사즈키와 메이가 윤이를 배웅해 주었어요. 토토로와 윤이를 태운 고양이 버스는 하늘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전깃줄 위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넓은 들판에 이르렀을 때 윤이를 찾고 있던 형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어! 언니다. 토토로, 버스를 세워 주세요.” 고양이 버스는 형이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어요. “언니!” “윤아, 무사했구나.” 형이와 윤이는 반가운 마음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지?” 형이와 윤이는 고민에 빠졌어요. 바로 그때 토토로가 고양이 버스 문을 열어 주었어요. “고마워, 토토로.” 형이와 윤이는 얼른 고양이 버스에 올라탔어요. 그러고는 푹신한 버스 의자에 앉아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형이와 윤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어요. “언니, 저기 봐. 토토로야.” 텔레비전 속에서 토토로는 형이와 윤이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어요. “언니,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도 고양이 버스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정말 신나겠지?” “맞아, 나중에 크면 우리가 토토로 버스를 만들자.” “좋아, 토토로 버스에 씌울 우산은 내가 만들게.” 형이와 윤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어요. 형이와 윤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어요. 친구들도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토토로를 만나게 되면 우산을 빌려 주세요. 그럼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이 시작될 거예요. |
공주님의 진짜 노란색 찾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왕국에 초록색을 좋아하는 왕비가 살았어요. 어느 날, 왕비는 어여쁜 공주를 낳았어요. 그런데 공주는 태어나면서부터 노란색을 좋아했어요. 공주는 노란 벽지를 바른 방에서 노란 옷을 입고 지냈어요. 잠도 노란 침대에서 잤고, 노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지요. 온통 노란색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공주는 항상 이렇게 투덜거렸어요. "난 진짜 노란색을 보고 싶어." 그러자 신하가 말했어요. "공주님이 신고 있는 구두야말로 가장 진한 노란색이에요." 하지만 공주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어딘가에 분명히 내 구두보다 더 진한 노란색이 있을 거야." 어느 날, 노란 침대에서 잠을 자던 공주가 노란색 꿈을 꾸고 있을 때 노란 요정이 나타나서 말했어요. "공주님, 진짜 노란색을 볼 수 있는 햇빛마을로 가려면 공주님의 새끼손가락에서 나오는 피 세 방울이 필요하답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진짜 노란색을 볼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 공주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다음 날, 공주는 몰래 궁전을 빠져 나왔어요. 그러고는 노란 요정이 가르쳐 준 대로 빨간 장미가 가득 핀 높은 숲길로 올라갔어요. 공주가 한참 숲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갑자기 초록뱀이 나타났어요. "공주님, 어디 가세요?" 초록뱀이 물었어요. "햇빛마을로 간단다." "그럼 저쪽 길로 가시면 돼요." 초록뱀은 꼬불꼬불한 길을 가리켰어요. 꼬불꼬불한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사슴이 나타났어요. "공주님, 어디 가세요?" "햇빛마을로 간단다." "그럼 저곳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사슴은 뾰족 계곡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사슴이 가르쳐 준 뾰족 계곡 꼭대기로 올라간 공주는 하늘을 향해 나 있는 구멍 하나를 발견했어요. "구멍을 발견하면 노란 요정이 빨간 장미 가시로 내 새끼손가락을 찌르라고 했지?" 공주는 꿈 속에서 노란 요정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빨간 장미 가시로 새끼손가락을 찔렀어요. 공주의 피 세 방울이 떨어지자 하늘 구멍에서 사다리가 내려왔어요. 공주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갔어요. 그곳에는 노란 태양이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어요. "아, 눈 부셔!" 잠시 후, 주위를 살펴보니 밝은 빛으로 된 큰 뾰족산과 마을이 보였어요. 마을의 물건들은 세상 물건들과 비슷했지만, 그것들보다 더 아름답고 완벽했어요. 그래서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공주는 사흘 밤낮 동안 뾰족산 주위를 맴돌면서 진짜 노란색을 찾아보았어요. 얼마 후, 공주는 맑은 개울을 발견했어요. 진짜 노란색을 찾아다니느라 피곤했던 공주는 시원한 개울물로 얼굴을 깨끗이 씻었어요. 그러자 뾰족산에 걸쳐 있는 무지개다리가 보였어요. 공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찬란한 색들이 나타났어요. 노란색은 색들 가운데 세 번째 자리에 놓여 있었어요. 그 노란색은 아주 아름답고 진한 색이었어요. "아, 정말 진한 노란색이로구나." 공주는 노란색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어요. 그러자 노란빛이 흘러 나와 공주의 손을 노랗게 물들였어요. 얼마 후, 공주는 궁전으로 돌아왔어요. 공주의 노란 손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공주님 손에 묻은 노란색은 이 세상의 노란색하고는 다르네." "그러게 말이야. 저게 정말 노란색인가 봐." 그때 누군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그럼 진짜 빨간색은 어떤 느낌일까?" |
토끼와 호랑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간날에 호랑이가 살았는데 하루는 배가 몹시 고파서 이리저리 산속을 헤매고 다녔어. 그러다가 한 군데서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를 만난 거야. 호랑이는 냅다 달려들어 덥석 잡아채서는 한입에 삼키려고 입을 쩍 벌렸어. 그랬더니 토끼가 샐샐 거리며 이러더래. "아저씨, 저는 워낙 쪼그마해서 잡숴 봤자 배도 안 부르고 입만 아플 거예요. 저를 살려 주시면 양껏 배부르게 해 드릴게요." 호랑이는 토끼 말마따나 쪼그만 거 먹어 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가겠거든. 그래 토끼를 살려 주고 배부르게 해 달라고 했어. 그러자 토끼는 자갈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어. "이 떡을 구워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지요." 그러고는 나무를 주워다가 불을 지펴서, 그 위에 자갈을 나란 나란히 얹어 놓더래. 이윽고 자갈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토끼가 이래. "구운 떡은 간장에 찍어 먹어야 더욱 맛나요. 제가 간장을 가져올 테니 떡이 타는지 잘 보고 계세요." 그래 호랑이는 얼른 다녀오라고 했지. 이 틈에 토끼는 재빨리 도망가 버렸어. 호랑이는 벌겋게 익은 떡을 보고만 있자니 군침이 돌아 견딜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간장 가지러 간 토끼는 도무지 오질 않잖아.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구운 떡을 몽땅 입에 집어넣었어. 그랬더니 배 속이 뜨거워서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났지. 그제야 호랑이는 토끼한테 속은 걸 알고 분통이 났어. 이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별렀지. 그리고 며칠 뒤에 호랑이와 토끼가 딱 마주쳤어. 호랑이가 이번에는 절대 속지 않겠다며 토끼를 한입에 삼키려고 했지. 그러자 토끼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이러더래. "지난번에 간장을 갖고 갔더니 떡도 안 보이고 아저씨도 안 보여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아세요?" 호랑이는 토끼가 저를 걱정해 준 게 기분 좋았나 봐. 하지만 그거도 잠시. 배가 고픈 호랑이는 입을 쩍 벌렸지. 그러자 토끼가 이러더래. "아저씨, 뭐가 그리 급해요" "내가 아저씨를 위해서 새를 잡는 꾀를 알아 놓았어요. 아저씨가 입만 벌리고 앉아 있으면 그리로 수천 마리의 새를 몽땅 몰아 드릴게요. 저는 나중에 잡아먹어도 늦지 않잖아요." 토끼 말을 들어 보니 그럴듯하거든. 새도 먹고 토끼도 먹으면 좀 좋아. 호랑이는 냉큼 토끼를 따라나섰어. 토끼는 호랑이를 대숲 한가운데로 데리고 갔어. 거기서 호랑이한테 눈을 감고 입을 쩍 벌리고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는 거야. 그러고는 이렇게 단단히 일렀어. "아저씨, 제가 새를 몰면 수천 마리 새 떼가 파드닥파드닥 날아서 아저씨 입이 구멍인 줄 알고 몽땅 들어갈 거예요. 그런데 절대 눈을 떠서는 안 돼요. 만일에 눈을 떴다간 새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말 테니까요." 호랑이는 토끼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을 크게 벌리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 그사이에 토끼는 대숲 여기저기에 불을 활활 질렀어. 이윽고 대나무에 불이 붙어 후루룩후루룩 소리가 나는 거야. 호랑이는 수천 마리의 새가 떼 지어 입안으로 날아오는 소리인 줄 알았지. 그래 좋아서 입을 더 크게 벌렸더래.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깃털 하나 입안으로 들어오질 않고 후끈후끈 몸만 점점 뜨거워지네. 그래 눈을 떠 보니까 대숲이 온통 불바다야. 털에도 불이 붙어 지글지글 타고 말이지! 호랑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불구덩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겨우 목숨을 구했지. 호랑이는 이번에도 토끼 놈한테 속아 죽을 뻔한 게 분통이 났어. 그래 당장 잡아먹어야겠다고 꾹꾹 다짐했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 숲속에서 호랑이와 토끼가 또 딱 만났지 뭐야.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겠다고 등잔만 한 눈을 뜨고 으르렁댔어. 그런데 토끼는 겁도 안 나는지 호랑이한테 꾸벅 절을 하며 이러더래. "아저씨, 저번에는 얼마나 놀라셨어요? 일이 잘못돼서 불이 나는 바람에 새는 고사하고 아저씨가 불에 타 죽을 뻔했지 뭐예요." 이번에는 꼭 일이 잘되게 해 보자고 토끼가 새새 거리니까 호랑이는 어느새 또 맘이 푹 풀어졌지. 토끼는 호랑이를 강 옆으로 데려가 말했어. "아저씨, 이 강에는 물고기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몽땅 잡아먹게 해 줄게요." 그러더니 호랑이보고 꼬리를 물속에 푹 담그고 있으라는 거야. "물고기가 꼬리에 많이 붙으면 무거워지는데, 그때까지 꼼짝 말고 앉아 있어야 해요. 그러다가 꼬리를 쭈욱 끌어 올리면 물고기가 주렁주렁 따라 나올 거예요. 그때 물고기를 몽땅 잡아먹으면 되지요." 토끼는 호랑이에게 조곤조곤 일러 주었어. 호랑이는 토끼 말이 그럴듯해서 꼬리를 강물 속에 담그고 가만히 앉아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들이 와서 꼬리를 툭툭 치네. '물고기들이 몰려와서 꼬리에 붙는구나.' 호랑이는 속으로 좋아했지. 그런데 그때는 한겨울 강추위라서 해가 기울자, 강물이 꽁꽁 얼기 시작했어. 호랑이 꼬리도 강물과 함께 꽁꽁 얼어붙었지. 그런 줄도 모르고 호랑이는 벙글벙글 좋아하며 이러더래. "토끼야, 물고기가 너무 많이 붙었는지 꼬리가 안 올라온다." 그러자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가며 이러지. "이 바보 멍청이야, 네놈이 자꾸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서 나도 너를 죽이려고 그런 거야." 그제야 속은 것을 안 호랑이가 얼어붙은 강에서 꼬리를 빼내려고 이리저리 용을 썼어.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꽁꽁 언 꼬리가 빠져야지. 날이 새자, 호랑이는 몽둥이를 들고 온 사람들한테 잡혀갔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겉에 드러난 힘보다 안에 숨은 힘. 저 호랑이, 토끼한테 당하고서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났을까요?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게 감히 날 이렇게 골탕 먹이다니! 두고 보자!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달랐어요.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거듭 토끼한테 당하지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귀가 얇아 토끼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 마음이 모질지 못해 토끼한테 연거푸 기회를 주어서? 욕심껏 배를 채우고자 하는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해서? 아니면, 호랑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교활한 토끼가 약삭빠르게 사기를 쳐서? 아마 다들 나름대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설명은 어떨까요? 토끼가 호랑이보다 강했다고 하면요. 토끼가 호랑이보다 강하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현실에서야 호랑이가 강하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는 사정이 달라요. 호랑이는 토끼를 한입에 삼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토끼는 그 힘에 맞설 만한 놀라운 지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랑이의 힘이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인 힘이라면 토끼의 힘은 안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인 힘이지요. 대개들 겉으로 드러난 힘에 눈길이 가게 되지만, 이면의 정신적인 힘이 더 결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호랑이가 토끼한테 거듭 당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저 호랑이는 토끼를 자기 밥이라고 여기고서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어요. 제힘만 믿고 상대를 함부로 얕보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지요. 호랑이는 토끼가 자기보다 약하니까 살기 위해서는 꼼짝없이 충성을 바칠 거라고 믿습니다. 허튼 교만이었지요. 그런데 호랑이는 두 번이나 된통 당하고서도 이렇게 상대를 얕잡아 보는 태도를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기 좋게 당할 수밖에 없지요. 호랑이는 사람들한테 잡혀가면서 "저 약삭빠른 토끼 때문에 내가 억울하게 죽는구나!" 하고 분통을 터뜨렸을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상대가 더 강했던 거지요. 호랑이 말고 토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머리를 써서 잘 해결하면 되지 저렇게까지 심하게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하지만 토끼 입장에서 보면 생존이 걸린 일이었지요. 굽혀서 빌거나 피해서 모면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겨 내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내내 호랑이한테 위협을 당하면서 살게 될 테니까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시로 모면하는 것보다 제대로 감당해서 해결하는 게 상책이지요. 그리하려면 힘을 기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내면 깊은 곳의 정신적인 힘을요! |
녹두 영감과 토끼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한 영감님이 살았더래. 영감님이 뒷산 아래 밭을 일궈 녹두를 심었는데 무럭무럭 잘 자랐대. 녹두는 싹을 틔우고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고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지. 뒷산에는 큰 토끼, 작은 토끼, 엄마 토끼, 아빠 토끼, 아기 토끼들이 올망졸망 살았더래. 토끼들은 칡잎도 뜯어 먹고 싸리꽃도 따 먹지만 뭐니 뭐니 해도 녹두를 가장 좋아한대. “와, 녹두다, 녹두!” 토끼들은 영감님네 밭에 내려와서 녹두를 따 먹었지. “이놈들, 녹두 따 먹지 마라!” 영감님이 밭에 나와 보고는 발을 꽝꽝 구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토끼들은 깜짝 놀라 와와 산속으로 달아났지. 그런데 영감님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토끼들이 다시 우르르 내려와 녹두를 따 먹네. “이놈들! 녹두밭을 다 망치는구나!” 영감님은 작대기를 휘두르며 뛰어나왔어. 토끼들은 또 와와 산속으로 달아났지. 영감님이 집으로 들어가면 토끼들은 또 내려와서 녹두를 따 먹고, 토끼들이 내려오면 영감님은 또 작대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지. “안 되겠다!” 영감님은 집에 들어가는 척 밭둑에 납작 엎드렸어. 토끼들은 영감님이 집에 들어간 줄 알고 신 나게 녹두를 따 먹었지. 그때 영감님이 벌떡 일어나 토끼들을 마구 때렸어. “어이쿠!” 토끼들은 후다닥 몸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달아났지.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좋은 수가 없을까?” 토끼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닥속닥 회의를 했어. 그 뒤부터 토끼들은 녹두밭에 내려올 때면 한 마리씩 망을 보았어. 영감님이 얼씬만 하면, “녹두 영감 나온다!” 망보는 토끼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어. 그러면 토끼들은 먹던 녹두를 내던지고 와와 뒷산으로 달아났지. 영감님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어. ‘어떻게 하면 녹두를 따 먹지 못하게 할까?’ 영감님은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맞다, 맞다!”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 영감님은 밭 한가운데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웠어. 녹두밭이 잠잠하니까 토끼들이 슬금슬금 녹두를 따 먹으러 내려왔어. 어라! 그런데 웬 이상한 괴물이 죽어 있네. 자세히 보니까, 영감님이야. “이것 봐라! 녹두 영감이 죽었다!” 토끼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영감님 주위를 뱅뱅 돌았어. “불쌍하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자!” 늘 자기들을 야단치고 쫓아내던 영감님이지만, 죽었다고 생각하니 좀 안됐던 모양이야. 토끼들은 영감님을 떠메고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갔지. 토끼들이 호비작호비작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드는데, 갑자기 영감님이 벌떡 일어났어. “이놈들, 몽땅 잡아 버리겠다!” 영감님은 토끼를 잡으려고 팔을 휘휘 내저었어. 토끼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들로 산으로 달아났지. 