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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으로 떠나는 음악 여행 | 의사소통 | 유아 | 솔솔 상쾌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여름날, 푸른 숲 속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 보세요.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나요? 자, 그럼 우리 함께 숲 속으로 음악 여행을 떠나요. 구불구불 산길을 걸으니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느껴져요. 삐죽삐죽 나뭇가지에 달린 작은 잎들은 ‘통통통’ 리듬을 타는 작은북처럼 빠르게 움직여요. 팔랑팔랑 바람에 흔들리는 기다란 나뭇잎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바이올린을 켜네요. 땅속에서 고개를 쏙 내민 여린 싹들은 크기가 제각각이에요. ‘딩동딩동’ 실로폰 소리처럼 경쾌함이 느껴져요. 형형색색 아름다운 들꽃은 수줍은 듯 조금씩 몸을 흔들어요. ‘삐리리~ 삐리리~’ 가늘고 고운 플루트의 소리처럼 들려요. 나비는 알록달록 예쁜 날개를 펄럭이며 세상의 모든 멜로디를 표현하지요. 어머나! 작은 꽃씨들이 날리고 있어요. 꽃을 피우던 날을 생각하면서 추억의 노래를 읊조리는 듯 훨훨 날아가네요. 커다란 고목나무에서는 살아온 세월만큼 깊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와요. 마치 콘트라베이스의 낮은음처럼 말이에요. 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층층이, 겹겹이 어우러진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서 있네요. 든든한 모습이 마치 음악의 흐름을 잡아 주는 큰북과 심벌즈 같아요. 세찬 바람이 불어와요. 나뭇잎도, 꽃들도 바람의 흐름을 따라 더 큰 소리로 신나게 연주하네요. 휘이잉~ 차츰 바람이 멈추고 숲은 잠시 고요해지더니 둥근달이 떠올라 숲을 비추어요. 은은한 달빛을 받은 숲은 잔잔한 선율로 첼로를 연주해요. 여러 가지 모습의 나뭇잎들이 달빛 속에서 각자의 개성에 맞춰 소리 내기 시작하네요. 삐쭉삐쭉, 둥글둥글. 넓적넓적, 길쭉길쭉. 오밀조밀, 성글성글.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도 작은 속삭임으로 트라이앵글을 연주해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 보세요. 바람 소리. 물 소리.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꽃망울 터지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숲에서 나는 온갖 소리들이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숲의 교향곡을 들려줘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음악. 우리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솔솔 부는 바람 소리도.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음악 소리가 되고. 하늘거리는 꽃들의 모습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 미술, 문학 작품 등 모든 예술은 결국 사람의 생각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악보대로만 연주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연주가는 그 곡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의 느낌을 살려서 연주해야만 진정한 음악을 전달할 수 있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음악은 마음속 깊이 생각을 하여 나오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열매 맺기. 나도 숲 속의 지휘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여러분이 느끼는 대로 음악을 만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만의 음악 철학이 되는 거예요. 진달래, 장미, 개나리, 무궁화, 봉숭아, 나팔꽃, 튤립 등 꽃들은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라이프니츠.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힘이 있는 것만 실체라고 생각했으며. 이 세상에는 힘이 있는 실체인 단자들만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단자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뜻합니다. 단자에는 돌처럼 물질로 된 단자도 있고. 식물이나 동물도 있으며. 인간도 있습니다. |
앨리스와 떠나는 미술 여행 | 의사소통 | 유아 | 헤나는 앨리스와 '문들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어요. 앨리스는 문들의 나라 안내자였어요. "문들의 나라에 가면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모든 미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단다." 앨리스는 헤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어요. 문들의 나라에 가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어요. "앨리스, 문들의 나라에 빨리 가 보고 싶어." 헤나는 문들의 나라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꽃들이 활짝 핀 어느 날, 헤나는 드디어 앨리스를 따라 문들의 나라에 가게 되었어요. "옛날 그림들까지 볼 수 있다니까 무척 설렌다, 앨리스." 앨리스의 손을 잡고 문들의 나라를 향해 날아가는 헤나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어요. 잠시 후, 헤나와 앨리스는 문들의 나라에 도착했어요. 첫 번째 문인 회색 문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동굴 벽화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어요. 헤나는 동굴 벽화를 그리고 있는 원시인에게 다가가서 물었어요. "벽에 동물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뭐예요?" "원시 시대에는 주로 소원을 빌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렸단다. 나는 사냥이 잘되기를 빌며 그림을 그리는 중이야." 원시인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이번에는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헤나의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유리들은 어떻게 예쁜 색깔을 갖게 된 거죠?" "유리에 색을 입혀서 그런 거야. 햇빛에 반사되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거란다." 유리에 색을 칠하고 있던 사람이 대답해 주었어요. "자, 이제 노란 문으로 가 보자." 앨리스는 헤나를 노란 문 앞으로 데려갔어요. 헤나가 노란 문을 열자 눈앞에 노란 꽃들이 펼쳐졌어요.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었어요. 노란 문 옆에는 파란 문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헤나는 살며시 파란 문을 열었어요. 파란 문 안에는 피카소의 그림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피카소의 그림은 알쏭달쏭,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시나요?" 헤나가 피카소에게 물었어요.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개성 있게 표현해서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만들었단다." 피카소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파란 문을 벗어나니 반짝반짝 빛으로 된 문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머나!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할 때마다 문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잖아?" 헤나는 깜짝 놀랐어요. "이곳에는 빛을 이용해 만들어진 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단다." 앨리스가 설명해 주었어요. 다음에는 빛을 이용한 입체적인 작품들을 보러 갔어요. 그림에 불이 들어오면 불쑥 탑이 생겼다가, 불이 꺼지면 탑이 사라졌어요. 또 불이 들어올 때마다 계단과 문이 생겼어요. 빛은 숨어 있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어머나! 이제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빨리 분홍 문을 열어 보렴." 앨리스가 헤나를 재촉했어요. 헤나가 분홍 문을 열자 마술이 펼쳐졌어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장이 높아지고 흰 벽에 집과 길이 그려졌어요. 쉿! 누군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헤나와 앨리스는 살금살금 분홍 문을 빠져나왔어요. 어느덧 헤나와 앨리스는 마지막 문인 거울 문 앞에 서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거울로 만든 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꽃잎 하나하나가 사람 모양으로 되어 있네." "정말 신기하고 예쁜 꽃이야.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은 사람인 것 같아." 헤나의 말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든 미술 작품들도 모두 아름다운 거란다." "헤나야, 이제 미술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걸 알았지?" "응, 나도 앞으로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 볼래." 헤나와 앨리스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거울 문을 닫고 문들의 나라를 나왔어요. |
풍선처럼 배를 부풀린 황소개구리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숲속 작은 연못에 개구리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어요. "개굴 개굴!" "개굴 개굴!" 어느 날, 커다란 황소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이 연못을 나 혼자 차지해야지.' 욕심 많은 황소개구리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모두들 저리 비켜! 이제부터 이 연못은 내 거야!" 황소개구리는 몸을 크게 부풀리며 말했어요. 개구리들은 커다란 황소개구리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달아나자! 개굴 개굴!" 겁에 질린 개구리들은 모두 팔딱팔딱 뛰어서 도망쳤어요. "하하, 이제부터는 내가 왕이다!" 그 후로 황소개구리는 제멋대로 행동했어요. 또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개구리들은 마구 괴롭혔지요. 그러던 어느 날, 꾀 많은 개구리가 나타났어요. "못된 황소개구리를 혼내 줘야겠다." 꾀 많은 개구리는 황소개구리를 황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세상에! 저렇게 큰 동물이 있었다니.' 황소개구리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황소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황소개구리님, 저 황소를 이길 수 있으세요?" 꾀 많은 개구리가 황소개구리에게 물었어요. 하지만 황소개구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요. "아무리 황소개구리님이라도 커다란 황소를 이길 수는 없겠지요?" 꾀 많은 개구리의 말에 황소개구리는 슬슬 약이 올랐어요. "무슨 소리! 내 몸을 부풀리면 저 황소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황소개구리는 뻥뻥 큰소리를 쳤어요. "자, 잘 보라고!" 황소개구리는 펌프 호스를 입 속에 넣고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황소개구리의 배는 점점 부풀었어요. 마침내 황소개구리의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어요. "어때? 이제 내가 황소보다 더 크지?" 황소개구리가 의기양양한 말투로 물었어요. "아니요, 조금 더 커져야 해요." 꾀 많은 개구리가 대답했어요. 그러자 황소개구리는 몸을 더욱 크게 부풀렸어요. "어때? 이제 내가 황소보다 더 크지?" 황소개구리가 물었어요. "아니요, 더 많이 커져야 해요." 다른 개구리들이 대답했어요. "알았어, 더 크게 부풀리지 뭐." 황소개구리가 몸을 더 크게 부풀리는 순간. '펑!' 하고 배가 터져 버렸어요.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몸을 부풀린 황소개구리는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말았어요. "쯧쯧, 개구리가 어떻게 황소인 나처럼 커질 수가 있담. 너 자신을 알아라!" 황소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어요.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개구리가 아무리 몸을 부풀린다고 해도 황소처럼 커질 수는 없습니다. 황소개구리는 이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황소처럼 커지기 위해 몸을 힘껏 부풀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답니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할 수 없으면서 할 수 있는 척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특히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남들과는 다른 개성, 현재 처해 있는 상황 등을 잘 판단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에는 델포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으며,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을 찾아가 신탁(기도자의 요청에 대한 신의 응답)을 들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닙니다. 이 격언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말이라고도 하고, 스파르타의 킬론이 한 말이라고도 하며, 또 다른 현자가 한 말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인용하여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랍니다. 스스로 무지하다고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는 “만인 중에 소크라테스가 제일 현명하다.”라는 신탁을 전해 들은 후, 그 신탁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현자들조차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확실히 알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 속에서 괴로워하며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
로봇은 무슨 일이든 척척! | 의사소통 | 유아 | "멍멍아, 어서 춤춰 봐!" 오늘도 원이는 로봇 강아지와 함께 춤을 추며 놀았어. 신나게 놀다 보니 원이는 슬슬 배가 고팠지. "슈퍼 로봇,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와." 원이는 집안일을 하는 슈퍼 로봇에게 말했어. 하지만 슈퍼 로봇은 꼼짝도 하지 않았지. "내 말 안 들려? 먹을 것 좀 가져오라고!" 원이는 슈퍼 로봇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쳤어. 그러자 슈퍼 로봇이 대답했지.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명령을 내려 주세요." 그때 엄마가 말했어. "슈퍼 로봇, 원이에게 우유와 빵을 가져다 주렴." "네, 알겠습니다." 슈퍼 로봇은 그제야 주방으로 갔어. "엄마, 슈퍼 로봇이 왜 내 말은 안 듣고 엄마 말만 듣는 거예요?" 원이가 엄마에게 물었어. "아마도 네가 슈퍼 로봇이 알아듣도록 또박또박 말하지 않아서 그럴 거야. 아빠가 들어오시면 자세히 물어보렴." 저녁 때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자 원이는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 "아빠, 슈퍼 로봇은 왜 엄마 말만 듣는 거예요?" "그건 원이가 명령을 잘못해서 그래." "먼저 로봇의 이름을 부른 다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콕 집어서 말해야 한단다. 빵이면 빵, 우유면 우유를 가져다 달라고 말이야." "아하! 그렇구나." 원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어. "아빠,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는 로봇은 없어요?" "아직 그런 로봇은 만들 수가 없어. 하지만 옛날의 로봇과 비교하면 지금 로봇들도 대단한 거야." "옛날의 로봇이요? " "그건 어떤 건데요?" "마침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아빠 회사에 함께 가서 구경해 볼까?" "네, 좋아요." 다음 날, 원이는 아빠와 함께 회사에 갔어. 로봇을 만드는 아빠네 회사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로봇들이 전시되어 있었지. "우아! 정말 굉장하다." 원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어. "아빠, 이 로봇은 어디에 사용하는 거예요?" 원이는 팔뿐인 로봇을 가리키며 물었어. "그건 산업용 로봇이란다. 자동차를 조립하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데 쓰이지." 또 다른 방에 들어서니 마치 병원에 온 것 같았어. "여기는 수술에 쓰이는 의료용 로봇을 개발하는 방이란다." "로봇이 수술도 해요?" "그럼! 의료용 로봇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조종하는 거란다." 원이와 아빠는 또 다른 방으로 갔어. "이건 사람이 갈 수 없는 우주 공간에 보내지는 탐사용 로봇이란다. 지금도 우주에는 지구에서 보낸 탐사 로봇이 많이 활동하고 있어." "그런데 아빠,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로봇은 없나요?" "아직 그런 로봇은 없어. 로봇은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 "생각하는 로봇이 있지 않아요?" "로봇의 생각도 결국 사람이 넣어 준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른 거란다. 그러니까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것과는 다른 거야." 아빠의 말에 원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어. 아빠는 원이의 마음을 눈치챈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즉, 로봇과 인간의 차이는 경험에 있다고 할 수 있단다." 경험이라고요?" "그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단다. 그러면서 어떤 일에 대한 해결 방법을 익혀 나가지. 하지만 로봇은 스스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을 할 수 없고, 사람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단다." "아빠, 만약 생각하는 로봇이 만들어지면 사람과 서로 도우며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구나." 아빠와 원이는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어. |
엄마가 제일 좋아요! | 의사소통 | 유아 |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뮤지컬 공연을 해요. 이번에 공연할 뮤지컬은 미녀와 야수예요. 야수 역할을 맡은 나는 매일 엄마와 함께 연습을 했어요. "내 장미를 꺾은 벌로 너의 세 딸 가운데 한 명을 데려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나는 양팔을 쳐들어 사납게 휘두르며 말했어요.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제가 야수에게 가겠어요." 엄마는 미녀의 대사를 읽으면서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어요. 내가 노래 연습을 할 때면 '딩동딩동' 피아노도 쳐 주었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기운 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어요. "엄마, 왜 그러세요?"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구나. 아무래도 엄마가 할머니한테 가 봐야 할 것 같다." 엄마는 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어요. 엄마의 말에 나는 불쑥 화가 났어요. "그건 안 돼요. 엄마가 없으면 뮤지컬 연습은 어떻게 해요!"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어요. 그날 밤, 아빠가 나를 달래 주려고 내 방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어요. 엄마도 아빠도 모두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자는가 보구나. 잘 자라." 아빠가 나가자 나는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어요. 다음 날 잠에서 깬 나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어요. '왜 엄마는 내 생각을 해 주지 않는 거야?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엄마 속을 썩일 테야.' 나는 이렇게 결심했어요.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식탁 앞에 앉았어요. "왜 세수를 하지 않니?" 엄마가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거실로 나가 오전 내내 텔레비전만 보았어요. 오후에는 방을 마구 어지럽혔어요. "이런 거 이제 다 필요 없어!"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장난감을 마구 집어 던졌어요. 그런데 그만 작년에 외할머니가 사 준 인형의 귀가 '찌익!' 찢어지고 말았어요. 내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방 좀 깨끗이 치워라. 인형 귀는 엄마가 꿰매 줄 테니까." 엄마는 인형을 가지고 나갔어요. 하지만 나는 엄마가 다시 내 방에 올 때까지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어요. "아무래도 네겐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하지만 네가 화를 내니까 엄마도 속상해." 다음 날 잠에서 깬 나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는 엄마와 얘기를 하기 위해 거실로 나갔어요. 그런데 소파에서 엄마와 아빠가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본 순간 또 화가 났어요. '역시 엄마는 내 걱정 따윈 안 하는 게 틀림없어. 이제 절대로 엄마와 말하지 않을 거야.' 나는 방으로 되돌아와 문을 '쾅!' 닫아 버렸어요. 온종일 방 안에 혼자 있기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뮤지컬 생각만 하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어요. '흥, 두고 보라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가 나는 스르르 잠들고 말았어요. 나는 꿈속에서 엄마와 만났어요.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너도 엄마가 아프면 엄마를 간호해 주잖아. 그러니까 엄마도 할머니를 돌봐 줘야 하지 않겠니?" 엄마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러자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엄마는 내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놀다가 먼지투성이가 되면 깨끗이 씻겨 주고, 재미있는 동화책도 읽어 주었지요. '엄마.' 항상 나를 돌봐 주는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요. 할머니도 딸인 엄마를 그렇게 돌봐 주셨겠지요. 나는 엄마가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다음 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달려가 말끔하게 세수를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차려 준 밥도 맛있게 먹었어요. 엄마 아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밝은 미소를 지었어요. 오늘 뮤지컬 연습 시간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연습했어요. 야수와 함께 살게 된 미녀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야수인 내게 말했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잠시 집에 다녀와야겠어요." 그러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알았어요. 그 대신 곧 돌아와야 해요."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이 부분을 연습할 생각을 하니 뛸 듯이 기뻤어요. |
지혜로운 여우와 어리석은 닭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숲 속에 늙은 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 "아이코, 배고파." 사자는 며칠 동안 쫄쫄 굶었지만 너무 늙어서 사냥할 기운조차 없었어. 이리저리 궁리하던 사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옳거니! 아픈 척을 하면 동물들이 병문안을 오겠지? 그때 잡아먹으면 되겠구나.' 사자는 곧 동굴 안에 드러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어. 잠시 후,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와서 물었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배가 고파서 그래." 사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람쥐를 덥석 잡아먹어 버렸어. 이튿날, 토끼 한 마리가 깡충깡충 뛰어와서 물었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배가 고파서 그래." 사자는 큰 입을 쩍 벌려 토끼를 꿀꺽 삼켜 버렸어. 다음 날에는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이 찾아왔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배가 고파서 그래." 사자는 순식간에 사슴을 잡아먹어 버렸어. 그다음 날에는 여우가 찾아왔어. 지혜로운 여우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물었어. "사자님, 어디 아프세요?" 그러자 사자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어. "그래, 이리 가까이 와서 나를 좀 돌봐 다오." 하지만 여우는 사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주변부터 살폈어. '다람쥐, 토끼, 사슴이 동굴 안으로 들어간 발자국은 있는데 동굴 밖으로 나온 발자국은 없는 걸 보니 모두 사자에게 잡아먹혔구나.' 동굴에 들어간 다람쥐는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동굴에 들어간 토끼도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동굴에 들어간 사슴도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므로 동굴에 들어가면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이렇게 생각한 여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닥닥 도망쳐 버렸어. 결국 여우는 지혜로운 판단으로 목숨을 구했지. 그럼, 지혜롭지 못해서 목숨을 잃은 닭 이야기도 들어 볼래? 닭장 주인은 매일 아침 9시가 되면 닭에게 모이를 주었어. 그러자 닭은 이렇게 생각했어.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항상 아침 9시가 되면 모이를 주었으니까 내일도 아침 9시에 모이를 주겠지?'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자 닭은 모이를 받아먹기 위해 닭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어. 그러자 주인의 커다란 손이 닭의 목을 홱 낚아채는 게 아니겠어? "잠깐만요! 왜 저를 잡아가시는 거죠? 아침 9시에는 항상 모이를 주셨잖아요." 닭이 묻자,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어. "매일 아침 9시에 모이를 줬다고 해서 오늘도 그러라는 법은 없잖아." '아! 날마다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닭은 울면서 후회했어. 결국 어리석은 닭은 목숨을 잃고, 맛있는 닭 요리가 되고 말았지. 귀납 논증의 결론이 항상 참일 수는 없어요. 이 이야기에서 지혜로운 여우는 다음과 같은 추리를 하였습니다. ‘동물들이 사자가 있는 동굴에 들어간 발자국은 있다.
하지만 동굴에서 나온 발자국이 없다. 그러므로 동굴에 들어가는 모든 동물은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즉, 여우는 두 가지 전제를 이용하여 “동굴에 들어간 동물은 사자에게 잡아먹힌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전제들이 결론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긴 하지만 전제가 참이라고 해서 반드시 결론도 참인 것은 아닙니다. 토끼, 다람쥐, 사슴 등 여러 동물들이 동굴 속에서 나온 발자국이 없었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또 사자가 지금까지는 동굴 속에 들어온 동물들을 잡아먹었다고 해도 다음부터는 안 잡아먹으려고 마음을 바꾸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귀납 논증에서는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닭의 이야기에서처럼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답니다. 귀납 논증. 귀납법은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로부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명제 및 법칙을 이끌어 내는 추리 방법입니다. 하지만 귀납 논증에서는 전제들이 결론을 그럴듯하게 해 줄 뿐, 결론의 참을 완전히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아침이면 언제나 해가 동쪽에서 떴다. 그러므로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다.”라는 논증은 전제가 참이라고 해도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내가 오늘 본 까마귀는 검다. 내가 어저께 본 까마귀도 검다. 내가 그저께 본 까마귀도 검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 이 논증의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지요?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까마귀나 앞으로 태어날 까마귀가 검지 않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알비노 까마귀’는 흰색입니다. 이처럼 귀납 논증은 전제의 참에서 결론의 참이 그럴듯하게 나오기 때문에 전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결론은 더 그럴듯 해집니다. 또 귀납 논증의 결론은 전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으므로 지식을 넓혀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납 논증은 주로 과학적 주장에서 많이 쓰인답니다. |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따뜻한 오후, 엄마가 시장에 간 동안 형이는 동생 윤이를 돌보고 있었어요. “윤아, 우리 '이웃집 토토로' 볼래?” “좋아, 언니.” '이웃집 토토로'는 형이와 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예요. 형이는 비디오테이프를 가져다가 '이웃집 토토로'를 틀었어요. '이웃집 토토로'의 이야기는 주인공 사즈키와 메이 자매가 이사하는 날로부터 시작되지요. 작은 시골집에 도착한 사즈키와 메이는 새집에서 검고 동글동글한 동구리 ‘검댕먼지 신’을 만나요. “저게 뭐지?” 호기심이 생긴 윤이는 텔레비전 안의 검댕먼지 신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가 텔레비전 속으로 ‘휘리릭’ 빨려 들어가고 말았어요. “윤아!” 형이는 재빨리 윤이의 발을 잡았어요. 그 바람에 형이도 텔레비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형이는 울창한 나무숲에 누워 있었어요. “대체 여기가 어디지? 윤이는 또 어디 있는 거야? 윤아! 윤아!” 형이는 큰 소리로 윤이를 불렀어요. 그 무렵, 윤이도 형이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었어요. “언니, 엉엉엉!” 그때, 갑자기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비를 맞으며 길을 걷던 윤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사즈키와 메이를 만났어요. “넌 누구니?” 메이가 물었어요. “난 윤이야.” “어머나! 손이 왜 그렇게 더럽니?” 사즈키가 윤이의 검은 손을 보며 물었어요. “동구리 검댕먼지 신을 만져서 그런가 봐. 나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언니 좀 찾아 줘. 응?” 윤이가 사즈키에게 부탁했어요. “알았어. 아빠가 오시면 부탁해 볼게.” 그때 숲의 신 토토로가 나타났어요. “토토로다!” 메이와 윤이가 동시에 소리쳤어요. “비를 흠뻑 맞았네요. 우산 빌려줄까요?” 사즈키가 토토로에게 우산을 내밀며 물었어요. 토토로는 사즈키가 건넨 우산을 썼어요. 토토로는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었어요. “토토로, 이 아이를 언니한테 데려다주지 않겠어요?” 사즈키는 용기를 내어 토토로에게 부탁했어요. 그러자 우산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톡톡! 토독! 톡톡!” 그러자 토토로는 마치 누군가를 부르듯 크게 소리 질렀어요. “쿠앙!” 곧이어 우스꽝스럽게 생긴 고양이 버스가 나타났어요. 토토로는 윤이를 버스에 태웠어요. “잘 가, 윤이야. 언니를 꼭 찾길 바랄게.” 사즈키와 메이가 윤이를 배웅해 주었어요. 토토로와 윤이를 태운 고양이 버스는 하늘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전깃줄 위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넓은 들판에 이르렀을 때 윤이를 찾고 있던 형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어! 언니다. 토토로, 버스를 세워 주세요.” 고양이 버스는 형이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어요. “언니!” “윤아, 무사했구나.” 형이와 윤이는 반가운 마음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지?” 형이와 윤이는 고민에 빠졌어요. 바로 그때 토토로가 고양이 버스 문을 열어 주었어요. “고마워, 토토로.” 형이와 윤이는 얼른 고양이 버스에 올라탔어요. 그러고는 푹신한 버스 의자에 앉아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형이와 윤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어요. “언니, 저기 봐. 토토로야.” 텔레비전 속에서 토토로는 형이와 윤이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어요. “언니,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도 고양이 버스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정말 신나겠지?” “맞아, 나중에 크면 우리가 토토로 버스를 만들자.” “좋아, 토토로 버스에 씌울 우산은 내가 만들게.” 형이와 윤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어요. 형이와 윤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어요. 친구들도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토토로를 만나게 되면 우산을 빌려 주세요. 그럼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이 시작될 거예요. |
공주님의 진짜 노란색 찾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왕국에 초록색을 좋아하는 왕비가 살았어요. 어느 날, 왕비는 어여쁜 공주를 낳았어요. 그런데 공주는 태어나면서부터 노란색을 좋아했어요. 공주는 노란 벽지를 바른 방에서 노란 옷을 입고 지냈어요. 잠도 노란 침대에서 잤고, 노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지요. 온통 노란색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공주는 항상 이렇게 투덜거렸어요. "난 진짜 노란색을 보고 싶어." 그러자 신하가 말했어요. "공주님이 신고 있는 구두야말로 가장 진한 노란색이에요." 하지만 공주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어딘가에 분명히 내 구두보다 더 진한 노란색이 있을 거야." 어느 날, 노란 침대에서 잠을 자던 공주가 노란색 꿈을 꾸고 있을 때 노란 요정이 나타나서 말했어요. "공주님, 진짜 노란색을 볼 수 있는 햇빛마을로 가려면 공주님의 새끼손가락에서 나오는 피 세 방울이 필요하답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진짜 노란색을 볼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 공주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다음 날, 공주는 몰래 궁전을 빠져 나왔어요. 그러고는 노란 요정이 가르쳐 준 대로 빨간 장미가 가득 핀 높은 숲길로 올라갔어요. 공주가 한참 숲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갑자기 초록뱀이 나타났어요. "공주님, 어디 가세요?" 초록뱀이 물었어요. "햇빛마을로 간단다." "그럼 저쪽 길로 가시면 돼요." 초록뱀은 꼬불꼬불한 길을 가리켰어요. 꼬불꼬불한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사슴이 나타났어요. "공주님, 어디 가세요?" "햇빛마을로 간단다." "그럼 저곳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사슴은 뾰족 계곡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사슴이 가르쳐 준 뾰족 계곡 꼭대기로 올라간 공주는 하늘을 향해 나 있는 구멍 하나를 발견했어요. "구멍을 발견하면 노란 요정이 빨간 장미 가시로 내 새끼손가락을 찌르라고 했지?" 공주는 꿈 속에서 노란 요정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빨간 장미 가시로 새끼손가락을 찔렀어요. 공주의 피 세 방울이 떨어지자 하늘 구멍에서 사다리가 내려왔어요. 공주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갔어요. 그곳에는 노란 태양이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어요. "아, 눈 부셔!" 잠시 후, 주위를 살펴보니 밝은 빛으로 된 큰 뾰족산과 마을이 보였어요. 마을의 물건들은 세상 물건들과 비슷했지만, 그것들보다 더 아름답고 완벽했어요. 그래서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공주는 사흘 밤낮 동안 뾰족산 주위를 맴돌면서 진짜 노란색을 찾아보았어요. 얼마 후, 공주는 맑은 개울을 발견했어요. 진짜 노란색을 찾아다니느라 피곤했던 공주는 시원한 개울물로 얼굴을 깨끗이 씻었어요. 그러자 뾰족산에 걸쳐 있는 무지개다리가 보였어요. 공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찬란한 색들이 나타났어요. 노란색은 색들 가운데 세 번째 자리에 놓여 있었어요. 그 노란색은 아주 아름답고 진한 색이었어요. "아, 정말 진한 노란색이로구나." 공주는 노란색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어요. 그러자 노란빛이 흘러 나와 공주의 손을 노랗게 물들였어요. 얼마 후, 공주는 궁전으로 돌아왔어요. 공주의 노란 손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공주님 손에 묻은 노란색은 이 세상의 노란색하고는 다르네." "그러게 말이야. 저게 정말 노란색인가 봐." 그때 누군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그럼 진짜 빨간색은 어떤 느낌일까?" |
토끼와 호랑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간날에 호랑이가 살았는데 하루는 배가 몹시 고파서 이리저리 산속을 헤매고 다녔어. 그러다가 한 군데서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를 만난 거야. 호랑이는 냅다 달려들어 덥석 잡아채서는 한입에 삼키려고 입을 쩍 벌렸어. 그랬더니 토끼가 샐샐 거리며 이러더래. "아저씨, 저는 워낙 쪼그마해서 잡숴 봤자 배도 안 부르고 입만 아플 거예요. 저를 살려 주시면 양껏 배부르게 해 드릴게요." 호랑이는 토끼 말마따나 쪼그만 거 먹어 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가겠거든. 그래 토끼를 살려 주고 배부르게 해 달라고 했어. 그러자 토끼는 자갈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어. "이 떡을 구워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지요." 그러고는 나무를 주워다가 불을 지펴서, 그 위에 자갈을 나란 나란히 얹어 놓더래. 이윽고 자갈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토끼가 이래. "구운 떡은 간장에 찍어 먹어야 더욱 맛나요. 제가 간장을 가져올 테니 떡이 타는지 잘 보고 계세요." 그래 호랑이는 얼른 다녀오라고 했지. 이 틈에 토끼는 재빨리 도망가 버렸어. 호랑이는 벌겋게 익은 떡을 보고만 있자니 군침이 돌아 견딜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간장 가지러 간 토끼는 도무지 오질 않잖아.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구운 떡을 몽땅 입에 집어넣었어. 그랬더니 배 속이 뜨거워서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났지. 그제야 호랑이는 토끼한테 속은 걸 알고 분통이 났어. 이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별렀지. 그리고 며칠 뒤에 호랑이와 토끼가 딱 마주쳤어. 호랑이가 이번에는 절대 속지 않겠다며 토끼를 한입에 삼키려고 했지. 그러자 토끼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이러더래. "지난번에 간장을 갖고 갔더니 떡도 안 보이고 아저씨도 안 보여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아세요?" 호랑이는 토끼가 저를 걱정해 준 게 기분 좋았나 봐. 하지만 그거도 잠시. 배가 고픈 호랑이는 입을 쩍 벌렸지. 그러자 토끼가 이러더래. "아저씨, 뭐가 그리 급해요" "내가 아저씨를 위해서 새를 잡는 꾀를 알아 놓았어요. 아저씨가 입만 벌리고 앉아 있으면 그리로 수천 마리의 새를 몽땅 몰아 드릴게요. 저는 나중에 잡아먹어도 늦지 않잖아요." 토끼 말을 들어 보니 그럴듯하거든. 새도 먹고 토끼도 먹으면 좀 좋아. 호랑이는 냉큼 토끼를 따라나섰어. 토끼는 호랑이를 대숲 한가운데로 데리고 갔어. 거기서 호랑이한테 눈을 감고 입을 쩍 벌리고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는 거야. 그러고는 이렇게 단단히 일렀어. "아저씨, 제가 새를 몰면 수천 마리 새 떼가 파드닥파드닥 날아서 아저씨 입이 구멍인 줄 알고 몽땅 들어갈 거예요. 그런데 절대 눈을 떠서는 안 돼요. 만일에 눈을 떴다간 새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말 테니까요." 호랑이는 토끼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을 크게 벌리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 그사이에 토끼는 대숲 여기저기에 불을 활활 질렀어. 이윽고 대나무에 불이 붙어 후루룩후루룩 소리가 나는 거야. 호랑이는 수천 마리의 새가 떼 지어 입안으로 날아오는 소리인 줄 알았지. 그래 좋아서 입을 더 크게 벌렸더래.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깃털 하나 입안으로 들어오질 않고 후끈후끈 몸만 점점 뜨거워지네. 그래 눈을 떠 보니까 대숲이 온통 불바다야. 털에도 불이 붙어 지글지글 타고 말이지! 호랑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불구덩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겨우 목숨을 구했지. 호랑이는 이번에도 토끼 놈한테 속아 죽을 뻔한 게 분통이 났어. 그래 당장 잡아먹어야겠다고 꾹꾹 다짐했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 숲속에서 호랑이와 토끼가 또 딱 만났지 뭐야.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겠다고 등잔만 한 눈을 뜨고 으르렁댔어. 그런데 토끼는 겁도 안 나는지 호랑이한테 꾸벅 절을 하며 이러더래. "아저씨, 저번에는 얼마나 놀라셨어요? 일이 잘못돼서 불이 나는 바람에 새는 고사하고 아저씨가 불에 타 죽을 뻔했지 뭐예요." 이번에는 꼭 일이 잘되게 해 보자고 토끼가 새새 거리니까 호랑이는 어느새 또 맘이 푹 풀어졌지. 토끼는 호랑이를 강 옆으로 데려가 말했어. "아저씨, 이 강에는 물고기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몽땅 잡아먹게 해 줄게요." 그러더니 호랑이보고 꼬리를 물속에 푹 담그고 있으라는 거야. "물고기가 꼬리에 많이 붙으면 무거워지는데, 그때까지 꼼짝 말고 앉아 있어야 해요. 그러다가 꼬리를 쭈욱 끌어 올리면 물고기가 주렁주렁 따라 나올 거예요. 그때 물고기를 몽땅 잡아먹으면 되지요." 토끼는 호랑이에게 조곤조곤 일러 주었어. 호랑이는 토끼 말이 그럴듯해서 꼬리를 강물 속에 담그고 가만히 앉아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들이 와서 꼬리를 툭툭 치네. '물고기들이 몰려와서 꼬리에 붙는구나.' 호랑이는 속으로 좋아했지. 그런데 그때는 한겨울 강추위라서 해가 기울자, 강물이 꽁꽁 얼기 시작했어. 호랑이 꼬리도 강물과 함께 꽁꽁 얼어붙었지. 그런 줄도 모르고 호랑이는 벙글벙글 좋아하며 이러더래. "토끼야, 물고기가 너무 많이 붙었는지 꼬리가 안 올라온다." 그러자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가며 이러지. "이 바보 멍청이야, 네놈이 자꾸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서 나도 너를 죽이려고 그런 거야." 그제야 속은 것을 안 호랑이가 얼어붙은 강에서 꼬리를 빼내려고 이리저리 용을 썼어.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꽁꽁 언 꼬리가 빠져야지. 날이 새자, 호랑이는 몽둥이를 들고 온 사람들한테 잡혀갔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겉에 드러난 힘보다 안에 숨은 힘. 저 호랑이, 토끼한테 당하고서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났을까요?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게 감히 날 이렇게 골탕 먹이다니! 두고 보자!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달랐어요.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거듭 토끼한테 당하지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귀가 얇아 토끼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 마음이 모질지 못해 토끼한테 연거푸 기회를 주어서? 욕심껏 배를 채우고자 하는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해서? 아니면, 호랑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교활한 토끼가 약삭빠르게 사기를 쳐서? 아마 다들 나름대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설명은 어떨까요? 토끼가 호랑이보다 강했다고 하면요. 토끼가 호랑이보다 강하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현실에서야 호랑이가 강하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는 사정이 달라요. 호랑이는 토끼를 한입에 삼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토끼는 그 힘에 맞설 만한 놀라운 지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랑이의 힘이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인 힘이라면 토끼의 힘은 안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인 힘이지요. 대개들 겉으로 드러난 힘에 눈길이 가게 되지만, 이면의 정신적인 힘이 더 결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호랑이가 토끼한테 거듭 당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저 호랑이는 토끼를 자기 밥이라고 여기고서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어요. 제힘만 믿고 상대를 함부로 얕보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지요. 호랑이는 토끼가 자기보다 약하니까 살기 위해서는 꼼짝없이 충성을 바칠 거라고 믿습니다. 허튼 교만이었지요. 그런데 호랑이는 두 번이나 된통 당하고서도 이렇게 상대를 얕잡아 보는 태도를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기 좋게 당할 수밖에 없지요. 호랑이는 사람들한테 잡혀가면서 "저 약삭빠른 토끼 때문에 내가 억울하게 죽는구나!" 하고 분통을 터뜨렸을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상대가 더 강했던 거지요. 호랑이 말고 토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머리를 써서 잘 해결하면 되지 저렇게까지 심하게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하지만 토끼 입장에서 보면 생존이 걸린 일이었지요. 굽혀서 빌거나 피해서 모면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겨 내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내내 호랑이한테 위협을 당하면서 살게 될 테니까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시로 모면하는 것보다 제대로 감당해서 해결하는 게 상책이지요. 그리하려면 힘을 기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내면 깊은 곳의 정신적인 힘을요! |
녹두 영감과 토끼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한 영감님이 살았더래. 영감님이 뒷산 아래 밭을 일궈 녹두를 심었는데 무럭무럭 잘 자랐대. 녹두는 싹을 틔우고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고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지. 뒷산에는 큰 토끼, 작은 토끼, 엄마 토끼, 아빠 토끼, 아기 토끼들이 올망졸망 살았더래. 토끼들은 칡잎도 뜯어 먹고 싸리꽃도 따 먹지만 뭐니 뭐니 해도 녹두를 가장 좋아한대. “와, 녹두다, 녹두!” 토끼들은 영감님네 밭에 내려와서 녹두를 따 먹었지. “이놈들, 녹두 따 먹지 마라!” 영감님이 밭에 나와 보고는 발을 꽝꽝 구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토끼들은 깜짝 놀라 와와 산속으로 달아났지. 그런데 영감님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토끼들이 다시 우르르 내려와 녹두를 따 먹네. “이놈들! 녹두밭을 다 망치는구나!” 영감님은 작대기를 휘두르며 뛰어나왔어. 토끼들은 또 와와 산속으로 달아났지. 영감님이 집으로 들어가면 토끼들은 또 내려와서 녹두를 따 먹고, 토끼들이 내려오면 영감님은 또 작대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지. “안 되겠다!” 영감님은 집에 들어가는 척 밭둑에 납작 엎드렸어. 토끼들은 영감님이 집에 들어간 줄 알고 신 나게 녹두를 따 먹었지. 그때 영감님이 벌떡 일어나 토끼들을 마구 때렸어. “어이쿠!” 토끼들은 후다닥 몸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달아났지.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좋은 수가 없을까?” 토끼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닥속닥 회의를 했어. 그 뒤부터 토끼들은 녹두밭에 내려올 때면 한 마리씩 망을 보았어. 영감님이 얼씬만 하면, “녹두 영감 나온다!” 망보는 토끼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어. 그러면 토끼들은 먹던 녹두를 내던지고 와와 뒷산으로 달아났지. 영감님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어. ‘어떻게 하면 녹두를 따 먹지 못하게 할까?’ 영감님은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맞다, 맞다!”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 영감님은 밭 한가운데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웠어. 녹두밭이 잠잠하니까 토끼들이 슬금슬금 녹두를 따 먹으러 내려왔어. 어라! 그런데 웬 이상한 괴물이 죽어 있네. 자세히 보니까, 영감님이야. “이것 봐라! 녹두 영감이 죽었다!” 토끼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영감님 주위를 뱅뱅 돌았어. “불쌍하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자!” 늘 자기들을 야단치고 쫓아내던 영감님이지만, 죽었다고 생각하니 좀 안됐던 모양이야. 토끼들은 영감님을 떠메고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갔지. 토끼들이 호비작호비작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드는데, 갑자기 영감님이 벌떡 일어났어. “이놈들, 몽땅 잡아 버리겠다!” 영감님은 토끼를 잡으려고 팔을 휘휘 내저었어. 토끼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들로 산으로 달아났지. 그런데 한 마리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네. “요놈!” 영감님은 토끼를 묶어 작대기에 대롱대롱 매달고 돌아왔지. 영감님은 토끼를 가마솥에 푹 삶아 먹으려고 했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는데, 이런! 불씨가 없네. 영감님은 솥뚜껑을 닫아 놓고 이웃집에 불씨를 얻으러 갔어. 영감님이 막 사립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우당탕탕 솥뚜껑 구르는 소리가 나. 돌아보니까, 토끼가 마당을 가로질러 울타리 쪽으로 달아나네. “어딜, 어딜, 요놈! 요놈!” 영감님이 간신히 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토끼 뒷다리를 잡았어. 그런데 그때. “어이쿠! 내가 토끼 다리를 잡는다는 게 울타리 다리를 잡았구나.” 녹두 영감은 잡았던 토끼 다리를 놓고 재빨리 울타리 가지를 잡았어. 토끼는 그 틈에 후다닥 달아났지. “내 다리 여기 있지! 내 다리 여기 있지!” 토끼는 껑충껑충, 폴짝폴짝 뛰어 뒷산으로 달아났더래. 쫓고 쫓기면서 어울려 살기.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토끼들을 보면서 좀 얄밉지 않던가요? 쫓아도 쫓아도 자꾸 또 내려와서 영감님이 애써 농사지은 녹두를 자꾸만 훔쳐 먹고 줄행랑을 치다니 말이에요. 이건 개구쟁이를 넘어서서 고약한 심술쟁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꽤나 미운 생각이 들고, 자꾸 당하기만 하는 녹두 영감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이 이야기 속의 토끼들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것은 이야 기를 좀 평면적으로 보는 일이 될 거예요. 저 토끼들은 괜한 심술을 부리고 있다기보다 자기들 천성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 토끼들은 원래 녹두를 좋아하니까 저렇게 자꾸 내려와서 녹두를 먹는 거지요. 토끼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저 하고 싶은 일 하기도 하면서요! 조금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조그마한 토끼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하고요. 영감님이 저 녹두를 혼자 다 먹을 것도 아니라면 토끼들이 녹두를 먹는걸 그러려니 하고 놔둘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해질 텐데 자꾸 성화를 내서 토끼를 쫓으려 하다 보니 마음이 팍팍해지고 몸도 고단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야기를 읽다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가만, 지금 녹두 영감하고 토끼들이 정말로 싸우는 걸까? 함께 놀고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살면서 농사짓는 노인.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뭐, 재미 있는 일 없나’, 이러고 있다가 토끼들이 내려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요놈들, 맛 좀 봐라!” 하고서 작대기를 들고 달려드는 거지요. 토끼들은 깔깔거리면서 내빼고요. 쫓고 쫓기고, 또 내려오고 쫓고 쫓기고... 그렇게 즐겁게 더불어서 어울리고 있다는 말이에요. 나중에 가면 토끼는 토끼대로 영감님은 영감님대로 쓰는 수법이 점점 고단수가 돼요. 쫓고 쫓기는 놀이도 점점 재미있어지지요. 녹두 영감이 눈에 곶감 박고 귀에 가지 박고 코에 대추 박고 죽은 척 누워서 토끼를 기다리잖아요? 그때 영감은 아슬아슬 두근두근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토끼를 하나 잡아다 놓고서 ‘요놈, 맛 좀 봐라!’ 하면서 가마솥에 넣었 을 때도요. 이야기는 녹두 영감이 그 토끼한테 속아서 깜빡 다리를 놓쳤다고 하지만, 사실은 짐짓 속은 척하면서 부러 토끼를 놔준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요놈, 꼭 죽는 줄 알았지? 하하하.’ 이러면서요. 죽다 살아난 토끼는 밭에 다시는 얼씬도 안했을까요? 그럴 리 없지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다시 깡충깡충 뛰어와서 녹두를 따 먹었을 거예요. |
흥부와 놀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엣적 지리산 자락에 흥부 놀부 살았대. 놀부가 형이고, 흥부가 아우였지. 그런데 놀부로 말할 것 같으면, 한마디로 심술쟁이였단 말이야. 애호박에 말뚝 박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똥 누는 애 깔아뭉개니. 마음씨가 고약하다고 동네 소문이 자자하네. 아우 흥부는 전혀 딴판이야. 헐벗은 사람 옷 벗어 주고 못 먹는 사람 밥 퍼다 주고 짐 많은 사람 제 짐마냥 후딱 뺏어 지니 마음씨가 비단이라고 동네 칭찬 입이 마르네. 하지만 돈 한 푼 벌지 못하니 놀부에겐 그저 눈엣가시였지. 하루는 놀부가 흥부를 불러 을러댔어. "네 이놈, 놀고먹는 흥부야! 내 집에서 당장 나가거라!" "아이고, 형님.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간답니까?" "내가 언제까지 네 식구들 치다꺼리를 해야 한단 말이냐? 잔말 말고 썩 꺼져라!" 흥부는 놀부 앞에 엎드려 빌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지. 빈털터리로 쫓겨난 흥부네는 고향 근처 허름한 초가에 겨우 자리를 잡았어. 거적으로 문을 달고, 짚으로 이불 삼아 누우니 머리는 마당으로 쑥, 발목은 뒤뜰로 쑥. 뻥 뚫린 지붕으론 별이 총총 보이네. 흥부네 살림이 요 모양 요 꼴이라도, 자식만은 부자였지 뭐야. 아들만 조르르 스물아홉이었지. 하루는 보다 못한 흥부가 휘적휘적 놀부 집을 찾아갔어. "형님! 불쌍한 자식들 굶어 죽게 생겼으니, 먹다 남은 밥이라도 조금만 주십시오!" 그러자 놀부는 몽둥이를 가져와 흥부를 마구 패지 않겠어? 흥부는 흠씬 두들겨 맞다가 후다닥 안채로 들어갔지. "아이고, 형수님, 밥이나 돈이나 있으면 조금만 주시오!" 그러자 놀부 마누라는 밥주걱을 찾아 들고 냉큼 달려들었겠지. "옜다, 여기 밥! 옜다, 여기 돈!" 밥을 주기는커녕 흥부의 뺨을 철썩철썩 후려치지 뭐야? 흥부 빈손으로 나앚아 꺼이꺼이 울었어.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왔어. 풀포기 하나 없는 흥부네 집에도 제비 한 쌍 날아들어 알 낳고 새끼를 쳤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구렁이 한 마리 쓸쩍 숨어들어 새끼들을 잡아먹네. 새끼 한 마리 겨우 살았나 했더니, 톡 떨어져 다리가 똑. "불쌍하다, 제비야. 네 얼마나 아프겠냐?" 흥부는 북어 껍질로 다리 돌돌 싸매고 명주실로 친친 동여매 주었지. 정성껏 보살폈더니 마침내 훌훌 털고 강남으로 날아갔네. 이듬해 봄이 되자 제비가 돌아왔는데 박 씨 하나를 툭 떨어뜨리지 뭐야. "아이고 반갑다. 다리의 명주실을 보니 내 제비가 맞구나." 흥부는 기꺼이 박 씨를 심었지. 박은 금세 순이 돋아나고 쑥쑥 자라더니 이내 주렁주렁 지붕을 뒤덮었어. 때는 팔월 한가위. 고소한 음식 냄새 골목골목 진동하는데, 흥부네 집에서는 밥 달라, 떡 달라, 가난 타령만 늘어졌네. "박이나 한 통 타서 속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팔아 봅시다!" 흥부는 여문 박을 줄줄이 따다 놓고 마당에 털썩 앉아 박 탈 준비를 마쳤겠지. "슬근슬근 톱질하세, 스르렁스르렁 톱질하세. 이 박을 타거들랑 밥 한 통만 나오너라!" 드디어 박이 탁 갈라졌어. 그런데 박속은 없고 큼지막한 궤짝 두 개가 들어 있지 뭐야? 한 궤에서는 쌀이 계속 쏟아지고, 또 한 궤에서는 금은보화가 계속 쏟아졌지. "아이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다, 좋아!" "영감, 내친김에 또 박을 타 봅시다." "좋소, 마누라. 그렇게 합시다." 흥부 내외, 다시 박을 타는데 이윽고 두 번째 박이 쩍 갈라졌어. 이번에는 온갖 비단이 꾸역꾸역 나오네.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다, 좋아!" 흥부 내외, 한참을 덩실거리다 다시 세 번째 박을 타는데, 박이 펑 터지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나오는 거야. 뚝딱뚝딱, 우당탕퉁탕, 집 짓느라 야단이 났어. 순식간에 대궐 같은 기와집이 떡하니 서 있겠지. 세상에나! 하루아침에 흥부가 부자가 되었구나. 훙부가 부자 되었단 소문은 놀부 귀에도 들어갔어.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놀부라, 물어물어 흥부 집을 찾아갔단 말이야. 흥부는 반갑게 맞이하며 부자가 된 사연을 차근차근 털어놓네. "아니, 그게 정말이냐? 부자 되기 참 쉽구나." 놀부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지. 아, 그런데 놀부 좀 보소. 제비 집 수백 개 만들어 달아 놓고는 하루 종일 고개 죽 빼고 제비만 기다리네. 그러던 어느 날, 지지리 복도 없는 제비 한 쌍이 놀부 집으로 덜컥 날아들었지. "아이고, 제비님. 이제야 오십니까? 어서어서 새끼 까고, 처마에서 뚝 떨어지십시오." 놀부는 밤낮으로 새끼 제비 떨어지라 빌고 또 빌었어. 하지만 당최 떨어져야 말이지. 참다못한 놀부는 혀를 널름널름,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기어이 새끼 제비 한 마리를 꺼내 똑! 다리를 분지르고야 말았네. 그러고는 제비 다리 칭칭 감아 제비 집에 도로 넣어 주었지. 놀부네 제비 겨우 살아나 무사히 강남으로 갔다가, 이듬해 봄이 되어 다시 올아왔겠지. 제비가 박 씨 하나 던져 주고 구름 속으로 사라지니 놀부는 뛸 듯이 기뻐하며 따독따독 심었어. 박 넝쿨 쉼 없이 뻗어 올라가더니 커다란 박이 열렸네, 열렸어. "박이 누렇게 익은 걸 보니 분명 누런 금이 들어 있겠지? 히히히." 놀부는 기대에 가득 차서 박 탈 준비를 마쳤지. "여기여라 톱질하세. 슬근슬근 톱질하세. 스르렁 슬근, 스르렁 슬근." 드디어 박이 탁 갈라졌어. 그런데 누런 금은 없고 웬 거지 노인이 나와 윽박질이지 뭐야? "우리 집 하인이던 네 아비가 내 재산을 몽땅 훔쳐 갔으니, 놀부 네놈이 대신 갚아야겠다." "이 주머니를 냉큼 채워라." 그래 주머니에 엽전을 붓는데 넣어도 넣어도 찰 기미가 안 보이네. 놀부 논이며 밭이며 팔아 바리바리 넣으니 그제야 주머니가 좀 차지. 놀부가 정신 차려 다시 박을 타니 두 번째 박이 쩍 갈라지는데, 상여 한 채와 상여꾼이 나오는 거야. "아까 왔던 네 주인이 죽으면서 여기를 명당이라 했으니 내 이 집을 와지끈 부수고 묏자리로 써야겠다." 그러더니 우르르 쾅쾅 놀부 집을 부수지 곧 빈 터만 남았네. 세상에나! 순식간에 놀부가 쪽박을 쳤구나. 놀부는 약이 바싹 올라 씩씩거렸어. "애들아, 남은 박은 타지 말고 얼른 내다 버려라!" 일꾼들이 박통을 냅다 던져 버리는데, 큰 칼 든 대장군이 튀어나와 눈을 부라리지 않겠어? "네 이놈 놀부야, 네 심술이 동생까지 쫓아냈구나. 오늘 네 목을 부러뜨려 주마." 이러니 놀부 내외는 바닥에 착 엎으려 바들바들 떨었지. 그때, 소식을 들은 흥부가 한달음에 달려왔어. "아이고, 장군님. 우리 형님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놈, 놀부야. 네 동생을 보아 살려 주니 이제부터는 심술보 뚝 떼어 놓고 살아라." 대장군은 펑,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어. 흥부는 놀부를 위로하며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나. 그 뒤로 흥부 놀부는 한평생 정답게 잘 살았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 이야기. 착한 흥부가 될까, 돈 많은 놀부가 될까? "착하지만 가난한 흥부가 될래, 못됐지만 돈 많은 놀부가 될래?"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에요. 여러분의 답은 어느 쪽인가요? 이야기 속에서 흥부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정말로 마음이 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흥부는 착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점잔만 떠는 사람이 아니에요. 헐벗은 사람 옷 벗어 주고, 못 먹는 사람 밥 퍼다 주고, 짐 많은 사람 짐 빼앗아 지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선행이 몸에 밴 행동파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과 더불어 걱정 없이 살던 흥부는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 끼니를 굶는 신세가 됩니다. 잘살다가 못살게 되면 더 힘든 법이지요. 누구라도 흥부의 처지가 되고 보면 남을 원망하면서 주저앉을 만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흥부는 착한 마음을 잃지 않아요. 그래요, 이야기 속에도 그런 모습이 나와 있어요. 어떤 부분인가 하면 바로 등지에서 떨어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는 일이지요. 자기 먹고살기도 바쁜 상황에서 무심히 넘어갈 만도 하건만, 흥부는 불쌍한 제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정성껏 보살펴서 하늘을 날 수 있게 하지요. 흥부가 살아가는 방식을 잘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흥부는 그 제비한테서 자기 모습을 본 것인지도 몰라요.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흥부의 신세와 둥지에서 뚝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제비의 신세, 비슷하지 않나요? 그 제비가 살아나 훨훨 하늘을 날게 되면서, 흥부의 삶의 희망도 살아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야기는 흥부가 탄 박에서 뜻밖의 재물이 나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 이야기이니까 그렇겠지요. 하지만 흥부는 어떻게는 복을 받아 잘살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복을 받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지요! 원전 흥보가나 흥부전을 보면 흥부네 가족이 힘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열고 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답니다. 놀부 이야기를 길게 할 겨를이 없었네요. 누구는 놀부가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자기 욕심만 차리는 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진 사람일수록 나누고 베풀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법이지요. 그게 본래 다 자기 재산이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흥부는 참 놀라워요. 자기를 내쫒은 놀부한테 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서 나눠 주다니 말이지요. 그렇게 나누어 줌으로써 흥부는 더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지 않았겠어요? |