그런데 한 마리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네. “요놈!” 영감님은 토끼를 묶어 작대기에 대롱대롱 매달고 돌아왔지. 영감님은 토끼를 가마솥에 푹 삶아 먹으려고 했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는데, 이런! 불씨가 없네. 영감님은 솥뚜껑을 닫아 놓고 이웃집에 불씨를 얻으러 갔어. 영감님이 막 사립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우당탕탕 솥뚜껑 구르는 소리가 나. 돌아보니까, 토끼가 마당을 가로질러 울타리 쪽으로 달아나네. “어딜, 어딜, 요놈! 요놈!” 영감님이 간신히 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토끼 뒷다리를 잡았어. 그런데 그때. “어이쿠! 내가 토끼 다리를 잡는다는 게 울타리 다리를 잡았구나.” 녹두 영감은 잡았던 토끼 다리를 놓고 재빨리 울타리 가지를 잡았어. 토끼는 그 틈에 후다닥 달아났지. “내 다리 여기 있지! 내 다리 여기 있지!” 토끼는 껑충껑충, 폴짝폴짝 뛰어 뒷산으로 달아났더래. 쫓고 쫓기면서 어울려 살기.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토끼들을 보면서 좀 얄밉지 않던가요? 쫓아도 쫓아도 자꾸 또 내려와서 영감님이 애써 농사지은 녹두를 자꾸만 훔쳐 먹고 줄행랑을 치다니 말이에요. 이건 개구쟁이를 넘어서서 고약한 심술쟁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꽤나 미운 생각이 들고, 자꾸 당하기만 하는 녹두 영감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이 이야기 속의 토끼들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것은 이야 기를 좀 평면적으로 보는 일이 될 거예요. 저 토끼들은 괜한 심술을 부리고 있다기보다 자기들 천성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 토끼들은 원래 녹두를 좋아하니까 저렇게 자꾸 내려와서 녹두를 먹는 거지요. 토끼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저 하고 싶은 일 하기도 하면서요! 조금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조그마한 토끼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하고요. 영감님이 저 녹두를 혼자 다 먹을 것도 아니라면 토끼들이 녹두를 먹는걸 그러려니 하고 놔둘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해질 텐데 자꾸 성화를 내서 토끼를 쫓으려 하다 보니 마음이 팍팍해지고 몸도 고단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야기를 읽다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가만, 지금 녹두 영감하고 토끼들이 정말로 싸우는 걸까? 함께 놀고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살면서 농사짓는 노인.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뭐, 재미 있는 일 없나’, 이러고 있다가 토끼들이 내려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요놈들, 맛 좀 봐라!” 하고서 작대기를 들고 달려드는 거지요. 토끼들은 깔깔거리면서 내빼고요. 쫓고 쫓기고, 또 내려오고 쫓고 쫓기고... 그렇게 즐겁게 더불어서 어울리고 있다는 말이에요. 나중에 가면 토끼는 토끼대로 영감님은 영감님대로 쓰는 수법이 점점 고단수가 돼요. 쫓고 쫓기는 놀이도 점점 재미있어지지요. 녹두 영감이 눈에 곶감 박고 귀에 가지 박고 코에 대추 박고 죽은 척 누워서 토끼를 기다리잖아요? 그때 영감은 아슬아슬 두근두근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토끼를 하나 잡아다 놓고서 ‘요놈, 맛 좀 봐라!’ 하면서 가마솥에 넣었 을 때도요. 이야기는 녹두 영감이 그 토끼한테 속아서 깜빡 다리를 놓쳤다고 하지만, 사실은 짐짓 속은 척하면서 부러 토끼를 놔준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요놈, 꼭 죽는 줄 알았지? 하하하.’ 이러면서요. 죽다 살아난 토끼는 밭에 다시는 얼씬도 안했을까요? 그럴 리 없지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다시 깡충깡충 뛰어와서 녹두를 따 먹었을 거예요. |
흥부와 놀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엣적 지리산 자락에 흥부 놀부 살았대. 놀부가 형이고, 흥부가 아우였지. 그런데 놀부로 말할 것 같으면, 한마디로 심술쟁이였단 말이야. 애호박에 말뚝 박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똥 누는 애 깔아뭉개니. 마음씨가 고약하다고 동네 소문이 자자하네. 아우 흥부는 전혀 딴판이야. 헐벗은 사람 옷 벗어 주고 못 먹는 사람 밥 퍼다 주고 짐 많은 사람 제 짐마냥 후딱 뺏어 지니 마음씨가 비단이라고 동네 칭찬 입이 마르네. 하지만 돈 한 푼 벌지 못하니 놀부에겐 그저 눈엣가시였지. 하루는 놀부가 흥부를 불러 을러댔어. "네 이놈, 놀고먹는 흥부야! 내 집에서 당장 나가거라!" "아이고, 형님.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간답니까?" "내가 언제까지 네 식구들 치다꺼리를 해야 한단 말이냐? 잔말 말고 썩 꺼져라!" 흥부는 놀부 앞에 엎드려 빌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지. 빈털터리로 쫓겨난 흥부네는 고향 근처 허름한 초가에 겨우 자리를 잡았어. 거적으로 문을 달고, 짚으로 이불 삼아 누우니 머리는 마당으로 쑥, 발목은 뒤뜰로 쑥. 뻥 뚫린 지붕으론 별이 총총 보이네. 흥부네 살림이 요 모양 요 꼴이라도, 자식만은 부자였지 뭐야. 아들만 조르르 스물아홉이었지. 하루는 보다 못한 흥부가 휘적휘적 놀부 집을 찾아갔어. "형님! 불쌍한 자식들 굶어 죽게 생겼으니, 먹다 남은 밥이라도 조금만 주십시오!" 그러자 놀부는 몽둥이를 가져와 흥부를 마구 패지 않겠어? 흥부는 흠씬 두들겨 맞다가 후다닥 안채로 들어갔지. "아이고, 형수님, 밥이나 돈이나 있으면 조금만 주시오!" 그러자 놀부 마누라는 밥주걱을 찾아 들고 냉큼 달려들었겠지. "옜다, 여기 밥! 옜다, 여기 돈!" 밥을 주기는커녕 흥부의 뺨을 철썩철썩 후려치지 뭐야? 흥부 빈손으로 나앚아 꺼이꺼이 울었어.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왔어. 풀포기 하나 없는 흥부네 집에도 제비 한 쌍 날아들어 알 낳고 새끼를 쳤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구렁이 한 마리 쓸쩍 숨어들어 새끼들을 잡아먹네. 새끼 한 마리 겨우 살았나 했더니, 톡 떨어져 다리가 똑. "불쌍하다, 제비야. 네 얼마나 아프겠냐?" 흥부는 북어 껍질로 다리 돌돌 싸매고 명주실로 친친 동여매 주었지. 정성껏 보살폈더니 마침내 훌훌 털고 강남으로 날아갔네. 이듬해 봄이 되자 제비가 돌아왔는데 박 씨 하나를 툭 떨어뜨리지 뭐야. "아이고 반갑다. 다리의 명주실을 보니 내 제비가 맞구나." 흥부는 기꺼이 박 씨를 심었지. 박은 금세 순이 돋아나고 쑥쑥 자라더니 이내 주렁주렁 지붕을 뒤덮었어. 때는 팔월 한가위. 고소한 음식 냄새 골목골목 진동하는데, 흥부네 집에서는 밥 달라, 떡 달라, 가난 타령만 늘어졌네. "박이나 한 통 타서 속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팔아 봅시다!" 흥부는 여문 박을 줄줄이 따다 놓고 마당에 털썩 앉아 박 탈 준비를 마쳤겠지. "슬근슬근 톱질하세, 스르렁스르렁 톱질하세. 이 박을 타거들랑 밥 한 통만 나오너라!" 드디어 박이 탁 갈라졌어. 그런데 박속은 없고 큼지막한 궤짝 두 개가 들어 있지 뭐야? 한 궤에서는 쌀이 계속 쏟아지고, 또 한 궤에서는 금은보화가 계속 쏟아졌지. "아이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다, 좋아!" "영감, 내친김에 또 박을 타 봅시다." "좋소, 마누라. 그렇게 합시다." 흥부 내외, 다시 박을 타는데 이윽고 두 번째 박이 쩍 갈라졌어. 이번에는 온갖 비단이 꾸역꾸역 나오네.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다, 좋아!" 흥부 내외, 한참을 덩실거리다 다시 세 번째 박을 타는데, 박이 펑 터지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나오는 거야. 뚝딱뚝딱, 우당탕퉁탕, 집 짓느라 야단이 났어. 순식간에 대궐 같은 기와집이 떡하니 서 있겠지. 세상에나! 하루아침에 흥부가 부자가 되었구나. 훙부가 부자 되었단 소문은 놀부 귀에도 들어갔어.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놀부라, 물어물어 흥부 집을 찾아갔단 말이야. 흥부는 반갑게 맞이하며 부자가 된 사연을 차근차근 털어놓네. "아니, 그게 정말이냐? 부자 되기 참 쉽구나." 놀부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지. 아, 그런데 놀부 좀 보소. 제비 집 수백 개 만들어 달아 놓고는 하루 종일 고개 죽 빼고 제비만 기다리네. 그러던 어느 날, 지지리 복도 없는 제비 한 쌍이 놀부 집으로 덜컥 날아들었지. "아이고, 제비님. 이제야 오십니까? 어서어서 새끼 까고, 처마에서 뚝 떨어지십시오." 놀부는 밤낮으로 새끼 제비 떨어지라 빌고 또 빌었어. 하지만 당최 떨어져야 말이지. 참다못한 놀부는 혀를 널름널름,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기어이 새끼 제비 한 마리를 꺼내 똑! 다리를 분지르고야 말았네. 그러고는 제비 다리 칭칭 감아 제비 집에 도로 넣어 주었지. 놀부네 제비 겨우 살아나 무사히 강남으로 갔다가, 이듬해 봄이 되어 다시 올아왔겠지. 제비가 박 씨 하나 던져 주고 구름 속으로 사라지니 놀부는 뛸 듯이 기뻐하며 따독따독 심었어. 박 넝쿨 쉼 없이 뻗어 올라가더니 커다란 박이 열렸네, 열렸어. "박이 누렇게 익은 걸 보니 분명 누런 금이 들어 있겠지? 히히히." 놀부는 기대에 가득 차서 박 탈 준비를 마쳤지. "여기여라 톱질하세. 슬근슬근 톱질하세. 스르렁 슬근, 스르렁 슬근." 드디어 박이 탁 갈라졌어. 그런데 누런 금은 없고 웬 거지 노인이 나와 윽박질이지 뭐야? "우리 집 하인이던 네 아비가 내 재산을 몽땅 훔쳐 갔으니, 놀부 네놈이 대신 갚아야겠다." "이 주머니를 냉큼 채워라." 그래 주머니에 엽전을 붓는데 넣어도 넣어도 찰 기미가 안 보이네. 놀부 논이며 밭이며 팔아 바리바리 넣으니 그제야 주머니가 좀 차지. 놀부가 정신 차려 다시 박을 타니 두 번째 박이 쩍 갈라지는데, 상여 한 채와 상여꾼이 나오는 거야. "아까 왔던 네 주인이 죽으면서 여기를 명당이라 했으니 내 이 집을 와지끈 부수고 묏자리로 써야겠다." 그러더니 우르르 쾅쾅 놀부 집을 부수지 곧 빈 터만 남았네. 세상에나! 순식간에 놀부가 쪽박을 쳤구나. 놀부는 약이 바싹 올라 씩씩거렸어. "애들아, 남은 박은 타지 말고 얼른 내다 버려라!" 일꾼들이 박통을 냅다 던져 버리는데, 큰 칼 든 대장군이 튀어나와 눈을 부라리지 않겠어? "네 이놈 놀부야, 네 심술이 동생까지 쫓아냈구나. 오늘 네 목을 부러뜨려 주마." 이러니 놀부 내외는 바닥에 착 엎으려 바들바들 떨었지. 그때, 소식을 들은 흥부가 한달음에 달려왔어. "아이고, 장군님. 우리 형님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놈, 놀부야. 네 동생을 보아 살려 주니 이제부터는 심술보 뚝 떼어 놓고 살아라." 대장군은 펑,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어. 흥부는 놀부를 위로하며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나. 그 뒤로 흥부 놀부는 한평생 정답게 잘 살았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 이야기. 착한 흥부가 될까, 돈 많은 놀부가 될까? "착하지만 가난한 흥부가 될래, 못됐지만 돈 많은 놀부가 될래?"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에요. 여러분의 답은 어느 쪽인가요? 이야기 속에서 흥부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정말로 마음이 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흥부는 착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점잔만 떠는 사람이 아니에요. 헐벗은 사람 옷 벗어 주고, 못 먹는 사람 밥 퍼다 주고, 짐 많은 사람 짐 빼앗아 지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선행이 몸에 밴 행동파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과 더불어 걱정 없이 살던 흥부는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 끼니를 굶는 신세가 됩니다. 잘살다가 못살게 되면 더 힘든 법이지요. 누구라도 흥부의 처지가 되고 보면 남을 원망하면서 주저앉을 만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흥부는 착한 마음을 잃지 않아요. 그래요, 이야기 속에도 그런 모습이 나와 있어요. 어떤 부분인가 하면 바로 등지에서 떨어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는 일이지요. 자기 먹고살기도 바쁜 상황에서 무심히 넘어갈 만도 하건만, 흥부는 불쌍한 제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정성껏 보살펴서 하늘을 날 수 있게 하지요. 흥부가 살아가는 방식을 잘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흥부는 그 제비한테서 자기 모습을 본 것인지도 몰라요.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흥부의 신세와 둥지에서 뚝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제비의 신세, 비슷하지 않나요? 그 제비가 살아나 훨훨 하늘을 날게 되면서, 흥부의 삶의 희망도 살아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야기는 흥부가 탄 박에서 뜻밖의 재물이 나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 이야기이니까 그렇겠지요. 하지만 흥부는 어떻게는 복을 받아 잘살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복을 받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지요! 원전 흥보가나 흥부전을 보면 흥부네 가족이 힘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열고 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답니다. 놀부 이야기를 길게 할 겨를이 없었네요. 누구는 놀부가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자기 욕심만 차리는 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진 사람일수록 나누고 베풀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법이지요. 그게 본래 다 자기 재산이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흥부는 참 놀라워요. 자기를 내쫒은 놀부한테 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서 나눠 주다니 말이지요. 그렇게 나누어 줌으로써 흥부는 더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지 않았겠어요? |
구렁덩덩 신선비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애를 낳았는데 사람이 아니라 구렁이를 낳았어. “에그, 어쩌다가 구렁이가 나왔누!” 할머니는 부엌 한구석에 맷방석을 깔아 주고 삼태기를 씌워 놓았어. 그 앞집에 딸 셋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다니까 궁금해서 보러 왔어. 첫째 딸이 보고는 “아이, 징그러워. 아기가 아니라 구렁이네!” 부지깽이로 구렁이를 콕 찔렀어. 둘째 딸이 보고는 “아이, 징그러워. 아기가 아니라 구렁이네!” 부지깽이로 구렁이를 콕 찔렀어. 셋째 딸이 보고는 “어머나, 구렁덩덩 신선비님이네!” 옷고름으로 구렁이 눈물을 닦아 주었어. 이러구러 세월이 제법 흘러갔거든. 하루는 구렁이가 할머니한테 말했어. “어머니, 어머니, 앞집 처녀한테 장가갈래요.” “에그, 누가 구렁이한테 딸을 준다니?” “그래도 앞집 가서 말해 주세요.” “에그, 누가 구렁이한테 시집온다니?” 하지만 구렁이는 밤새도록 할머니에게 졸라댔지. 할머니가 할 수 없이 앞집 가서 말했지. 앞집 어머니가 딸들을 불렀어. “첫째야, 네가 구렁이한테 시집갈래?” “싫어요, 싫어요, 저는 싫어요.” “둘째야, 네가 구렁이한테 시집갈래?” “싫어요, 싫어요, 저는 싫어요.” “셋째야, 네가 구렁이한테 시집갈래?” “네, 제가 신선비한테 시집갈래요.” 구렁이가 셋째한테 장가를 가는데, 제 집 담장이랑 앞집 담장에 장대를 걸쳐 놓고 구불렁구불렁 건너서 갔어. 그날 밤 구렁이가 각시한테 말했지. “은 대야에 물을 담아 오구려.” 구렁이가 은 대야 물에 몸을 씻으니, 스르르 허물 벗고 훤칠한 선비 됐네! “아유, 우리 멋진 신선비!” “아유, 우리 착한 새색시!” 둘은 얼싸안고 춤을 추었어. 신선비는 각시한테 허물을 주며 몇 번이고 꼭꼭 다짐을 받았어. “내 허물을 아무한테도 내주지 마오.” 신선비는 각시랑 재미나게 살다가, 때가 되어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갔지. 며칠 뒤 언니들이 각시를 찾아왔어. “셋째야, 네 신랑 허물 좀 보여 다오.” “안 돼요, 언니. 그건 안 돼요.” “그깟 게 뭐가 귀하다고 꽁꽁 감춰 두니?” 살짝 보고 돌려줄 테니 어서 보여 다오!” 언니들이 억지로 허물을 빼앗더니 “에그, 징그러워!” 하며 화롯불에 던져 넣었지. 허물 타는 연기는 훨훨 날아가고, 신선비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 각시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구렁덩덩 신선비를 찾아 나섰어. 낡은 치마 잘라 내어 가사 장삼 지어 입고, 헌 저고리 오려 내어 고깔 만들어 쓰고, 밑 터진 바랑 메고 중 모양을 하고서 훠이훠이 멀고 먼 길을 떠났어. 아홉산을 넘고 아홉 강을 건너니, 한 농부가 넓은 돌밭을 일구고 있었지. “농부님, 농부님, 구렁덩덩 신선비 못 보았습니까?” “이 돌밭 다 일구어 주면 알려 주리다.” 각시가 사흘 낮밤 돌밭을 일궈 줬지. “요 앞산을 넘어가면 강이 있는데,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한테 물어보오.” 앞산을 넘어가니 한 아낙이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고 있었지. “아낙네요, 아낙네요, 구렁덩덩 신선비 못 보았습니까?” “흰 빨래 검게 빨고 검은 빨래 희게 빨고, 이 빨래 다 빨아 주면 알려 주리다.” 각시가 사흘 낮밤 빨래를 빨아 줬지. “요 앞강을 건너가면 두엄더미 옆에 나무가 있는데, 거기 앉은 까마귀 떼한테 물어보오.” 앞강을 건너가니 까마귀 떼가 까악까악 배고프다 울고 있었지. “까마귀요, 까마귀요, 구렁덩덩 신선비 못 보았습니까?” “이 두엄 저 두엄 구더기를 잡아서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 주면 알려 주리다.” 각시가 사흘 낮밤 구더기를 잡아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 줬지. “요 앞고개 넘어가면 옹달샘이 있는데, 은 바가지 하나 동동 떠 있을 테니 그걸 타고 가면 볼 수 있으리다.” 앞고개 넘어가니 맑은 옹달샘에 은 바가지 하나 동동 떠 있었지. 각시가 얼른 올라타니, 어느결에 딴 세상이라. 네 귀에 풍경을 단 커다란 기와집에 동자 하나 마당을 쓸고 있네. 각시가 바랑을 내밀며 말했어. “동자님아, 동자님아, 쌀 한 바가지 동냥 주오.” 동자가 쌀 한 바가지 부어 주니 밑 터진 바랑이라 좌르르 쏟아지지. 각시가 한 알 한 알 손으로 줍다 보니 어느새 해가 꼴딱 넘어갔어. “외양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외양간엔 소가 자야 해서 아니 되오.”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마구간엔 말이 자야 해서 아니 되오.” “마루 밑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마루 밑은 비었으니 거기서 자고 가오.” 각시가 마루 밑에 팔 괴고 누웠는데 사내 하나 마당에 나와 달 보며 노래하네. “저 달은 눈 없어도 우리 각시 보련마는 이 몸은 눈 있어도 우리 각시 못 보누나.” 들어 보니 틀림없는 신선비 목소리라. 각시가 노래를 되받아 불렀지. “저 달은 멀어도 신선비님이 보건마는 이 몸은 가까워도 신선비님이 못 보시네.” 신선비가 깜짝 놀라 소리쳤어. “우리 각시 어디 있는 거요? 어서 나오시오!” 그제야 각시가 마루 밑에서 나왔어. 둘은 얼싸안고 춤을 추었지. “아유, 우리 멋진 신선비!” “아유, 우리 착한 새색시!” 각시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어. 신선비가 다 듣고 이렇게 말했지. “이곳에선 허물 없이 살 수 있으나 그곳에선 허물 없이 살 수 없다오.” 둘은 다시 돌아가지 않고 오래도록 허물 없이 잘 살았다지. 구렁이 허물 속의 빛나는 사람. 구렁덩덩 신선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날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 왔지요. 그 이야기 속에는 변신, 동물과의 혼인, 금기와 위반, 이계 여행, 잃어버린 배필 찾기 등 흥미로운 화소들이 가득합니다.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의미도 무궁무진하지요. 관심 깊게 헤아려 볼 수많은 화소가 있지만, 먼저 눈길을 주게 되는 건 바로 구렁이 아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구렁이로 태어난 자식이라니 참 놀랍고도 좀 흉측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 구렁이는 징그러운 허물 속에 신선처럼 빛나는 모습을 숨기고 있었어요. 어머니도 미처 못 알아본 그 참모습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이웃집 셋째 딸이었습니다. 위의 두 언니가 겉모습만 보고 그를 조롱할 적에 셋째 딸은 그의 가치를 꿰뚫어 보고 ‘구렁 덩덩 신선비님’이라고 부르며 눈물을 닦아 주지요. 이면의 참가치와 접속되는 순간입니다. 남들이 지나치고 외면한 참모습을 꿰뚫어 보자 인생이 확 바뀝니다. 구렁덩덩 신선비와의 혼인이 그것이지요. 왜 하필 구렁이를 남편으로 택할까 다들 뜨악했겠지만, 의아심은 곧 찬탄으로 바뀝니다. 셋째 딸의 손길에 의해 허물이 벗겨지면서 구렁덩덩 신선비의 빛나는 참모습이 세상에 환히 드러나게 되지요. 구렁덩덩 신선비의 경우 자기 허물이 태워졌다는 건 작지 않은 일이에요. 그 허물은 신 선비에게 지난 삶의 자취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징표라 할 수 있습니다. 허물을 잘 보관하는 것은 신선비와 아내 사이의 믿음을 가늠하는 시금석이기도 했지요. 그 허물이 태워짐으로써 신선비의 자의식과 정체성이 훼손되고 부부 사이의 신뢰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신선비가 돌아오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저 셋째 딸이 가만히 앉아 울다가 쓰러질 사람이 아니니 걱정 없습니다. 그녀는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일 뿐 아니라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자였어요. 무엇보다 그녀는 ‘움직여서 찾아내는’ 인물이었지요. 신선비를 찾아 길을 나선 셋째 딸은 세상 구석구석을 눈여겨보면서 소통을 합니다. 농부의 돌밭도 일궈 주고 아낙의 빨래도 해주고 까마귀 떼한테 구더기도 잡아 주면서요. 그렇게 밝은 눈을 가지고 거침없이 나아가니 길이 열리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니 셋째 딸이 별세계에 이르러서 구렁덩덩 신선비와 다시 만나 행복을 이루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
견우와 직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 직녀라는 처녀가 살았어. 직녀는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났어. 직녀가 짠 옷감은 유난히 고와서 모두들 그 옷감으로 옷을 해 입고 싶어 했지. 하늘나라에는 견우라는 총각도 살았어. 부지런한 견우는 소 모는 일을 했어. 견우가 모는 소들이 밭을 갈면 유난히 농사가 잘되어서 농부들은 견우를 귀히 여겼지. 어느 봄날 견우와 직녀는 동산에서 마주쳤어. 직녀는 소를 탄 견우를 보고 마음이 설레었어. 그렇게 늠름한 총각은 처음 보았지. 견우도 직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어. 그렇게 사랑스러운 처녀는 처음 보았거든. 견우는 소에서 내려 직녀를 위해 풀피리를 불었어.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단다. 풀피리 소리는 밤낮으로 울려 퍼졌어. 둘의 사랑도 더불어 깊어 갔지. 하늘나라 임금님은 둘을 결혼시켜 주었어. 하늘나라 사람들도 저마다 축하해 주었어. 둘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지냈지. 그러느라 베 짜는 것도 잊고 소 모는 것도 잊고 말았어. 직녀가 베를 짜지 않아 옷감이 모자랐어. 견우가 소를 몰지 않아 농사도 잘 안됐어. 하늘나라 사람들은 하루빨리 두 사람이 전처럼 부지런해지기를 바랐어.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지. 하늘나라 임금님은 견우와 직녀를 불렀어. "어째서 게으름을 피는 게냐? 당장 일을 시작하거라!" 직녀는 다시 베틀에 앉았지만 견우가 눈에 아른거려 도무지 베를 짤 수 없었어. 견우도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지만 직녀가 눈에 아른거려 도무지 소를 몰 수 없었어. 하늘나라 임금님은 결국 벌을 내리기로 했어. "도저히 안 되겠구나. 견우는 은하수 동쪽으로 가 소를 몰고 직녀는 은하수 서쪽으로 가 베를 짜거라! 그리고 일 년에 딱 하루, 칠월 칠일에만 만나거라." 견우와 직녀는 임금님께 용서를 빌었지만 소용없었어.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져야 했지. 은빛 별들이 강을 이루는 은하수 끝으로 끝으로 하염없이 손을 흔들며 헤어진 거야. 직녀는 울먹이며 베를 짜기 시작했어. 씨실 날실 걸어 놓고 짤가닥 짤깍 구슬프게 베만 짰어. 견우도 말없이 발을 갈았어. 이랴이랴 워워 소만 몰았어. 둘은 칠월 칠일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어. 드디어 칠월 칠일이 됐어.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향해 바삐 갔어. 하지만 은하수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 은하수가 너무 넓고 너무 깊어 도저히 건널 수 없었거든. 견우와 직녀는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어. "견우님!" "직녀님!" 두 사람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어. 눈물은 은하수를 넘치게 하더니 하늘 아래 세상에 장대비로 쏟아졌어.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렀는지 하늘 아래 세상은 물난리가 나고 말았지. 물을 피해 하늘로 오르던 까마귀 까치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어. 견우와 직녀의 슬픔이 까마귀 까치의 마음을 움직였지. "우리가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자!" 세상 모든 까마귀, 세상 모든 까치가 한꺼번에 날아올랐어. 은하수에는 긴 다리가 놓였어. 까마귀 까치가 머리를 잇대어 만든 다리였지. 견우와 직녀는 그 다리를 밟고 한달음에 건너가 부둥켜안았어.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어. 이번에는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지. 지금도 해마다 칠월 칠일이 되면 까마귀 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는대. 그러느라고 머리가 다 벗어진다지.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게 된 뒤로 하늘 아래 세상에는 물난리가 나지 않았어. 그럼 가끔 내리는 보슬비는 뭐냐고? 견우와 직녀가 만날 때 흘리는 기쁜 눈물, 헤어질 때 흘리는 서러운 눈물이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하늘의 은하수를 본 적이 있나요? 은하수, 은빛 강물이라는 뜻이에요. 은하수를 본 적이 있나요? 밤하늘을 흐르는 강물이랍니다. 하늘 가운데를 뿌옇게 가로지르는 수많이 별의 물결, 그게 은하수지요. 은하수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반짝이는 두 개의 별을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남다르게 느껴질 거에요. 그건 참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이지요. 저 하늘 한복판에 흐르는 별들의 강물에 놓인 까막까치의 다리라니요! 혹시 그 다리의 이름을 뭐라 하는지 아나요? 바로 '오작교'에요. '까마귀와 까치의 다리'라는 뜻이지요.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에 서로 만난 것도 오작교를 사이에 두고서였답니다. 하늘나라에도 농장이 있어서 소를 몰아 밭을 갈고 또 삼을 심어서 베를 짠다고 해요. 하늘나라에서 밭을 갈고 베를 짜는 청춘 남녀라니 참 멋진 상상입니다. 우리 마음을 저 높은 곳으로 두둥실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그런데 그 하늘나라나 별나라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지도 몰라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별이잖아요. 이 땅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들 또한 견우이고 직녀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나저나 참 슬픈 이야기에요. 멋진 청년과 예쁜 처녀가 제대로 만나서 많이많이 사랑했는데 서로 갈라져야 했다니 말이지요. 그까짓 밭 갈고 베 짜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를 갈라놔서 슬픔에 빠지게 했나 몰라요. 내내 함께 붙어서 서로 바라보고 웃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견우와 직녀의 사연은 먹고사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일을 떠올리게 하여 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 헤어짐은 스스로 불러온 일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좋은 일이라지만, 사랑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자기 할 일은 하면서 사랑은 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어요. 베 짤 사람이 베를 짜지 않고 밭 갈 사람이 밭을 갈지 않는다면, 의사가 사람을 고치지 않고 정치인이 나라 살림을 돌보지 않고 학자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말겠지요. 하늘나라 임금님이 나서서 견우와 직녀에게 벌을 내린 것은 그리한 만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벌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네요. 한 달도 아니고 1년에 한 번이라니,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고 만남은 짧아요. 눈물 흘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두 사람 그렇게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위에서 오래 기다린 사랑을 풀어내는 두 사람. 세상에 이보다 더 애틋한 장면이 또 있을지요! |
감은장아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배고픈 시절 이야기야. 하도 배가 고파서 거지들이 밥을 빌어먹는데 윗마을 남자 거지도 밥 밥 아랫마을 여자 거지도 밥 밥 하다가 가운데 길에서 딱 눈이 맞아 부부가 되었대. 얼마 뒤, 거지 부부는 딸 셋을 줄줄이 낳았어. 그래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는데 큰딸은 은그릇에 죽을 얻어먹어서 은장아기, 둘째 딸은 놋그릇에 죽을 얻어먹어서 놋장아기, 막내딸은 검은 나무 그릇에 죽을 얻어먹어서 감은장아기가 됐더래. 감은장아기가 쑥쑥 자라면서 거지 부부 살림도 쑥쑥 불어났어. 아장아장 걸음 떼니 논밭이 척 생기고 아빠 엄마 말 터지니 집짐승들 착착 늘고 아롱다롱 수놓으니 집안 살림이 점점점 많아져 감은장아기가 열다섯 살 되니 삐걱삐걱 거지 집은 번듯번듯 부잣집 되어 에헴! 에헴! 하루는 아버지가 영 심심해서 딸 셋을 불렀어. "큰딸 은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입니다." 이 말에 아버지 마음이 달덩이처럼 환해졌어. "오오, 역시 내 딸! 기특하다, 기특해!" "둘째 딸 놋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이지요." 이 말에 아버지 마음이 햇덩이처럼 후끈거렸어. "오오, 역시 내 딸! 기특하다, 기특해!" 이제 감은장아기 차례였어. 아버지는 잔뜩 기대하며 물었지. "우리 막내딸 감은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도 있지마는 나는 내 복으로 먹고살아요." 이 말에 아버지 마음이 얼음덩이처럼 차가워졌어. "네 복으로 먹고살아? 어디 썩 나가서 네 복으로 잘 살아 봐라!" 그러니 어째. 감은장아기는 암소 등에다 쌀 몇 줌과 입던 옷가지를 싣고 집을 나갔지. 근데 부모가 막상 감은장아기를 쫓아내고 보니까 좀 미안하고 걱정되거든. 그래 찬밥이라도 먹여 보낸다고 큰딸을 보냈어. 그랬더니 큰딸이 심통 부리며 하는 말이 "막내야, 빨리빨리 안 가고 뭐하니? 엄마 아빠 너 때리러 나온다!" 그렇게 말하고서 노둣돌을 내려서더니 이내 지네로 펑 변해 가지고는 흐느적흐느적. 부모는 한참 기다리다가 둘째 딸을 보냈어. 그랬더니 둘째 딸도 심통 부리며 하는 말이 "막내야, 빨리빨리 안 가고 뭐하니? 엄마 아빠 너 때리러 나온다!" 그렇게 말하고서 노둣돌을 내려서더니 이내 말똥버섯으로 펑 변해 가지고는 뭉기적뭉기적. 그런 줄도 모르고 부모는 딸 셋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대. 감은장아기는 발 가는 대로 타박타박 고개 넘어 고갯길, 산 넘어 산길 넘어 마침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하나 찾았어. 마를 캐다 먹고 사는 마퉁이네 집이었지. "할머니 할머니, 하룻밤만 재워 주세요." "이잉? 우리 집은 덩치 커다란 아들이 셋이라 방이 꽉꽉 차. 빈방도 없고." 감은장아기가 부엌이라도 좋다고 딱 버티니까 할머니도 그만 그러라고 했지. 조금 있으려니 와르릉탕탕, 와르릉콰르릉, 도르릉소르릉. "할머니, 이게 무슨 소리지요?" "잉, 우리 집 삼 형제 마 캐고 오는 소리." 큰마퉁이가 와르릉탕탕 나타나더니 마 대가리 툭 잘라 할머니한테 던지고 살덩이는 혼자서 움막움막. 둘째 마퉁이가 와르릉콰르릉 나타나더니 마 꼬랭이 톡 끊어 할머니한테 던지고 살덩이는 혼자서 움막움막. 막내 마퉁이는 도르릉소르릉 얼굴만 들이밀더니 마 대가리 마 꼬랭이 탁탁 끊어 내어 살덩이를 할머니한테 건네네. 감은장아기는 마 삶는 솥을 빌렸어. 뽀득뽀득, 와랑와랑, 보글보글 쌀밥 지어 들고 가니 마퉁이 식구들은 쌀밥을 난생처음 보는 거야. 할머니는 "잉, 이런 건 옛날에도 안 먹었던 거야." 하며 돌돌돌 돌아누웠어. 큰마퉁이는 "희멀건 벌레를 먹으라고?" 하며 푸르륵 성을 냈어. 둘째 마퉁이는 "징그러워. 안 먹어." 하며 찌리릿 째려봤어. 막내 마퉁이는 "하 이거, 고맙습니다." 하며 무룩무룩 밥을 잘도 떠먹으니 감은장아기 마음에 쏘옥 들었지. 그래 감은장아기는 막내 마퉁이한테 부부가 되자고 했어. 이렇게 신랑 각시로 사는데 하루는 감은장아기가 마 파는 데를 구경하려고 따라나섰어. 가 보니까 큰마퉁이 구덩이엔 물락물락 똥이 수북. 둘째 마퉁이 구덩이엔 우글우글 구렁이가 수북. 막내 마퉁이 구덩이엔 둥글둥글 돌덩어리가 수북한데 흙을 탈탈 털어 내니까 번쩍번쩍 그게 다 금덩어리야. 감은장아기 말대로 금덩어리를 내다 파니까 마퉁이 집은 금세 으리으리한 부자가 됐어. 감은장아기 들어간 마퉁이 집은 이렇게 잘사는데 감은장아기 쫓겨난 부모 집은 폭삭 망하더래. 부모가 딸들 찾아 나섰다가 대문간에 꽝 부딪치니 둘 다 눈이 멀어 폭삭. 앉은 채로 먹고 싸고 울며 가진 것 다 팔게 되니 빈털터리로 폭삭. 그러니 어째. 달랑 막대기 하나 짚고 도로 거지가 됐지. 감은장아기는 진작에 이걸 알고 남편과 의논해서 백 일 동안 거지 잔치를 벌이기로 했어. 방방곡곡 구석구석 떠돌던 거지들이 벌 떼처럼 모여들어 잔칫상을 받아먹었어. 근데 아흔아홉 날이 지나도 부모님은 안 보여. 마지막 날이 되니까 늙은 거지 부부가 더듬더듬 들어오는데 틀림없이 부모님이야. 감은장아기는 종한테 일렀어. "저 거지 부부가 아래쪽에 앉걸랑 위쪽에 상을 놓고 위쪽에 앉걸랑 아래쪽에 상을 놓고 가운데 앉걸랑 양쪽에 상을 놓아라." 이러니 거지 부부가 아무리 옮겨 앉아도 달각달각 그릇 소리만 나지 먹을 차례가 안 와. 다른 거지들은 다 배불리 먹고 떠났는데 말이지. "아이고, 복 없는 놈은 거지 잔치에 와도 상을 못 받아먹는구나." 꺼이꺼이 울며 거지 부부가 나가려는데, 누군가 두 거지를 사랑방으로 데려가서는 오만 가지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맨질맨질한 새 옷까지 갈아입히네. 그러고 하는 말이, "어머님, 아버님, 제가 감은장아기입니다." 거지 부부는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었어. "어, 어, 어디 보자. 진짜 감은장아기냐?" 하며 손을 뻗는데 술잔을 탈랑 떨어뜨리니까 깜깜한 눈이 팔랑 떠졌지. 그 뒤로 감은장아기는 부모님 모시고 잘 살았대. 이렇게 감은장아기는 복을 주렁주렁 달고 살더니 나중에는 복을 다스리는 운명신이 되었다지. 어양어기 상사디야. 이 책 (감은장아기)는 우리나라 신화에서 가져온 이야기입니다. '감은장아기'는 제 주의 무가 (삼공본풀이)의 주인공이지요.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민담으로도 전국적 으로 전해 왔는데 이는 흔히 '내 복에 산다'형 민담이라고 부릅니다. 이야기 내용을 보면, 감은장아기의 아버지가 세 딸을 불러서 문답 놀이를 한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몸짓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너도 나를 사랑해?"이런 식이지요. "네, 저도 부모님 사랑해요. " 이렇게 답하면 그만인 일이에요. 큰 딸 둘째 딸은 그렇게 했는데 감은장아기는 왜 그 말을 못 했나 몰라요.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요!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저 아버지가 딸들한테 물은 건"너는 누구 덕에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이 질문은"네 삶의 주인은 누구냐?" 하는 질문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주었다 하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감은장아기는"아버님 덕, 어머님 덕도 있지마는 나는 내복으로 먹고살아요. " 하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딱 맞는 답이지요. 그런데 저 아버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린 딸을 쫓아냈으니 철없는 부모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자기 품 안에 가둬두려고 하는 부모라고나 할까요? 그리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지요. 자식이 부모한테 의존해서 제 앞가림을 스스로 못하게 되거든요. 은장 아기 놋장 아기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사랑을 차지하려고 동생을 쫓아내는 모습이라니, 철이 없어도 너무 없지요. 그들이 지네가 되고 말똥 버섯이 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부모가 장님이 된 것도 마찬가지예요. 진실을 보지 못하니 눈이 멀게 되는 것이지요. 신기한 일은 감은장아기가 집을 나서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니까 진짜로 길이 훌쩍 열렸다는 사실이에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우니 겁이 날 만도 한데 감은 잘 아기는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새로 만나는 사람이나 새로 겪는 일들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지요. 밝은 눈으로 대상을 보니까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 보물을 알아보게 됩니다. 막내 마퉁이는 그렇게 찾아낸 멋진 짝이었지요. 하찮은 것인 줄 알았던 돌덩어리도 감은 잘 아기 눈으로 다시 보니 금덩이가 되는 것이고요. 모두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멋진 성공을 거둔 감은장아기는 거지가 된 부모님을 찾아서 상봉합니다. 눈물과 감격의 상봉이었지요. 그때 부모님은 멀었던 눈을 번쩍 뜨게 되는데 그건 그들이 비로소 세상의 진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남의 복, 남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의복,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라는 진실 말이에요. |