구렁덩덩 신선비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애를 낳았는데 사람이 아니라 구렁이를 낳았어. “에그, 어쩌다가 구렁이가 나왔누!” 할머니는 부엌 한구석에 맷방석을 깔아 주고 삼태기를 씌워 놓았어. 그 앞집에 딸 셋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다니까 궁금해서 보러 왔어. 첫째 딸이 보고는 “아이, 징그러워. 아기가 아니라 구렁이네!” 부지깽이로 구렁이를 콕 찔렀어. 둘째 딸이 보고는 “아이, 징그러워. 아기가 아니라 구렁이네!” 부지깽이로 구렁이를 콕 찔렀어. 셋째 딸이 보고는 “어머나, 구렁덩덩 신선비님이네!” 옷고름으로 구렁이 눈물을 닦아 주었어. 이러구러 세월이 제법 흘러갔거든. 하루는 구렁이가 할머니한테 말했어. “어머니, 어머니, 앞집 처녀한테 장가갈래요.” “에그, 누가 구렁이한테 딸을 준다니?” “그래도 앞집 가서 말해 주세요.” “에그, 누가 구렁이한테 시집온다니?” 하지만 구렁이는 밤새도록 할머니에게 졸라댔지. 할머니가 할 수 없이 앞집 가서 말했지. 앞집 어머니가 딸들을 불렀어. “첫째야, 네가 구렁이한테 시집갈래?” “싫어요, 싫어요, 저는 싫어요.” “둘째야, 네가 구렁이한테 시집갈래?” “싫어요, 싫어요, 저는 싫어요.” “셋째야, 네가 구렁이한테 시집갈래?” “네, 제가 신선비한테 시집갈래요.” 구렁이가 셋째한테 장가를 가는데, 제 집 담장이랑 앞집 담장에 장대를 걸쳐 놓고 구불렁구불렁 건너서 갔어. 그날 밤 구렁이가 각시한테 말했지. “은 대야에 물을 담아 오구려.” 구렁이가 은 대야 물에 몸을 씻으니, 스르르 허물 벗고 훤칠한 선비 됐네! “아유, 우리 멋진 신선비!” “아유, 우리 착한 새색시!” 둘은 얼싸안고 춤을 추었어. 신선비는 각시한테 허물을 주며 몇 번이고 꼭꼭 다짐을 받았어. “내 허물을 아무한테도 내주지 마오.” 신선비는 각시랑 재미나게 살다가, 때가 되어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갔지. 며칠 뒤 언니들이 각시를 찾아왔어. “셋째야, 네 신랑 허물 좀 보여 다오.” “안 돼요, 언니. 그건 안 돼요.” “그깟 게 뭐가 귀하다고 꽁꽁 감춰 두니?” 살짝 보고 돌려줄 테니 어서 보여 다오!” 언니들이 억지로 허물을 빼앗더니 “에그, 징그러워!” 하며 화롯불에 던져 넣었지. 허물 타는 연기는 훨훨 날아가고, 신선비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 각시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구렁덩덩 신선비를 찾아 나섰어. 낡은 치마 잘라 내어 가사 장삼 지어 입고, 헌 저고리 오려 내어 고깔 만들어 쓰고, 밑 터진 바랑 메고 중 모양을 하고서 훠이훠이 멀고 먼 길을 떠났어. 아홉산을 넘고 아홉 강을 건너니, 한 농부가 넓은 돌밭을 일구고 있었지. “농부님, 농부님, 구렁덩덩 신선비 못 보았습니까?” “이 돌밭 다 일구어 주면 알려 주리다.” 각시가 사흘 낮밤 돌밭을 일궈 줬지. “요 앞산을 넘어가면 강이 있는데,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한테 물어보오.” 앞산을 넘어가니 한 아낙이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고 있었지. “아낙네요, 아낙네요, 구렁덩덩 신선비 못 보았습니까?” “흰 빨래 검게 빨고 검은 빨래 희게 빨고, 이 빨래 다 빨아 주면 알려 주리다.” 각시가 사흘 낮밤 빨래를 빨아 줬지. “요 앞강을 건너가면 두엄더미 옆에 나무가 있는데, 거기 앉은 까마귀 떼한테 물어보오.” 앞강을 건너가니 까마귀 떼가 까악까악 배고프다 울고 있었지. “까마귀요, 까마귀요, 구렁덩덩 신선비 못 보았습니까?” “이 두엄 저 두엄 구더기를 잡아서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 주면 알려 주리다.” 각시가 사흘 낮밤 구더기를 잡아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 줬지. “요 앞고개 넘어가면 옹달샘이 있는데, 은 바가지 하나 동동 떠 있을 테니 그걸 타고 가면 볼 수 있으리다.” 앞고개 넘어가니 맑은 옹달샘에 은 바가지 하나 동동 떠 있었지. 각시가 얼른 올라타니, 어느결에 딴 세상이라. 네 귀에 풍경을 단 커다란 기와집에 동자 하나 마당을 쓸고 있네. 각시가 바랑을 내밀며 말했어. “동자님아, 동자님아, 쌀 한 바가지 동냥 주오.” 동자가 쌀 한 바가지 부어 주니 밑 터진 바랑이라 좌르르 쏟아지지. 각시가 한 알 한 알 손으로 줍다 보니 어느새 해가 꼴딱 넘어갔어. “외양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외양간엔 소가 자야 해서 아니 되오.”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마구간엔 말이 자야 해서 아니 되오.” “마루 밑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마루 밑은 비었으니 거기서 자고 가오.” 각시가 마루 밑에 팔 괴고 누웠는데 사내 하나 마당에 나와 달 보며 노래하네. “저 달은 눈 없어도 우리 각시 보련마는 이 몸은 눈 있어도 우리 각시 못 보누나.” 들어 보니 틀림없는 신선비 목소리라. 각시가 노래를 되받아 불렀지. “저 달은 멀어도 신선비님이 보건마는 이 몸은 가까워도 신선비님이 못 보시네.” 신선비가 깜짝 놀라 소리쳤어. “우리 각시 어디 있는 거요? 어서 나오시오!” 그제야 각시가 마루 밑에서 나왔어. 둘은 얼싸안고 춤을 추었지. “아유, 우리 멋진 신선비!” “아유, 우리 착한 새색시!” 각시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어. 신선비가 다 듣고 이렇게 말했지. “이곳에선 허물 없이 살 수 있으나 그곳에선 허물 없이 살 수 없다오.” 둘은 다시 돌아가지 않고 오래도록 허물 없이 잘 살았다지. 구렁이 허물 속의 빛나는 사람. 구렁덩덩 신선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날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 왔지요. 그 이야기 속에는 변신, 동물과의 혼인, 금기와 위반, 이계 여행, 잃어버린 배필 찾기 등 흥미로운 화소들이 가득합니다.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의미도 무궁무진하지요. 관심 깊게 헤아려 볼 수많은 화소가 있지만, 먼저 눈길을 주게 되는 건 바로 구렁이 아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구렁이로 태어난 자식이라니 참 놀랍고도 좀 흉측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 구렁이는 징그러운 허물 속에 신선처럼 빛나는 모습을 숨기고 있었어요. 어머니도 미처 못 알아본 그 참모습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이웃집 셋째 딸이었습니다. 위의 두 언니가 겉모습만 보고 그를 조롱할 적에 셋째 딸은 그의 가치를 꿰뚫어 보고 ‘구렁 덩덩 신선비님’이라고 부르며 눈물을 닦아 주지요. 이면의 참가치와 접속되는 순간입니다. 남들이 지나치고 외면한 참모습을 꿰뚫어 보자 인생이 확 바뀝니다. 구렁덩덩 신선비와의 혼인이 그것이지요. 왜 하필 구렁이를 남편으로 택할까 다들 뜨악했겠지만, 의아심은 곧 찬탄으로 바뀝니다. 셋째 딸의 손길에 의해 허물이 벗겨지면서 구렁덩덩 신선비의 빛나는 참모습이 세상에 환히 드러나게 되지요. 구렁덩덩 신선비의 경우 자기 허물이 태워졌다는 건 작지 않은 일이에요. 그 허물은 신 선비에게 지난 삶의 자취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징표라 할 수 있습니다. 허물을 잘 보관하는 것은 신선비와 아내 사이의 믿음을 가늠하는 시금석이기도 했지요. 그 허물이 태워짐으로써 신선비의 자의식과 정체성이 훼손되고 부부 사이의 신뢰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신선비가 돌아오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저 셋째 딸이 가만히 앉아 울다가 쓰러질 사람이 아니니 걱정 없습니다. 그녀는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일 뿐 아니라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자였어요. 무엇보다 그녀는 ‘움직여서 찾아내는’ 인물이었지요. 신선비를 찾아 길을 나선 셋째 딸은 세상 구석구석을 눈여겨보면서 소통을 합니다. 농부의 돌밭도 일궈 주고 아낙의 빨래도 해주고 까마귀 떼한테 구더기도 잡아 주면서요. 그렇게 밝은 눈을 가지고 거침없이 나아가니 길이 열리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니 셋째 딸이 별세계에 이르러서 구렁덩덩 신선비와 다시 만나 행복을 이루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
견우와 직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 직녀라는 처녀가 살았어. 직녀는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났어. 직녀가 짠 옷감은 유난히 고와서 모두들 그 옷감으로 옷을 해 입고 싶어 했지. 하늘나라에는 견우라는 총각도 살았어. 부지런한 견우는 소 모는 일을 했어. 견우가 모는 소들이 밭을 갈면 유난히 농사가 잘되어서 농부들은 견우를 귀히 여겼지. 어느 봄날 견우와 직녀는 동산에서 마주쳤어. 직녀는 소를 탄 견우를 보고 마음이 설레었어. 그렇게 늠름한 총각은 처음 보았지. 견우도 직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어. 그렇게 사랑스러운 처녀는 처음 보았거든. 견우는 소에서 내려 직녀를 위해 풀피리를 불었어.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단다. 풀피리 소리는 밤낮으로 울려 퍼졌어. 둘의 사랑도 더불어 깊어 갔지. 하늘나라 임금님은 둘을 결혼시켜 주었어. 하늘나라 사람들도 저마다 축하해 주었어. 둘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지냈지. 그러느라 베 짜는 것도 잊고 소 모는 것도 잊고 말았어. 직녀가 베를 짜지 않아 옷감이 모자랐어. 견우가 소를 몰지 않아 농사도 잘 안됐어. 하늘나라 사람들은 하루빨리 두 사람이 전처럼 부지런해지기를 바랐어.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지. 하늘나라 임금님은 견우와 직녀를 불렀어. "어째서 게으름을 피는 게냐? 당장 일을 시작하거라!" 직녀는 다시 베틀에 앉았지만 견우가 눈에 아른거려 도무지 베를 짤 수 없었어. 견우도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지만 직녀가 눈에 아른거려 도무지 소를 몰 수 없었어. 하늘나라 임금님은 결국 벌을 내리기로 했어. "도저히 안 되겠구나. 견우는 은하수 동쪽으로 가 소를 몰고 직녀는 은하수 서쪽으로 가 베를 짜거라! 그리고 일 년에 딱 하루, 칠월 칠일에만 만나거라." 견우와 직녀는 임금님께 용서를 빌었지만 소용없었어.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져야 했지. 은빛 별들이 강을 이루는 은하수 끝으로 끝으로 하염없이 손을 흔들며 헤어진 거야. 직녀는 울먹이며 베를 짜기 시작했어. 씨실 날실 걸어 놓고 짤가닥 짤깍 구슬프게 베만 짰어. 견우도 말없이 발을 갈았어. 이랴이랴 워워 소만 몰았어. 둘은 칠월 칠일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어. 드디어 칠월 칠일이 됐어.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향해 바삐 갔어. 하지만 은하수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 은하수가 너무 넓고 너무 깊어 도저히 건널 수 없었거든. 견우와 직녀는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어. "견우님!" "직녀님!" 두 사람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어. 눈물은 은하수를 넘치게 하더니 하늘 아래 세상에 장대비로 쏟아졌어.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렀는지 하늘 아래 세상은 물난리가 나고 말았지. 물을 피해 하늘로 오르던 까마귀 까치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어. 견우와 직녀의 슬픔이 까마귀 까치의 마음을 움직였지. "우리가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자!" 세상 모든 까마귀, 세상 모든 까치가 한꺼번에 날아올랐어. 은하수에는 긴 다리가 놓였어. 까마귀 까치가 머리를 잇대어 만든 다리였지. 견우와 직녀는 그 다리를 밟고 한달음에 건너가 부둥켜안았어.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어. 이번에는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지. 지금도 해마다 칠월 칠일이 되면 까마귀 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는대. 그러느라고 머리가 다 벗어진다지.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게 된 뒤로 하늘 아래 세상에는 물난리가 나지 않았어. 그럼 가끔 내리는 보슬비는 뭐냐고? 견우와 직녀가 만날 때 흘리는 기쁜 눈물, 헤어질 때 흘리는 서러운 눈물이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하늘의 은하수를 본 적이 있나요? 은하수, 은빛 강물이라는 뜻이에요. 은하수를 본 적이 있나요? 밤하늘을 흐르는 강물이랍니다. 하늘 가운데를 뿌옇게 가로지르는 수많이 별의 물결, 그게 은하수지요. 은하수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반짝이는 두 개의 별을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남다르게 느껴질 거에요. 그건 참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이지요. 저 하늘 한복판에 흐르는 별들의 강물에 놓인 까막까치의 다리라니요! 혹시 그 다리의 이름을 뭐라 하는지 아나요? 바로 '오작교'에요. '까마귀와 까치의 다리'라는 뜻이지요.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에 서로 만난 것도 오작교를 사이에 두고서였답니다. 하늘나라에도 농장이 있어서 소를 몰아 밭을 갈고 또 삼을 심어서 베를 짠다고 해요. 하늘나라에서 밭을 갈고 베를 짜는 청춘 남녀라니 참 멋진 상상입니다. 우리 마음을 저 높은 곳으로 두둥실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그런데 그 하늘나라나 별나라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지도 몰라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별이잖아요. 이 땅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들 또한 견우이고 직녀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나저나 참 슬픈 이야기에요. 멋진 청년과 예쁜 처녀가 제대로 만나서 많이많이 사랑했는데 서로 갈라져야 했다니 말이지요. 그까짓 밭 갈고 베 짜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를 갈라놔서 슬픔에 빠지게 했나 몰라요. 내내 함께 붙어서 서로 바라보고 웃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견우와 직녀의 사연은 먹고사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일을 떠올리게 하여 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 헤어짐은 스스로 불러온 일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좋은 일이라지만, 사랑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자기 할 일은 하면서 사랑은 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어요. 베 짤 사람이 베를 짜지 않고 밭 갈 사람이 밭을 갈지 않는다면, 의사가 사람을 고치지 않고 정치인이 나라 살림을 돌보지 않고 학자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말겠지요. 하늘나라 임금님이 나서서 견우와 직녀에게 벌을 내린 것은 그리한 만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벌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네요. 한 달도 아니고 1년에 한 번이라니,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고 만남은 짧아요. 눈물 흘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두 사람 그렇게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위에서 오래 기다린 사랑을 풀어내는 두 사람. 세상에 이보다 더 애틋한 장면이 또 있을지요! |
감은장아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배고픈 시절 이야기야. 하도 배가 고파서 거지들이 밥을 빌어먹는데 윗마을 남자 거지도 밥 밥 아랫마을 여자 거지도 밥 밥 하다가 가운데 길에서 딱 눈이 맞아 부부가 되었대. 얼마 뒤, 거지 부부는 딸 셋을 줄줄이 낳았어. 그래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는데 큰딸은 은그릇에 죽을 얻어먹어서 은장아기, 둘째 딸은 놋그릇에 죽을 얻어먹어서 놋장아기, 막내딸은 검은 나무 그릇에 죽을 얻어먹어서 감은장아기가 됐더래. 감은장아기가 쑥쑥 자라면서 거지 부부 살림도 쑥쑥 불어났어. 아장아장 걸음 떼니 논밭이 척 생기고 아빠 엄마 말 터지니 집짐승들 착착 늘고 아롱다롱 수놓으니 집안 살림이 점점점 많아져 감은장아기가 열다섯 살 되니 삐걱삐걱 거지 집은 번듯번듯 부잣집 되어 에헴! 에헴! 하루는 아버지가 영 심심해서 딸 셋을 불렀어. "큰딸 은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입니다." 이 말에 아버지 마음이 달덩이처럼 환해졌어. "오오, 역시 내 딸! 기특하다, 기특해!" "둘째 딸 놋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이지요." 이 말에 아버지 마음이 햇덩이처럼 후끈거렸어. "오오, 역시 내 딸! 기특하다, 기특해!" 이제 감은장아기 차례였어. 아버지는 잔뜩 기대하며 물었지. "우리 막내딸 감은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도 있지마는 나는 내 복으로 먹고살아요." 이 말에 아버지 마음이 얼음덩이처럼 차가워졌어. "네 복으로 먹고살아? 어디 썩 나가서 네 복으로 잘 살아 봐라!" 그러니 어째. 감은장아기는 암소 등에다 쌀 몇 줌과 입던 옷가지를 싣고 집을 나갔지. 근데 부모가 막상 감은장아기를 쫓아내고 보니까 좀 미안하고 걱정되거든. 그래 찬밥이라도 먹여 보낸다고 큰딸을 보냈어. 그랬더니 큰딸이 심통 부리며 하는 말이 "막내야, 빨리빨리 안 가고 뭐하니? 엄마 아빠 너 때리러 나온다!" 그렇게 말하고서 노둣돌을 내려서더니 이내 지네로 펑 변해 가지고는 흐느적흐느적. 부모는 한참 기다리다가 둘째 딸을 보냈어. 그랬더니 둘째 딸도 심통 부리며 하는 말이 "막내야, 빨리빨리 안 가고 뭐하니? 엄마 아빠 너 때리러 나온다!" 그렇게 말하고서 노둣돌을 내려서더니 이내 말똥버섯으로 펑 변해 가지고는 뭉기적뭉기적. 그런 줄도 모르고 부모는 딸 셋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대. 감은장아기는 발 가는 대로 타박타박 고개 넘어 고갯길, 산 넘어 산길 넘어 마침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하나 찾았어. 마를 캐다 먹고 사는 마퉁이네 집이었지. "할머니 할머니, 하룻밤만 재워 주세요." "이잉? 우리 집은 덩치 커다란 아들이 셋이라 방이 꽉꽉 차. 빈방도 없고." 감은장아기가 부엌이라도 좋다고 딱 버티니까 할머니도 그만 그러라고 했지. 조금 있으려니 와르릉탕탕, 와르릉콰르릉, 도르릉소르릉. "할머니, 이게 무슨 소리지요?" "잉, 우리 집 삼 형제 마 캐고 오는 소리." 큰마퉁이가 와르릉탕탕 나타나더니 마 대가리 툭 잘라 할머니한테 던지고 살덩이는 혼자서 움막움막. 둘째 마퉁이가 와르릉콰르릉 나타나더니 마 꼬랭이 톡 끊어 할머니한테 던지고 살덩이는 혼자서 움막움막. 막내 마퉁이는 도르릉소르릉 얼굴만 들이밀더니 마 대가리 마 꼬랭이 탁탁 끊어 내어 살덩이를 할머니한테 건네네. 감은장아기는 마 삶는 솥을 빌렸어. 뽀득뽀득, 와랑와랑, 보글보글 쌀밥 지어 들고 가니 마퉁이 식구들은 쌀밥을 난생처음 보는 거야. 할머니는 "잉, 이런 건 옛날에도 안 먹었던 거야." 하며 돌돌돌 돌아누웠어. 큰마퉁이는 "희멀건 벌레를 먹으라고?" 하며 푸르륵 성을 냈어. 둘째 마퉁이는 "징그러워. 안 먹어." 하며 찌리릿 째려봤어. 막내 마퉁이는 "하 이거, 고맙습니다." 하며 무룩무룩 밥을 잘도 떠먹으니 감은장아기 마음에 쏘옥 들었지. 그래 감은장아기는 막내 마퉁이한테 부부가 되자고 했어. 이렇게 신랑 각시로 사는데 하루는 감은장아기가 마 파는 데를 구경하려고 따라나섰어. 가 보니까 큰마퉁이 구덩이엔 물락물락 똥이 수북. 둘째 마퉁이 구덩이엔 우글우글 구렁이가 수북. 막내 마퉁이 구덩이엔 둥글둥글 돌덩어리가 수북한데 흙을 탈탈 털어 내니까 번쩍번쩍 그게 다 금덩어리야. 감은장아기 말대로 금덩어리를 내다 파니까 마퉁이 집은 금세 으리으리한 부자가 됐어. 감은장아기 들어간 마퉁이 집은 이렇게 잘사는데 감은장아기 쫓겨난 부모 집은 폭삭 망하더래. 부모가 딸들 찾아 나섰다가 대문간에 꽝 부딪치니 둘 다 눈이 멀어 폭삭. 앉은 채로 먹고 싸고 울며 가진 것 다 팔게 되니 빈털터리로 폭삭. 그러니 어째. 달랑 막대기 하나 짚고 도로 거지가 됐지. 감은장아기는 진작에 이걸 알고 남편과 의논해서 백 일 동안 거지 잔치를 벌이기로 했어. 방방곡곡 구석구석 떠돌던 거지들이 벌 떼처럼 모여들어 잔칫상을 받아먹었어. 근데 아흔아홉 날이 지나도 부모님은 안 보여. 마지막 날이 되니까 늙은 거지 부부가 더듬더듬 들어오는데 틀림없이 부모님이야. 감은장아기는 종한테 일렀어. "저 거지 부부가 아래쪽에 앉걸랑 위쪽에 상을 놓고 위쪽에 앉걸랑 아래쪽에 상을 놓고 가운데 앉걸랑 양쪽에 상을 놓아라." 이러니 거지 부부가 아무리 옮겨 앉아도 달각달각 그릇 소리만 나지 먹을 차례가 안 와. 다른 거지들은 다 배불리 먹고 떠났는데 말이지. "아이고, 복 없는 놈은 거지 잔치에 와도 상을 못 받아먹는구나." 꺼이꺼이 울며 거지 부부가 나가려는데, 누군가 두 거지를 사랑방으로 데려가서는 오만 가지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맨질맨질한 새 옷까지 갈아입히네. 그러고 하는 말이, "어머님, 아버님, 제가 감은장아기입니다." 거지 부부는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었어. "어, 어, 어디 보자. 진짜 감은장아기냐?" 하며 손을 뻗는데 술잔을 탈랑 떨어뜨리니까 깜깜한 눈이 팔랑 떠졌지. 그 뒤로 감은장아기는 부모님 모시고 잘 살았대. 이렇게 감은장아기는 복을 주렁주렁 달고 살더니 나중에는 복을 다스리는 운명신이 되었다지. 어양어기 상사디야. 이 책 (감은장아기)는 우리나라 신화에서 가져온 이야기입니다. '감은장아기'는 제 주의 무가 (삼공본풀이)의 주인공이지요.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민담으로도 전국적 으로 전해 왔는데 이는 흔히 '내 복에 산다'형 민담이라고 부릅니다. 이야기 내용을 보면, 감은장아기의 아버지가 세 딸을 불러서 문답 놀이를 한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몸짓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너도 나를 사랑해?"이런 식이지요. "네, 저도 부모님 사랑해요. " 이렇게 답하면 그만인 일이에요. 큰 딸 둘째 딸은 그렇게 했는데 감은장아기는 왜 그 말을 못 했나 몰라요.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요!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저 아버지가 딸들한테 물은 건"너는 누구 덕에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이 질문은"네 삶의 주인은 누구냐?" 하는 질문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주었다 하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감은장아기는"아버님 덕, 어머님 덕도 있지마는 나는 내복으로 먹고살아요. " 하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딱 맞는 답이지요. 그런데 저 아버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린 딸을 쫓아냈으니 철없는 부모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자기 품 안에 가둬두려고 하는 부모라고나 할까요? 그리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지요. 자식이 부모한테 의존해서 제 앞가림을 스스로 못하게 되거든요. 은장 아기 놋장 아기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사랑을 차지하려고 동생을 쫓아내는 모습이라니, 철이 없어도 너무 없지요. 그들이 지네가 되고 말똥 버섯이 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부모가 장님이 된 것도 마찬가지예요. 진실을 보지 못하니 눈이 멀게 되는 것이지요. 신기한 일은 감은장아기가 집을 나서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니까 진짜로 길이 훌쩍 열렸다는 사실이에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우니 겁이 날 만도 한데 감은 잘 아기는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새로 만나는 사람이나 새로 겪는 일들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지요. 밝은 눈으로 대상을 보니까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 보물을 알아보게 됩니다. 막내 마퉁이는 그렇게 찾아낸 멋진 짝이었지요. 하찮은 것인 줄 알았던 돌덩어리도 감은 잘 아기 눈으로 다시 보니 금덩이가 되는 것이고요. 모두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멋진 성공을 거둔 감은장아기는 거지가 된 부모님을 찾아서 상봉합니다. 눈물과 감격의 상봉이었지요. 그때 부모님은 멀었던 눈을 번쩍 뜨게 되는데 그건 그들이 비로소 세상의 진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남의 복, 남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의복,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라는 진실 말이에요. |
방귀 시합 | 의사소통 | 유아 | 동래에 유명한 방귀쟁이가 살았어. 마음먹고 방귀 한번 뀌면 천 리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는 동복이 아버지가 바로 그 사람이지. 여기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 구포에 살았어. 방귀 한번 크게 뀌면 구포산이 흔들릴 정도였어. 구만이 아버지가 바로 그 사람이지. 동래 사는 동복이 아버지가 구포 사는 구만이 아버지 소문을 들었어. "누구 방귀가 더 대단한지 대보기나 할까?" 동복이 아버지는 구만이 아버지를 만나려고 허위허위 나섰어. "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가셨는데요." 혼자서 집 보던 구만이가 대답했어. "허허, 그것참." 동복이 아버지는 입맛만 쩝쩝 다시다가 이왕 온 김에 방귀나 자랑할까 싶었지. "얘야, 여기 아궁이 앞에 앉아 봐라." 동복이 아버지는 구만이를 아궁이 앞에 앉혔어. 그러더니 영문 몰라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구만이를 향해 살짜쿵 방귀를 뀌었지. 뿌우우웅! 동복이 아버지 방귀 소리는 마른하늘에 천둥 같았어. 우아아아앙! 구만이는 동복이 아버지 방귀에 밀려서 아궁이를 지나 시커먼 굴뚝 위로 머리만 뿅 나왔지 뭐야. "아이고, 어째요? 이제 나는 어떻게 내려가요?" 구만이가 엉엉 울자 동복이 아버지가 껄껄 웃었어. "염려 마라, 내가 도로 내려 줄 테니." 동복이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방귀를 뀌었어. 뿌우우웅! 그 방귀를 맞은 구만이는 굴뚝 아래로 쑥 내려갔지. 엉금엉금 아궁이를 기어나온 구만이는 정신이 쏙 빠졌어. 동복이 아버지는 구만이를 뒤로한 채 동래로 돌아갔지. 나무를 해서 돌아온 구만이 아버지는 새까매진 구만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 "이게 누구냐? 동글동글 탱글탱글 내 아들 구만이 맞냐?" 구만이는 눈물 찔끔, 콧물 훌쩍이면서 이러저러했노라고 늘어놓았어. 구만이 아버지는 한달음에 동래로 달려갔어. "아버지는 고기 잡으러 가셨는데요." 동복이 대답에 구만이 아버지는 눈썹을 치켜세웠어. "먼 길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지." 구만이 아버지는 동복이네 집에 엉덩이를 쑥 들이밀었어. 뿌우우웅! 그러자 동복이네 집이 쩍 갈라졌어. "으하하하하! 이 정도면 내 방귀의 힘을 알았겠지?" 구만이 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구포로 돌아갔어. 동복이 아버지가 돌아와 이 꼴을 보고 깜짝 놀랐어. "도, 동복아, 이게 무슨 꼴이냐? 우리 집에만 지진이 난 게냐?" 동복이는 여차여차했다고 울며불며 말했어. 동복이 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 "우선 내 집을 고쳐 놓고." 동복이 아버지는 뿌르르릉 뿡 방귀를 뀌어 집을 다시 붙여 놓았어. 그러곤 다시 엉덩이와 똥구멍에 온 힘을 모았지. "내 방귀의 힘을 제대로 보여 주마." 동복이 아버지는 방귀를 뀌어 돌절구를 구포로 날렸어. 뿡구르르르 뿡뿡뿡! 엄청난 소리와 함께 돌절구가 둥실 떠올라 구만이네로 슝 날아갔지. "엥? 저게 뭐냐?" 날아오는 돌절구를 보고 가만있을 구만이 아버지가 아니지. "오냐. 그렇다면 내 힘도 보여 주마." 구만이 아버지는 방귀로 돌절구를 다시 동래로 날렸어. 그러곤 말안장을 꺼내어 방귀로 뿡 날렸지. 뿡뿌루루루루 뿡뿡! 말안장은 동래를 향해 슉슉 날아갔어. 뿡구르르르 뿡뿡뿡! 뿡 뿌루루루루뿡뿡! 하늘에는 하루 종일 돌절구와 말안장이 슝슝슝 날아다녔어. 뿡구르르르 뿡뿡뿡! 그 소리와 냄새로 동래와 구포가 자르르 울렸어.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냄새 때문에 숨을 못 쉬겠네." "소리 때문에 못 살겠네." 마을 사람들은 코를 틀어쥐고 귀를 막았어. 슉슉 날아다니는 말안장과 돌절구를 걱정스레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때였어. 딱! 중간에서 말안장과 돌절구가 딱 부딪친 거야. 말안장과 돌절구는 빙글빙글 돌더니 바다로 떨어졌어. 방귀 소리를 잔뜩 먹은 말안장은 가오리가 되었고. 방귀 냄새를 잔뜩 먹은 절구는 숭어가 되었지. 그래서 지금도 가오리와 숭어는 방귀 소리만 나면 재빨리 숨어 버린다는구나. 히야, 예전 부산 사람들 방귀깨나 뀌었나 봐요! 이런 방귀쟁이가 둘이나 살았다니 말이에요. 구포나 동래가 어딘지는 대략 알지요? 둘 다 부산에 있는 지역 이름이에요. 높은 산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요. 그 산 너머로 말안장과 돌절구를 휙휙 날렸다니 참 대단해요. 다른 것도 아닌 방귀 힘으로 말이지요! 맞아요, 허풍을 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요! 하하하. 이 (방귀 시합) 이야기는 허풍으로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웃고 즐기면 되는 이야기 지요. '이거 정말 있었던 일이야?" "방귀 힘이 정말 그렇게 셌단 말이야?" 이렇게 물으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 되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혹시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몰라요. 그 러면 어떻게 답하면 될까요? "에이, 다 뻥이야!" 이러면 될까요? 아니, 그보다는 "그럼, 정말로 그랬고말고!" 이게 더 멋진 대답이 될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니고, 호랑이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던 머나먼 옛날이야기 나라에서 말이야. 하하하." 이렇게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사람들은 방귀 뀌는 일을 좀 더럽고 부끄럽게 생각하지요. 소리도 소리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니 반갑지 않은 일이 맞아요. 하지만 이 (방귀 시합) 이야기는, 이런 방귀조차도 큰 재주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는 법이니 방귀라고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겠지요. 그것이 자기가 가진 특별한 개성이라면 억눌러 감추기보다 당당히 드러내는게 차라리 더 나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다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줄 수 있게 되는 법이지요. 한번 방귀쟁이로 딱 인정을 받고 나면, 방귀를 뀌어도 "에이, 또 방 귀야? 하하하." 이렇게 웃어넘기게 됩니다. 그건 그렇고, 영문도 모른 채 방귀에 날려서 하늘을 날아다니던 말안장과 돌절구가 딱 부딪친 뒤 바다에 떨어져서 가오리가 되고 숭어가 됐다는 거, 좀 웃기지 않나요? 생김새가 서로 딱 닮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글쎄요, 가오리나 숭어한테 방귀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나서 이런 유래담이 생긴 걸까요? 다음에 가오리나 숭어를 보면 한번 슬쩍 냄새를 맡아 봐야겠어요! 일부러 해설을 좀 재미있게 써 봤어요. 글도 늘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이야기를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한 가지 시선으로 보기보다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여러 방식으로 보면 그 재미가 배가될 수 있지요. 아이들하고도 이렇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될 거예요. |
요술 항아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고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았어. 평생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고 살다가,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돈을 모아 겨우 손바닥만 한 밭 한 뙈기를 마련했거든. 그래도 자기 땅이니 얼마나 좋아. 날마다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지. "이 밭을 일궈 풍년 들면 또 한 뙈기를 사야지. 그 밭을 일궈 풍년 들면 또 한 뙈기를 사고. 그러다 보면 나도 부자가 되겠지." 그날도 이렇게 흥얼거리며 괭이질을 하는데, 쨍그랑! 괭이 끝에 뭐가 걸리지 뭐야. 돌덩이라도 있나?" 하고 땅을 파 보니, 커다랗고 찌그러진 항아리가 하나 나오는 거라. '이걸 어따 쓸까?' 고민하다가 '오줌독으로 쓰자!' 괭이를 꽂아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거든. 그런데, 어라? 지게를 내려놓고 보니 항아리 속에 괭이가 두 자루네. '이상하다. 분명 한 자루만 넣었는데....' "히야! 이게 보물이네, 보물!" 농부 입이 아주 귀에 걸렸어. 그때부터 다 먹고 다 입고 다 쓰고 살았지. 금세 동네방네 소문이 돌았어. 농부한테 밭 한 뙈기 판 부자도 소문을 들었지. '아이고, 밭만 안 팔았으면 보물은 내 건데!' 며칠 배를 앓다가 농부한테 달려가 항아리 내놓으라 했어. "난 밭만 팔았지 항아린 안 팔았거든!" 농부가 기가 막혀, "밭이 내 거면 항아리도 내 거지!" "옷을 샀는데 주머니에 돈이 들었으면 옷 판 사람한테 돌려줘야 할 거 아냐!" "암탉을 샀는데 알을 낳으면 그것도 돌려줘야 해?"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 고을 원님한테 가기로 했어. "원님! 원님이 심판을 내려 주시우." 한데, 원님이 얘길 듣고 보니 군침이 슬슬 돌더란 말이야. '저걸 내가 차지하면 엄청난 부자가 되겠지?' 속마음이 점점 시커메지는 거라. 흠흠 목청을 다듬어 판결을 내렸어. “그렇게 귀한 보물은 백성들이 갖는 게 아니다. 내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나라님께 바칠 테니 그리 알아라.” 농부도 부자도 기가 막혔지만, 나라님께 바친다니 어쩔 수 있나. 닭 쫓던 개 꼴이 되어 털레털레 돌아갔지. 그 밤부터 원님인지 원놈인지 아주 신이 났어.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는 밤새는 줄 모르고 항아리 놀이를 하는 거라. "비단 한 필 넣으면 비단이 두 필!" "금송아지 한 개 넣으면 금송아지가 두 개!" "엽전 한 꾸러미 넣으면 엽전이 두 꾸러미!" "으흐흐흐! 자꾸자꾸 나오는구나. 신 난다, 신 나!" 그런데 원님한테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셨거든. 이 영감님이 가만 보니, 아들이 어느 날부터 밤만 되면 방문을 닫아걸고 낄낄거리더란 말이야. '틀림없이 꿀단지를 숨겨 두고 혼자 냠냠 먹는 것이렷다!' 하루는 원님이 나간 틈을 타 방으로 들어가 봤어. 과연 아주 커다란 꿀단지가 떡하니 놓였거든. "에라, 이 몹쓸 놈! 이렇게 큰 꿀단지를 저 혼자서!" 영감님이 발을 한껏 돋워 항아리 속을 들여다봤지. 컴컴하니 잘 안 보여서 고개를 더 쑥 디밀었는데, 어이쿠! 그만 항아리 속으로 쏙 빠져 버리고 말았네. 그런데 빠지고 보니 텅 빈 항아리지 뭐야. '이 녀석이 그새 다 먹어 버렸나?' 그만 나가려는데 주둥이가 높아 나갈 수가 없네. "아이고, 얘야! 나 좀 꺼내 줘라!"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지. 원님이 깜짝 놀라 달려왔어. "아이고, 아버지! 거긴 왜 들어가셨어요?" "까닭은 알아 무엇하냐! 얼른 꺼내기나 해라!" 원님이 부랴부랴 팔을 뻗어서 "꼭 잡으셔요, 아버지! 하나, 두울, 셋!" 아버지를 쑥 뽑아 올렸거든. "어이쿠, 살았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이야. 항아리 속에서 또 고래고래 부르는 소리가 나네. "아이고, 얘야! 나 좀 꺼내 줘라!" "엥? 분명히 꺼내 드렸는데 항아리 속에 아버지가 또 계시네!" 또 쑥 뽑아내니, 또 고래고래! 또 쑥 뽑아내니, 또 고래고래! 또 쑥 뽑아내니, 또 고래고래! 쑥, 고래고래! 쑥, 고래고래! 쑥쑥, 고래고래! 종일 이러다 보니 이런, 세상에! 꺼내 놓은 아버지가 삼백예순네 명일세. 원님은 지쳐 쓰러졌는데 아버지들은 티격태격. "내가 진짜야!", "네가 가짜지!" 항아리 속에서는 아직도 고래고래. "아이고, 얘야! 나 좀 꺼내 줘라!" 원님이 하도 지긋지긋해서, "아이고, 제발 이제 그만들 하세요!" 목침을 들어 항아리를 내리쳐 버렸어. 와그장창! 그제야 고래고래 소리가 잦아들고, 아버지는 꼭 삼백예순다섯 명이 되었지. 원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가 꽉꽉 막히는 거라. '항아리는 박살 났는데 이 많은 아버지를 무슨 수로 봉양한담?’'그러거나 말거나 영감님들은 한목소리로, "얘야, 티격태격했더니 시장하구나. 어서 밥 좀 다오." 그 뒤로 원님은 삼백예순다섯이나 되는 아버지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 날마다 먹고 입고 쓰는 뒤를 대느라 허리가 휘어 꼬부라졌다나 어쨌다나. 무엇이든 하나를 넣으면 두 개가 나오는 항아리. 이런 요술 항아리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지요?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뭐든지 넣기만 하면 두 배가 되니 정말로 대단한 보물이에요. 만약 아이들한테 "너한테 이런 항아리가 있다면 무얼 먼저 넣겠니?"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런데 이런 보물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남들이 안 가진 걸 가지고 있으니 샘을 내는 사람이 생기고 그것을 어떻게든 빼앗으려는 사람이 생겨요. 안 빼앗기고 지키려다 보니 피곤하고 갑갑해지기도 하고, 붉으락 푸르락 신경전을 벌이게 도 됩니다. 그러다가 원님한테 항아리를 뺏겨 버렸으니 항아리를 얻은 게 정말 잘된 일 이었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예요. 보물이 있다가 없어졌으니 더 허전할지도 모르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항아리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보면 저 농부가 항아리에서 이것저것 꺼 내 쓰면서 남들한테 좀 뻐긴 것 같기도 해요. 귀한 물건인 만큼 오히려 조심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착착 꺼내 썼다면, 또 항아리에서 나온 걸 혼자만 챙기지 않고 사람들이랑 잘 나누었다면 탈이 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물론 하나의 상상이에요. 그나저나 항아리를 빼앗아 간 원님이 된통 당하는 모습은 아주 우습고 통쾌합니다. 남의 보물을 억지로 뺏었다가 곤욕을 치르게 됐으니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지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입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떻든 원님의 이기심 때문에 귀한 항아리까지 박살 나고 말았으니 참 아깝고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 항아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요. 온 세상 굶주리는 아이들을 다 입히고 먹일 수 있을 테니까요! 옛날이야기 속의 보물 가운데 ‘화수분’이라는 게 있어요. 뭐든 넣으면 나오고 또 나 오고 한없이 나온다는 보물이지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항아리도 일종의 화수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든 넣기만 하면 두 배가 나오니 한없이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요. 그런데 화수분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어요 필요한 만큼 써야 한다는 거지요. 괜한 욕심으로 지나치게 많은 걸 뽑아내다 보면 어김없이 사달이 납니다. 이 이야기 속의 원님 이 꼭 그런 지경이 된 셈이에요. |
두꺼비와 토끼와 호랑이의 떡 먹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 깊은 산속에 두꺼비, 토끼, 호랑이가 살았어. 때는 추운 겨울이었지. 셋은 며칠 동안 굶어서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어. 셋은 떡을 해 먹기로 하고 마을로 내려가 이것저것 훔쳤어. "이만하면 떡을 해 먹을 수 있을 거야!" 셋은 숲으로 돌아갔어. 시루에 쌀가루를 안치고 솥에 올렸어. "김이 솔솔 오르면 맛있는 떡이 될 테지!" 바위 사이에 솥을 걸고 두꺼비가 활활 불을 땠지. 셋은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떡이 익기를 기다렸어. '나 혼자 다 먹어도 모자랄 텐데.' 호랑이는 생각했어. '어떻게든 내가 다 먹어야지!' "셋 중 술을 가장 못 마시는 쪽이 떡을 혼자 다 먹는 게 어때?" 호랑이는 시침을 뚝 떼고 말을 꺼냈어. 두꺼비와 토끼는 호랑이의 두툼한 발을 보았어. 둘은 떡 맛도 못 보고 죽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지. "그래, 그게 좋아." "나도 좋아." 둘은 마지못해 대꾸했어. "나는 밀밭에만 가도 취해." 호랑이가 먼저 말했어. "난 술 취한 사람 얼굴만 봐도 취하는걸." 토끼가 말했지. 둘의 말에 두꺼비는 몸을 앞뒤로 옆으로 마구 흔들었어. "왜 갑자기 몸을 흔드는 거니?" 호랑이와 토끼가 물었어. "너희 술, 술 소리에 벌써 취해 버렸어." 말할 것 없이 두꺼비가 이긴 거지. "어, 잠깐만! 다른 내기를 하는 게 좋겠어." 호랑이는 이어서 말했어. "셋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쪽이 떡을 혼자 다 먹는 게 어때?" 두꺼비와 토끼는 호랑이의 삐죽 나온 이빨을 보았어. 둘은 떡 맛도 못 보고 죽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지. "나는 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 하늘에 별을 달았지." 호랑이가 먼저 말했어. "아, 그때 네가 딛고 올라선 사다리는 내가 심은 나무로 만든 거란다." 토끼도 지지 않았어. 둘의 말에 두꺼비는 눈물을 줄줄 흘렸어. "떡을 못 먹게 되어서 우는 거로구나." 둘은 말했겠지. "아니,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죽은 아들이 생각나 우는 거라네. 토끼가 사다리 만들 때 쓴 망치 자루는 내 아들이 심은 나무로 만들었거든." 두꺼비가 또 이겼어. "으흠, 안 되겠어! 다른 내기 해." 호랑이는 눈을 부리부리 뜨며 말했어. "셋 중 압록강을 먼저 헤엄쳐 건너온 쪽이 떡을 혼자 다 먹는 거야. 어때?" 두꺼비와 토끼는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눈이 갔어. 둘은 떡 맛도 못 보고 죽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지. 호랑이와 토끼가 강물 속으로 뛰어들자, 두꺼비는 호랑이 꼬리를 꽉 붙잡고 매달렸어. 앞선 호랑이가 있는 힘을 다할 때 두꺼비는 부웅 튕겨 올랐어. 와우! 두꺼비는 몸을 날려 강둑에 사뿐히 올라앉았어. 강둑에는 마침 썩은 짚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지. "아이고, 이제야 오다니. 강을 헤엄쳐 와서 너희를 기다리며 삼아 신은 짚신이 이 지경이 되었어." 두꺼비는 제 발의 썩은 짚신을 가리키며 눈을 꿈적였어. 두꺼비가 둘을 보기 좋게 이긴 거야. "떡은 이제 내 거야!" 두꺼비는 뽐내며 말했어. "으흐흥, 잠깐만 기다려!" 호랑이는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어. "떡시루를 산꼭대기에서 굴려 먼저 쫓아가 잡는 쪽이 떡을 다 먹는 거야!" 그러고는 떡시루를 산비탈 아래로 굴려 보냈어. 데굴데굴 데구르르. 호랑이와 토끼도 힘껏 달려 내려갔어. '이제야말로 떡은 내 차지야!' 둘은 생각했지. 두꺼비는 엉금엉금 산비탈을 기어 내려갔어. 데굴데굴 굴러가던 떡시루가 나무 밑둥치에 턱 걸렸어. '옳다구나!' 두꺼비는 떡시루의 떡을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어. 먹고 먹고 또 먹었는데도 떡이 남았어. '아까워서 어쩌지?' 두꺼비는 남은 떡을 등어리에 지질지질 붙여 놓았어. 배고플 때 먹으려고 말이야. 두꺼비가 산비탈을 기어 내려가자, 멀리서 둘이 머리를 모으고 앉아 있는 게 보였어. "너희, 뭐 하는 거니?" 두꺼비는 눈을 꿈적거리며 물었어. "혹시 떡시루 굴러 내려오는 거 못 보았니?" "그거? 나무 밑둥치에 걸려 있어서 내가 다 먹었지." "참, 배고프면 이거라도 떼어먹어." 두꺼비는 둘 앞에 떡을 눌러 붙인 등을 돌려댔어. 등에는 마른 떡이 두툴두툴 붙어 있었어. 그때부터 두꺼비 등은 두툴두툴해졌어.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떡을 못 먹은 호랑이는 분을 참지 못해 펄펄 뛰다가 사나워진 거고 말이야. 토끼는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다녀 방정맞아진 거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호랑이와 토끼. 세 동물의 지혜 겨루기를 내용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호랑이와 토끼와 두꺼비는 서로 말 겨루기를 해서 이기는 쪽이 맛있는 떡을 먹기로 하지요.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이야기 시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흥미진진한 시합이지요. 이런 시합은 예상과 다른 진행이 이루어지는 게 이야기다운 묘미가 됩니다. 이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힘센 호랑이와 재빠른 토끼가 유리할 것 같은데, 막상 시합에서 이긴 건 작고 둔해 보이는 두꺼비였어요. 약자가 강자를 보기 좋게 이기는 모습은 언제나 유쾌한 즐거움을 전해 줍니다. 그런데 호랑이하고 토끼는 왜 시합에서 두꺼비한테 진 걸까요? 두꺼비가 그들보다 지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호랑이하고 토끼가 스스로 제 꾀에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욕심이 앞서서 설치다가 약점을 보여서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지요. 먼저 호랑이를 볼까요? 맨 먼저 나서서 내기를 하자고 한 건 바로 호랑이였어요. 자기 힘을 믿고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일이었지요. 문제가 뭐냐면 앞뒤 생각도 없이 먼저 나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약점이 드러나지요. 매번 시합마다 다 그래요. 아마 열 번 백 번 시합을 해도 다 졌을 거예요. 가만 보면 토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랑이의 위세에 눌려서 내기에 응한 것 같지만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설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호랑이가 움직이고 나면 곧바로 나서서 방정맞게 행동하잖아요! 이 또한 제 욕심이 앞서고 자신감이 지나친 데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토끼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약점을 보이게 되지요. 두꺼비는 호랑이나 토끼하고는 달랐어요. 먼저 나서지 않고 호랑이와 토끼가 하는 말과 행동을 지켜보지요. 그러면서 해법을 찾아요. 앞에서 둘이 먼저 수를 드러내 보였으니, 그것을 이길 방법을 찾아내기가 쉽지요. 두꺼비가 지혜 다툼에서 매번 이기는 것은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두꺼비가 혼자 떡을 다 먹어 치우는 건 욕심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싶겠지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또한 욕심에 휩싸여서 성급하게 움직였던 호랑이와 토끼가 제 꾀에 당한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 준 것이라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함께 나눠 먹고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자기가 한 행동에 걸맞은 따끔한 맛을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야 자기 허물을 깨닫고 고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저 호랑이와 토끼는 아직도 자기들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고 있으니 고생을 좀 더 해 봐야 할 것 같네요. |
주먹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날에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아이 없이 살고 있었어. 부부는 옆집에서 아기 우는 소리만 나도 무척 부러웠어. 아들도 상관없고 딸도 상관없고, 작아도 괜찮고 못나도 괜찮으니, 제발 아이 하나만 있었으면 했어. 부처님께도 빌고, 삼신할머니께도 빌고, 돌멩이한테도 빌고, 뭐든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빌었어. 기도 덕분인지 어느 날 아주머니 배가 불러오더니 아이를 쏙 낳았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참 작아. 어른 주먹만 한 게 나이를 먹어도 태어날 때 고대로야. 그래서 이름도 주먹이라고 지었지. 주먹이는 작아도 남들 하는 건 다 했어. 공부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오줌도 싸고, 말썽도 피웠지. 하루는 주먹이가 아버지를 따라 낚시터에 가게 되었어. 강기슭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기가 잡혀야 말이지. 주먹이는 하품도 나고 발바닥도 근질거려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폴짝 뛰어나왔어. 주먹이는 들꽃이랑 들풀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한테서 점점 멀어지는 것도 몰랐어. 그러다 우적우적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집채만 한 누렁소가 코앞에 있네. “주먹이 살려!” 주먹이는 헐레벌떡 도망쳤지만 누렁소 입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어. 주먹이는 누렁소 배 속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해롱해롱 비틀비틀 죽을 지경이야. 그래도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누렁소 배 속을 발로 꽝꽝 차고 마구 꼬집었어. 누렁소는 바늘이라도 삼킨 듯 배 속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어. 그래서 용을 써서 똥을 뿌지직 쌌지. 덕분에 주먹이도 밖으로 나왔어. 소똥을 한가득 뒤집어쓴 채 말이야. “휴, 살았다!” 주먹이가 소똥을 털어 내는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져. 가만 보니 커다란 솔개가 주먹이를 향해 날아오는 거야. “주먹이 살려!” 주먹이는 헐레벌떡 도망쳤지만, 우악스러운 솔개 발톱에 꽉 붙들리고 말았어. 솔개가 주먹이를 움키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데 온 세상이 주먹이 발 아래야. 저 멀리 아버지도 보이고, 어머니도 보이고, 집도 보여. 주먹이는 덜덜덜 떨면서도 신이 났지. 그때 황조롱이가 솔개에게 덤벼들었어. 먹잇감 주먹이가 탐이 났나 봐. 푸드덕푸드덕 툭툭, 투덕투덕 싸우는 통에 솔개가 주먹이를 놓쳤지 뭐야. 주먹이는 높고 높은 하늘에서 슈웅 퐁당! 다행히 강물에 떨어져 주먹이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어. 그런데 이를 어째! 커다란 쏘가리가 헤엄쳐 오잖아. “주먹이 살려!” 주먹이는 안간힘을 다해 헤엄쳤지만 쏘가리 주둥이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어. 쏘가리 배 속은 누렁소 배 속보다 훨씬 좁았어. 주먹이는 캑캑 숨이 막혔어. 꼬집고, 차고, 몸부림쳐도 나갈 길이 있어야 말이지.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니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 “아부지! 어무니!” 아버지는 낚싯대 앞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화들짝 놀랐어. “분명히 주먹이가 부르는 것 같았는데.” 마침 낚싯줄이 팽팽해서 보니 커다란 쏘가리가 걸렸네. 아버지가 쏘가리를 꺼내고 보니 주둥이 저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아부지! 어무니!” 조심조심 쏘가리 배를 갈랐는데 세상에, 주먹이가 나오네! 주먹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배꼽을 잡고 웃었어.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주먹이 이야기도 들려주고 쏘가리 매운탕도 대접했어. 나도 가서 참 맛나게 먹고 왔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세상이라는 크나큰 놀이터. 아버지 주머니에서 뛰쳐나온 주먹이한테 세상은 참 크고 험한 곳이었어요. 누렁소나 솔개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개미나 거미 같은 것도 꽤 크게 보였을 테고 쥐나 고양이 같은 것은 호랑이처럼 느껴졌을 테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정말로 겁이 나서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아요.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주머니 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앉아 있으면 무슨 재미겠어요! 넓은 세상을 맘껏 쏘다니며 이런저런 신기한 일들을 맘껏 겪어 보는 게 더 좋지요. 누렁소 배 속에 들어가고, 솔개 발에 매달려 날아가고, 또 쏘가리 배 속에 들어가고. 생각하면 겁나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신나는 모험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훌쩍 날아가면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 짜릿하잖아요? 다른 사람은 해 볼 수 없는 혼자만의 일이기 때문에 주먹이의 모험은 더 놀랍고 즐거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먹이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주먹이인지도 모릅니다. 참 크고도 넓은 게 이 세상이잖아요. 하늘이든 땅이든 참으로 아득해서 끝이 없어요.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주먹은 커녕 개미보다 작아 보일 거예요. 주먹이가 누렁소 배 속에 들어가고 솔개 발톱에 낚였다 하지만, 우리들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우리를 통째로 삼키거나 낚아채려고 하는 무서운 함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칫하면 꿀떡 먹히기 십상이지요. 그러니 우리 들도 일종의 ‘주먹이’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중요한 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세상이 크고 무섭다고 숨고 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마치 주먹이가 아버지 주머니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지요. 또 주머니 속이니까 꽤나 어둡고 답답할 거예요. 맞아요, 주머니 속이라고 꼭 안전한 것도 아니지요. 그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보면 오히려 큰 병이 날지도 몰라요. 누가 주머니를 짓누르거나 막아 버리면 그 속에서 찌그러지거나 질식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저 주먹이처럼 밖으로 훌쩍 나와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몸으로 넓은 세상을 헤집고 다닌다는 건 무서울 수도 있지만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사는 게 뭐 별거 있나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의 크나큰 놀이터라 할 수 있습니다. 누렁소나 쏘가리한테 삼켜진들 뭐 별것 있나요? 빠져나오면 그만이지요. 빠져나와서 그 모험담을 이야기하면 다들 신이 나서 손뼉을 쳐줄걸요. 주먹이한테 그랬던 것처럼요! |
토끼의 간 | 의사소통 | 유아 | 남해 바다 용왕이 시름시름 앓았어. 오랫동안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지. 거북 승상, 도미 승지, 민어 판서, 홍어 현감, 자라 주부, 청어 병사, 신하들이 모두 모여 걱정걱정하더란다. 하루는 먼먼 바다 사는 의원이 찾아와서 용왕의 맥을 턱, 짚어 보고 말하더래. "용왕님의 병에는 오직 하나, 땅에 사는 토끼 간이 약이라오." 병든 용왕이 물었지. "누가 가서 토끼 간을 구해 올꼬?" 줄줄이 늘어선 신하들, 흘금흘금 눈치 보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더래. 신하들 꼴을 가만 보자니까 자라, 참을 수가 없었지. 방패 같은 등딱지 지고 앙금앙금 기어 나가 짧은 목 길게 빼고 아뢰었단다. "제가 가겠사오니 명령만 내리소서! 다만 토끼 얼굴을 모르오니 그림 한 장 그려 주시면 꼭 잡아 바치오리다." 그 말 듣고 솜씨 좋은 화가가 당장 토끼를 그려 주는데, 두 귀가 쫑긋, 두 눈이 동글, 앞다리가 짤룩, 뒷다리는 길쭉하더란다. 자라는 토끼 그림 목덜미에 쑥 집어넣고 끝도 없이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쉬지 않고 헤엄을 쳤지. 마침내 땅에 도착한 자라, 해 지도록 온 숲을 두루두루 헤매는데 다람쥐 너구리가 쪼르르르, 멧돼지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수풀 사이로 온갖 새들 낭창낭창 날아다니더래. 그러다가 어이쿠나! 수풀 새로 까불까불 뛰어오는 한 짐승을 보았지. "가만가만, 저것 봐라? 두 귀가 쫑긋, 두 눈이 동글, 앞다리가 짤룩, 뒷다리는 길쭉, 그림이랑 똑같네! 토끼가 틀림없어!" 자라는 허둥지둥 토끼를 불러 세웠지. "혹시 지혜롭기로 소문난 토 선생 아니십니까?" "지혜로운 토 선생?" "예. 용왕께서 소문을 듣고 벼슬자리에 금은보화 쌓아 두고 모셔 오라시는데." 자라는 슬쩍 그림을 내밀었어. 토끼도 흘깃 그림을 보고는 거드름을 피우더래. "그림을 보니 내가 틀림없네. 그런데 자네는 누구인가? 둥글넓적한 게 꼭 솥뚜껑처럼 생겼군." 자라는 속으로 이놈 봐라, 웃으며 용궁 자랑을 늘어놓았지. 토끼는 금세 혹해서 앞발 뒷발 살짝, 바닷물에 쏘옥 넣어 보다가, "에그에그, 차가워! 저 깊은 물에 어찌 들어간담? 숨쉬기도 어려울 텐데."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더래. 그러니 자라가 가만있어? "두 눈 감고 제 등에 올라타면 금방이지요. 물속에 가면 다 숨 쉬는 방법이 있고요." 했단다. 용궁 자랑이 어찌나 달짝지근하던지 토끼는 덥석 자라 등에 올라탔지. 자라는 얼씨구나, 토끼를 업고는 검푸른 바다를 한없이 헤엄쳐 갔어. 그러자 어느 순간 바닷속 깊은 곳에 산호 진주로 꾸민 화려한 용궁이 보이더래. 신이 난 토끼는, "이랴, 이랴! 어서 가자! 황금 보석 빛나는 저 용궁으로!" 궁둥이를 촐싹거리며 야단법석을 떨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글쎄, 용궁 앞에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토끼를 꽁꽁 묶는 게 아니겠어? "이놈! 네가 땅에 사는 토끼냐?" "아, 아니요! 나, 난, 송아지요.아니, 망아지요. 아니, 멍멍개요!" 화들짝 놀란 토끼는 둘러대느라 진땀을 뺐지. 그러자 곁에 있던 자라가 호통을 치더란다. "토끼, 이놈! 뉘 앞에서 거짓말이냐?" 꽁꽁 묶인 토끼는 용왕 앞으로 질질 끌려갔지, 뭐. 토끼를 보자 병든 용왕은 매우 기뻐하더란다. "어서 오너라, 토끼야. 내가 많이 기다렸다. 얼른 네 간을 꺼내 다오! 네 간을 먹어야만 내 병이 낫는단다." 토끼는 그만 헉,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 용왕은 아랑곳없이 소리치더래. "여봐라! 뭣들 하느냐? 당장 토끼 배를 갈라 간을 꺼내지 않고!" 이제야 토끼, 깜박 속은 것을 알았지. 그런데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얼른 꾀를 냈지. "아이고, 어쩌면 좋습니까? 이런 줄도 모르고 간을 두고 왔으니 말입니다." "네 이놈, 당치 않구나! 간을 두고 오다니, 누가 속을 줄 아느냐?"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모두들 제 간이 좋은 건 알아서 어찌나 탐을 내는지, 바위틈에 꼭꼭 숨겨 두고 다닌 지가 오래됐습니다요." "정 못 믿겠다면 제 배를 갈라 보시지요." 토끼는 떡하니 누워 배짱을 부렸어. 용왕이 가만 생각해 보니,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큰일이거든. "그렇다면 토끼야! 다시 가서 숨겨 놓은 네 간을 가져오너라." 토끼는 자라 등을 타고 깊고 깊은 바다를 빠져나와 다시 땅으로 왔지. 땅 냄새를 맡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실룩실룩 깡충깡충, 얼쑤얼쑤 충깡충깡 춤을 추었어. "토끼야! 빨리 가서 간을 가져오너라. 도대체 뭐하는 게냐?" 참다못한 자라 재촉을 하더래. 그러니까 덩실덩실 춤을 추던 토끼, "네 이놈, 자라야! 덕분에 용궁 구경 한번 잘했다. 세상에 간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놈도 있다더냐? 내 간을 가져가고 싶거든 나부터 잡아 보려무나!" 매섭게 쏘아붙이고는 숲으로 숲으로 뛰어가 버리더래. 깜짝 놀란 자라, 짧은 목 길게 빼고 "토 선생! 토 선생!" 소리쳐 불러 보아도 소용이 없더란다. |
여우 누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간날에 어떤 부잣집이 있었어. 이 집 부부는 아들을 셋이나 두었는데 그러고도 딸을 더 얻겠다고 만날 삼신할머니한테 빌었지.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글쎄 여우라도 좋으니 그저 딸 하나만 낳게 해 달라지 뭐야. 그래서 그랬는지 그해 정말 아이가 생겨 딸을 하나 낳았는데 무럭무럭 쉬 잘 자라고 또 그렇게 잘생겼어. 게다가 하는 짓마다 어찌나 예쁜지 아유, 그 부모가 홀딱 반할 수밖에 없지. 그 딸이 몇 살 안 되었을 때야. 웬일인지 이 집 말이랑 소가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한 마리 죽고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또 한 마리 죽고. 이러니 두고만 볼 수가 있나? 아버지는 맏이를 시켜 밤새 소와 말을 지키게 했어. 그런데 한밤중이 되니 스르르 잠이 오지. 맏이는 고만 쿨쿨 잠들어 아무것도 못 보았어. 간밤에도 소 한 마리 꼴까당 넘어져 죽었는데 말이야. 다음 날 밤 둘째도 고만 까무룩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못 보고 말았어. 그 밤에도 말 한 마리 탁 엎어져 죽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아버지가 셋째한테 소와 말을 지키라 했어. 셋째는 잠이 올까 봐 볶은 콩을 오도독오도독 깨물어 먹었어. 한밤중이 되자 그 어린 누이란 게 방에서 스으윽 나오더니 외양간에 가서 소 똥구멍으로 손을 쑥! 넣더니 간을 쏙 빼서 꿀꺽 먹지 뭐야. 이러니 소는 이제 탁 엎어지지. 셋째는 아침에 울며불며 말했어. "아버지, 우리 집 큰일 났어요. 저 애가 간을 빼서 먹으니까, 소가 푹 꺼꾸러졌어요." 이러니까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지 뭐야. "요놈의 자식이 거짓말을 한다. 누이를 잡으려면 그냥 잡지. 이게 얼마나 귀한 딸이라고?" 하면서 고만 셋째 아들만 집에서 쫓아냈어. 쫓겨난 셋째는 하염없이 걷다가 서낭당 고개를 넘었어. 그런데 깊은 산골 기와집 앞에서 웬 처녀가 그네를 타. 마침 해는 지지 배는 고프지 살 수가 없거든. "미안하지만 하룻밤 재워 주고 밥 좀 해 줄래요?" 말했더니 처녀가 이러지. "나랑 부부가 되어 살면 밥을 해 주고 안 그러면 안 해 주지요." 그러니 같이 산다 그래야지 어쩌겠어. 셋째는 각시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좋은 기와집에서 거의 십 년을 살았어. 살다가는 이제 고향이 그리워서 갔다 오겠다고 했지. 했더니 각시 말이 자기 말대로 하면 고향에 보내 주고 그러지 않으면 보내 줄 수가 없대. 각시는 하고많은 말 중에 하필 비칠대는 말을 줘. 하얀 병, 파란 병, 빨간 병도 내주며 급하거든 던지라고 해. 셋째가 고향에 돌아갔는데 이건 온통 쑥대밭이야. 집은 다 쓰러져 가고 사람도 하나 안 보여. 그 길을 타박타박 말을 끌고 지나가는데 "아이고,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이러면서 누이란 것이 막 반갑다며 달려오는 거야. 그런데 누이는 예전의 그 예쁜 누이가 아니야. 눈이 쪽 찢어진 게 괴상해 보여. 누이가 밥을 해 주겠다니 방으로 들어갔는데 몸이 덜덜덜 떨리지 이제. 도망을 가야겠는데 "아이, 오라버니, 가려고? 어디 가려고?" 이러면서 누이가 방에서 안 나가니 어째. "네 팔목에 실을 매고 내 팔목에 실을 매고 가서 밥을 끓여라." 했더니 그제야 얘가 밥을 하러 나가지. 누이가 부엌에서 밥을 하는 사이 셋째는 팔목에 묶은 실을 풀어 문고리에 묶고 방 안에는 똥을 몇 무더기 싸 놓고 도망을 갔어. 누이가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오라버니 있나 물으면 똥이 "그래, 있다." 하고 대답하고 또 오라버니 있나 물으면 똥이 “오냐.” 하고 자꾸 대답해. 마침내 누이가 밥을 해서 들어왔더니 셋째는 없고 똥만 있지. "쳇! 이상하다 싶으니, 도망을 가 버렸구나.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두 끼 먹을 것을 놓치겠다." 이러면서 후다닥 뒤를 쫓아가. 셋째가 말을 잡아타고 도망을 가는데 누이가 막 따라오니까 어찌나 급한지 몰라. 누이가 말꼬리를 물려고 하는 찰나 셋째가 하얀 병을 홱 던졌어. 그랬더니 병이 깨지면서 가시덤불이 쫙 깔리는데 누이는 갇혀 못 오면서 중얼거리지.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이러면서 가시덤불을 어찌어찌 헤쳐 나와서는 막 쫓아와. 셋째가 말을 달리다가 돌아보니까 누이가 또 따라와 말꼬리를 물려고 하지. 그래 이번에는 파란 병을 홱 던졌어. 그랬더니 병이 깨지면서 시퍼런 물이 확 몰아쳐. 누이는 물에 빠져 못 오면서 중얼거리지. "오라비 한 끼 말 한 끼." 이러면서 물을 또 어찌어찌 헤쳐 나와서는 막 쫓아와. 셋째가 말을 달리다가 돌아보니까 누이가 또 따라와서 말꼬리를 딱 물게 생겼어. 그래, 급해서 빨간 병을 홱 던졌더니 불이 확 일어서 누이는 고만 불에 타 죽고 말았어. 죽은 뒤에 봤더니 글쎄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지 뭐야. 셋째 아들은 이렇게 해서 겨우 살아서 각시한테 돌아가 잘 살았다고 하지. |
개와 고양이와 구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한 사람이 장가들러 각시 집에 가는 길이었어. 어디만큼 가니까 커다란 구렁이가 길을 딱 막더래. "캬웅. 내가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니 이 사람이 구렁이를 달랬겠지. "나는 지금 장가가는 길이니 혼례나 치르고 올 적에 잡아먹어라." 그랬더니 구렁이도 그러라면서 길을 비켜 주더라는 거야. 혼례를 무사히 치르고 돌아가는 날이 되었어. 신랑은 가는 길에 구렁이한테 잡아먹힐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고 한숨만 푹푹 나왔지. "서방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신랑 한숨에 각시가 왜 그러냐고 물어. 신랑이 사실은 일이 이러저러하다며 사정을 털어놓았어. 그랬더니 각시가 걱정 말고 자기만 믿으라는 거야. 역시나 어디쯤에서 구렁이가 또 길을 막고 있네. "캬웅. 내가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자 각시가 앞으로 나섰어. "서방님을 의지하고 한평생 살아야 하는데 지금 잡아먹으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한평생 내가 먹고살 것이나 마련해 주고 서방님을 잡아먹든지 말든지 해라." 각시가 소리치며 가로막고 섰지. 순간 구렁이가 멈칫해. 그러더니 어디를 갔다 와서는 구슬을 하나 주네. 이걸 가지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면서. "이 구멍은 밥 나오는 구멍이고, 이 구멍은 옷 나오는 구멍이고, 이 구멍은 돈 나오는 구멍이고, 이 구멍은 종 나오는 구멍이고." 이러면서 다 가르쳐 줘. 딱 한 구멍만 빼고 말이야. 그러니 각시가 나머지 한 구멍은 뭐냐 묻지. 구렁이가 머뭇거리면서 말을 안 해 줘. "안 가르쳐 주면 우리 서방님도 못 잡아먹는다." 각시가 암팡지게 버티니까 구렁이가 끙끙대다 이러는 거야. "그 구멍은 나쁜 짓을 하는 놈한테다 대고 너 죽어라 하면 죽는 구멍이다." 그러니 각시가 가만있을 리 없잖아. 재빨리 구멍을 구렁이에 대고 힘껏 소리쳤지. "구렁이 네놈 죽어라!" 이러니까 구렁이는 그 자리에서 꽥, 죽고 말더래. 신랑 각시는 구슬을 가지고 집으로 왔어. 구슬로 밥도 나오게 하고 돈도 나오게 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살았지. 그러던 한 날, 이 집에 도둑이 들었어. 도둑은 강 건너에 사는 사람이었지. 신랑 각시가 갑자기 부자가 돼서 잘사는 걸 보니까 궁금했던 거야. "오호라, 저 구슬 때문이로구나!" 도둑은 요술 구슬을 슬쩍해 갔지. 구슬을 도둑맞자 신랑 각시는 도로 가난뱅이가 되었어. 마침 이 집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주인들이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어. 한솥밥 먹는 식구인데 왜 걱정이 안 되겠어. 개와 고양이는 한 날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어. "주인이 우릴 잘 먹여 주고 길러 주었으니 가만있을 수 없잖아." 둘은 구슬을 찾아오자며 도둑놈 집으로 갔어. 고양이는 도둑놈 집에서 그 집 쥐들을 불러 모았어. "구슬을 가져오지 않으면 모두 잡아먹겠다." 호통을 쳤지. "아이코, 큰일 났구나." 겁에 질린 쥐들은 난리가 나서 구슬을 찾아 헤맸어. 어찌어찌해서 도둑놈 베개 속에 구슬이 있는 건 알아냈는데 어디 그리 쉽게 빼낼 수 있겠어? 쥐 대장이 나서서는 쥐들한테 세간을 갉아 대라 일렀지. 쥐들은 기둥이고 쌀뒤주고 농이고 이불이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갉아 댔어. 그러니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럽겠어. 쿨쿨 자다가 화가 난 도둑이 베개를 휙 던져 버렸네. 그 바람에 베개 속에서 구슬이 또르르 굴러 나왔고 쥐들은 잽싸게 고양이한테 구슬을 갖다 바쳤지. 고양이가 구슬을 받아 집에 가려니까 개가 갖고 가겠대. "안 그러면 강 건널 때 업어 주지 않을 테다." 이러면서 말이야. 고양이는 헤엄을 못 치니까 어쩌겠어. 할 수 없이 개한테 구슬을 주었지. 개는 구슬을 입에 문 채 고양이를 등에 업고 헤엄을 쳤어. "잘 물고 가야 해." 고양이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지. 한참을 헤엄쳐 강 한가운데쯤 이르렀어. 개가 강 위쪽을 보니까 커다란 똥덩이가 동동 떠 내려오는 거야. 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개가 얼씨구나 좋다, 이거나 먹자, 하고는 입을 딱 벌렸지. 그 바람에 물고 있던 구슬이 퐁당 빠져 버렸어. 구슬은 꼬르륵꼬르륵 깊이깊이 가라앉았지. 고양이는 개를 나무랐지만 이미 잃어버린 구슬을 어쩌겠어. 어찌어찌 강을 건너와서는 집에도 못 가고 시름에 잠겨 앉아 있었지. 그때 한 영감이 잉어를 낚아서 다래끼에 넣는 게 보여. "저거라도 훔쳐서 주인한테 갖다 줘야겠다." 고양이는 영감이 한눈파는 사이에 잉어를 물고 냅다 뛰었어. 개도 덩달아 뛰었지. 마침 신랑 각시는 개와 고양이가 하루 종일 안 보여서 걱정하고 있던 차야. 그런데 둘이 잉어까지 물고 왔으니 좋아라 했지. "어이쿠, 너희들 덕분에 배부르게 먹겠구나." 잉어를 손질하려고 배를 갈랐더니 그 속에 잃어버린 구슬이 있어! 강물 속에 떨어진 구슬을 잉어가 날름 삼킨 거지. 신랑 각시는 도둑맞은 구슬을 찾았으니 얼마나 더 기뻐했겠어. 그 뒤로 신랑 각시는 다시 잘 먹고 잘살게 됐다는 이야기야. 개와 고양이는 어쨌냐고? 잘 얻어먹고 살았겠지, 뭐. |