방귀 시합 | 의사소통 | 유아 | 동래에 유명한 방귀쟁이가 살았어. 마음먹고 방귀 한번 뀌면 천 리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는 동복이 아버지가 바로 그 사람이지. 여기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 구포에 살았어. 방귀 한번 크게 뀌면 구포산이 흔들릴 정도였어. 구만이 아버지가 바로 그 사람이지. 동래 사는 동복이 아버지가 구포 사는 구만이 아버지 소문을 들었어. "누구 방귀가 더 대단한지 대보기나 할까?" 동복이 아버지는 구만이 아버지를 만나려고 허위허위 나섰어. "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가셨는데요." 혼자서 집 보던 구만이가 대답했어. "허허, 그것참." 동복이 아버지는 입맛만 쩝쩝 다시다가 이왕 온 김에 방귀나 자랑할까 싶었지. "얘야, 여기 아궁이 앞에 앉아 봐라." 동복이 아버지는 구만이를 아궁이 앞에 앉혔어. 그러더니 영문 몰라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구만이를 향해 살짜쿵 방귀를 뀌었지. 뿌우우웅! 동복이 아버지 방귀 소리는 마른하늘에 천둥 같았어. 우아아아앙! 구만이는 동복이 아버지 방귀에 밀려서 아궁이를 지나 시커먼 굴뚝 위로 머리만 뿅 나왔지 뭐야. "아이고, 어째요? 이제 나는 어떻게 내려가요?" 구만이가 엉엉 울자 동복이 아버지가 껄껄 웃었어. "염려 마라, 내가 도로 내려 줄 테니." 동복이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방귀를 뀌었어. 뿌우우웅! 그 방귀를 맞은 구만이는 굴뚝 아래로 쑥 내려갔지. 엉금엉금 아궁이를 기어나온 구만이는 정신이 쏙 빠졌어. 동복이 아버지는 구만이를 뒤로한 채 동래로 돌아갔지. 나무를 해서 돌아온 구만이 아버지는 새까매진 구만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 "이게 누구냐? 동글동글 탱글탱글 내 아들 구만이 맞냐?" 구만이는 눈물 찔끔, 콧물 훌쩍이면서 이러저러했노라고 늘어놓았어. 구만이 아버지는 한달음에 동래로 달려갔어. "아버지는 고기 잡으러 가셨는데요." 동복이 대답에 구만이 아버지는 눈썹을 치켜세웠어. "먼 길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지." 구만이 아버지는 동복이네 집에 엉덩이를 쑥 들이밀었어. 뿌우우웅! 그러자 동복이네 집이 쩍 갈라졌어. "으하하하하! 이 정도면 내 방귀의 힘을 알았겠지?" 구만이 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구포로 돌아갔어. 동복이 아버지가 돌아와 이 꼴을 보고 깜짝 놀랐어. "도, 동복아, 이게 무슨 꼴이냐? 우리 집에만 지진이 난 게냐?" 동복이는 여차여차했다고 울며불며 말했어. 동복이 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 "우선 내 집을 고쳐 놓고." 동복이 아버지는 뿌르르릉 뿡 방귀를 뀌어 집을 다시 붙여 놓았어. 그러곤 다시 엉덩이와 똥구멍에 온 힘을 모았지. "내 방귀의 힘을 제대로 보여 주마." 동복이 아버지는 방귀를 뀌어 돌절구를 구포로 날렸어. 뿡구르르르 뿡뿡뿡! 엄청난 소리와 함께 돌절구가 둥실 떠올라 구만이네로 슝 날아갔지. "엥? 저게 뭐냐?" 날아오는 돌절구를 보고 가만있을 구만이 아버지가 아니지. "오냐. 그렇다면 내 힘도 보여 주마." 구만이 아버지는 방귀로 돌절구를 다시 동래로 날렸어. 그러곤 말안장을 꺼내어 방귀로 뿡 날렸지. 뿡뿌루루루루 뿡뿡! 말안장은 동래를 향해 슉슉 날아갔어. 뿡구르르르 뿡뿡뿡! 뿡 뿌루루루루뿡뿡! 하늘에는 하루 종일 돌절구와 말안장이 슝슝슝 날아다녔어. 뿡구르르르 뿡뿡뿡! 그 소리와 냄새로 동래와 구포가 자르르 울렸어.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냄새 때문에 숨을 못 쉬겠네." "소리 때문에 못 살겠네." 마을 사람들은 코를 틀어쥐고 귀를 막았어. 슉슉 날아다니는 말안장과 돌절구를 걱정스레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때였어. 딱! 중간에서 말안장과 돌절구가 딱 부딪친 거야. 말안장과 돌절구는 빙글빙글 돌더니 바다로 떨어졌어. 방귀 소리를 잔뜩 먹은 말안장은 가오리가 되었고. 방귀 냄새를 잔뜩 먹은 절구는 숭어가 되었지. 그래서 지금도 가오리와 숭어는 방귀 소리만 나면 재빨리 숨어 버린다는구나. 히야, 예전 부산 사람들 방귀깨나 뀌었나 봐요! 이런 방귀쟁이가 둘이나 살았다니 말이에요. 구포나 동래가 어딘지는 대략 알지요? 둘 다 부산에 있는 지역 이름이에요. 높은 산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요. 그 산 너머로 말안장과 돌절구를 휙휙 날렸다니 참 대단해요. 다른 것도 아닌 방귀 힘으로 말이지요! 맞아요, 허풍을 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요! 하하하. 이 (방귀 시합) 이야기는 허풍으로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웃고 즐기면 되는 이야기 지요. '이거 정말 있었던 일이야?" "방귀 힘이 정말 그렇게 셌단 말이야?" 이렇게 물으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 되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혹시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몰라요. 그 러면 어떻게 답하면 될까요? "에이, 다 뻥이야!" 이러면 될까요? 아니, 그보다는 "그럼, 정말로 그랬고말고!" 이게 더 멋진 대답이 될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니고, 호랑이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던 머나먼 옛날이야기 나라에서 말이야. 하하하." 이렇게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사람들은 방귀 뀌는 일을 좀 더럽고 부끄럽게 생각하지요. 소리도 소리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니 반갑지 않은 일이 맞아요. 하지만 이 (방귀 시합) 이야기는, 이런 방귀조차도 큰 재주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는 법이니 방귀라고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겠지요. 그것이 자기가 가진 특별한 개성이라면 억눌러 감추기보다 당당히 드러내는게 차라리 더 나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다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줄 수 있게 되는 법이지요. 한번 방귀쟁이로 딱 인정을 받고 나면, 방귀를 뀌어도 "에이, 또 방 귀야? 하하하." 이렇게 웃어넘기게 됩니다. 그건 그렇고, 영문도 모른 채 방귀에 날려서 하늘을 날아다니던 말안장과 돌절구가 딱 부딪친 뒤 바다에 떨어져서 가오리가 되고 숭어가 됐다는 거, 좀 웃기지 않나요? 생김새가 서로 딱 닮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글쎄요, 가오리나 숭어한테 방귀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나서 이런 유래담이 생긴 걸까요? 다음에 가오리나 숭어를 보면 한번 슬쩍 냄새를 맡아 봐야겠어요! 일부러 해설을 좀 재미있게 써 봤어요. 글도 늘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이야기를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한 가지 시선으로 보기보다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여러 방식으로 보면 그 재미가 배가될 수 있지요. 아이들하고도 이렇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될 거예요. |
요술 항아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고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았어. 평생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고 살다가,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돈을 모아 겨우 손바닥만 한 밭 한 뙈기를 마련했거든. 그래도 자기 땅이니 얼마나 좋아. 날마다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지. "이 밭을 일궈 풍년 들면 또 한 뙈기를 사야지. 그 밭을 일궈 풍년 들면 또 한 뙈기를 사고. 그러다 보면 나도 부자가 되겠지." 그날도 이렇게 흥얼거리며 괭이질을 하는데, 쨍그랑! 괭이 끝에 뭐가 걸리지 뭐야. 돌덩이라도 있나?" 하고 땅을 파 보니, 커다랗고 찌그러진 항아리가 하나 나오는 거라. '이걸 어따 쓸까?' 고민하다가 '오줌독으로 쓰자!' 괭이를 꽂아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거든. 그런데, 어라? 지게를 내려놓고 보니 항아리 속에 괭이가 두 자루네. '이상하다. 분명 한 자루만 넣었는데....' "히야! 이게 보물이네, 보물!" 농부 입이 아주 귀에 걸렸어. 그때부터 다 먹고 다 입고 다 쓰고 살았지. 금세 동네방네 소문이 돌았어. 농부한테 밭 한 뙈기 판 부자도 소문을 들었지. '아이고, 밭만 안 팔았으면 보물은 내 건데!' 며칠 배를 앓다가 농부한테 달려가 항아리 내놓으라 했어. "난 밭만 팔았지 항아린 안 팔았거든!" 농부가 기가 막혀, "밭이 내 거면 항아리도 내 거지!" "옷을 샀는데 주머니에 돈이 들었으면 옷 판 사람한테 돌려줘야 할 거 아냐!" "암탉을 샀는데 알을 낳으면 그것도 돌려줘야 해?"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 고을 원님한테 가기로 했어. "원님! 원님이 심판을 내려 주시우." 한데, 원님이 얘길 듣고 보니 군침이 슬슬 돌더란 말이야. '저걸 내가 차지하면 엄청난 부자가 되겠지?' 속마음이 점점 시커메지는 거라. 흠흠 목청을 다듬어 판결을 내렸어. “그렇게 귀한 보물은 백성들이 갖는 게 아니다. 내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나라님께 바칠 테니 그리 알아라.” 농부도 부자도 기가 막혔지만, 나라님께 바친다니 어쩔 수 있나. 닭 쫓던 개 꼴이 되어 털레털레 돌아갔지. 그 밤부터 원님인지 원놈인지 아주 신이 났어.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는 밤새는 줄 모르고 항아리 놀이를 하는 거라. "비단 한 필 넣으면 비단이 두 필!" "금송아지 한 개 넣으면 금송아지가 두 개!" "엽전 한 꾸러미 넣으면 엽전이 두 꾸러미!" "으흐흐흐! 자꾸자꾸 나오는구나. 신 난다, 신 나!" 그런데 원님한테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셨거든. 이 영감님이 가만 보니, 아들이 어느 날부터 밤만 되면 방문을 닫아걸고 낄낄거리더란 말이야. '틀림없이 꿀단지를 숨겨 두고 혼자 냠냠 먹는 것이렷다!' 하루는 원님이 나간 틈을 타 방으로 들어가 봤어. 과연 아주 커다란 꿀단지가 떡하니 놓였거든. "에라, 이 몹쓸 놈! 이렇게 큰 꿀단지를 저 혼자서!" 영감님이 발을 한껏 돋워 항아리 속을 들여다봤지. 컴컴하니 잘 안 보여서 고개를 더 쑥 디밀었는데, 어이쿠! 그만 항아리 속으로 쏙 빠져 버리고 말았네. 그런데 빠지고 보니 텅 빈 항아리지 뭐야. '이 녀석이 그새 다 먹어 버렸나?' 그만 나가려는데 주둥이가 높아 나갈 수가 없네. "아이고, 얘야! 나 좀 꺼내 줘라!"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지. 원님이 깜짝 놀라 달려왔어. "아이고, 아버지! 거긴 왜 들어가셨어요?" "까닭은 알아 무엇하냐! 얼른 꺼내기나 해라!" 원님이 부랴부랴 팔을 뻗어서 "꼭 잡으셔요, 아버지! 하나, 두울, 셋!" 아버지를 쑥 뽑아 올렸거든. "어이쿠, 살았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이야. 항아리 속에서 또 고래고래 부르는 소리가 나네. "아이고, 얘야! 나 좀 꺼내 줘라!" "엥? 분명히 꺼내 드렸는데 항아리 속에 아버지가 또 계시네!" 또 쑥 뽑아내니, 또 고래고래! 또 쑥 뽑아내니, 또 고래고래! 또 쑥 뽑아내니, 또 고래고래! 쑥, 고래고래! 쑥, 고래고래! 쑥쑥, 고래고래! 종일 이러다 보니 이런, 세상에! 꺼내 놓은 아버지가 삼백예순네 명일세. 원님은 지쳐 쓰러졌는데 아버지들은 티격태격. "내가 진짜야!", "네가 가짜지!" 항아리 속에서는 아직도 고래고래. "아이고, 얘야! 나 좀 꺼내 줘라!" 원님이 하도 지긋지긋해서, "아이고, 제발 이제 그만들 하세요!" 목침을 들어 항아리를 내리쳐 버렸어. 와그장창! 그제야 고래고래 소리가 잦아들고, 아버지는 꼭 삼백예순다섯 명이 되었지. 원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가 꽉꽉 막히는 거라. '항아리는 박살 났는데 이 많은 아버지를 무슨 수로 봉양한담?’'그러거나 말거나 영감님들은 한목소리로, "얘야, 티격태격했더니 시장하구나. 어서 밥 좀 다오." 그 뒤로 원님은 삼백예순다섯이나 되는 아버지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 날마다 먹고 입고 쓰는 뒤를 대느라 허리가 휘어 꼬부라졌다나 어쨌다나. 무엇이든 하나를 넣으면 두 개가 나오는 항아리. 이런 요술 항아리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지요?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뭐든지 넣기만 하면 두 배가 되니 정말로 대단한 보물이에요. 만약 아이들한테 "너한테 이런 항아리가 있다면 무얼 먼저 넣겠니?"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런데 이런 보물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남들이 안 가진 걸 가지고 있으니 샘을 내는 사람이 생기고 그것을 어떻게든 빼앗으려는 사람이 생겨요. 안 빼앗기고 지키려다 보니 피곤하고 갑갑해지기도 하고, 붉으락 푸르락 신경전을 벌이게 도 됩니다. 그러다가 원님한테 항아리를 뺏겨 버렸으니 항아리를 얻은 게 정말 잘된 일 이었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예요. 보물이 있다가 없어졌으니 더 허전할지도 모르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항아리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보면 저 농부가 항아리에서 이것저것 꺼 내 쓰면서 남들한테 좀 뻐긴 것 같기도 해요. 귀한 물건인 만큼 오히려 조심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착착 꺼내 썼다면, 또 항아리에서 나온 걸 혼자만 챙기지 않고 사람들이랑 잘 나누었다면 탈이 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물론 하나의 상상이에요. 그나저나 항아리를 빼앗아 간 원님이 된통 당하는 모습은 아주 우습고 통쾌합니다. 남의 보물을 억지로 뺏었다가 곤욕을 치르게 됐으니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지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입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떻든 원님의 이기심 때문에 귀한 항아리까지 박살 나고 말았으니 참 아깝고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 항아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요. 온 세상 굶주리는 아이들을 다 입히고 먹일 수 있을 테니까요! 옛날이야기 속의 보물 가운데 ‘화수분’이라는 게 있어요. 뭐든 넣으면 나오고 또 나 오고 한없이 나온다는 보물이지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항아리도 일종의 화수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든 넣기만 하면 두 배가 나오니 한없이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요. 그런데 화수분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어요 필요한 만큼 써야 한다는 거지요. 괜한 욕심으로 지나치게 많은 걸 뽑아내다 보면 어김없이 사달이 납니다. 이 이야기 속의 원님 이 꼭 그런 지경이 된 셈이에요. |
두꺼비와 토끼와 호랑이의 떡 먹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 깊은 산속에 두꺼비, 토끼, 호랑이가 살았어. 때는 추운 겨울이었지. 셋은 며칠 동안 굶어서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어. 셋은 떡을 해 먹기로 하고 마을로 내려가 이것저것 훔쳤어. "이만하면 떡을 해 먹을 수 있을 거야!" 셋은 숲으로 돌아갔어. 시루에 쌀가루를 안치고 솥에 올렸어. "김이 솔솔 오르면 맛있는 떡이 될 테지!" 바위 사이에 솥을 걸고 두꺼비가 활활 불을 땠지. 셋은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떡이 익기를 기다렸어. '나 혼자 다 먹어도 모자랄 텐데.' 호랑이는 생각했어. '어떻게든 내가 다 먹어야지!' "셋 중 술을 가장 못 마시는 쪽이 떡을 혼자 다 먹는 게 어때?" 호랑이는 시침을 뚝 떼고 말을 꺼냈어. 두꺼비와 토끼는 호랑이의 두툼한 발을 보았어. 둘은 떡 맛도 못 보고 죽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지. "그래, 그게 좋아." "나도 좋아." 둘은 마지못해 대꾸했어. "나는 밀밭에만 가도 취해." 호랑이가 먼저 말했어. "난 술 취한 사람 얼굴만 봐도 취하는걸." 토끼가 말했지. 둘의 말에 두꺼비는 몸을 앞뒤로 옆으로 마구 흔들었어. "왜 갑자기 몸을 흔드는 거니?" 호랑이와 토끼가 물었어. "너희 술, 술 소리에 벌써 취해 버렸어." 말할 것 없이 두꺼비가 이긴 거지. "어, 잠깐만! 다른 내기를 하는 게 좋겠어." 호랑이는 이어서 말했어. "셋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쪽이 떡을 혼자 다 먹는 게 어때?" 두꺼비와 토끼는 호랑이의 삐죽 나온 이빨을 보았어. 둘은 떡 맛도 못 보고 죽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지. "나는 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 하늘에 별을 달았지." 호랑이가 먼저 말했어. "아, 그때 네가 딛고 올라선 사다리는 내가 심은 나무로 만든 거란다." 토끼도 지지 않았어. 둘의 말에 두꺼비는 눈물을 줄줄 흘렸어. "떡을 못 먹게 되어서 우는 거로구나." 둘은 말했겠지. "아니,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죽은 아들이 생각나 우는 거라네. 토끼가 사다리 만들 때 쓴 망치 자루는 내 아들이 심은 나무로 만들었거든." 두꺼비가 또 이겼어. "으흠, 안 되겠어! 다른 내기 해." 호랑이는 눈을 부리부리 뜨며 말했어. "셋 중 압록강을 먼저 헤엄쳐 건너온 쪽이 떡을 혼자 다 먹는 거야. 어때?" 두꺼비와 토끼는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눈이 갔어. 둘은 떡 맛도 못 보고 죽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지. 호랑이와 토끼가 강물 속으로 뛰어들자, 두꺼비는 호랑이 꼬리를 꽉 붙잡고 매달렸어. 앞선 호랑이가 있는 힘을 다할 때 두꺼비는 부웅 튕겨 올랐어. 와우! 두꺼비는 몸을 날려 강둑에 사뿐히 올라앉았어. 강둑에는 마침 썩은 짚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지. "아이고, 이제야 오다니. 강을 헤엄쳐 와서 너희를 기다리며 삼아 신은 짚신이 이 지경이 되었어." 두꺼비는 제 발의 썩은 짚신을 가리키며 눈을 꿈적였어. 두꺼비가 둘을 보기 좋게 이긴 거야. "떡은 이제 내 거야!" 두꺼비는 뽐내며 말했어. "으흐흥, 잠깐만 기다려!" 호랑이는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어. "떡시루를 산꼭대기에서 굴려 먼저 쫓아가 잡는 쪽이 떡을 다 먹는 거야!" 그러고는 떡시루를 산비탈 아래로 굴려 보냈어. 데굴데굴 데구르르. 호랑이와 토끼도 힘껏 달려 내려갔어. '이제야말로 떡은 내 차지야!' 둘은 생각했지. 두꺼비는 엉금엉금 산비탈을 기어 내려갔어. 데굴데굴 굴러가던 떡시루가 나무 밑둥치에 턱 걸렸어. '옳다구나!' 두꺼비는 떡시루의 떡을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어. 먹고 먹고 또 먹었는데도 떡이 남았어. '아까워서 어쩌지?' 두꺼비는 남은 떡을 등어리에 지질지질 붙여 놓았어. 배고플 때 먹으려고 말이야. 두꺼비가 산비탈을 기어 내려가자, 멀리서 둘이 머리를 모으고 앉아 있는 게 보였어. "너희, 뭐 하는 거니?" 두꺼비는 눈을 꿈적거리며 물었어. "혹시 떡시루 굴러 내려오는 거 못 보았니?" "그거? 나무 밑둥치에 걸려 있어서 내가 다 먹었지." "참, 배고프면 이거라도 떼어먹어." 두꺼비는 둘 앞에 떡을 눌러 붙인 등을 돌려댔어. 등에는 마른 떡이 두툴두툴 붙어 있었어. 