덕진다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전라도 영암 고을에 덕진이라는 맘씨 고운 처녀가 살았어. 강가 주막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냈는데, 아무리 행색이 초라한 손님도 반갑게 맞이하고 허기진 손님한테는 밥 한 그릇 더 주었지. 불쌍한 거지가 찾아와 배고프다고 하면 자기 밥을 선뜻 내주고, 춥다고 하면 자기 옷을 나누어 주었어.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을 해도 돈 한 푼 모으지 못했지만, 마음은 부자라서 늘 생글생글 웃었단다. 그 고을에 원님이 있었는데 심보가 아주 고약했어. 백성들은 굶건 말건 제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똑같은 죄를 지었어도 돈을 내놓는 부자들은 다 풀어 주고 가난한 백성들은 죄 감옥에 집어넣었지. 인색하기는 또 어찌나 인색한지 몰라. 한번은 배가 불룩한 거지 여인이 찾아와 사정을 했거든. "아이를 낳을 때가 다가오는데 마땅히 몸을 풀 만한 곳이 없습니다.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머물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원님이 뭐라 그랬냐면, "관아가 무슨 거지 소굴인 줄 아느냐. 이거나 가져가 아이를 낳든 말든 해라." 하면서 달랑 짚 한 단을 던져 주는 거라. 그러니 백성들 원망이 하늘을 찌를밖에. "저승사자는 도대체 뭐하나 몰라. 고약한 원님이나 얼른 데려가지 않고." 그런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어느 날 멀쩡하던 원님이 갑자기 죽어 버렸지 뭐야. '이자가 아직 죽을 때는 안 되었지만 얼른 데려가야지, 귀가 따가워서 못 살겠다.' 사실은, 그 고을을 담당하는 저승사자가 백성들 말 듣기가 지겨웠던 거라. 아무튼 그래서 원님이 졸지에 염라대왕 앞에 무릎 꿇고 앉게 되었거든. 염라대왕이 저승 장부를 들춰 보며 말했어. "그놈 참 짧게 살면서 죄도 많이 지었구나. 지옥으로 보내야겠, 어라? 이자가 왜 벌써?" 염라대왕이 노발대발 화를 냈어.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자를 누가 데려왔느냐? 당장 이승으로 돌려보내라!" 저승사자가 실망해서 입맛을 쩝쩝 다셨지. 그렇다고 그냥 돌려보낼 저승사자가 아니야. 염라대왕 앞을 물러나서는 원님을 을러댔어. "올 때는 그냥 와도, 갈 때는 거저 갈 수 없느니라." "아니,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통행료를 내야 하느니라." "하지만 저승에서 저는 빈털터리인뎁쇼?" "걱정 마라, 이곳에도 네 곳간이 있으니. 이승에서 남한테 베푼 만큼 재물이 들어 있느니라." 그러고는 원님을 곳간으로 데려갔거든. 그런데 원님 이름이 적힌 곳간을 열어 보니, 달랑 짚 한 단이 들어 있는 거라. 원님도 기가 막히고 저승사자도 기가 막히지. "저, 저거라도?" 원님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묻자 저승사자가 원님 손을 잡아끌었어. "옆 곳간으로 가자." ‘덕진’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곳간이었지. "너희 고을 사는 덕진이라는 처녀의 곳간이다. 열어 보거라." 문을 여니, 세상에! 쌀섬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뭐야. "우선 여기서 쌀 삼백 섬을 꾸어 바치고 이승에 돌아가서 덕진이한테 갚거라. 떼어먹었다간 혼꾸멍이 날 줄 알고!" 그렇게 해서 원님이 다시 살아났어. 그런데 저승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뼛한 거라. '에구, 얼른 빚부터 갚아야겠다.' 그길로 덕진이를 찾아 나섰지. 물어물어 강가 주막엘 왔는데 한 처녀가 왔다 갔다 바지런히 일을 하고 있거든. 목마른 손님한테는 시원한 물 떠다 주고, 배고픈 손님한테는 고봉밥을 퍼다 주고, 동냥 온 거지도 빈손으로 보내질 않네. "덕진아! 여기 상 내가라이." 주모가 외치는 소릴 들으니 그 처녀가 분명 덕진이라. 원님이 덕진이를 불러 말했어. "저승빚 쌀 삼백 섬을 갚으러 왔느니라." "뭔 소리래요? 지는 쌀 뀌어준 적이 없는디요." 덕진이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지. "이러이러해서 여차여차했느니라." 원님이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하니 그제야 덕진이가 고개를 끄덕였어. "근디 지는 그 쌀 필요 없응게, 정 빚을 갚으려거든 그 값으로 요 앞 강에 다리나 놔 주시오. 다리가 없응게 댕기는 사람들이 솔찬히 불편하당게요." 그렇게 해서 주막 앞 강에 다리가 놓였어. 사람들은 그 다리를 덕진다리라 불렀어. 덕진이는 그 뒤로도 착하게 살다가 가고, 원님도 뉘우쳐 똑바로 살다 갔다지. 혹시 전라도 영암 고을에 가게 되면 덕진다리가 어디 있었는지 흔적을 한번 찾아보려무나. |
달랑꼽재기와 꼽꼽재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 어떤 마을에 구두쇠 영감이 살았어. "넉넉해도 남을 돕는 일은 없지!" "지독한 구두쇠인 걸 세 살 아이도 알 걸세." 마을 사람들은 영감을 달랑꼽재기라 불렀어. 한번은 달랑꼽재기네 된장 항아리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겠지. "에그그, 저 파리란 놈이 내 된장을 다리에 잔뜩 묻혀 달아나는군." "아이고, 아까운 내 된장!" 달랑꼽재기는 파리를 쫓아 팔십 리나 달려갔어. 기어코 파리를 잡은 달랑꼽재기는 다리에 묻은 된장을 쪽쪽 빨아 먹었지. 그 지독한 달랑꼽재기에게 아들이 하나 있어. "며느리를 맞아들여야 할 텐데 걱정이야!" 살림이 헤픈 며느리를 맞아들일까 근심이었던 거야. 그런데 소문에, 말도 못할 구두쇠 꼽꼽재기가 있는데 시집보낼 딸이 있다는 거였어. 달랑꼽재기는 잘됐다, 하며 며느릿감을 보러 꼽꼽재기네 집을 찾아 나섰어. 달랑꼽재기가 이웃 마을인 꼽꼽재기네 집까지 가는 데 한나절이 걸렸어. 왜냐고? 짚신이 닳을까 봐 사람들이 볼 때는 가만히 서 있다가, 안 볼 때면 벗어 들고 가느라 오래 걸렸지, 뭐. 달랑꼽재기가 꼽꼽재기네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밥 때가 되어 밥상을 들여가네. 밥만 달랑 세 그릇, 반찬이라고는 천장에 매단 굴비가 다였지. "밥 한 숟가락에 굴비는 한 번만 쳐다봐야 해. 두 번 보면 짜서 밥을 많이 먹게 될 테니까." 꼽꼽재기가 제 식구들에게 말했어. '저 정도면 괜찮을 듯싶군!' 달랑꼽재기는 꼽꼽재기의 딸을 며느리 삼기로 마음먹었어. 그래 돌아와서 혼삿말을 하여 며느리를 맞이했지. 달랑꼽재기 부부는 며느리가 살림을 헤프게 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하루는 며느리가 반찬이라고는 간장 한 가지뿐인 밥상을 들여왔어. ‘이크,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부부는 기절할 듯이 놀랐어. 간장 종지에 간장이 그득 담겨 찰랑댔거든. 달랑꼽재기 부부는 숨이 넘어가려는 걸 꼭 참고 며느리를 불러 앉혔겠지. “얘야, 아까운 간장을 왜 이리 가득 담았느냐?” 부부가 묻자 며느리가 대답했어. “얕게 담으면 숟가락질을 자주 해야 하니 숟가락도 닳고 종지 바닥도 닳아 손해지요.” 며느리는 이어서 말했어. “잘 뜨려고 종지를 기울이다 보면 간장도 더 먹게 될 거예요.” 부부는 며느리를 잘 맞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푹 놓았어. 한참 지나 사돈인 꼽꼽재기가 딸이 어찌 사는지 보러 왔네. "아이고, 어서 오시오, 사돈 양반." 달랑꼽재기는 사돈인 꼽꼽재기를 반가이 맞아들였어. 꼽꼽재기는 두루마기 차림에 손에는 멋들어진 부채를 들고 있었어.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물건을 아껴 쓰는지 자랑하기 시작했어. "나는 부채가 해질까 봐 이렇게 반쪽만 펴서 부친다오." 먼저 꼽꼽재기가 말했어. 그러자 "난 부채를 펴 손에 들고 얼굴을 이렇게 흔든다오. 이 부채가 바로 백 년 쓴 부채라오." 달랑꼽재기는 제 얼굴을 얄랑얄랑 흔들어 보이며 말했지. 마침 밥 때가 되어 밥상이 들어왔어.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지. "오늘따라 국 맛이 아주 좋은걸!" 달랑꼽재기의 말에 꼽꼽재기도 고개를 끄덕였어. "얘야, 국을 어찌 끓였기에 이리 맛있는 게냐?" 달랑꼽재기가 며느리에게 물었어. 며느리는 침을 꼴깍 삼킨 뒤 대답했어.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을 파는 생선 장수가 왔겠지요." "옳거니!" 달랑꼽재기가 맞장구를 쳤어. "큰 생선, 작은 생선, 넓적한 생선, 기다란 생선을 뒤적뒤적, 주물럭주물럭, 만지작만지작한 다음 그 손을 국솥 물에 씻어 끓인 거랍니다." 며느리는 자랑스러운 낯으로 늘어놓았어. "어쩐지 맛이 썩 좋다 했더니, 과연 내 며느리로구나!" 달랑꼽재기는 며느리를 칭찬했어. 그러자 옆에 있던 꼽꼽재기가 혀를 차며 거들었어. "아이고, 얘야. 그 손을 물독에 씻었더라면 한 달을 두고 맛있는 국을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랬구나." 꼽꼽재기의 말을 들은 달랑꼽재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 "거참, 그럴듯한 생각이오." 그러더니 조금 뒤 입맛을 쩍 다시며 말했지. "얘야, 그 손을 우물물에 씻었더라면 죽을 때까지 맛있는 국을 먹는 건데 그랬구나." |
콩중이 팥중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곳에 콩중이와 팥중이가 살았어. 콩중이는 엄마가 죽어 새엄마를 맞았는데 새엄마가 팥중이를 데려왔지. 하루는 새엄마가 둘한테 밭에 가 김을 매라고 했어. 콩중이한테는 나무 호미와 겨밥을 주며 자갈밭에 보내고, 팥중이한테는 쇠 호미와 팥밥을 주며 모래밭에 보냈지. 콩중이가 나무 호미로 밭을 매는데 까마귀들이 와서 겨밥을 다 쪼아 먹었어. 콩중이는 힘도 들고 배도 고파서 왕왕 울었지. 그랬더니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 말했어. "콩중이야, 저기 개울에 가서 아랫물에 손발 씻고 가운데 물에 목욕하고 윗물에 머리 감고 명주 수건으로 손을 감아 내 배 속에 넣어 봐라." 콩중이는 암소가 시키는 대로 개울에 가서 아랫물에 손발 씻고 가운데 물에 목욕하고 윗물에 머리 감고 명주 수건으로 손을 감아 암소 배 속에 넣었거든. 그랬더니 그 안에 과일이며 떡이며 과자며 맛있는 음식이 잔뜩 있는 거야. 콩중이는 이걸 꺼내 실컷 먹고 남은 것은 싸 가지고 집으로 왔지. 새엄마는 콩중이한테 음식이 어디서 났는지 물었어. 검은 암소가 주었다고 했더니 새엄마는 다음 날 콩중이한테는 쇠 호미와 쌀밥을 주며 모래밭에 보내고, 팥중이한테는 나무 호미와 겨밥을 주며 자갈밭에 보냈지. 팥중이가 자갈밭에서 왕왕 우니까 정말 검은 암소가 하늘에서 내려왔어. 팥중이도 암소가 시키는 대로 개울에 가서 손발 씻고 목욕하고 머리 감고 명주 수건으로 손을 감아 암소 배 속에 넣었어. 그런데 과자며 떡을 많이 먹겠다고 한 움큼이나 움켜쥐니 손이 빠져야 말이지. 팥중이는 암소에 매달려 들로 가시밭으로 끌려 다니다 상처투성이가 되었지. 새엄마는 만신창이가 된 팥중이를 보더니 콩중이가 거짓말을 했다며 때리고 야단치고 밥도 굶겼어. 하루는 새엄마가 둘한테 누가 베를 많이 짜나 내기를 시켰어. 콩중이한테는 낡은 북과 콩 볶은 것을 주고, 팥중이한테는 새 북과 찰밥을 주었지. 콩중이는 콩 볶은 것을 오물오물 씹으며 쉬지 않고 베를 짜니 많이 짰어. 팥중이는 찰밥이 찐득찐득 달라붙어 베를 얼마 못 짰지. 다음번에 새엄마는 팥중이가 베를 많이 못 짠 건 찰밥 때문이라며 콩중이한테는 찰밥을 주고 팥중이한테는 콩 볶은 것을 주었어. 콩중이는 물을 떠다 찰밥을 떼어 먹으며 쉬지 않고 베를 짜서 많이 짰어. 팥중이는 콩알을 한 알 한 알 집어 먹느라 베를 얼마 못 짰지. 새엄마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까 콩중이를 더더욱 미워했어. 하루는 새엄마와 팥중이가 외갓집에 잔치 구경을 가. 콩중이도 가겠다고 하니까 새엄마는 “방 아홉 칸을 다 치우고 아홉 방 아궁이에서 재를 다 담아내고 벼 아홉 섬을 다 찧어 놓고 밑 없는 아홉 독에 물을 가득 길어 놓고 그런 다음에 오든 말든 하려무나.” 이러면서 팥중이만 데리고 가 버렸어. 콩중이는 방 아홉 칸을 다 치우고 아홉 방 아궁이 재를 다 담아냈어. 그러고 났더니 힘이 다 빠지고 벼 아홉 섬 찧을 일이 막막해서 왕왕 울었어. 그런데 울다 보니 참새 떼가 널어 둔 벼를 다 쪼아 먹네. 콩중이가 놀라 훠이훠이 쫓았더니 새들은 다 날아갔는데 흰 쌀알만 고스란히 남았어. 벼 아홉 섬이 다 찧어진 거지. 이제 밑 없는 아홉 독에 물을 길어야 하는데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으니 콩중이는 또 왕왕 울었어. 그런데 어디서 두꺼비 아홉 마리가 와서 한 마리씩 독 안에 들어가 엎드리더니 말했어. "콩중이 아가씨, 이제 물을 길어다 부어 보세요." 콩중이가 큰 독마다 물을 한 동이씩 부으니 독은 금세 가득 찼지. 이제는 일을 다 마치고 잔칫집에 가려는데 입고 갈 옷도 없고 신발도 없으니 콩중이는 또 왕왕 울었어. 그랬더니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 비단옷과 갖신 한 켤레를 주네. 콩중이는 이제 잔치 구경을 갈 수 있게 되었어. 콩중이는 비단옷을 입고 갖신을 신고 잔칫집에 갔어. 잔치 구경을 한참 하다가 글쎄 새엄마를 보았지 뭐야. 콩중이는 야단맞을까 봐 겁이 나서 급하게 뛰다가 그만 갖신 한 짝을 잃어버렸지. 마침 평안 감사가 지나가다가 갖신을 주웠어. "신이 고운 걸 보니 신 임자도 곱겠구나." 평안 감사는 신 임자를 찾아 각시를 삼겠다고 사람 많은 잔칫집에 들어갔어. 팥중이가 임자라며 갖신을 신는데 발이 안 들어가. 그래 거짓말을 한다고 감사한테 매를 철썩 맞았지. 다음에는 새엄마가 임자라며 갖신을 신는데 발이 안 들어가니 감사한테 또 매를 철썩 맞았어. 이 여자 저 여자 다 신어 봐도 안 맞는데 콩중이가 신으니 딱 맞았지. 감사는 콩중이를 데려다 각시를 삼았어. "팥중이나 새엄마가 와도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마시오." 어느 날 감사가 먼 길을 가면서 천만번 일렀어. 그런데 감사가 나가자마자 팥중이가 왔어. "콩중이야, 콩중이야, 너 주려고 팥죽을 쑤어 왔다. 그릇이 뜨거워 손 데겠네. 앗, 뜨거. 아이, 뜨거." 이러니 별수 없이 문을 열었는데 팥중이가 빈손으로 들어오며 이러지. "콩중이야, 너 목에 때가 많다. 나랑 목욕이나 하자." 그러면서 콩중이를 연못으로 잡아끌었어. 콩중이는 또 속았구나 싶었지만 때를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연못으로 갔어. 그런데 팥중이가 뒤에서 발로 탁 차서 콩중이는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어. 팥중이는 콩중이 옷으로 갈아입고 감사 집으로 가서 콩중이 행세를 했어. 감사가 돌아오더니 콩중이 노릇을 하는 팥중이한테 물었어. "임자 얼굴이 왜 그리 검어졌는가?" "감사님 없다고 세수를 안 해서 그러지요." "그럼 얼굴은 왜 그리 얽었는가?" "감사님 마중 나가다가 콩 널어 놓은 멍석에 콩 넘어져서 그러지요." "그럼 목은 왜 그리 길어졌는가?" "감사님 오시나 보려고 늘 담장 위로 넘겨다봐서 그러지요." 이러니 감사도 정말 그런가 보다 하지 뭐야. 그러던 어느 날 연못 가운데 함박꽃이 곱게 피었어. 하인이 꺾으려고 했더니 웬일인지 꺾이지 않네. 그래 감사가 꺾었더니 쉽사리 꺾였어. 그 함박꽃을 처마 끝에다 끼워 두고 맨날 보는데 감사가 지나가면 활짝 피고 웃고 머리를 쓸어 주지. 하지만 팥중이가 지나가면 꽃이 금세 시들면서 머리털을 쥐어뜯곤 하는 거야. "별놈의 꽃을 다 보겠네." 팥중이는 이 함박꽃을 갖다가 아궁이에 던져 훨훨 태워 버렸어. 다음 날 옆집 할멈이 불을 얻으러 왔다가 아궁이에서 웬 구슬 하나를 주웠어. 할멈은 이 구슬을 고이 넣어 두었지. 그런데 이상하지. 할멈이 어디를 나갔다만 오면 밥상이 한 상 잘 차려져 있고 있고 그러지. 그래 하루는 할멈이 숨어서 가만히 보니 구슬이 고운 색시로 변해 밥상을 차리지 뭐야. 할멈은 얼른 가서 색시를 붙잡고 누구냐고 물었어. "저는 콩중이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으니 평안 감사를 모셔다 밥 한 상 올리고 싶습니다." 할멈은 콩중이 부탁을 듣고 감사를 집에 초대했어. 감사가 와서 밥상을 보니 이상해서 묻지. "왜 젓가락이 짝짝이고 한 짝은 거꾸로 놓여 있습니까?" 그러자 콩중이가 뛰어나오며 외쳤어. "여보 감사님, 젓가락 바뀐 건 알면서 각시 바뀐 건 왜 모르십니까?" 그제야 감사는 팥중이가 콩중이 노릇을 하는 걸 깨달았어. 감사는 팥중이와 새엄마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먼 데로 귀양을 보내 벌을 주었어. 그 후로 콩중이는 감사와 다시 행복하게 잘 살았대. |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날 간날 간날, 깊은 산골 외딴집에 가난한 어머니와 사이좋은 오누이가 살았어. 어느 날, 어머니는 장에 가고 오빠는 서당에 가고 누이동생 혼자 놀고 있는데, 꽁지가 닷 발 주둥이가 닷 발 되는 아주 큰 새가 날아왔어. "아가 아가,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아가, 너희 엄마 어디 갔니?" "우리 엄마 장에 갔지." 새는 어머니가 장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냉큼 잡아먹고 가 버렸어. 동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엉 울고만 있었어. 오빠가 서당에서 돌아와 보니 기가 막히지 않겠어? 당장에 어머니 원수를 갚겠다고 발딱 일어났어. 누이도 따라나섰지. 한나절 꼬박 걸어가니, 논 가는 아저씨가 있어. "아저씨 아저씨,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어디 사는지 아세요?" "이 논 다 갈아서 모심고 김매서 거둬 주면 일러 주마." 오누이는 부지런히 논을 갈고 모를 심고 김을 맸어. 가을이 되어 익은 벼를 차분차분 거두자 아저씨가 볏짚 태운 재 한 줌을 주며 말했어. "재 너머 빨래하는 아주머니한테 가서 물어보려무나." "아주머니 아주머니,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어디 사는지 아세요?" "이 빨래를 다 빨아 헹궈 말리고 다려 개어 주면 일러 주마." 오누이는 찰박찰박 철썩철썩, 허리 한번 펴지 않고 빨래를 했지. 그 많은 빨래를 헹구고 말리고 다려서 개어 주니까 아주머니는 도꼬마리 한 움큼을 주며 말했어. "낭떠러지 꼭대기에 사는 까마귀한테 물어보렴." "까마귀야 까마귀야,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어디 사는지 아니?" "뒷간 구더기를 한 바가지 잡아다 아랫물에 씻고 윗물에 헹궈 내 입에 넣어 주면 일러 주마." 오누이는 팔을 걷어붙이고 구더기를 잡아다 아랫물에 씻고 윗물에 헹궈 까마귀 입에 한 마리씩 넣어 주었어. 까마귀는 삭정이 한 단을 내어 주며 말했지. "수수밭 한가운데 제일 큰 수숫대를 뽑아 보렴." 까마귀 말대로 넓은 수수밭 한가운데 유난히 큰 수숫대가 있네. 그걸 쑥 뽑았더니 그 아래 굴이 있어. 수숫대를 밧줄 삼아 내려가 보니 커다란 집 한 채가 있는데 주변에 기다란 깃털 몇 개가 떨어져 있는 거야. 바로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사는 집이지. 오누이는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갔어. 오누이가 지붕 밑에 숨었을 때 새가 중얼중얼하며 나와. "오늘 저녁은 밥을 지어 콕 찍어 먹을까,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켤까, 떡을 쪄서 꿀꺽 삼킬까? 에라, 떡을 쪄서 꿀꺽 삼켜야겠다." 새는 시루 가득 떡을 찌더니 떡 썰 칼을 빌리러 나가네. 그사이 오누이는 떡 한 시루를 다 먹어 없앴어. "아니, 떡이 어디로 갔지?" 새는 온 부엌을 헤집으며 씩씩거리다 맥이 빠져서 잠이 들었지. 다음 날 저녁, 새가 또 혼자 중얼거리네. "오늘 저녁은 밥을 지어 콕 찍어 먹을까,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켤까, 떡을 쪄서 꿀꺽 삼킬까? 에라,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켜야겠다." 새는 죽을 한 솥 쑤어 놓고 죽 뜰 바가지를 빌리러 나가네. 오누이는 얼른 죽 한 솥을 다 먹어 없앴어. "아니, 죽이 어디로 갔지?" 새는 집 안팎으로 펄펄 뛰다가 기운이 빠져서 잠이 들었어. 셋째 날, 새가 힘없이 중얼거렸어. "오늘 저녁은 밥을 지어 콕 찍어 먹을까, 죽을 쑤어 훌훌 들이켤까, 떡을 쪄서 꿀꺽 삼킬까? 에라, 밥을 지어서 콕콕 찍어 먹어야겠다." 새는 밥을 한 솥 그득 지어 놓고 밥 풀 주걱을 빌리러 나가네. 오누이는 얼른 내려와 밥 한 솥을 다 먹어 치웠어. "아니, 밥이 어디로 갔어!" 새는 푸다닥푸다닥 난리를 쳐댔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는 사흘이나 굶어서 기운이 없었어. "애고애고, 누워 쉬어야겠다." 그때 오빠가 방에다 재를 훌훌 뿌렸어. "아이고, 매워! 매워서 못 눕겠네!" 재를 피해 바깥으로 나오는 새 앞에 동생은 도꼬마리를 집어 던졌어. "아이고, 따가워! 빈대가 무나! 물어서 못 눕겠네!" 새는 물것이 없는 곳을 찾아 가마솥으로 들어갔어. 오누이는 재빨리 지붕에서 내려왔어. 오빠는 가마솥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어. 동생은 아궁이에 삭정이를 집어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는, "따뜻하다, 따뜻해!" 그러다 점점 뜨거워지니까, "뜨거워라, 뜨거워! 고만 때라, 고만 때!" 하면서 새까맣게 타 죽었어. 오누이가 한참 있다 가마솥을 열어 보니 새는 간데없이 까맣게 탄 덩어리만 남아 있네. 그걸 꺼내 절구에 콩콩 찧으니까 가루가 날아가며 날것들로 변하지 뭐야.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를 닮아 꽁지도 길고 주둥이도 긴 모기가 된 거야. 생김새만 꼭 같겠어? 모기란 놈 성질 고약한 것이 딱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를 닮아 그런 거지, 암. |
밤나무 아들 밤손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처녀가 홀로 살았어. 하루는 이 처녀가 뒷산 밤나무 밑에서 오줌을 누었지. 그런데 무엇이 아래를 따끔하게 찌르더니, 그날부터 배가 불러오네. 처녀는 열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밤손이야. 밤나무 때문에 얻은 자식이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지. 밤손이가 잘 자라 글방에 다니는데, 글방 친구들이 자꾸만 밤손이를 놀려 대네. "아비 없는 자식! 아비 없는 자식!" 밤손이는 속이 상해 어머니에게 물었어.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가 있는데 왜 저만 아버지가 없나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대답했지. "너라고 왜 아버지가 없겠니? 뒷산 밤나무가 바로 네 아버지야." 밤손이는 뒷산 밤나무에게 달려가 큰 소리로 외쳤어. "아버지!" 그런데 밤나무는 아무 대답이 없네. 밤손이는 다시 한번 "아버지!"하고 불렀어. 그래도 밤나무는 여전히 대답이 없네. 밤손이가 더 크게 "아버지!"하고 부르자, 그제야 밤나무가 반갑게 대답했지. "왜 그러냐, 내 아들아!" 그날부터 밤손이는 밤나무를 아버지라 여기고 날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놀았단다. 하루는 밤나무가 밤손이에게 말했어. "비가 많이 올 테니, 오늘은 집에 가지 말고 내 위에 올라타고 있어라." 밤손이는 밤나무가 시키는 대로 했어. 그랬더니 정말로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하네. 비는 몇 날 며칠 쏟아져 온 세상이 물에 잠겼어. 밤나무는 뿌리째 뽑혀 물에 둥둥 떠내려갔어. 밤손이도 밤나무를 타고 물에 둥둥 떠내려갔지. 물 위를 두둥실 떠내려가는데, 멧돼지 떼가 물에 둥둥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멧돼지들이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멧돼지들을 구해 줘요." "오냐, 그렇게 해라." 밤손이는 손을 내밀어 멧돼지들을 건져 줬지. 또 얼마쯤 떠내려가는데, 이번에는 개미 떼가 물에 둥둥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개미들도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개미들을 구해 줘요." "오냐, 그렇게 해라." 밤손이는 나뭇가지를 내밀어 개미들도 건져 줬지. 한참을 떠내려가는데, 저만치서 모기떼가 물에 둥둥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모기들도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모기들을 구해 줘요." "오냐, 그렇게 해라." 밤손이는 모기들도 건져 줬지. 멧돼지, 개미, 모기들을 태우고 떠내려가는데, 한 사내아이가 "살려 주세요!" 소리치며 떠내려오네. 밤손이는 아이가 불쌍해서 밤나무에게 말했어. "아버지, 저 아이를 구해 줘요." "그럴 것 없다. 나중에 너한테 못된 짓만 할걸." "아니에요. 사람이 죽어 가는데 모른 척할 수 없어요." 밤손이는 손을 내밀어 아이를 건져 줬지. 자꾸 떠내려가니 섬이 하나 나왔어. 밤나무는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하고는 또 둥둥 떠내려갔지. 멧돼지 떼와 개미 떼와 모기떼는 섬에 내려 어디론가 사라졌어. 밤손이와 사내아이는 산을 넘어 어느 마을에 이르렀지. 그 마을에는 큰 기와집이 있는데, 둘이는 주인 영감에게 이렇게 부탁했단다. "이 댁에서 심부름이나 하며 살게 해 주세요." 주인 영감이 좋다고 하여 둘이는 그 집에서 살게 되었지. 밤손이는 늘 부지런하여 주인 영감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어. 사내아이는 샘이 나서, 어느 날 주인 영감에게 거짓으로 고해바쳤지. "밤손이는 농사일을 아주 잘해요. 한나절이면 뒷산에 있는 밭을 다 갈고 조 한 가마니를 뿌릴 수 있어요." "오, 그래, 그게 정말이냐?" 주인 영감은 당장 밤손이를 불러 그 일을 맡겼지. 밤손이는 뒷산에 가서 밭을 갈기 시작했어.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 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 바로 그때 어디선가 멧돼지 떼가 나타나더니 주둥이로 밭을 금세 다 갈아 주네. 밤손이는 조 한 가마니를 밭에 모두 뿌리고 기와집으로 돌아왔어. 그러자 주인 영감은 밤손이를 칭찬했지. "너는 보통 아이가 아니로구나!" 사내아이는 약이 올라 또 주인 영감에게 말했어. "아무리 농사일을 잘해도 어떻게 벌써 그 넓은 밭을 다 갈고 조 한 가마니를 뿌렸겠어요? 조를 다 버린 것 같으니 다시 주워 오라고 하세요."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구나." 주인 영감은 당장 밤손이를 불러 그 일을 맡겼지. 밤손이는 뒷산에 가서 밭에 뿌린 조를 줍기 시작했어.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 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 바로 그때 어디선가 개미 떼가 나타나 밭에 쫙 깔리더니 조를 금세 다 물어 오네. 밤손이는 조 한 가마니를 짊어지고 기와집으로 돌아왔어. 그러자 주인 영감은 밤손이를 칭찬했지. "네 재주가 참 용하구나!" 주인 영감에겐 고운 딸이 하나, 딸과 얼굴이 꼭 닮은 종이 하나 있었어. 하루는 주인 영감이 딸과 종을 똑같이 꾸며서 나란히 세워 놓았지. 주인 영감은 밤손이와 사내아이를 불러 말했어. "내 딸을 고르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 종을 고르는 사람은 내 종이 된다." 사내아이는 주인 영감 딸을 고르려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했어. 하지만 밤손이는 누가 주인 영감 딸인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지. 바로 그때 어디선가 모기떼가 나타나더니 밤손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네. "앵앵! 동쪽, 동쪽!" 밤손이는 이 말을 듣고 동쪽에 있는 처녀를 골랐어. 그러자 주인 영감이 웃으며 말했지. "네가 제대로 골랐구나. 이 아이가 내 딸이야." |
이야기 주머니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도 아주 먼 옛날 일이야. 산골 마을에 도령이 하나 살았어. 도령은 이야기 듣기를 꽤나 좋아했지. 자다가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면 눈을 번쩍 뜰 정도였어. “세상에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니!” 도령은 듣는 이야기마다 그렇게 재미있었어. 갓 볶은 깨처럼 고소했지. 얼마나 재미있던지 잊어버릴까 봐 마음이 쓰였어. “이야기를 잊지 않게 종이에 적어 두어야겠어!” 도령은 이야기를 듣는 대로 종이에 적어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어. 아가리를 꽁꽁 묶은 주머니는 천장에 높이 달아 놓았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혼자서만 알고 싶었던 거야. 세월이 흘러 도령은 총각이 되었겠지. 긴 세월 동안 이야기 주머니도 불룩해졌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말이야. "아이고, 답답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세상 구경한 지가 언제냐고!" 주머니 속 이야기들은 저희끼리 가끔 분통을 터뜨렸어. 세월이 흘러 도령은 장가를 들게 되었어. 도령이 장가들기 전날 밤이야. 하인이 무심코 도령의 방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어. ‘방엔 아무도 없을 텐데.’ 하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어. 말소리는 빈방 안에서 흘러나왔어. "뭐, 우리는 이대로 가둬 놓고 장가를 든다고?" "예쁜 색시를 맞을 테니 우리는 거들떠도 안 보겠지." "귀신이 되어 도령을 괴롭히고 주머니를 빠져나가자!" 잔뜩 독이 오른 말소리는 주머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지. "난 누릇누릇 잘 익은 청실배가 되어 괴롭힐 테다." "그럼 난 퐁퐁 솟는 옹달샘이 되어 괴롭힐 테다." "좋아, 나는 방석 밑에 독바늘이 되어 괴롭힐 테다." 웅얼대는 말소리를 듣고 있자니 하인은 소름이 쪽 끼쳤어. 날이 밝자 새신랑은 일찌감치 신부 집에 갈 채비를 차렸지. 하인은 냉큼 달려가 신랑이 타고 갈 말고삐를 잡았어. "이놈아, 너는 안마당 바깥마당이나 쓸 일이지 어딜 따라나선다는 게냐?" "아니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갑니다." 하인의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어. 말고삐를 틀어쥐고는 절대로 놓으려 하지 않았거든. 신부 집까지는 몇 고개나 넘어야 했어. 고개를 하나 넘자, 누릇누릇 잘 익은 청실배나무가 보였어. "먹음직스럽게도 익었구나. 저 배를 한 개 따 오려무나." 새신랑 말에 하인은 지난밤 ‘청실배’가 생각났지. "무슨 말씀을, 어여쁜 색시가 기다리옵니다!" 하인은 말을 잽싸게 몰아 고개를 하나 넘었어. 새신랑은 화가 났지만 꾹 참았어. 고개를 또 하나 넘자, 퐁퐁 솟는 옹달샘이 보였어. "목이 마른 참에 잘되었구나. 가서 옹달샘 물을 떠 오려무나. "새신랑 말에 하인은 지난밤 ‘옹달샘’이 생각났지. "무슨 말씀을, 어여쁜 색시가 기다리옵니다!" 하인은 말을 잽싸게 몰아 고개를 또 하나 넘었어. 새신랑은 화가 났지만 꾹꾹 참았어. 말을 타고 꺼덕꺼덕, 어여쁜 색시네 너른 마당에 닿았어. 마당에는 차일이 쳐져 있고,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었어. "새신랑이 훤하게 잘도 생겼네!" "썩 잘 어울리는 새신랑과 새색시로세!" 새신랑이 벙글벙글 웃는 얼굴로 새색시에게 맞절을 할 때야. "에잇!" 맞절을 하려는 새신랑을 하인이 밀어뜨렸어. 발라당 자빠진 새신랑은 창피해서 얼굴이 시뻘게졌지. 혼례 뒤 새신랑은 어여쁜 새색시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 "네 이놈! 내 앞에 무릎을 꿇렷다!" 그간 참고 참았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새신랑이 하인을 불렀어. "혼찌검이 날 때 나더라도 제 말을 들어 보세요." 하인은 이제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털어놓았어. 하인 말에 새신랑은 천장에 매달아 놓았던 이야기 주머니를 내려놓게 했어. 주머니를 푸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 그동안 한 번도 풀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야. “이게 웬일이람!” 주머니 속 종이에는 글자가 사라지고 없었어. 주머니를 푸는 순간 달아나고 만 거지.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되었어.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말이지. "자, 가고 싶은 대로 가자고!" "좋아, 난 산 너머로 간다!" "어디로 갈지 나도 몰라!" 이야기들은 덧붙여지기도 덜어지기도 하면서 훨훨 활활 신바람이 나서 돌아다니게 되었더란다. "거참,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장가도 못 들고 죽을 뻔했구나!" 새신랑은 고마운 하인을 동생으로 삼았어. 형제는 사이좋게 어저께까지도 잘 살았다지, 아마. |
사윗감 찾아 나선 두더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은진 미륵 밑에 금실 좋은 두더지 내외가 살았더래. 내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예쁘게 컸는지 몰라. 그래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위를 얻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두더지 내외는 자나 깨나 주위를 둘러보고 또 둘러봤지만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어. 이 마을 저 마을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사윗감이 있어야 말이지. 하루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쨍쨍 내리쬐는 거야. "옳구나, 바로 저거로구나." 세상을 밝게 비춰 주는 해를 당할 자는 없겠구나 싶더래. 두더지 내외는 해를 만나러 나섰어. 신을 수십 켤레 삼아서 짊어지고 튼튼한 쇠지팡이를 짚고 몇 날 며칠 몇 달 삼 년이나 걸려 하늘 위로 올라가 해를 만났지. 해는 어찌나 크고 뜨거운지 두더지 내외는 겨우 다가가 이렇게 말했지. "우리가 예쁜 딸을 두었는데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훌륭하게 생겼으니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해가 가만히 듣고 있다 대답하길, "내가 온 세상 훤히 비춰 훌륭하기는 하지만 구름이 나와서 나를 덮어 버리면 그만 빛을 잃고 컴컴해진다오. 구름이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하니까 구름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하시오." 두더지 내외가 들어 보니까 옳다구나! 그 말이 딱 맞다 싶었지. 그때 두둥실 구름이 나타났어. 두더지 내외는 얼른 구름한테 다가가서 말했지. "우리가 예쁜 딸을 두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힘센 사위를 얻어 주려고 해한테 물어봤더니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다고 하니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그랬더니 구름이 이렇게 대답했어. "내가 해를 덮어 그 빛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와서 나를 불어 버리면 그만 힘없이 날아가 버리오. 바람이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하니까 바람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하시오." 두더지 내외가 듣고 보니 옳구나, 그 말이 딱 맞다 싶었지. 그때 거센 바람이 후욱후욱 불며 지나가. 두더지 내외가 바람한테 달려가 말했지. "우리가 예쁜 딸을 두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힘센 사위를 얻어 주려고 구름한테 물어봤더니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다고 하니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바람이 가만히 듣고 있다 대답했어. "나는 구름을 불어서 멀리 쫓아 버리는 힘이 있지만 돌로 만든 은진 미륵만은 아무리 날려 보내려 해도 꿈적도 하지 않는다오. 은진 미륵이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하니 은진 미륵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하시오." 두더지 내외는 다시 오던 길을 돌아 몇 날 며칠 몇 달 삼 년이나 걸려 땅 아래로 내려와 우뚝 서 있는 은진 미륵 앞에서 말했지. "당신은 해를 뒤덮어서 어둡게 하는 구름을 불어서 멀리 날려 보내는 바람보다 힘이 세다고 들었소.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니 부디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구려." 가만히 듣고 있던 은진 미륵이 어떻게 했냐고? 이렇게 대답했대. "나는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은진 미륵,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훌륭할지는 모르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발밑에 사는 두더지가 자꾸 땅을 파헤치고 있어 곧 넘어질 참이니 나보다 힘이 세고 훌륭한 것은 두더지 아니겠소. 두더지한테 가서 사위가 되어 달라 해 보시오." "옳구나! 멀리 갈 필요도 없었구나." 두더지 내외는 그제야 두더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훌륭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은진 미륵 밑에 사는 두더지 사위 하나 얻어 예쁜 딸과 혼례를 치러 주었다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세상의 중심! 두더지에서 해로, 해에서 구름으로, 구름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은진 미륵으로, 그리고 다시 두더지로. 최고의 사윗감을 찾아서 돌고 돌아 다다른 곳이 원래 자기가 서 있던 자리였어요. 먹이사슬을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두더지가 해를 이긴 셈이네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결말에서 좀 허망한 느낌을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에이,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던가요? 좋은 짝을 구하려고 힘들여서 먼 길을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헛고생을 했다고 말할 수가 있겠어요. 남은 게 없잖아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자기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가다가 곤경에 처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남의 손의 떡은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는 말이지요. 이 말이 참 그럴듯합니다. 이 이야기를 놓고서 말한다면, 어두운 땅속을 기어 다니는 두더지보다 은진 미륵이나 바람과 구름, 해 같은 것이 훨씬 크고 훌륭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아예 잡을 기회가 없었다면 모르지만, 힘들게 해와 바람, 구름을 만나고서 그냥 놓치는 건 좀 바보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 같으면 누가 뭐래도 해를 잡았을 거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어요. 만약 아이들이 이와 같이 말한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한번 이렇게 되묻는 건 어떨까요? "만약 두더지 처녀가 진짜로 하늘의 해하고 결혼했다면, 또는 바람이나 구름, 은진 미륵하고 결혼했다면 정말로 행복했을까?" 하고요. 과연 어땠을까요? 크고 멋진 짝을 얻었다는 성취감은 있을지 몰라도, 좋은 짝으로 어울려서 편안히 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뜨거운 해에 다가가려다가 몸이 데었을지도 모르지요. 바람에 훌쩍 날아갈 수도 있고요. 자기 분수를 알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꼭 이런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두더지는 자기가 보잘것없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저 거센 바람이 못 이기는 은진 미륵을 흔들어 넘어뜨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요. 우리 자신이 그렇게 힘이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남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온전한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더지의 저 긴 여행은 허튼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나 자신이 세상의 오롯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치는 소중한 각성의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깨달음 끝에 얻은 두더지 사위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위가 아니었을까요? 그림 속의 표정, 참 행복해 보이잖아요! |
소가 된 게으름뱅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게으름뱅이가 살았어. 얼마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누고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누고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그게 다였지. 하는 일이 또 있긴 했어. 마누라는 자식하고 먹고살려고 밭일하랴 바느질하랴 애를 쓰며 사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남의 솥 떼어다 팔아먹고, 소 몰아다 팔아먹고, 하물며 자식이랑 먹고 살 양식까지 낱낱이 다 팔아서 술 먹고 노름질이야. 이러니 마누라가 애를 태우며 어렵게 살았단 말이야. 어느 날도 게으름뱅이는 집에서 베 한 필을 찾아냈어. 큰아이 장가들 때 쓰려고 마누라가 농 밑에 고이 둔 것이지. 그걸 팔러 장에 가는 길에 고개를 하나 넘는데 어떤 영감이 앉아서 소 탈을 만들고 있더란 말이야. "그런 걸 쓸데없이 뭐하러 만듭니까?" "글쎄 만들어 두면 다 쓸데가 있다." "어디에 씁니까?" "이걸 뒤집어쓰면 세상이 참 편하고 걱정이 없다." 게으름뱅이는 노상 술을 먹고 노름을 하려니 돈이 쪼들려 만날 걱정이 많단 말이지. "그럼 내가 한번 써 봅시다." "안 되지. 쓸데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거참, 이 베 한 필 드릴 테니, 줘 보시오." 게으름뱅이는 소 탈을 낚아채 훌렁 뒤집어썼어.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네. 허리가 굽더니 네 발로 엎드리게 되고, 뿔이 불쑥 솟더니 온몸에 털이 수북이 덮였어. 기다란 꼬리가 휘휘 휘둘리고 툽툽한 발굽이 네 발끝에 돋아났지. 게으름뱅이가 순식간에 커다란 소가 된 거야. "못된 버릇을 싹 고쳐 주마. 어서 가자!" 영감은 다짜고짜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끌고 갔어. 안 가려고 버틸 때마다 영감은 사정없이 매를 때렸지. 음매. 음매. 게으름뱅이가 저는 소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나오는 건 소 울음소리지. 영감은 농부한테 소를 팔면서 요상한 소리를 했어. "이 소는 무밭 옆에 매지 마시오." 게으름뱅이는 무를 먹으면 죽나 보다 싶었어. 농부는 집에 가자마자 소를 부려 일을 시켰어. "이놈아, 어서 움직여! 할 일이 산더미야!" 온종일 짐을 나르고 밭을 갈아도 일은 끝이 없어. "아이고,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 짓은 못하겠다." 게으름뱅이가 투덜거리며 잠시라도 쉴라치면 어느새 철썩철썩 무서운 매가 날아오지.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해가 저물고 나서야 좁고 냄새나는 외양간에 몸을 뉘었어.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이라고는 푸석푸석한 짚풀뿐.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눈물만 흐르지. 날이 밝으면 농부는 어김없이 나와 일을 시켜. "이랴! 어서 가자, 어서!" 아침부터 어찌나 몰아치던지 해가 정수리에 오르자 눈이 핑핑 돌았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마침 저만치에 무 밭이 보였어. "저 무를 먹고 죽어야겠다." 게으름뱅이는 부리나케 무밭으로 달려갔어. 가서는 무를 막 베어 먹고 뜯어 먹고 뽑아 먹고 훑어 먹고 그랬어. 소가 되었으니 무를 와작와작 좀 잘 먹겠어? 게으름뱅이는 배가 불쑥 불러서는 잔디밭에 누워서 나 죽는다 잠이 들었어. 그런데 깨어나 보니 이상하기도 하지. 죽기는커녕 소 허물이 홀딱 벗겨져서 다시 사람이 되었지 뭐야? 사람이 된 게으름뱅이는 소 탈 만든 영감을 찾아 고개로 갔어. 고개 위에 가 보니 영감은 없고 그저 제가 들고 나온 베 한 필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 집으로 돌아오니 마누라가 물어.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왔소?" "아이고, 이 사람아, 내가 소 탈을 썼다가 소가 되었다네." 그랬더니 마누라가 이래. "아이고, 이 사람아, 마누라 말 안 들어도 소가 된단다." 그때부터 게으름뱅이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고 마누라 말도 잘 들으면서 탈 없이 잘 살았어. 사람들은 영감을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고 믿어서 그 고개를 여우 고개라고 불렀더래. 사람을 소로 만든 게으름뱅이. 만날 게으름만 부리다 이상한 영감한테 속아 소가 돼서 갖은 고생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예요. 그런데 해설 제목을 '사람을 소로 만든 게으름뱅이'라 했어요. 이 게으름뱅이가 사람을 소로 만들었다니, 이는 무슨 말일까요? 저 게으름뱅이 남자는 실제로 사람을 소로 만든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그렇게 만들었느냐면 주변 사람들을요. 특히 함께 사는 아내가 그렇지요. 생각해 보세요. 만날 게으름이나 피우고 술이나 먹으며 노름을 하는 저 남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아내는 늘 소처럼 일을 해야 했잖아요.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말이에요. 아무리 하소연을 해 봐야 '음매' 소리처럼 말은 통하지 않고 성화만 돌아오니 저 아내의 신세가 소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어요. 저 게으름뱅이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소 탈을 쓰고서 소가 됩니다. 그러고는 말도 안 통하는 상태에서 멍에를 쓴 채로 고된 일을 해야 했지요. 하소연을 해도 소용없이 매를 맞으며 사는 모습을 보자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나한테 저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건 그리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핀들핀들 놀면서 늘 남한테 기대어 살았으니 벌을 받아도 싸지요. 그 벌은 자기가 남한테 베푼 대로 당하는 것이 꼭 맞습니다. 이야기에서 영감이 게으름뱅이를 소로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서는 그 영감이 여우일 것이라고 했지만, 여우가 아니라 신령님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 남자는 소 탈을 쓰고서 소가 되잖아요? 저 게으름뱅이 남자는 명색은 인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어요. 사람 노릇을 통 못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저렇게 짐승으로 변해서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큰 변화가 있어야 하지요. '죽었다가 거듭나는 것'과 같은 변혁이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이 이야기에서 남자가 무를 먹고 죽은 듯 쓰러지는 것은 이를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그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짐승의 허물을 벗고서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저 집에 소 허물이 또 하나 생겨났을 것 같네요. 그간 소처럼 살았을 아내가 이제 허물을 벗었을 테니까 말이에요. 아, 허물이 그것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간 부모가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이 우울함이나 답답함이라는 허물을 훌쩍 벗을 수 있게 되었을 테니까요! |
왈랑 발랑 뎅데쿵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총각이 있었어. 장가도 못 가고 늙어 죽게 생겼건만 총각은 오늘도 짚을 꼬아 새끼줄이나 만들지.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내 짝이 없으려고!" 총각은 기다란 새끼줄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어. 이 나무 저 나무 새끼줄을 촘촘히 걸어 놓고 좁쌀 한 줌을 살살 뿌렸지. 참새나 몇 마리 잡아 구워 먹을 생각인 게야. 다음 날 아침, 그것도 그물이라고 새가 잡혔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씩이나 말이야. 그런데 새 우는 소리가 참 희한해. 그러거나 말거나 총각은 새를 굽겠다고 불을 피웠지. "깃털을 홀랑 벗겨 맛있게 구워설랑 한 마리는 내가 먹고 두 마리는 장에 가서 팔아야겠다." 그랬더니 새들이 울면서 말을 하지 뭐야. "살려 주세요! 깃털을 줄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새가 말을 하다니 거참, 신기한 일일세." 총각은 깃털을 하나씩 받고 새들을 풀어 주었어. 총각이 깃털을 들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바위 위에 앉은 노인이 말을 걸었어. "귀한 깃털이로고!" "어르신, 이 깃털에 대해 아세요?" "잘만 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깃털이지." 노인은 총각에게 깃털 쓰는 법을 요모조모 일러 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어. 산에서 내려온 총각은 목화 따는 처녀를 보았어. "야, 참 예쁘다! 내 각시 삼았으면 좋겠네." 처녀는 정승의 외동딸이었지. 총각이 가만 보고 있으려니 처녀가 나무 뒤에 숨어 오줌을 누네. '노인이 오줌 눈 자리에 깃털을 꽂으라고 했것다?' 처녀가 자리를 뜨자 총각은 오줌 눈 자리를 찾아 깃털 세 개를 꽂았어. 그날로 정승 집에서는 난리가 났어. 외동딸이 걸을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한 발 내디디면 왈랑! 또 한 발 내디디면 발랑! 다시 한 발 내디디면 뎅데쿵! 빨리 걸으면, 왈랑발랑뎅데쿵! 왈랑발랑뎅데쿵! 천천히 걸으면, 와알랑 바알랑 데엥데에쿠웅! 정승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하나뿐인 딸이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렸으니 말이야. 용하다는 의원을 죄다 불러들였지만 그럼 뭐해. 하나같이 고개만 갸웃거리다 돌아가는걸. 정승은 마지막으로 방을 써 붙였어.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고 말이야. 총각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승을 찾아갔어. "소인이 따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정승은 의심스러웠지만 해 보라고 했지. 총각은 병을 살핀답시고 외동딸의 손목을 잡고, 입안을 들여다보고, 앉아라 서라 누워라 기어라, 별별 걸 다 시켰어. 그러고는 정승에게 미리 만들어 둔 엉터리 약을 내밀었어. 말라비틀어진 밥풀딱지에 쑥을 넣고 콩콩 찧은 가루였지. "하루에 한 숟가락씩 아침저녁으로 사흘만 먹이십시오." 첫째 날, 총각이 깃털 하나를 쏙 뽑았어. 그러자 '뎅데쿵'은 어디 가고 왈랑 발랑 왈랑 발랑. 둘째 날, 총각이 깃털 하나를 또 쏙 뽑았어. 그러자 '발랑'도 사라져서 왈랑 왈랑 왈랑 왈랑. 셋째 날, 총각이 남은 깃털 하나를 쏙 뽑자 마침내 아무 소리도 안 나게 되었지. 총각은 이제 혼례를 올리겠거니 하고는 날마다 담 너머로 외동딸과 눈을 맞췄네. 그런데 웬걸, 하루는 정승이 총각을 부르더니 쌀자루와 돈 궤짝을 실은 수레를 하나 내주고는 가라네. "감히 내 딸을 넘봐? 어림없다, 이놈!" 외동딸이 발을 동동 굴러도 시침을 뚝 떼지 뭐야. 왈랑 발랑 뎅데쿵! 외동딸이 걸을 때 또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 총각이 다시 오줌 자리에 깃털을 꽂았거든. "여봐라, 빨리 가서 그 총각을 찾아오너라." 정승은 한숨을 내쉬었어. 정승 명령에 하인들이 총각을 데리러 갔어. 하지만 총각은 벌렁 드러누워 배짱을 부렸어. "혼례부터 올려 주어야 병을 고칠 것이오." 그리하여 혼례를 올리게 되었지. 정승은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 신랑이 된 총각은 좋아서 싱글벙글. 새색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나는데, 소리도 새색시를 닮아 부끄러워하더래. 혼례 다음 날, 총각은 깃털을 뽑아 바람에 날려 보냈어. "고맙다, 깃털아! 훠이훠이 잘 가거라!" 정승 딸과 혼인한 총각은 오래오래 잘 살았대. |
토끼의 재판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 호랑이도 말하던 시절 이야기야. 한 나그네가 먼 길을 가는데 어디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나그네는 누가 저리 서럽게 우나 궁금해서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았어. 가 봤더니, 커다란 구덩이에 호랑이가 빠져 있지 뭐야? "나그네님, 나그네님! 저 좀 살려 주세요!" 호랑이가 애타게 말했어. "살려 주고는 싶지만, 너를 꺼내 주었다가 나를 잡아먹으면 어쩌느냐?" "어찌 생명의 은인을 잡아먹겠습니까? 저를 믿고 제발 좀 꺼내 주십시오." 호랑이 말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나그네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지. "꺼내 주면, 정말 잡아먹지 않을 테냐?" "정말이고말고요! 믿어 주십시오." 그래 나그네는 통나무를 구해다 구덩이에 내려 주었어. 호랑이는 통나무를 타고 구덩이를 빠져나왔어. 그런데 호랑이가 갑자기 군침을 뚝뚝 흘리네. "아무래도 배가 고파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나그네는 까무러치게 놀랐지. 호랑이가 그 커다란 입을 벌리고 달려들 참이야. 나그네가 급히 소리쳤지. "자, 잠깐! 재판이나 해 보고 잡아먹으려무나!" "뜬금없이 웬 재판?" 나그네는 뒤편에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가리켰어. "저 느티나무한테 물어나 보자꾸나." 호랑이는 삐쭉거렸지만 느티나무 앞으로 갔어. 나그네가 느티나무에게 넙죽 절하며 물었지. "느티나무님 느티나무님, 재판 좀 해 주시우.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를 살려 줬더니 나를 잡아먹겠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그런 법이 있지. 냉큼 잡아먹어라!" 느티나무 대답에 나그네는 얼이 빠지고 말았어. "사람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열매를 따 먹지만 고마운 줄을 모른다. 그저 나무를 베어 빨래판이나 만들고 땔감으로 쓰려고만 하지. 사람 따위는 잡아먹어도 된다!" 호랑이는 얼씨구나 입을 쩍 벌리지. 나그네가 얼른 소리쳤어. "잠깐! 저 바위에게도 물어보자." 나그네는 물가에 있는 큰 바위에게 넙죽 절하며 물었어. "바위님 바위님, 재판 좀 해 주시우.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를 살려 줬더니 고마운 것도 모르고 나를 잡아먹겠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그런 법이 있지. 냉큼 잡아먹어라!" 바위의 대답에 나그네는 놀라 자빠질 판이지. 사람은 물놀이를 하며 바위에 옷가지를 얹고 이 바위 저 바위 올라타며 놀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른다. 그저 바위를 쪼개어 절구나 만들고 댓돌로 밟아 댈 생각만 하지. 사람 따위는 잡아먹어도 된다! 나그네는 이제 꼼짝없이 잡아먹히게 생겼지. 그때 저만큼 토끼 한 마리가 깡충깡충 뛰어갔어. 나그네가 호랑이한테 울며불며 매달렸지. "마지막이다, 호랑이야. 저 토끼한테 한 번만 더 물어보자!" 호랑이는 느긋하게 그러라고 했지. "토끼님, 토끼님! 이런 법이 어디 있수?" 나그네는 토끼한테 자초지종을 말했어. 토끼가 다 듣고 나더니, "듣기만 해서는 모르겠으니 상황을 보여 주세요." 그러네. 그랬더니 성질 급한 호랑이가 풀쩍 구덩이에 뛰어들며 말했어. "아, 내가 이렇게 구덩이에 빠졌다니까." 토끼는 구덩이 속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어. "통나무는 원래 있었고요?" "아니, 없었지!" 나그네는 통나무를 꺼냈어. "아, 맨 처음에 이렇게 된 거로군요?" 토끼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끄덕. 그러더니 구덩이 속 호랑이한테 말하지. "은혜도 모르는 호랑이야, 너는 사냥꾼이나 기다리려무나." 그러고는 깡충 뛰어가더래. 호랑이는 다시 꺼내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십년감수한 나그네는 태연스레 제 갈 길을 갔어. 그 호랑이, 아직도 거기 있나 몰라. |
현명한 원님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고을에 슬기로운 원님이 있었어.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원님은 척척 풀어 주었지. 하루는 두 사람이 옥신각신 다투며 원님을 찾아왔어. "원님, 제 억울한 이야기 좀 들어 주십시오!" "담 너머에서 소고기 굽는 냄새가 폴폴 풍겨 오길래 냄새 좀 맡았을 뿐인데 이 사람이 돈을 내라지 뭡니까!" 비실비실 가난한 총각이 먼저 입을 열었어. 그러자 부자 영감이 점잔을 빼며 말했지. "냄새만 맡았으면 제가 돈을 내라겠습니까? 이 사람이 그 냄새를 맡고 오래 앓던 병이 싹 나았다니, 병 고친 값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요." 두 사람 얘기를 곰곰이 듣던 원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병이 나았으면 당연히 값을 치러야지." 원님의 말에 부자 영감은 활짝 웃고 총각은 울상이 되었어. 총각은 하는 수 없이 없는 돈 탈탈 털어 원님에게 바쳤지. 부자 영감은 얼른 돈을 받으려고 두 손을 쭉 내밀었어. 그런데 원님은 돈을 내주진 않고 짤랑짤랑 흔들어 보이더니, 이렇게 말하네.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냄새만 맡은 값이니 너도 돈을 만지지는 말고 소리만 들어라!" 원님의 말에 총각은 헤벌쭉 웃고 부자 영감은 죽상이 되었어. 고을 사람들은 원님의 판결을 듣고 한목소리로 말했지. "역시 우리 원님은 지혜로워. 암, 그렇고말고!" 그러던 어느 날, 고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비단 장수가 망주석 옆에 비단을 내려놓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비단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거야. "혹시 커다란 비단 짐 짊어진 사람 못 보셨소?" 비단 장수 울먹울먹, 고을 곳곳 다니며 물어보았지만 비단 도둑 봤단 사람이 하나 없어. 그래도 다들 비단 장수가 딱했던지 이렇게 일러 주네. "관아로 가 봐요. 우리 원님이 해결 못할 문제는 없으니." 비단 장수는 당장 관아로 달려갔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정말 아무도 없었느냐?" "무덤 옆이라 있는 거라곤 망주석뿐이었습니다." 비단 장수의 얘기를 곰곰이 듣던 원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그렇다면 망주석은 비단 훔쳐 간 도둑을 보았겠구나. 당장 망주석을 잡아 오너라!"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비단 장수도 나졸들도 어안이 벙벙. 원님 명령인데 별수 있나. 나졸들은 우르르 몰려가 망주석을 파냈어. 무거운 망주석을 어깨에 메고 땀 뻘뻘 흘리며 관아로 가는데 금세 고을 사람들이 몰려들었지. "말 못하는 돌덩어리로 뭘 하시려나. 모두 구경이나 가 보세." 망주석 재판을 보겠다고 너도나도 관아로 몰려갔어. 망주석을 관아 마당에 세워 놓고 재판이 시작되었어. "망주석은 당장 비단 도둑이 누군지 말하라!" 원님이 불같이 호령해도 망주석은 잠잠, 돌덩이가 입을 열 리 없지. "오냐, 말을 하지 않겠다니 어쩔 수 없구나. 저놈이 입을 열 때까지 매우 쳐라!" 돌덩이에다 곤장까지 치라니 엉뚱한 재판에 여기저기서 키드득거렸지. 나졸들이 망주석을 엎어 놓고 곤장을 치네. "한 대요! 두 대요! 세 대요!" 곤장 소리 따라 구경꾼들 웃음소리가 큭큭. 돌 때리는 나졸들도 힘이 빠졌어. 그러다 그만 곤장이 부러져 버리지 뭐야. 구경꾼들도 더는 참지 못하고 파하하하하 관아가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렸지. "감히 재판을 보고 웃다니. 모조리 감옥에 가두어라!" 원님의 천둥 같은 목소리에 구경꾼들 웃음소리가 뚝 그쳤어. "원님,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추수철이라 농사일이 바쁩니다요." 구경꾼들은 땀나게 빌고 또 빌었지. 원님은 못 이기는 척 너그럽게 말했어. "사흘 안에 비단 한 필씩을 가져오면 없던 일로 하겠느니라." 구경꾼들은 비단을 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 한꺼번에 그 많은 비단을 어디서 구하나? "비단 구하기가 별 따기보다 어렵구나!" 한숨 소리만 푹푹 쏟아졌지. 사흘째 되는 날, 관아 마당에는 비단이 산처럼 쌓였어. 원님이 비단 장수를 불렀어. "이 중에 네가 잃어버린 비단이 있느냐?" 비단 장수가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신이 나서 말했어. "네, 이것도 제 비단, 저것도 제 비단입니다." 그 말에 원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이 비단들을 판 장사꾼을 당장 잡아들여라!" 비단을 판 장사꾼, 그놈이 바로 도둑이었던 거야. 원님은 구경꾼들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비단 장수에게는 비단을 찾아 주었어. 도둑은 당연히 곤장을 맞고 옥에 갇혔지. 고을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입을 모아 말했어. "역시 우리 원님은 대단해. 암, 그렇고말고!" |
은혜 갚은 두꺼비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마을에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녀가 있었어. 아버지는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소녀는 힘껏 집안일을 도우며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았단다. 어느 날 소녀가 부엌에서 일할 때였어. 두꺼비 한 마리가 떡하니 부뚜막 위에 앉아 있지 뭐야. 소녀는 두꺼비와 눈을 맞추며 소곤소곤 물었단다. "배고프니, 두껍아?" 두꺼비는 대답이라도 하듯 눈을 껌벅거렸어. 소녀가 솥에 남은 밥을 긁어 주었더니 두꺼비는 우물우물 꿀꺽 맛있게도 먹더란다. 그때부터 두꺼비는 아예 그 집 부엌에서 살았어. 소녀는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밥을 챙겨 주었지. 소녀가 '두껍아' 부르면 두 눈을 껌벅껌벅, 도란도란 얘기를 들려주면 얼굴을 움찔움찔하더란다. 두꺼비가 아니라 꼭 귀여운 강아지 같았다니까. 해가 가고 달이 바뀌어 여러 해가 흘렀어. 두꺼비는 부쩍부쩍 자라 삽살개만큼 커다래졌어. 소녀는 열여섯, 어여쁜 처녀가 되었지. 어느 날 밤, 마을 촌장 집 사랑방에 열여섯 살 딸을 둔 아버지들이 둘러앉았어. 촌장이 통을 내밀며 말했어. "자, 제비를 하나씩 뽑으시오." 마을에는 큰 신당이 있어 삼 년마다 제사를 지내는데 열여섯 살 소녀를 제물로 바쳐야 해. 안 그러면 마을에 나쁜 일이 많이 생긴대. "어이쿠, 조상님!" 제비를 펴 보던 소녀의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했어. 소녀가 제물로 뽑히게 된 거야. 제사를 지내는 날 아침, 소녀네 마당에는 쌀가마니와 곡식 자루가 쌓여 갔어.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고 보내 준 거야. 마루에는 곱게 개킨 혼례복이 놓였지. 소녀가 제물로 갈 때 입어야 하는 옷이었단다. 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어. 소녀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어. 소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두꺼비에게 마지막 밥을 주었어. "이제 누가 너한테 밥을 준다니?" 툭툭, 참고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두꺼비의 얼굴에 떨어졌단다. 두꺼비는 눈을 껌벅이며 소녀를 빤히 쳐다보았지. 소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방울방울 끝이 없었어. 신당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어. 혼례복을 차려입은 소녀는 아버지께 절을 올렸지. "아버지, 오래도록 평안하세요." 이윽고 사람들이 소녀가 탄 가마를 메고 집을 나섰어. 아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고 울었더란다. 가마는 천천히 마을 신당으로 향했지. 그런데 그 뒤를 삽살개만 한 두꺼비가 엉금엉금 따라가는 거야. 마을 사람들은 어두컴컴한 신당 안에 소녀를 홀로 남겨 두고 문을 꼭 닫았어. 그러고는 빈 가마를 메고 서둘러 돌아갔단다. 소녀는 웅크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었어. 이윽고 달이 떠서 신당 안이 어슴푸레해졌을 때야. 갑자기 스르륵스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소녀는 벌벌 떨며 사방을 둘러보았어. 세상에, 천장에서 커다란 지네가 꿈틀꿈틀 내려오지 뭐야. 소녀는 무섭고 놀라서 으악 비명을 질렀어. 바닥으로 내려온 지네가 입을 크게 벌렸어. 금방이라도 소녀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니까. 바로 그때 꽈당,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어. 문이 확 열리면서 두꺼비가 구르듯이 안으로 들어왔지. 지네가 크르릉 소리를 내며 두꺼비를 향해 붉은 연기를 내뿜었어. 두꺼비도 질세라 누런 연기를 내뿜으며 맞서 싸웠어. 쉴 새 없이 뿜어 나오는 누런 연기 붉은 연기가 뱀처럼 구불구불 뒤엉키며 신당 안을 가득 채웠단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두꺼비를 응원했지. '두껍아, 힘내렴. 제발 힘내렴.' 그러다 독한 연기에 숨이 막혀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다음 날 아침, 소녀가 깨어나 신당 안을 둘러보니 저만치 두꺼비와 지네가 널브러져 있지 뭐야. "두껍아, 눈 좀 떠 봐, 두껍아."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철철 흘러내렸어. 그때 마을 사람들이 신당 안으로 들어왔어. 소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려고 온 거야. 그런데 소녀가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깜짝 놀라지. 소녀는 눈물을 씻으며 간밤의 일을 이야기했단다.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두꺼비를 정성껏 묻어 주었어. 그 뒤로 신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사라졌어. 살아 있는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게 된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았지. 밥을 먹여 기른 두꺼비가 은혜 갚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말이야. |
손 없는 색시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에 한 처녀가 살았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새어머니를 맞았지. 새어머니는 아들을 셋이나 데리고 들어와 처녀만 못살게 굴고 미워했어. 늘 어떻게 쫓아낼까 궁리를 거듭했단다.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탔어. "저 아이가 패물을 훔쳤구나. 당장 쫓아내라." 새어머니가 외치자 그 아들이 거들었어. "도둑질하는 애는 버릇을 고치게 손을 자르고 쫓아내요." 새어머니는 그게 좋겠다며 처녀 손을 자른 뒤 내쫓았어. 쫓겨난 처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어. 어느 집 담장 밑을 지날 때였지. 머리 위로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네. 배가 고팠던 처녀는 감을 따 보려 했어. 하지만 손이 없으니 될 리가 있나. 아무리 해도 안 되자 눈물이 났어. 산책을 나온 그 집 도령이 처녀를 보았어. "뉘시오?" 울던 처녀가 벌떡 일어섰어. "감을 하나 딸까 했는데 손이 없어서." 보아하니 배가 고픈 모양이야. 도령은 처녀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지. 그날부터 처녀는 도령의 방에서 지내게 되었어. 도령이 세수도 시켜 주고 밥도 먹여 주고, 얼마나 살뜰히 보살피는지 몰라. 도령은 처녀를 병풍 뒤에 숨겨 놓았어. 부모가 알면 큰일 나거든. 집안사람들은 도령의 세숫물이 전보다 흐리고 밥도 거르거나 남기는 일이 없으니 이상하다고 여겼어. 해서 하루는 몰래 도령의 방을 지켜봤네. 그랬더니 도령이 웬 처녀를 병풍 뒤에 숨겨 두고 있는 거야. "이것도 다 네 팔자인가 보다. 둘이 혼인하도록 해라." 부모는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이 처녀를 며느리로 맞았어. 색시 배 속에 아이가 생겼을 때 신랑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게 되었지. “어머님 아버님, 아이를 낳거든 꼭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색시는 신랑이 떠나고 얼마 있다 아이를 낳았어. 부모는 하인을 시켜 편지를 보냈지. 편지에는 어미와 달리 양손도 있고 잘생긴 아들을 낳았다고 썼어. 한양을 가던 하인은 날이 저물자 우연히 색시 친정에서 자고 가게 되었어. 새어머니는 하인이 잠들자 몰래 편지를 꺼내 읽었지. 아까 편지가 살짝 삐져나온 것을 눈여겨보았거든. '어미가 양손이 없다고? 고것이 틀림없구나.' 새어머니는 편지를 고쳐 써서 바꿔치기했어. 편지엔 흉측한 아들을 낳았으니 어미와 아이를 쫓아내자고 썼지 뭐야. 그것도 모르고 하인은 한양에 가서 편지를 전했어. 편지를 읽은 신랑은 깜짝 놀랐지. 그러곤 아내와 아이를 걱정하며 답장을 썼어. '그래도 제가 돌아갈 때까지 내쫓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답장을 가지고 가던 하인은 다시 색시 친정에 묵었어. 새어머니는 또 몰래 편지를 읽고는 당장 어미와 아이를 쫓아내라고 고쳐 써넣었지 뭐야. 아들의 답장을 본 부모는 어쩔 줄 몰라 했어. "그렇게 아끼던 색시를 쫓아내라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네." "아들이 하자는 대로 합시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부모는 색시에게 고운 옷을 입히고 떡을 잔뜩 싸 주었어. 색시는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났지. 아이를 업고 대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색시는 다시 여기저기 떠돌았어. 하루는 산길을 걷는데 목이 몹시 말랐지. ‘저기 샘이 있네. 목이나 축이고 가자.' 색시는 급한 마음에 몸을 구부려 물을 먹으려고 했어. 그러다가 등에 업힌 아이가 쑥 빠져나와 풍덩 물에 빠지고 말았지. "아, 아가, 우리 아가!" 아이를 건지려고 해도 손이 없으니 잡힐 리가 있나. 그때였어. 샘 바닥에서 양손이 쓱 올라오더니 손목에 철썩 붙었어. 색시는 얼른 아이를 건졌어. 그러고는 양손을 번갈아 보았지. '이게 꿈이야 생시야?' 손이 생긴 색시는 주막에서 일을 하며 살게 되었어. 신랑이 집에 돌아와 보니 색시가 없는 거라.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잖습니까?" "무슨 소리냐, 네가 쫓아내자고 하지 않았느냐?" 신랑은 무슨 일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 그래 색시를 찾는다며 엿장수가 되어 떠났지. 신랑이 몇 해를 떠돌다 어느 주막집엘 들렀지. 샘터에서 물 긷는 여인을 보니 꼭 아내 같아. 색시도 엿장수를 보자니 딱 신랑인 것 같았지. 아이도 엿장수를 잘 따르지 뭐야. "네 어머니가 누구냐?" 신랑은 아이를 따라 부엌으로 가서 아내를 만났어. "여보, 정말 당신이 맞구려!" 두 사람은 얼싸안고 울었어. 그날 밤 부부는 이야기를 하느라 밤새는 줄도 몰랐어. 그러고는 앞뒤 사정을 알게 되었지. 신랑은 색시의 친정을 찾아갔어. 새어머니의 나쁜 짓을 모두 밝혀내고 혼쭐을 내 주었지. 색시의 아버지도 사실을 알고 새어머니를 내쫓아 버렸대. 색시는 어떻게 되었냐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딸 낳고 잘 살았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말이야. |
꾀 많은 하인 장글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부자가 돈을 아끼느라고 그 큰 집에 하인을 하나만 두었어. 장글대가 바로 그 하인이지. 아, 이 주인 욕심이 하늘을 찔러. 종일 나무해라, 마당 쓸어라, 지붕 고쳐라 부려 먹고는 번번이 장글대를 쫄쫄 굶기지 뭐야. 어느 날 주인이 서울 가는 길에 장글대를 데려가는데 저 먹을 밥만 달랑 챙기네. “주인님, 점심때인데 밥을 먹고 가지요.” 아침도 못 먹고 나선 장글대는 몹시 배가 고팠어. 아침 잘 먹고 나선 주인은 도리질하며 말했지. “아, 무슨 밥을 벌써 먹어. 어여 더 가자.” 장글대는 몇 번이고 보채다가 그랬지. “밥을 오래 두면 똥이 되니 그럽니다.” “야, 야, 더러운 소리 마라. 어찌 밥이 똥이 되누.” 장글대는 말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며 주인 점심밥을 아구아구 몰래 먹어 치웠어. 그러고는 얼른 똥을 뿌지직 싸서 밥그릇에 담아 놓았지. 한참 만에 배가 고파진 주인이 밥그릇 뚜껑을 열고는 놀라 자빠졌지. “윽! 똥이다, 똥!” “거보세요, 밥을 오래 두면 똥이 된다니까요.” 주인은 점심도 못 먹고 쫄쫄 굶어야 했지. 서울에 다 왔을 때야. 주인이 장글대에게 심부름을 시켰어. “저기 주막에 가서 죽이나 한 그릇 사 와라.” 장글대는 냉큼 달려가 죽을 산 다음 더러운 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왔어. “아이고, 뭐하는 짓이냐?” “제 콧물이 빠져서 건져 내려고요.” “에, 더럽다, 더러워. 너나 먹어라.” 장글대는 신이 나서 뚝딱 해치웠어. “내 직접 가서 죽을 사 먹고 오마.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니 말을 잘 보고 있어라.” 주인이 자리를 뜨자마자 장글대는 말을 냉큼 팔아 치웠어. 그러고는 코를 감싸고 고삐를 쥔 채 납작 엎드려 있었어. 주인이 돌아와서 말은 어딨냐고 고래고래 소리쳤지. “전 코 베어 갈까 봐 코를 감싸 쥐고 있는데 누가 고삐만 끊고 말을 채어 갔지 뭐예요.” ‘이놈을 더 데리고 있다간 큰일 나겠구나.’ 주인은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하다가 장글대 등에 여차여차 글을 몇 줄 썼어. “네 등에 편지를 썼으니 집에 가자마자 내 아들한테 보여라.” 뜻밖에 집으로 돌아가게 된 장글대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어갔지. 장글대가 집으로 가다 아이 업고 떡방아 찧는 아낙을 만났어. “내가 아이를 안을 테니 편히 찧으세요.” 아낙이 아이를 맡기고 덩더쿵덕 떡을 다 찧었지. 장글대는 떡을 꺼내고는 절구에 아이를 내려놓았어. 그러고는 아낙이 아이를 꺼내느라 정신이 없는 새 떡을 들고 냅다 달아났지 뭐야. 장글대가 집으로 가다 꿀을 파는 사내를 만났어. “꿀을 한 단지 살 테니 이 떡에 부어 보세요.” 사내가 꿀을 붓자 장글대는 괜한 트집이야. “에이, 꿀이 한 단지가 안 되니 안 살래요. 도로 담아 가세요.” 하지만 이미 떡에 꿀이 속속들이 밴 다음이었지. 장글대는 달콤한 꿀떡을 들고 자리를 떴어. 장글대가 집으로 가다 가다 산등성이에 이르자 배고픈 스님이 쭈그려 앉아 있었어. “스님, 떡 한입 줄 테니 내 등에 쓰인 걸 읽어 주세요.” 꿀떡을 한입 꿀떡 삼킨 스님이 말했어. “쯧쯧, 가자마자 때려죽이라고 돼 있습니다그려.” “아이고, 스님. 남은 떡 다 줄 테니 부르는 대로 다시 써 주세요.” 꼴깍, 스님은 남은 꿀떡이 더 먹고 싶었지. 그래서 불러 주는 대로 이러저러하라고 써 주었어. 장글대는 집에 가서 주인 아들에게 등을 내보였어. “주인님이 제 등에 편지를 써 주셨어요.” ‘장글대 덕에 일이 다 잘되었으니 곧바로 누이와 혼인시켜라.’ 뭐 어째, 주인 아들은 장글대와 누이를 후닥닥 혼인시켰지, 뭐. 장글대는 색시와 알콩달콩 잘 살았어. 한 달 뒤 일을 마친 주인이 돌아왔어. 죽은 줄 알았던 장글대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지. 게다가 딸과 혼인한 걸 알고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눈알이 막 돌아가네. 그래서 장글대가 쿨쿨 잠든 새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팬 뒤 궤짝에 냅다 처넣었어. “이 궤짝을 바다에 던져 버려라.” 주인 아들은 뭐가 든 줄도 모른 채 궤짝을 지고 바다로 갔어. “아이고, 무거워. 주막에서 좀 쉬었다 와야겠다.” 주인 아들이 궤짝을 내려놓고 간 새 장글대는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어. 마침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걸 보더니 소리쳤어. “내 눈은 번쩍! 내 눈은 번쩍! 내 눈은 번쩍!” 장님은 난데없는 소리에 우뚝 멈춰 섰어. “내 눈은 번쩍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저는 원래 장님이었는데 이 궤짝에 들어앉아 주문을 외었더니 눈이 번쩍 떠지지 뭐예요?” “아, 그래요? 제발 나도 들어가게 해 주시우.” 장님은 더듬거리며 궤짝을 열어 주고는 자기가 대신 들어갔어. 장글대는 몸을 숨긴 채 주인 아들을 살금살금 뒤따랐어. 주인 아들은 궤짝을 바다에 풍덩 던지고 돌아섰지. 장글대는 부랴부랴 궤짝을 건져 내 흠뻑 젖은 장님을 꺼내 주었어. 그러고는 어질어질, 장님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멀리 내뺐지. 며칠이 지났어. 장글대는 말쑥하게 차려입고는 싱글벙글 밝은 얼굴로 집으로 갔어. 장글대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자 주인은 깜짝 놀랐어. “아니, 어찌 된 일이냐?” 장글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 “아아, 바닷속 용궁을 다녀왔지요. 얼마나 좋은지 눌러 살고 싶은 걸 꾹 참고 돌아온 거예요.” 아, 장글대가 입만 열면 용궁 자랑을 어찌나 하는지 샘이 나서 속이 다 부글거릴 지경이야. 주인은 욕심이 뻗쳐 밤새 끙끙대다가 날이 밝기도 전에 몰래 바다로 갔지 뭐야. 그러고는 저 죽을 줄 모르고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어. 그 뒤로 아무도 주인을 보지 못했지. 장글대와 남은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고말고. |
혹부리 영감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커다란 혹이 하나 달린 혹부리 영감이 살았지. 오다가다 혹부리 영감을 만나면 사람들은 장난스레 인사했단다. 부리부리 혹부리, 혹부리 영감님! 디룽디룽 혹 속에 뭐가 들었수? 혹부리 영감은 그저 웃었지. 하늘 보고 웃고, 먼 산 보고 웃고, 아이들이 놀려 대도 웃고, 손가락질해도 웃고, 그냥저냥 웃으면서 살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혹부리 영감에게 볼일이 생겼더래. 굽이굽이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먼 길을 다녀오는데 그만 해가 꼴딱 넘어가더란다. "애고애고, 큰일이다. 깊은 산중에 사방은 캄캄한데 이를 어쩐담?" 그때 마침 저만치 산기슭에 깜박깜박 불빛이 비치는 거야.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더래. "휴우! 다행이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어야겠다." 혹부리 영감,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온몸을 쭉 뻗고 두 눈을 꼭 감았지. 그런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영 잠이 오질 않는 거야. "어째 으스스한 게 도깨비라도 나타날 것 같구나!" 오싹오싹 무서워진 혹부리 영감은 목청껏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 그러자 이게 웬일이니? 도깨비들이 우르르 들이닥치는 거야. 도깨비들은 혹부리 영감 노래에 맞춰 주위를 뱅뱅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더란다. 혹부리 영감은 하도 무서워서 납작 엎드렸지. 그러자 큰 방망이를 든 대장 도깨비가 불호령을 내리더래. "영감, 지금 뭐하는 게요? 계속 노래를 부르시오, 노래를!" 그러니 어쩌겠어? 혹부리 영감, 덜덜 떨며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지. 도깨비들은 밤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어찌어찌 새날이 밝아 혹부리 영감, 부르던 노래 딱 멈추었지. 그러니까 도깨비들도 춤을 딱 멈추더니 이렇게 묻더란다. "영감, 영감,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게요?" 슬그머니 장난기가 생긴 혹부리 영감, 이리저리 혹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대. "그거야 당연히 이 혹에서 나오지요. 이 혹이 바로 노래 주머니 아니겠소?" "그렇다면 영감, 그 노래 주머니를 우리에게 파시오!" 혹부리 영감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지. 뭐. 혹을 뗄 수 있었으면 벌써 떼고 살았게? 그런데 도깨비들이 다짜고짜 달려들더니만 혹을 뚝, 떼어 내네. 그러고는, "옜소, 노래 주머니 값!" 번쩍번쩍 보물이 가득 담긴 자루를 내던지고 가 버리더란다. 혹부리 영감, 그날로 커다란 혹 떼어 내고 큰 부자가 되었대. 그 소문 금세 퍼져 건넛마을 혹부리 황 영감도 들었지. 그러니까 욕심 많은 황 영감, 한밑천 단단히 잡을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들썩, 눈은 말똥말똥, 긴긴 밤 잠도 안 오고 가만있을 수가 없더래. 그길로 당장 도깨비를 찾아 나섰네. 산기슭 빈집에 들어가 어둑어둑 해 지길 기다려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른 거야. 밤이 깊자 노랫소리 들은 도깨비들이 또 우당탕 나타나더니, 황 영감 주위에 빙 둘러앉아 꼼짝도 않더래. '으흐흐흐! 나도 이제 곧 혹을 떼고 부자가 되겠군.' 욕심 많은 황 영감, 더욱더 신이 나서 노래노래 불렀지. 마침내 새날이 밝자, 큰 방망이를 든 대장 도깨비가 또 묻더란다. "영감, 영감,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게요?" 혹부리 황 영감, 옳다구나 대답했대. "그거야 물론 이 혹에서 나오지요. 이 혹이 바로 노래 주머니 아니겠소?" 그러자 도깨비들 벌컥 화를 내며, "이 거짓말쟁이! 이 혹이 노래 주머니라고? 옜다, 이것도 너 가져라!" 커다란 혹 하나를 더, 반대쪽에 철썩 붙여 놓고는 총총총 가 버리더래. 욕심 많은 혹부리 황 영감, 디룽디룽 커다란 혹을 두 개나 달고 어이구! 땅을 치며 통곡해도 소용이 없었단다. 혹 떼러 갔다 혹 붙여 온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지, 아마! |
까치와 여우와 왁새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곳에 까치가 살았어. 높다란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새끼 아홉 마리를 까서 키웠지. 하루는 건너 산골짝에 사는 여우가 찾아와서는 머리를 달싹거리며 말했어. "까치야, 네 새끼를 하나 주라. 안 그러면 올라가서 모조리 잡아먹겠다." 겁이 난 까치는 할 수 없이 새끼 한 마리를 나무 밑으로 내려 주었지. 모조리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여우는 헤헤거리며 새끼 까치를 물고 갔어. 그다음 날이었어. 여우가 찾아와서 새끼 한 마리를 또 달라지 뭐야. 까치는 기가 막혀서 못 주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여우는 또 모조리 잡아먹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어. 겁이 난 까치는 할 수 없이 또 새끼 한 마리를 내려 주었지. 여우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어갔어. 그다음부터 여우는 날마다 찾아와서 새끼 까치를 한 마리씩 빼앗아 갔어. 이제 새끼는 달랑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지. 까치는 너무 슬퍼서 아침부터 깍깍 구슬프게 울었어. 마침 왁새가 날아가다가 그 모습을 보았어. "까치야, 아침부터 왜 울고 있니?" "여우가 날마다 찾아와서 새끼 한 마리를 안 주면 모두 잡아먹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주고 주고 했어요. 이제 달랑 한 마리 남았는데 이것마저 빼앗길 생각을 하니까 서러워서 자꾸 눈물만 나네요." 까치가 훌쩍이며 말했지. 이런, 이런, 이 미련한 녀석아! 새끼를 주긴 왜 주니? 여우는 누운 나무도 못 오르는데 서 있는 나무를 어떻게 오르니? 여우가 내일 또 와서 새끼를 달라고 하면 못 준다고 해. 올라올 수 있으면 올라와서 잡아먹어 보라고. 왁새가 혀를 끌끌 차며 날아갔어. 그다음 날 여우가 또 찾아와서 거들먹거리며 말했지. "까치야, 남은 새끼 한 마리도 마저 주렴. 안 그러면 올라가서 너까지 잡아먹을 테니!" 그러자 까치는 배에 힘을 꽉 주고 말했어. "예끼, 이놈! 누운 나무도 못 오르는 놈이 서 있는 나무에 오르겠다고? 어디, 올라올 테면 올라와 봐라!" 그 말을 들은 여우는 얼굴이 벌게졌어. '이놈의 까치! 당장 올라가서 잡아먹어 버릴 테다!' 여우는 이를 악물고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 하지만 몇 발짝 올라가지도 못하고 바동바동하다가 툭 떨어지더니 팩 쓰러졌어. 한참 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여우는 벌떡 일어나서 씩씩거리며 말했어.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해 주던?" 까치는 여우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그래서 어깨를 쫙 펴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지. "누군 누구야? 건너 산골짝에 사는 왁새지." "이놈의 왁새, 다 된 밥에 재를 뿌렸것다." 먹이를 놓쳐서 분한 여우는 건너 산골짝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어. 그때 왁새는 냇물 바위틈에서 버들치를 잡고 있었어. 여우는 살금살금 왁새 곁으로 다가가 펄쩍 뛰어올라 확 덮쳤어. 여우가 꽉! 물려고 하자 화들짝 놀란 왁새는 왝! 하고 날아갔어. 그러다가 그만 찍! 하얀 똥을 싸고 말았어. 그런데 이 똥이 하필이면 여우 콧등에 처러럭 떨어졌지 뭐야. 그때부터 여우 콧등이 하얗게 되었대. |
이상한 나뭇잎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옛적에 마음 착한 소금 장수가 살았어. 하루는 소금 짐을 지고 산을 넘어가는데 다리가 너무 아픈 거야. 그래서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무심코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봤더니 어이쿠,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하네. 그런데 이 사마귀의 모습이 남달랐어. 글쎄, 모습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거야. 이마에 나뭇잎을 붙이면 안 보이고 나뭇잎을 떼면 보이지 뭐야. 그러니 매미가 어떻게 도망치겠어. 사마귀한테 잡아먹힐 수밖에. 소금 장수는 하도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었지. 그때였어. 사마귀가 붙였던 나뭇잎이 팔랑, 소금 장수 손에 떨어지네. 사마귀는 먹이에 정신이 팔려 신경 쓰지 않았어. 소금 장수는 조심조심 나뭇잎을 집어 들고 나무 위를 쳐다봤지. 사마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어. 소금 장수는 나뭇잎이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주머니 속에 잘 넣어 두었지. 소금 장수는 이 동네 저 동네 소금을 팔고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왔어. 나뭇잎을 이마에 붙이고 마당으로 들어섰지. 그런데 아무도 알은척을 안 하는 거야. "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한테 인사도 없냐?" 소금 장수의 아내와 아이들은 화들짝 놀랐어. 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은 안 보이잖아. 소금 장수는 나뭇잎을 붙였다 떼었다 했지. 나뭇잎을 붙이면, "아이고, 우리 아버지 어디 가셨나." 나뭇잎을 떼면, "아이고, 우리 아버지 여기 계셨네." 붙이면 안 보이고 떼면 보이고, 붙이면 안 보이고 떼면 보이고. 소금 장수가 나뭇잎을 붙이고 뗄 때마다 식구들은 왁자지껄 정신이 없었지. 소금 장수는 이제 소금을 팔러 다닐 필요가 없었어. 그 대신 나뭇잎을 이마에 붙이고 산짐승을 잡으러 다녔지. 하루는 노루 한 마리, 하루는 토끼 두 마리, 하루는 꿩 세 마리. 소금 장수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짐승을 잡았어. 짐승을 팔아서 쌀도 사고 옷도 샀지. 나뭇잎 덕분에 소금 장수는 잘 먹고 잘살게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욕심쟁이 영감이 소금 장수를 찾아왔어. "아니, 소금도 팔지 않으면서 어찌 이리 잘살아?" 소금 장수는 어찌어찌하여 신기한 나뭇잎을 얻었는지 말해 주었지. 욕심쟁이 영감은 한달음에 나무를 찾아갔어. 이제나저제나 사마귀가 나타나길 기다렸지. 하지만 사마귀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어느덧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어.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욕심쟁이 영감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흔들었어. 나뭇잎이 모조리 떨어졌지. "분명히 이 나무라고 했으니 이 가운데 있겠지." 욕심쟁이 영감은 나뭇잎을 싹싹 긁어모아 자루에 담았어. 욕심쟁이 영감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불렀어. 그리고 가마니를 탈탈 털어 나뭇잎을 쏟아 냈지. “여기에 보물 나뭇잎이 있으니 어서 찾자고. 자, 내가 보여, 안 보여?” 영감은 나뭇잎 하나를 골라 이마에 붙이고는 아내에게 물었어. "그럼 보이지 안 보이우?" 영감은 다른 나뭇잎을 이마에 붙였어. 내가 보여, 안 보여? 보이우. 내가 보여, 안 보여? 보이우. 내가 보여, 안 보여? 보이우.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영감은 계속 물었어. "내가 보여, 안 보여?" 지칠 대로 지친 아내는 홧김에 대답했지. "아이고, 안 보이우!" 그러고는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진 거야. "우하하하! 드디어 보물 나뭇잎을 찾았다, 찾았어!" 욕심쟁이 영감은 기쁨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 나머지 나뭇잎은 모두 불태워 버렸지. 욕심쟁이 영감은 아침도 안 먹고 시장에 갔어. 물론 이마에 떡하니 나뭇잎을 붙이고 말이야. 영감은 맨 먼저 쌀가게로 갔어. 보란 듯이 쌀자루를 메더니 말없이 나왔지. 쌀가게 주인이 단박에 영감의 뒷덜미를 낚아챘어. "이런 도둑놈을 봤나. 벌건 대낮에 쌀자루를 훔치다니." 욕심쟁이 영감은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 두들겨 맞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뭐. "거참, 이상하네. 내가 보이나?" 욕심쟁이 영감이 이번에는 비단 가게로 갔어. 비단을 어깨에 메고 몸에 칭칭 감더니 말없이 나왔지. 이 모습을 본 비단 가게 주인이 영감 멱살을 잡았어. "이런 도둑놈을 봤나. 벌건 대낮에 비단을 훔치다니." 욕심쟁이 영감은 흠씬 두들겨 맞았어. 죽지 않을 만큼만 말이야. 보이지 않아도 표가 나는 법. 이상한 나뭇잎. 도깨비감투나 투명 인간의 망토를 연상시키는 신기한 물건이에요. 동양과 서양에 공통으로 투명 인간 이야기가 있고 소설이나 만화, 영화로도 그런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걸 보면 거기 사람들의 원초적인 욕망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다는 것, 짜릿하잖아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행동에 제약받기도 하는데,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 봐요. 그러니까 이 '이상한 나뭇잎'이라는 화소에는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마음껏 움직이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신비한 힘을 지닌 나뭇잎을 얻은 저 소금 장수는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태가 됐으니 어디 가서 큰돈이나 대단한 보물이라도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산에 가서 토끼나 꿩이나 산짐승 잡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가는 일이 그만큼 힘들었었나 봐요. 옛사람들한테 생계를 이어 가는 건 그렇게 절박하고도 힘든 일이었지요. 어떻든 그 소박함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저 소금 장수가 다른 사람들한테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산에서 꿩이나 토끼, 노루를 몇 마리씩 잡아 온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잖아요? 소금 장수는 여전히 자기 힘으로 먹고사는 길을 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자기 힘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잘 보살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나뭇잎을 얻자, 그 소망을 맘껏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평소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지요. 욕심쟁이 영감은 어떠한가요? 자기 모습이 남한테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한 영감이 한 일은 남의 쌀자루나 비단을 훔쳐내는 일이었어요. 이 영감은 늘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더 차지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욕심이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흉측한 모습으로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는 거예요. 만약 이 영감한테 가짜가 아닌 진짜 요술 나뭇잎이 있었다면 크게 성공했을까요? 그러지 못했을 것 같아요.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다 표가 나는 법이지요. 사람의 속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숨겨도 욕심은 다 보이게 마련이에요. 만약 우리한테 요술 나뭇잎이 있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게 될까요? 이거 꽤 무서운 질문이랍니다. 속마음이 바로 드러나니까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이 이상한 나뭇잎은 '보이는 걸 안 보이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 '안 보이는 걸 보이게 만드는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이한테도 한번 살짝 물어보세요. "너한테 이런 요술 나뭇잎이 있다면 무얼 하고 싶니?" |
보리밥 장군 | 의사소통 | 유아 | 탱글탱글 미끌미끌한 보리밥, 좋아하니? 옛날에 보리밥을 엄청 먹어 대는 사람이 있었대. 몸도 띵띵, 배도 띵띵, 키도 껑충하니 큰 데다가 한번 보리밥을 먹게 되면 열서너 그릇은 뚝딱! 그러니 모두들 보리밥 장군이라고 불렀지. 이만한 덩치면 힘깨나 쓸 만하지? 그런데 보리밥 장군은 힘을 통 못 쓰더래. 밥그릇 하나 드는 데도 낑낑낑낑. 밥은 황소만큼 먹으면서 일은 베짱이만큼도 못하니 식구들 모두 쫄쫄 굶어 죽을 판이었지. 부모는 할 수 없이 보리밥 장군을 내쫓았어. 보리밥 장군이 한참을 걷다 보니 두메산골이야. 마침 집 하나가 있길래 보리밥 좀 달라 했지. 그래 이 집 할머니가 보리밥을 내오는데 열서너 그릇을 싹싹 비워내. 할머니 생각엔 영락없이 하늘서 보낸 장군이야. "부탁이오, 부탁이오, 늙은이 부탁이오. 우리 영감 호랑이한테 잡아먹혀 아들 셋이 날마다 호랑이와 싸운다오. 부디 장군님의 폭풍 같은 힘 보태 주어 호랑이를 꼭꼭 잡아 주오." 보리밥 장군은 할머니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이튿날 날이 밝았어. 보리밥 장군과 아들 삼 형제는 보리밥 두둑이 먹고 산으로 갔어. 삼 형제가 산 위에서 와 와 호랑이를 몰면 보리밥 장군이 산 아래에서 와락 잡기로 했지. 좀 있으려니까 어흥! 어흥! 호랑이가 막 뛰어 내려와. 빨간 혀를 날름거리는 게 당장 보리밥 장군을 잡아먹을 기세야. 보리밥 장군은 우들우들 떨며 나무 위로 엉금엉금. 호랑이도 먹이 잡는다고 나무 위로 펄쩍! "아이고, 나 죽네!" 보리밥 장군은 그만 정신이 아찔해져서 아악 아악 목이 터져라 외쳤어. 어라? 근데 이게 웬일이야? 살살 눈을 떠 보니까 글쎄 호랑이가 나뭇가지에 코가 찔려 죽어 있어. 아하, 호랑이가 나무 위로 펄쩍 뛰어오르다 보리밥 장군 천둥 같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툭 떨어져 나뭇가지에 찔려 죽은 게지. "아이고, 살았네, 살았어." 보리밥 장군은 쓱쓱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른 나무에서 내려왔어. 헐떡헐떡 삼 형제가 달려와 죽은 호랑이를 보고는 어떻게 잡았냐며 폴짝폴짝. 보리밥 장군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어. "뭐, 고까짓 것, 한 손으로 호랑이 모가지를 콱 움켜쥐고서는 홱 내팽개쳤지." "만세! 만세! 보리밥 장군 만세!" 할머니와 삼 형제가 온갖 음식 배불리 대접하니 보리밥 장군 배가 빵빵, 보리 방귀도 뿡뿡. 보리밥 장군은 다시 길을 떠났어. 근데 길모퉁이에서 앙앙앙앙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 아이 하는 말이, 집에 집채만 한 도둑이 들었는데 집에 있는 것 몽땅 빼앗고 식구들을 달달 괴롭힌다는 거야. 보리밥 장군은 아이를 따라 그 집에 갔어. 가 보니 진짜 집채만 한 도둑놈이 있는데 문턱에 철퍼덕 널브러져서는 그르렁그르렁 자고 있네. 휴, 천만다행이었지. 보리밥 장군은 도둑놈 겁을 주려고 도끼를 들었어. 밥그릇 하나 드는 데도 낑낑대는 판에 도끼 한 자루 들자니까 끙끙끙끙. 겨우겨우 도둑놈 있는 데까지 들고 가기는 했는데 그만 도끼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네. 이를 어째! 도끼머리가 도둑놈 이마를 툭 치고 말았네. "아이고야!" 도둑놈이 머리가 아파 눈을 떠 보니 이마에서는 피가 뚝뚝, 눈앞에는 몸 띵띵, 배 띵띵, 키가 껑충한 장수가 새끼손가락을 차악 내들고 우뚝 서 있어. 거기다 천둥 같은 목소리로 이러는 거야. "이놈! 이 못된 놈! 내가 요 새끼손가락으로 튕겼기에 망정이지, 엄지손가락으로 튕겼으면 네놈은 벌써 죽었다!" 도둑놈은 덜컥 겁이 나서 "제, 제발, 어, 어, 엄지손가락만은 튕기지 마쇼." 그러면서 허둥지둥 이 집 물건뿐 아니라 자기 물건까지 탈탈 털어 두고 쿵쿵 달아나더래. "만세! 만세! 보리밥 장군 만세!" 이 집 식구들이 우당탕퉁탕 나와 온갖 음식 배불리 대접하니 보리밥 장군 배가 빵빵, 보리 방귀도 뿡뿡. 다음은 또 어디서 보리밥을 얻어먹으려나? 탱글탱글 미끌미끌한 보리밥!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밥을 많이 먹는 것과 책을 많이 읽는 것. 이 이야기를 보면 시골 마을에서 살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납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이라 밥을 많이 먹는 게 흠이었지요. 툭하면 “밥 많이 먹으면 머리 나빠진다!” 이렇게 혼나곤 했어요.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면 사방으로 눈치를 봐야 했지요. 부엌에서 몰래 이리저리 뒤져서 밥을 더 찾아 먹기도 했어요. 저 보리밥 장군이 얼마나 구박을 받았을지 안 봐도 뻔합니다. 혼자 열 사람 스무 사람 몫을 먹었다니 오죽했겠어요. 일이나 잘했으면 몰라도 열 사람 몫을 먹고서 한 사람 몫도 제대로 못 하니 답답한 노릇이지요. 배는 고프고 눈치는 보이고. "아, 보리밥 한번 마음껏 먹어 보고 싶다!" 요즘 들으면 좀 엉뚱한 소망 같을 거예요. 저 보리밥 장군의 경우 많이 먹은 게 다 헛일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호랑이하고 맞섰을 때 쩌렁쩌렁 커다란 목소리로 한몫을 하잖아요! 그게 다 열심히 먹어 둔 덕분이겠지요. 무서운 도둑하고 당당하게 맞선 배포도 다 먹은 힘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안 먹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다 많이 먹고 많은 일을 하는 것, 그게 더 멋진 일입니다. 많이 먹는 대신 그만큼의 몫을 하면 되지 않겠어요? 맞아요, 자기가 먹은 만큼 일을 해서 만들어 내면 되지요! 보리밥 장군이 남보다 많이 먹는다는 데서 뭔가 그럴듯하게 연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조금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보리밥 장군이 밥 먹는 일에서 이것저것 책을 많이 읽으면서 지식을 채우는 일을 연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는 남들보다 열 배 스무 배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좀 바보스러워 보일지 몰라요. 저렇게 책을 읽는다고 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눈앞의 일이 그럴 뿐이지요. 멀리 보면 결국은 큰 힘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풍부하게 채워 둔 지식은 뒷날 더 큰 일에 요긴하게 쓰일 수가 있지요. 보리밥 장군이 호랑이를 잡고 도둑을 쫓아낸 것처럼 말이에요. 보리밥 장군이 잘된 일을 보면서 사람들이 “쟤가 웬일이야?” 하며 눈이 휘둥그레질지 모르지만 그건 원래 그리될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꼭 어떤 특별한 일을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지요. 넓고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생각하는 법’을 알게 돼서 그 자체로 큰 능력자가 되거든요. 좋은 먹거리를 잘 먹으면 크고 건강한 사람이 돼서 아무 일이라도 잘할 수 있는 것처럼요. 맞다! 보리밥이 좀 거칠긴 하지만 영양가는 최고라잖아요! |
반쪽이 | 의사소통 | 유아 | 오랫동안 자식 없이 사는 부부가 있었어. 아이 하나 갖는 게 소원이었지. 밤낮 삼신할머니께 반쪽이라도 좋으니 아이 하나만 갖게 해 달라고 빌었어. 하룻밤 부인 꿈에 머리 하얀 할멈이 나타났어. 곶감 세 개를 던져 주는데 두 개를 맛나게 받아먹고 남은 하나 오물오물 먹는 참이야. 그런데 남편이 달려들어 "곶감 세 개를 혼자 다 먹어? 나도 먹자." 하여 절반을 똑 떼어 줬지. 그러고 나서 부부는 아들 삼 형제를 차례로 얻었는데 첫째도 말짱하고 둘째도 옹근데 셋째가 문제야. 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나 머리도 절반 몸뚱이도 절반, 되다 만 반쪽이였어. 부부는 그저 얘가 살아날까 근심, 자라 줄까 걱정이었지. 그런데 반쪽이는 젖을 먹든 안 먹든 쑥쑥 자랐대. 만날 먹기만 하고, 만날 자기만 하는 아이 같았어. 나중에는 한 발로 콩콩 뛰어다녔지. 힘도 얼마나 센지 몰라. 아기 장사가 따로 없더래. 나무를 쏙쏙 뽑고 바위를 돌돌 굴리며 놀았지. 형들은 반쪽이를 미워하고 싫어했어. 둘이 쑥덕거리면서 밤낮 해칠 궁리만 했지. 하루는 반쪽이를 산으로 꼬여 내더니 큰 바위에 꽁꽁 묶어 놓고 도망쳐 버렸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말이야. 그런데 반쪽이가 끙 힘을 쓰니까 바위가 통째로 들리더래. 그걸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 눈이 똥그래지지 않겠어? "그 큰 바위를 어따 쓰려고 가져왔니?" 반쪽이는 바위를 마당에 쿵 내려놓으며 말했다네. "어머니 힘드실 때 여기 앉아 쉬시라고요." 형들은 약이 올랐지 뭐야. 둘이 쏙닥쏙닥 반쪽이를 또 꼬여 내더니 이번에는 숲에서 가장 큰 나무에 묶어 버렸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말이야. 그런데 반쪽이가 끙 힘을 쓰니까 나무가 쑥 뽑히더래. 그걸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 입이 쩍 벌어지지 않겠어? "그 큰 나무를 어따 쓰려고 가져왔니?" 반쪽이는 나무를 마당에 콩 박으며 말했어. "어머니 쉬실 때 그늘 되라고요." 어느덧 삼 형제가 쑥쑥 자라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어. 형들은 반쪽이가 창피해서 데려가기 싫었지. 호랑이 득실거리는 숲을 지날 때 형들은 쑥덕거렸어. 그러더니 반쪽이를 칡덩굴 밭에다가 밀어뜨리고는 온몸을 친친 감아 놓고 가 버렸어. 금세 호랑이들이 어흥 어흥 몰려들었어. 반쪽이가 힘을 한 번 주니까 그깟 칡덩굴쯤이야 툭툭 끊어지지. 그래 호랑이들과 싸우는데 달려드는 족족 꼬리를 잡아채서 한 손으로 빙빙 돌려서 내던졌어. 한 마리, 두 마리 호랑이들이 쌓여 갔지. 밤을 꼴딱 새우고 나니 죽은 호랑이가 산더미야. 반쪽이는 호랑이 가죽을 둘러멨어. 형들은 멀리 가 버렸고 문득 집이 그립더래. 호랑이 가죽으로 어머니께 푹신한 깔개를 해 드리고 싶었어. 그렇게 길을 가다가 나귀 탄 부잣집 영감을 만났어. 영감은 비싼 호랑이 가죽을 탐냈어. "반쪽아, 내게 예쁜 딸이 하나 있는데 장가들지 않으련?" 그러고는 내기를 하자더래. 장기 세 판을 두어서 반쪽이가 이기면 딸을 주고, 영감이 이기면 호랑이 가죽을 가져가기로. 반쪽이는 좋아라 장기판에 앉았지. 장이야 멍이야, 둘은 해 떨어질 때까지 장기를 두었어. 반쪽이가 내리 세 판을 이겼네. 그런데 말이야, 영감이 말을 싹 바꾸지 뭐야. 딸을 못 주겠대. 어느 처녀가 반쪽이한테 시집을 가겠냐고. 반쪽이는 화가 났어. "약속은 약속이니 오늘 밤에 영감님 딸을 업어 가겠어요." 반쪽이는 영감에게 겁을 주었어. 영감은 난리가 났지. 집안 하인들을 풀고 가족들을 불러 모았어. 깊숙한 방에다가 딸을 꼭꼭 숨기고 집을 두 겹 세 겹 지키게 했어. 대문 앞에 뒷마당에 지붕에 하인들을 몽둥이 들려 세웠어. 마누라하고 며느리는 방에 앉히고 영감은 아들하고 마루를 지켰지. 그러자니 그날 밤은 찍소리도 없이 지나갔어. 다음 날도 반쪽이는 나타나지 않았어. 그럴수록 영감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었지. 그렇게 몇 날 밤이 지났는지 몰라. 모두가 지쳐서 눈이 벌게졌어. 서서도 졸고 앉아서도 조는 거야. 그 틈을 타서 반쪽이는 집으로 숨어들었어. 살금살금 하인들 상투를 풀어 서로 묶고 지붕에 오른 하인한테는 항아리를 씌웠지. 부인 허리에는 북을 채우고 며느리 손에는 징을 들려 줬어. 아들 저고리 소매에다가 자갈을 채우고 영감님 긴 수염에다가는 유황을 발라 놓았지. 이제 반쪽이는 방마다 벼룩을 한 줌씩 뿌렸어. 머잖아 깊숙한 방에서 "아이, 따가워!" 하면서 한 처녀가 뛰어나오더래. 반쪽이는 처녀를 훌떡 업고 뛰었어. 온 집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치면서 말이야. "반쪽이가 색시를 업어 간다!" 난리가 났지. 영감님 깜짝 놀라 불을 댕기는데 수염이 후루룩, "아이고, 내 수염!" 이걸 보고도 천근만근 아들은 꼼짝도 못하고, "아이고머니나!" 부인하고 며느리는 무슨 잔치 났다고 둥둥둥 징징징, 하인들은 서로 상투 놓으라고 엉켰지, 항아리 쓴 놈은 하늘이 무너졌다고 울고불고 난리야. 반쪽이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후다닥 영감 딸과 혼례를 치렀어. 부잣집 며느리 데려오고 귀한 호랑이 가죽을 잔뜩 가져오니 옹근 형들보다 낫다고 부모님은 잔치 열고 법석이야. 색시 얻고 난 반쪽이는 나머지 몸이 새로 붙어서 잘생긴 낭군이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았대. |
곶감과 호랑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이었지. 어느 산골 외딴집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으앙, 으앙. 밤은 깊어 고요한데 울음소리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어. 엄마는 우는 아기를 어르고 달랬지. "아가, 여기 과자 있다." "아가, 여기 엿 있다." 그래도 아기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어. "아가, 밖에 여우 왔다." "아가, 아가, 밖에 호랑이 왔다." 마침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온 호랑이가 이 소리를 들었지. "아가, 아가, 옜다, 곶감!" 아기가 울음을 뚝 그쳤어. "곶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호랑이인데 나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란 놈도 있었나?" 호랑이는 곶감이 나타나기 전에 얼른 도망쳐야겠다 싶어 뒤돌아섰어. 그런데 꼬르륵꼬르륵 배가 너무 고픈 거야.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송아지라도 잡아먹어야겠다." 호랑이는 살금살금 외양간으로 들어갔어. 마침 소도둑도 소를 훔치러 외양간으로 숨어들었지. 캄캄한 밤이었으니 뭐가 보였겠어. 더듬더듬. 소를 찾던 소도둑은 호랑이가 소인 줄 알고 훌쩍 올라탔지. "어이쿠!" 소스라치게 놀란 호랑이는 무서운 곶감이 올라탄 줄 알았어. "이놈 곶감아, 떨어져라, 떨어져." 호랑이는 등에 붙은 곶감을 떼어 내려고 펄쩍펄쩍 뛰었지. 그러면 그럴수록 소도둑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호랑이 등에 바짝 매달렸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호랑이는 밤새도록 온 산을 돌아다녔어. 날이 훤히 밝았어. 소도둑이 정신을 차려 보니 맙소사! 소가 아니라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있네. 고목나무 밑을 지날 때였어. 소도둑은 펄쩍 뛰어서 나뭇가지에 매달렸어. "곶감이란 놈이 이제야 떨어져 나갔구나." 그래도 호랑이는 달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 곶감이 다시 달라붙을까 봐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지. 한참을 달리던 호랑이는 곰을 만났어. "호랑이야, 어딜 그리 정신없이 뛰어가니?" 호랑이는 헉헉거리며 간밤의 일을 들려주었어. 곰이 듣고 보니 무서운 곶감은 호랑이 밥밖에 안 되는 사람이 틀림없지. "호랑이야, 그거 별거 아닌 사람이야. 같이 가서 잡아먹자." "큰일 날 소리 마라. 곶감한테 잡히면 죽는다니까." "곶감인지 사람인지 가서 보면 알 거 아니냐." "나는 싫다. 괜히 갔다가 곶감한테 붙잡히면 어쩌라고." 곰은 호랑이를 살살 달래어 곶감이 떨어졌다는 고목나무로 갔어. 고목나무 속에 숨어 있던 소도둑은 깜짝 놀랐어. 밖에 곰이 떡 버티고 있으니 말이야. 게다가 뒤에는 호랑이도 있거든.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소도둑은 간이 콩알만 해지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어. 너무 무서워 숨소리도 낼 수 없었지. 그때 고목나무를 요리조리 살피던 곰이 소리쳤어. "호랑이야, 이것 봐, 고목나무 속에 사람이 있어." 하지만 호랑이는 겁이 나서 다가가지 못했어. 만에 하나 곶감이라면 도망쳐야 하잖아. "호랑이야, 그러고 있지 말고 고목나무 뿌리를 물어뜯어." 곰은 나무 위로 올라가 소도둑을 잡으려고 했어. 그런데 나무 속이 깊어서 잡을 수가 있어야지. "옳지, 좋은 방법이 있었구나!" 곰은 고목나무 위에 떠억 걸터앉더니 방귀를 퉁퉁 뀌었어. "숨이 막히면 제깟 놈이 튀어나오겠지!" 소도둑은 코를 막고 헐떡거리다 위를 올려다봤어. 그런데 뭔가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저게 뭐지?" 가만 보니 복슬복슬한 곰의 꼬리였어. "옳거니, 너도 맛 좀 봐라!" 소도둑은 허리끈을 풀어 올가미를 만들었어. 살랑거리는 곰 꼬리를 옭아맨 뒤 양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잡아당겼지. "으악, 내 꼬리!" 곰이 죽는다고 소리소리 질렀어. 그 소리에 호랑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어. "호랑이야, 나 좀 살려 줘." 고목나무 위에서 다 죽어 가는 곰을 보자 호랑이는 덜컥 겁이 났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 그 곶감이란 놈 말이야. "제발 나 좀 구해 줘, 호랑이야." 곰은 울고불고 야단이었어. "거봐라, 곶감 무섭다니까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꼼짝없이 잡혀 죽는구나. 에라, 모르겠다. 나라도 살고 봐야지." 호랑이는 그길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대. 고통스러워 날뛰는 곰을 버려둔 채 말이야.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정말로 더 무서운 건 무엇일까? 참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크고 무서운 호랑이가 곶감한테 놀라서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우스운지요. 덩치가 커다란 곰이 소도둑을 향해 방귀를 뀌다가 꼬리가 잡혀서 죽는다고 소리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도대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나 모르겠어요. 어쩌면 무서운 호랑이나 곰한테 평소에 불만이 있었던 것을 이렇게 푸는 것인지도 몰라요. 아주 우스꽝스럽게 망가뜨려서 말이지요. 그런데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한다는 게 어쩌면 그리 엉뚱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가 크고 힘센 동물이라지만, 무서운 게 없지는 않을 거예요. 절벽에서 구를 수도 있고, 병이 들 수도 있고, 사냥꾼 총에 맞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가 그만 ‘곶감’이라는 정체불명의 경쟁자와 덜컥 맞닥뜨렸던 것이고요. 곶감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았겠지요. 문제는 곶감의 정체를 통 몰랐다는 거예요. 이게 만만치 않아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상대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한테나 긴장감과 두려움을 일으키기 마련이지요. 실체가 없는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어 내게 되는 거예요. 저 호랑이는 그렇게 스스로 만든 두려움에 갇힌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저 호랑이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흔히 저지르는 일이에요. 밤중에 길을 가다 보면 별것도 아닌 소리나 움직임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잖아요. 꼭 밤중에만 그런 게 아니에요. 혹시라도 누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이런 괜한 생각에 불안에 휩싸여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 호랑이처럼 우습고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지요. 문제는 그러고도 끝내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아마 저 호랑이는 이랬을걸요. "역시 곶감이란 놈은 무서워. 그때 달아난 게 천만다행이었지!" 이렇게 자기가 만든 착각 속에 빠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이런 착각이야말로 진짜로 무서운 것이 아닐까요? 호랑이 말고 소도둑 얘기도 잠깐 해 볼까요. 호랑이 등에 업힌 채로 온 산을 헤매고 다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남의 소를 훔치려 들었으니 이렇게 당해도 싸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저 사람이 꽤 만만치 않은 면이 있어요. 그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냈으니 말이지요. 곰 꼬리를 옭아맨 지혜도 영 범상치가 않지요. 어떻든 저 사람, 이렇게 한번 된통 당했으니 이제 도둑질 같은 건 그만두고서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착실하게 살았겠지요. 한 가지 이야기만 덧붙일게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먹는 것만큼 중요하고 무서운 일이 없지요. 먹고사는 일 앞에선 호랑이든 곰이든 다 문제가 안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보면 호랑이보다 곶감이 무섭다는 게 또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뭐, 아니면 할 수 없고요. 하하하. |
전강동이와 누나 | 의사소통 | 유아 | 저기 저 곽산 땅에 망국봉이란 산이 있는데, 옛날 이 산 밑에 전강동이라는 아이가 살았어. 전강동이는 집이 가난해서 서당에 다닐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근처 절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글공부를 했지. 그런데 그 절 중들이 하나같이 우락부락해. 힘도 어찌나 센지, 기다란 쇠몽둥이를 작대기처럼 휘휘 휘둘렀지. 그 힘을 믿고 중들은 걸핏하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어. 전강동이는 궁금했어. '고기도 안 먹는 중들이 어찌 저리 힘이 셀까?' 가만 보니 중들이 밤만 되면 어디를 갔다 오는 거야. 그래서 어느 날은 전강동이가 가만가만 따라가 봤지. 중들이 간 곳은 앞산 골짜기 큰 바위 앞이었어. 중 하나가 끙, 하더니 바위를 쓱 들어 올리네. 그러자 바위 밑에 작은 샘이 하나 있어. 중들은 그 샘물을 먹고 바위를 내려놓더니 절로 향했지. 전강동이는 생각했어. '저 물을 먹으면 힘이 나는가 보다!' 전강동이도 샘물을 먹으려고 바위를 밀었어. 하지만 집채만 한 바위가 어디 꼼짝이나 해야지. 생각 끝에 대롱을 하나 구해 왔어. 한쪽 끝을 바위 밑에 찔러 넣고 샘물을 빨아 먹었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전강동이는 샘물을 먹었어. 사흘째가 되자 배 속이 알싸한 느낌이 들었어. 닷새 되던 날엔 엉덩이가 저절로 씰룩이는 것 같더니, 열흘이 넘어가니까 팔뚝이 불끈불끈, 장딴지가 불룩불룩해지는 거야. 보름이 되니, 바위를 한 손으로 들 수 있네! 전강동이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어. 자기가 샘물을 먹은 걸 알면 중들이 가만있을 리 없잖아. 한편으로는 세상에 나가 남들처럼 살고 싶기도 했어. 힘도 세졌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전강동이가 돌아오자 누나가 반갑게 맞아 주었지. 곽산에서는 해마다 단오가 되면 씨름 대회가 열렸어. 전강동이도 씨름판에 나갔지. 그러고는 상대가 나오는 족족 메다꽂았어. 샘물을 먹은 전강동이를 누가 당하겠어? 전강동이는 기세등등해서 소리쳤어. "이제 나랑 붙을 사람 없냐?"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어. 그런데 저 뒤쪽에서 아이 하나가 나와 이러는 거야. "이보시오, 나랑 한판 붙어 봅시다." 전강동이는 픽 웃고 말았어. 조그만 녀석이 덤비니까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던 거지.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전강동이가 아무리 기를 써도 아이가 꿈쩍을 안 해! 오히려 아이는 왼발을 전강동이 가랑이 사이로 쏙 넣더니 다리를 척 거는 거야. 어찌나 재빠르고 암팡지던지 전강동이는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어. 그날 저녁, 전강동이는 분이 나서 제 가슴을 쿵쿵 쳤어.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건데 뭘 그래. 다만, 다음부터는 함부로 사람을 얕보지 마." 누나는 이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어. "나랑 팔씨름할래?" "누나가 내 상대가 될 것 같아?" 전강동이가 버럭 소리치자 누나가 야단치듯 말했어. "봐! 너는 사람을 얕보는 게 문제야." 전강동이는 마지못해 누나의 손을 잡았지. 그런데 팔씨름을 시작하자마자 누나가 전강동이 팔을 넘겨 버리는 거야! 사실 누나는 타고난 장사였어. 힘을 자랑하지 않아 아무도 몰랐던 거지. 전강동이는 눈을 껌뻑이다 물었어. "혹시 아까 씨름판의 그 아이도 누나였어?" 누나는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 네가 힘만 믿고 으스대는 걸 혼내 주려고 간 거야." 어느 날, 중들이 전강동이와 힘을 겨뤄 보겠다며 들이닥치네. 누나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말했어. "전강동이는 외갓집에 가서 사흘 뒤에나 와요." 중들이 돌아가자 전강동이가 막 툴툴거려. "내가 이길 수도 있는데 누나가 왜 미리부터 막는 거야?" 그러자 누나가 전강동이를 타일렀어. "힘센 사람끼리 겨루다 보면 누구든 다치기 마련이야. 이럴 때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제일이야." 사흘 뒤, 아침 댓바람에 중들이 들이닥쳤어. 그런데 사립문 앞에 절구통만 한 바위가 매달려 있네. 중들은 바위를 힐끗거리며 전강동이를 찾았어. 누나는 곧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어. 그러자 중들이 저 바위가 뭐냐고 묻지.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어. "전강동이가 오면가면 들이받는 바위예요. 송아지만 하던 게 하도 들이받아 저렇게 작아졌죠." 중들은 앞 다투어 바위 앞으로 갔어. 전강동이처럼 들이받아 보려고 말이야. 제아무리 장사라도 바위를 들이받으면 어떻게 되겠어? 첫 번째 중은 눈앞에 별이 빙글빙글 돌았어. 두 번째 중은 눈앞에 새가 삐악삐악 울었고, 세 번째 중은 이마에 혹이 봉긋봉긋 솟았어. 네 번째, 다섯 번째 중들도 마찬가지였지. 중들은 허둥지둥 내빼기 시작했어. 전강동이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그 모습을 보며 전강동이는 마음먹었대. 누구도 얕보지 않고, 힘도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 뒤 전강동이는 최고의 씨름꾼이 되었다는구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진짜 인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전강동이, 처음 듣는 이름이지요?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먹으면 힘이 세지는 신기한 물을 장군수라 하는데, 전강동이는 그걸 먹고서 장사가 된 주인공이지요. 세상에는 남다르게 힘센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면 우리는 무심결에 "저 사람은 대체 무얼 먹었기에 저렇게 힘이 센 거야?" 하고 말하곤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렇게 '힘이 세지는 물'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어쩌면 그런 '장군수'가 실제로 있을지도 몰라요. 산속 깊이 들어가서 바위틈에서 나오는 맑은 물을 먹으면 그게 곧 장군수가 되는 거 아닐까요? 운동이 꽤 많이 될 테니 말예요. 절에 사는 중들이 다 장사라고 했어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 숨은 장사가 참 많네요. 그런데 진짜 장사는 더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맞아요, 전강동이의 누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 누나는 여자라서 몸집도 작아 보이고 어디 가서 장군수를 몰래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저렇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아주 놀라운 일이지요. 우리가 눈길을 둘 것은 전강동이의 누나가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략이나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다는 사실이에요. 사립문 앞에 바윗덩이를 매달아서 중들을 물리치는 것도 그렇고, 일부러 씨름판에서 동생을 눕혀서 교만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그렇지요. 정말 인재 중의 인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누나는 나중에 어떻게 됐을지 궁금한데 이야기는 그에 대해서 따로 말하지 않네요.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유심히 음미해 볼 만한 깊은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상만사란 겉으로 드러난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지요. 이 이야기에서 세상을 움직인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그건 전강동이보다 그를 조용히 뒷받침한 누나였어요. 전강동이와 달리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제를 감당하고 풀어낸 실질적인 주체는 그 사람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그런 자기 역할에 만족하고 억울해하지 않는 것 같으니 참 존경할 만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전강동이 누나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움직여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들도 그런 사람이고, 공장에서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그런 이들이지요. 이런 이들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는 법이니 이들이야말로 진짜 '장사'가 아닐까요? 이야기 속에서 전강동이의 누나가 더 큰 장사였다는 데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요, 전강동이처럼 앞으로 나서서 잘난 척하는 게 대수가 아니지요.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
재주 많은 다섯 친구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이었어. 하루는 꿈에 눈썹이 하얀 노인이 나타나 이러더래. "참한 단지에다 부부가 오줌을 눈 다음 그 단지를 땅속에 열 달 동안 묻어 두면 아들을 얻을 수 있느니라." 꿈이 하도 생생해서 다음 날 그 말대로 했지. 열 달 뒤에 단지를 열어 보았더니 아 글쎄, 그 속에 손이 큰 사내아이가 있지 뭐야. 부부는 기뻐하며 아이 이름을 단지손이라 지었어. 단지손이는 힘이 장사였어. 굵은 나무를 맨손으로 쑥 뽑기도 하고, 어른 머리통만 한 돌로 공기를 놀기도 했지. 단지손이가 손가락으로 밭을 갈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뒤를 따르며 씨를 뿌렸다니 말 다 했지, 뭐. 힘이 센 단지손이가 집에만 있자니 답답하거든. 그래 하루는 부모님께 넙죽 절하며 말했지. "어머니, 아버지! 세상 구경 좀 하고 오렵니다." "아이고, 아서라!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구경을 간다는 게냐." "아무 염려 마세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고는 길을 떠났지. 단지손이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나. 콰르르 콸콸, 콰르르 콸콸.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봤더니 웬 아이가 오줌을 누고 있어. 어찌나 많이 싸는지 홍수가 날 지경이야. "오줌 한번 시원하게 싸는구나. 난 세상 구경 나온 단지손이라고 해." "난 오줌손이야. 마침 잘됐네. 나도 세상 구경 나왔는데." 오줌손이는 단지손이를 따라나섰어. 오줌손이와 동무 삼아 산마루를 넘는데, 나무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마구 흔들려. 가 봤더니 한 아이가 잠을 자는데 콧김이 어찌나 센지 나무가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휘어지는 거야. 단지손이는 아이를 깨워 누구냐고 물었어. "나는 콧김손이. 세상 구경 나왔다가 낮잠 자고 있었어." "우리도 세상 구경 나왔는데 같이 갈래?" 콧김손이도 친구들을 따라나섰어. 세 친구가 길을 가는데 배 한 척이 땅 위를 누비고 다니네. 가만 보니 한 아이가 옷고름에 배를 달고 다니는 거야. "난 배손이라고 해." 배손이도 세 친구를 따라나섰지. 네 친구가 길을 가는데 웬 아이가 무쇠 신을 신고 겅중겅중 뛰어오는 거야. "난 무쇠손이라고 해. 세상 구경 같이 다니자." 다섯 친구는 신 나게 길을 떠났지. 다섯 친구가 길을 가다 보니 날이 저물었어. 마침 외딴집이 있어 문을 두드렸더니 할멈 하나가 나오네.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는지요?" "그러렴." 할멈이 고맙게도 저녁까지 차려 주었는데, 아무도 먹으려 들지를 않아. 저녁이란 게 빨간 피로 만든 국에, 뼈다귀로 만든 반찬이었거든. 사실 할멈은 둔갑한 어미 호랑이였어. 밤이 되자 사냥 나갔던 할멈의 아들, 호랑이 오 형제가 돌아왔어. "이 늙은 어미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 다섯을 잡았는데, 너희들은 겨우 토끼 몇 마리 잡아온 게냐?" 호랑이 오 형제는 밤새 침을 줄줄 흘리더니, 날이 밝자마자 다섯 친구에게 내기를 하자고 해. "나무하기 내기를 하자. 너희가 이기면 살려 주고, 우리가 이기면 너희들을 잡아먹을 테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도끼를 하나씩 들고서 나무 밑동을 쿵쿵 찍어 대. 찍을 때마다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가 픽픽 쓰러지지. 단지손이가 얼른 튀어 나가서 맨손으로 나무를 뽑았어. 손에 쥐는 대로 뿌리째 쑥쑥, 무 뽑듯이 뽑아 버리니 호랑이가 당할 수가 있나. 단지손이 혼자 호랑이 다섯을 이겼지. 호랑이 오 형제가 이번에는 물싸움 내기를 하재. 호랑이들이 물을 막았다가 터뜨려 보내면 그 물을 다 막아야 하는 내기지. "단지손이는 아까 힘을 썼으니 한숨 자도록 해." 그러고 네 친구가 둑을 쌓는데 미처 다 쌓을 새도 없이 콸콸콸콸, 시커먼 물이 들이닥치네. 콧김손이가 콧김을 씽 불어 단지손이를 깨웠어. 단지손이는 벌떡 일어나 커다란 바위를 던져 물막이 둑을 쌓았어. 조금만 늦었어도 졌을 텐데, 이번에도 다섯 친구가 이겼지. 부아가 난 맏이 호랑이가 소리쳤어. "마지막이다. 나뭇단 높이 쌓기 내기 어떠냐?" 호랑이 형제가 나무를 던지면 다섯 친구가 받아서 쌓는 내기야. 호랑이들이 나무를 던지기 시작하는데 소낙비 쏟아지듯 해. 다섯 친구는 숨 돌릴 틈 없이 척척 받아 쌓았어. 나뭇단은 금세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아졌지. 호랑이들은 분을 참지 못해 식식거렸어. 이번에도 지게 생겼으니 말이야. 그래 호랑이들이 쑥덕거리더니 나뭇단에 불을 질러 버리네. 나뭇단은 금세 활활 타올랐어. 다섯 친구는 꼼짝없이 타 죽게 생겼지. 그때 오줌손이가 바지를 쑥 내리더니 오줌을 싸. 폭포 같은 오줌 줄기에 불꽃이 푸시식푸시식 사위었지. 오줌 줄기는 불을 끄고도 그치지 않아 홍수가 다 났지 뭐야. 다섯 친구는 배손이의 배를 타고 둥실둥실! 호랑이 오 형제는 물에 빠져 허우적허우적! "아이고, 지린내야." "어푸어푸! 살려 줘." 그때 콧김손이가 썩 나서더니 콧김을 뿜기 시작했어. 그러자 오줌 강이 꽁꽁 얼어붙더니 허우적거리던 호랑이들까지 꽁꽁 얼어 버렸지. 무쇠손이가 무쇠 신을 신은 발로 호랑이 머리통을 뻥뻥 찼어. 슝! 한 개는 지구 반대편 바다에 풍덩. 슈웅! 두 개는 달나라까지 날아가 데굴데굴. 슈우웅! 나머지는 해님 입속으로 쏙. 다섯 친구는 다시 세상 구경을 하러 길을 떠났어.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으려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좋은 친구들과 함께라면 호랑이쯤이야! 단지손이, 오줌손이, 콧김손이, 배손이, 무쇠손이.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에요. 이런 사람 하나만 있어도 신기하기 그지없을 텐데 다섯이라니요! 그런데 이 다섯 친구 가운데 누가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되나요? 아이들한테도 한번 이야기하게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맞아요, 그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나고 누구는 덜하다 이런 생각을 굳이 할 일이 아니겠지요. 저 다섯 친구만 하더라도'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다', '누가 왕초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잖아요! 그냥 서로 나란히 어울려서 편안하고 즐겁게 움직여 갈 따름이에요. 그러면서 부딪히는 상황에 따라서 아무라도 썩 나서서 한몫을 하는 거지요. 그러니 누가 더 많은 몫을 했고 누구는 적게 했다 하고 따질 일도 아닙니다. 이번에는 단지손이가 큰 몫을 한다면 다음에는 배손이가 한몫을 하고, 이런 식이지요. 그래요, 늘 작은 몫을 맡는다고 한들 또 무슨 상관이겠어요. 서로 즐겁게 나아가면 그만이지요! 어떻든 저 친구들은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어요. 남다른 큰 재주를 가졌으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다시 잘 생각해 보면, 그 능력이라는 게 손이나 발이 튼튼하고 오줌발이 세고 콧김이 세고, 뭐 이런 것들이에요. 이야기이니까 과장해서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리 특별한 재주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누구한테라도 이런 재주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닐까요? 발 빠른 아이도 있고, 씨름 잘하는 아이도 있고, 춤 잘 추는 아이도 있고, 노래 잘하는 아이도 있고요. 맞아요, 이야기잘하는 아이도 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게임을 잘하거나, 잠을 잘 자거나, 밥을 많이 먹거나, 목소리가 크거나, 방귀를 잘 뀌거나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 수 있습니다. 보자, 아이들이 가진 남다른 재주에 또 뭐가 있지요? 따지고 보면 별것이 아닌 재주라도 그걸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면 진짜로 특별한 재주가 되지요. 그리고 그 재주를 함께 잘 모으면 놀랍고 신나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저 다섯 친구처럼 말이에요. 이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폭력이나 함정 같은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거기 걸려서 쓰러지곤 하지요.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믿고 나간다면, 또 좋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손잡고 나간다면 무서울 게 없지요. 호랑이가 아니라 도깨비나 귀신하고 만나더라도 상관없어요. 이리저리 잘 요리해 가지고 뻥뻥 걷어차면 그만이지요! |
거짓 명궁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배짱 좋은 총각이 살았어. 쌀독에 쌀이 똑 떨어진 날, 총각은 무작정 짐을 싸서 서울로 떠났어. "내 한 몸 먹고살 데 없겠어?" 서울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총각은 정승 댁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사윗감으로 구한다는 소문을 들었어. "정승 댁이면 빈방도 많고 먹을 것도 많겠지?" 총각은 활 한번 쏘아 본 적 없으면서 가진 돈 탈탈 털어 활과 화살을 샀어. 그러더니 조막만 한 참새에 화살을 꽂은 다음 정승 댁 담장 안으로 던져 넣고 문 앞에서 소리쳤어. "내가 잡은 참새가 이 집으로 떨어졌소이다." 하인이 마당을 살펴보니 정말 화살 꽂힌 참새가 떨어져 있지 뭐야. 정승은 얼른 활 잘 쏘는 총각을 들이라 했지. 정승은 총각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어. "밤이면 밤마다 우리 집에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와 운다네. 그런데 그 부엉이가 울면서부터 내 딸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드러누웠지 뭔가. 자네가 활을 쏘아 그 부엉이를 없앨 수 있겠는가?" "조막만 한 참새도 잡았는데 커다란 부엉이쯤이야. 오늘 밤에 당장 잡아 드리지요." 총각은 거들먹거리며 말했어. "그래만 준다면 자네를 사위 삼겠네." 정승은 너른 방에 진수성찬을 한 상 차려 주었어. 총각은 우걱우걱 배불리 먹었지. 배가 부르고서야 슬며시 걱정이 되었어. 총각은 드러누워 한숨 푹 잤어. 한밤중에 일어난 총각은 부엉이 잡는 시늉이나마 해야겠다 싶었지. 그래서 이불 한 채 둘둘 말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갔어. 이불 뒤집어쓰고 지붕 위에 한참 앉아 있었더니 큼지막한 부엉이가 소리 없이 날아오네. 부엉이는 이불 쓴 총각이 보이지 않는지 총각 앞에 앉아서 부엉부엉 울기 시작했어. 옳다구나, 총각은 이불 밖으로 손만 쑥 내밀어 부엉이를 낚아챘어. 그러고는 몸부림치는 부엉이 똥구멍에다 화살을 푹 찔러 넣었단다. 다음 날,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오도록 소식이 없자 정승이 총각 방문을 직접 두드렸어. "부엉이는 잡았는가?" "똥구멍을 겨누고 화살을 쏘았으니 찾아보십시오." 하인이 지붕 위로 올라가 보니 똥구멍에 화살 꽂힌 부엉이가 있네. 정승 딸도 언제 아팠냐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 정승은 약속대로 총각을 사위 삼았지. 총각은 이제 편히 살 일만 남은 것 같았어.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 큰 걱정거리가 생겼어. 집채만 한 호랑이가 사람을 여럿 잡아먹은 거야. 나랏일 하는 정승이 가만있을 수 있나. 사위를 불러 호랑이를 잡으라 했지. "호랑이 넣을 큰 우리나 만들어 주십쇼." 그래 놓고는 우리가 만들어지도록 빈둥거렸네. 정승이 우리를 가져오니 어쩔 도리 없지. 사위는 활과 화살을 챙겨 들고 산으로 올라갈밖에. 깊은 산속에 들어가자 나뭇잎이 으스스, 날짐승이 휘리릭, 정신없는 판에 드디어 어흥, 호랑이 소리도 들려왔어. "아이고, 이제 호랑이 밥 되는 일만 남았구나!" 사위는 허겁지겁 우리 속에 들어가 문을 잠갔어. 사위 냄새를 맡은 호랑이가 어디서 풀쩍 나타났어. 으르르르 어흥! 호랑이는 우리를 이리 쿵 저리 쿵 굴려 댔어. 사위는 우리 속에서 데굴데굴 어질어질 죽을 지경이 되었어.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약이 바짝 오른 호랑이는 기다란 꼬리를 우리 안으로 쑥 밀어 넣었어. 총각은 이때다 싶어 꼬리를 꽉 움켜잡고 호랑이 똥구멍으로 콱! 화살을 박아 넣었지. 말랑한 똥구멍에 화살이 박혔으니 천하의 호랑이라도 버텨 낼 수 있나. 펄쩍 뛰어오르더니 쿵 쓰러져 숨이 넘어가고 말았지. 사위가 호랑이를 질질 끌고 내려오자 사람들은 난리가 났어. "정승 사위 활 앞에서는 호랑이도 파리 목숨이로구나!" 정승 사위가 호랑이 잡았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어. 명궁 활 솜씨 보겠다고 구경꾼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네. "내 사위가 천하 명궁이지! 어디 한번들 보시게나." 정승은 싱글벙글 사위를 불러냈어. 사위는 엉거주춤, 활시위에 활을 걸어 하늘을 겨누었어. 새는 종종 날아다니는데
활을 언제 쏘려는지 사위는 옴짝달싹 안 해. 한나절도 지나고 해가 기울자 구경꾼들이 술렁술렁. 정승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어. "아, 대체 언제 쏘는 건가?" 정승이 물어볼 때마다 사위는 "다 때가 있답니다." 하지. 마침 까마귀 떼가 날아오네. "얼른 쏘게!" 정승이 사위를 툭 쳤어. 그 바람에 화살이 퉁! 하 참, 사위가 쏜 화살이 까마귀 두 마리를 뀄네! 구경꾼들은 역시 명궁이라고 감탄을 늘어놓았어. 그런데 정작 사위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장인이 건드리지 않았으면 열 마리를 잡았을 거라며 펄펄 뛰지 뭐야. "다시는 활을 쏘나 봐라!" 사위는 활과 화살을 뚝뚝 부러뜨려 버렸어. 그 뒤로 천하 명궁 사위는 두 번 다시 활을 쏘지 않았대.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안 될 일도 되게 만드는 행동파. 활을 전혀 쏠 줄 모르면서 최고 명궁으로 행세한 사연이라니, 이거 순 억지에다 엉터리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껏 할 줄 안다는 게 얄팍한 속임수이고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란 게 뜻밖의 우연들이니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주인공이 될 수 있나 싶기도 해요. 아이들한테 교훈이 될 만한 바가 없는 이야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말로 아무 실속도 없는 허풍쟁이 거품 같은 사람일까요? 이 이야기 속의 총각은 활을 쏠 줄 모르고 그 밖에도 딱히 잘하는 것이 없지만 영 만만치가 않은 인물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그의 거침없는 자신감과 당당함입니다. 남들이 다 못하는 일이라도 자기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지요. 여기서 '어떻게든'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총각은 미리 이리저리 재어 보기 전에 일단 부딪치고 보는 사람입니다. 부딪치고 보면 어떻게든 수가 날 거다, 하는 식이지요. 그야 말로'행동파'라 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렇게 부딪쳤다가 안 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면 뭐 할 수 없는 일이지. 하하하." 이렇게 거침없이 움직이니 이거 보통 사람이 아니지요. 놀라운 일은 그가 그렇게 부딪치자 실제로 일이 하나씩 풀린다는 사실이에요. 부엉이도 결국 그한테 잡히고 호랑이도 잡히게 되지요. 이는 우연이나 행운이라고만 말할 수 없어요. 실제로 수많은 어려운 일이 상황에 맞닥뜨리고 보면 풀릴 길이 생기곤 하는 법이거든요. 부딪치면서 찾아내는 해법,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법이 안 보인다고 지레 물러서는 사람은 아예 얻을 수 없는 답이기도 하지요. 흥미로운 바는 이런 해법이 어떤 특수한 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이야기에서는 활을 쏴서 동물을 잡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구체적 상황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 총각은 활 쏘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과제도 훌륭히 감당해 냈을 거예요. 일단 부딪치면서 그 일에 맞는 해법을 어떻게든 찾아냈을 테니까요. 이야기 속에서 그가 활을 부러뜨리면서 "다시는 활을 쏘나 봐라!" 하고 말한 것도 그가 상황 속에서 찾아낸 해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옛날이야기, 특히 민담에는 이런 행동파의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민담형 인물'이라고 일컬을 만한 이들이지요.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다는 것, 이거 꽤 멋진 일이라 할 수 있어요. 이리저리 따지고 고민하다가 아예 무언가를 해 보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어요. 지레 움츠러들기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치는 게 훨씬 낫지요.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는 이러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허튼 망상에 빠질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도 이런 이야기의 맥락을 더 잘 느끼게 돼 있거든요. |