그때부터 두꺼비 등은 두툴두툴해졌어.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떡을 못 먹은 호랑이는 분을 참지 못해 펄펄 뛰다가 사나워진 거고 말이야. 토끼는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다녀 방정맞아진 거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호랑이와 토끼. 세 동물의 지혜 겨루기를 내용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호랑이와 토끼와 두꺼비는 서로 말 겨루기를 해서 이기는 쪽이 맛있는 떡을 먹기로 하지요.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이야기 시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흥미진진한 시합이지요. 이런 시합은 예상과 다른 진행이 이루어지는 게 이야기다운 묘미가 됩니다. 이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힘센 호랑이와 재빠른 토끼가 유리할 것 같은데, 막상 시합에서 이긴 건 작고 둔해 보이는 두꺼비였어요. 약자가 강자를 보기 좋게 이기는 모습은 언제나 유쾌한 즐거움을 전해 줍니다. 그런데 호랑이하고 토끼는 왜 시합에서 두꺼비한테 진 걸까요? 두꺼비가 그들보다 지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호랑이하고 토끼가 스스로 제 꾀에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욕심이 앞서서 설치다가 약점을 보여서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지요. 먼저 호랑이를 볼까요? 맨 먼저 나서서 내기를 하자고 한 건 바로 호랑이였어요. 자기 힘을 믿고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일이었지요. 문제가 뭐냐면 앞뒤 생각도 없이 먼저 나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약점이 드러나지요. 매번 시합마다 다 그래요. 아마 열 번 백 번 시합을 해도 다 졌을 거예요. 가만 보면 토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랑이의 위세에 눌려서 내기에 응한 것 같지만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설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호랑이가 움직이고 나면 곧바로 나서서 방정맞게 행동하잖아요! 이 또한 제 욕심이 앞서고 자신감이 지나친 데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토끼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약점을 보이게 되지요. 두꺼비는 호랑이나 토끼하고는 달랐어요. 먼저 나서지 않고 호랑이와 토끼가 하는 말과 행동을 지켜보지요. 그러면서 해법을 찾아요. 앞에서 둘이 먼저 수를 드러내 보였으니, 그것을 이길 방법을 찾아내기가 쉽지요. 두꺼비가 지혜 다툼에서 매번 이기는 것은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두꺼비가 혼자 떡을 다 먹어 치우는 건 욕심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싶겠지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또한 욕심에 휩싸여서 성급하게 움직였던 호랑이와 토끼가 제 꾀에 당한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 준 것이라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함께 나눠 먹고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자기가 한 행동에 걸맞은 따끔한 맛을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야 자기 허물을 깨닫고 고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저 호랑이와 토끼는 아직도 자기들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고 있으니 고생을 좀 더 해 봐야 할 것 같네요. |
주먹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날에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아이 없이 살고 있었어. 부부는 옆집에서 아기 우는 소리만 나도 무척 부러웠어. 아들도 상관없고 딸도 상관없고, 작아도 괜찮고 못나도 괜찮으니, 제발 아이 하나만 있었으면 했어. 부처님께도 빌고, 삼신할머니께도 빌고, 돌멩이한테도 빌고, 뭐든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빌었어. 기도 덕분인지 어느 날 아주머니 배가 불러오더니 아이를 쏙 낳았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참 작아. 어른 주먹만 한 게 나이를 먹어도 태어날 때 고대로야. 그래서 이름도 주먹이라고 지었지. 주먹이는 작아도 남들 하는 건 다 했어. 공부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오줌도 싸고, 말썽도 피웠지. 하루는 주먹이가 아버지를 따라 낚시터에 가게 되었어. 강기슭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기가 잡혀야 말이지. 주먹이는 하품도 나고 발바닥도 근질거려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폴짝 뛰어나왔어. 주먹이는 들꽃이랑 들풀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한테서 점점 멀어지는 것도 몰랐어. 그러다 우적우적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집채만 한 누렁소가 코앞에 있네. “주먹이 살려!” 주먹이는 헐레벌떡 도망쳤지만 누렁소 입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어. 주먹이는 누렁소 배 속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해롱해롱 비틀비틀 죽을 지경이야. 그래도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누렁소 배 속을 발로 꽝꽝 차고 마구 꼬집었어. 누렁소는 바늘이라도 삼킨 듯 배 속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어. 그래서 용을 써서 똥을 뿌지직 쌌지. 덕분에 주먹이도 밖으로 나왔어. 소똥을 한가득 뒤집어쓴 채 말이야. “휴, 살았다!” 주먹이가 소똥을 털어 내는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져. 가만 보니 커다란 솔개가 주먹이를 향해 날아오는 거야. “주먹이 살려!” 주먹이는 헐레벌떡 도망쳤지만, 우악스러운 솔개 발톱에 꽉 붙들리고 말았어. 솔개가 주먹이를 움키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데 온 세상이 주먹이 발 아래야. 저 멀리 아버지도 보이고, 어머니도 보이고, 집도 보여. 주먹이는 덜덜덜 떨면서도 신이 났지. 그때 황조롱이가 솔개에게 덤벼들었어. 먹잇감 주먹이가 탐이 났나 봐. 푸드덕푸드덕 툭툭, 투덕투덕 싸우는 통에 솔개가 주먹이를 놓쳤지 뭐야. 주먹이는 높고 높은 하늘에서 슈웅 퐁당! 다행히 강물에 떨어져 주먹이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어. 그런데 이를 어째! 커다란 쏘가리가 헤엄쳐 오잖아. “주먹이 살려!” 주먹이는 안간힘을 다해 헤엄쳤지만 쏘가리 주둥이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어. 쏘가리 배 속은 누렁소 배 속보다 훨씬 좁았어. 주먹이는 캑캑 숨이 막혔어. 꼬집고, 차고, 몸부림쳐도 나갈 길이 있어야 말이지.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니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 “아부지! 어무니!” 아버지는 낚싯대 앞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화들짝 놀랐어. “분명히 주먹이가 부르는 것 같았는데.” 마침 낚싯줄이 팽팽해서 보니 커다란 쏘가리가 걸렸네. 아버지가 쏘가리를 꺼내고 보니 주둥이 저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아부지! 어무니!” 조심조심 쏘가리 배를 갈랐는데 세상에, 주먹이가 나오네! 주먹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배꼽을 잡고 웃었어.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주먹이 이야기도 들려주고 쏘가리 매운탕도 대접했어. 나도 가서 참 맛나게 먹고 왔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세상이라는 크나큰 놀이터. 아버지 주머니에서 뛰쳐나온 주먹이한테 세상은 참 크고 험한 곳이었어요. 누렁소나 솔개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개미나 거미 같은 것도 꽤 크게 보였을 테고 쥐나 고양이 같은 것은 호랑이처럼 느껴졌을 테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정말로 겁이 나서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아요.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주머니 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앉아 있으면 무슨 재미겠어요! 넓은 세상을 맘껏 쏘다니며 이런저런 신기한 일들을 맘껏 겪어 보는 게 더 좋지요. 누렁소 배 속에 들어가고, 솔개 발에 매달려 날아가고, 또 쏘가리 배 속에 들어가고. 생각하면 겁나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신나는 모험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훌쩍 날아가면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 짜릿하잖아요? 다른 사람은 해 볼 수 없는 혼자만의 일이기 때문에 주먹이의 모험은 더 놀랍고 즐거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먹이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주먹이인지도 모릅니다. 참 크고도 넓은 게 이 세상이잖아요. 하늘이든 땅이든 참으로 아득해서 끝이 없어요.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주먹은 커녕 개미보다 작아 보일 거예요. 주먹이가 누렁소 배 속에 들어가고 솔개 발톱에 낚였다 하지만, 우리들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우리를 통째로 삼키거나 낚아채려고 하는 무서운 함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칫하면 꿀떡 먹히기 십상이지요. 그러니 우리 들도 일종의 ‘주먹이’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중요한 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세상이 크고 무섭다고 숨고 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마치 주먹이가 아버지 주머니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지요. 또 주머니 속이니까 꽤나 어둡고 답답할 거예요. 맞아요, 주머니 속이라고 꼭 안전한 것도 아니지요. 그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보면 오히려 큰 병이 날지도 몰라요. 누가 주머니를 짓누르거나 막아 버리면 그 속에서 찌그러지거나 질식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저 주먹이처럼 밖으로 훌쩍 나와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몸으로 넓은 세상을 헤집고 다닌다는 건 무서울 수도 있지만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사는 게 뭐 별거 있나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의 크나큰 놀이터라 할 수 있습니다. 누렁소나 쏘가리한테 삼켜진들 뭐 별것 있나요? 빠져나오면 그만이지요. 빠져나와서 그 모험담을 이야기하면 다들 신이 나서 손뼉을 쳐줄걸요. 주먹이한테 그랬던 것처럼요! |
토끼의 간 | 의사소통 | 유아 | 남해 바다 용왕이 시름시름 앓았어. 오랫동안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지. 거북 승상, 도미 승지, 민어 판서, 홍어 현감, 자라 주부, 청어 병사, 신하들이 모두 모여 걱정걱정하더란다. 하루는 먼먼 바다 사는 의원이 찾아와서 용왕의 맥을 턱, 짚어 보고 말하더래. "용왕님의 병에는 오직 하나, 땅에 사는 토끼 간이 약이라오." 병든 용왕이 물었지. "누가 가서 토끼 간을 구해 올꼬?" 줄줄이 늘어선 신하들, 흘금흘금 눈치 보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더래. 신하들 꼴을 가만 보자니까 자라, 참을 수가 없었지. 방패 같은 등딱지 지고 앙금앙금 기어 나가 짧은 목 길게 빼고 아뢰었단다. "제가 가겠사오니 명령만 내리소서! 다만 토끼 얼굴을 모르오니 그림 한 장 그려 주시면 꼭 잡아 바치오리다." 그 말 듣고 솜씨 좋은 화가가 당장 토끼를 그려 주는데, 두 귀가 쫑긋, 두 눈이 동글, 앞다리가 짤룩, 뒷다리는 길쭉하더란다. 자라는 토끼 그림 목덜미에 쑥 집어넣고 끝도 없이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쉬지 않고 헤엄을 쳤지. 마침내 땅에 도착한 자라, 해 지도록 온 숲을 두루두루 헤매는데 다람쥐 너구리가 쪼르르르, 멧돼지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수풀 사이로 온갖 새들 낭창낭창 날아다니더래. 그러다가 어이쿠나! 수풀 새로 까불까불 뛰어오는 한 짐승을 보았지. "가만가만, 저것 봐라? 두 귀가 쫑긋, 두 눈이 동글, 앞다리가 짤룩, 뒷다리는 길쭉, 그림이랑 똑같네! 토끼가 틀림없어!" 자라는 허둥지둥 토끼를 불러 세웠지. "혹시 지혜롭기로 소문난 토 선생 아니십니까?" "지혜로운 토 선생?" "예. 용왕께서 소문을 듣고 벼슬자리에 금은보화 쌓아 두고 모셔 오라시는데." 자라는 슬쩍 그림을 내밀었어. 토끼도 흘깃 그림을 보고는 거드름을 피우더래. "그림을 보니 내가 틀림없네. 그런데 자네는 누구인가? 둥글넓적한 게 꼭 솥뚜껑처럼 생겼군." 자라는 속으로 이놈 봐라, 웃으며 용궁 자랑을 늘어놓았지. 토끼는 금세 혹해서 앞발 뒷발 살짝, 바닷물에 쏘옥 넣어 보다가, "에그에그, 차가워! 저 깊은 물에 어찌 들어간담? 숨쉬기도 어려울 텐데."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더래. 그러니 자라가 가만있어? "두 눈 감고 제 등에 올라타면 금방이지요. 물속에 가면 다 숨 쉬는 방법이 있고요." 했단다. 용궁 자랑이 어찌나 달짝지근하던지 토끼는 덥석 자라 등에 올라탔지. 자라는 얼씨구나, 토끼를 업고는 검푸른 바다를 한없이 헤엄쳐 갔어. 그러자 어느 순간 바닷속 깊은 곳에 산호 진주로 꾸민 화려한 용궁이 보이더래. 신이 난 토끼는, "이랴, 이랴! 어서 가자! 황금 보석 빛나는 저 용궁으로!" 궁둥이를 촐싹거리며 야단법석을 떨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글쎄, 용궁 앞에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토끼를 꽁꽁 묶는 게 아니겠어? "이놈! 네가 땅에 사는 토끼냐?" "아, 아니요! 나, 난, 송아지요.아니, 망아지요. 아니, 멍멍개요!" 화들짝 놀란 토끼는 둘러대느라 진땀을 뺐지. 그러자 곁에 있던 자라가 호통을 치더란다. "토끼, 이놈! 뉘 앞에서 거짓말이냐?" 꽁꽁 묶인 토끼는 용왕 앞으로 질질 끌려갔지, 뭐. 토끼를 보자 병든 용왕은 매우 기뻐하더란다. "어서 오너라, 토끼야. 내가 많이 기다렸다. 얼른 네 간을 꺼내 다오! 네 간을 먹어야만 내 병이 낫는단다." 토끼는 그만 헉,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 용왕은 아랑곳없이 소리치더래. "여봐라! 뭣들 하느냐? 당장 토끼 배를 갈라 간을 꺼내지 않고!" 이제야 토끼, 깜박 속은 것을 알았지. 그런데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얼른 꾀를 냈지. "아이고, 어쩌면 좋습니까? 이런 줄도 모르고 간을 두고 왔으니 말입니다." "네 이놈, 당치 않구나! 간을 두고 오다니, 누가 속을 줄 아느냐?"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모두들 제 간이 좋은 건 알아서 어찌나 탐을 내는지, 바위틈에 꼭꼭 숨겨 두고 다닌 지가 오래됐습니다요." "정 못 믿겠다면 제 배를 갈라 보시지요." 토끼는 떡하니 누워 배짱을 부렸어. 용왕이 가만 생각해 보니,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큰일이거든. "그렇다면 토끼야! 다시 가서 숨겨 놓은 네 간을 가져오너라." 토끼는 자라 등을 타고 깊고 깊은 바다를 빠져나와 다시 땅으로 왔지. 땅 냄새를 맡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실룩실룩 깡충깡충, 얼쑤얼쑤 충깡충깡 춤을 추었어. "토끼야! 빨리 가서 간을 가져오너라. 도대체 뭐하는 게냐?" 참다못한 자라 재촉을 하더래. 그러니까 덩실덩실 춤을 추던 토끼, "네 이놈, 자라야! 덕분에 용궁 구경 한번 잘했다. 세상에 간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놈도 있다더냐? 내 간을 가져가고 싶거든 나부터 잡아 보려무나!" 매섭게 쏘아붙이고는 숲으로 숲으로 뛰어가 버리더래. 깜짝 놀란 자라, 짧은 목 길게 빼고 "토 선생! 토 선생!" 소리쳐 불러 보아도 소용이 없더란다. |
여우 누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간날에 어떤 부잣집이 있었어. 이 집 부부는 아들을 셋이나 두었는데 그러고도 딸을 더 얻겠다고 만날 삼신할머니한테 빌었지.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글쎄 여우라도 좋으니 그저 딸 하나만 낳게 해 달라지 뭐야. 그래서 그랬는지 그해 정말 아이가 생겨 딸을 하나 낳았는데 무럭무럭 쉬 잘 자라고 또 그렇게 잘생겼어. 게다가 하는 짓마다 어찌나 예쁜지 아유, 그 부모가 홀딱 반할 수밖에 없지. 그 딸이 몇 살 안 되었을 때야. 웬일인지 이 집 말이랑 소가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한 마리 죽고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또 한 마리 죽고. 이러니 두고만 볼 수가 있나? 아버지는 맏이를 시켜 밤새 소와 말을 지키게 했어. 그런데 한밤중이 되니 스르르 잠이 오지. 맏이는 고만 쿨쿨 잠들어 아무것도 못 보았어. 간밤에도 소 한 마리 꼴까당 넘어져 죽었는데 말이야. 다음 날 밤 둘째도 고만 까무룩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못 보고 말았어. 그 밤에도 말 한 마리 탁 엎어져 죽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아버지가 셋째한테 소와 말을 지키라 했어. 셋째는 잠이 올까 봐 볶은 콩을 오도독오도독 깨물어 먹었어. 한밤중이 되자 그 어린 누이란 게 방에서 스으윽 나오더니 외양간에 가서 소 똥구멍으로 손을 쑥! 넣더니 간을 쏙 빼서 꿀꺽 먹지 뭐야. 이러니 소는 이제 탁 엎어지지. 셋째는 아침에 울며불며 말했어. "아버지, 우리 집 큰일 났어요. 저 애가 간을 빼서 먹으니까, 소가 푹 꺼꾸러졌어요." 이러니까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지 뭐야. "요놈의 자식이 거짓말을 한다. 누이를 잡으려면 그냥 잡지. 이게 얼마나 귀한 딸이라고?" 하면서 고만 셋째 아들만 집에서 쫓아냈어. 쫓겨난 셋째는 하염없이 걷다가 서낭당 고개를 넘었어. 그런데 깊은 산골 기와집 앞에서 웬 처녀가 그네를 타. 마침 해는 지지 배는 고프지 살 수가 없거든. "미안하지만 하룻밤 재워 주고 밥 좀 해 줄래요?" 말했더니 처녀가 이러지. "나랑 부부가 되어 살면 밥을 해 주고 안 그러면 안 해 주지요." 그러니 같이 산다 그래야지 어쩌겠어. 셋째는 각시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좋은 기와집에서 거의 십 년을 살았어. 살다가는 이제 고향이 그리워서 갔다 오겠다고 했지. 했더니 각시 말이 자기 말대로 하면 고향에 보내 주고 그러지 않으면 보내 줄 수가 없대. 각시는 하고많은 말 중에 하필 비칠대는 말을 줘. 하얀 병, 파란 병, 빨간 병도 내주며 급하거든 던지라고 해. 셋째가 고향에 돌아갔는데 이건 온통 쑥대밭이야. 집은 다 쓰러져 가고 사람도 하나 안 보여. 그 길을 타박타박 말을 끌고 지나가는데 "아이고,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이러면서 누이란 것이 막 반갑다며 달려오는 거야. 그런데 누이는 예전의 그 예쁜 누이가 아니야. 눈이 쪽 찢어진 게 괴상해 보여. 누이가 밥을 해 주겠다니 방으로 들어갔는데 몸이 덜덜덜 떨리지 이제. 도망을 가야겠는데 "아이, 오라버니, 가려고? 어디 가려고?" 이러면서 누이가 방에서 안 나가니 어째. "네 팔목에 실을 매고 내 팔목에 실을 매고 가서 밥을 끓여라." 했더니 그제야 얘가 밥을 하러 나가지. 누이가 부엌에서 밥을 하는 사이 셋째는 팔목에 묶은 실을 풀어 문고리에 묶고 방 안에는 똥을 몇 무더기 싸 놓고 도망을 갔어. 누이가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오라버니 있나 물으면 똥이 "그래, 있다." 하고 대답하고 또 오라버니 있나 물으면 똥이 “오냐.” 하고 자꾸 대답해. 마침내 누이가 밥을 해서 들어왔더니 셋째는 없고 똥만 있지. "쳇! 이상하다 싶으니, 도망을 가 버렸구나.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두 끼 먹을 것을 놓치겠다." 이러면서 후다닥 뒤를 쫓아가. 셋째가 말을 잡아타고 도망을 가는데 누이가 막 따라오니까 어찌나 급한지 몰라. 누이가 말꼬리를 물려고 하는 찰나 셋째가 하얀 병을 홱 던졌어. 그랬더니 병이 깨지면서 가시덤불이 쫙 깔리는데 누이는 갇혀 못 오면서 중얼거리지.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이러면서 가시덤불을 어찌어찌 헤쳐 나와서는 막 쫓아와. 셋째가 말을 달리다가 돌아보니까 누이가 또 따라와 말꼬리를 물려고 하지. 그래 이번에는 파란 병을 홱 던졌어. 그랬더니 병이 깨지면서 시퍼런 물이 확 몰아쳐. 누이는 물에 빠져 못 오면서 중얼거리지.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이러면서 물을 또 어찌어찌 헤쳐 나와서는 막 쫓아와. 셋째가 말을 달리다가 돌아보니까 누이가 또 따라와서 말꼬리를 딱 물게 생겼어. 그래, 급해서 빨간 병을 홱 던졌더니 불이 확 일어서 누이는 고만 불에 타 죽고 말았어. 죽은 뒤에 봤더니 글쎄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지 뭐야. 셋째 아들은 이렇게 해서 겨우 살아서 각시한테 돌아가 잘 살았다고 하지. |