재주 있는 처녀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한 처녀가 살았는데 베 짜는 재주가 무척 훌륭했어. 처녀는 삼을 쪄서 껍질을 벗기고 껍질을 찢어 실을 잇고 베틀에 걸어 찰카닥찰카닥 하루아침에 삼베 세 필을 짜냈지. 어느덧 처녀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어. "저처럼 재주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재주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았어. 당연히 한 해 두 해 시간만 흘러갔지. 처녀 아버지는 고민 끝에 고을마다 방을 써서 붙였어. 며칠 뒤, 한 남자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저는 하루아침에 세 칸짜리 기와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따님의 재주와 견줄 만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옳다구나! 드디어 왔구나.' 하며 좋아했지. 하지만 처녀는 아니었어. 처녀는 방문을 빼꼼 열고 남자의 모습을 살피며 말했지.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으니 재주를 보여 주세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후다닥 산으로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 끌고 내려왔어. 나무를 톱으로 쓱싹쓱싹 자르고 자귀로 사각사각 다듬더니 대패로 박박 밀어 세 칸짜리 기와집을 뚝딱 지어 보이네. 아버지는 남자의 재주에 눈이 휘둥그레졌어. "자네군, 자네야! 이제야 내 사위를 찾았군." 하지만 처녀는 아니었어. 처녀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를 가리키며 이러는 거야. "문을 뒤집어 다는 재주는 있네요." 세 칸 기와집을 뚝딱 지었대도 문을 뒤집어 달면 그게 무슨 재주겠어. 당연히 남자는 처녀의 신랑감이 아니었지. 그렇게 한 해가 지났을까, 다시 한 남자가 찾아왔어. "저는 하루아침에 벼룩 석 섬을 잡아 코를 꿰어 말뚝에 매는 재주가 있습니다." 남자의 말에 아버지는 그게 무슨 재주냐고 콧방귀를 뀌었지. 하지만 남자도 물러서지 않았어. "남이 못하는 재주니, 어쨌든 재주는 재주입니다." 그때 처녀가 방문을 빼꼼 열고 남자의 모습을 살피며 말했지. "좋아요. 그러면 당신의 재주를 보여 주세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후다닥후다닥 이 방 저 방 돌아다녔어. 남자는 단숨에 벼룩 석 섬을 잡았어. 그러더니 벼룩의 코를 하나하나 뚫어 코뚜레를 꿰고 주르르 실로 엮어 잔솔가지를 말뚝 삼아 떡하니 매 놓네. 아버지는 남자의 재주에 무릎을 쳤어. "허! 재주는 재주네. 왜 이제야 왔는가, 내 사위!" 하지만 처녀는 아니었어. 처녀는 끝에서 두 번째 벼룩을 가리키며 이러는 거야. "벼룩 목에 실을 매는 재주는 있네요." 석 섬 벼룩 코를 단박에 꿰었대도 한 마리 코를 놓치면 그게 무슨 재주겠어. 이번에도 남자는 처녀의 신랑감이 아니었어. 그 후로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세 해가 지나도 재주 있는 남자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오지 않았지. 어느덧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처녀는 넓은 집에서 혼자 살며 날마다 베를 짰어. 처녀는 점점 나이를 먹어 갔지. 처녀는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찾아 나서면 돼." 처녀는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재주 있는 남자를 찾았어.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쓸 만한 남자가 없는 거야. 그렇게 몇 해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허탕이었지. 나이를 먹을 대로 먹고 지칠 대로 지친 처녀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처녀는 높은 산벼랑 위로 올라갔지. "차라리 재주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처녀는 치마로 얼굴을 감싸고 아래로 뛰어내리고 말았어. 퍽!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분명히 벼랑에서 뛰어내렸는데 커다란 바구니에 들어앉았지 뭐야. 낯선 남자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 말이야. "이게 어찌 된 일이죠?" 처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 그랬더니 남자가 이러는 거야. "벼랑 아래에서 나무를 하다 보니 당신이 떨어지는 게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얼른 대밭으로 달려가 낫으로 탁탁 대를 베어, 칼로 쪼개고 툭툭 다듬어, 가로로 엮고 세로로 엮어, 대바구니를 만들어 달려와 당신을 받았지요." 처녀는 남자의 말을 듣고 자신이 찾던 사람임을 알았어. 하루아침에 세 칸짜리 기와집을 짓는 재주도 훌륭하고 석 섬 벼룩 코를 꿰어 말뚝에 매는 재주도 훌륭하지만 남자는 사람 살리는 재주를 가졌잖아. 이보다 더 귀한 재주가 어디 있겠어. 처녀는 남자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대. |
신기한 그림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낡아 빠진 집에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선비가 있었어. 아이들은 배고프다 앙앙 울어, 아내는 기운 없다 누워 있어, 참 기가 막히지. 어느 날 어릴 적 친하던 친구가 찾아왔어. 친구는 스님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었어. 이 선비 맘씨가 착해서 맨발로 펄쩍 달려 나가 반가이 맞았어. 마루 밑 생쥐도 쫄쫄 굶는 마당에 손님이 오니 아내는 큰 걱정이었어. 볼일 급한 스님은 급한 대로 선비의 신을 신고 뒷간에 갔어. 신이 안 보이자 아내는 남편이 뒷간에 간 줄 알았어. 그래 뒷간 앞에 가서 걱정을 한보따리 늘어놓았지. “휴우, 집구석 탈탈 털어봐야 생쥐 먹을 쌀 한 톨도 없는데 손님상을 어찌 차려요.” 안에서 가만히 듣고 난 스님은 선비네 집 딱한 속사정을 알게 되었지. 스님은 봇짐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어. “이보게, 갈 길이 바쁘니 난 이만 가 보겠네.” 선비는 서둘러 나가는 친구를 기어이 붙잡아 앉혔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오랜만에 멀리서 찾아왔는데 그냥 간다면 내가 너무 섭섭하네.” 스님은 선비의 마음이 고마웠어. “자네 마음 잘 알겠네. 내 가기 전에 그림이나 한 장 그려 줌세.” 스님은 봇짐에서 빈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어. 그러고는 붓을 이리 휘익 저리 휘익, 장닭 한 마리를 쓱쓱 그려 주며 말했어. “이 닭 한 마리면 일생 굶지는 않을 걸세.” 스님은 나무 꼬챙이를 척 꺼내면서 말했어. “뚝배기 하나 가져오게.” 스님은 선비가 가져다준 뚝배기를 닭 주둥이 밑에 놓고는 꼬챙이로 닭 부리를 톡톡 두드렸어. 그러자 닭 부리에서 쌀이 졸졸 흘러나와 뚝배기를 그득 채우잖아? 선비는 눈이 휘둥그레졌지. 그 뒤 선비 가족은 굶을 일이 없었어. 선비가 끼니때마다 쌀을 한 뚝배기씩 아내에게 건넸거든. 아이들은 포동포동 살이 올랐어. 아내도 낯빛이 환해졌어. 하지만 아내는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어. ‘대체 서방님은 밖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매일 쌀을 어떻게 구해 올까?’ 몇 번을 물어봐도 선비는 알려 주지 않았어. 어느 날 선비가 산 너머 잔칫집에 갔어. 아내는 이때다 하고 방 안을 샅샅이 뒤졌어. 그러다 벽장문도 열어 보았겠지. 그런데 벽장 속에 웬 닭 그림이 걸려 있는 거야. 그 아래엔 뚝배기와 꼬챙이가 되똑 놓여 있어. “이게 다 뭐람.” 아내는 꼬챙이로 그림을 이리저리 두드려 보았어. 무심코 닭 주둥이를 톡톡 두드리자 쌀이 졸졸 흘러나오지 뭐야. “그림에서 쌀이 나오네!” 아내는 신기해서 자꾸자꾸 두드렸어. 닭 부리에서 흘러나온 쌀이 벽장을 채우고 방 안을 채우고 마당까지 넘쳤어. 바로 그때 대궐 곳간에서는 쌀가마니들이 폭삭 주저앉았어. 매일 세 뚝배기씩 빠져나갈 때는 표가 나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 바람에 대궐이 발칵 뒤집혔지. “저기 쌀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쌀은 곳간 밖으로 줄줄이 이어졌어. 포졸들은 쌀을 졸졸 따라갔어. “저쪽이다, 저쪽으로 간다. 따라잡아라.” 쌀 줄은 대궐을 지나 성곽을 돌아 선비네 집까지 이어졌지. 마침 선비가 털레털레 돌아오다가 집 앞에서 잡혀갔어.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입방아를 찧었어. “선비가 대궐의 쌀을 훔치다니 간도 크지.” “그런데 그림에서 쌀이 나온다고 거짓말까지 한다지?” 마침내 스님도 소문을 들었어. 스님은 그길로 대궐로 달려갔어.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제가 그려 준 요술 그림 때문이니 선비를 풀어 주고 대신 저를 죽이십시오.” 임금은 선비를 풀어주더니 스님을 비웃으며 말했어. “네가 그리 그림을 잘 그린단 말이냐? 그럼 죽기 전에 한 장 그려 보아라.” 스님 앞에 종이와 붓과 물감이 놓였어. 스님은 붓에 푸른 물감을 듬뿍 찍었지. 붓을 몇 번 척척 휘두르자 종이 위에 푸른 바다가 출렁였어. 스님은 파도 위에 작은 배를 한 척 그려 넣었어. 스님은 붓을 딱 내려놓고 말했어. “임금님, 이 배를 타 보시렵니까?” “허허, 그림 속 배를 어찌 탄단 말이냐. 너나 타 보아라.” “그럼 제가 타겠습니다.” 스님은 선뜻 배에 올라탔어. 세상에, 스님이 어느새 콩알만 해지더니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둥둥 떠가지 뭐야. 배는 좁쌀만큼 작아지더니 쑥 사라지고 말았지. 그 뒤로 스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대. 지금도 그림 속에서 잘 살고 있다나 뭐라나. |
선녀와 나무꾼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깊은 산골에 나무꾼 총각이 살았어. 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하는데 노루가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어. "나무꾼님, 저 좀 숨겨 주세요. 사냥꾼이 쫓아와요." 나무꾼은 노루를 나무로 덮어 숨겼어. 곧바로 사냥꾼이 달려와 물었지. "혹시 이리로 노루가 오지 않았소?" 저쪽으로 가더라고 하니까 사냥꾼은 그냥 돌아갔어. 사냥꾼이 멀리 가니까 노루가 꾸벅 절하며 말해. "덕분에 살았어요. 은혜를 갚고 싶으니, 저를 따라오세요." 노루를 따라갔더니 깊은 산골짜기에 연못이 있지. "저 연못에 선녀들이 내려와서 목욕을 할 거예요. 요기 숨어 있다가 막내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 두세요. 그러면 하늘로 오르지 못할 것이니, 같이 살면 날개옷을 준다고 하세요.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날개옷을 주면 절대 안 돼요." 나무꾼은 연못 옆에 숨었어. 그랬더니 정말 하늘에서 선녀 셋이 내려와 연못에서 목욕을 하지 않겠어? 나무꾼은 넋을 잃고 보다가 아차차! 하며 막내 선녀의 날개옷을 가져와 숨겼어. 선녀들이 목욕을 다 하고 날개옷을 입는데 막내 선녀만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랐어. 다른 선녀들은 하늘로 올라갔어. 그때 나무꾼이 다가가 이러지. "나랑 살면 날개옷을 주겠소." 선녀는 할 수 없이 같이 살겠다고 했어. 나무꾼은 선녀와 살면서 아들 둘을 낳았어. 어느 날 선녀가 말했지. "내가 당신과 산 지도 벌써 몇 년인데 이제 날개옷을 주세요." 나무꾼은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니 괜찮겠지 하며 날개옷을 내줬어. 그날 나무꾼이 낮잠을 자다가 깨어 보니 살던 집도 흩어지고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아들 둘을 양쪽에 하나씩 끼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겠어? "여보, 어디 가오?" 나무꾼은 망연자실하여 구슬피 울었어. 그러자 노루가 와서 이러지. "그러게 아이 셋을 낳은 다음에 날개옷을 주라고 했잖아요." 노루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무꾼에게 박 씨를 주면서 이래. "이걸 심어서 넝쿨이 하늘에 닿으면 타고 올라가세요. 올라갈 때 아래를 보면 떨어지니까 조심하세요." 나무꾼은 박 씨를 심어서 넝쿨을 타고 오르다가 아래를 봤어. 그래 그만 떨어지고 말았지. 나무꾼이 울고 있으니, 노루가 와서 마지막이라며 박 씨를 또 주었어. 그걸 심어서 넝쿨이 뻗자 조심조심 하늘로 올라갔어. 나무꾼이 하늘에 닿으니 버드나무 아래 놀고 있던 아들이 소리쳤어. "아버지 오신다!" 아들은 아버지 손을 잡고 어머니한테 갔어. "당신이 여길 오시다니요!" 깜짝 놀란 선녀는 밥하다가 나와서는 나무꾼을 끌고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어. 이때 선녀의 아버지 옥황상제가 오더니 물어. "웬 사람 냄새가 나느냐?" 선녀가 인간 세상에서 같이 살던 남편이 왔다고 했더니 옥황상제가 이러지. "여기는 사람이 올 곳이 아니다. 나하고 숨기 내기를 해서 지면 당장 쫓겨날 줄 알아라." 옥황상제가 먼저 숨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나무꾼은 밥도 못 먹고 울고만 있었지. 선녀가 걱정하지 말라며 일러 주었어. "여기서 곧장 가면 작은 집 닭장에 수탉이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 수탉더러 '아버님, 왜 남의 집 수탉이 돼 있습니까?' 하고 말하세요." 선녀가 시킨 대로 했더니 수탉은 옥황상제가 되어 말했어. "야, 네가 아주 재주가 좋구나." 닷새쯤 지나서 옥황상제가 나무꾼한테 숨어 보래. 나무꾼은 걱정을 하다가 선녀한테 방법을 물었어. "아무 데나 숨으면 내가 당신 머리 양쪽에다 실꾸리를 달아 놓을게요." "그런데 웃으면 실꾸리가 떨어져서 훤히 보이니까 절대 웃으면 안 돼요." 선녀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옥황상제가 못 찾아. "못 찾겠으니 나와 봐라." 나무꾼이 하하 웃으니, 실꾸리가 떨렁 떨어지면서 모습이 보이지. "야, 정말 재주가 좋구나. 실꾸리 속에 들어가 숨다니." 며칠이 지났어. 옥황상제는 활을 세 번 쏘더니 화살을 찾아오라지. 화살이 어디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으니, 나무꾼은 선녀한테 와서 야단났다고 걱정걱정했어. "이 말을 타고 가면 큰 기와집에 아픈 사람이 있을 거예요. 아픈 사람한테 박힌 화살 세 대를 뽑아 주머니에 넣어 오세요. 도중에 일이 생겨도 늦추지 말고 빨리 오셔야 해요." 나무꾼은 선녀 말대로 화살 세 대를 뽑아 주머니에 넣었어. 그랬더니 아픈 사람 몸이 싹 나았지. 그 집 사람들이 잔치를 하겠다며 잔칫상을 받고 가라 하지. "바빠서 그럴 짬이 없습니다." 그래 돌아오는데 웬 까마귀가 날아와 머리와 손을 물어뜯어. 나무꾼은 까마귀를 쫓으려고 주머니를 휘두르다 그만 주머니를 빼앗기고 말았어. 그러니까 또 웬 검독수리가 나타나 까마귀한테서 주머니를 빼앗아 갔지. 나무꾼은 투덜거리며 돌아왔어. 선녀는 풀이 죽어 돌아오는 나무꾼에게 왜 그러는지 물었어. 나무꾼이 까마귀랑 검독수리한테 화살을 빼앗겼다고 했지. 선녀는 화살 주머니를 내주며 이러지. "이거 말인가요?" 나무꾼은 그제야 검독수리가 선녀였다는 걸 알았어. 옥황상제는 화살을 받더니 칭찬을 하지. "오, 재주가 참 좋구나. 너는 여기서 그냥 살아라." 나무꾼은 선녀하고 하늘에서 잘 살았어. 살다가 보니 두고 온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났지. 나무꾼이 끙끙 앓는 것을 보고 선녀가 말했어. "이 말을 타고 다녀오세요. 하지만 땅을 밟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니 절대로 땅을 밟지 마세요." 나무꾼은 말을 타고 어머니 집으로 내려갔어. 어머니와 나무꾼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어. 곧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니 어머니가 안타까워 말했지. "네가 좋아하는 호박죽이라도 먹고 가려무나." 어머니는 급하게 호박죽을 끓여 내왔어. 나무꾼이 말 위에서 죽을 먹다가 그만 말 등에 흘리고 말았어. 화들짝 놀란 말이 날뛰자, 나무꾼은 땅에 내동댕이쳐졌지. 땅을 밟은 나무꾼은 하늘로 돌아갈 수 없었어. 나무꾼은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다가 죽어서 수탉이 되었지. 그래서 수탉은 조금이라도 하늘과 가까워지려고 지붕에 올라가 우는 거래. "옥황상제님, 우리 식구들 잘 돌봐 주세요. 꼭이오 꼬끼오."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땅과 하늘 사이, 그리고 과거와 미래 사이. 이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이라고도 하고 나무꾼과 선녀라고도 해요. 어느 제목이 더 어울릴까요? 저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제목을 더 좋아한답니다. 이 이야기에는 여성들의 삶과 애환이 짙게 담겨 있고, 그래서 선녀 입장에서 이야기를 볼 때 더 애틋함이 느껴지거든요. 아마 나무꾼 입장에서는 날개옷을 찾은 선녀가 하늘로 훌쩍 떠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나무꾼은 불쌍한 노루를 구해 줄 정도로 착한 사람이니까 선녀한테도 꽤 잘해 주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오순도순 살면서 자식을 둘이나 낳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하늘로 떠나가다니 당황할 만도 하지요. 하지만 선녀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떠난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사실 선녀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뜻과 상관없이 모든 게 낯설기만 한 곳에서 나무꾼과 살게 된 것이었잖아요. 몸은 땅에 있지만 마음은 늘 부모님 계신 하늘나라로 향해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 날개옷을 찾자마자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나무꾼이 선녀를 붙잡은 것과 선녀가 떠나는 것이 서로 짝이 된다고도 할 수 있어요.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싱거운 일일 거예요. 날개옷을 주는 실수를 했지만 본래 착한 사람이었던 나무꾼에게는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집니다. 원래 뭐든 기회는 한 번 더 주어지는 법이지요. 그 기회를 잘 잡아서 나무꾼은 하늘에 오릅니다. 그리고 하늘까지 자기를 찾아온 남편을 고맙게 여겨서 적극 도와준 선녀 아내 덕분에 나무꾼은 옥황상제와 내기를 해서 이깁니다. 하늘나라에 살 자격을 얻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었지요.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이야기는 나무꾼한테 또 한 번의 시험을 부여합니다. 지상에 내려가서 땅에 발을 디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 시험이 뜻하는 건 무엇일까요? 여기서 땅은 나무꾼이 살았던 '과거'를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땅에 내리는 순간 나무꾼은 다시 과거에 발목 잡혀서 주저앉게 되지요.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과거에는 어머니가 있고 미래에는 아내와 자식이 있으니 참 어려운 선택이지요. 그 갈림길에서 나무꾼은 과거 쪽을 향합니다. 그 순간 미래로 가는 길은 끊기고 말지요. 나무꾼은 속절없이 죽어서 수탉이 됩니다. 수탉이 된 나무꾼은 하늘 가까이 올라가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식이 죽었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도 더 슬픈 일이 되겠지요. 이런 결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때가 되면 자식은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는 그 자식을 의연히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야 세상은 돌고 돌아 새로워질 테니까요. |
노루가 된 동생 | 의사소통 | 유아 | 그때 세상에는 물이 아주 귀했어. 오랜 가뭄이 들어 물이 귀해 가지고 노루 발자국에 고인 물을 먹으면 노루가 되고, 사슴 발자국에 고인 물을 먹으면 사슴이 되고, 토끼 발자국에 고인 물을 먹으면 토끼가 되고 그랬어. 옛날 어느 곳에 떠돌이 오누이가 살았어. 오누이는 부모도 없고 세상에 단둘뿐인데 먹고살 길도 없고 머물 곳도 없어서 그저 바람아 바람아 돌아다녔대. 그날도 오누이가 바람아 바람아 가는데 동생이 물이 먹고 싶다고 막 울지 않겠어. 하지만 먹을 물이 어디 있어야지. 누나는 하는 수 없어 노루 발자국에 고인 물을 먹였어. 그런데 어쩌면 좋아. 동생이 정말 노루가 되어 버렸어. 누나는 노루가 된 동생을 끌어안고 바위에 앉아 울고 또 울었어. 사냥을 나왔던 원님이 이 모습을 보았지. 원님은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딱하기도 하고 또 사람이 예쁘기도 해서 집으로 데려가 색시로 삼았어. 노루가 같이 살 수 있게 우리도 지어 주었지. 누나는 노루가 된 동생을 씻기고 먹이며 살뜰히 보살폈어. 노루는 우리 안에 있어도 누나가 뭘 하는지 다 알았어. 누나가 안 보이면 노루는 아기처럼 울었어. "어매 어매." 하루는 원님이 사냥을 하러 나간 사이 웬 할머니가 찾아와 밥을 달라는 거야. 하인들은 못 들어오게 막지. 원님이 아무나 들이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일렀거든. 그런데 할머니는 기어코 이 집밥을 얻어먹겠대. 밖이 시끄러우니 마님이 된 누나는 하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어. "어떤 거지 같은 할머니가 와서 꼭 이 집밥을 얻어먹겠대요." 마님은 떠돌이 할머니를 들여보내라고 했어. 그래서 이 할머니는 잘 차린 밥상을 받았지. 그런데 실은 이 할머니가 둔갑을 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밥을 실컷 먹은 할머니는 재주를 휘딱휘딱 휘딱 세 번 넘더니 마님으로 둔갑을 했어. 그러고는 누나를 방죽에 밀어 버렸지, 뭐야. 노루가 마구 뛰며 울부짖었어. 노루는 할머니가 둔갑을 했다는 것도, 누나를 방죽에 밀어 버린 것도 알았어. 그때 사냥을 나갔던 원님이 돌아왔어. 노루는 우리가 부서져라 날뛰며 우는데 색시가 대뜸 노루를 죽이라는 거야.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동생을 왜 죽이라는 거요?" "저건 죽여야 해요. 당장 없애 버려요." 그러니 뭐 할 수 있나. 원님은 하인들더러 노루를 죽이라고 했지. 그랬더니 노루는 우리를 부수고 뛰쳐나가 버렸어. 하인 하나가 노루를 쫓아갔지. 갔더니 노루가 도망도 가지 않고 방죽에서 서성이고 있어. "으아, 으아." 소리 내어 울면서 말이지. 하인은 이 모습이 이상해 원님에게 알렸어. 원님이 와서 보니 아무래도 이상하기는 해. 색시는 그토록 아끼던 노루를 갑자기 죽이라고 하고, 노루는 우리를 박차고 뛰쳐나와 방죽에서 울고 있으니, 말이야. 원님은 하인들에게 방죽 물을 퍼내라고 했어. 하인들이 방죽 물을 다 퍼내니까 색시가 바닥에 누워 있지. 노루는 달려가 누나를 안고 울었어. 그때였어. "누나!" 노루는 말을 하면서 사람이 되었어. "우리 동주야." 누나도 살아나 둘은 얼싸안고 울었지. 원님은 그제야 깨달았어. 집에 와 딱 보니 천 년 묵은 여우가 색시로 둔갑을 한 거였지 뭐야. 원님은 화살로 여우를 쏘아 죽였어. 동생은 누나랑 잘 살다가 예쁜 각시 만나 장가가더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애 좋은 남매가 있었는데 어느 날 동생이 누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루가 되어 버렸대. 누나에게 의지만 하던 동생이 누나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
아기장수 | 의사소통 | 유아 | 어느 마을에 나이 든 부부가 살았단다. 오래도록 자식을 바라고 또 바랐더니 드디어 아이가 생겼지. 여러 달이 지난 어느 날, 밭일을 하던 아내는 무 뽑듯이 쑤욱 사내아이를 낳았어.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탯줄이 잘라지지 않는 거야. 마침 옆에 억새가 있길래 급한 마음에 와락 꺾어 탁탁 쳤더니 탯줄이 툭 끊어지더란다. 아이는 어머니 젖을 먹고 부쩍부쩍 컸어. 사흘 만에 아장아장 걷더니 열흘째에는 말문이 트였네. 아무리 늦둥이라도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았어. 어느 날은 부부가 밭에서 돌아와 보니 아기가 높은 시렁 위에 올라가 있지 뭐야. 그때부터 아이는 걸핏하면 시렁 위에 앉아 있곤 했어. "여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요?" "아무래도 몰래 살펴봐야겠소." 부부는 밭에 일하러 나가는 것처럼 나갔다가 살며시 방 안을 엿보았단다. 그랬더니 아이가 콩콩 뛰고 훌쩍 날아다니는 거야. 게다가 세간살이를 번쩍 들어서 가지고 노네. 놀란 부부는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았어. 그랬더니 글쎄, 아이의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있지 뭐야. "아이고, 우리 아이가 장수예요, 아기장수!" 그날부터 부부는 안절부절못했어. 그때는 아기장수가 나면 세상을 뒤집는다고 해서 나라에서 살려 두지 않았거든. 잘못하면 식구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죽게 될 일이야.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소문이 온 마을에 좍 퍼졌어. "누구네 집에 아기장수가 태어났다면서?" "쉿, 말조심하게. 자네도 잡혀가고 싶어?" "이러다 우리한테까지 화가 미치면 어쩌나?" "혹시 날개를 자르면 보통 아이가 되려나?" 부부는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다가 가위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아기장수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야. "어머니, 관군이 닥치기 전에 콩 한 말만 볶아 주세요. 그럼 우리 모두 살 수 있어요." 부부는 아기장수 말에 따르기로 했어. 어머니는 가마솥에다 콩 한 말을 볶았어. 후드득후드득, 맛있게 다글다글. 솥에서 통통 튀는 노릇노릇한 콩이 먹음직스러웠어. 어머니는 무심코 콩을 한 알 홀까닥 주워 먹었지. "어머니, 어서 주세요. 관군이 와요." 아기장수가 재촉하자 어머니는 한 알 먹은 걸 깜박하고는 콩을 갖다 주었단다. 관군이 집을 빙 둘러쌌어. "아기장수 여기 있느냐? 썩 나오너라!" 관군 대장이 소리치자 아기장수는 마당에 떡 버티고 섰어. 그러자 콩알들이 후루룩 아기장수 몸에 달라붙네. 다리도 감싸고, 팔도 감싸고, 가슴과 등판도 감싸 튼튼한 갑옷이 되지 뭐야. 한데 왼쪽 어깻죽지에 딱 콩 한 알만큼 빈자리가 생겼어. 그걸 모른 채 아기장수는 펄펄 날아다니며 관군들과 싸웠지. 관군들이 아무리 활을 쏘아도 화살은 콩알 갑옷에 튕겨 나가기만 했어. 그때 눈 밝은 관군 하나가 알아차렸지. 왼쪽 어깻죽지 한 군데가 비어 있는 걸. 관군은 바로 그곳을 겨냥하여 활을 쏘았단다. 화살이 바람처럼 날아가 아기장수의 왼쪽 어깻죽지에 콱 박혔어. 아기장수가 쓰러지고 갑옷은 도로 콩알이 되어 또르르 굴렀단다. 관군들은 아기장수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조리 돌아갔지. 아기장수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부부에게 말했어. "아버지 어머니, 저를 뒷산 바위 아래 묻어 주세요. 좁쌀 한 섬, 콩 한 섬, 팥 한 섬과 같이요. 백 일이 지나면 제가 살아 돌아올 거예요." "그 전에 억새로 바위를 열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되니 백 일 동안은 반드시 비밀을 지켜 주세요." "그리하마. 비밀은 꼭 지키마." 부부는 훌쩍이며 좁쌀, 콩, 팥과 함께 아기장수를 묻어 주었단다. 여러 날이 지난 뒤 다시 소문이 돌았어. "뒷산에서 말 달리는 소리, 창칼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대!" "아기장수가 무덤 속에서 병사들을 기르는 소리래." "아기장수가 곧 돌아와서 나쁜 임금을 혼내고 좋은 세상을 만든대." 드디어 아기장수가 말한 백 일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어. 뒤늦게 소문을 들은 관군이 부랴부랴 뒷산 바위로 달려갔지. 하지만 아무리 바위를 쳐서 열려고 해도 칼만 뎅겅뎅겅! "안 되겠다. 아이의 부모를 끌고 오너라." 관군이 부부를 잡아 왔어. "어서 바위를 열어라." "저, 저희는 모릅니다요." 관군 대장이 남편의 목에 칼을 갖다 댔어. "바위를 못 열면 여기가 너희 무덤이 될 줄 알아라!" 관군 대장이 칼을 휘둘러 남편의 목을 치려 할 때였어. "자, 잠깐만요. 흑흑!" 아내가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지. 관군 대장이 억새로 바위를 내리치자 쩌엉, 소리를 내며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졌어. 그 안에는 콩알 갑옷을 입은 아기장수가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늠름하게 서 있었지. 함께 묻은 좁쌀과 콩과 팥이 죄다 말이 되고 병사가 되었어. 아기장수가 햇빛을 보고 소리쳤어. "아,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그 순간 아기장수와 병사들은 눈 녹듯 스러져 버렸어. 수북이 쌓인 좁쌀, 콩, 팥만 남긴 채 말이야. 그날 밤 마을 연못에서 용마가 솟구쳐 올랐단다. 용마는 아기장수를 찾아 마을 여기저기를 헤매다 긴 울음을 울고는 연못에 빠져 죽고 말았어. 사람들은 그 연못을 용마가 죽은 연못이라고 하여 용소라고 불렀지. 그 뒤 용소에서는 가끔씩 말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어.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은 용마 타고 돌아오는 아기장수의 꿈을 꾸었어.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두려움을 이기고 아기장수를 지키는 일. (아기장수)는 전설로 전해 온 이야기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널리 전해 온 전설이지요. 한때 어느 마을이든 아기장수 전설이 없는 곳이 없었을 정도예요. 이 이야기가 이렇게 널리 전해 온 것은 그 안에 그만큼 중요한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아기장수. 그 장수는 하늘이 낸 귀한 인재의 상징이 됩니다. 잘못된 세상을 훌쩍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였지요. 그래서 아기장수의 탄생은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아기장수를 찾아서 없애려 하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빠져들지요. 어린아이를 잡아서 없앤다니 참 무서운 일이지만,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든 눌러 없애는 것이 권력의 생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옛날뿐만 아니라 요즘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기장수를 잡아 없애려는 권력보다 아기장수를 얻은 사람들 스스로에게 있었습니다. 자기 집에 장수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안 부모는 두려움에 빠지고 말지요. 그들은 자기 아들이 장수가 아닌 보통 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날개를 잘라 없애려는 생각을 하지요. 하늘이 열어 준 희망을 스스로 부정하는 나약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기장수 전설에서 부모는 장수를 제 손으로 죽이려 하거든요. 가마니나 다듬잇돌로 눌러서 장수를 죽이자 용마가 나타나 울다가 죽었다는 것이 아기장수 전설의 가장 일반적인 전개가 됩니다. 자기 안의 두려움에 의해 스스로 무너진 것이지요. 이 책에 실린 이야기에서도 아기장수의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관군이 칼로 목숨을 위협하는데 어찌 버티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요. 부모가 아니라 관군이 나쁜 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 의해서 저 부모가 변호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자기 하나만의 일이 아니라 세상 전체의 일이었지요. 어떻게든 비밀을 지켜서 아기장수를 지켜 줬다면 새로운 세상이 훌쩍 열렸을 텐데 그런 기회를 없애 버렸으니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무섭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무언가 큰일을 이루려 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안의 두려움이 아닌가 합니다. 그 두려움과 맞서 싸워서 이겨 낼 때 새로운 희망은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어때요, 우리 주변에 아기장수가 나타난다면 두려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 장수를 힘껏 지켜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요? |
우렁각시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장가 못 간 총각이 살았어. 하루는 들에 나가 밭고랑을 내는데 힘이 들어 중얼중얼했지. "이놈 밭 일궈서 누구랑 먹고사나?" 밭고랑을 툭 찍으니, "이놈 밭 일궈서 나랑 먹고살지요." 글쎄 저쪽에서 답이 오잖아. "이놈 밭 일궈서 누구랑 먹고사나?" 또 밭고랑을 툭 찍으니까, "이놈 밭 일궈서 나랑 먹고살지요." 또 저쪽에서 답이 오네. 그래 살금살금 소리 나는 데로 가 봤지. 그랬더니 커다란 우렁이가 풀잎에 딱 붙어 있어. "우아, 우렁이가 크기도 참말 크다!" 총각은 우렁이를 가져다가 부엌 항아리에 넣어 뒀지. 이튿날 총각이 밭일을 마치고 왔는데, 이게 웬일이야. 따끈따끈 흰 쌀밥에 고소한 고기반찬이 한 상 차려져 있네. 다음 날도 한 상, 그다음 날도 한 상이야. 누가 차려 놨나 옆집에 물어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뒷집에 물어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별수 있나? 총각 눈으로 똑똑히 봐야지. 하루는 일 나가는 척하다 숨어 지켜보기로 했어. 가만가만 숨죽여 부엌을 엿보는데 이게 꿈이야 생시야. 우렁이를 넣어 둔 항아리에서 고운 각시가 나오잖아. 그러더니 쫑쫑 버선발로 또각또각 썰고 지지고 볶더니 뚝딱 한 상을 차려 내와. 각시가 항아리 속에 다시 들어가려는데 총각이 덥석 붙잡고 놔주질 않아. "어딜 가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내 각시요. 나랑 재미나게 삽시다!" 각시가 화들짝 뒷걸음질치다가 토닥토닥 총각을 달랬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때는 무슨 때? 나는 조금도 못 기다리오." 총각이 각시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졸라 대니 어쩌겠어. 그냥 살기로 했지. 총각이 살맛이 나서 싱글벙글 힘이 절로 솟아. 하루는 어머니한테 밭에 점심밥 좀 가져다 달랬지. 올 적에 각시 말고 꼭 어머니가 오시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어머니는 눌은밥을 며느리가 먹을까 봐 발길이 안 떨어져. 그래 배가 아프다면서 며느리한테 갖다 주라고 시켰지. 각시가 고분고분 밥 광주리를 이고 길을 나서는데, 저쪽에서 요란스레 원님 행차 소리가 들려. 얼른 언덕 아래로 내려가 몸을 숨겼지. 원님이 지나는데 언덕 밑에서 빛이 뻗쳐 나오잖아. "멈춰라." 원님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방을 불렀어. "저 언덕 아래 무엇이 빛을 내는지 가 보아라." 이방이 내려가 보니, 곱디고운 각시가 웅크리고 있어. 각시는 이방에게 금가락지를 빼 주며 "이것이라 하시오." 했지. 이방이 쪼르르 달려가 원님한테 "이것입니다." 하고 내밀었지. 그런데 원님은 또, "아니다, 아직도 빛이 뻗친다. 가 보아라." 하지. 이번에는 각시가 은비녀를 주며 "이것이라 하시오." 했어. 그런데도 원님은 "아니다, 아직도 빛이 뻗친다. 가 보아라." 해. 각시가 갖신을 벗어 주었는데도 "아직 빛이 뻗친다. 가 보아라." 하잖아. 이제 더 내줄 것이 없으니 어쩌겠어. 할 수 없이 각시가 이방을 따라가 원님 앞에 섰지. 비단결처럼 곱디고운 각시 얼굴을 보고 한눈에 반했지. 그래 누가 볼세라 얼른 가마에 태워 데려갔지. 해가 꼴딱 넘어가서야 총각이 집에 왔는데 글쎄 각시는 안 보이고 어머니가 눌은밥만 벅벅 긁고 있어. 각시를 찾으니 밥 갖다 주러 나갔는데 못 봤냐고 되레 묻잖아. 총각은 발을 동동 구르며 각시를 찾아 나섰지. 동네방네 구석구석 뒤져 봐도 각시는 온데간데없어.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물으니 동네 사람 하나가 봤는데 원님이 가마에 태워 갔다나. 그래 부리나케 관아로 달려갔는데, 문지기가 막아서지. 사정사정 울고불고 데굴데굴 뒹굴어도 소용이 없어. 문을 박차고 뛰어들다 모질게 매만 맞고 쫓겨났지. 총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다 가슴을 치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울기만 했어. 얼마나 목을 놓아 울었던지 총각은 그만 죽고 말았지. 그런데 목구멍에서 자그마한 파랑새가 포르르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네. 그날부터 파랑새가 관아 별당 보리수나무에 앉아 각시만 보고 날마다 구슬프게 울어. 각시는 서방님인 줄 금세 알아챘지. 하루는 원님이 각시한테 저 새가 왜 우느냐 묻네. 각시가 말하길, "저 새는 원래 제 서방님이옵니다. 저를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원님이 각시 말을 들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잖아. "뭣이, 이런 괘씸한 놈을 봤나!" 그래 홧김에 담뱃대를 냅다 새한테 던졌어. 그런데 담뱃대가 맞으라는 새한텐 안 맞고, 나무 둥치에 탁 맞더니 튕겨 나와 각시 머리를 크게 치고 말았네. 그렇게 각시도 죽고 말았지. 그런데 그때 각시 머리 구멍에서 자그마한 파랑새가 푸르릉 날갯짓하며 나오네. 그 모습이 총각 목구멍에서 나온 파랑새랑 꼭 닮았잖아. 파랑새가 된 총각이랑 각시는 꼭 붙어서 폴랑폴랑 하늘을 날더니 홀홀 멀리멀리 날아갔지. |
이상한 은행나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총각이 살았단다. 어느 해 큰비가 와서 큰물이 났는데 커다란 은행나무가 강물에 둥둥 떠오는 거야. “와아, 그 나무 참 크고 잘생겼네!” 총각은 얼른 은행나무를 건져 냈지. 총각은 은행나무를 집으로 가져왔어. 슬근슬근 톱으로 잘라 나뭇조각을 만들고 매끈매끈 대패로 밀어 나뭇조각을 다듬고 나뭇조각 여기저기 홈을 파고 짜 맞추니 제법 근사한 벽장문이 되었지, 뭐야. 바로 그날 밤, 총각이 자는데 꿈에 은행나무가 회오리바람을 몰고 나타나 호통을 치잖아. “네가 감히 나를 벽장문 따위로 만든단 말이냐! 얼른 나를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서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갖다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야!” 총각은 일어나자마자 벽장문을 떼어서 불에 활활 태워 재로 만들어 자루에 담았어. 그랬더니 글쎄, 재가 말을 하는 거야. “자, 얼른 떠나자꾸나!” 하고 말이야. 총각은 재가 든 자루를 메고 집을 나섰지. 한참 가다가 보니 큰 동네가 나왔어. 자루에 든 재가 이렇게 말을 하네. “이 동네에는 사람이 많이 살지만 물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우물을 파 주면 먹고살 만한 양식은 벌 텐데, 해 보겠느냐?” “그럼요, 하고말고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재는 총각에게 방법을 일러 주었지. 총각은 동네 사람을 만나자마자 물을 청했어. “목이 말라 그러니 물 한 그릇만 주시우.” “드릴 물이 없수. 우리도 물이 간당간당한 형편이라.” “아니, 물 한 그릇 못 준다니, 동네 인심이 왜 이러우?”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우리 동네는 물이 귀해 먼 데서 사다 먹는다오.” “그래요? 그거참, 힘들겠구려. 내가 물 나오게 하는 방법을 아는데, 내 말대로 해 보겠소?” “그럼요, 그렇게 하고말고요.” 총각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정자나무로 갔어. 힘센 장정들을 시켜 정자나무를 베어 내고 뿌리까지 쑥 뽑아냈지. 그랬더니 글쎄, 물이 콸콸 솟아오르지, 뭐야. “이야, 물이다, 물!” “이제는 먼 데서 물을 사 오지 않아도 되겠네!” 동네 사람들은 기뻐하며 해마다 벼 백 섬씩 주겠다고 했어. 재가 말한 대로 총각은 큰돈을 벌게 된 거야. 총각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동네를 떠났지. 한참 가다가 보니 큰 동네가 나왔어. 자루에 든 재가 이렇게 말을 하네. “이 동네에는 몹쓸 병에 걸린 부잣집 딸이 있어. 딸의 병을 고쳐 주면 큰 부자가 될 텐데, 해 보겠느냐?” “물론 하고말고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재는 총각에게 방법을 일러 주었지. 총각은 제일 큰 기와집으로 찾아가 부자 영감에게 말했지. “제가 따님의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을 압니다.” “참말인가? 그럼 얼른 낫게 해 주게.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네.” 아무도 못 고치는 병을 총각이 낫게 한다니까 부자 영감은 얼씨구나 기뻐했지. 총각은 장정 열 명과 집게를 구해 달라고 했어. 그러고는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샅샅이 들추었더니 글쎄, 굉장히 큰 지네가 숨어 있는 거야. 지네를 잡아 기름 팔팔 끓는 가마솥에 넣자마자 부자 영감 딸은 병이 깨끗이 나았어. 부자 영감은 기뻐하며 말했어. “자네 참 대단하군! 약속대로 내 재산의 절반을 주지!” 재가 말한 대로 총각은 큰 부자가 된 거야. 총각은 부자 영감과 딸의 배웅을 받으며 동네를 떠났지. 한참 가다가 보니 큰 산이 나타났어. 자루에 든 재가 이렇게 말을 하네. “여기가 내가 자란 곳이다. 나는 여기에 머물 테니, 자루에서 꺼내 뿌려 다오.” 총각은 자루에 든 재를 꺼내 뿌렸어. 그랬더니 이게 웬일이야! 재는 땅에 닿자마자 다시 큰 은행나무가 되었지. 총각이 은행나무에게 말했어. “은행나무님 덕분에 큰 재산이 생겨 좋습니다만, 고향에 가면 내가 재주 많은 사람인 줄 알고 사람들이 온갖 부탁을 할 텐데, 나는 정작 아무런 재주가 없으니, 그것이 걱정입니다!” “자, 나를 쳐다보거라.” 은행나무는 총각의 두 눈에 웬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어. 그랬더니 총각은 남 보기에 장님 같은 눈이 되었어. “이제 사람들은 너를 장님이라고 생각할 게다. 눈과 함께 재주도 잃었다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을 게야.” 총각은 돌아가는 길에 부자 영감 집에 들렀어. 부자 영감 딸이 반갑게 맞아 주더니 총각이 그 집을 떠날 때 따라나서지, 뭐야. 총각은 부자 영감 딸과 함께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타고 난 재 속에 깃든 생명력. 옛날이야기 속에는 참 뜻밖의 일이 많이 벌어져요. 재미있는 능력자도 많지요. 나무나 짐승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들도 그런 사람이지요. 이 이야기 속의 총각도 은행나무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능력자라 할 수 있어요. 이 총각은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주변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이겠지요. 물에 떠내려가는 나무를 굳이 건져 내서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생각한 일을 바로 실천에 옮기는 행동파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은행나무는 불에 타서 재가 된 상태로 총각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지요. 말 그대로 ‘이상한 은행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주는 말이 무엇 하나 그른 게 없으니 신기한 일이지요! 하긴, 수백 수천 년을 살면서 세상만사를 내려다본 나무가 하는 말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세상 구석구석에 숨겨진 일, 사람은 몰라도 나무들은 알고 있을지 몰라요. 이거, 그간 무심코 지나치던 나무들이 새롭게 보이지 않나요? 상식적으로 보면 살아 있는 상태도 아닌 ‘재’가 말을 한다는 건 좀 터무니없습니다. 재는 ‘불타서 죽은 상태’에 가깝잖아요. 맞아요, 생명과는 아주 거리가 먼 대상이지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 재가 생명을 틔우는 ‘거름’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시 알 수 없어요 에도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하는 구절이 있지요. 죽음 속에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잘 보여 주는 표현이에요.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꽃이 지고 나서 떨어진 딱딱한 씨앗에서 새싹이 자라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치에 맞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총각은 재를 자루에 담아 소중히 간직합니다.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지요. 어디로 가는가 하면 본래 은행나무가 있던 곳으로요. 그 길은 생명의 원천을 이루는 자연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각은 재가 들어 있는 자루를 메고서 존재의 근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지요. 그러다 보니 그전에 몰랐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물의 근원을 찾아내고, 또 병의 근원을 찾아내지요. 그리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자가 됩니다. 그가 세상의 주 인공이 되어 잘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씨앗 속에 우주가 있다”는 말이 있어요.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것 속에 우리 인생을 바꿀 만한 놀라운 힘이 깃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아이들한테는 더욱 그렇겠지요. 이 이야기를 본 아이들한테, “너도 한번 너의 ‘은행나무’를 찾아보렴!” 하고 말해 줘도 좋겠습니다. |
머리 아홉 달린 괴물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느 임금이 공주 셋을 두었어. 금이야 옥이야 키운 귀한 딸내미들이지. 하루는 공주들과 산책을 하는데, 하늘이 캄캄해지고 바람이 몰아쳐. 아, 그러더니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 나타나 공주 셋을 눈 깜박할 새 채 가네. 임금 걱정이야 말할 것도 없지. 장수들에게 공주들을 찾으라고 하니 허탕만 쳐. 그래서 임금은 나라 곳곳에 방을 붙이라고 했어. “공주들을 무사히 구해 오는 사람에게 나라 땅 절반을 주고 셋째 공주와 혼인시키겠다.” 시골에서 무술을 닦던 젊은이가 방을 보고 찾아왔어. 공주들을 구해 올 테니 무사 셋을 달라지. 젊은이는 무사들과 길을 떠났어. 젊은이와 무사들은 넓은 강이며 깊은 바다, 높은 산 할 것 없이 샅샅이 뒤졌어. 한데 공주들 간 데를 통 모르겠어. "쳇! 괜히 우릴 데려와서 고생시킨담." 무사들이 투덜댔지. 네 사람은 지칠 대로 지쳐 산속에 널브러졌어. "땅속 나라 괴물을 어찌 땅 위에서 찾는가."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말했어. 젊은이는 괴물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사정했지. "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큰 바위가 있네. 바위를 밀어 보게.” 노인은 말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져. 젊은이가 놀라 눈을 뜨니 꿈이지 뭐야.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니 정말 바위가 나와. 네 사람이 힘을 합쳐 미니까 바위 밑에 구멍이 보이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만큼 좁은 구멍이야. 젊은이는 밧줄로 몸을 단단히 묶고 내려갔어. 땅속 나라를 얼마쯤 가자 대궐 같은 기와집이 나와. 고운 아가씨가 사뿐히 걸어와서는 누구냐고 묻네. "괴물이 잡아간 공주님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고운 아가씨가 놀라며 말하지. "제가 셋째 공주랍니다." 젊은이는 셋째 공주를 따라 기와집으로 들어갔어. "지금은 괴물이 바깥세상에 나가고 없어요. 괴물이 돌아오기 전에 힘을 길러야 해요. 이 칼을 들어 보세요." 공주들이 아홉 자나 되는 긴 칼을 주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을 안 해. 공주들은 젊은이를 캄캄한 광에 숨겼어. "이 물은 괴물이 마시는 약수예요. 마실수록 힘이 세지는 신비한 물이지요." 셋째 공주가 날마다 약수를 갖다 주었어. 약수를 마시니 점점 힘이 났어. 그러다가 어느 날은 칼을 들 수 있게 되었지. 한데 마음대로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어. 하루는 쿵, 소리가 나더니 바람이 불고 땅이 흔들려. "괴물이 백 리 밖에 왔다는 소리예요." 공주들이 덜덜 떨며 말했어. 다시 콰쾅, 소리가 나고 아까보다 세찬 바람이 몰아쳐. "괴물이 십 리 밖에 왔군요." 아이고, 공주들 얼굴이 하얗게 질리네. "으하하하!" 금세 귀청이 찢어질 듯 웃는 소리가 들려왔어. 공주들은 젊은이를 꽁꽁 숨겨 놓고 뛰쳐나갔지. "어서 오셔요.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련해 놓았답니다." 공주들이 전에 없이 사근사근하게 굴자 괴물 입이 헤벌쭉 벌어지네. 괴물은 술을 항아리째 들이켜더니 이내 곯아떨어졌지. "괴물이 잠들었으니 석 달 열흘 뒤에나 일어날 거예요." 셋째 공주가 다시 약수를 가져왔어. 젊은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마셨지. 그렇게 석 달이 지나자 긴 칼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되었어. 뿐만 아니야. 온몸이 쇳덩이처럼 단단해지고 하늘 높이 뛰어오를 수도 있게 되었지. 드디어 젊은이가 괴물 앞에 섰어. "이 몹쓸 괴물아, 너를 죽이러 왔다!" 젊은이가 소리치자 괴물은 머리 아홉 개를 빙그르 돌리더니 다시 잠들어 버리네. "에잇!" 젊은이는 긴 칼로 첫 번째 머리를 내리쳤어. 그러자 괴물이 벌떡 일어났지. "감히 누가 내 목을 베느냐!" 놀란 괴물은 하늘로 날아올랐어. 젊은이도 따라 하늘 높이 뛰어올랐지. 둘이 싸우는 동안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어. 젊은이는 괴물의 머리를 차례차례 베어 나갔어. 하나, 둘, 셋. 드디어 아홉 번째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지. 그런데 웬일이야? 아홉 번째 머리가 날아오르더니 도로 붙어 버리지 뭐야. "앗, 머리가 붙지 못하게 재를 뿌려야 해." 공주들이 재빨리 재를 담아 와서는 아홉 번째 머리가 떨어지자 얼른 뿌렸어. 아홉 번째 머리는 하늘로 솟구치다 떨어졌어. 머리가 떨어진 괴물은 힘없이 쓰러졌어. 젊은이가 괴물 심장에 칼을 꽂자 괴물은 영영 못 일어났지. 젊은이는 공주들을 데리고 땅으로 통하는 구멍으로 가서는 차례차례 위로 올려 보냈어. 그런데 젊은이가 올라갈 차례가 되자 밧줄이 툭, 떨어져 버리는 거야. 젊은이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무사들이 일부러 놓아 버린 거였어. 젊은이는 하는 수 없이 괴물 집으로 돌아갔어. 감옥에 가 보니 수많은 사람이 갇혀 있어. 그래 돌문을 부숴 사람들을 구해 주었지. 곳간을 열었더니 쌓아 둔 곡식이 어마어마해. 젊은이가 곡식을 나눠 주자 사람들은 땅속 나라에서 농사를 짓고 살겠대. 나갈 방도가 없으니 어쩌겠어. 여러 날이 지났어. 젊은이는 바깥세상을 그리며 힘없이 앉아 있었지. 그때 커다란 학이 젊은이 앞에 내려앉으며 말하는 거야. "내 등에 올라타게." 젊은이가 학 등에 올라타니 어, 하는 사이 바깥세상이야. "도와주셔서 감사." 젊은이가 말을 맺기도 전에 학은 감쪽같이 사라졌지. 젊은이는 단숨에 대궐로 달려갔어. 그날은 마침 공주들과 세 무사가 혼인하는 날이야. 젊은이는 임금께 그동안의 일을 얘기했어. 옆에서 셋째 공주도 거들었지. 임금은 무사들에게 무서운 벌을 내렸어. 젊은이는 셋째 공주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대. 이 책의 이야기는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라고 불리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땅속에 사는 큰 도적이라니 좀 낯설고 특이한 설정이지요. 하지만 하늘나라 선녀나 신선 이야기가 많고 바닷속 용궁에 관한 이야기도 많으니 땅속 나라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어울리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땅속 나라 도적의 모습이 꽤나 흉합니다. 머리가 아홉이나 된다니 끔찍하지요. 머리를 잘라도 다시 가서 덜컥 붙는다는 것도 아주 무섭습니다.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 흉측한 괴물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닌데, 이 괴물은 만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땅속 깊은 곳에 왜 하필 이런 흉한 괴물이 깃들어 사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건 아마도 옛사람들이 가볍고 밝은 하늘과 달리 땅을 무겁고 어두운 곳으로 보았던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무언가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차갑고 어둡고 비밀스러운 공간. 이것이 지하 세계가 전하는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젊은이는 남들이 다 기피하는 그 어둡고 비밀스러운 땅 속 세상을 찾아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괴물을 찔러 죽이고서 잡혀 있던 공주들을 구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큰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놀라운 활약이었지요. 젊은이와 달리 그를 따라갔던 무사들은 지하 세계로 들어가 활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안을 엿보고서 상황을 눈치챘을 뿐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공주들을 구한 공로를 자기들이 가로채려 합니다. 그야말로 교활한술수이고 폭력이었지요. 지하 세계로 가는 통로를 막고 공주들의 입을 막으면 그만이라 여겼겠지요. 그러고는 입을 맞춰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지요. 지하 세계의 진실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말을 믿게 될 것이고요. 하지만 저 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을 덮어 버리고자 했던 음험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직접 보지 못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진실은 그리 쉽사리 덮어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묻혀 있는 진실은 언젠가 어떻게든 솟구쳐 나와서 온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젊은이가 학을 타고 올라와 무사들을 물리친 것은 감추어진 진실이 비로소 드러나 잘못된 일이 바로잡히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 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저 젊은이처럼 크고 무서운 괴물과 맞닥뜨릴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배반을 당할수도 있습니다. 음험한 거짓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지요. 이때 기가 죽거나 실망해서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맞서 싸워서 이겨 내야 합니다. 마침내 정의는 이기게 되어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서요. |
빨간 부채 파란 부채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떤 마을에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할아버지가 살았어. 할아버지가 하루는 길을 가다가 보니 나무 아래 요상한 비단 주머니가 떨어져 있지 않겠어? 비단 주머니에 고운 수가 놓여 있는 걸 보니 분명 아주 귀중한 물건 같은데 말이지. 그래 그 비단 주머니를 열어 보니 빨간 부채랑 파란 부채가 하나씩 들어 있네. 할아버지는 무심코 빨간 부채를 꺼내 펄렁펄렁 얼굴을 부치며 가던 길을 갔다지. 그런데 별일도 다 있지. 할아버지 코가 쑥쑥 두어 치나 늘어났지 뭐야. 그것도 모르고 활활 더 세게 부채질을 했더니 코는 엿가락처럼 쭉쭉 늘어났어. 할아버지는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져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지. 게다가 눈앞에 웬 코가 기다랗게 보이는 거라. 할아버지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지. 그래 혹시나 하고 파란 부채를 꺼내서 팔락팔락 흔들었어. 그랬더니 이번엔 길쭉이 코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는 거야. “거참, 신기한 부채네. 아주 신통방통하구먼.”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요술 부채를 살펴보던 할아버지 마음에 욕심보가 꿈틀꿈틀 일어났어. 할아버지는 요술 부채를 품에 숨기고 김 부자 집으로 갔어. 마침 김 부자는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지. 할아버지는 눈치를 살피다가 빨간 부채를 꺼내 김 부자 모르게 살살 부치기 시작했어. 빨간 부채에서 빨강 바람이 살살 나왔어. 코가 오이만큼 길어졌는데 김 부자는 그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지. 할아버지가 부채질을 더 하자 김 부자 코가 쭈욱쭉 엿가락처럼 늘어났어. 그날부터 김 부자는 창피해서 집 밖에도 못 나오고 머리가 무거워서 앉지도 못하게 됐지 뭐야. 근처 용하다는 의원들을 불러 코를 보였지만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했어. 무당까지 불러다 굿을 했는데도 전혀 소용없었다지. 김 부자는 울상이 되어 말했어. “코를 고쳐 주는 사람에게 내 재산 반을 주겠소!”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더니 김 부자 집으로 갔어. 가서는 밥풀을 뭉쳐 만든 가짜 약을 김 부자에게 먹였지. 그러고는 파란 부채를 꺼내 팔락팔락 부쳤어. 파란 부채에서 파랑 바람이 폴폴 나왔어. 코가 애호박만큼 작아졌는데 김 부자는 그것도 모르고 말했어. “마음이 답답하니 더 덥구려. 좀 더 세게 부쳐 봐요.” 할아버지가 부채질을 더 하자 쏘옥쏙 코가 원래대로 줄어들었지. 코를 고친 김 부자는 재산 반을 뚝 잘라 할아버지에게 줬어. 찢어지게 가난했던 할아버지가 부자가 된 거야.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땅도 사고 기와집도 지었어. 농사는 누가 지었냐고? 그거야 다 하인들 시켰지. 할아버지는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었어. 하인들 일 시키고 떡이랑 과일이랑 실컷 먹고 빵빵한 배를 퉁퉁 두드리고 나니까 할 일이 없어. 너무너무 심심해진 할아버지가 뒤뜰 정자에 누웠어. 뭐 재미난 일이 없나 궁리하다 빨간 부채를 꺼냈지. 장난삼아 자기 코에 대고 살살 빨강 바람을 일으켰어. 코가 간질간질해. “으히히, 간지럽다, 간지러워.” 할아버지는 더욱 세차게 부채질을 했지. 쑤욱쑥 자란 코가 천장에 닿았어. “으헤헤, 재밌다, 재밌어.” 빠직, 지붕을 뚫어 버린 코가 나무만큼 커졌어.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포르르 날아가고 매미들이 깜짝 놀라 요란하게 울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빨간 부채를 부쳤지. 코는 구름을 지나 쭈욱쭉 올라갔어. 마침내 할아버지 코는 하늘나라에 닿고 말았어. 맞아, 옥황상제랑 옥황상제 부인이 사는 곳 말이야. 마침 옥황상제 부인이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는데 뿌지직 빠지직, 부스럭부스럭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 가만 보니 땔감 더미가 들썩거리는 거야. “쥐가 들어왔나? 요놈, 맛 좀 봐라.” 옥황상제 부인은 부지깽이로 땔감 더미를 푹푹 찔렀어. 사실 그건 쭈욱쭉 늘어난 할아버지 코였는데 말이지. 이걸 어째? 옥황상제 부인이 기어코 뾰족한 부지깽이로 할아버지 콧구멍을 뽕 뚫고 말았네. 코를 찔린 할아버지는 아프다고 소리소리 치더니 급히 파란 부채를 펼쳐서는 팔락팔락 부채질을 했어. 그러자 기다란 코가 쏘옥쏙 줄어들기 시작했지. 그런데 코가 하늘나라 부지깽이에 걸려서 내려오지를 못하니 몸이 둥실 떠오르지 뭐야. 할아버지 몸이 정자 천장에 부딪치자 기왓장이 우지끈, 무너졌어. 놀란 할아버지가 더욱 빨리 부채질을 하니 펄럭펄럭 파랑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 할아버지 몸이 나무 꼭대기만큼 올라가자 매미가 놀라 포르르 도망쳤어. 할아버지가 구름만큼 올라가자 날아가던 새들도 허둥지둥 흩어졌지.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올라가. 하늘로 하늘로 끝없이 말이야. 그때 마침 옥황상제 부인이 밥을 다 해서 불을 빼려는지 부지깽이를 찾아. “내가 이걸 어디다 뒀더라?” 부엌을 두리번거리다 땔감 더미에 찔러 둔 부지깽이를 발견했지. 옥황상제 부인이 부지깽이를 쑥 뽑자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어. 할아버지는 발버둥을 치면서 소리를 질렀어. “사람 살려!” 그런데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대. 하나의 물건이 보물도 되고 요물도 되고. 가난한 노인이 길에서 발견한 빨간 부채와 파란 부채.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보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코를 쭉쭉 늘어나게 하고 또 줄어들게 한다니 참 독특하고 우스운 상상이에요. 따지자면, 코가 늘어나고 줄어든다는 건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데 노인은 나름 꾀가 있었어요. 빨간 부채 파란 부채를 이용해서 부자한테 큰돈을 얻어 내니까요. 어찌 보면 사기를 친 것 같지만, 코가 늘어나 걱정에 빠진 부자를 구해 준 셈이기도 하니 크게 해를 끼쳤다고 할 것은 아니지요. 그렇게 큰 부자가 됐으니 이 부채들은 큰 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저 부채가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에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 쓰면 보물이 되지만 잘못 쓰면 요물이 되지요. 부자가 된 노인이 쓸데없이 부채로 자기 코를 부쳤다가 하늘에서 떨어져 죽게 생겼으니 이렇게 흉하고 무서운 물건이 따로 없어요. 제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마구 나가다 보면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실제 세상살이가 그러하기도 합니다. 복권에 당첨되든가 해서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 오히려 잘못되는 경우를 꽤 많이 보잖아요! 잘 나갈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조심해야 하는 게 삶의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빨간 부채와 파란 부채를 부치면 코가 늘어나고 또 줄어든다고 했어요. 여기서 ‘부채질’이나 ‘코’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코는 그렇게 클 필요가 없는 것이잖아요?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의 ‘똥배’도 그래요. 배가 나오면 몸이 거북하고 보기도 별로 안좋지요. 그래서 코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모습에서 자꾸 먹어서 배가 튀어나오고 굶어서 배가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하기도 했습니다. 몸이 불었다가 줄었다가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니 자꾸 빨간 부채 파란 부채를 부쳐 댈 일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이보다는 심리적 상징 쪽으로 읽는 게 조금 더 그럴듯할 것 같아요. 흔히 ‘콧대가 높다’고 하잖아요? 코가 잔뜩 커지는 것은 아주 잘난 척 자만심이 커지는 상황을 나타내고 코가 작아지는 것은 자존심이 푹 꺾이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자만심이 커지면 하늘에라도 오른 듯 세상을 내려다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실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저 노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죽게 된 것처럼요. 흔히 사람의 진짜 적은 마음 안에 있다고 합니다. 열탕 냉탕을 자꾸 오가지 말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게 진짜 보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건 썩 마음에 드는 해석이 아니에요. 이야기를 보고 또 보면서 그 속에 숨은 깊은 이치를 멋지게 찾아내 주면 좋겠습니다. |
수달과 호랑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칠 년이나 내리 큰 가뭄이 든 때야. 물이라고는 웅덩이고 냇물이고 다 말라 버려서 물에 살던 수달들이 살 데가 없지. 그래 할 수 없이 산으로 올라가서는 나무 열매나 주워 먹으며 겨우겨우 살고 있었어. 겨울이 닥쳐서 날이 추워지니 수달들이 따뜻한 산 위에서 이도 잡고 장난도 치며 오붓하게 놀았어. 그런데 가만 보니 대가리가 산 같고 눈이 방울 같은 호랑이가 차츰차츰 산 위로 올라오는 거야. 수달들은 가슴이 처억 내려앉았지. "야, 큰일이다. 저 호랑이가 올라오면 우리는 다 죽을 텐데, 어쩌면 좋냐." 그랬더니 수달 하나가 나서며 말했어. "누구든지 저 호랑이를 쫓아 버리는 수달은 우리가 평생 먹여 살리는 것이 어떠냐?" 이러니 다들 좋다고 하지. 그랬더니 수달 하나가 썩 나서더니 말해. "내가 쫓을 것이니 너희들은 보고만 있어라." 근데 하필 가장 못났다는 수달이 나섰지 뭐야. 뭐, 어쩌겠어. 두고 볼 일이지. 못난 수달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호랑이야! 호랑이야!" 호랑이는 산을 오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제 이름을 크게 부르니까 엉겁결에 "예."하고 대답을 하지. 그러니까 못난 수달이 호령했어. "야, 너 마침 잘 온다. 내가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호랑이란 호랑이는 다 잡아먹으려고 왔는데 이 산엔 호랑이가 안 보이더니 때마침 잘 올라오는구나. 어서 와서 목숨을 바쳐라." 이 소리에 호랑이는 질겁을 해 가지고 다리야 날 살려라 도망을 쳤지. 그 모습을 보며 수달들은 깔깔 웃었어. 호랑이가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수풀에서 뛰어나와서 물어. "아저씨 아저씨, 왜 그렇게 달아나시오?" 호랑이는 숨도 못 쉬고 벌벌 떨며 말했지. "말도 마라. 저 산봉우리에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호랑이를 잡아먹으러 왔다는 것이 나보고 어서 오라고 해서 이렇게 도망친다." 호랑이 말을 들은 토끼는 어이가 없어. "나 원 참, 제가 무슨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왔다고. 아저씨, 속았소. 거기 있는 놈은 보잘것없는 수달이에요. 나하고 같이 가서 그놈을 잡아먹읍시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안 갈란다." 호랑이는 여전히 겁에 질려서 토끼 말을 곧이 안 듣고 자꾸 달아나려고만 했어. "그럼 이렇게 해서 가는 게 어때요?" 토끼가 칡넝쿨로 제 꼬리랑 호랑이 꼬리를 묶었어. "그래도 그냥 가는 게..." 호랑이는 쭈뼛쭈뼛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 "아저씨는 나만 따라오세요." 토끼는 앞장서 달리고 호랑이는 끌려가다시피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단다. 수달들은 이제 살았다고 마음을 턱 놓고 있다가 방정맞은 토끼가 호랑이를 끌고 오는 걸 보고 야단이 났어. 이번엔 꼭 죽게 생겼네. "야, 야단났다. 저 호랑이란 놈이 또 온다." "누구든지 저 호랑이하고 토끼를 쫓아 버리는 수달은 우리가 손자 때까지 먹여 살리자." 이러니 다들 또 좋다고 그러지. 그랬더니 나서는 놈이 있는데 또 그 못난 수달이야. 뭐, 급한데 아무나 나서면 어때. 못난 수달은 또다시 고래고래 소리쳤어. "오, 토끼야, 네 할아비가 못다 바친 호랑이 가죽을 네가 오늘 바치러 오는구나. 어서 오너라. 마침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니 호랑이 고기라도 뜯어 먹어야겠다." 못난 수달 목소리가 쩌렁쩌렁 산을 울리자 호랑이는 이제 겁이 덜컥 나지. "어이쿠, 이놈이 나를 꾀어 죽이려고 했구나." 호랑이는 냅다 뛰어 달아났어. 작은 토끼는 호랑이한테 매달려서 탈랑탈랑 끌려가는 거지. "아이고, 아야. 나 죽겠네." 토끼가 아프다고 소리쳐도 호랑이는 안 들리지, 이제. 그러다가 토끼는 바위에 얼굴을 쾅! 부딪쳐서 입이 째져 웃는 것같이 되었어. 그랬더니 호랑이 하는 말이 "이놈아,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냐?" 그러더니 또 뛰기 시작해. "아이고, 나 죽겠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호랑이는 멈추질 않아. 한참 도망치다 나뭇등걸에 토끼가 걸렸네. 그래도 호랑이가 사정없이 당기니 토끼는 그만 꼬리가 뚝 빠지고 말았어. 그때부터 토끼는 꼬리가 짧아지고 입은 셋으로 째졌다는구나. |
도깨비와 개암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형제가 살았어. 형은 소갈머리 없는 욕심쟁인데, 동생은 순둥이야. 부모한테도 형한테도 아주 살뜰하거든. 하루는 동생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어. 그런데 머리 위로 툭, 개암 한 톨이 떨어져. "요것 봐라! 우리 아버지 갖다 드려야겠다." 동생은 좋아서 헤헤 웃었어. 그런데 개암 한 톨이 또 떨어지는 거야. "오호! 이건 우리 어머니 드려야지." 투둑. 어라, 이번엔 개암이 두 톨이나 떨어지네. "이건 우리 형님이랑 형수님 것!" 그리고 좀 있으니까 개암이 또 한 톨 떨어졌지. "헤헤, 나도 맛 좀 봐야지!" 동생은 개암을 주머니에 잘 챙겨 두었어. 이키! 벌써 날이 어둑해져 길 찾기도 힘들지 뭐야. 마침 다 쓰러져 가는 빈집 한 채가 눈에 뜨여. 동생은 얼른 그 집으로 들어갔지. '오늘 밤은 여기서 나고, 날 밝으면 내려가야겠다.' 그런데 어디 잠이 와야 말이지. 깜깜한 밤 산속에 혼자 있으니 얼마나 무서워! 동생은 마루 들보를 타고 올라가 납작 엎드렸어. '차라리 예서 자자. 위험하니까 눈만 살짝 붙여야지.' 끼무룩 잠이 들려는 참이었어. 갑자기 왁자지껄 도깨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지 뭐야. 기다란 놈, 짤따란 놈, 뚱뚱한 놈, 마른 놈, 뾰족한 놈, 불거진 놈, 매끈한 놈. 꾸역꾸역 떼로 들어오는 거라. 들썩들썩 도깨비 잔치가 떡 벌어졌지. 도깨비들은 신이 나서 웃고 떠들었어. 방망이를 휘두르며 춤도 췄어. 뚝딱뚝딱 뚝뚝딱. 뚝뚜리딱딱 뚝뚝딱. 고래고래 노래도 불렀어. "금 나와, 나와라. 뚝딱! 은 나와, 나와라. 뚝딱!" 동생은 어찌나 무서운지 입술이 덜덜 떨렸어. 아이고, 이러다 이 부딪치는 소리라도 들리면 어째! 마침 주머니에 넣어 둔 개암이 떠올라서 얼른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지. '이걸 물고 있으면 이 부딪치는 소리가 안 나겠지?' 그런데 웬걸! 도깨비 소란이 심해지니 무섭기도 더한 거라. 동생은 개암을 더 꽉 꺠물었어. 딱! 아이코, 개암이 깨져 버렸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들보를 타고 대청을 울리는데, 도깨비들도 깜짝 놀라 움찔 멈췄지 뭐야. 그러더니 한 놈이 설레발을 치는데, "집이 무너진다아아아!" "빨리빨리!" 도꺠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떼로 도망을 쳤어. 동생이 들보에서 내려와 보니, 이게 다 뭐래? 금덩이며 은덩이가 수북한 거라. 도깨비들이 버리고 간 방망이도 그대로고. 동생은 그것들을 잘 챙겨 와서 마을에서 최고로 잘사는 부자가 되었지. 소문 듣고 달려온 형이 동생한테 벅벅 우기는 것 좀 봐. "이놈! 네가 도둑질로 부자가 되었지?" 착한 동생은 도깨비 이야기를 죄 털어놓았지. 형은 그길로 동생이 알려 준 산으로 갔어. 그런데 나무는 하나도 안 하고 개암나무 밑에 드러누웠어. 그러다 툭, 개암이 한 톨 떨어지니까 "옳다구나! 나 먹을 개암이로구나!" 하고 주머니에 넣는 거라. 개암 한 톨이 또 떨어지니까. "오호! 이것도 내가 먹고." 투둑, 개암 두 볼이 한꺼번에 떨어지니까, "오호오호! 이것들도 당연히 내가 먹어야지!" 그러고 좀 있으니 개암이 또 한 톨 떨어지네. "아이고, 개암 다섯 개를 한입에 먹으면 얼마나 고소할까?" 형은 히죽거리면서 개암을 주머니에 잘 넣었어. 형은 동생이 일러 준 빈집을 찾아 대뜸 마루 들보 위로 올라갔어. '이제 도깨비들만 기다리면 된단 말이지!' 날이 저무니까 참말로 도꺠비들이 몰려왔어. 또 잔치가 시끌시끌 벌어졌지. 형은 얼른 개암을 꺼내 꽉 물었어. 딱! 그런데 도깨비들이 콧방귀를 뀌네. "이놈이 또 왔나 보다. 저번에도 우리를 속여 방망이를 훔쳐 가다니." "거참, 잘되었다! 이놈을 잡아 신 나게 놀아 보자." 도깨비들은 다짜고짜 형을 끌어 내렸어. 그리고 방망이를 두들기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지. "길어, 길어, 길어, 길어, 길어저라. 뚝딱! 납작, 납작, 납작, 납작, 납작해저라. 뚝딱!" 형이 하도 안 오니까 동생이 찾으러 왔어. 그런데 형이 납작하니 길어져 있지 뭐야. 홑이불처럼 납작하고 뱀장어처럼 기다랗게 말이야. "아이고, 형님!" 동생은 형을 집으로 데려가 정성껏 보살피며 오래오래 잘 살았대. 신동흔 선생님과 함꼐 읽는 옛이야기. 욕심쟁이 따라쟁이의 결말. 진짜로 도깨비들이 나타나서 노는 광경을 보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이가 덜덜 떨려서 딱딱한 개암을 딱 깨뜨렸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 도깨비들한테 무엇이 있었느냐면 방망이를 가지고 있었어요. 말 그대로 '도깨비방망이'지요. 무엇이라도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신기한 방망이. 그래서 이 이야기는 도깨비방망이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개암이 방망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개암 한 톨로 도꺠비들이 놀라 도망갔고 또 형제의 운명이 갈라졌으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도꺠비와 개암이라 부르는 게 딱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암을 본 적이 있나 몰라요. 밤보다 작지만 아주 고소한 열매랍니다. 어찌 보면 작고 보잘것 없는 열매이지만, 이런 작은 물건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데서 사람의 참모습이 나타나게 되지요. 그러니까 그건 마치 마음의 거울과 같아요. 개암을 보면서 부모 형제를 먼저 떠올린 동생과 제 욕심을 먼저 챙긴 형의 차이는 작은면서도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한 가지 일에서 두 사람의 깜냥을 단적으로 가늠할 수 있지요. 이 이야기 속의 동생은 참 순수한 사람이에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행동하지요. 그가 개암을 깨물어서 도깨비들을 도망가게 한 것도 의도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보화를 얻었으니 하늘이 내린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 만들어 낸 복이겠네요. 그런데 형은 달랐어요. 동생이 부자가 된 내력을 듣고서 그 모습 그대로 흉내를 내려고 하니 '따라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이 가진 것을 자기도 어떻게든 가져 보려고 하는 욕심쟁이들이 이런 따라쟁이 짓을 하게 되지요. 한 사람이 잘된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그걸 따라 하는 사연을 담은 이야기를 '모방담' 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흉내를 내어 모방한 사람은 어김없이 쫄딱 망한다는 사실이에요. 욕심이 많고 마음이 못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남이 한 대로 따라서 한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한 번 한 일은 이미 새로운 일이 아니지요. 그렇게 남을 따라서 하다가는 자기만의 창조적인 삶을 열 수 없는 법입니다. 제풀에 지치게 되지요. 이 이야기 속에서 형이 망하는 것은 이 떄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생은 형을 어떻게 잘 보살폈을까요? 그 뒷이야기를 함께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거에요. 잠깐! 여기서 힌트 하나. 저 착한 동생한테 아직 도깨비방망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그럴듯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해와 달이 된 오누이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오누이와 어머니가 살았어. 가난한 어머니는 방아품을 팔거나 남의 집 밭일을 도와주며 간신히 살림을 꾸렸지. 하루는 어머니가 개떡을 얻어 밤늦게 돌아오는 길이었어. 집까지 가려면 큰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했지. 어머니가 고개 하나를 넘었을 때였어. 갑자기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나 앞을 턱 가로막는 거야. "어흥, 떡을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떡을 주었어. 떡을 다 먹은 호랑이는 숲속 어딘가로 사라졌지. 두 번째 고개를 넘었더니 웬걸, 호랑이가 다시 나타난 거야. "어흥, 옷을 벗어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가 벌벌 떨며 머릿수건과 저고리와 치마를 벗어 던져 주었어. 호랑이는 어머니 옷을 가지고 사라졌지. 그런데 세 번째 고개를 넘으니까 이놈의 호랑이가 또 나타났네. "호랑이님, 이젠 줄 것이 없어요. 그저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집에서 어린것들이 이 어미만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빌었지만, 호랑이는 단숨에 어머니를 잡아먹어 버렸어. 그러고 나니 호랑이는 집에 있는 아이들마저 잡아먹고 싶어졌어. 그래 어머니에게서 빼앗은 치마와 저고리와 머릿수건을 두르고는 오누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단다. 오누이는 이제나저제나 어머니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그때 문밖에서 웬 소리가 들렸어. "엄마 왔다. 문 열어라."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니 어머니 목소리랑 다른 거야. "우리 엄마 목소리는 그렇게 거칠지 않아요." "온종일 일한 데다, 올 적에 찬 바람을 쐬어서 그렇지." "그럼 문구멍으로 손을 밀어 넣어 보세요. 우리 엄마 손인가 보게." 호랑이가 문구멍으로 손을 밀어 넣자 오누이가 그 손을 만져 봤어. "우리 엄마 손은 이렇게 꺼끌꺼끌하지 않아요." "하루 종일 풀을 뽑다 보니 흙이 말라붙어서 그렇지." 오누이는 진짜 어머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문을 열고 말았지. 문을 열자, 시커먼 것이 성큼 들어왔어. 오누이는 방구석 호롱불 밑에서 오도카니 올려다보았지. 분명히 어머니 옷을 입고는 있는데, 걸음걸이도 다르고 덩치도 엄청나게 컸어. 새끼손가락만 한 호롱불이 무서운지 저만치에서 서성이는데 치맛자락 사이로 슬그머니, 털이 숭숭 달린 꼬리가 꿈틀대지 않겠어. 마침내 오누이는 호랑이한테 속은 걸 알게 됐지. 오들오들 떨던 오누이는 도망갈 생각으로 꾀를 냈어. “엄마, 똥 마려워.” “방에다 누어라.” “그럼 구린내가 나서 안 돼.” “토방에다 누어라.” “그럼 나가다가 밟을 텐데!” “뒷간에 가서 누어라.” 오누이는 방에서 냉큼 도망쳤지. 그러고는 멀찍이 떨어진 우물 옆 나무 위로 올라가 숨을 죽이고 있었단다. 오누이가 돌아오지 않자, 호랑이는 밖으로 뛰어나와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어. 뒷간에도 없고, 부엌에도 없고, 마당에도 없고... 그러다가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나무 위에 올라앉은 오누이의 모습이 비쳤지 뭐야. 호랑이는 오누이가 우물 속에 들어가 숨은 줄 알고 손짓발짓을 하며 소리쳤어. "얘들아, 이리 나오너라. 어서 나오너라. 저것들을 바가지로 건져 낼까, 조리로 건져 낼까?" 호랑이가 하는 짓이 우스워서 오누이가 그만 웃고 말았어. "히히히." 호랑이는 나무 위를 쳐다보고서야 속은 줄을 알았지. "너희들 거긴 어떻게 올라갔니?" 오빠가 대답했어. "어떻게 올라오긴. 앞집에서 들기름을 빌려다 처덕처덕 바르고 올라왔지." 호랑이는 들기름을 훔쳐 와 나무에 휙휙 뿌렸어. 그러곤 덥석 나무에 매달렸는데, 그만 미끄덩, 쿵! "얘들아, 너희들은 재주도 좋구나. 도대체 어떻게 거길 올라갔니?" 호랑이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 가며 물었어. "옆집에서 도끼를 얻어다가 나무를 찍으며 올라왔지." 철없는 누이동생이 덜컥 이러는 거야. 호랑이는 도끼를 훔쳐다가 쿵 쿵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기 시작했어. 오누이는 더 높은 나뭇가지로 올라갔지만 호랑이도 바짝 따라 올라왔어. 마침내 더 올라갈 곳이 없게 된 오누이는 두 손을 모으고 하느님께 빌었지. "하느님! 우리를 살리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 주시고, 우리를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자 오누이가 붙잡고 하늘로 둥실둥실 올라갔어. 까딱 잘못했다간 큼직한 호랑이 발에 훅, 잡힐 뻔했지. 눈앞에서 오누이를 놓친 호랑이는 분하고 억울했어. 그래서 오누이를 흉내 내 하느님께 빌었단다. "하느님, 나를 살리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 주고, 죽이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 주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자 호랑이는 그 줄을 잡고 올라갔어. 그렇지만 그건 썩은 동아줄이었지. 동아줄이 툭 끊어지자 호랑이는 땅으로 뚝 떨어져 죽고 말았어. 그때 호랑이가 떨어진 곳이 수수를 거둔 밭이었는데, 지금도 수숫대가 빨간 것은 그때 묻은 호랑이 피 때문이래. 그렇게 해서 하늘에 올라간 오빠는 달이 되고 누이동생은 해가 되었대. 그래서 혼자 숲길을 가는 사람이 있으면 낮이나 밤이나 무섭지 말라고 하늘에서 환한 빛을 보내 준단다. |
돈이 귀신 된 이야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장돌뱅이 부부가 있었어. 이 장터 저 장터 돌아다니며 장사를 해서 먹고살았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던 거야. 어느 날 저녁 무렵, 장돌뱅이 부부는 한 마을에 닿았어. 하룻밤 신세 질 곳을 찾는데 마침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있는 거야. 그런데 주인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네. 그래서 대문을 슬쩍 밀었는데 문이 쓱 열리지 뭐야. 부부는 집 안을 들여다보았지. 텅텅 비어 있었어. 고양이 한 마리, 새끼 쥐 한 마리 볼 수 없었어. 부부가 망설이고 있는데 영감님이 지나가네. 그래 붙잡고 물어봤지. "빈집인 모양인데, 하룻밤 묵어가도 될까요?" "안 될 소리! 이 집은 흉가야. 흉가." 영감님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을 이었어. "이 집엔 귀신이 나와. 이 집 식구가 원래 열둘이었는데 다 죽었어." 하지만 부부는 기와집으로 들어갔어. 흉가라도 바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잖아. 기와집으로 들어간 부부는 입이 떡 벌어졌어. 부엌에는 쌀독마다 쌀이 가득가득 차 있고, 방 안에는 세간이며 이불이며 없는 게 없었어. 부부는 한 상 잘 차려 배불리 먹었어. 그런 다음 남편은 집을 나섰어. 언제 어디서 장이 서는지, 뭘 사고팔면 좋은지, 이것저것 알아보러 나간 거야. 그 바람에 아내는 혼자 남게 되었지. 아내는 남편 오기를 기다리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천장에서 쿵! 소리가 나네. "쥐가 뛰나?" 아내는 화들짝 놀라 천장을 올려다보았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천장이 스윽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다리 하나가 쑤욱 나오는 거야! 곧바로 다른 데가 갈라지면서 다리 하나가 또 나오네. 다리 두 개가 툴러덩툴러덩, 팔 두개가 투툭, 우둥퉁한 몽뚱이 하나가 투욱, 마지막으로 댕글댕글한 머리가 쑥. 그것들이 다 엉겨 붙어 우뚝 서니 무시무시한 귀신이 되었어. 귀신은 이불 속에서 덜덜 떠는 아내를 보며 입맛을 다셨어. "둘이 왔는데 하나만 있네. 내일 와서 둘 다 잡아먹어야지!" 남편이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있었어. 아내는 남편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러주었어. 그러자 남편이 암팡지게 말했어. "흉가라더니 귀신이 정말 있었구나!" 다음 날 밤, 부부는 귀신이 나타나길 기다렸어.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말이야. 한밤중이 되자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 천장이 갈라지면서 무시무시한 귀신이 나타난 거야. 귀신은 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어. "헤헤, 오늘은 둘 다 있네!" 귀신이 이불을 들추려는 참에 남편이 팔을 쭉 뻗으며 소리쳤어. "이놈! 뜨거운 맛을 봐라!" 남편의 손에는 뜨거운 인두가 쥐여 있었어. 인두는 귀신의 가슴을 지지직. "어이쿠, 나 죽네! 어이쿠, 나 죽어!" 귀신은 방방 뛰며 뛰쳐나갔어. 남편은 인두를 꼭 쥔 채 귀신을 쫓았어. 귀신이 도망간 곳은 헛간이었어.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귀신이 없는 거야. "이상하다! 분명 이리로 왔는데." 남편은 다시 한 번 헛간을 둘러보았어. 그때 헛간 한구석에 커다란 독이 보였어. "옳지, 저기 숨었구나!" 남편은 인두를 꼭 쥔 채 독 안을 들여다보았어. "이놈!"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독 안에 귀신은 없고 돈만 가득한 거야. 순간 남편은 깨달았지. "그놈이 돈 귀신이었구나!" "돌고 돌아서 돈인 것을, 이렇게 묻어만 두니 귀신이 된 게지." 남편은 독 안의 돈을 모두 꺼내 장사 밑천으로 썼어. 독 안에 갇혀 있던 돈은 물처럼 공기처럼 돌고 돌게 된 거지. "이제 돈 귀신은 절대 안 나타날 거야!" 남편의 말은 꼭 맞았어. 그 뒤로는 아무도 그 무시무시한 귀신을 본 사람이 없다니 말이야. 신동흔 선생님과 함꼐 읽는 옛이야기. 돌고 돌아야 돈이지 멈추면 귀신. 세상에 수많은 귀신이 있다지만 '돈 귀신' 이라니 참 낯설고 신기하지요? 사람이 쓰려고 만든 돈이 귀신이 되었다니 말이에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돈은 귀신이 돼서 사람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말이 아주 그럴듯합니다. 세상에 돈만큼 무서운 게 없잖아요! 돈 때문에 울었다가 웃었다가 하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때로는 다른 사람을 해치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돈이 귀신이 될 수 있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돈이 다 나쁜 거라거나 흉한 귀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돈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잘 벌어서 잘 쓰면 행복을 가져다주지요. 문제는 그 돈을 잘못 다루는 데 있습니다. 돈이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나게 되지요. 이 책 속의 이야기에서 돈은 왜 귀신이 됐던 것일까요? 주머니 속에 갇혔던 이야기들이 귀신이 된 거랑 비슷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이든 이야기든 여기저기로 흘러서 움직여야 하는데 한곳에 딱 갇혀 있으니까 문제가 생겨난 거지요. 저 돈이 왜 헛간 속에 꽁꽁 갇혀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그 주인이 돈을 잔뜩 모아서 움켜쥐고서 자기만 가지고 있으려고 했기 때문일 거예요. 잘은 몰라도 그는 '돈에 미친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돈 앞에 벌벌 떨면서 한 푼도 쓰지 못하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그렇게 돈에 사로잡힌 사람은 심하게 말하면 '돈의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돈을 저렇게 많이 모아 숨겨서 행복했을까요? 천만에요. 혹시라도 누가 그 돈을 빼앗아 갈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거에요. 그러니 저렇게 흉가가 된 거지요. 돈은 돌아야 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고 돌아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하는 게 돈의 구실이시죠. 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돈 앞에 벌벌 떨면서 어떻게든 움켜쥐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돈의 '주인'이 되어서 요긴하게 잘 쓰는 게 현명한 일이지요. 필요한 사람한테 흘러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경제 원리로 보아도 꼭 그러합니다. 장롱 속에 꽁꽁 가둬 둔 돈이 경제를 해치는 법이거든요. 이야기 속에서 귀신이 된 돈을 찾아내서 쓴 사람이 누구냐면 장돌뱅이였어요. 장돌뱅이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에요. 돈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니까, 장돌뱅이가 돈 귀신을 풀어냈다는 건 이치에 딱 들어맞는 일이 됩니다. 그래요, 저 돈을 모아서 숨겨 놓은 사람보다 저 장돌뱅이가 저 돈의 진짜 주인이라 할 수 있지요! |
거짓말 세 자루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밤나무 골에 어떤 영감님이 살았어. 영감님에겐 딸이 하나 있는데, 이 딸이 다섯 살 때 부인이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어. 영감님은 어린 딸이 가엾어서 금이야 옥이야 고이고이 길렀어. 딸은 커 갈수록 더 예뻐져서 총각이면 누구나 욕심을 냈지. 그런데 딸 시집보낼 때가 되자 영감님이 무슨 속셈인지 이런 글을 길거리에 써 붙였어.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총각들이 몰려왔어. 별의별 그럴듯한 거짓말을 잔뜩 준비해서 말이야. 총각들은 저마다 갖은 거짓말을 늘어놓았어. 하지만 영감님은 기껏 거짓말을 다 듣고 나면 이러는 거야. "네 말은 참말이로구나!" 이러면 총각들은 꼼짝없이 머슴살이를 해야만 했지. 산골에 사는 나무꾼 총각도 이 소문을 들었어. 총각은 자루 세 개를 준비했지. 첫 번째 자루에는 맛있는 배 한 알을 담았어. 두 번째 자루에는 삽 한 자루를 담았지. 그리고 종이 한 장을 펼쳐 무언가 끄적끄적 쓰더니 그 종이를 세 번째 자루에 담았지. 집에 찾아온 총각에게 영감님이 재촉했어. "어서 거짓말을 해 보게나." 끝에 가서는 '네 말은 참말이다!'라고 할 참이야. 그런데 총각은 하라는 거짓말은 안 하고 실실 웃기만 해. "저는 그냥 배 맛이나 보시라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첫 번째 자루에서 커다란 배를 꺼내 영감님에게 내밀었어. 영감님은 별일이다 생각했지. 그래도 배를 받아서 먹어 보니까 엄청 맛있는 거야. 또 먹고 싶을 만큼 말이야. "이렇게 다디단 배는 처음 먹어 보네. 어디서 땄는가?" "참 특별한 배지요. 어디서 땄느냐고요?" 총각이 입맛을 다시더니 이야기를 시작했어. 저기 산속에 들어가면 집채만 한 돌부처가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 머리에 배나무가 한 그루 있답니다. 배나무가 어찌나 높은지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라니까요. 그래서 제가 궁리를 했습니다. 기다란 갈대를 꺾어다 부처님 콧구멍을 살살 간지럽혔어요. 그랬더니 부처님이 에에취~ 하고 재채기를 하지 뭡니까. 그 바람에 배들이 우수수 떨어진 걸, 장에 내다 팔고 딱 한 개 남겨서 가져온 거예요. 이야기를 들은 영감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어. "돌부처가 재채기를 했다고? 세상에 그런 거짓말을 믿으라고?" 이 말을 듣더니 총각이 씨익 웃었어. 영감님은 아차 싶었지.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이라고 말해 버렸으니까. 이제 당황해서 땀이 다 나지 뭐야. 영감님은 가난뱅이 총각에게 곱게 키운 딸을 빼앗길까 싶어 정신을 바짝 차렸어. "영감님, 더우신 모양입니다?" 총각이 주섬주섬 두 번째 자루를 열었어. 자루에서 삽을 꺼낸 총각이 벌떡 일어섰어. 이 모습을 보니 영감님은 또 궁금증이 절로 나지. "자네, 삽으로 부채질이라도 할 셈인가?" "아뇨, 뒷동산에 가려고요." 영감님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 소매를 둥둥 걷어붙이면서 총각이 말했어. 이 집 뒷동산이 크잖아요. 제가 거기 가서 동굴을 파 드리겠습니다. 동굴을 깊이 파 놓고 한겨울 바람을 잡아넣는 거죠. 그런 다음 한창 더울 때 동굴 문을 조금씩 열어 놓으면 찬 바람이 솔솔 나와서 여름 내내 시원하지요. 게다가 지금처럼 땀이 날 때는 바람을 작게 잘라 꺼내 오면 됩니다. 영감님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어.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잖아. "뭐, 바람을 잘라서 꺼내 온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어디 있나?" 이래 놓고 또 아차 싶었지. 자기 입으로 두 번이나 거짓말이라고 해 버렸으니까. 그래도 마지막이 남았잖아. "어서 세 번째 거짓말을 해 보게나." 이번엔 무조건 '네 말은 참말이다!' 하려고 단단히 결심했어. 총각이 어떤 거짓말을 해도 말이야. 그런데 총각은 거짓말하려고 온 게 아니라면서 세 번째 자루를 뒤적거리지. 그러더니 자루 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냈어. "그게 뭔가?" "읽어 보시지요." 종이를 펼쳐 든 영감님 눈이 등잔만큼 커졌어. 총각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시작했지.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남겨 주신 빚 문서입니다. 영감님에게 돈 오천만 냥을 뀌어주셨다는 내용이군요. 이 종이에 적혀 있는 이만석이 영감님 성함 맞지요? 날짜를 보니 오늘이 딱 5년 되는 날이네요. 영감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어. 거짓말이라고 하면 총각을 사위 삼아야 하고 '네 말이 참말이다!' 하면 돈을 갚아야 하잖아. 끙끙 앓던 영감님이 이렇게 소리쳤어. "예끼, 이 사람, 거짓말이 심하군!" 이리하여 총각은 거짓말 세 자루로 영감님 사위가 되었지. 부지런한 총각은 열심히 일해서 영감님을 더 큰 부자로 만들어 주었어. 영감님 딸은 총각을 맘에 들어 했냐고? 아무렴, 그렇고말고. 영감님 딸은 남편이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에 매일매일 깔깔깔 웃느라고 심심할 틈이 없었거든. 거짓말을 잘해서 부잣집 사위가 된 사람. 이거 좀 말이 안 되지요? 아니, 세상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거짓말쟁이를 사위로 삼겠다 하니 이런 엉터리가 없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합을 벌였고 그 시합에서 보기 좋게 당했으면 쫄딱 망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 사위랑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니 말이에요. 이야기를 보면 금이야 옥이야 사랑했던 딸도 자기 신랑을 꽤나 좋아하는 듯하니 이건 또 어쩐 일일까요. 가만, 책 속의 그림을 보면 주변 사람들도 다 웃으면서 즐거워하고 있네요. 영감이 당하니까 쌤통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글쎄요,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거짓말의 성격입니다.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거든요. 일부러 남을 속이려고 하는 악의의 거짓말도 있지만,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주기 위해서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지요. 그리고 또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즐거운 거짓말'도 있습니다. 저 총각이 한 거짓말은 바로 이 즐거운 거짓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거짓말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야기'예요. (거짓말 세 자루)만 하더라도 사실이 아니라 꾸며 낸 이야기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를 즐겁게 해 주니 즐거운 거짓말이라 할 수 있지요. 옛날이야기들은 대개 다 일종의 거짓말이라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거짓말이 아니라 기분 좋은 거짓말이지요. 듣고 보면 이치에 맞는 그럴싸한 거짓말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즐거운 거짓말을 멋지게 펼쳐 낸 저 총각은 한 명의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잘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지요. 힘이 세거나 머리가 좋은 것보다 더 멋진 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면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어요. 총각이 해준 돌부처 이야기나 한겨울 바람 이야기, 참 기발하고 재미있잖아요. 이런 이야기 매일 들으면서 살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 결말에서 다들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는 것은 엉뚱한 일이 아니라 꼭 맞는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지리산 포수 아들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지리산 밑에 아버지 없는 아이가 살았어. 그래서 종종 글방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어. "호랑이 밥아!" "호랑이 밥아!" 아이는 어머니에게 물었어. "어머니, 애들이 저더러 호랑이 밥이래요. 왜 그러는 거예요?" "알 것 없다. 글공부나 잘하렴." 어머니는 좀처럼 대답을 안 해 줬어. 그런데 자꾸 놀림을 받으니, 아이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지. "제가 왜 호랑이 밥이에요?" 아이는 몇 날 며칠을 어머니를 졸라댔어. 그러니 어째?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지. "네 아버지는 이름난 포수였는데, 네가 배 속에 있을 때 호랑이 잡으러 갔다가 그만 호랑이 밥이 되고 말았단다." 아이는 깜짝 놀랐어. '이놈의 호랑이, 내가 반드시 잡고 말 테다!' 아이는 단단히 마음먹고는 어머니에게 콩 한 말을 볶아 달랬어. 볶은 콩을 가지고 글방에 갔어. "얘들아, 이 콩 먹고 싶지? 그럼, 쇠붙이 가져와." 그랬더니 아이들이 너도나도 부러진 낫이며 녹슨 호미 같은 것을 가지고 왔어. 아이는 쇠붙이를 지게 가득 모아 가지고 대장간으로 갔어. "아저씨, 총 하나 만들어 주세요. 호랑이 잡을 거니까 크고 단단한 걸로요!" 그 뒤로 아이는 글방엔 가지도 않고 날마다 총 쏘는 연습만 했어. 그러기를 몇 달, 이제 제법 총을 잘 쏘게 되었어. 어느 날 아이는 아버지 원수를 갚으러 가겠대. "안 된다.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느냐. 너까지 잡아먹히면 어미는 어쩌라고...." 어머니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도무지 듣지를 않아. 그래 아들 총 솜씨를 보려고 이렇게 말했어. "네 아버지는 십 리 밖에 있는 나뭇잎도 한 방에 맞히는 재주가 있었단다. 그런데도 호랑이 밥이 되었어."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십 리 밖 나뭇잎을 한 방에 맞혔어. 그러자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했어. "네 아버지는 십 리 밖에서 내가 이고 오는 물동이를 한 방에 맞혀 구멍 내고, 다시 한 방을 더 쏘아 그 구멍을 막는 재주가 있었단다. 그런데도 호랑이 밥이 되었어." 그러니까 아이가 또 저도 할 수 있다면서 해 보이는데, 이번에도 아주 잘하는 거야. 이러니 어머니도 더는 말릴 수 없어서 떠나랄밖에. 아이는 지팡이 하나를 마당에 꽂으며, 말했어. "어머니,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제가 살아 있는 줄 아시고, 죽으면 저도 죽은 줄 아세요." 어머니는 지팡이 나무를 아들인 양 바라보면서 빌었어. "천지신명님, 제발 우리 아들을 살펴 주세요." 아이는 산으로 들어갔어. 산은 점점 깊어지고 날은 저무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쉬어 갈 만한 데가 없어. 그때 마침 멀리 불빛이 비쳐 한달음에 달려갔지. 허름한 외딴집에서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문을 여는데, 하룻밤 묵어가겠다니까 그러래. "내 지금껏 이 산에 들어온 포수는 많이 봤어도 나간 포수는 못 봤네. 모두 수천 년 묵은 호랑이한테 잡아먹혀서 그렇지." 그러면서 밥 한 그릇 내놓는데, 한술 뜨자마자 힘이 불끈 솟아. 아무래도 할머니 하는 양이 이상해 뉘시냐고 물었어. "나는 산신령이란다. 네 효심이 하도 기특해 산삼 밥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때서야 아이도 마음 놓고 한숨 푹 잤어.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아이를 깨우며 이래. "저 까마귀를 한 방에 맞혀 보아라." 그래 아이가 총을 탕 쏘았어. 그랬더니 까마귀가 우수수 떨어지는데, 그게 까마귀가 아니고 모두 호랑이야. "네 아버지는 겨우 세 마리밖에 못 맞혔는데 넌 재주가 용하구나. 호랑이 떼를 만나도 걱정 없겠어." 그러더니 또 동삼 밥을 내주며 이래. "여기서 더 들어가면 호랑이들만 사는 데가 나올 게야. 거기 호랑이들은 수천 년 묵어 둔갑을 잘한단다. 중도 됐다 나무꾼도 됐다 각시도 됐다 하니까 속지 말고 죄다 쏴 죽여라." 아이는 연신 절을 하고는 다시 길을 떠났어. 가도 가도 첩첩산중 길도 없고 인적도 없는데, 짐승들 소리만 들리니 등골이 오싹해. 그래, 바삐 걸음을 옮겼어. 한참 가다 보니 웬 늙은 중들이 바둑을 두고 있어. "사람 하나 없는 산중에 바둑이라니, 별 중들을 다 보겠네." 그냥 지나가려는데, 산신령이 일러준 말이 떠올라 아이가 총을 한 방 쏘았어. "이가 무나, 벼룩이 무나?" 중들이 총 맞은 데를 슬슬 긁으면서 빤히 쳐다보는 거야. 겁이 덜컥 났지. 그래서 총을 연거푸 쏘아 댔어. 그랬더니 그때서야 중들이 길길이 날뛰면서 나자빠지는데, 죽은 걸 보니 영락없는 호랑이들이더래. 다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웬 나무꾼들이 담뱃불 좀 달래. '나무 하나 없는 바위산에서 나무를 하다니....'수상쩍어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나무꾼들이 달려들어 총을 빼앗으려고 해. 홱 뿌리치고 총을 연거푸 쏘아 댔지. 그랬더니 나무꾼들이 픽픽 쓰러지는데, 죽은 걸 보니 또 틀림없는 호랑이들이더래. 아이는 다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이번에는 웬 각시들이 벼랑에서 나물을 캐고 있어. '풀 하나 없는 벼랑에서 나물을 캐다니....' 수상쩍어 연거푸 총을 쏘아 댔지. 그랬더니 각시들이 하나둘 고꾸라지는데, 죽은 걸 보니 이게 또 영락없는 호랑이들이지 뭐야. 다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해가 저물었어. 그래 찬 이슬이나 피할까 하고 오두막을 찾는데,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예쁜 색시가 나오더니 들어오래. 마침 잘되었다 하고 들어가 누웠는데, "총각 참 잘생겼다. 총각 옆에서 자야지." 색시가 실실 웃으면서 따라 들어와 곁에 눕는 거야. 아무리 봐도 색시 하는 양이 수상해. 가만 살펴보니 각시 발에 털이 부숭부숭, 발톱이 뾰족뾰족한 게 사람이 아냐. 아이는 후다닥 일어나 총을 잡았어. 그랬더니 색시가 집채만 한 호랑이로 변해 가지고 입을 쩍 벌리고 벼락같이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거야. 눈앞이 캄캄, 팔다리가 후들후들. 아이는 정신이 아찔한데 호랑이가 덥석 총을 무네. 옳거니! 냅다 방아쇠를 당겼지. 그랬더니 온 산이 쩌렁 울리도록 크게 울부짖으며 호랑이가 팩 고꾸라지는 거야. 총알이 목구멍을 지나 배 속까지 들어갔으니 제아무리 수천 년 묵은 호랑이라도 안 죽고 배길 재간이 있겠어? 이튿날 날이 밝았어. 아이가 가만 보니 집 안 곳곳에 사람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아이는 아버지 뼈도 그 안에 있겠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어. "아버지, 아들이 왔어요. 아버지 원수도 갚았어요. 여기 계시면 뭐라 아는 체라도 해 주세요." 그랬더니 어디선가 띵! 소리가 나. 아이는 소리 나는 뼈를 주워 가지런히 담았어. 그런데 또 어디선가 띵! 소리가 나. 돌아보니 묻혀 있던 총에서 난 소리야. 아이는 아버지 총이려니 생각하며 총도 잘 챙겨 나왔어. 호랑이와 맞서 싸운 지리산 포수 아들. 이 사연이 주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는 먼 지방에서 전설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편안하게 웃고 즐기는 이야기와는 성격이 좀 다르지요. 옛 시절에 호랑이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존재였답니다. 그와 마주치면 십중팔구 죽음이에요. 그냥 곱게 죽는 것도 아니고 그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거니까 얼마나 무서워요. 그 무서운 호랑이와 일대일로 맞선다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활이 있고 총이 있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호랑이는 총 한 방에 픽 쓰러지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호랑이한테 잃은 아이입니다. 저 아이는 감히 호랑이와 맞서려고 해요. 세상 사람이 다 이길 수 없다고 하는 상대와 홀로 맞서 싸운다는 것. 생각하면 무척 비장한 일입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그것이 '호랑이'로 돼 있지만, 요즘 식으로 풀어 생각하면 포악한 폭력 조직이나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파탄을 면하기 힘든 무서운 상대임에 틀림없지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힘든 싸움에 떨치고 나서서 마침내 승리를 쟁취해 냅니다. 그의 행보에는 크고 무서운 상대와 어떻게 싸워서 자기 삶을 펼쳐 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스스로의 의지입니다. 맞서서 이겨 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아예 싸움이 불가능하겠지요. 이와 함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실력을 닦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총 쏘는 연습을 했고 그래서 호랑이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남에게 도움을 얻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아이는 산속에서 만난 할머니가 자신을 도와줄 존재임을 알아보고 그 조언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지요. 하지만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유혹이나 함정을 이겨 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둑 두는 중들과 나무꾼, 나물 캐는 각시, 기와집에서 아이를 유혹하던 예쁜 색시도 아주 무서운 함정이었습니다. 함정이란 겉으로 아무렇지 않고 안전해 보이는 모습 속에 깃들어 있기 마련이지요. 저 아이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거기 대비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냉철함을 유지했기 때문에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 주는 교훈은 늘 주변 사람을 불신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렇게 해선 편안히 살아가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요. 그럴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하고 냉철함을 유지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 법이지요. 흠, 많이 심각했나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답니다. |
효녀 심청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에 간날에 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살았어. 심 봉사는 마음씨 고운 부인과 금실이 좋았는데 딸을 낳고는 이레 만에 부인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심 봉사는 갓 낳은 딸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어. 우물가에서 두레박 소리가 나면 더듬더듬 다가가 "물 긷는 아낙님, 어미 잃은 아가 젖 좀 주시오." 들에서 호미 소리가 나면 또 더듬더듬 다가가 "김매는 아낙님, 불쌍한 아가 젖 좀 베푸시오." 그렇게 동냥젖으로 딸을 길렀어. 어찌어찌 한두 해가 지나고 서너 해가 지나더니 심 봉사네 딸 청이도 일곱 살이 되었어. 어린 청이는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이 되고 손이 되었고 끼니 동냥까지 다니며 지극 정성으로 모셨어. 열두 살이 되자 남의 집에 품을 팔며 살림을 꾸렸지. 어느 날이었어. 춥고 어두워졌는데도 일을 하러 간 청이가 안 오니까 심 봉사는 걱정이 되어 더듬거리며 마중을 나갔어. 그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에 풍덩 빠져 버렸지 뭐야. "아이고, 사람 살려!" 때마침 길을 가던 스님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심 봉사를 건져 주었어.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도 있습니다." 스님이 조심스럽게 말했어. "눈을 뜰 수 있다고요?" 심 봉사는 자신의 형편을 생각도 않고 공양미를 바치겠다고 덜컥 약속을 해 버렸어. 집에 온 심 봉사는 뒤늦게 땅이 꺼져라 한숨이야. 끼닛거리도 없는 집에서 공양미 삼백 석을 어찌 구해. 부처님 앞에 거짓말을 한 셈이니 말도 못하게 괴롭지. 이 모습을 보는 청이도 마음이 무거워.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되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청이는 중국을 오가는 상인들이 처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들었어. 배가 인당수라는 사나운 바다를 지나가는데 용왕님께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무사하다는 거야. 청이는 상인들을 찾아가서 제물이 되겠다고 했어. 청이는 제가 떠난 뒤 아버지 잡수시라고 쌀을 마련하고, 아버지 입으시라고 옷과 갓을 지었어. 상인들은 공양미 삼백 석을 절에 보내 주었고 배 떠나는 날이 되자 청이를 데리러 왔지. 그제야 청이는 아버지에게 말했어. "오늘 제가 중국 오가는 상인들을 따라 떠나요. 아버지, 꼭 눈을 뜨세요." 심 봉사는 기가 막히고 하늘이 무너져서 엎어지고 넘어지고 가슴을 쾅쾅 치며 울었어. 청이를 태운 배가 황해를 둥둥 떠갔어. 이윽고 인당수에 이르자, 바람이 거세게 불고 산 같은 파도가 일었어.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렸어. 상인들은 바삐 상을 차리더니 둥둥둥 북을 두드리며 용왕을 달래기 시작했어. 마침내 청이가 뱃전으로 나와 섰어. 열 길 아래 검은 바다에 파도가 사납게 춤을 추었어. 청이는 아버지 눈을 뜨게 해 주십사 기도하더니 한 송이 꽃처럼 바다에 몸을 던졌어. 검은 파도가 순식간에 청이를 삼켜 버렸어. 사납게 불던 바람이 멈추고 거칠게 일던 파도가 고개를 숙였어. 상인들의 배는 멀리 사라졌어. 청이는 잔잔해진 바다 깊숙이 가라앉았지. 청이는 눈을 떴어. 죽은 줄 알았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닷속 궁궐이었어. 앞에는 용왕님이 앉아 있고 용궁의 신하들이 줄지어 서 있었어. "어찌하여 이 깊은 바다에 뛰어든 것이냐?" 청이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어. 용왕님은 청이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 감탄하여 인간 세상에 다시 보내 주겠다고 했지. 중국에 장사를 갔다 돌아오던 상인들은 다시 인당수를 지나게 되었어. 그런데 웬 커다란 연꽃이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거야. 상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꽃을 고이 건져 배에다 실었어. 상인들은 신기한 연꽃을 임금에게 바쳤어. 임금은 그때 왕비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향기로운 연꽃에 마음이 끌렸지. 그래 궁궐 연못에 연꽃을 띄워 두고 하루하루 마음을 달래며 보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연꽃이 벌어지더니 어여쁜 처녀가 나타난 거야. 청이였어. 임금은 청이가 연꽃 속에 있게 된 사연을 듣고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청이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어. 청이는 왕비가 된 다음에도 아버지가 자꾸 생각났어. 그래 임금에게 나라에 있는 봉사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지. 소문을 듣고 심 봉사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잔치가 여러 날 계속되었지만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어. 하루하루 지날수록 청이는 눈물짓는 일이 많아졌어. 어느덧 잔치 마지막 날이 되었어. "도화동의 심학규!" 심 봉사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어. 청이는 부랴부랴 달려가 아버지 손을 잡았어. "아버지, 저 청이예요!" "우리 딸 청이는 몇 해 전에 죽었다오. 그런데 청이가 살았다고? 어디 좀 보자, 우리 청이!" 심 봉사는 정말 딸을 볼 것처럼 눈에 힘을 불끈 주었어. 그러니까 번쩍! 두 눈이 떠지지 뭐야. 청이는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어. 백성들도 효심이 지극한 왕비를 본받아 나라에는 효자 효녀가 많아졌다는구나. 신동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이야기 저 아버지가 딸을 효녀로 키운 것 말 그대로 '효녀 심청' 이에요. 동냥을 하고 품팔이를 해서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았으니 세상에 이런 효녀가 또 어디 있을까요? 용왕님도 감동하고 임금님도 감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어린 심청이 어떻게 저리 마음 갸륵한 효녀가 되었는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어요. 부모에 대한 효심을 강조하려고 만들어 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혹시 해 보지는 않았나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보면서 심청이 일방적으로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 봉사를 흉보기도 하지요. 제 눈 뜨자고 자식을 팔아먹은 무능력하고 못난 아버지라고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이야기 속에서 심 봉사는 딸이 공양미 삼백 석을 위해 몸을 팔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릅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억장이 무너지지요. 그때 심 봉사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었을 거예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심 봉사가 가난한 데다 눈도 보이지 않는 몸으로 어머니도 없는 갓 낳은 딸을 정성껏 키웠다는 사실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 채로 딸을 품에 안고서 동냥젖을 얻어 먹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처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것은 1년 365일 하루도 쉴 수 없는 일이었지요. 어린아이는 배고프면 울기 마련이잖아요. 아기를 챙기는 그 힘든 일을 기꺼이 감당해서 딸을 훌륭히 키워 낸 사람이 심 봉사였어요. 세상에 둘도 없는 장한 아버지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심청은 나중에 철이 들자 스스로 아버지를 봉양하는 일에 나섭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신한테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답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고생하는 딸을 보는 아버지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지요. "내가 눈만 멀지 않았어도 딸을 저렇게 고생시키지 않았을 텐데." 이런 마음 때문에 덜컥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했던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잘 아니까 딸은 자기 몸을 팔았던 것이고요. 심 봉사와 심청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버지와 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한 몸처럼 의지하던 존재였지요. 하지만 늘 그렇게 함께할 수만은 없는 법이에요. 딸은 나이가 들면 부모 곁을 떠나서 제 삶을 찾아야 하지요. 심청이 멀리 길을 떠나 궁궐에까지 흘러들어 왕비가 된 것은 심청이 자기 삶을 이루어 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를 떠나는 건 '죽음'과 같은 일이었지만, 그러한 떠남을 통해 제 삶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딸이 훌륭하게 제 삶을 이루어 내니까 아버지 또한 눈을 뜨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돼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이야기를 듣는 우리도 이렇게 행복한데 말이에요! |
바리데기 | 의사소통 | 유아 | 옛날 어떤 아버지가 딸만 여섯을 낳았어. 아버지는 딸 여섯에 질려 혀를 내두르며 진저리를 쳤지. 그런데 아내가 또 아이를 가졌어. 이번엔 아들이겠지, 아들이겠지, 하고 낳았는데, 이를 어쩌면 좋아? 또 딸이야. 일곱 번째 딸을 낳고 말았지. 아버지는 화가 나서 일곱 번째 딸을 씻기지도 않았어. 뜨거운 여름날엔 햇볕 쨍쨍 뙤약볕에 내놓고, 추운 겨울에는 볕 없는 응달에 내놓았어. 누가 데려가길 바랐거든. 그랬더니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여름엔 햇볕 가리며 부채질을 해 주고, 겨울엔 두 날개로 보듬어 따뜻이 감싸 주었어. 덕분에 아이는 더위도 안 먹고 고뿔 한번 안 앓고 무럭무럭 잘 자랐지. 모진 아버지가 하루는 뱀들이 우글거리는 풀밭에 아이를 내놓았어. 그랬더니 뱀들은 오히려 아이를 슉슉 피해 다녔지. 다른 날에는 끝이 비죽비죽 솟은 대나무 밭에 아이를 휙 내놓았어. 그랬더니 대나무는 아이를 피해 쑥쑥 자랐지. 그러던 어느 날, 버려진 아이를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려다 길렀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버려졌던 아이라 하여 바리데기라 불렀지. 바리데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모로 알고 잘 자랐어. 바리데기가 열다섯 되던 날, 할머니를 무릎에 눕히고 머리의 이를 잡으며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어. "미워서 버릴쏘냐 싫어서 버릴쏘냐 또 딸이라 질려서 버렸단다." "우지 마라 우리 아가, 설워 마라 우리 아가, 못난 아비 용서하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할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 무슨 노래냐고 물었지. 바리데기는 그런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고 했어. "에구에구, 핏줄은 속일 수 없구나."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을 하였어. 바리데기가 깜짝 놀라 물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할머니는 사실대로 말했어. "우리가 너를 주워 길렀단다." 그 후로 바리데기는 부모를 그리는 마음이 사무쳤지. 그즈음 바리데기 아버지가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는데 약이란 약은 다 써 봐도 낫지 않고, 용하단 의원은 죄 불러 봐도 고개를 짤짤 흔들었어. 딱 하나 아버지 병을 고칠 수 있는 건 저 멀리 시약산의 약수를 먹어야 한다는 거야. 시약산은 수천 리 밖 멀고도 먼 곳이요, 험한 산 깊은 강을 수없이 넘고 건너야 닿는 곳이었지. 어머니는 딸들을 불러 차례로 물었어. "아버지 병을 고치려면 시약산 약수가 있어야 한단다." 큰딸은 팔짝 뛰며 고개를 저었어. "아이고, 나는 몸이 약해서 못 가오." 둘째 딸은 곧바로 손사래를 쳤지. "나는 시약산이 어딘지도 모르오."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모두 손을 내저으며 도리질을 쳤어. 어머니는 땅이 꺼질 듯 하늘이 무너질 듯 깊은 한숨을 쉬었지. 그때 어떤 사람이 바리데기가 살아 있다고 슬쩍 귀띔을 했어. 어머니는 그길로 바리데기 산다는 곳으로 달려갔어. "네가 미워 버렸으랴, 화가 나서 버렸느니." "불쌍한 아가, 아버지 목숨 구하러 갈 수 있겠느냐?" 바리데기는 꺼이꺼이 울면서 대답했어. "나를 낳아 주신 은혜가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으니, 오늘이라도 당장 약수를 구하러 떠나겠습니다." 바리데기는 시약산 약수를 구하러 험한 산을 넘고 깊은 강을 건넜어. 그래도 시약산은 보이지 않아. 마침 산비탈에서 밭을 가는 사람을 만나 물었어. "아버지 병 고칠 시약산 약수를 구하러 갑니다. 시약산이 어딘지요?" "이 밭을 다 갈아 주면 가르쳐 주지." 바리데기는 두말 않고 밭을 다 갈았어. "이 산길로 쭉 가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렴." 바리데기는 산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어. 산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베를 짜는 할머니였어. "아버지 병 고칠 시약산 약수를 구하러 갑니다. 시약산이 어딘지요?" "이 베를 다 짜 주면 가르쳐 주지." 바리데기는 밤을 새워 그 베를 다 짰어. "이 길로 쭉 가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렴." 할머니가 가르쳐 준 길로 걷고 또 걸었지. 이번에 만난 사람은 머리 하얀 할아버지였어. "아버지 병 고칠 시약산 약수를 구하러 갑니다. 시약산이 어딘지요?" "네 검은 머리를 잘라 주면 가르쳐 주지." 바리데기는 두말 않고 검은 머리를 싹둑 잘라 주었어. "이 길로 쭉 가면 시약산이 있을 게다." 바리데기는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길로 걷고 또 걸었어. 바리데기는 한참을 걸어 드디어 시약산에 다다랐어. 그 앞엔 하늘 닿을 키에 눈은 등잔 같고 얼굴은 쟁반만 한 무장승이 서 있었어. "아버지 병 고칠 약수 구하러 왔습니다. 부디 약수 좀 주십시오." 무장승이 바리데기를 휘휘 훑어보더니 물었지. "물 값, 나무 값, 길 값은 가져왔느냐?" "정신없어 못 가져왔습니다." "물 값 삼 년, 나무 값 삼 년, 길 값 삼 년, 합해서 구 년을 나와 살면 약수를 가져가게 해 주지." "네, 그리하오리다." 세월은 흘러 흘러 아홉 해가 지났어. 바리데기는 무장승과 부부 되어 아홉 해를 살면서 아들 아홉을 낳았어. "물 구경도 나는 싫소, 꽃 구경도 나는 싫소. 부부 정도 중하지만 아버지를 살리러 바삐 가야겠나이다." 바리데기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무장승이 말했어. "그대 길어 쓰는 물이 약수요, 뒷동산 꽃이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 꽃이오." 바리데기는 시약산 약수를 뜨고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 꽃 세 송이를 꺾어 무장승과 아홉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지. 바리데기가 집에 다다르니 상여가 나오고 있어. 그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지. 바리데기는 상여 앞으로 나가 울음을 터뜨렸어. "제가 늦어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구려. 아버지, 가지 마소. 제발 다시 눈을 뜨소." 바리데기는 관을 뜯어 아버지 입에 약수를 흘려 넣었어. 살살이 꽃을 살살 문지르니 아버지 살이 오르고, 피살이 꽃을 살살 문지르니 아버지 몸에 피가 돌고, 숨살이 꽃을 살살 문지르니 아버지가 숨을 쉬었어. "아가, 네가 나를 살렸구나. 뱀이 우글거리는 곳에 내던지고 대나무 밭에 내버렸던 바리데기가 나를 살렸구나." 관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바리데기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았어. 그 후 바리데기는 아버지 어머니께 효도하며 무장승과 아홉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단다. |
오늘이 | 의사소통 | 유아 | 아득한 옛날 적막한 들에 옥같이 고운 여자아이 하나가 외로이 나타났어. 사람들이 물으니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지. 그저 하늘에서 학이 날아와 날개로 품어 주고 먹을 걸 가져다줘서 살아왔다는 거야. 사람들은 이 아이를 오늘 만났다 해서 오늘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오늘이가 이곳저곳을 다니다 무엇이든 다 안다는 백씨 부인을 만나게 되었어. "제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알려 주세요." "네 부모는 하늘나라 원천강에 있단다." 원천강을 어떻게 갈 수 있냐니까 서천강 정자에서 글 읽는 장상 도령에게 물어보래. 서천강 정자를 찾아가니 푸른 옷을 입은 장상 도령이 글을 읽고 있어. 원천강 가는 길을 물었더니 장상 도령이 대답해. "가다 보면 연못이 있는데 거기 연꽃나무에게 물으면 알려 줄 겁니다." "그런데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겠소? 나는 옥황상제의 명으로 밤낮으로 글만 읽고 있다오. 내가 언제까지 글만 읽어야 하는지 원천강에 가거든 물어봐 주시오." 오늘이는 그러마고 했어. 가다 보니 정말 연못에 연꽃나무가 있어. 원천강 가는 길을 물었더니 연꽃나무가 대답해. "가다 보면 푸른 강이 나오는데 거기 이무기에게 물으면 알려 줄 거예요." "그런데 저도 부탁이 하나 있어요. 저는 윗가지에만 꽃이 하나 피고 밑가지에는 꽃이 피지 않거든요. 원천강에 가거든 왜 그런지 물어봐 줄래요?" 오늘이는 그러마고 했어. 가다 보니 정말 출러덩출러덩 푸른 강에 큰 이무기가 있어. 원천강 가는 길을 물었더니 이무기가 대답은 않고 이렇게 말해. "나는 여의주를 세 개나 물었는데도 용이 못 되었어요." "다른 이무기들은 한 개만 물어도 용이 되는데 말이에요. 원천강에 가면 이유를 알아다 줄래요?" 오늘이가 그러마고 하니까 이무기가 등에 태워 강을 건네줘. 가다 보면 매일이라는 사람을 만날 테니 길을 물어보래. 가다 보니 정말 매일이라는 사람이 있어. 꼭 장상 도령처럼 정자에서 글을 읽고 있네. 원천강 가는 길을 물었지. "가다 보면 우물가에서 선녀들이 울고 있을 거예요. 그 선녀들에게 원천강에 데려다 달라고 하세요. 원천강에 가거든 제가 온종일 글만 읽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까닭을 물어봐 줄래요?" 오늘이는 그러마고 했어. 가다 보니 정말 갈림길 옆 우물가에서 선녀들이 울고 있어. "선녀님들은 왜 울고 계세요?" "우리는 옥황상제의 선녀였는데 죄를 지어 쫓겨났어요. 이 우물물을 다 퍼내야 돌아갈 수 있는데 두레박에 구멍이 나서 아무리 해도 안 돼요." 오늘이는 풀을 베어 뭉쳐서 구멍을 막았어. 송진을 녹여 칠하니 물이 새지 않았지. 선녀들은 순식간에 우물물을 다 퍼내고 기뻐했어. 오늘이는 선녀들에게 물었어. "원천강으로 가려는데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모셔다 드릴게요." 선녀들은 오늘이를 원천강에 데려다 주었어. "우리는 여기까지만 올 수 있어요.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 해요." 선녀들은 오늘이에게 복을 빌어 주고 돌아갔어. 원천강에는 높은 성이 있고 문지기가 지키고 있어. "문지기님, 문 좀 열어 주세요." "너는 누구이고, 무슨 일로 문을 열어 달라느냐?" "저는 인간 세상 오늘이인데, 부모님을 만나러 왔어요." "절대 열어 줄 수 없다! 여기는 사람이 올 데가 아니니 얼른 돌아가거라." 문지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거듭거듭 애원해도 소용이 없어. 오늘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부모님을 못 만나고 가다니요. 산 넘고 강 건너 고생고생 왔는데 이렇게도 모질게 막으시다니요." "부모님을 문 뒤에 두고 외롭고도 외롭네. 가련해라 내 신세, 그리워라 부모님." 오늘이가 구슬프게 흐느끼니 문지기도 마음이 바뀌었나 봐. 문지기는 부모궁에 올라가 오늘이가 왔다고 전했어. 오늘이가 부모궁으로 올라가자 아버지 어머니가 반겨. "어린 네가 여기를 어떻게 찾아왔느냐." 오늘이는 애달파하는 부모님께 지난 일을 모조리 말했어. "기특하고 기특하구나. 우리 자식이 틀림없다." 아버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 "너를 낳았을 즈음 옥황상제님이 원천강을 지키라고 하셨단다. 명령을 거스를 수 없어 여기 있지만 네가 하는 일을 다 보고 너를 지켜 주고 있었단다." 부모님은 원천강 구경이나 하고 가라지. 오늘이는 원천강 성 곳곳마다 문을 열어 보았어. 문 하나를 여니 봄이고, 다른 문을 여니 여름이고, 원천강에는 사계절이 다 있어. 오늘이는 꿈같이 행복하게 몇 날 며칠을 보냈어. 어느덧 돌아갈 때가 되었어. 오면서 부탁받은 것들을 물어보자 부모님이 말해 주었지. "장상 도령과 매일이는 둘이 혼인을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이고 연꽃나무는 윗가지에 핀 꽃 하나를 꺾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밑가지에도 꽃이 필 것이다. 이무기는 여의주를 한 개만 물었으면 용이 되었을 것인데 욕심 부리느라 세 개를 물어서 못 된 것이니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두 개를 뱉어 주면 용이 될 것이다. 너는 연꽃과 여의주를 가지면 선녀가 될 것이니라." 오늘이는 원천강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어. 돌아오는 길에 매일이를 만나 들은 대로 일러 주고 함께 장상 도령을 만나러 떠났어. 가는 길에 이무기를 만나 들은 대로 일러 주었어. "여의주를 하나만 물고 나머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뱉어 주면 용이 될 수 있답니다." 이무기가 얼른 여의주 두 개를 뱉어서 오늘이에게 주네. 그러고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어. 오늘이는 연꽃나무를 만나 들은 대로 일러 주었어. "윗가지에 핀 꽃 하나를 꺾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밑가지에도 꽃을 피울 수 있대요." 연꽃나무는 얼른 윗가지에 핀 꽃을 꺾어 오늘이에게 주네. 그러자 가지마다 고운 꽃이 피어나 연못을 뒤덮어. 연꽃 향내가 멀리까지 퍼져 나갔지. 오늘이는 장상 도령을 만나 들은 대로 일러 주었어. "여기 있는 매일이 아가씨와 혼인하면 행복해질 수 있대요." 이 말을 듣고 장상 도령은 매일이와 혼인을 했지. 오늘이는 백씨 부인을 만나 여의주 하나를 주었어. "덕분에 부모님을 만나고 왔어요." 오늘이는 연꽃과 여의주를 가지고 선녀가 되었어. 지금도 오늘이는 사람 사는 세상에 내려와 마을마다 다니며 원천강 이야기를 들려준다지. |
불개 | 의사소통 | 유아 | 까마득히 오랜 옛날, 땅 위에 여러 나라가 있듯이 하늘에도 여러 나라가 있었어. 그 가운데 '까막 나라'가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언제나 깜깜한 나라였지. 빛이 한 점도 없어서 나라 안은 늘 밤중처럼 어두웠어. "아유, 깜깜해.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으니." 까막 나라 백성들은 어두운 데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임금님을 찾아가서 하소연했어. "빛이 없으니 답답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도 이제는 밝고 환한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해와 달을 구해 주십시오." 해와 달만 있으면 까막 나라도 밝은 나라로 바뀌겠지? 임금님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러나 해와 달을 어떻게 구해 오느냐가 문제였지. 다른 나라로 날아가 해와 달을 훔쳐 와야 하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까막 나라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해와 달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 임금님은 머리를 싸고 궁리를 거듭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든 신하가 말했어. "우리 나라에는 불개가 있지 않습니까? 불개라면 해를 물어 올 수 있을 겁니다." 임금님은 귀가 번쩍 뜨였어. "옳지, 그게 좋겠다. 여봐라, 가장 빠르고 용감한 불개를 뽑아 오너라." 불개는 불을 잘 다루는 사나운 개야. 까막 나라에 많이 살았지. 가장 빠르고 용감한 불개를 뽑아 오자 임금님이 말했어. "너는 당장 다른 나라에 가서 해를 훔쳐 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컹컹! 불개는 곧바로 길을 나섰어. 불개는 까막 나라를 떠나 머나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렸어. 험한 산을 수없이 넘고 깊은 강을 수없이 건넜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둠 속을 뚫고 가자 저만치 빨간 점이 보이네. "아, 저기 해가 있구나." 불개는 해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어. 불개는 드디어 해 곁에까지 다가갔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해 곁에 있으니 눈을 뜰 수 없었어. 으르렁! 불개는 망설임 없이 해를 향해 몸을 솟구쳐 용감하게 달려들었단다. 불개는 입을 크게 벌려 해를 꽉 깨물었어. "앗, 뜨거워!" 불개는 그만 해를 도로 뱉고 말았어. 어찌나 뜨거운지 입안이 타는 것 같았어. 잠시 뒤, 불개는 다시 달려들어 해를 덥석 물었어. 하지만 너무 뜨거워 또다시 뱉고 말았지. 세 번, 네 번, 다섯 번. 불개는 해를 물었다가 뱉기를 되풀이했어. 불개는 결국 지칠 대로 지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어. 불개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자 까막 나라 임금님은 불개를 꾸짖었어. "못난 녀석! 뜨겁다고 뱉어 버려?" "그럼 달을 훔쳐 오너라. 달은 뜨겁지 않을 테니 물어 올 수 있을 게다." 컹컹! 불개는 곧바로 길을 나섰지. 불개는 까막 나라를 떠나 머나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렸어. 불개는 드디어 달 곁에까지 다가갔어. 달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지. 달 곁에 있으니 몸이 으슬으슬 추웠어. 으르렁! 불개는 망설임 없이 달을 향해 몸을 솟구쳐 용감하게 달려들었단다. 불개는 입을 크게 벌려 달을 꽉 깨물었어. "앗, 차가워!" 불개는 그만 달을 도로 뱉고 말았어. 어찌나 차가운지 입안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잠시 뒤, 불개는 다시 달려들어 달을 덥석 물었어. 하지만 너무 차가워 또다시 뱉고 말았지. 세 번, 네 번, 다섯 번. 불개는 달을 물었다가 뱉기를 되풀이했어. 불개는 결국 지칠 대로 지쳐 발길을 돌리고 말았어. 불개가 또다시 허탕을 치고 돌아오자 까막 나라 임금님은 큰 소리로 꾸짖었어. "못난 녀석! 차갑다고 달을 뱉어 버려?" 임금님은 다른 불개들에게 해와 달을 물어 오라고 했어. 그러나 다른 불개들도 마찬가지였어. 임금님은 포기하지 않고 불개들을 계속 보냈어. 그때마다 불개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단다. 까막 나라 임금님은 지금도 불개들을 해와 달에 보내고 있어. 어떻게 아느냐고? 불개들이 해와 달을 물 때마다 해와 달이 이지러지고 캄캄해지거든. 사람들은 해가 이지러지는 것을 '일식', 달이 이지러지는 것을 '월식'이라고 부른단다. |
여왕이 심심하다면 말이야 | 의사소통 | 유아 | 여기는 하트 여왕이 사는 이상한 나라야. 하트 여왕은 심심한 걸 정말 싫어해. 아, 심심해.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앗! 저기 작은 문을 낑낑대며 빠져나오는 건 누구지? 하트 여왕에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어? 여기는 어디지? 하트 여왕은 문에서 나온 아이를 보자마자 카드 병정에게 소리쳤어. “저 아이를 잡아라!” "감히 내 성에 몰래 들어오다니!"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잠깐만요, 전 앨리스라고 해요. 저희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앨리스의 말을 들은 하트 여왕은 묘한 웃음을 지었어.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면 집에 가는 길을 알려 주지.” 여왕은 소와 소라를 불러서 함께 출발선에 섰어. “준비, 땅! 출발!” 모두모두 힘차게 달려 나가는 순간, 하트 여왕이 마법 막대를 신나게 흔들었어. “꼬부랑길로 변해라, 얍!” 세상에! 순식간에 길이 하나로 바뀌더니 마구마구 꼬부라졌어. 하트 여왕은 키득키득 웃으며 앞서 나갔지. 앨리스와 소, 소라도 꼬불꼬불한 길을 열심히 달렸어. 우아! 앨리스가 긴 다리로 겅중겅중 뛰더니 순식간에 일 등을 했어! 그런데 하트 여왕은 마음에 들지 않나 봐. “달리기는 다리 긴 앨리스한테만 유리했어!” 하트 여왕이 눈썹을 씰룩대더니 이번에는 비둘기와 비버도 불렀어. 그러고는 심술궂게 말했지. “둘씩 짝지어 춤추면 집에 가는 길을 알려 줄 거야.” 소와 소라, 비둘기와 비버, 앨리스는 춤을 추며 짝을 찾기 시작했어. 소와 소라, 비둘기와 비버가 바로 짝을 지었지. 이름에 같은 글자가 있었거든. 하트 여왕은 짝이 없어서 짜증을 냈어. 그때 앨리스가 같이 춤을 추자고 했어. 하트 여왕과 앨리스가 즐겁게 춤을 추는데 갑자기 토도독토도독 비가 내리는 거야. "짝지어 춤추니 정말 재미있다!" "이젠 집에 가는 길을 알려 주시는 거죠?" 빗방울은 금세 거센 빗줄기로 바뀌었어. 앨리스와 하트 여왕도 비를 흠뻑 맞았지! 더 이상 춤출 수 없게 되자 하트 여왕은 다시 심통을 부렸어. “춤추기는 실패야. 앨리스 넌 집에 못 가!” "비가 와서 춤을 출 수 없으니 집에 가는 길도 알려 줄 수 없어!" "조금 전까지 같이 춤을 췄잖아요. 정말 너무해요." 잠시 뒤, 비가 뚝 그치자 하트 여왕은 앨리스를 미로 정원으로 데려갔어. “‘무’ 글자를 따라 미로를 통과하면 집에 가는 길을 알려 주지.” 알쏭달쏭 미로 정원은 무척 복잡해 보였어. 미로 안에는 무, 무지개, 나무가 숨겨져 있었지. 앨리스는 망설임 없이 정원으로 들어갔어. 드디어 통과! 앨리스가 미로 정원을 무사히 빠져나왔어. 그런데 갑자기 하트 여왕이 으앙 울음을 터뜨리지 뭐야. 앨리스는 하트 여왕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 “여왕님, 저랑 더 놀고 싶어서 그래요?” 하트 여왕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어. 하트 여왕과 앨리스는 신나게 놀고 또 놀았어.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말이야. “이렇게 즐거운 날은 처음이야. 고마워, 앨리스.” 하트 여왕은 작은 문을 향해 마법 막대를 휘둘렀어. “큰 문으로 변해라, 얍! 앨리스야, 다음에 꼭 다시 와." "네, 알록달록 무지개가 뜰 때마다 놀러 올게요!" 앨리스는 쑥 커진 문을 통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어. 그 이후로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대. |
우당탕 공룡 식당 | 의사소통 | 유아 | 공룡 식당은 오늘도 북적북적! "어서 오세요! 공룡 식당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때 갑자기 주방에서 우당탕퉁탕! 무슨 소리일까요? 공작새가 꽁지깃을 활짝 펴니, 양이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쿵! 양파가 와르르, 양배추가 데굴데굴. "어머, 깜짝이야!" "미안, 꽁지깃이 나도 모르게 그만." 거북은 언제나 느릿느릿 조심조심. 그래서 손님들은 이러쿵저러쿵 불만이 많았지요. "내 건 언제 나와요?" "북엇국이 다 식었어요!" 고양이는 생선 요리만 보면 침을 주르륵. 먹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어려웠어요. "맛있겠다, 꿀꺽!" 어떻게 하죠? 오늘도 못 참고 생선을 꿀꺽해 버렸네요. "어머, 주문한 생선은 없고 양송이만 있다니!" "내 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어." 북극곰은 벌꿀로 만든 케이크를 나르다 잠이 스르르. 벌이 왱왱거려도 꿈쩍도 안 하고 말이에요. "아암! 졸려." "벌꿀 케이크를 시켰더니 벌집을 따러 간 거야?" “어휴,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공룡 사장님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어요. 말썽쟁이 직원들 때문에 무척 속이 상했거든요. 그러다가 번뜩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 생각났어!" 공룡 사장님은 거북에게 바퀴 달린 신발을 선물했어요. 거북은 북 치는 소리에 맞춰 씽씽. 정말 빠르게 일했지요. "쌔앵, 비키세요!" "어머, 순식간에 음식이 나왔네!" 고양이에게는 계산하는 일을 맡겼어요. 고양이는 계산기로 척척. 꼼꼼하게 잘해 냈지요. "이만 삼천 원입니다." "우아, 계산이 빠르시네요." 공작새는 공룡 사장님에게 부탁을 받아 공연을 했어요. 공작새가 차랑차랑 꽁지깃을 활짝. 빙그르르 공을 돌리는 묘기도 부렸지요. "우아, 공이 돌아간다!" 북극곰에게는 겨울 휴가를 보내 주었어요. 북극곰이 쌩쌩 찬 바람을 맞으며 흥얼흥얼. 낚시를 하며 잘 쉬었어요. "일하고 있는 거북과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한걸." 그런데 어쩌죠? 거북 혼자서 허둥지둥 허덕허덕. 우왕좌왕하고 있네요. “하하하!” 공룡 사장님의 웃음소리가 식당에 쩌렁쩌렁 울려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뚝딱 해내는 직원이 왔거든요. 이제 공룡 사장님은 걱정 없답니다. |
한국이 좋은 이유? | 의사소통 | 유아 | 안녕? 난 미국에서 온 사라야. 우리 가족은 한국 음악과 가수를 엄청 좋아하지. 그래서 한국 여행을 왔어. 나는 스마트폰으로 기록하는 걸 정말 좋아해. 드디어 한국 도착! 한국 가수들을 볼 수 있을까? 살랑살랑 바람 부는 첫째 날의 기록. 청계천 징검다리 위를 폴짝폴짝! 푸른 나무 사이로 나비들이 훨훨. 우리 마음도 한들한들 설레었어. 짙은 풀 내음이 기분 좋은 둘째 날의 기록. 화려한 한복을 입고, 사뿐사뿐 다리를 건넜지. 좋아요 53개 나는 마치 공주가 된 것 같았어. 그런데 내 동생은 궁궐에서도 다람쥐만 찾고 있지 뭐야. 고소한 향기를 따라간 셋째 날의 기록. 오늘은 전통 시장에 갔어. 맛있는 냄새가 이곳저곳에서 솔솔. 헤헤 후후 헉헉 잉잉. 라볶이가 너무 매워서 눈물이 찔끔 났지. 그래도 한국 라면은 정말 맛있었어. 와글와글 북적북적 신나는 넷째 날의 기록. 우아, 예쁜 공주님과 멋진 왕자님이 탄 마차가 지나갔어. 그리고 흥겨운 퍼레이드가 시작됐지. 그때 갑자기 동생이 마술사에게 와락. 마술을 알려 달라며 지팡이에 대롱대롱 매달렸어. 우리 가족은 조금 부끄러웠지. 끼루룩 끼룩 갈매기와 함께한 다섯째 날의 기록.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서 철벅철벅.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조개를 캤지. 바구니는 금세 조개로 그득그득해졌어. 반짝반짝 야경이 멋진 여섯째 날의 기록. 한국은 밤도 낮처럼 환해서 정말 좋았어. 우리는 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지. 아빠는 사슴 부채. 나는 사자 부채를 골랐어. 인사동에는 신기하고 색다른 기념품들이 정말 많았어. 내일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야. “사라야, 어디가 가장 좋았어?” 엄마는 내 생각이 궁금한지 계속 물었지. 나는 잠깐 고민했어. 바로 말할 수 있었지만 엄마가 실망할 것 같았거든. 그래도 솔직히 말해야겠지? “나는 숙소가 제일 좋았어요!” 역시나 엄마는 약간 실망한 것 같지? 하지만 숙소는 그 어떤 곳보다 환상적이었는걸. 텔레비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계속 나오고. 먹고 싶은 음식도 척척 배달해서 먹을 수 있으니까. 넌 어떻게 생각해? 숙소가 제일 좋았다고? 그럼요! 다음엔 숙소만 바꿔 가면서 여행할 거예요. 룰루랄라~가나다라마바사 손을 잡고 따라와! |