개와 고양이와 구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한 사람이 장가들러 각시 집에 가는 길이었어. 어디만큼 가니까 커다란 구렁이가 길을 딱 막더래. "캬웅. 내가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니 이 사람이 구렁이를 달랬겠지. "나는 지금 장가가는 길이니 혼례나 치르고 올 적에 잡아먹어라." 그랬더니 구렁이도 그러라면서 길을 비켜 주더라는 거야. 혼례를 무사히 치르고 돌아가는 날이 되었어. 신랑은 가는 길에 구렁이한테 잡아먹힐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고 한숨만 푹푹 나왔지. "서방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신랑 한숨에 각시가 왜 그러냐고 물어. 신랑이 사실은 일이 이러저러하다며 사정을 털어놓았어. 그랬더니 각시가 걱정 말고 자기만 믿으라는 거야. 역시나 어디쯤에서 구렁이가 또 길을 막고 있네. "캬웅. 내가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자 각시가 앞으로 나섰어. "서방님을 의지하고 한평생 살아야 하는데 지금 잡아먹으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한평생 내가 먹고살 것이나 마련해 주고 서방님을 잡아먹든지 말든지 해라." 각시가 소리치며 가로막고 섰지. 순간 구렁이가 멈칫해. 그러더니 어디를 갔다 와서는 구슬을 하나 주네. 이걸 가지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면서. "이 구멍은 밥 나오는 구멍이고, 이 구멍은 옷 나오는 구멍이고, 이 구멍은 돈 나오는 구멍이고, 이 구멍은 종 나오는 구멍이고." 이러면서 다 가르쳐 줘. 딱 한 구멍만 빼고 말이야. 그러니 각시가 나머지 한 구멍은 뭐냐 묻지. 구렁이가 머뭇거리면서 말을 안 해 줘. "안 가르쳐 주면 우리 서방님도 못 잡아먹는다." 각시가 암팡지게 버티니까 구렁이가 끙끙대다 이러는 거야. "그 구멍은 나쁜 짓을 하는 놈한테다 대고 너 죽어라 하면 죽는 구멍이다." 그러니 각시가 가만있을 리 없잖아. 재빨리 구멍을 구렁이에 대고 힘껏 소리쳤지. "구렁이 네놈 죽어라!" 이러니까 구렁이는 그 자리에서 꽥, 죽고 말더래. 신랑 각시는 구슬을 가지고 집으로 왔어. 구슬로 밥도 나오게 하고 돈도 나오게 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살았지. 그러던 한 날, 이 집에 도둑이 들었어. 도둑은 강 건너에 사는 사람이었지. 신랑 각시가 갑자기 부자가 돼서 잘사는 걸 보니까 궁금했던 거야. "오호라, 저 구슬 때문이로구나!" 도둑은 요술 구슬을 슬쩍해 갔지. 구슬을 도둑맞자 신랑 각시는 도로 가난뱅이가 되었어. 마침 이 집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주인들이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어. 한솥밥 먹는 식구인데 왜 걱정이 안 되겠어. 개와 고양이는 한 날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어. "주인이 우릴 잘 먹여 주고 길러 주었으니 가만있을 수 없잖아." 둘은 구슬을 찾아오자며 도둑놈 집으로 갔어. 고양이는 도둑놈 집에서 그 집 쥐들을 불러 모았어. "구슬을 가져오지 않으면 모두 잡아먹겠다." 호통을 쳤지. "아이코, 큰일 났구나." 겁에 질린 쥐들은 난리가 나서 구슬을 찾아 헤맸어. 어찌어찌해서 도둑놈 베개 속에 구슬이 있는 건 알아냈는데 어디 그리 쉽게 빼낼 수 있겠어? 쥐 대장이 나서서는 쥐들한테 세간을 갉아 대라 일렀지. 쥐들은 기둥이고 쌀뒤주고 농이고 이불이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갉아 댔어. 그러니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럽겠어. 쿨쿨 자다가 화가 난 도둑이 베개를 휙 던져 버렸네. 그 바람에 베개 속에서 구슬이 또르르 굴러 나왔고 쥐들은 잽싸게 고양이한테 구슬을 갖다 바쳤지. 고양이가 구슬을 받아 집에 가려니까 개가 갖고 가겠대. "안 그러면 강 건널 때 업어 주지 않을 테다." 이러면서 말이야. 고양이는 헤엄을 못 치니까 어쩌겠어. 할 수 없이 개한테 구슬을 주었지. 개는 구슬을 입에 문 채 고양이를 등에 업고 헤엄을 쳤어. "잘 물고 가야 해." 고양이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지. 한참을 헤엄쳐 강 한가운데쯤 이르렀어. 개가 강 위쪽을 보니까 커다란 똥덩이가 동동 떠 내려오는 거야. 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개가 얼씨구나 좋다, 이거나 먹자, 하고는 입을 딱 벌렸지. 그 바람에 물고 있던 구슬이 퐁당 빠져 버렸어. 구슬은 꼬르륵꼬르륵 깊이깊이 가라앉았지. 고양이는 개를 나무랐지만 이미 잃어버린 구슬을 어쩌겠어. 어찌어찌 강을 건너와서는 집에도 못 가고 시름에 잠겨 앉아 있었지. 그때 한 영감이 잉어를 낚아서 다래끼에 넣는 게 보여. "저거라도 훔쳐서 주인한테 갖다 줘야겠다." 고양이는 영감이 한눈파는 사이에 잉어를 물고 냅다 뛰었어. 개도 덩달아 뛰었지. 마침 신랑 각시는 개와 고양이가 하루 종일 안 보여서 걱정하고 있던 차야. 그런데 둘이 잉어까지 물고 왔으니 좋아라 했지. "어이쿠, 너희들 덕분에 배부르게 먹겠구나." 잉어를 손질하려고 배를 갈랐더니 그 속에 잃어버린 구슬이 있어! 강물 속에 떨어진 구슬을 잉어가 날름 삼킨 거지. 신랑 각시는 도둑맞은 구슬을 찾았으니 얼마나 더 기뻐했겠어. 그 뒤로 신랑 각시는 다시 잘 먹고 잘살게 됐다는 이야기야. 개와 고양이는 어쨌냐고? 잘 얻어먹고 살았겠지, 뭐. |
덕진다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전라도 영암 고을에 덕진이라는 맘씨 고운 처녀가 살았어. 강가 주막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냈는데, 아무리 행색이 초라한 손님도 반갑게 맞이하고 허기진 손님한테는 밥 한 그릇 더 주었지. 불쌍한 거지가 찾아와 배고프다고 하면 자기 밥을 선뜻 내주고, 춥다고 하면 자기 옷을 나누어 주었어.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을 해도 돈 한 푼 모으지 못했지만, 마음은 부자라서 늘 생글생글 웃었단다. 그 고을에 원님이 있었는데 심보가 아주 고약했어. 백성들은 굶건 말건 제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똑같은 죄를 지었어도 돈을 내놓는 부자들은 다 풀어 주고 가난한 백성들은 죄 감옥에 집어넣었지. 인색하기는 또 어찌나 인색한지 몰라. 한번은 배가 불룩한 거지 여인이 찾아와 사정을 했거든. "아이를 낳을 때가 다가오는데 마땅히 몸을 풀 만한 곳이 없습니다.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머물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원님이 뭐라 그랬냐면, "관아가 무슨 거지 소굴인 줄 아느냐. 이거나 가져가 아이를 낳든 말든 해라." 하면서 달랑 짚 한 단을 던져 주는 거라. 그러니 백성들 원망이 하늘을 찌를밖에. "저승사자는 도대체 뭐하나 몰라. 고약한 원님이나 얼른 데려가지 않고." 그런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어느 날 멀쩡하던 원님이 갑자기 죽어 버렸지 뭐야. '이자가 아직 죽을 때는 안 되었지만 얼른 데려가야지, 귀가 따가워서 못 살겠다.' 사실은, 그 고을을 담당하는 저승사자가 백성들 말 듣기가 지겨웠던 거라. 아무튼 그래서 원님이 졸지에 염라대왕 앞에 무릎 꿇고 앉게 되었거든. 염라대왕이 저승 장부를 들춰 보며 말했어. "그놈 참 짧게 살면서 죄도 많이 지었구나. 지옥으로 보내야겠, 어라? 이자가 왜 벌써?" 염라대왕이 노발대발 화를 냈어.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자를 누가 데려왔느냐? 당장 이승으로 돌려보내라!" 저승사자가 실망해서 입맛을 쩝쩝 다셨지. 그렇다고 그냥 돌려보낼 저승사자가 아니야. 염라대왕 앞을 물러나서는 원님을 을러댔어. "올 때는 그냥 와도, 갈 때는 거저 갈 수 없느니라." "아니,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통행료를 내야 하느니라." "하지만 저승에서 저는 빈털터리인뎁쇼?" "걱정 마라, 이곳에도 네 곳간이 있으니. 이승에서 남한테 베푼 만큼 재물이 들어 있느니라." 그러고는 원님을 곳간으로 데려갔거든. 그런데 원님 이름이 적힌 곳간을 열어 보니, 달랑 짚 한 단이 들어 있는 거라. 원님도 기가 막히고 저승사자도 기가 막히지. "저, 저거라도?" 원님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묻자 저승사자가 원님 손을 잡아끌었어. "옆 곳간으로 가자." ‘덕진’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곳간이었지. "너희 고을 사는 덕진이라는 처녀의 곳간이다. 열어 보거라." 문을 여니, 세상에! 쌀섬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뭐야. "우선 여기서 쌀 삼백 섬을 꾸어 바치고 이승에 돌아가서 덕진이한테 갚거라. 떼어먹었다간 혼꾸멍이 날 줄 알고!" 그렇게 해서 원님이 다시 살아났어. 그런데 저승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뼛한 거라. '에구, 얼른 빚부터 갚아야겠다.' 그길로 덕진이를 찾아 나섰지. 물어물어 강가 주막엘 왔는데 한 처녀가 왔다 갔다 바지런히 일을 하고 있거든. 목마른 손님한테는 시원한 물 떠다 주고, 배고픈 손님한테는 고봉밥을 퍼다 주고, 동냥 온 거지도 빈손으로 보내질 않네. "덕진아! 여기 상 내가라이." 주모가 외치는 소릴 들으니 그 처녀가 분명 덕진이라. 원님이 덕진이를 불러 말했어. "저승빚 쌀 삼백 섬을 갚으러 왔느니라." "뭔 소리래요? 지는 쌀 뀌어준 적이 없는디요." 덕진이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지. "이러이러해서 여차여차했느니라." 원님이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하니 그제야 덕진이가 고개를 끄덕였어. "근디 지는 그 쌀 필요 없응게, 정 빚을 갚으려거든 그 값으로 요 앞 강에 다리나 놔 주시오. 다리가 없응게 댕기는 사람들이 솔찬히 불편하당게요." 그렇게 해서 주막 앞 강에 다리가 놓였어. 사람들은 그 다리를 덕진다리라 불렀어. 덕진이는 그 뒤로도 착하게 살다가 가고, 원님도 뉘우쳐 똑바로 살다 갔다지. 혹시 전라도 영암 고을에 가게 되면 덕진다리가 어디 있었는지 흔적을 한번 찾아보려무나. |
달랑꼽재기와 꼽꼽재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 어떤 마을에 구두쇠 영감이 살았어. "넉넉해도 남을 돕는 일은 없지!" "지독한 구두쇠인 걸 세 살 아이도 알 걸세." 마을 사람들은 영감을 달랑꼽재기라 불렀어. 한번은 달랑꼽재기네 된장 항아리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겠지. "에그그, 저 파리란 놈이 내 된장을 다리에 잔뜩 묻혀 달아나는군." "아이고, 아까운 내 된장!" 달랑꼽재기는 파리를 쫓아 팔십 리나 달려갔어. 기어코 파리를 잡은 달랑꼽재기는 다리에 묻은 된장을 쪽쪽 빨아 먹었지. 그 지독한 달랑꼽재기에게 아들이 하나 있어. "며느리를 맞아들여야 할 텐데 걱정이야!" 살림이 헤픈 며느리를 맞아들일까 근심이었던 거야. 그런데 소문에, 말도 못할 구두쇠 꼽꼽재기가 있는데 시집보낼 딸이 있다는 거였어. 달랑꼽재기는 잘됐다, 하며 며느릿감을 보러 꼽꼽재기네 집을 찾아 나섰어. 달랑꼽재기가 이웃 마을인 꼽꼽재기네 집까지 가는 데 한나절이 걸렸어. 왜냐고? 짚신이 닳을까 봐 사람들이 볼 때는 가만히 서 있다가, 안 볼 때면 벗어 들고 가느라 오래 걸렸지, 뭐. 달랑꼽재기가 꼽꼽재기네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밥 때가 되어 밥상을 들여가네. 밥만 달랑 세 그릇, 반찬이라고는 천장에 매단 굴비가 다였지. "밥 한 숟가락에 굴비는 한 번만 쳐다봐야 해. 두 번 보면 짜서 밥을 많이 먹게 될 테니까." 꼽꼽재기가 제 식구들에게 말했어. '저 정도면 괜찮을 듯싶군!' 달랑꼽재기는 꼽꼽재기의 딸을 며느리 삼기로 마음먹었어. 그래 돌아와서 혼삿말을 하여 며느리를 맞이했지. 달랑꼽재기 부부는 며느리가 살림을 헤프게 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하루는 며느리가 반찬이라고는 간장 한 가지뿐인 밥상을 들여왔어. ‘이크,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부부는 기절할 듯이 놀랐어. 간장 종지에 간장이 그득 담겨 찰랑댔거든. 달랑꼽재기 부부는 숨이 넘어가려는 걸 꼭 참고 며느리를 불러 앉혔겠지. “얘야, 아까운 간장을 왜 이리 가득 담았느냐?” 부부가 묻자 며느리가 대답했어. “얕게 담으면 숟가락질을 자주 해야 하니 숟가락도 닳고 종지 바닥도 닳아 손해지요.” 며느리는 이어서 말했어. “잘 뜨려고 종지를 기울이다 보면 간장도 더 먹게 될 거예요.” 부부는 며느리를 잘 맞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푹 놓았어. 한참 지나 사돈인 꼽꼽재기가 딸이 어찌 사는지 보러 왔네. "아이고, 어서 오시오, 사돈 양반." 달랑꼽재기는 사돈인 꼽꼽재기를 반가이 맞아들였어. 꼽꼽재기는 두루마기 차림에 손에는 멋들어진 부채를 들고 있었어.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물건을 아껴 쓰는지 자랑하기 시작했어. "나는 부채가 해질까 봐 이렇게 반쪽만 펴서 부친다오." 먼저 꼽꼽재기가 말했어. 그러자 "난 부채를 펴 손에 들고 얼굴을 이렇게 흔든다오. 이 부채가 바로 백 년 쓴 부채라오." 달랑꼽재기는 제 얼굴을 얄랑얄랑 흔들어 보이며 말했지. 마침 밥 때가 되어 밥상이 들어왔어.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지. "오늘따라 국 맛이 아주 좋은걸!" 달랑꼽재기의 말에 꼽꼽재기도 고개를 끄덕였어. "얘야, 국을 어찌 끓였기에 이리 맛있는 게냐?" 달랑꼽재기가 며느리에게 물었어. 며느리는 침을 꼴깍 삼킨 뒤 대답했어.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을 파는 생선 장수가 왔겠지요." "옳거니!" 달랑꼽재기가 맞장구를 쳤어. "큰 생선, 작은 생선, 넓적한 생선, 기다란 생선을 뒤적뒤적, 주물럭주물럭, 만지작만지작한 다음 그 손을 국솥 물에 씻어 끓인 거랍니다." 며느리는 자랑스러운 낯으로 늘어놓았어. "어쩐지 맛이 썩 좋다 했더니, 과연 내 며느리로구나!" 달랑꼽재기는 며느리를 칭찬했어. 그러자 옆에 있던 꼽꼽재기가 혀를 차며 거들었어. "아이고, 얘야. 그 손을 물독에 씻었더라면 한 달을 두고 맛있는 국을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랬구나." 꼽꼽재기의 말을 들은 달랑꼽재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 "거참, 그럴듯한 생각이오." 그러더니 조금 뒤 입맛을 쩍 다시며 말했지. "얘야, 그 손을 우물물에 씻었더라면 죽을 때까지 맛있는 국을 먹는 건데 그랬구나." |
콩중이 팥중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곳에 콩중이와 팥중이가 살았어. 콩중이는 엄마가 죽어 새엄마를 맞았는데 새엄마가 팥중이를 데려왔지. 하루는 새엄마가 둘한테 밭에 가 김을 매라고 했어. 콩중이한테는 나무 호미와 겨밥을 주며 자갈밭에 보내고, 팥중이한테는 쇠 호미와 팥밥을 주며 모래밭에 보냈지. 콩중이가 나무 호미로 밭을 매는데 까마귀들이 와서 겨밥을 다 쪼아 먹었어. 콩중이는 힘도 들고 배도 고파서 왕왕 울었지. 그랬더니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 말했어. "콩중이야, 저기 개울에 가서 아랫물에 손발 씻고 가운데 물에 목욕하고 윗물에 머리 감고 명주 수건으로 손을 감아 내 배 속에 넣어 봐라." 콩중이는 암소가 시키는 대로 개울에 가서 아랫물에 손발 씻고 가운데 물에 목욕하고 윗물에 머리 감고 명주 수건으로 손을 감아 암소 배 속에 넣었거든. 그랬더니 그 안에 과일이며 떡이며 과자며 맛있는 음식이 잔뜩 있는 거야. 콩중이는 이걸 꺼내 실컷 먹고 남은 것은 싸 가지고 집으로 왔지. 새엄마는 콩중이한테 음식이 어디서 났는지 물었어. 검은 암소가 주었다고 했더니 새엄마는 다음 날 콩중이한테는 쇠 호미와 쌀밥을 주며 모래밭에 보내고, 팥중이한테는 나무 호미와 겨밥을 주며 자갈밭에 보냈지. 팥중이가 자갈밭에서 왕왕 우니까 정말 검은 암소가 하늘에서 내려왔어. 팥중이도 암소가 시키는 대로 개울에 가서 손발 씻고 목욕하고 머리 감고 명주 수건으로 손을 감아 암소 배 속에 넣었어. 그런데 과자며 떡을 많이 먹겠다고 한 움큼이나 움켜쥐니 손이 빠져야 말이지. 팥중이는 암소에 매달려 들로 가시밭으로 끌려 다니다 상처투성이가 되었지. 새엄마는 만신창이가 된 팥중이를 보더니 콩중이가 거짓말을 했다며 때리고 야단치고 밥도 굶겼어. 하루는 새엄마가 둘한테 누가 베를 많이 짜나 내기를 시켰어. 콩중이한테는 낡은 북과 콩 볶은 것을 주고, 팥중이한테는 새 북과 찰밥을 주었지. 콩중이는 콩 볶은 것을 오물오물 씹으며 쉬지 않고 베를 짜니 많이 짰어. 팥중이는 찰밥이 찐득찐득 달라붙어 베를 얼마 못 짰지. 다음번에 새엄마는 팥중이가 베를 많이 못 짠 건 찰밥 때문이라며 콩중이한테는 찰밥을 주고 팥중이한테는 콩 볶은 것을 주었어. 콩중이는 물을 떠다 찰밥을 떼어 먹으며 쉬지 않고 베를 짜서 많이 짰어. 팥중이는 콩알을 한 알 한 알 집어 먹느라 베를 얼마 못 짰지. 새엄마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까 콩중이를 더더욱 미워했어. 하루는 새엄마와 팥중이가 외갓집에 잔치 구경을 가. 콩중이도 가겠다고 하니까 새엄마는 “방 아홉 칸을 다 치우고 아홉 방 아궁이에서 재를 다 담아내고 벼 아홉 섬을 다 찧어 놓고 밑 없는 아홉 독에 물을 가득 길어 놓고 그런 다음에 오든 말든 하려무나.” 이러면서 팥중이만 데리고 가 버렸어. 콩중이는 방 아홉 칸을 다 치우고 아홉 방 아궁이 재를 다 담아냈어. 그러고 났더니 힘이 다 빠지고 벼 아홉 섬 찧을 일이 막막해서 왕왕 울었어. 그런데 울다 보니 참새 떼가 널어 둔 벼를 다 쪼아 먹네. 콩중이가 놀라 훠이훠이 쫓았더니 새들은 다 날아갔는데 흰 쌀알만 고스란히 남았어. 벼 아홉 섬이 다 찧어진 거지. 이제 밑 없는 아홉 독에 물을 길어야 하는데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으니 콩중이는 또 왕왕 울었어. 그런데 어디서 두꺼비 아홉 마리가 와서 한 마리씩 독 안에 들어가 엎드리더니 말했어. "콩중이 아가씨, 이제 물을 길어다 부어 보세요." 콩중이가 큰 독마다 물을 한 동이씩 부으니 독은 금세 가득 찼지. 이제는 일을 다 마치고 잔칫집에 가려는데 입고 갈 옷도 없고 신발도 없으니 콩중이는 또 왕왕 울었어. 그랬더니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 비단옷과 갖신 한 켤레를 주네. 콩중이는 이제 잔치 구경을 갈 수 있게 되었어. 콩중이는 비단옷을 입고 갖신을 신고 잔칫집에 갔어. 잔치 구경을 한참 하다가 글쎄 새엄마를 보았지 뭐야. 콩중이는 야단맞을까 봐 겁이 나서 급하게 뛰다가 그만 갖신 한 짝을 잃어버렸지. 마침 평안 감사가 지나가다가 갖신을 주웠어. "신이 고운 걸 보니 신 임자도 곱겠구나." 평안 감사는 신 임자를 찾아 각시를 삼겠다고 사람 많은 잔칫집에 들어갔어. 팥중이가 임자라며 갖신을 신는데 발이 안 들어가. 그래 거짓말을 한다고 감사한테 매를 철썩 맞았지. 다음에는 새엄마가 임자라며 갖신을 신는데 발이 안 들어가니 감사한테 또 매를 철썩 맞았어. 