무지개 택배 배달부 | 의사소통 | 유아 | 나는 하늘하늘 마을의 무지개 택배 배달부! 어디든 무엇이든 척척 배달해. 오늘도 신나게 배달 준비를 해 볼까? 주문을 받아서 오늘은 누구 집으로 배달할까? 물건들을 상자에 담은 뒤. 구름 트럭에 차곡차곡 실어. 여기 봐! 알록달록 무지개 호스로 반짝반짝 해님에게 물을 뿌리면 사르르 무지개 길이 나타나! 참, 신기하지? 무지개 길 위를 부릉부릉 달려서 배달을 시작해 볼까? 얍! 나와라, 무지개 길! 아이코, 깜짝이야. 우아, 달콤한 딸기! 쑤욱 기린이 택배 상자를 열자, 달콤한 딸기 냄새가 솔솔. 기린은 군침을 꿀꺽! 첫 번째 배달 장소 도착! 길쭉길쭉 마을에 사는 기린네 집이야. 문을 똑똑 두드리려는데, 기다란 기린이 머리를 쑥. 깜짝 놀랐지 뭐야! 앗, 놀라게 해서 미안. 두 번째 배달 장소 도착! 으르렁 마을에 사는 이구아나네 집이야. 문을 똑똑 두드리니, 이구아나가 뾰족뾰족 이빨을 보이며 나왔어. 이구아나가 택배 상자를 열자, 이빨 썩은 이구아나 그림책이 뿅! 이구아나는 좋아서 싱글벙글. 야호, 내가 기다리던 그림책이야! 세 번째 배달 장소에 가야 하는데 이를 어쩌지? 구불구불 마을의 너구리네 집을 못 찾겠어. 그때 조그만 개미들이 길을 알려 주네! 미끄럼틀을 지나 총총. 미로 같은 꽃밭을 지나 총총. 너구리네 집 주소가 지워졌어. 개미들아, 도와줘! 이쪽이야! 우리만 따라와! 너구리가 택배 상자를 열자, 맛있는 도토리가 올망졸망. 너구리는 기뻐하며 와작와작! 너구리야, 늦어서 미안해. 배가 엄청 고팠단 말이야! 정말 맛있어! 고마워. 개미들 덕분에 무사히 너구리네 집 도착! 하지만 너무 늦게 왔나 봐. 너구리가 배고프다고 힘들어 하지 뭐야! 어? 무지개 길이 사라졌어! 괜찮아! 해님을 보고 후후 비눗방울을 불면, 퐁퐁 무지개 길이 다시 나타나거든. 얍! 나와라, 무지개 비눗방울! 무지개 길을 따라 네 번째 배달 장소 도착! 크앙크앙 마을의 티라노사우루스가 택배 상자를 열고 부드러운 티슈를 쏙쏙. 그러더니 코를 팽! 고마워. 빨리 건강해져. 다시 무지개 호스로 해님에게 물을 뿌리는데. 갑자기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쑥. 으악! 저 검은 그림자는 뭐지? 어머나, 키다리 우리 아빠잖아! 흠뻑 젖은 아빠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지 뭐야. 아빠는 씩 웃으며 커다란 피자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렸어. 아빠, 정말 죄송해요! 다행히 피자는 괜찮아. 얼른 들어가서 먹자! 그런데 키위새한테 키위는 언제 배달해 주지?나는 배달 주문서를 휙 던지고는 아빠를 따라 후닥닥! 맛있는 피자는 참을 수가 없거든. 나는 길쭉길쭉 마을의 기린이야. 딸기가 먹고 싶어! 나는 구불구불 마을의 너구리야. 도토리가 먹고 싶어! 나는 으르렁 마을의 이구아나야. 이빨 썩은 이구아나라는 그림책을 읽고 싶어. 나는 크앙크앙 마을의 티라노사우루스야. 티슈가 필요해! 나는 키키 마을의 키위새야. 키위가 먹고 싶어! 야호, 맛있겠다! |
아빠를 찾아라! | 의사소통 | 유아 | 탁탁, 와르르! 나는 블록으로 도미노 놀이도 하고, 도시도 만들지. 아빠랑 하는 블록 놀이는 언제나 재미있어. 갑자기 아빠가 쓱 사라질 때만 빼고 말이야. "모모야, 아빠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힝, 알았어요. 빨리 오세요!" 그런데 아빠는 화장실에 가면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걸까? 내가 맨날 찾으러 가야 하잖아. 이상하다. 아빠가 왜 안 오시지? 변기 안에 쑥 빠졌나? 아빠가 화장실에 없네? 변기 안까지 구석구석 살펴보는데 갑자기 쏴쏴 쏴! 으악, 살려 줘! 어? 여기는 어디지? 눈을 반짝 뜨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어. 주변에서 고약한 냄새가 코를 콕콕. 그때 변기 괴물이 나타났어. “변기 괴물아, 혹시 우리 아빠 못 봤니?” 변기 괴물은 씽그레 웃더니 말했어. “너희 아빠가 변기에 너무 오래 앉아 있더라! 그래서 변기 마을로 데려갔지! 으흐흐.” “모모야, 너도 나랑 같이 변기 마을로 가자!” 딸깍! 변기 괴물이 변기 손잡이를 내리니, 여기저기서 눈보라가 쌩쌩. 어머나, 차가운 얼음 다리 위에서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달달 떨고 있네. 너무 추워! 빨리 문제를 풀고 다 함께 벗어나야겠어! 첫 번째 문제! 고릴라와 고슴도치 이름에 똑같이 들어가는 글자는 뭘까? "음, 고릴라와 고슴도치 글자는 뭐가 똑같을까?' 히히, 똑같은 글자를 찾는 건 정말 쉽지! 고릴라와 고슴도치는 글자 ‘고’가 같아! ‘고’ 글자 퍼즐을 끼우니 멋진 일이 일어났어. 바로 얼음 다리가 이어진 거야. 모두 함께 신나서 폴짝! 다시 변기 괴물이 변기 손잡이를 딸까닥! 오, 한 번에 맞히다니 대단한데? 그럼 이제 다음 문제를 풀러 가 볼까? 쏴쏴 쏴! 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배 위로 털썩 떨어졌지 뭐야. 배 위에서 조개와 조랑말이 허둥대고 있네. 앗! 큰일 났어. 배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들어오고 있어. 어서 문제를 맞혀서 배의 구멍을 막아야겠어! 아하, 조개와 조랑말은 글자 ‘조’가 같아! ‘조’ 글자 퍼즐을 끼워서 배의 구멍을 막았어. 찰랑찰랑 바다 위로 커다란 배가 씽씽. 이때 변기 괴물이 변기 손잡이를 달칵! 쏴쏴 쏴! 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구름다리 위로 떨어졌어. 높디높은 구름다리 위에서 코끼리와 코뿔소가 벌벌 떨며 울고 있네! 너무 무서워! 빨리 문제를 풀고 여기를 건너가야겠어.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생각이 잘 안 나. 아하, 코끼리와 코뿔소는 글자 ‘코’가 같아! ‘코’ 글자 퍼즐을 끼우니 구름다리가 멋지게 이어졌어. 그러자 코끼리와 코뿔소의 겁도 싹 사라졌지. 코끼리와 코뿔소는 덩굴을 타고 씽씽 쌩쌩. 난 아직 무서워서 슬금슬금 건넜어. 이번에도 변기 괴물이 변기 손잡이를 달카닥! 쏴쏴 쏴! 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별빛 다리 위로 떨어졌어. 그런데 다리가 끊어져 있지 뭐야. 건너편 행성에서 로봇과 로켓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네. 아빠에게 데려다준대. 어서 문제를 맞혀서 저 행성으로 가야겠어! 난 이번에도 곰곰이 생각했어. 아하, 로봇과 로켓은 글자 ‘로’가 같아! ‘로’ 글자 퍼즐을 끼우니 별빛 다리가 쭉쭉 이어졌지. 드디어 변기 마을로 가려는데 갑자기 콰르릉콰르릉 큰 소리가 났어.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앗, 여기는 어디지?” 세상에, 내가 깜빡 잠이 들었지 뭐야. 찾았다, 아빠! 그런데 이 엄청난 소리는 대체 뭘까? |
삐! 외계인의 주문 | 의사소통 | 유아 | 여기는 누누의 카페. 달콤한 향기가 솔솔. 수요일에는 수박주스를 배달해요. 삐! 주문이 들어왔어요. 외계인 손님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해요. “우주 나라에 수박주스 한 병이요!” 누누는 싹둑싹둑 수박을 잘라 수박주스를 만들어요. 외계인이 주문한 수박주스를 만들자! 착착 척척 배달 준비 끝! “우주 나라로 출발!” 누누가 구름 오토바이를 타고 부릉부릉 출발해요. 그때 두더지가 불쑥 나타났어요. “캑캑, 흙덩이를 삼켰어. 목이 아파!” 두더지가 흙을 뱉으며 말했어요. 목이 너무 아파! 두더지야, 무슨 일 있니? ‘두더지에게 수박주스를 줄까 말까?’ 누누는 곰곰이 고민했어요. 화가 난 외계인이 아른아른 떠올랐거든요. 하지만 누누는 아픈 두더지를 모른 척할 수 없었지요. “두더지야! 자, 이거 마셔!” 두더지가 수박주스를 벌컥벌컥. 그러고는 누누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어요. 수박주스 고마워. 두더지에게 수박주스를 줘서 외계인이 화내면 어떻게 하지? 누누의 스마트폰이 따르릉따르릉! 외계인의 목소리가 우르릉우르릉! 화가 난 외계인에게 누누가 말했어요. “늦어져서 죄송해요. 그대신 두부쿠키를 더 드릴게요.” 누누가 두더지와 함께 두부쿠키를 만들어요. 보들보들 두부를 쓱쓱! 힘이 나는 부추도 송송! 미안해요. 두부쿠키를 선물로 드릴게요. 구름처럼 하얀 두부! 두부쿠키 빨리 만들자. 착착 척척 배달 준비 끝! “우주 나라로 출발!” 구름 오토바이 타고 부릉부릉! 그때 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날개 다친 부엉이가 부엉부엉! “아야, 날개가 아파서 꼼짝도 못 했어.” 부엉이는 배가 고프다고 힘없이 말했어요. 어? 이게 무슨 소리지? 부엉 부엉 날개를 다쳐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 ‘부엉이에게 부추가 들어간 두부쿠키를 줄까 말까?’ 누누는 골똘히 고민했어요. 이번에도 화가 난 외계인이 어른어른 떠올랐거든요. 하지만 누누는 배고픈 부엉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 “부엉이야! 자, 이거 먹어!” 부엉이가 쿠션에 앉아 쿠키를 와삭와삭 먹었어요. 외계인이 더 크게 화를 내면 어떡하지? 누누의 스마트폰이 따르릉! 외계인의 목소리가 우르릉 꽝꽝! 화가 난 외계인에게 누누가 말했어요. “죄송해요. 수박주스랑 두부쿠키 그리고 말랑말랑 푸딩도 드릴게요.” 누누는 수박을 윙윙! 두더지는 두부를 삭삭! 부엉이는 푸딩을 차곡차곡! 두부쿠키랑 푸딩을 더 드릴게요. 으쌰으쌰, 서두르자! 푸딩도 정말 맛있겠다! 뭉게뭉게 구름 주유소 착착 척척 배달 준비 끝! 삐삐! 이런, 오토바이에 구름이 부족해요. 뭉게뭉게 구름 주유소에서 콜록콜록, 감기 걸린 푸들을 만났어요. 누누는 이번에도 푸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 주머니에서 숟가락을 꺼내서 푸딩을 푹! 푸들은 푸딩을 맛있게 먹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어떡하지? 내가 외계인이라도 진짜 화나겠는걸? 정말 고마워! “다시 우주 나라로 출발!” 모두 구름 오토바이 타고 부릉부릉! 바로 그때, 하늘에서 우주선이 나타났어요. 누누가 깜짝 놀라 다리를 쭉 펴자 구두가 구름 위로 휙 날아갔어요. 18 19 그러자 커다란 손이 쑥! 구두를 덥석 잡았어요. “어? 수박주스가 아니네?” 무뚝뚝한 외계인의 목소리였어요. 으악, 외계인이 잡으러 온다! 잡았다! 잉? 수박주스가 아니었어? 우주 나라 외계인이 콩콩. 어머, 목소리만 무뚝뚝한 귀여운 외계인이었네요. 누누는 외계인에게 미안해서 쭈뼛쭈뼛. “수박주스 배달이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귀여운 외계인이 수박주스를 맛있게 꿀꺽꿀꺽. 모두 하하 호호, 사이좋게 음식을 나 먹었어요. 정말 귀엽다. 무섭지 않잖아? 우아, 맛있다! 역시 수요일에는 수박주스야! |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은? | 의사소통 | 유아 | 며칠 뒤면 모두가 기다리는 크리스마스예요. 귀여운 요정들이 선물을 준비해요. 저울로 무게를 재고 선물을 포장해요. 저녁까지 모두 바빠요! 바빠! 산타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커튼을 치고, 의자에 털썩 앉아 커피를 호로록. 똑 똑! 누군가 급하게 문을 두드리네요. 커피를 마시면서 쉬어 볼까? 요정이 들고 온 상자엔 그림 편지가 가득가득. 동물 친구들의 편지가 이제야 도착했나 봐요. 산타 할아버지는 너도밤나무 집에 사는 너구리의 편지를 읽었어요. 첫 번째 편지는 누가 보냈을까? 다음 편지는 누가 보낸 걸까요? 산타 할아버지가 편지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만 판다가 보낸 편지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허허, 이번 편지는 좀 어렵구나. 다음 날. 하얀 눈이 소복소복. 친구들이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아침이에요. 친구들이 신이 나서 선물을 자랑해요. 장갑을 받은 친구. 장난감 버스를 받은 친구도 있네요. 난 장갑을 선물로 받았어! 아이, 따뜻해. 난 장난감 버스! 부릉 부릉! 퍼그도 친구들에게 선물을 자랑하고 있어요.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요? 내 선물 보여 줄까? 거북은 반짝반짝 거울을 받았어요. 요리조리 얼굴을 비추며 빙그레, 발그레. 다들 원하는 선물을 받았네. 부럽다. 깜찍한 머리띠를 받은 양도 미소를 활짝. 따스한 머플러를 받은 돼지는 싱글벙글 웃었지요. 모두들 받고 싶은 선물을 받아서 행복했어요. 그런데 판다만 혼자 허리띠를 한 허수아비 인형을 들고 울먹울먹.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산타 할아버지가 잘못 보내신 걸까?” 판다는 속상해하며 혼자 말했어요.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아니네……. 동물 친구들이 판다의 집에 모여 북적북적. 판다가 그림 편지를 다시 그릴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판다야, 네가 받고 싶은 선물은 이렇게 그리면 돼.” 판다가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똑똑! 누군가가 판다의 집 문을 두드리네요. 누구세요? 똑똑 아빠 왔다! 우아, 판다가 바라는 진짜 선물이 왔어요! 판다는 아빠와 하루 종일 놀고 싶었대요. 뭐 하고 놀까? 이제 판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답니다. 뭐 하고 놀까? 아빠!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요. |
레오의 마음 들여다보기 | 의사소통 | 유아 | 레오네 집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요. 레오는 시원한 옷을 입고 통통 드럼을 쳤어요. 누나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불렀어요. 신나는 드럼 연주! 통통한 파리 한 마리! 나도 드레스 입고 싶어! 하지만 레오는 금세 싫증이 났어요. 그러다 누나의 드레스가 탐이 났어요. 레오는 갑자기 반바지를 벗고 드럼을 휙 던졌어요. “나도 드레스 입고 노래 부를 거야!” 드레스를 입는다고? 아니, 아니. 블록 말고....... 자, 레오가 갖고 싶어 한 블록! 어느 날 아빠는 레오가 갖고 싶어 하던 블록을 사 왔어요. 하지만 레오는 시큰둥하기만 했어요. 예쁜 꽃을 그려야지! 후유……. 여보, 속상해하지 말고 이걸 먹어요. 크림이 살살 녹아요. 나도 크레파스 갖고 싶단 말이야! 이건 내 거야! 레오의 반응에 아빠는 살짝궁 당황했어요. 이때 엄마가 달콤한 크림을 아빠에게 가져다주었어요. “여보, 달콤한 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하지만 레오는 아빠의 기분을 살피지 않고 말했어요. “나는 누나가 갖고 있는 알록달록 크레파스가 더 좋아!” 레오는 매일매일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렸어요.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싫어, 싫어! 스키 타러 갈래! 야호! 신난다! 레오는 스케이트장에 가서도 변덕을 부렸지요. 꽁꽁 언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씽씽 타다가도, 금세 하얀 눈밭에서 스키를 쌩쌩 타고 싶어 했어요.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어요. 하지만 엄마 아빠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추운 겨울, 샤랄라 스키장에 놀러 오세요! 트라이앵글 사고 싶어. 나, 트럭 살래! 블록 사야지. 변덕꾸러기 레오가 물건을 고를 때예요! 레오는 차곡차곡 블록이 사고 싶다가도 금세 로봇이 사고 싶어졌어요. 또 부릉부릉 장난감 트럭을 사고 나서도 친구가 갖고 있는 트라이앵글을 보면 트라이앵글이 사고 싶어졌어요. 이미 트럭 샀잖아. 트럭 싫어! 트라이앵글 사 줘! 레오는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징징 떼를 썼어요. 그런 레오를 볼 때마다 엄마는 화가 났지요. 나도 몰라. “엄마, 선생님이 유치원에 오래.” 레오는 엄마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전했지요. 엄마는 마음이 불안불안했어요. 레오가 또 무슨 변덕을 부렸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선생님이 유치원에 왜 오래? 레오는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이에요. 호호, 그런가요? 그림이 색다르긴 하네요! 다음 날, 엄마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유치원에 왔어요. 다행히 오늘이 유치원 공개 수업 날이었네요! 엄마는 선생님에게 살짝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어요. “선생님, 레오가 변덕이 심해서 힘드시죠?” 선생님은 친절하게 대답했어요. “레오는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예요. 그래서 레오의 그림들이 반짝반짝 빛이 난답니다.” 변덕꾸러기 레오는 유치원에서는 멋진 화가였어요. 불안하던 엄마의 마음이 어느새 소르르 녹았어요. 그래, 그래. 레오는 훌륭한 화가니까....... 으쓱으쓱. 나, 그네 잘 그렸지? 하지만 레오는 집에서는 말썽꾸러기 화가였답니다. 엄마가 레오의 그네 그림을 보고 아뜩아뜩!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
포리포리 퐁퐁퐁 | 의사소통 | 유아 | 알콩달콩 동화 마을에는 무엇이든지 가게가 있어요. 신기한 마법 주문으로 물건을 만들어 주는 곳이지요. 포포는 항상 마법 주문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오늘, 할머니에게 마법 주문을 배우게 되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지요. 포도를 만들고 싶으면 포크의 포 도넛의 도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포도를 만들 때는, 포크의 포 도넛의 도? 어려워요. 마법을 배운 뒤, 첫 손님으로 신데렐라가 왔어요. “결혼식 때 입을 반짝반짝 치마가 필요해요.” 포포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법 주문을 외쳤어요. 어? 뭐가 잘못된 걸까요? 반짝반짝 치마는 보이지 않고 더러운 잠옷이 나왔어요. 음, 고슴도치의 도 하마의 마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펑 앗,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머, 죄송해요. “이런 실수를 하다니.” 포포는 기운이 쭉 빠졌어요. 할머니는 다시 차근차근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포포는 매일 마법 주문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고슴도치의 치. 하마의 마.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며칠 뒤,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찾아왔어요. “새로 지은 집에서 오리를 키우고 싶어요.” 포포는 찬찬히 마법 주문을 외쳤어요. 그러자 펑! 아기 오리 세 마리가 나타났어요. 싱글벙글하는 아기 돼지들을 보니 포포도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야, 이번엔 성공이야. 다음 날, 헨젤과 그레텔이 울면서 들어왔어요.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주세요.” 포포는 거침없이 마법 주문을 척척 외쳤어요. 강낭콩의 강 아기의 아 지렁이의 지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주문을 마치자마자 펑! 강아지가 나타나 헨젤의 품에 쏙 안겼어요. 쫄깃쫄깃 오징어도 만들어 줄 수 있나요?” 이번엔 성냥팔이 소녀가 부탁했어요. 포포는 멋지게 마법 주문에 성공했지요. 오이의 오 징의 징 어묵의 어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브레멘 음악대는 알파카를 만나고 싶대요. 포포는 막힘없이 마법 주문을 외웠어요. 이번에도 멋지게 성공했지요. 알의 알 파인애플의 파 카메라의 카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한숨을 돌리려는데 피노키오가 들어왔어요. “꽃밭에서 나비와 함께 놀고 싶어요.” “하하, 그런 것쯤이야.” 포포는 자신만만하게 주문을 외쳤어요. 이건 어때? 너무 쪼그마해요. 이건 너무 못생겼어요. 더 멋진 나비를 만들어 달라고요! 멋진 나비로 부탁해요. 그런데 피노키오는 나비가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계속 다른 나비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네요. 나무의 나 비행기의 비 합쳐서 포리포리 퐁퐁퐁! 어느새 방 안은 나비로 가득 찼어요. 피노키오의 코까지 길어져 꼼짝할 수 없었지요. 사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져요. “많은 나비들이랑 놀고 싶었는데.” 흑, 나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그래서 코가 길어졌구나. “이제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미안해.” 피노키오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그러자 피노키오의 코가 다시 짧아졌어요. 포포와 피노키오는 창문을 활짝 열었어요. “나비들아,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렴.” 나비들아, 잘 가. 이제 욕심부리지 않을게. 며칠이 지나고, 동화 마을 친구들이 무엇이든지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섰어요. “나비를 백 마리도 넘게 만든 마법사 집이 바로 여기래.” 오늘은 포포가 또 어떤 마법에 성공할까요? 유명한 마법사니까 내 소원도 들어주겠지? 내가 많이 유명해졌나 봐. |
마법 주문을 배워 볼까? | 의사소통 | 유아 | 팡이와 랑이는 알콩달콩 사이좋은 형제예요. “세상에서 마법 놀이가 가장 좋아!” 오늘도 팡이와 랑이는 마법의 숲으로 가요. 오늘은 신비한 마법의 숲으로 떠나는 거 어때? 좋아, 좋아! 팡 팡 팡! 휙! 순식간에 울퉁불퉁 바위 숲에 도착! 팡이가 커다란 바위 위에 마법 막대를 툭툭. “강낭당랑망방상, 나와라, 강팡!” 이번에는 말하는 나무들의 숲에 도착! 팡이가 마법 막대를 휘휘. “강낭당랑망방상, 나와라, 당팡!” “와, 잘한다!” 말하는 나무들이 엄청 기뻐했어요. 신이난 팡이는 잇달아 마법을 부렸어요. 주문을 외우고 ‘랑팡!’ 하고 외쳤지요. 글자 ‘랑’이 들어가는 거라면, 바로 나? 이어서 하나 더! 멍멍 멍멍 길쭉길쭉 당근이 팡! 위풍당당 호랑이가 팡! 히이잉. 와, 여기는 반짝반짝 유리 숲! 그런데 갑자기 랑이가 팡이에게 떼를 써요. “나도 마법 주문 알려 줘. 응?” 랑이는 마법을 부리는 형이 부러웠어요. 앙증맞은 망아지가 팡! 어흐으응! 누가 날 불렀어? “킁킁, 랑이야, 이게 무슨 냄새야?” 지독한 방귀가 팡! “흑, 마법 주문을 잘못 말하다니!” 랑이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천천히 마법 주문을 외쳤어요 와, 휭휭 무지갯빛 강가에 도착! 팡이는 무지갯빛 강물을 보자마자 서둘러 주문을 외웠지요. “강낭당랑망방상, 나와라, 상팡!” 이번엔 무엇이 나올까요? 상팡! 강낭당랑망방상, 나와라, 상팡! 뭐가 나올까? 두근두근해. “앙장창캉탕팡항, 나와라, 장팡! 창팡!” 팡이와 랑이는 강가 옆 동굴로 들어갔어요. 그곳에는 커다란 솥단지가 있었지요. “솥단지는 훌륭한 마법 도구지.” 팡이가 마법 가루를 솔솔, 마법 주문을 흥얼흥얼. 장팡! 창팡! 두 가지가 함께 나오는 건 아주 고급 기술이지. 우아, 형, 정말 멋져! 향긋한 장미와 초록 창문이 팡! 팡이는 어깨를 으쓱으쓱. 그사이 랑이가 다음 마법 주문을 얼른 외쳤어요. “아자차카, 아니, 앙장창캉탕팡항, 나와라, 탕팡!” 주문을 외치자 솥단지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탕팡! 우아, 어려운 마법 주문도 잘하는데! 뭉게뭉게 솜사탕이 팡! 팡팡! 항팡! 우아, 팽글팽글 화사한 꽃밭에 도착! 꽃 위로 커다란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이젠 너도 마법사가 될 수 있겠어! 근사한 마법 도구를 선물해 줄게.” 팡이의 말에 랑이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팡이가 힘차게 주문을 외쳤어요. 그때, 엄마가 방문을 활짝! “팡이가 랑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구나!” “팡이야, 엄마에게도 마법 이야기 해 줄래?” 팡이의 이야기는 또다시 시작되었어요. 앗 엄마다! 강아지가 주문을 외우자 배낭이 나왔어. 당근 먹는 호랑이가 주문을 외우자 망아지와 소방차가 나왔어. |
신비한 도서관 | 의사소통 | 유아 | 요즘 준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심심해’야. 준이 엄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잠시만’이고. 엄마도 준이와 놀고 싶지만 할 일이 많아서 바쁜가 봐. 오늘은 오랜만에 준이와 엄마가 도서관에 왔어. 엄마가 열심히 책을 읽어 주는데. 준이는 자꾸만 하품을 했어. 그때 준이가 신기한 책을 찾았어. 앞 장에만 글씨가 있고 그 뒤는 하얬지. 글씨 위에는 동그란 조작 단추가 있었어. 준이는 조작 단추를 살짝궁 눌러 보았어. 띠리링 조작 단추를 눌러 봐! 조작 단추를 누르자 주문이 나타났어. 준이는 가만히 주문을 읽었어. “고노도로모보소 오조초코토포호!” 고노도로모보소 오조초코토포호! 행복해지는 주문을 말해 봐! 이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 말해 봐. 준이가 주문을 읽자, 책장이 스르륵 넘어갔어. 어머! 나무에 단어 카드가 달려 있네. 엄마는 단어 카드의 글씨를 읽어 줬어. “고양이, 노루, 도마뱀, 로봇, 모자, 보석, 소라, 오징어, 조개, 초콜릿, 코코아, 토마토, 포도, 호두! 이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 말해 보래.” 준이는 찬찬히 단어 카드들을 살피다 소리쳤어. “아, 저기 있다. 고양이!” 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바로 고양이거든. 와!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야. 책장을 스르륵 넘기자 엄마는 사라지고, 커다란 고양이가 나타났어. “나랑 공놀이하자! 야옹.” 준이는 고양이와 신나게 휙휙 공놀이를 했어. 그러다 고양이가 “잠깐!” 하고 외치더니 책장을 한 장 넘겼어. 하얗던 종이가 사라지고 주문이 나타났지. 고양이는 천천히 주문을 읽었어. “구누두루무부수 우주추쿠투푸후!” 구누두루무부수 우주추쿠투푸후! 웃음이 나는 주문을 말해 봐! 고양이가 주문을 다 읽자 책장이 스르륵 넘어갔어. 그리고 웃음이 절로 나는 자판기가 나타났지. 고양이는 찬찬히 글씨를 읽었어. “구두, 누룽지, 두루미, 캥거루, 무지개, 부엉이, 수박, 우유, 주스, 양배추, 쿠키, 투호, 푸딩, 후추! 난 우유가 좋아. 이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 말해 봐. 이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 말해 봐.” 고양이는 우유를 골랐어. 준이는 큰 소리로 주스를 외쳤지. 준이는 주스를 벌컥벌컥, 고양이는 우유를 할짝할짝. 준이와 고양이는 서로를 보고 하하하 히히히 웃음을 터트렸어. 입가에 주스와 우유가 잔뜩 묻어 있었거든. 그때, 고양이가 또 “잠깐!” 하고 책장을 한 장 더 넘겼어. “거너더러머버서 어저처커터퍼허!” 이번엔 준이가 주문을 읽었지. 히히! 거너더러머버서 어저처커터퍼허! 포근해지는 주문을 말해 봐! 천천히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어. “흑,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어둠’이 아니야!” 고양이는 어둠을 무서워하는 준이를 꼭 안아 주었어. 이 어둠은 무척 포근했어. 준이는 고양이 품에서 웅얼웅얼 말했어. “아, 따뜻해. 이제 졸리다.” 그러자 고양이가 준이 귀에 대고 속삭였어. “소중한 준이야, 내가 더 많이 함께할게.” 준이는 엄마 목소리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었지. “어둠? 우리 준이가 잠꼬대를 하네?” 준이 엄마는 준이와 함께 읽던 책을 덮었어. 그리고 준이의 입에 귀를 바짝 대어 보았어. “거너더러, 머, 버, 서.” 엄마는 씩 웃으며 준이를 더 꼭 안아 주었어. |
꿀벌이 되고 싶어! | 의사소통 | 유아 | 오늘도 아기 곰 폴은 산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솔솔 났어요. 꽃향기를 따라가 보니, 꿀벌들이 꽃밭에서 윙윙 꿀을 따고 있네요. 꿀을 딸 수 있는 우리가 부럽지? 나도 꿀벌이 될 거야. 어? 이게 누구죠? 폴이 홀짝홀짝 꿀을 먹고 있어요. 노랑 줄무늬 옷에 팔랑팔랑 날개를 달고 말이죠! 저기 보세요! 붕붕 아기 꿀벌이 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네요. “안녕, 나랑 친구 할래?” 붕붕! 안녕? 붕붕! 너랑 친해지고 싶어! 폴과 아기 꿀벌이 마주 보며 뱅그르르. “우리는 비슷한 점이 참 많아!” 둘은 금세 친구가 되었어요. 그리고 놀이터에서 한참 동안 신나게 놀았어요. 그때 지나가던 꿀벌들이 말했어요. “여기서 뭐 하니? 얼른 꿀벌 유치원에 가야지!” 아기 꿀벌은 후다닥 날갯짓하며 따라갔어요. 폴도 서둘러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돌돌 따라갔지요. 헉헉! 아기 꿀벌아, 어디 가? 늦었어. 빨리 따라와! 꿀벌 유치원 꿀벌들이 유치원에 모여 실룩샐룩! 우아한 여왕벌을 따라 씰룩쌜룩! 위험을 알리는 춤과 노래를 배워요. “골놀돌롤몰볼솔올졸촐콜톨폴홀!” 위험할 때는 배를 왼쪽, 오른쪽으로 힘차게 흔드는 거야! 엉덩이를 이리저리 씰룩쌜룩! 글자 리을과 비슷하게! 잘 들어 봐! 위험할 때 부르는 노래야. 골놀돌롤몰볼솔올졸촐콜톨폴홀! 골놀돌롤! 어렵지만 재미있어! 꼬르륵, 갑자기 우렁찬 소리가 들렸어요. 아하! 폴의 배 속에서 나는 소리네요. 배고픈 폴은 달콤한 꿀 향기를 따라 오솔길을 걸어갔어요. 킁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꿀 향기야! 꼬르륵. 오솔길 끝의 커다란 문을 열자, 복작복작 윙윙! 식당에는 올망졸망 꿀벌 손님들이 가득했어요. 몹시 배가 고팠던 폴은 허겁지겁 꿀피자를 먹었지요. 흥흥, 이렇게 달콤한 피자는 처음 먹어 봐! 이때 여왕벌이 폴 주위를 서성서성!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한참을 고민하다 폴의 벌침을 홀랑 뽑아 버렸어요. 어? 벌침이 뭔가 수상해. 화들짝 놀란 폴이 바닥에 발라당 꽝! 입 안의 피자를 삼키다 콜록콜록! “앗! 폴이 꿀벌이 아니었어!” 꿀벌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요. 콜록콜록! 내 말 좀 들어 봐! 으악! 고, 고, 곰이다! 폴은 폴딱 일어나 허둥지둥 정신없이 도망쳤어요.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그건 바로 꿀벌 유치원에서 배웠던 위험할 때 부르는 노래였어요! 어? 저건 꿀벌이 위험할 때 부르는 노래잖아! 골놀돌롤몰볼솔올졸촐콜톨폴홀. 우당탕! 쿵쾅쿵쾅, 꿍꽝꿍꽝! 폴은 급하게 꿀벌 마을로 되돌아갔어요. 커다란 손 괴물이 이리저리 촐랑촐랑! 꿀을 훔치려고 벌집을 마구 건드리고 있었어요. 찰싸닥! 찰싹! 폴은 손 괴물을 있는 힘껏 쫓아냈어요. 깜짝 놀란 손 괴물이 후다닥 도망갔어요. 얏! 저리 가! 찰싸닥 찰싹. “와! 폴이 우리를 구해 줬어!” 꿀벌들이 신나서 씰룩쌜룩 윙윙! 꿀벌들은 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꿀을 선물했어요. 폴은 이렇게 많은 꿀을 어떻게 할까요? 폴아, 정말 고마워. 언제든지 꿀을 가져가도 된단다. 누군지 정말 착하다. 꿀을 공짜로 준다면서? 폴이 나눠 주래. 콸콸 꿀 폭포. |
알쏭달쏭 키즈 카페 | 의사소통 | 유아 | 안녕? 나는 룩룩이야. 내 이름 참 특별하지? 모두들 잘 기억해 주니까 난 내 이름이 참 좋아!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와 함께 살아. 누나 이름은 눅눅이야. ‘룩룩’, ‘눅눅’ 글자가 비슷해서 기억하기 쉽지? 우리는 둘 다 재미있는 놀이를 참 좋아해. 여기는 ‘알쏭달쏭 키즈 카페’야. 정말정말 와 보고 싶었던 곳이야. 콩닥콩닥, 오늘은 무얼 하면서 재미있게 놀까? 첫 번째 방은 국눅둑룩 방이야. 여기 좀 봐. 근사한 주방이야. 우리는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놀이를 했어! 그런데 어디선가 반짝! 빛이 나는 게임 로봇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문제를 내기 시작했어. “블록을 돌려서 국자 그림과 글자를 찾아 봐.” “와, 신기하다. 내가 돌려 볼게.” 누나가 블록을 뱅그르르 돌렸지.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우리는 블록을 열심히 돌려 보았지. “이야, 찾았다!” 우리는 국자 그림과 글자를 찾았어. 우아! 스르륵 비밀의 문이 열렸어. 그리고 묵북숙 방이 나타났지. "이번엔 어떤 방이 나올까?" "와! 문이 열렸어." 묵북숙 방에는 멋진 악기들이 있어. 우리는 멋진 음악가가 되어 흥겹게 연주를 했어. 그런데 어디선가 반짝! 빛이 나는 커튼 뒤로 다가갔더니 게임 로봇이 문제를 내기 시작했어. “북을 찾아 북소리를 들려줘.” "누나, 커튼 뒤에 뭐가 있어." "북소리를 들려 달래." 우리는 요리조리 두리번두리번. 큰북과 작은북을 찾았어. 쿵쿵 쿵쿵쿵, 콩콩 콩콩콩! 신나게 북을 쳤더니, 스르륵 비밀의 문이 열렸어. 이번에는 욱죽축쿡 방이 나타났어. "야호! 비밀의 문이 또 열렸어!" "올라가 보자!" 욱죽축쿡 방에는 축구공과 축구 골대가 있었어. 우리는 공을 툭툭 차면서 신나게 축구를 했어. 바로 그때, 게임 로봇이 다가와 문제를 냈어. “축구공 네 개를 바구니에 넣어 봐.” 우리는 축구공 네 개를 바구니에 넣었지. 그러자 덜컹덜컹 축구 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와! 축구 골대가 움직이네." "골대 아래에 뭐가 있을까?" 여기 좀 봐. 골대 아래에 터널이 있어! 터널 끝에는 푹신푹신 구름이 둥둥 떠 있었어. "우아, 멋지다! 룩룩아, 터널 아래로 내려가 볼까?" "쿵쾅쿵쾅, 정말 설레." 누나가 먼저 훅 뛰어들었어. 나도 뒤따라 씩씩하게 훅 뛰어들었지. 터널 아래로 내려가면 어떤 방이 있을까? 두근두근 쿵쾅쿵쾅! 무척 설레었어. 주르륵 꿍! 어? 여기는 어디지? 푹신푹신 포근포근. 꼭 구름 동산에 온 기분이야. 살포시 눈을 떠 보니 앗! 엄마, 아빠다! "오늘은 최고로 신나는 날이에요." "룩룩이가 신나 하니 엄마, 아빠도 즐거워." |
모험의 숲으로 출동! | 의사소통 | 유아 | 야호! 호야와 아빠가 모험의 숲으로 떠나요. 뽀르르 스컹팡도 함께 가기로 했지요. 두근두근, 아슬아슬!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잠깐, 나랑 같이 가! 이야! 드디어 모험의 숲으로 출발. 숲에 들어서자 강아지가 낑낑.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고 있어요. “강아지가 뭔가 도와 달라는 것 같은데?” 아빠의 말에 호야는 고민한 후 스컹팡에게 외쳤어요. “스컹팡, 어서 꼬리를 펼쳐!” 어떤 해결 카드가 강아지에게 필요할까요? 낑낑! 끙끙 똥이 안 나오나 봐. 으 라 차차, 차, 촤 해결 카드 나와라, 팡! 퐁 퐁 퐁 요이빔에서 나온 빛이 해결 카드를 비췄어요. 그러자 강아지에게 줄 음식이 뿅! 야채를 야금야금, 똥을 퐁, 퐁, 퐁! 어느새 강아지가 활짝 미소를 지었어요. 띠로리리 슈 비두두 두둥 두둥 맞아! 똥이 안 나올 때는 야채를 먹어야 하지. 오물오물 꿀꺽 나와라, 요이빔! 살금살금 그다음 숲으로 들어가니, 북극여우가 헐떡이며 땀을 뻘뻘. 이 더운 날씨에 북극여우가 일일까요? 북극여우를 위해 스컹팡이 나섰어요. “해결 카드 나와라, 팡!” 할딱할딱 캥캥 이야야야얍 어떤 해결 카드가 북극여우에게 필요할까요? 북극여우야, 더워도 조금만 참아. 스컹팡, 서둘러! 해결 카드 나와라, 팡! 휘리릭 요이빔에서 나온 빛이 해결 카드를 비췄어요. 그러자 북극여우가 있는 곳이 로 뿅! 북극여우는 신나서 폴짝폴짝, 스컹팡은 추워서 오들오들. 띠리리리 띠링 폴짝폴짝 나와라, 요이빔! 해결의 빛으로 북극여우를 구해 줘! 캥캥, 시원해서 너무 좋아! “꺼이꺼이, 콜록!” 이상한 소리를 따라가 보니, 용이 불을 내뿜으며 눈물을 뚝뚝. 호야와 아빠, 스컹팡은 용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요. “입에서 나오는 불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 스컹팡은 재빨리 해결 카드를 펼쳤어요. 화르르 활 활 활 활 꺽꺽 어떤 해결 카드가 용에게 필요할까요? 어떻게 해결해 주지? 입에서 불이 나와서 힘들어. 그러자 불로 할 수 있는 일이 뿅! 용은 불을 써서 요리를 뚝딱뚝딱. 맛있는 음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어요. 요로로이 화르르 지글지글 타 다 다 다 펑 나와라, 요이빔! 해결의 빛으로 용의 고민을 해결해 줘! 우아, 불로 요리를 할 수 있어! 도와줘서 고마워! 숲을 거의 통과할 무렵이었어요. 야옹야옹, 배고픈 고양이가 울고 있네요. 호야와 아빠는 고양이를 도울 방법을 생각했어요. 스컹팡은 재빨리 해결 카드를 펼쳤지요. 야옹야옹 꼬르륵 어떤 해결 카드가 고양이에게 필요할까요? 그러자 유리그릇에 새하얀 우유가 뿅! 고양이는 우유를 할짝할짝. 스컹팡은 흐뭇해서 싱글벙글 웃었어요. 냠냠 할짝할짝 슈루루룹 짜그르르 쨍 쨍 나와라, 요이빔! 야호! 드디어 호야와 아빠, 스컹팡이 모험을 마쳤어요. 문제를 척척 해결하고 숲에서 신나게 나왔답니다. 스컹팡, 오늘도 고마웠어! 킁킁, 용 요리사가 온 건가?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 모여 봐요! |
글자가 사라졌어요 | 의사소통 | 유아 | 여기는 웃음 대장 다다의 집이야. 다다는 깔끔 대장 엄마랑 이야기 대장 아빠랑 함께 살고 있지. 오늘도 기분이 좋은 다다는 싱글벙글. “시원한 마시러 출발!” 웃음 대장 다다가 와다닥 냉장고로 달려갔어. 갑자기 가 마시고 싶네! 그런데 다다가 고개를 갸우뚱! “어? ‘냉장고’ 글자가 사라졌네.” '냉장고' 글자가 어디로 사라졌지? 다다는 사라진 글자를 찾으러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그러다 마이크를 발견했어! "히히, 그냥 노래 부르면서 놀아야겠다!" 우선, 마이크로 노래 부르고 놀아야지. 다다가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 “어? ‘마이크 ’ 글자도 사라졌잖아?” 글자가 또 사라졌어! 다다는 구석구석 두리번거리며 사라진 글자를 찾아다녔어. 그러다 하얀 요리사 모자와 양 인형을 발견했지. “헤헤, 양에게 맛있는 요리부터 해 줘야지!” 모르겠다. 양이랑 요리놀이할래. “오늘은 내가 샌드위치 요리사!” 다다는 아삭아삭 무로 맛있는 샌드위치를 뚝딱 만들었어. “ 양아, 무 샌드위치 같이 먹자.” 갑자기 다다의 배에서 꼬르륵! “우유와 아이스크림 진짜로 먹고 싶다!” 무 샌드위치 완성! 양아, 우리 같이 먹자! 다다는 방실방실 웃으며 냉장고로 달려갔어. 그러고는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꺼냈지. 배고파. 우유랑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다다가 고개를 갸웃갸웃. “어? ‘우유’ 글자도 사라졌네!” 다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누가 글자를 자꾸 사라지게 할까? “그래, 결심했어!” 다다는 누가 글자를 사라지게 하는지 찾아 보기로 했어. 방에 가서 이리저리 두리번두리번. 욕실에서도 요리조리 두리번두리번. 거실에서도 이쪽저쪽 두리번두리번. 누군지 찾아 봐야겠어. 다다는 한참 동안 돌아다녔어. 그래도 웃음 대장 다다는 빙그레 벙그레. “얍! 조금만 더 찾아 보자!” 힘내서 더 찾아 보자. 얍! 다다가 주방을 다시 찾아 보려 하는데, 어디선가 쩝쩝 소리가 들렸어. 다다는 소리를 찾아 살금살금 다가갔지. 소리가 나는 곳은 바로 냉동실이었어! 쉿! 무슨 소리지? 냉동실 문을 활짝 열어 보니, 젤리 지렁이가 ‘아이스크림’ 글자를 냠냠 오물오물 꿀꺽! “찾았다. 바로 너였구나!” 웃음 대장 다다는 신이 나서 발을 콩콩 굴렀어. 야호! 찾았다, 찾았어! 다다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어. ‘엄마랑 아빠가 글자 먹는 젤리 지렁이를 보고 놀라면 어쩌지?’ “아하! 좋은 생각이 났어.” 나를 보고 화를 내면 어쩌지? 걱정 마. 내가 안전하게 지켜 줄게. “젤리 지렁이야, 내가 매일 한글 요리를 만들어 줄게!” 다다가 색연필로 또박또박, 사인펜으로 술술. 젤리 지렁이는 다다가 쓴 글자를 맛있게 먹었지. 친구야, 너도 같이 써 볼래? 나는 한글 요리사! 젤리 지렁이야, 맛이 어때? 정말 맛있어! 내 친구 다다야, 고마워! |
창문에 그림을 그리면 | 의사소통 | 유아 | “아, 심심해.” 나나가 창문 밖 하늘을 바라봤어요. 하늘에 구름이 하나둘 생기더니,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하아, 창문에 그림을 그려 볼까? 나나가 창문에 입김을 호! 그림을 스륵 그렸더니, 토실토실 비버가 방글방글. 아, 어디에 숨었니? 창문에 그린 비버가 둥실 다가왔어요. “나나야, 우리 같이 놀자!” 비버는 나무로 만든 놀잇감을 건넸어요. “비버야, 고마워.” 창문에 그린 카멜레온이 스르륵 다가왔어요. “나 찾아 봐라!”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 올록볼록 카멜레온이 수풀 속에 숨어 있었네요. 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 다시 입김을 후! 그림을 쓱쓱 그렸더니, 올록볼록 카멜레온이 씽긋. 친구들아, 안녕! 나나가 다시 창문에 입김을 호! 그림을 휙휙 그렸더니. 흔들흔들 그네가 뿅! “우리 같이 높이높이 올라가 볼까?” 흔들흔들 그네가 말했어요. 나나는 씽씽 그네와 놀았어요. 휭휭, 그네놀이 재미있다! “우리 같이 심장 콩콩 놀이 할래?” 옆에 있는 아찔아찔 미끄럼틀이 말했어요. 나나가 올라가니 미끄럼틀이 쭉 길어졌어요. “야호! 정말 재미있어. 심장이 콩닥콩닥해!” 아찔아찔 높은 미끄럼틀을 타고 슝! 다시 창문에 입김을 후! 그림을 쓱쓱 그렸더니, 아찔아찔 미끄럼틀 완성! 그네랑 미끄럼틀도 그려야지. “비버랑 카멜레온이랑 같이 놀면 더 재미있겠다!” 나나는 다시 보고 싶은 친구들을 스륵 그렸어요. 모두 그려서 다 같이 놀래! 비버랑 그네타고 하늘 높이 씽씽. 카멜레온이랑 미끄럼틀타고 아찔아찔 쌩쌩.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보니 배가 고팠어요. 하늘 높이 올라갈래. 내가 저 멀리까지 밀어 줄까? 창문에 입김을 호! 그림을 사각사각 그렸더니, 고소한 빵에서 김이 모락모락. 우아! 정말 맛있다. 다시 창문에 입김을 후! 그림을 삭삭 그렸더니, 달콤한 초콜릿이 뿅! 모두모두 맛있게 냠냠. 입에서 살살 녹아. 나도 먹고 싶다. “나나야! 우리 이제 나가자.” 엄마가 나나를 불렀어요. “힝, 더 놀고 싶은데.” 나나는 아쉬웠지만 터덜터덜 엄마를 따라 나갔어요. |
마음대로 집이 있다고? | 의사소통 | 유아 | 우당탕 곤충 아파트에는 , , 꿀벌, 메뚜기, 나비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요. 바쁘다, 바빠. 쿵쾅쿵쾅. 랄랄라 왕왕. 룰루랄라 휭휭. 오늘도 시끄럽네. 5층에는 부지런한 대가족이 살지요. 와 번데기들을 돌보고, 온종일 영차, 영차 일해서 온 집 안이 쿵쿵! 쾅쾅! “아, 바쁘다. 바빠!” 올망졸망 귀여운 알들. 언제 깰까? 번데기들아, 많이 먹고 쑥쑥 자라렴. 왜 매일 쾅쾅거리지? 아래층에 사는 가 꾹 참다가 소리쳐요. “쾅쾅 발소리, 너무 시끄러워!” 4층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가족이 살아요. 여름 에 맞춰 쿵쾅쿵쾅 노느라 온 집 안이 우르릉! “이야, 정말 즐거워.” 아래층에 사는 꿀벌이 귀를 꽉 막고 소리쳐요. “우르릉 크게 떠드는 소리. 너무 시끄러워.” 아래층에 사는 메뚜기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쳐요. “휭휭 춤추는 소리, 너무 시끄러워.” 3층에는 춤을 좋아하는 꿀벌 가족이 살아요. 와 함께 붕붕 신나게 춤을 추면 온 집 안이 들썩들썩! “으아, 신난다!” 춤추는 소리 때문에 어질어질해. 오늘은 윙윙 춤추자! 야, 우리 춤을 잘 봐! 흔 들 흔 들 움직이기! 잘 보고 따라 해 봐. 우리도 춤출 때 가장 신나! 2층에는 운동을 즐기는 메뚜기 가족이 살아요. 땀 흘리며 폴짝폴짝 뛰어서 온 집 안이 쾅쾅! “휙휙, 좀 더 높이 뛰어 볼까?” 아래층에 사는 나비가 깜짝 놀라서 소리쳐요. “쿵쿵 뛰는 소리, 너무 시끄러워.” 쿵쿵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아파. 우아, 멋져! 넌 할 수 있어! 폴짝! 더 높이 뛸 거야! 우당탕 곤충 아파트는 매일 티격태격 옥신각신! “이대로는 안 되겠어!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파트 주민들은 회의를 열었어요. 하지만 모두 투덜거리기만 했지요. 난 조용한 게 좋아. 노래를 하지 못하면 슬플 것 같아. 우리 싸우지 말자. 우리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와, 어떤 집일까? 마음대로 뛰어도 된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우편함에 가 보낸 커다란 초대장이 왔어요. “어? 이게 뭐지?” 소식을 들은 곤충들이 모두 모였어요. “우아! 네 마음대로 집에서는 신나게 놀아도 된대. 우리 같이 가 보자!” 신나게 놀 수 있다고? 꿀벌, 메뚜기, 나비에게 내가 사는 집은 아래층이 없어서 신나게 놀아도 되는 곳이야. 꿀벌, 메뚜기, 나비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네 집으로 출발했어요. “어떤 집일까? 정말 궁금해!” 모두 줄을 지어 초대장 안내대로 한참을 갔어요. “와, 저기 큰 가 보여!” 네 집은 어디야? 이 숲길을 지나면 큰 가 있대. 헉헉, 조금만 쉬었다 가자. 다 왔어. 빨리 가자! 드디어 큰 앞에 도착했어요. “어? 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엘리베이터 문만 있네?” 가 말했어요. 는 어디 있지? 보셨나요? 여기 문이 있어. 어, 이 문은 뭐지? 메뚜기가 버튼을 누르니 문이 쓱 열렸어요. 모두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땅속으로 스르르. 띵! 문이 열리자 가 반겨 주었어요. “마음대로 집에 온 걸 환영해!” “그럼 여기서 마음대로 계속 살아도 돼?” 가 또다시 묻자 오소리가 웃으며 말했어요. “그럼! 우리 여기서 사이좋게 함께 살자.” 오소리와 곤충 친구들은 매일매일 마음대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심부름은 처음이야 | 의사소통 | 유아 | 오늘은 푸푸 아빠의 생일이에요. 푸푸와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로 했어요. 이런, 음식 재료가 부족해요! 엄마가 김밥에 들어갈 시금치. 과일꼬치에 들어갈 파인애플. 케이크 만들 때 쓸 밀가루를 깜빡했지 뭐예요. 푸푸는 바쁜 엄마 대신 처음으로 혼자서 슈퍼마켓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밖에는 빗방울이 톡톡, 토도독! 푸푸는 가장 좋아하는 초록 장화를 신고 노란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어요. 우리 푸푸가 심부름을 잘할 수 있을까? 강아지, 푸푸! 심부름 가요, 푸푸! 을 쓰고, 푸푸! 에 가요 , 푸 푸 ! 푸푸는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어요. 처음 가는 심부름이라서 신이 났거든요. 찰박찰박 신나게 걸어가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꿈틀! “으악, 뱀이다!” 푸푸는 깜짝 놀랐어요.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요리조리 다시 살펴보았어요. “어? 꿈틀꿈틀 뱀처럼 보이는 나뭇가지였네.” 드디어 푸푸가 슈퍼마켓에 도착했어요. 커다란 슈퍼마켓에는 푸푸가 사고 싶은 물건들이 가득했지요. 푸푸는 엄마가 써 준 쪽지를 다시 확인했어요. “ 시금치, 파인애플, 밀가루가 어디 있을까?” 기린 점원이 푸푸를 보며 상냥하게 말했어요. “오늘 당근이 아주 싱싱해요.” 푸푸는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그럼 시금치보다 당근이 더 좋은 거네!’ 푸푸는 자신 있게 싱싱한 당근을 골랐어요. 음, 그럼 시금치 대신 당근을 사야지. “어? 새콤달콤 향긋한 냄새가 나네.” 향기를 따라 과일 코너에 갔더니 파인애플이 있었어요. 이때 코알라가 푸푸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파인애플보다 사과가 더 맛있어!” “그럼 더 맛있는 사과를 살래!” 푸푸는 파인애플 대신 빨간 사과를 골랐어요. 푸푸가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찾았다! 보드랍고 하얀 밀가루!” 푸푸는 케이크 만들 때 쓸 밀가루를 찾았어요. 그런데 설탕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달콤한 설탕이 더 좋아.” 푸푸는 밀가루 대신 달콤한 설탕을 골랐어요. 그러고는 무척 뿌듯해하며 계산을 했어요. 푸푸가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에도 비가 왔어요. 첨벙첨벙 미끌미끌 꽈당! 푸푸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 장바구니 속 물건들이 와르르! “흑, 바닥에 모두 쏟아졌네.” 이때, 초록 을 쓴 아저씨가 푸푸에게 살며시 다가왔어요. “푸푸야, 괜찮니? 자, 여기 떨어트린 물건을 모두 담았단다. 집에 조심해서 가렴.”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푸푸는 고개를 꺄우뚱하며 생각했어요. 드디어 푸푸가 집에 도착했어요. “우리 푸푸, 잘 다녀왔니? 장바구니 같이 확인해 볼까?” 그런데 장바구니 속 재료들을 본 푸푸는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적어 준 시금치, 파인애플, 밀가루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빠가 푸푸의 장바구니를 다른 장바구니로 슬며시 바꾸었대요. 언제 바꾼 걸까요? |
바리공주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옛날에 천별산을 다스리는‘오구대왕’이 있었습니다. “앞날을 알고 싶은데, 어디 용한 점쟁이가 없느냐?” 오구대왕은 시녀 상궁에게 물었습니다. “천하궁의 무당이 용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천하궁에 가서 점을 쳐 보도록 하라.” 상궁은 오구대왕의 명령을 받아 보물을 들고 천하궁의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무당은 쟁반에 쌀을 흩어 놓아 보고는 점괘를 일러 주었습니다. “올해에 혼인을 하시면 훗날 자손의 덕을 보실 것입니다.” 상궁이 돌아와 그대로 아뢰자, 오구대왕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이제 나라가 안정되었으니 혼인을 해야겠구나.” 이리하여 오구대왕은 어질고 아름다운 여인을 맞아 혼인을 하였습니다. 신하와 백성들은 오구대왕의 혼인을 축하하며 왕비를‘길대 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몇 달이 지나 길대 부인이 아이를 갖자 오구대왕이 물었습니다. “어떤 꿈을 꾸었소?” “품 안에서 달이 떠오르고 오른손에는 푸른 복숭아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열 달이 다 차자 길대 부인은 공주를 낳았습니다. 오구대왕은 기뻐하며 청대 공주라고 이름 짓고 달이장 아씨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도록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길대 부인에게 또 아이가 생겼습니다. “어떤 꿈을 꾸었소?” “품 안에 칠성별이 떨어지고 오른손에 붉은 복숭아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열 달이 되어 길대 부인은 또 공주를 낳았습니다. 오구대왕은 기뻐하며 홍도 공주라고 이름 짓고 별이장 아씨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도록 했습니다. 그 후로도 길대 부인은 계속 딸을 낳아 여섯 자매를 두고 또 아이를 가졌습니다. 왕자를 얻어 왕위를 물려주려던 오구대왕은, 이번에는 아들이기를 기대하며 길대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꿈을 꾸었소?” “궁궐 대들보에 푸른 용과 누런 용이 엉켜 있었고, 오른손에는 보라매, 왼손에는 백마를 들고 있었습니다. 또한 왼쪽 무릎에는 검은 거북이 앉아 있고, 양 어깨에는 해와 달이 돋아 있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왕자를 얻을 꿈이로군.” 열 달이 지나 길대 부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또 딸이었습니다. 길대 부인은 울음을 터뜨렸고, 오구대왕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지은 죄가 많아 하늘이 일곱 딸을 주신 모양이구나. 마지막 아이는 용왕께 바칠 것이니 옥으로 만든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지도록 하라.” 길대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버릴 때는 버리더라도 이름이라도 지어 주셔야지요.” “버리는 아이니‘바리공주’라고 지으시오.” 자신이 낳은 딸을 버려야 하는 길대 부인은 흐느끼며 부모 생일과 아이 생일을 적은 종이를 옥으로 만든 상자에 함께 넣어 바닷가로 갔습니다. 길대 부인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 한 채 상자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파도가 상자를 감싸안아 조심스럽게 다시 뭍으로 올려 놓는 것이었지요. “저를 낳은 부모는 버리려 하는데, 바다는 버리지 말라 하는구나.” 길대 부인은 주저앉아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오구대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 길대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상자를 들어 다시 바다로 던졌습니다. 철썩! 상자는 푸른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라앉으려는 순간, 물속에서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거북이 나타나 상자를 등에 지고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길대 부인은 한참이나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이때 제자들과 함께 세상으로 내려오시던 부처님께서는 바다에서 빛나는 상자를 보시고는 건져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상자 안에는 귀여운 아이가 잠들어 있었지요. “자기를 낳은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다니. 하지만 장차 부모를 구할 상이로다. 참으로 운명이란 무서운 것이로구나.” 부처님은 마침 길을 지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아이가 든 옥 상자를 건네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자 안에 하늘이 내린 아이가 있으니 데려가서 기르도록 하라.” “저희는 가난해서 집도 없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한데 어찌 귀한 자손을 데려가 기르겠습니까?” “이 아이를 데려가 기르면 집도 생기고 옷과 밥이 절로 생길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상자를 열어 아이를 꺼내 물로 깨끗하게 씻기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또한 버려진 아이를 얻었다고 해서 ‘바리’라고 부르기로 했지요. 바리는 자라서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했고, 따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글을 척척 읽었으며,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바리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제 아버지, 어머니는 누군가요?” 할머니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전라도의 왕대나무가 네 아버지이고, 뒷동산의 넓은 머구나무가 네 어머니란다.” “거짓말 마세요. 왕대나무는 아버지 돌아가시면 두건 만드는 데 쓰는 거고, 머구나무도 어머니 돌아가시면 두건 만드는 데 쓰는 건데 어찌 부모가 된다고 하십니까?”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바리는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바리는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한편 오구대왕과 길대 부인은 시름시름 앓더니 한날한시에 똑같이 병이 들었습니다. 신하들은 걱정 끝에 용한 점쟁이를 불러 알아보기를 청하였습니다.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쳐 보아라.” 오구대왕의 명을 받은 궁녀가 가서 물으니 무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쪽에는 해가 떨어지고 서쪽에는 달이 떨어지니, 대왕 마마와 왕비 마마는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다.” 돌아와 이 말을 전하는 궁녀에게 오구대왕이 한숨을 쉬며 물었습니다. “달리 방법은 없다고 하더냐?” “버린 자손만이 두 분을 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서 바리공주를 찾으소서.” 궁녀에게서 점괘를 들은 오구대왕은 길게 탄식했습니다. 바다에 버린 바리 공주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입니까? 더구나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말이지요. 그때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뜰 가운데에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났습니다. 동자는 오구대왕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습니다. “너는 누구인데 깊은 궁중에 들어왔느뇨?” “저는 옥황상제의 시동으로, 대왕께 전할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두 분께서는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다.” “대체 왜 우리 두 사람이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냐?” “옥황상제께서 보낸 일곱째 공주를 버린 죄 때문입니다. 바리공주를 찾아 구천 리 떨어진 서천으로 보내 장승이 지키고 있는 약수를 떠 오도록 하시면 저승사자도 물러갈 것입니다.” 말을 마친 동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오구대왕이 놀라 정신을 차려 보니 모두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어찌나 생생했던지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답니다. 오구대왕에게서 꿈 이야기를 들은 길대 부인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내 손으로 버린 자손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씀이십니까?” “염려 마시오 부인.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오 .” 잠시 후 오구대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바리공주를 찾는 사람에게 많은 상금을 주고 높은 벼슬을 내리리라.” 오구대왕의 말에 한 신하가 나와 아뢰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나라 서쪽에서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을 보면 그곳에 귀한 인물이 있는 듯합니다.” “언제부터 그러했더냐?” “열다섯 해 전부터 그랬습니다.” 오구대왕과 길대 부인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리공주를 버린 것이 바로 열다섯 해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네가 그곳으로 가 보도록 하여라.” “예, 제가 반드시 공주님을 찾아오겠습니다.” 궁을 나온 신하는 온갖 고생을 하며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간신히 바리공주가 사는 서쪽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왕 마마의 명을 받들어 바리공주님을 찾기 위해 왔습니다.” “바, 바, 바리공주라고요?” 할아버지는 놀라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러자 바리공주가 나섰습니다. “제 부모님은 궁에 계신 분들이로군요. 더구나 저보고 공주라니. 제 부모님은 왕과 왕비임에 틀림없겠지요. 기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눈물이 먼저 흐르는군요. 여하튼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궁으로 가서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을 만나 뵙고 왜 어린 저를 버리셨나 하는 것도 여쭈어 보고요.” “아무렴, 그래야 하고말고. 비록 우리가 너를 키우긴 했다만 응당 그분들을 찾아뵙고 절을 올려야지.” 바리공주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키워 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돌아와서 다시 모시겠습니다.” 바리공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작별을 하고 신하를 따라 서쪽 마을을 떠나 궁으로 갔습니다. “어디 보자. 내 딸, 바리야. 열다섯 해 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내 딸아.” 길대 부인은 바리공주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곁에 있던 오구대왕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너를 버린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였다. 나라를 이을 태자가 태어나지 않아 그만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 모두가 내 잘못이니 용서하여라.” 오구대왕은 나이 들고 병들어 왕의 위엄이나 권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바리공주가 보기에는 그저 늙고 병든 노인일 뿐이었습니다. 열다섯 해, 긴 세월 동안 한을 품고 살았지만 막상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보니 원망과 슬픔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저를 낳아 주신 부모인데 제가 어찌 탓할 수 있으며, 이렇게 저를 다시 찾아 주셨는데 어찌 허물을 들추겠습니까?” “고맙다, 내 아기야.” 오구대왕은 바리공주의 말에 안심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습니다. 바리공주는 어머니인 길대 부인에게 왜 자신을 찾았는가를 여쭈었습니다. 길대 부인은 오구대왕과 자신이 병에 걸려 한날한시에 죽게 되었는데, 구천 리 떨어진 서천에 있는 약수를 구해 마시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소녀는 열 달 동안 부모님 뱃속에 있었으니, 그 은혜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까? 이제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기쁜 마음으로 가야지요.” “고맙구나. 고맙구나, 내 딸 바리야.” 바리공주는 튼튼하고 질긴 옷과 무쇠 지팡이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춰지자 바리공주는 그것을 받아 몸에 걸친 후 대궐 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였지요. 그때 까치가 날아와서 말했습니다. “바리공주님, 저를 따라오세요.” 바리공주는 까치가 이끄는 대로 길을 걸었습니다. 험한 산을 지나 들판에 이르자 까치가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공주님을 모실 수 있어요. 다음에는 풀이 길을 안내할 거예요.” 까치가 날아간 후 바리공주가 들판을 살펴보니, 바람도 없는데 풀이 한쪽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 모양은 마치 길을 알려 주는 듯했지요. “옳아, 이리로 가라는 것이구나.” 바리공주가 풀잎이 누운 방향으로 무쇠 지팡이를 한 번 짚으니 천 리를 가고, 두 번 짚으니 이천 리를, 세 번 짚으니 삼천 리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깊은 산중에 다다른 바리공주는,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몰라 또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 바위 밑에서 번쩍이는 빛이 솟구치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있기에 빛이 나는 걸까?” 신기하게 여긴 바리공주가 다가가 보니 바위 밑에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이 바둑을 두고 있었습니다. 금빛은 바로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몸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공주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자 부처님이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날짐승,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 천궁에 온 너는 누구인가?” “저는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 부모님의 목숨을 구할 약수를 가지러 가는 길이온데, 산중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용하구나. 지금까지 육천 리를 왔으나 앞으로 험한 길 삼천 리가 더 남았는데 가겠느냐?” “아무리 힘들어도 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금으로 만든 종과 꽃 한 송이를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네게 도움을 줄 것이다.” 바리공주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고 인사를 올린 후 길을 떠났습니다. 또 산을 넘고 물을 건너자 눈앞에 커다란 성이 보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성은 온통 쇠로 만들어졌고,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사지옥, 얼음지옥 등 열두 지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산지옥과 불이 활활 타오르는 불산지옥, 온갖 뱀이 꿈틀거리는 독사지옥, 눈과 얼음의 세계인 얼음지옥에서는 죄인들의 비명 소리가 끔찍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악! 뜨거워. 제발 살려 주세요.”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발 얼음 속에서 꺼내 주세요!” 사람들의 애처로운 비명을 듣다 못한 바리공주는 품에서 부처님이 주신 금종과 꽃을 꺼냈습니다. 바리공주가 금종을 흔들자 맑고 고운 소리가 지옥에 울려 퍼졌습니다. 가벼운 죄를 지은 영혼들이 종소리에 몸을 싣고 바리공주에게로 날아왔습니다. 바리공주가 손에 든 꽃이 그 영혼들을 스치자 끔찍한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고, 영혼들은 밝은 표정이 되어 성 밖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바리공주는 계속 종을 흔들었고, 날아드는 영혼을 꽃으로 스쳐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종을 흔들다 보니 종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영혼들의 상처를 치유하던 꽃도 점점 시들어 갔지요. 뎅그렁! 엄청난 소리를 내며 종이 깨졌습니다. 꽃도 말라 버렸지요. 그 순간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바리공주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바리공주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눈앞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새조차 건널 수 없다는‘삼천리 바다’였습니다. 도저히 건널 방법이 없어 바리공주가 애를 태우는데,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며 바리공주에게 구원을 받은 영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영혼들은 노랫가락을 엮어 오색 비단을 만들어 바리공주가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양쪽에 영혼들이 죽 늘어서서 바리공주가 지날 때 고개 숙여 절을 했습니다. 비단으로 만든 다리를 걸으니 한 걸음에 십 리를 갈 수 있었습니다. 삼백 걸음으로 삼천 리를 건너니, 영혼들은 공주에게 세 번 절을 하고는 물러갔습니다. 바리공주도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키는 하늘에 닿고, 눈이 등잔만한 장승이 나타났습니다. “그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귀신인가? 열두 지옥을 어찌 지나왔으며, 또 모든 것이 가라앉는 삼천리 바다는 어찌 건너왔는가?” “저는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서 서천에 있는 장승의 약수를 얻어다가 부모님을 살리려고 왔나이다.” “그대는 국왕의 기상을 지닌 여인이니 나와는 천생 배필이라. 나와 혼인하여 아들 일곱을 낳아 주면 약수를 주리다.” 이리하여 바리공주는 장승과 혼인을 했고, 또 세월은 흘러서 마침내 아들 일곱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일곱 해가 지나자 바리공주는 남편인 장승에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혼인하여 아들 일곱을 낳았으니 약속은 모두 지켰습니다. 부부의 정도 중하지만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약수를 얻으러 가겠나이다.” “그대가 날마다 밥을 짓기 위해 길어다 쓰는 물이 바로 약수이고, 낫으로 베어 소를 먹이던 풀은 아픈 이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며, 뒷동산의 꽃은 숨을 쉬게 하고 뼈와 살을 돋게 하는 것이니 가져가오. 풀은 눈에 넣고, 꽃은 몸에 품게 하고, 약수를 입에 넣으면 두 분 모두 살아나실 것이오.” “감사하나이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아니오. 아들 모두와 함께 당신을 따르리다.” 처음 올 때는 혼자였던 바리공주는 지아비인 장승과 일곱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바리공주 일행은 오랜 여행 끝에 다다른 궁 가까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울며 호화로운 상여를 메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 누구의 상여이기에 이리 슬피 울고 있나요?” “대왕 마마와 왕비 마마 두 분이 한날한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지금 묘지로 가는 길입니다.” 바리공주는 머리를 풀어 장승과 일곱 아들을 감춘 후, 상여 앞으로 다가가 관을 열었습니다. 오구대왕과 길대 부인은 이미 숨이 끊어져, 두 눈은 굳게 감겨져 있었고, 몸은 앙상하여 거의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바리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의 입에 약수를 흘려 넣고 풀로 눈을 비빈 다음 꽃을 가슴에 올려놓았습니다. 잠시 후 오구대왕과 길대 부인은 ‘후’ 하고 긴 숨을 내쉬더니 눈을 뜨며 깨어났습니다. “참으로 깊고 긴 잠을 잔 것 같구나.” 오구대왕과 길대 부인이 깨어나자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대왕께서 버렸던 자손이 약수를 구해 와서 되살아나셨나이다. 어서 궁으로 돌아가소서.” 궁으로 돌아온 오구대왕은 바리공주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살렸으니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마. 말하거라. 이 나라의 반을 주랴?” “나라도 싫고 재산도 싫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버려짐으로써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버려진 영혼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만.” “그래, 다만 무엇이냐?” “저는 두 분을 위해 약수를 구하러 갔다가 장승을 만나 일곱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두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알겠다.” 그러자 바리공주는 풀어 헤친 머리카락 속에 숨겼던 장승과 아들들이 나오도록 하여 인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한 가지 청이 더 있나이다.” “그래, 말해 보아라.” “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궁을 떠나 저를 길러 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해 주옵소서.” “나를 구해 준 너를 평생 곁에 두고 보살피며 보답하고 싶다만, 네가 떠나겠다니 붙잡을 수 없구나. 그렇게 하도록 해라.” 바리공주는 부모님께 큰절을 한 뒤, 궁을 나와 자기가 자란 초가집으로 갔습니다. “아니! 우리 바리가 아니냐? 여보, 바리가 돌아왔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바리공주의 두 손을 잡으며 반겼습니다. 모두와 함께 살게 된 바리공주는 열심히 도를 닦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도를 깨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인도하게 되었고, 장승은 산신이 되었으며, 일곱 아들은 저승의 대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리공주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점쳐 주고, 가엾은 영혼을 올바로 이끌기 위해 제사를 지내 주는 신성한 여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굿에서 불리던 노래. 바리공주는 언제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 주고 저승으로 잘 가기를 기원하는 굿판 지노귀굿에서 불렸던 노래가 소설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바리공주’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 지방에서 두루 전해 오고 있습니다. ‘바리공주’라는 말은 주로 서울에서 쓰이고 지방에 따라서 ‘오기풀이’, ‘칠공주’, ‘비리데기’, ‘바리데기’, ‘오구물림’이라고 합니다. 바리공주는 시베리아 지역의 무당이 부르는 노래 내용과 무척 비슷합니다. 또한 태어나서부터 버림을 받고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은 후 집과 국가, 세상을 구하는 구원자가 되는 것은 영웅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들과도 비슷하지요. 이러한 이야기 중에는 바리공주 말고도 여성의 수난과 성취를 담은, 한글로 쓴 고대 소설 숙향전이 있습니다. 아기의 출산 및 생장을 주관하는‘삼신할미’의 내력을 담고 있는 당금애기와 바리공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속 신화입니다. 바리공주는 병을 치료하는 능력도 있으며 나중에는 이승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오귀신’이 되는 까닭으로 무속인은 바리공주를 자신의 조상신으로 떠받든답니다. 차별 받는 여성에게 희망을 주는 수호신. 바리공주는‘버림받은 공주’라는 뜻이며, ‘바리데기’라는 말도‘버려진 아이’를 뜻합니다. 바리공주가 널리 퍼졌던 조선 시대는 남성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을 하찮게 여기고 남성을 우대하는 차별이 심했습니다. 남성이 세상의 중심이었고, 여성은 아버지, 남편, 아들의 뜻에 따라야만 하는 아주 힘없는 사람이었지요. 바리공주는 이러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뜻을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친아버지에게 버려졌던 바리공주가 자라서 도리어 자기를 버렸던 병든 아버지의 생명을 구합니다. 이렇듯 뛰어난 능력과 굳센 마음가짐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당당하게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바리공주의 모습은 차별 받고 있던 여성들에게 용기와 자극을 주었습니다.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과 마음씨를 지닌 여성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중국의 목란, 프랑스의 잔 다르크 등은 실제 살았던 인물의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가 뒤섞여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모두 여성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서 차별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바리공주도 이런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차별 받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