이 여자 저 여자 다 신어 봐도 안 맞는데 콩중이가 신으니 딱 맞았지. 감사는 콩중이를 데려다 각시를 삼았어. "팥중이나 새엄마가 와도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마시오." 어느 날 감사가 먼 길을 가면서 천만번 일렀어. 그런데 감사가 나가자마자 팥중이가 왔어. "콩중이야, 콩중이야, 너 주려고 팥죽을 쑤어 왔다. 그릇이 뜨거워 손 데겠네. 앗, 뜨거. 아이, 뜨거." 이러니 별수 없이 문을 열었는데 팥중이가 빈손으로 들어오며 이러지. "콩중이야, 너 목에 때가 많다. 나랑 목욕이나 하자." 그러면서 콩중이를 연못으로 잡아끌었어. 콩중이는 또 속았구나 싶었지만 때를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연못으로 갔어. 그런데 팥중이가 뒤에서 발로 탁 차서 콩중이는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어. 팥중이는 콩중이 옷으로 갈아입고 감사 집으로 가서 콩중이 행세를 했어. 감사가 돌아오더니 콩중이 노릇을 하는 팥중이한테 물었어. "임자 얼굴이 왜 그리 검어졌는가?" "감사님 없다고 세수를 안 해서 그러지요." "그럼 얼굴은 왜 그리 얽었는가?" "감사님 마중 나가다가 콩 널어 놓은 멍석에 콩 넘어져서 그러지요." "그럼 목은 왜 그리 길어졌는가?" "감사님 오시나 보려고 늘 담장 위로 넘겨다봐서 그러지요." 이러니 감사도 정말 그런가 보다 하지 뭐야. 그러던 어느 날 연못 가운데 함박꽃이 곱게 피었어. 하인이 꺾으려고 했더니 웬일인지 꺾이지 않네. 그래 감사가 꺾었더니 쉽사리 꺾였어. 그 함박꽃을 처마 끝에다 끼워 두고 맨날 보는데 감사가 지나가면 활짝 피고 웃고 머리를 쓸어 주지. 하지만 팥중이가 지나가면 꽃이 금세 시들면서 머리털을 쥐어뜯곤 하는 거야. "별놈의 꽃을 다 보겠네." 팥중이는 이 함박꽃을 갖다가 아궁이에 던져 훨훨 태워 버렸어. 다음 날 옆집 할멈이 불을 얻으러 왔다가 아궁이에서 웬 구슬 하나를 주웠어. 할멈은 이 구슬을 고이 넣어 두었지. 그런데 이상하지. 할멈이 어디를 나갔다만 오면 밥상이 한 상 잘 차려져 있고 있고 그러지. 그래 하루는 할멈이 숨어서 가만히 보니 구슬이 고운 색시로 변해 밥상을 차리지 뭐야. 할멈은 얼른 가서 색시를 붙잡고 누구냐고 물었어. "저는 콩중이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으니 평안 감사를 모셔다 밥 한 상 올리고 싶습니다." 할멈은 콩중이 부탁을 듣고 감사를 집에 초대했어. 감사가 와서 밥상을 보니 이상해서 묻지. "왜 젓가락이 짝짝이고 한 짝은 거꾸로 놓여 있습니까?" 그러자 콩중이가 뛰어나오며 외쳤어. "여보 감사님, 젓가락 바뀐 건 알면서 각시 바뀐 건 왜 모르십니까?" 그제야 감사는 팥중이가 콩중이 노릇을 하는 걸 깨달았어. 감사는 팥중이와 새엄마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먼 데로 귀양을 보내 벌을 주었어. 그 후로 콩중이는 감사와 다시 행복하게 잘 살았대. |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날 간날 간날, 깊은 산골 외딴집에 가난한 어머니와 사이좋은 오누이가 살았어. 어느 날, 어머니는 장에 가고 오빠는 서당에 가고 누이동생 혼자 놀고 있는데, 꽁지가 닷 발 주둥이가 닷 발 되는 아주 큰 새가 날아왔어. "아가 아가,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아가, 너희 엄마 어디 갔니?" "우리 엄마 장에 갔지." 새는 어머니가 장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냉큼 잡아먹고 가 버렸어. 동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엉 울고만 있었어. 오빠가 서당에서 돌아와 보니 기가 막히지 않겠어? 당장에 어머니 원수를 갚겠다고 발딱 일어났어. 누이도 따라나섰지. 한나절 꼬박 걸어가니, 논 가는 아저씨가 있어. "아저씨 아저씨,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어디 사는지 아세요?" "이 논 다 갈아서 모심고 김매서 거둬 주면 일러 주마." 오누이는 부지런히 논을 갈고 모를 심고 김을 맸어. 가을이 되어 익은 벼를 차분차분 거두자 아저씨가 볏짚 태운 재 한 줌을 주며 말했어. "재 너머 빨래하는 아주머니한테 가서 물어보려무나." "아주머니 아주머니,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어디 사는지 아세요?" "이 빨래를 다 빨아 헹궈 말리고 다려 개어 주면 일러 주마." 오누이는 찰박찰박 철썩철썩, 허리 한번 펴지 않고 빨래를 했지. 그 많은 빨래를 헹구고 말리고 다려서 개어 주니까 아주머니는 도꼬마리 한 움큼을 주며 말했어. "낭떠러지 꼭대기에 사는 까마귀한테 물어보렴." "까마귀야 까마귀야,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어디 사는지 아니?" "뒷간 구더기를 한 바가지 잡아다 아랫물에 씻고 윗물에 헹궈 내 입에 넣어 주면 일러 주마." 오누이는 팔을 걷어붙이고 구더기를 잡아다 아랫물에 씻고 윗물에 헹궈 까마귀 입에 한 마리씩 넣어 주었어. 까마귀는 삭정이 한 단을 내어 주며 말했지. "수수밭 한가운데 제일 큰 수숫대를 뽑아 보렴." 까마귀 말대로 넓은 수수밭 한가운데 유난히 큰 수숫대가 있네. 그걸 쑥 뽑았더니 그 아래 굴이 있어. 수숫대를 밧줄 삼아 내려가 보니 커다란 집 한 채가 있는데 주변에 기다란 깃털 몇 개가 떨어져 있는 거야. 바로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사는 집이지. 오누이는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갔어. 오누이가 지붕 밑에 숨었을 때 새가 중얼중얼하며 나와. "오늘 저녁은 밥을 지어 콕 찍어 먹을까,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켤까, 떡을 쪄서 꿀꺽 삼킬까? 에라, 떡을 쪄서 꿀꺽 삼켜야겠다." 새는 시루 가득 떡을 찌더니 떡 썰 칼을 빌리러 나가네. 그사이 오누이는 떡 한 시루를 다 먹어 없앴어. "아니, 떡이 어디로 갔지?" 새는 온 부엌을 헤집으며 씩씩거리다 맥이 빠져서 잠이 들었지. 다음 날 저녁, 새가 또 혼자 중얼거리네. "오늘 저녁은 밥을 지어 콕 찍어 먹을까,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켤까, 떡을 쪄서 꿀꺽 삼킬까? 에라,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켜야겠다." 새는 죽을 한 솥 쑤어 놓고 죽 뜰 바가지를 빌리러 나가네. 오누이는 얼른 죽 한 솥을 다 먹어 없앴어. "아니, 죽이 어디로 갔지?" 새는 집 안팎으로 펄펄 뛰다가 기운이 빠져서 잠이 들었어. 셋째 날, 새가 힘없이 중얼거렸어. "오늘 저녁은 밥을 지어 콕 찍어 먹을까,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켤까, 떡을 쪄서 꿀꺽 삼킬까? 에라, 밥을 지어서 콕콕 찍어 먹어야겠다." 새는 밥을 한 솥 그득 지어 놓고 밥 풀 주걱을 빌리러 나가네. 오누이는 얼른 내려와 밥 한 솥을 다 먹어 치웠어. "아니, 밥이 어디로 갔어!" 새는 푸다닥푸다닥 난리를 쳐댔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는 사흘이나 굶어서 기운이 없었어. "애고애고, 누워 쉬어야겠다." 그때 오빠가 방에다 재를 훌훌 뿌렸어. "아이고, 매워! 매워서 못 눕겠네!" 재를 피해 바깥으로 나오는 새 앞에 동생은 도꼬마리를 집어 던졌어. "아이고, 따가워! 빈대가 무나! 물어서 못 눕겠네!" 새는 물것이 없는 곳을 찾아 가마솥으로 들어갔어. 오누이는 재빨리 지붕에서 내려왔어. 오빠는 가마솥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어. 동생은 아궁이에 삭정이를 집어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는, "따뜻하다, 따뜻해!" 그러다 점점 뜨거워지니까, "뜨거워라, 뜨거워! 고만 때라, 고만 때!" 하면서 새까맣게 타 죽었어. 오누이가 한참 있다 가마솥을 열어 보니 새는 간데없이 까맣게 탄 덩어리만 남아 있네. 그걸 꺼내 절구에 콩콩 찧으니까 가루가 날아가며 날것들로 변하지 뭐야.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를 닮아 꽁지도 길고 주둥이도 긴 모기가 된 거야. 생김새만 꼭 같겠어? 모기란 놈 성질 고약한 것이 딱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를 닮아 그런 거지, 암. |
밤나무 아들 밤손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처녀가 홀로 살았어. 하루는 이 처녀가 뒷산 밤나무 밑에서 오줌을 누었지. 그런데 무엇이 아래를 따끔하게 찌르더니, 그날부터 배가 불러오네. 처녀는 열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밤손이야. 밤나무 때문에 얻은 자식이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지. 밤손이가 잘 자라 글방에 다니는데, 글방 친구들이 자꾸만 밤손이를 놀려 대네. "아비 없는 자식! 아비 없는 자식!" 밤손이는 속이 상해 어머니에게 물었어.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가 있는데 왜 저만 아버지가 없나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대답했지. "너라고 왜 아버지가 없겠니? 뒷산 밤나무가 바로 네 아버지야." 밤손이는 뒷산 밤나무에게 달려가 큰 소리로 외쳤어. "아버지!" 그런데 밤나무는 아무 대답이 없네. 밤손이는 다시 한번 "아버지!"하고 불렀어. 그래도 밤나무는 여전히 대답이 없네. 밤손이가 더 크게 "아버지!"하고 부르자, 그제야 밤나무가 반갑게 대답했지. "왜 그러냐, 내 아들아!" 그날부터 밤손이는 밤나무를 아버지라 여기고 날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놀았단다. 하루는 밤나무가 밤손이에게 말했어. "비가 많이 올 테니, 오늘은 집에 가지 말고 내 위에 올라타고 있어라." 밤손이는 밤나무가 시키는 대로 했어. 그랬더니 정말로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하네. 비는 몇 날 며칠 쏟아져 온 세상이 물에 잠겼어. 밤나무는 뿌리째 뽑혀 물에 둥둥 떠내려갔어. 밤손이도 밤나무를 타고 물에 둥둥 떠내려갔지. 물 위를 두둥실 떠내려가는데, 멧돼지 떼가 물에 둥둥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멧돼지들이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멧돼지들을 구해 줘요." "오냐, 그렇게 해라." 밤손이는 손을 내밀어 멧돼지들을 건져 줬지. 또 얼마쯤 떠내려가는데, 이번에는 개미 떼가 물에 둥둥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개미들도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개미들을 구해 줘요." "오냐, 그렇게 해라." 밤손이는 나뭇가지를 내밀어 개미들도 건져 줬지. 한참을 떠내려가는데, 저만치서 모기떼가 물에 둥둥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모기들도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모기들을 구해 줘요." "오냐, 그렇게 해라." 밤손이는 모기들도 건져 줬지. 멧돼지, 개미, 모기들을 태우고 떠내려가는데, 한 사내아이가 "살려 주세요!" 소리치며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아이가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아이를 구해 줘요." "그럴 것 없다. 나중에 너한테 못된 짓만 할걸." "아니에요. 사람이 죽어 가는데 모른 척할 수 없어요." 밤손이는 손을 내밀어 아이를 건져 줬지. 자꾸 떠내려가니 섬이 하나 나왔어. 밤나무는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하고는 또 둥둥 떠내려갔지. 멧돼지 떼와 개미 떼와 모기떼는 섬에 내려 어디론가 사라졌어. 밤손이와 사내아이는 산을 넘어 어느 마을에 이르렀지. 그 마을에는 큰 기와집이 있는데, 둘이는 주인 영감에게 이렇게 부탁했단다. "이 댁에서 심부름이나 하며 살게 해 주세요." 주인 영감이 좋다고 하여 둘이는 그 집에서 살게 되었지. 밤손이는 늘 부지런하여 주인 영감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어. 사내아이는 샘이 나서, 어느 날 주인 영감에게 거짓으로 고해바쳤지. "밤손이는 농사일을 아주 잘해요. 한나절이면 뒷산에 있는 밭을 다 갈고 조 한 가마니를 뿌릴 수 있어요." "오, 그래, 그게 정말이냐?" 주인 영감은 당장 밤손이를 불러 그 일을 맡겼지. 밤손이는 뒷산에 가서 밭을 갈기 시작했어.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 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 바로 그때 어디선가 멧돼지 떼가 나타나더니 주둥이로 밭을 금세 다 갈아 주네. 밤손이는 조 한 가마니를 밭에 모두 뿌리고 기와집으로 돌아왔어. 그러자 주인 영감은 밤손이를 칭찬했지. "너는 보통 아이가 아니로구나!" 사내아이는 약이 올라 또 주인 영감에게 말했어. "아무리 농사일을 잘해도 어떻게 벌써 그 넓은 밭을 다 갈고 조 한 가마니를 뿌렸겠어요? 조를 다 버린 것 같으니 다시 주워 오라고 하세요."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구나." 주인 영감은 당장 밤손이를 불러 그 일을 맡겼지. 밤손이는 뒷산에 가서 밭에 뿌린 조를 줍기 시작했어.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 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 바로 그때 어디선가 개미 떼가 나타나 밭에 쫙 깔리더니 조를 금세 다 물어 오네. 밤손이는 조 한 가마니를 짊어지고 기와집으로 돌아왔어. 그러자 주인 영감은 밤손이를 칭찬했지. "네 재주가 참 용하구나!" 주인 영감에겐 고운 딸이 하나, 딸과 얼굴이 꼭 닮은 종이 하나 있었어. 하루는 주인 영감이 딸과 종을 똑같이 꾸며서 나란히 세워 놓았지. 주인 영감은 밤손이와 사내아이를 불러 말했어. "내 딸을 고르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 종을 고르는 사람은 내 종이 된다." 사내아이는 주인 영감 딸을 고르려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했어. 하지만 밤손이는 누가 주인 영감 딸인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지. 바로 그때 어디선가 모기떼가 나타나더니 밤손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네. "앵앵! 동쪽, 동쪽!" 밤손이는 이 말을 듣고 동쪽에 있는 처녀를 골랐어. 그러자 주인 영감이 웃으며 말했지. "네가 제대로 골랐구나. 이 아이가 내 딸이야." |
이야기 주머니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도 아주 먼 옛날 일이야. 산골 마을에 도령이 하나 살았어. 도령은 이야기 듣기를 꽤나 좋아했지. 자다가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면 눈을 번쩍 뜰 정도였어. “세상에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니!” 도령은 듣는 이야기마다 그렇게 재미있었어. 갓 볶은 깨처럼 고소했지. 얼마나 재미있던지 잊어버릴까 봐 마음이 쓰였어. “이야기를 잊지 않게 종이에 적어 두어야겠어!” 도령은 이야기를 듣는 대로 종이에 적어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어. 아가리를 꽁꽁 묶은 주머니는 천장에 높이 달아 놓았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혼자서만 알고 싶었던 거야. 세월이 흘러 도령은 총각이 되었겠지. 긴 세월 동안 이야기 주머니도 불룩해졌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말이야. "아이고, 답답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세상 구경한 지가 언제냐고!" 주머니 속 이야기들은 저희끼리 가끔 분통을 터뜨렸어. 세월이 흘러 도령은 장가를 들게 되었어. 도령이 장가들기 전날 밤이야. 하인이 무심코 도령의 방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어. ‘방엔 아무도 없을 텐데.’ 하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어. 말소리는 빈방 안에서 흘러나왔어. "뭐, 우리는 이대로 가둬 놓고 장가를 든다고?" "예쁜 색시를 맞을 테니 우리는 거들떠도 안 보겠지." "귀신이 되어 도령을 괴롭히고 주머니를 빠져나가자!" 잔뜩 독이 오른 말소리는 주머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지. "난 누릇누릇 잘 익은 청실배가 되어 괴롭힐 테다." "그럼 난 퐁퐁 솟는 옹달샘이 되어 괴롭힐 테다." "좋아, 나는 방석 밑에 독바늘이 되어 괴롭힐 테다." 웅얼대는 말소리를 듣고 있자니 하인은 소름이 쪽 끼쳤어. 날이 밝자 새신랑은 일찌감치 신부 집에 갈 채비를 차렸지. 하인은 냉큼 달려가 신랑이 타고 갈 말고삐를 잡았어. "이놈아, 너는 안마당 바깥마당이나 쓸 일이지 어딜 따라나선다는 게냐?" "아니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갑니다." 하인의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어. 말고삐를 틀어쥐고는 절대로 놓으려 하지 않았거든. 신부 집까지는 몇 고개나 넘어야 했어. 고개를 하나 넘자, 누릇누릇 잘 익은 청실배나무가 보였어. "먹음직스럽게도 익었구나. 저 배를 한 개 따 오려무나." 새신랑 말에 하인은 지난밤 ‘청실배’가 생각났지. "무슨 말씀을, 어여쁜 색시가 기다리옵니다!" 하인은 말을 잽싸게 몰아 고개를 하나 넘었어. 새신랑은 화가 났지만 꾹 참았어. 고개를 또 하나 넘자, 퐁퐁 솟는 옹달샘이 보였어. "목이 마른 참에 잘되었구나. 가서 옹달샘 물을 떠 오려무나. "새신랑 말에 하인은 지난밤 ‘옹달샘’이 생각났지. "무슨 말씀을, 어여쁜 색시가 기다리옵니다!" 하인은 말을 잽싸게 몰아 고개를 또 하나 넘었어. 새신랑은 화가 났지만 꾹꾹 참았어. 말을 타고 꺼덕꺼덕, 어여쁜 색시네 너른 마당에 닿았어. 마당에는 차일이 쳐져 있고,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었어. "새신랑이 훤하게 잘도 생겼네!" "썩 잘 어울리는 새신랑과 새색시로세!" 새신랑이 벙글벙글 웃는 얼굴로 새색시에게 맞절을 할 때야. "에잇!" 맞절을 하려는 새신랑을 하인이 밀어뜨렸어. 발라당 자빠진 새신랑은 창피해서 얼굴이 시뻘게졌지. 혼례 뒤 새신랑은 어여쁜 새색시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 "네 이놈! 내 앞에 무릎을 꿇렷다!" 그간 참고 참았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새신랑이 하인을 불렀어. "혼찌검이 날 때 나더라도 제 말을 들어 보세요." 하인은 이제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털어놓았어. 하인 말에 새신랑은 천장에 매달아 놓았던 이야기 주머니를 내려놓게 했어. 주머니를 푸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 그동안 한 번도 풀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야. “이게 웬일이람!” 주머니 속 종이에는 글자가 사라지고 없었어. 주머니를 푸는 순간 달아나고 만 거지.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되었어.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말이지. "자, 가고 싶은 대로 가자고!" "좋아, 난 산 너머로 간다!" "어디로 갈지 나도 몰라!" 이야기들은 덧붙여지기도 덜어지기도 하면서 훨훨 활활 신바람이 나서 돌아다니게 되었더란다. "거참,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장가도 못 들고 죽을 뻔했구나!" 새신랑은 고마운 하인을 동생으로 삼았어. 형제는 사이좋게 어저께까지도 잘 살았다지, 아마. |
사윗감 찾아 나선 두더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은진 미륵 밑에 금실 좋은 두더지 내외가 살았더래. 내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예쁘게 컸는지 몰라. 그래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위를 얻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두더지 내외는 자나 깨나 주위를 둘러보고 또 둘러봤지만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어. 이 마을 저 마을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사윗감이 있어야 말이지. 하루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쨍쨍 내리쬐는 거야. "옳구나, 바로 저거로구나." 세상을 밝게 비춰 주는 해를 당할 자는 없겠구나 싶더래. 두더지 내외는 해를 만나러 나섰어. 신을 수십 켤레 삼아서 짊어지고 튼튼한 쇠지팡이를 짚고 몇 날 며칠 몇 달 삼 년이나 걸려 하늘 위로 올라가 해를 만났지. 해는 어찌나 크고 뜨거운지 두더지 내외는 겨우 다가가 이렇게 말했지. "우리가 예쁜 딸을 두었는데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훌륭하게 생겼으니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해가 가만히 듣고 있다 대답하길, "내가 온 세상 훤히 비춰 훌륭하기는 하지만 구름이 나와서 나를 덮어 버리면 그만 빛을 잃고 컴컴해진다오. 구름이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하니까 구름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하시오." 두더지 내외가 들어 보니까 옳다구나! 그 말이 딱 맞다 싶었지. 그때 두둥실 구름이 나타났어. 두더지 내외는 얼른 구름한테 다가가서 말했지. "우리가 예쁜 딸을 두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힘센 사위를 얻어 주려고 해한테 물어봤더니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다고 하니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그랬더니 구름이 이렇게 대답했어. "내가 해를 덮어 그 빛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와서 나를 불어 버리면 그만 힘없이 날아가 버리오. 바람이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하니까 바람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하시오." 두더지 내외가 듣고 보니 옳구나, 그 말이 딱 맞다 싶었지. 그때 거센 바람이 후욱후욱 불며 지나가. 두더지 내외가 바람한테 달려가 말했지. "우리가 예쁜 딸을 두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힘센 사위를 얻어 주려고 구름한테 물어봤더니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다고 하니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바람이 가만히 듣고 있다 대답했어. "나는 구름을 불어서 멀리 쫓아 버리는 힘이 있지만 돌로 만든 은진 미륵만은 아무리 날려 보내려 해도 꿈적도 하지 않는다오. 은진 미륵이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하니 은진 미륵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하시오." 두더지 내외는 다시 오던 길을 돌아 몇 날 며칠 몇 달 삼 년이나 걸려 땅 아래로 내려와 우뚝 서 있는 은진 미륵 앞에서 말했지. "당신은 해를 뒤덮어서 어둡게 하는 구름을 불어서 멀리 날려 보내는 바람보다 힘이 세다고 들었소.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니 부디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구려." 가만히 듣고 있던 은진 미륵이 어떻게 했냐고? 이렇게 대답했대. "나는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은진 미륵,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훌륭할지는 모르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발밑에 사는 두더지가 자꾸 땅을 파헤치고 있어 곧 넘어질 참이니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한 것은 두더지 아니겠소. 두더지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해 보시오." "옳구나! 멀리 갈 필요도 없었구나." 두더지 내외는 그제야 두더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은진 미륵 밑에 사는 두더지 사위 하나 얻어 예쁜 딸과 혼례를 치러 주었다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세상의 중심! 두더지에서 해로, 해에서 구름으로, 구름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은진 미륵으로, 그리고 다시 두더지로. 최고의 사윗감을 찾아서 돌고 돌아 다다른 곳이 원래 자기가 서 있던 자리였어요. 먹이사슬을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두더지가 해를 이긴 셈이네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결말에서 좀 허망한 느낌을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에이,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던가요? 좋은 짝을 구하려고 힘들여서 먼 길을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헛고생을 했다고 말할 수가 있겠어요. 남은 게 없잖아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자기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가다가 곤경에 처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남의 손의 떡은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는 말이지요. 이 말이 참 그럴듯합니다. 이 이야기를 놓고서 말한다면, 어두운 땅속을 기어 다니는 두더지보다 은진 미륵이나 바람과 구름, 해 같은 것이 훨씬 크고 훌륭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아예 잡을 기회가 없었다면 모르지만, 힘들게 해와 바람, 구름을 만나고서 그냥 놓치는 건 좀 바보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 같으면 누가 뭐래도 해를 잡았을 거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어요. 만약 아이들이 이와 같이 말한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한번 이렇게 되묻는 건 어떨까요? "만약 두더지 처녀가 진짜로 하늘의 해하고 결혼했다면, 또는 바람이나 구름, 은진 미륵하고 결혼했다면 정말로 행복했을까?" 하고요. 과연 어땠을까요? 크고 멋진 짝을 얻었다는 성취감은 있을지 몰라도, 좋은 짝으로 어울려서 편안히 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뜨거운 해에 다가가려다가 몸이 데었을지도 모르지요. 바람에 훌쩍 날아갈 수도 있고요. 자기 분수를 알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꼭 이런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두더지는 자기가 보잘것없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저 거센 바람이 못 이기는 은진 미륵을 흔들어 넘어뜨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요. 우리 자신이 그렇게 힘이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남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온전한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더지의 저 긴 여행은 허튼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나 자신이 세상의 오롯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치는 소중한 각성의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깨달음 끝에 얻은 두더지 사위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위가 아니었을까요? 그림 속의 표정, 참 행복해 보이잖아요! |
소가 된 게으름뱅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게으름뱅이가 살았어. 얼마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누고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누고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그게 다였지. 하는 일이 또 있긴 했어. 마누라는 자식하고 먹고살려고 밭일하랴 바느질하랴 애를 쓰며 사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남의 솥 떼어다 팔아먹고, 소 몰아다 팔아먹고, 하물며 자식이랑 먹고 살 양식까지 낱낱이 다 팔아서 술 먹고 노름질이야. 이러니 마누라가 애를 태우며 어렵게 살았단 말이야. 어느 날도 게으름뱅이는 집에서 베 한 필을 찾아냈어. 큰아이 장가들 때 쓰려고 마누라가 농 밑에 고이 둔 것이지. 그걸 팔러 장에 가는 길에 고개를 하나 넘는데 어떤 영감이 앉아서 소 탈을 만들고 있더란 말이야. "그런 걸 쓸데없이 뭐하러 만듭니까?" "글쎄 만들어 두면 다 쓸데가 있다." "어디에 씁니까?" "이걸 뒤집어쓰면 세상이 참 편하고 걱정이 없다." 게으름뱅이는 노상 술을 먹고 노름을 하려니 돈이 쪼들려 만날 걱정이 많단 말이지. "그럼 내가 한번 써 봅시다." "안 되지. 쓸데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거참, 이 베 한 필 드릴 테니, 줘 보시오." 게으름뱅이는 소 탈을 낚아채 훌렁 뒤집어썼어.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네. 허리가 굽더니 네 발로 엎드리게 되고, 뿔이 불쑥 솟더니 온몸에 털이 수북이 덮였어. 기다란 꼬리가 휘휘 휘둘리고 툽툽한 발굽이 네 발끝에 돋아났지. 게으름뱅이가 순식간에 커다란 소가 된 거야. "못된 버릇을 싹 고쳐 주마. 어서 가자!" 영감은 다짜고짜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끌고 갔어. 안 가려고 버틸 때마다 영감은 사정없이 매를 때렸지. 음매. 음매. 게으름뱅이가 저는 소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나오는 건 소 울음소리지. 영감은 농부한테 소를 팔면서 요상한 소리를 했어. "이 소는 무밭 옆에 매지 마시오." 게으름뱅이는 무를 먹으면 죽나 보다 싶었어. 농부는 집에 가자마자 소를 부려 일을 시켰어. "이놈아, 어서 움직여! 할 일이 산더미야!" 온종일 짐을 나르고 밭을 갈아도 일은 끝이 없어. "아이고,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 짓은 못하겠다." 게으름뱅이가 투덜거리며 잠시라도 쉴라치면 어느새 철썩철썩 무서운 매가 날아오지.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해가 저물고 나서야 좁고 냄새나는 외양간에 몸을 뉘었어.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이라고는 푸석푸석한 짚풀뿐.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눈물만 흐르지. 날이 밝으면 농부는 어김없이 나와 일을 시켜. "이랴! 어서 가자, 어서!" 아침부터 어찌나 몰아치던지 해가 정수리에 오르자 눈이 핑핑 돌았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마침 저만치에 무 밭이 보였어. "저 무를 먹고 죽어야겠다." 게으름뱅이는 부리나케 무밭으로 달려갔어. 가서는 무를 막 베어 먹고 뜯어 먹고 뽑아 먹고 훑어 먹고 그랬어. 소가 되었으니 무를 와작와작 좀 잘 먹겠어? 게으름뱅이는 배가 불쑥 불러서는 잔디밭에 누워서 나 죽는다 잠이 들었어. 그런데 깨어나 보니 이상하기도 하지. 죽기는커녕 소 허물이 홀딱 벗겨져서 다시 사람이 되었지 뭐야? 사람이 된 게으름뱅이는 소 탈 만든 영감을 찾아 고개로 갔어. 고개 위에 가 보니 영감은 없고 그저 제가 들고 나온 베 한 필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 집으로 돌아오니 마누라가 물어.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왔소?" "아이고, 이 사람아, 내가 소 탈을 썼다가 소가 되었다네." 그랬더니 마누라가 이래. "아이고, 이 사람아, 마누라 말 안 들어도 소가 된단다." 그때부터 게으름뱅이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고 마누라 말도 잘 들으면서 탈 없이 잘 살았어. 사람들은 영감을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고 믿어서 그 고개를 여우 고개라고 불렀더래. 사람을 소로 만든 게으름뱅이. 만날 게으름만 부리다 이상한 영감한테 속아 소가 돼서 갖은 고생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예요. 그런데 해설 제목을 '사람을 소로 만든 게으름뱅이'라 했어요. 이 게으름뱅이가 사람을 소로 만들었다니, 이는 무슨 말일까요? 저 게으름뱅이 남자는 실제로 사람을 소로 만든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그렇게 만들었느냐면 주변 사람들을요. 특히 함께 사는 아내가 그렇지요. 생각해 보세요. 만날 게으름이나 피우고 술이나 먹으며 노름을 하는 저 남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아내는 늘 소처럼 일을 해야 했잖아요.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말이에요. 아무리 하소연을 해 봐야 '음매' 소리처럼 말은 통하지 않고 성화만 돌아오니 저 아내의 신세가 소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어요. 저 게으름뱅이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소 탈을 쓰고서 소가 됩니다. 그러고는 말도 안 통하는 상태에서 멍에를 쓴 채로 고된 일을 해야 했지요. 하소연을 해도 소용없이 매를 맞으며 사는 모습을 보자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나한테 저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건 그리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핀들핀들 놀면서 늘 남한테 기대어 살았으니 벌을 받아도 싸지요. 그 벌은 자기가 남한테 베푼 대로 당하는 것이 꼭 맞습니다. 이야기에서 영감이 게으름뱅이를 소로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서는 그 영감이 여우일 것이라고 했지만, 여우가 아니라 신령님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 남자는 소 탈을 쓰고서 소가 되잖아요? 저 게으름뱅이 남자는 명색은 인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어요. 사람 노릇을 통 못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저렇게 짐승으로 변해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큰 변화가 있어야 하지요. '죽었다가 거듭나는 것'과 같은 변혁이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이 이야기에서 남자가 무를 먹고 죽은 듯 쓰러지는 것은 이를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그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짐승의 허물을 벗고서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저 집에 소 허물이 또 하나 생겨났을 것 같네요. 그간 소처럼 살았을 아내가 이제 허물을 벗었을 테니까 말이에요. 아, 허물이 그것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간 부모가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이 우울함이나 답답함이라는 허물을 훌쩍 벗을 수 있게 되었을 테니까요! |
왈랑 발랑 뎅데쿵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총각이 있었어. 장가도 못 가고 늙어 죽게 생겼건만 총각은 오늘도 짚을 꼬아 새끼줄이나 만들지.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내 짝이 없으려고!" 총각은 기다란 새끼줄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어. 이 나무 저 나무 새끼줄을 촘촘히 걸어 놓고 좁쌀 한 줌을 살살 뿌렸지. 참새나 몇 마리 잡아 구워 먹을 생각인 게야. 다음 날 아침, 그것도 그물이라고 새가 잡혔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씩이나 말이야. 그런데 새 우는 소리가 참 희한해. 그러거나 말거나 총각은 새를 굽겠다고 불을 피웠지. "깃털을 홀랑 벗겨 맛있게 구워설랑 한 마리는 내가 먹고 두 마리는 장에 가서 팔아야겠다." 그랬더니 새들이 울면서 말을 하지 뭐야. "살려 주세요! 깃털을 줄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새가 말을 하다니 거참, 신기한 일일세." 총각은 깃털을 하나씩 받고 새들을 풀어 주었어. 총각이 깃털을 들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바위 위에 앉은 노인이 말을 걸었어. "귀한 깃털이로고!" "어르신, 이 깃털에 대해 아세요?" "잘만 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깃털이지." 노인은 총각에게 깃털 쓰는 법을 요모조모 일러 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어. 산에서 내려온 총각은 목화 따는 처녀를 보았어. "야, 참 예쁘다! 내 각시 삼았으면 좋겠네." 처녀는 정승의 외동딸이었지. 총각이 가만 보고 있으려니 처녀가 나무 뒤에 숨어 오줌을 누네. '노인이 오줌 눈 자리에 깃털을 꽂으라고 했것다?' 처녀가 자리를 뜨자 총각은 오줌 눈 자리를 찾아 깃털 세 개를 꽂았어. 그날로 정승 집에서는 난리가 났어. 외동딸이 걸을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한 발 내디디면 왈랑! 또 한 발 내디디면 발랑! 다시 한 발 내디디면 뎅데쿵! 빨리 걸으면, 왈랑발랑뎅데쿵! 왈랑발랑뎅데쿵! 천천히 걸으면, 와알랑 바알랑 데엥데에쿠웅! 정승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하나뿐인 딸이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렸으니 말이야. 용하다는 의원을 죄다 불러들였지만 그럼 뭐해. 하나같이 고개만 갸웃거리다 돌아가는걸. 정승은 마지막으로 방을 써 붙였어.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고 말이야. 총각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승을 찾아갔어. "소인이 따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정승은 의심스러웠지만 해 보라고 했지. 총각은 병을 살핀답시고 외동딸의 손목을 잡고, 입안을 들여다보고, 앉아라 서라 누워라 기어라, 별별 걸 다 시켰어. 그러고는 정승에게 미리 만들어 둔 엉터리 약을 내밀었어. 말라비틀어진 밥풀딱지에 쑥을 넣고 콩콩 찧은 가루였지. "하루에 한 숟가락씩 아침저녁으로 사흘만 먹이십시오." 첫째 날, 총각이 깃털 하나를 쏙 뽑았어. 그러자 '뎅데쿵'은 어디 가고 왈랑 발랑 왈랑 발랑. 둘째 날, 총각이 깃털 하나를 또 쏙 뽑았어. 그러자 '발랑'도 사라져서 왈랑 왈랑 왈랑 왈랑. 셋째 날, 총각이 남은 깃털 하나를 쏙 뽑자 마침내 아무 소리도 안 나게 되었지. 총각은 이제 혼례를 올리겠거니 하고는 날마다 담 너머로 외동딸과 눈을 맞췄네. 그런데 웬걸, 하루는 정승이 총각을 부르더니 쌀자루와 돈 궤짝을 실은 수레를 하나 내주고는 가라네. "감히 내 딸을 넘봐? 어림없다, 이놈!" 외동딸이 발을 동동 굴러도 시침을 뚝 떼지 뭐야. 왈랑 발랑 뎅데쿵! 외동딸이 걸을 때 또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 총각이 다시 오줌 자리에 깃털을 꽂았거든. "여봐라, 빨리 가서 그 총각을 찾아오너라." 정승은 한숨을 내쉬었어. 정승 명령에 하인들이 총각을 데리러 갔어. 하지만 총각은 벌렁 드러누워 배짱을 부렸어. "혼례부터 올려 주어야 병을 고칠 것이오." 그리하여 혼례를 올리게 되었지. 정승은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 신랑이 된 총각은 좋아서 싱글벙글. 새색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나는데, 소리도 새색시를 닮아 부끄러워하더래. 혼례 다음 날, 총각은 깃털을 뽑아 바람에 날려 보냈어. "고맙다, 깃털아! 훠이훠이 잘 가거라!" 정승 딸과 혼인한 총각은 오래오래 잘 살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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