홍길동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조선 시대에 성이 홍씨인 판서가 살았습니다. 홍 판서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인 홍인형은 본부인 유 씨가 낳은 아들이었고, 둘째인 홍길동은 여종인 춘섬이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본부인이 낳은 자식을 적자라 하고, 그렇지 않은 자식을 서자라고 하여 차별했습니다. 서자는 양반이기는 하지만 과거를 치러 관직에 오를 수도 없었고 가족에게도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홍길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길동은 홍 판서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한편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홍길동을 무척 미워했습니다. 기생 출신인 초란은 욕심도 많고 성격이 못된 데다가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해 만약 아들을 낳더라도 영리하고 씩씩한 홍길동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초란은 특재라는 자객을 불러 부탁했습니다. “홍길동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주게.” 초란의 부탁을 받은 특재는 밤에 담을 넘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홍길동이 자고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기운이 셀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어릴 적부터 학문과 무술을 익힌 홍길동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고 둔갑술을 부려 몸을 감췄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특재는 분명 홍길동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건만, 그곳은 방이 아니라 한발만 잘못 디뎌도 밑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파른 낭떠러지였습니다. 깜짝 놀란 특재가 달아나려 하자 어디선가 홍길동이 나타나 앞을 막고 섰습니다. “남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홍길동은 특재가 들고 있던 칼을 빼앗아 번개같이 특재를 찔렀습니다. 특재를 물리친 홍길동은 짐을 꾸려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나 학문과 무술을 익혔지만 뜻을 펼 수가 없으니 답답합니다. 이제라도 집을 떠나겠습니다.” “얘야! 네가 힘들어하는 것은 알고 있다만 그렇다고 집을 떠나서 어찌 살려고 하느냐?” “걱정 마십시오. 저도 이젠 다 컸습니다. 산으로 들어가 도술을 익혀 세상에 이름을 떨친 다음 반드시 어머님을 모시러 오겠습니다.”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홍길동은 홍 판서의 방으로 갔습니다. “밤이 늦었는데 웬일이냐?” 홍길동이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자 홍 판서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초란이 그런 못된 짓을 하다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집을 떠나겠다고. 네 뜻이 정히 그렇다면 막지 않으마. 뭐 도와줄 것은 없느냐?” 홍 판서의 말에 홍길동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하늘이 세상을 만들 때 사람을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귀한 대우를 받지만 오직 저만은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당당한 대감의 아들이온데 여태까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 하고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디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홍길동의 이야기를 들은 홍 판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알겠다. 이제부터는 아버지라 부르거라.” “아버지!” 서로를 껴안는 홍 판서와 홍길동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집을 나선 홍길동은 정처 없이 걷다가 어느덧 깊은 산길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꼼짝 마라! 몸에 지닌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몇몇 사내가 길을 막으며 소리쳤습니다. 인상이 험상궂고 거칠어 보이는 것이 산적인 듯싶었습니다. 홍길동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고만 있었습니다. 화가 난 산적들이 덤 벼들었지만 홍길동을 당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홍길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을 걷어차더니, 다른 산적에게는 무쇠 같은 주먹을 날렸습니다. 산적들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당신같이 날랜 이는 처음 보오. 대체 누구시오?” 산적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한양 사는 홍 판서의 서자로 잘못된 세상이 싫어 집을 나와 정처없이 걷다보니 이곳까지 이르게 된 것이오.” “무술이 아주 뛰어나신데, 부디 저희를 거둬 주십시오.” 산적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습니다. “산적 두목이라! 그래,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리하여 홍길동은 많은 산적들을 거느리며 산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하 하나가 홍길동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두령님, 산 아래에 큰 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의 중들이 욕심이 많아 곳간에 쌀을 가득히 쌓아 두고는 가난한 백성들을 조금도 돌보지 않는답니다. 절의 재물을 빼앗을 방법이 없겠습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할 중들이 제 욕심만 챙기다니. 알겠다. 내 당장 그곳으로 떠날 터이니 나귀를 준비하고 몇 명을 하인으로 변장시키도록 하라.” 양반집 도령처럼 꾸민 홍길동은 나귀를 타고 부하들과 함께 절로 향했습니다. “나는 한양 홍 판서의 아들인데 얼마 동안 절에 머물면서 글공부를 하려 하오. 머무는 인사로 쌀 스무 섬을 드리겠소.” 중들은 쌀 스무 섬이라는 말에 기뻐하며 연신 허리를 굽혀 홍길동 일행을 맞았습니다. 곧 하인으로 변장한 산적들이 쌀가마를 지고 들어왔고, 중들은 밥을 지어 홍길동 일행에게 대접했습니다. 한참 밥을 먹던 홍길동은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몰래 밥에 넣고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씹었습니다. “이놈들! 감히 밥에 돌을 넣어? 분명 나를 업신여겨 한 짓이렷다.” 홍길동이 벌컥 화를 내며 소리치자 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괘씸한 놈들 같으니. 얘들아, 이놈들을 꽁꽁 묶어라.” 홍길동의 명령에 부하들은 중들에게 달려들어 꼼짝 못 하도록 나무에 묶었습니다. “도, 도련님! 저, 저희가 잘못했으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중들은 꽁꽁 묶인 채로 빌었습니다. “알겠다. 너희 잘못이 아니지. 내가 일부러 밥에 돌을 넣은 것이니까. 아마도 너희가 섬기는 부처님께서 용서를 해 주실 거다.” 말을 마친 홍길동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성공했다는 신호였지요. 절 바깥에 숨어 있던 산적들이 달려 들어와 곳간에 가득한 쌀을 지고 달아났습니다. 홍길동 일행에게 속아 곳간 한가득 모아 두었던 쌀을 도둑맞은 중들은 간신히 결박을 풀고 관가로 가서 하소연했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산적들이 양반집 도령 행세를 하며 절에 들어와서는 우리를 묶어 놓고 쌀을 모두 훔쳐 달아났습니다.” “무엇이라고? 여봐라, 어서 산적들을 잡아 오너라.” 사또의 호령에 포졸들은 서둘러 무기를 들고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중들이 관가로 가서 알릴 것임을 미리 알고 있던 홍길동은 중으로 변장하고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적들이 저쪽 산으로 달아났습니다.” 홍길동이 가리킨 쪽은 전혀 엉뚱한 길이었지만, 포졸들은 중 차림을 한 홍길동의 말만 믿고 앞 다투어 산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산적은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고,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산적들은 잔치를 벌이며 홍길동의 재주를 칭찬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중놈들을 멋지게 속이셨군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이렇게 쌀을 많이 얻은 건 처음입니다.” “사나이가 그 정도 재주도 없으면 어찌 큰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오늘 중들을 보니 깨달은 것이 많다. 앞으로 우리를 활빈당이라고 하고, 나쁜 짓을 하여 모은 재물을 빼앗아 불쌍한 이들을 돕도록 하자. 그리고 이제 나를 당수라고 부르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활빈당 당수님!” 산적들은 기뻐하며 소리쳤습니다. 비록 도둑이지만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는 새로운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로 활빈당은 전국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주로 고리대금업으로 높은 이자를 받아 돈을 번 사람이나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 백성을 괴롭히는 고을의 수령들을 습격해서 빼앗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특히 함경 감사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말을 듣고는 관가를 습격해서 감사를 혼내 주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놓았습니다. 함경 감사는 그동안 백성들을 괴롭혀 부정한 재물을 모았기에, 재물을 빼앗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앞으로 어진 정치를 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한 변을 당할 것이다. 활빈당 당수 홍길동 함경 감사를 혼내 준 일로 홍길동은 더욱 유명해졌고, 관가에서는 홍길동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게 되었습니다. 나라에서는 특별히 힘이 세고 무술도 뛰어난 이흡이라는 장수에게 홍길동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흡은 변장을 하고 홍길동이 숨어 있다는 문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나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어디를 가는가?” “이곳에는 홍길동이라는 흉악한 도적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도적을 잡으러 가는 길이지요.” “홍길동은 힘도 세고 도술도 부린다던데, 네가 잡을 수 있겠느냐?” “제가 나이는 어려도 힘은 세지요.”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굵은 나무를 팔로 감싸 안았습니다. “으랏차!” 우렁찬 기합 소리를 내며 소년이 힘을 쓰자 굵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왔습니다. 소년의 엄청난 힘에 이흡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어때요? 홍길동이란 도적을 잡을 만한가요? 듣기에 홍길동은 한 번에 나무 두 그루를 뽑는다던데,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알겠죠?”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이흡을 보며 소년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쪽으로 갈 테니 선비께서는 저쪽 길로 가십시오.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소년은 바람처럼 산길을 뛰어올라갔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힘이 엄청나구나. 나도 힘이라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저 소년에 비하면 어림도 없으니. 더구나 홍길동은 저 소년보다도 힘이 셀 텐데 어떻게 잡아야 하나?’ 이흡이 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숲에서 십수 명의 사내들이 달려 나왔습니다. “네가 이흡이라는 장수렷다? 감히 우리 당수님을 잡으려 하다니, 어디 혼 좀 나 봐라.” 사내들은 이흡이 반항할 틈도 없이 달려들어 꽁꽁 묶어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하하하! 나를 잡으러 온 이흡이란 장수로구만.” 귀에 익은 목소리에 이흡이 얼굴을 들어 보니 조금 전 산길에서 만난 소년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 너는?” “그렇소. 내가 바로 홍길동이오. 어떻소? 이래도 나를 잡는다고 하겠소?” 홍길동의 말에 이흡은 다시 고개를 떨궜습니다. 홍길동의 엄청난 힘도 보았고, 자신은 꽁꽁 묶여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습니다. 물론 풀려 있다고 해도 자기는 홍길동 한 사람도 도저히 당해 낼 수 없다고 여긴 것이었습니다. “내 당신을 풀어 줄 테니 돌아가서 홍길동은 절대로 잡을 수 없다고 전하시오.”홍길동은 이흡을 풀어 주도록 명령했고, 결박이 풀린 이흡은 맥없이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흡을 풀어 준 홍길동은 부하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나라에서 파견한 장수까지 혼내 주었으니, 이제 관가에서는 나를 잡으려고 더욱 야단일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여 내 분신을 만들 생각이다.” “분신이라니요?” 부하의 물음에 홍길동은 빙긋 웃으며 짚을 엮어 사람 모양의 인형을 여럿 만들더니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짚 인형들이 모두 홍길동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짜까지 합쳐 모두 홍길동은 여덟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김새는 물론 말하는 것이며 행동까지 홍길동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부하들은 홍길동의 술법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여덟명의홍길동은 각기 부하를 이끌고 팔도 곳곳을 다니며 못된 관리를 혼내 주고, 빼앗은 재물로 백성을 도왔습니다. 활빈당의 이름이 높아지는 만큼 임금은 홍길동 때문에 골치가 아파 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똑같은 때에 홍길동에게 재물을 빼앗겼다는 보고가 올라오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한 대신이 임금께 아뢰었습니다. “홍길동은 판서를 지내다가 벼슬에서 물러난 홍 대감의 서자로, 현재 병조 좌랑인 홍인형의 동생이라고 합니다.” 임금은 즉시 홍 판서와 홍인형을 불러 사실을 묻고는 당장 홍길동을 잡아들이라고 명했습니다. 병조 좌랑이었던 홍인형은 경상 감사라는 벼슬을 받아 경상도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즉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붙여 사람들이 보도록 했습니다. 홍길동은 보아라. 사람의 도리란 임금께 충성하고 부모께 효도하는 것이다. 너는 도둑의 무리를 이끌고 나라를 어지럽혀 가족들을 욕되게 하고 있다. 하루빨리 관가로 형을 찾아와 그 동안 지은 죗값을 치르도록 하라. 경상 감사 홍인형. “당수님! 당수님을 찾는 글이 붙었습니다. 경상 감사이신 형님께서 쓴 글이라는데요?”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나는 이제 관가로 갈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라.” 홍길동은 부하들을 남겨 두고 홀로 관가로 갔습니다. “형님! 길동이가 이렇게 왔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형님을 형님이라 불렀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이제 나를 잡아 한양으로 보내시오.” 어려서부터 홍길동을 멀리하던 홍인형은 죄를 짓고도 당당한 홍길동의 모습을 보자 화가 났지만, 제 발로 찾아온 것이 고마워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러나 홍길동은 도둑의 두목이고 홍인형은 관리로서 도둑을 잡아야 하는 처지이기에 홍길동의 목에 칼을 씌워 한양으로 보냈습니다. 한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전국 팔도에서 모두 홍길동을 잡아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팔도에서 잡혀 온 여덟 명의 홍길동은 모두가 똑같이 생겨서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로 자기가 진짜 홍길동이라고 우기고 있었습니다. “내가 홍길동이야.” “아냐, 내가 진짜라니까.” “나 빼곤 모두가 가짜야.” 임금님은 결국 홍 판서를 불러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생겨서 저도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 홍길동은 왼쪽 다리에 큰 점이 있으니 그걸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홍 판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홍길동 여덟 명은 일제히 바지를 걷어 올려 왼쪽 다리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큰 점이 있었습니다. 이때 한 홍길동이 나서서 임금께 아뢰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형님이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저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제가 어찌 나라를 소란하게 만들겠습니까? 저는 서자가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억울함 때문에 집을 나와 도둑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번도 백성을 괴롭힌 적이 없고, 오히려 백성을 괴롭힌 못된 관리나 나쁜 양반들을 혼내 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선을 떠나고자 하니 상감께서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을 마친 홍길동은 하늘로 뛰어올라 구름을 타고 사라졌습니다. 나머지 홍길동들은 어느새 짚으로 만든 인형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대궐을 나온 홍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이끌고 바다 멀리 있는‘율도’라는 섬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 높은 덕으로 백성을 다스렸습 니다. 백성들 모두가 홍길동의 뜻에 따라 열심히 일하여,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자 율도국은 가난한 사람도 없고 도둑도 없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자 홍길동은 사람을 시켜 식구들을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서 지내던 홍 판서는 홍길동의 전갈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율도국을 찾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선각자. 허균1569~1618은 학문이 뛰어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허엽은 높은 벼슬을 지냈으며 둘째 형 허봉도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특히 누이인 허초희는‘난설헌’이라는 호로 알려진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기도 합니다. 허균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얼 제도라는 것이 있었는 데, 정실이 아닌 첩이 낳은 자식들은 ‘서얼’이라고 하여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재주가 빼어나도 과거를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아 벼슬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의감이 강했던 허균은 이러한 신분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쓴 소설이 바로 홍길동전입니다. 홍길동전을 읽은 당시 서얼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 고 양반들은 그것이 홍길동전 때문이라며 허균을 비난했지요. 그래서 허균은 세 번이나 관직에서 물러났고 결국에는 반란죄를 뒤집어 써 사형을 당했습니다. 허균은 소설 이외에 시와 비평에도 솜씨가 좋아 국조시산 등의 시집을 펴냈고 성수시화 등의 비평서도 지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꿈꾸다. 조선 중기에 발표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당시 신분을 차별하는 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정치를 열자는 주제로 쓰였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신분의 차별 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세우려는 주인공 홍길동을 통해 그려집니다. 홍길동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이상 국가를 만드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 대표적이지요. 이렇듯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는 사회 소설의 성격은 허균이 지은 다른 작품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홍길동은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약한 백성을 괴롭히는 탐욕스럽고 못된 벼슬아치를 혼내 줍니다. 때문에 고전에 나오는 대표적인 영웅으로도 유명하며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홍길동전은 ‘영웅 소설’로 도 불립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사시나 전기 소설이 대다수였던 이전의 문학 흐름을 홍길동전이 영웅의 일생 묘사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
옹고집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옛날 옹진골 옹당촌에 성은 옹이요, 이름은 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에게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옹고집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았으며 곳 간에는 언제나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었지만, 옹고집의 표정은 언제나 어두웠습니다. 옹고집은 고집이 센 데다가 무척 심술궂었고 지독한 노랑이였습니다. 하인들이 게으름을 피우지나 않을까, 도둑이 들지나 않을까 항상 조바심을 내고 끊임없이 걱정을 하니 얼굴이 환할리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안을 한 바퀴 돌며 하인들은 물론 부인과 아들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지 둘러본 후 옹고집은 어머니께로 갔습니다. 자신을 낳고 키워 준 어머니였지만, 옹고집은 어머니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서 일을 못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일어나셔서 물레도 돌리고 농사일도 도우셔야죠.” “이 녀석! 내가 너를 키울 때 하늘같이 어질고 땅처럼 넓은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 늙은 어미한테 일하러 나가라니.” “이 집에서 일도 하지 않고 밥 먹는 사람은 어머니뿐이거든요. 하인들이 어머니를 따라 할지도 모르니, 제발 밥 좀 적게 드세요.” “이런 천하에 못된 놈! 이젠 밥을 많이 먹으려 해도 이가 없어서 힘들다.” 딱딱 또르륵! 대문 앞에서 목탁 치는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옹고집은 누구보다도 스님을 미워했습니다. 옹고집이 보기에 스님은 하는 일도 없이 염불만 외우며 이 집 저 집으로 동냥이나 하러 다녔으니까요. “대체 어느 놈이 이른 아침부터 동냥질을 하느냐?” 옹고집은 대문 앞에 서 있는 어린 스님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동냥이 아니라 시주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이, 이놈이 말대꾸는!” 옹고집은 곁에 있던 빗자루를 들어 어린 스님을 때리려 했습니다. 놀란 스님은 도망치고 말았지요. 며칠이 지났습니다. 늘 그렇듯이 옹고집이 일찍 일어나 집 안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간에서 또 목탁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아니! 빡빡이가 또 동냥하러 왔나? 좋다, 내 오늘은 단단히 버릇을 고쳐 주마.” 옹고집이 몽둥이를 움켜쥐고 대문으로 가 보니, 하얀 수염을 기른 나이 든 스님이 염불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관세음보살! 월출봉 취암사에서 왔습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시주 많이 하시 옵소서.” “시주?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혼나기 전에 썩 꺼지시오!” 옹고집이 몽둥이를 흔들어 보이자 스님은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어허! 자네 아버님은 살아 계실 때 절에 시주도 많이 하셨다네. 마을에 다리도 놓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부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지.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흥, 부자가 된 것은 모두 내가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이지, 무슨 부처님 덕이오?” 옹고집은 이렇게 말하며 손에 든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스님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몽둥이에 맞았습니다. 스님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한숨을 지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도다. 자신이 얼마나 큰 벌을 받을지도 모르고 있다니.” 스님은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목탁을 두드리며 돌아갔습니다. 절로 돌아간 스님은 심부름하는 행자를 불러 말했습니다. “가서 짚 한 단만 가져오너라.” 행자가 짚을 가져오자 스님은 그것을 엮어 사람 크기만 한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절에서도 가장 덕이 높은 스님이 짚으로 인형을 만들자 다른 스님과 행자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인형을 다 만든 스님은 품에서 부적을 꺼내 인형에게 붙이고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옴마니반메훔!”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푸라기 인형이 벌떡 일어선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인형이 옹고집으로 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스님을 내쫓고 노스님께 몽둥이를 휘두른 옹고집과 얼굴도 똑같고 말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똑같았습니다. “자, 내려가거라.” 스님의 말에 따라 옹고집으로 변한 지푸라기 인형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날 옹고집은 하인과 함께 이웃 마을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까지 마당도 쓸어 놓지 않고 뭣하는 거냐?”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옹고집은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사랑방에서 옹고집이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시끄럽게 떠드느냐?” 하인들은 너무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마당에 있는 사람도 주인이요, 사랑방에서 나온 사람도 주인이었으니 말입니다. “아, 아니 저게 누구야? 바로 나 아닌가?” “어어, 내가 저기 있네?” 소란스런 소리에 식구들은 물론 뒷마당에서 일하던 하인들과 부엌에 있던 하녀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어마나, 세상에 이럴 수가!” “대체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네.” 정말 두 사람은 그야말로 판에 박은 듯 똑같아서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놈, 어디 남의 집에 와서 주인 행세를 하느냐?” “뭐라고? 저것이 어디서 큰소리야? 내가 주인이다.” “얘들아! 당장 저 녀석을 집에서 쫓아내라.” “내가 할 말을 대신하고 있네. 저놈을 쫓아내라.” 두 옹고집은 서로 상대를 가리키며 쫓아내라고 소리쳤습니다. 갑작스런 소동에 누워 계신 어머니도 일어났고, 밖에 나가 있던 아들 복동이까지 들어와 살펴보았지만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진짜인지 가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어머니가 낳은 자식을 몰라보신단 말씀이십니까? 저놈이 가짜입니다.” “얘, 복동아. 내가 틀림없는 네 아버지다. 당장 저 가짜를 쫓아내라.” 두 옹고집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점점 구분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때 옹고집의 아내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예전에 불똥이 튀어 안에 구멍이 나 있을 것이니 살펴보면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하인들이 이 말을 듣고 살펴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의 옷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구멍이 똑같이 나서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하인들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내 아들 복동이는 엉덩이에 콩알만 한 점이 있지. 가짜인 너는 모를걸.” 진짜 옹고집이 자신 있다는 듯 말하자 가짜 옹고집도 질세라 말을 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콩알 만했지만 크면서 점점 작아졌지.” “두 분 말씀 다 맞는데요.” 옹고집의 아들 복동이가 답했습니다. “하는 수 없군요. 관가로 가서 사또께 묻는 수밖에.” “맞아. 그게 좋겠군.” 복동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사또에게 가서 판결을 받기로 했습니다. “사또 어른께서는 틀림없이 네가 가짜임을 아실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 내가 진짜임을 밝혀 주실 거야.” 두 옹고집은 관가로 가면서도 옥신각신 다투기를 계속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사또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똑같이 생긴 옹고집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진짜라며 다투고 있습니다.” 이방의 말을 들은 사또가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진짜입니다. 부디 저 가짜를 혼내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제가 진짜이고 저놈이 가짜입니다.” 두 옹고집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김새만으로는 도저히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또는 두 옹고집에 게 조상과 가족, 재산 등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짜는 모르는 것이 많으리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두 옹고집은 어떤 질문에나 막힘없이 척척 대답했습니다. “자아골에 있을 때부터 저희 아버지께서는 좌수이셨고 덕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일곱 살이며, 아내는 전주 최씨이고, 복동이라는 아들을 두었습니다. 재산은 쌀과 잡곡을 합쳐서 이천 석, 말은 여섯 필, 돼지 스물두 마리, 닭은 예순 마리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자아골에서 어른으로 기리는 옹 좌수이셨고 백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으셨지요. 저는 올해 서른일곱 살이 되었으며, 전주 최씨인 아내와 혼인하여 복동이란 아들을 두었습니다. 재산도 넉넉한 편으로, 쌀과 잡곡을 합쳐 이천 석, 말은 여섯 필, 돼지가 스물두 마리, 닭은 예순한 마리입니다.” 두 옹고집의 말은 거의 같았지만 단 한 가지만 달랐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 수를 대는데, 진짜는 닭이 예순 마리라고 했고 가짜는 예순한 마리라고 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투며 관가로 오는 도중에 병아리 한 마리가 태어난 것을 가짜는 도술의 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집에 가서 확인해 보니 닭과 병아리가 모두 예순한 마리였습니다.” 포졸의 보고를 받은 사또는 진짜 옹고집을 가리키며 호령했습니다. “이놈, 네가 가짜로구나. 옹고집은 재산 관리에 철저하여 자신의 가축 수를 날마다 세어 알고 있거늘 한 마리가 틀리다니, 네놈이 가짜임에 틀림없다. 여봐라! 저놈을 매우 쳐라.” 사또의 명령에 따라 포졸들은 진짜 옹고집을 형틀에 묶고는 볼기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철썩 퍽! “아이고! 사또 나리, 제가 진짜입니다.” “저놈이 아직도 거짓말을. 여봐라! 더욱 세게 쳐라.”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진짜이고 저놈이 가짜입니다.” “저놈의 입에서 자기가 가짜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매를 멈추지 마라!” 철썩 퍽! 퍽! 결국 진짜 옹고집은 볼기만 실컷 맞고 동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가짜 옹고집은 그날부터 주인 노릇을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했고, 곳간을 열어 곡식을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주인어른이 가짜 소동을 겪고 나서 사람이 달라지신 것 같아.” “아무렴.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시기도 하고, 정말 훌륭하게 변하셨어.” 모두가 변한 옹고집을 보며 칭찬했습니다. 물론 누구도 옹고집을 가짜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지요. 한 편 쫓겨난 진짜 옹고집은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배가 고픈 옹고집은 눈에 띄는 집 대문을 두드리며 밥을 달라고 사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호통뿐이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상대해 주는 이가 없자 옹고집은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지친 다리를 쉬고 있자니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풍겨 왔습니다. 옹고집은 자신도 모르게 향기를 따라 발을 옮겼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옹고집은 계속 향기를 따라갔습니다. 이상하게 배도 고프지 않았고 몸이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가끔씩 시냇물을 마시거나 열매 한두 개를 따 먹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드디어 옹고집은 계곡 사이에 핀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꽃 가까이 다가간 옹고집은 깜짝 놀랐습니다. 스님 한 분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얼마 전 옹고집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은 월출봉 취암사의 스님이었습니다. 그제야 옹고집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스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네가 나를 업신여긴 것은 부처님을 욕되게 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혼을 낸 것이다. 이제 네 죄를 알겠느냐?” “예, 알다마다요. 앞으로는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좋다. 네가 죄를 뉘우치고 착하게 살겠다고 하니 이번만은 용서해 주마. 이 부적을 가지고 가서 집 기둥에 붙여라.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니라. 스님은 품에서 노란 종이에 쓴 부적을 한 장 꺼내 주며 말했습니다. “예, 예!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옹고집은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산에서 며칠을 지냈기에 얼굴에는 때가 끼었고 옷은 이곳저곳 찢어져 꼴이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옹고집을 발견한 가짜 옹고집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가짜가 또 나타났구나. 얘들아, 저놈을 당장 쫓아내라.” 그러나 가짜 옹고집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진짜 옹고집은 스님이 준 부적을 꺼내 기둥에 붙였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사랑방에서 큰소리를 치던 가짜 옹고집은 본래의 모습인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해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광경에 또다시 말을 잊었습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허수아비를 지아비로, 아버지로, 또 주인으로 알고 지내도록 한 것은 전부 내 탓이오. 내가 그동안 잘못을 많이 저질러서 부처님께 벌을 받은 것이야. 이제 나는 내 죄를 깨닫고 앞으로는 새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많이 도와주오.” 옹고집의 말을 듣고서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옹고집은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앞장서서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딱딱 또르륵! 어느 날 옹고집의 집에 스님이 목탁 소리를 내며 나타났습니다. “아니, 스님이 오셨군요. 얘들아, 뭣 하느냐? 빨리 곳간에 가서 쌀을 몇 섬 내와서 수레에 싣도록 해라. 시주는 넉넉히 해야 하는 법이다.” 옹고집은 이렇게 말하며 스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두 손을 모아 답하는 스님의 입가에는 환한 웃음이 걸려 있었습니다. 불교 설화와 사상을 바탕으로 한 풍자 소설. 옹고집전은 우리의 고전 소설을 통틀어 무엇인가에 빗대어 재치 있게 비판하는‘풍자’가 강한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받습니다. 배꼽을 잡고 한 바탕 웃을 수 있는‘해학’이 넘치는 것도 큰 특색이지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특성상 작자와 창작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책으로 정리된 시기를 조선 시대의 영조나 정조 무렵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한글로 쓰여진 것은 옹고집전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입니다. ‘옹고집 타령’이라 해서 판소리로도 불려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한편 조선 시대에 글로 정리된 설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옹고집전 또한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구도를 보여 줍니다. 이런 구도는 춘향전, 흥부전 등에도 과정만 달리해 고스란히 나타나지요. 특히 불교의 설화인 장자못 설화가 기원이 되고 있는 점은 눈에 띕니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살아가는, 어찌 보면 개성이 뚜렷한 인물 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어찌 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니, 자기만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옹고집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진짜와 가짜, 참과 거짓을 분별해 내는 능력에 대한 의심입니다. 물론 옹고집이라는 인물이 보여 주는 부정적인 삶의 태도가 인과응보라는 소설의 주된 구도를 만들고 있지요. 하지만 이야기 안에는 조선 시대 후기 평민들의 삶에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 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당시의 혼란스런 가치관이 스며 있습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사회의 질서는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옹고집전은 올바른 질서가 없이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조선 시대 사회 모습을 은근히 빗댄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
박씨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조선 인조 때 이득춘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이득춘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경상 감사와 함경 감사, 좌의정을 지내고 이제는 벼슬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득춘은 바둑을 잘 두어 적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피리도 아주 잘 불었습니다. 어느 날 이득춘이 집에 홀로 있는데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행색은 초라했지만 눈에서 빛이 나는 것이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습니다. “저는 금강산에 사는 박 처사입니다. 듣자 하니 상공께서는 바둑과 피리에 있어서 세상에 당할 사람이 없으시다 하던데요?” 이득춘은 박 처사와 바둑을 두었으나 박 처사를 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득춘이 부는 피리 소리도 아름다웠지만, 박 처사가 부는 피리 소리에 새는 날기를 멈추고 꽃은 춤을 추는 듯했지요. 그런데 댁에 아드님이 있다 들었는데 잠깐 만나 볼 수 있겠는지요?” 박 처사의 말에 이득춘은 아들 시백을 불렀습니다. 박 처사는 시백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말했습니다. “제가 도술을 조금 익혀 미래를 볼 줄 압니다. 아드님은 장차 재상이 될 인물입니다.” “어허, 그렇습니까? 그렇게 되어 가문을 빛낸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제가 상공을 찾아뵌 것은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실은 제게 나이가 찬 딸이 있는데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본을 다 가르쳤으니 상공의 가문에 든다고 해도 크게 해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상공의 아드님과 혼인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정말인가요? 처사의 능력이 이렇듯 대단한데 따님이 어찌 평범하겠습니까? 저로서는 더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면 보름날쯤 상공께서 직접 아드님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오십시오.” 박 처사가 떠난 뒤 이득춘은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낮에 만난 박 처사의 딸과 너를 혼인시키기로 했으니 그리 알고 있어라.” “혼인은 지극히 중대한 일인데 어찌 재상의 집안에서 산에 사는 이름 모를 사람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득춘의 부인이 말했습니다. “아니오. 박 처사는 신선이라 할 정도로 도가 깊은 인물이었소. 그 딸 또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아 절대 평범하지 않을 듯하니 염려 놓으시구려.” 박 처사와 약속한 날이 가까워 오자 이득춘은 아들 시백과 하인 몇을 데리고 길을 떠나 여러 날 만에 금강산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깊은 산중에서 길을 찾지 못해 고생을 하다가 결국 산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람의 말을 듣고 낭패를 보는 것 아니옵니까?” 시백의 말에 이득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다. 내일이 약속한 날이니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꾸나.” 이튿날 아침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박 처사가 나타났습니다. “제 부족함으로 산중에서 밤을 지새우시게 했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무슨 말씀을, 저희가 길을 잘못 들어 괜한 고생을 한 것이지요.” “제가 앞장설 테니 천천히 따라오십시오.” 이득춘 일행이 박 처사의 뒤를 따라 산에 오른 지 한참이 지나자, 절벽이 좌우로 병풍처럼 늘어선 아늑한 골짜기 가운데 작은 초가집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제가 사는 집입니다. 누추하지만 안으로 드시지요. 그리고 날이 저물기 전에 혼인식을 치러야겠습니다.” 박 처사의 재촉으로 두 집안은 간소한 혼인식을 치렀습니다. 혼인식을 마치자 박 처사가 이득춘에게 당부했습니다. “먼 길을 오셨으니 아예 제 딸을 데리고 가옵소서. 다만 얼굴을 가린 비단은 댁으로 돌아가셔서 풀도록 하십시오.” 이에 이득춘은 박 처사와 아쉽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부를 데리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득춘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신부의 얼굴을 가린 비단을 풀도록 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식구들은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신부는 얼굴이 심하게 얽은 데다가 눈의 초점도 맞지 않았고, 코는 납작하며 입은 커다란 것이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신랑인 시백을 비롯해 식구들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으나 이득춘은 이렇게 달랬습니다. “양귀비는 미인이었으나 나라를 망쳤고, 제갈량의 처는 못생겼지만 어진 성품과 뛰어난 학식으로 남편을 도와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박처사처럼 훌륭한 분이 딸의 얼굴이 흉함에도 구태여 나를 찾아와 혼인을 청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인연이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도록 해라.” “대감의 말씀이 틀리지는 않으나, 혼인을 한 시백이 색시를 멀리하지는 않을까 걱정이군요.” 부인이 아들 시백의 못마땅해하는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득춘의 부인이 염려한 대로 신랑인 시백은 부인을 멀리했습니다. 이미 혼인식을 치른 몸이었지만, 부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았습니다. 보다 못한 이득춘이 억지로 아들을 색시와 함께 있게 했지만, 시백은 첫닭이 울기도 전 아직 별이 있을 때 방을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박씨 부인은 시아버지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인물이 추하여 지아비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자칫 저 때문에 집안의 화목이 깨어질까 두렵습니다. 뒤뜰에 방을 지어 따로 지내게 해 주십시오.” 이에 이득춘은 시백을 불러 크게 꾸짖었습니다. “사내대장부가 효도를 모르고 어찌 충성을 알겠느냐? 네가 며늘아기를 멀리하는 것은 곧 부모를 무시하고 불효하는 것이요, 나아가 나라에 충성할 근본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내 지금은 며늘아기가 바라는 대로 해 주겠다만 앞으로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부부간에 가까이 지내도록 해라.” 시백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고, 이득춘은 며느리의 말대로 뒤뜰에 작은 집을 지어 주고는 계화라는 몸종이 시중을 들도록 했습니다. 얼마 뒤에 임금이 이득춘에게 우의정 벼슬을 내리고 다시 나랏일을 돌보도록 했습니다. “내일 궁에 드니 새 관복을 입어야겠소.” 이득춘의 말에 부인이 바느질 잘하는 사람을 부르려 하자 박씨 부인이 말했습니다. “아버님 옷은 제가 짓겠습니다. 옷감만 마련해 주십시오.” 사람들은 비싼 옷감을 망칠 것이 염려되어 말렸지만, 이득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본래 진짜 소중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며늘아기의 용모가 곱지 않다고 바느질 솜씨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이튿날 아침 박씨 부인은 밤새 지은 관복을 이득춘에게 주었습니다. 앞뒤로 구름 위를 나는 학을 수놓은 관복은 마치 바느질 잘하는 직녀가 지은 듯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났고 이득춘의 몸에도 꼭 맞았습니다. 이득춘은 기뻐하며 관복을 입고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의 옷은 누가 지었느뇨?” 임금이 이득춘에게 물었습니다. “신의 며느리가 지었나이다.” “경의 며느리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지은 관복을 보니 정말 빼어난 재주를 지녔음을 알겠소. 도무지 인간의 솜씨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느질이 곱구려. 수놓은 학과 봉황이 살아 있는 듯하오. 그런데 경은 어찌하여 그렇게 재주가 뛰어난 며느리를 홀로 지내게 하는고?” “황공하오나, 전하께서 어찌 그 일을 아시나이까?” “수는 빼어나기 그지없지만, 수놓인 봉황은 푸른 바다를 건너느라 배를 주리고 있으며 짝을 잃고 우는 듯하여 짐작하였소.” “모두가 신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이득춘이 박 처사를 만난 일, 아들을 혼인시킨 일을 모두 이야기하자 임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의 며느리는 비록 용모가 흉하다 하나 빼어난 인물임이 분명하오. 내 어여삐 여겨 날 마다 쌀을 서 말씩 내리리다.” 어느 날 박씨 부인은 몸종 계화를 시켜 이득춘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내일 종로에 나가면 제주에서 온 말이 있을 것이옵니다. 하인을 보내시어 가장 마르고 볼품없는 망아지를 삼백 냥을 주고 사 오도록 하십시오.” 이득춘은 이미 며느리가 뛰어난 인물임을 알기에 하인을 불러 그대로 시켰습니다. 다음날 아침 하인이 종로에 나가보니 과연 많은 제주 말 가운데 마르고 볼품없는 망아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인은 장사꾼과 흥정하여 말 값으로 백 냥만 치르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긴 뒤 말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물건이란 그것에 맞는 값을 주고 사야 하는 법이니, 가서 나머지 이백 냥을 마저 주고 오시오.” 박씨 부인은 집 안에서도 하인이 한 일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하인은 말을 판 장사꾼에게 다시 가서 이백 냥을 마저 주고 왔습니다. 그날부터 박씨 부인은 망아지에게 쌀과 참깨를 섞은 여물을 주며 정성껏 길렀습니다. 삼 년이 흐르자 볼품없던 망아지는 천하에 둘도 없는 훌륭한 말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박씨 부인이 이득춘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후면 중국에서 사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이 말을 보이시면 당장 사려고 할 것입니다. 값은 삼만 냥을 부르소서.” “삼백 냥을 주고 산 말을 삼만 냥이나 받으라니,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이 말은 보통 말이 아니오라 한 번에 천 리를 가는 천리마입니다. 너무 빨라서 불과 수천 리인 조선에서는 쓸모가 없고 드넓은 중국에서나 필요하지요. 삼만 냥은 많은 것이 아닙니다.” 박씨 부인의 말대로 며칠 후 중국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이득춘이 사신에게 말을 보여 주니 천하에 둘도 없는 명마라면서 자기에게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본디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골라 정성스레 키운 것이오. 며느리는 꼭 삼만 냥을 받으라고 하는데 좀 많은 것 같아서...” 이득춘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사신은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천하에 다시없는 명마를 사는데 어찌 삼만 냥을 아끼겠습니까? 오만 냥, 아니 십만 냥도 아깝지 않소이다.” 말 값으로 삼만 냥을 받은 이득춘은 다시 한번 며느리의 신통함에 놀라지 않 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득춘이 뒤뜰에 가 보니 박씨 부인이 하인들을 시켜 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심는 위치가 이상했습니다. 어떤 나무는 동쪽에, 또 어떤 나무는 서쪽에, 이렇게 동서남북 방위를 맞춰 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이득춘이 묻자 박씨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장차 있을 난에 대비한 것입니다. 때가 오면 자연히 아시게 될 테니 너무 자세히 묻지 마십시오. 모두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득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너는 내 며느리가 되기 아까운 인물이로구나.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고 일어서면 삼천 리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뛰어난 인물을 데려다가 고생만 시키는 듯하여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 마옵소서. 제 용모가 흉하여 가문에 먹칠을 하는데도 아버님께서 감싸 주시니 그 은혜를 어찌 갚으리까? 제 작은 재주로 온 가족이 해를 입지 않으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사옵니다.” 나무를 다 심은 박씨 부인은 자기가 사는 별당을 '화를 피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피화당이라 이름 짓고 변함없이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박씨 부인의 남편 시백이 과거를 치르는 날이었습니다. 박씨 부인은 몸종 계화를 시켜 남편에게 벼루를 전했습니다. “아씨께서 전하는 것이옵니다. 이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쓰시면 분명 장원 급제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박씨 부인이 준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쓴 시백은 장원 급제를 했고, 이득춘의 집 에서는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음식을 내오고 술을 따르며 모두가 모여 흥겨운 잔치를 벌이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날아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돈어른!” 하늘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이득춘이 고개를 들어 보니 박 처사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놀라운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니! 갑자기 웬일이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놈이 급제하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려는 참이었습니다.” “괜한 수고를 하실 것 같아 제가 직접 왔습니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박 처사는 떠나기 전에 딸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 고생은 끝났다. 이제 허물을 벗도록 해라.” 박 처사의 말이 끝나자 박씨 부인은 아주 어여쁜 여인으로 변했습니다. 발밑에는 여태 쓰고 있던 흉한 모습의 허물이 벗겨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연이어 벌어진 신기한 일에 놀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이 남편 시백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지요. 그해 가을 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진 오랑캐가 조선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병조 판서가 된 시백은 임경업 장군과 함께 뛰어난 병법으로 오랑캐를 물리쳤습니다.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자 오랑캐 왕은 점술사에게 물었습니다. “아무리 전쟁을 해도 조선을 이기지 못하니 이유가 무엇이냐?” “별을 보니 조선에는 뛰어난 도술을 부리는 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먼저 없애야 조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에 오랑캐 왕은 훌륭한 무술을 익힌 여인 기홍대에게 조선의 뛰어난 인물을 찾아 없애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기홍대는 몰래 한양으로 들어와 밤마다 별을 살핀 결과, 조선의 뛰어난 인물이 박씨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한편 박씨 부인은 하늘을 살펴보더니 시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연회에 가시면 아름다운 기생이 있을 것입니다. 용모가 빼어나고 재주 또한 뛰어나지만 가까이 하시면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그 기생을 제가 있는 피화당으로 보내십시오.” 그러고 나서 박씨 부인은 몸종 계화를 불러 다음과 같이 일렀습니다. “오늘 밤 나를 찾는 손님이 있을 것이니 음식과 술을 준비해 두어라. 그리고 손님에게는 독한 술을 권하고 내게는 약한 술을 권하도록 해라.” 박씨 부인의 말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습니다. 시백이 연회에 참석해 살펴보니 눈에 띄게 아름다운 기생이 있었고, 그 기생은 은근히 시백과 가까이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기생은 바로 오랑캐 왕의 명령을 받고 박씨 부인을 죽이러 온 기홍대가 변장한 것이었습니다. 시백은 그 기생에게 저녁에 자기 집으로 오도록 당부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기홍대가 찾아오자 시백은 하인을 시켜 부인이 머무는 피화당으로 보냈습니다. “주인께서 곧 나오실 것이니 잠시 동안 기다리시며 술과 음식을 드시지요.” 박씨 부인은 기홍대에게 음식과 술을 대접했습니다. 몸종 계화는 미리 일러 준 대로 박씨 부인에게는 약한 술을, 기홍대에게는 독한 술을 권했습니다. 술을 똑같이 마셨지만 독한 술을 마신 기홍대는 몹시 취했습니다. 기홍대가 술에 취해 잠이 들자 박씨 부인은 기홍대의 품에서 날이 새파랗게 선 비수를 찾아냈습니다. “기홍대야, 잠에서 깨어 나를 보라!” 고함 소리에 기홍대가 놀라 눈을 떠 보니 박씨 부인이 칼을 들고 있는데 감히 덤벼들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빌었습니다. “부인께서 이미 제 정체를 아시고도 살려 주시니 은혜가 태산 같습니다.” 믿었던 기홍대마저 실패하고 돌아오자 오랑캐 왕은 용골대와 용울대라는 형제 장수를 보내 조선을 치도록 했습니다. 박씨 부인은 미리 이 사실을 알고 이득춘과 시백에게 임경업을 선두에 내세우도록 했으나, 간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오랑캐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까지 쳐들어왔고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임금까지 피난을 가는 위급한 지경임에도 박씨 부인은 가족 모두를 피화당이 있는 뒤뜰에 모이도록 하고 말했습니다. “이곳은 오랑캐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할 테니 모두 안심하십시오.” 이때 용울대가 군사를 이끌고 이득춘의 집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이었습니다. 용울대가 크게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들어올 때는 그냥 평평한 길이었던 곳에 칼같이 날카로운 바위가 가득하고 양쪽은 천 길 낭떠러지여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용울대와 오랑캐 군사들은 모두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아우 용울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용골대는 더 많은 군사를 이끌고 이득춘의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대체 누가 내 아우를 해쳤느냐? 원수를 갚으리라.” 칼을 빼어 들고 뛰어들려는 용골대를 부하가 말렸습니다. “장군! 참으십시오. 저 나무 심은 모양을 보니 옛날 제갈공명의 팔진도와 같습니다.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나무를 모두 베어 버려라.” 용골대의 명령에 군사들이 막 나무를 베려고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치더니 어디선가 금빛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오랑캐들이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박씨 부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용골대야, 네 아우가 내 손에 죽었거늘 너조차 죽기를 재촉하느냐? 하늘의 군사가 나를 도우니 목숨이 아깝거든 빨리 너희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미 하늘의 군사들을 보고 사기가 꺾인 오랑캐 군사들은 박씨 부인의 호통을 듣자 앞을 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용골대가 용감하다고 해도 부하들이 도망치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그러면 아우의 시체라도 가져가도록 해 주시오.” 용골대는 머리를 숙여 애원했습니다. “안 된다. 조선을 침략하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로 이 땅에 남겨 두어야 한다.” 박씨 부인은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용골대는 하는 수 없이 말 머리를 돌려 조선에서 물러갔고, 박씨 부인은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큰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시백은 우의정에 올라 나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 후로 박씨 부인은 자녀 열하나를 낳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지은이와 창작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박씨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담 소설입니다. ‘군담 소설’이란 전쟁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가 되는 소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군담 소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발생하여 조선시대 후기까지 유행했습니다. 대표적인 군담 소설로는 '임경업전', '조웅전', '옥루몽', '금령전', '현수문전', '소대성전', '장경전', '조웅전', '유충렬전', '양풍운전', '장풍운전', '박씨전' 등이 있습니다. '박씨 부인전'으로도 불리는 '박씨전'은 특히 많은 군담 소설 중에서도 유일하게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주인공 박씨 부인은 지혜와 신비한 도술로 병자호란을 겪으며 기울어 가는 조선을 구해 냅니다. 반면 남편 이시백은 박씨 부인의 뛰어난 재주와 따뜻한 품성을 알면서도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무시합니다. 분명 조선 시대에 여성은 남성에게 억압받는 약자였습니다. 하지만 '박씨전'은 여성의 힘과 능력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점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이렇듯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의 등장으로 '박씨전'은 남성보다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여걸 소설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 이 두 전쟁은 모두 조선을 큰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은 힘겹게나마 우리가 이긴 전쟁이었지만 병자호란은 조선 임금 인조가 직접 항복을 한 전쟁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박씨전에서는 박씨 부인의 활약으로 청나라를 물리치는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박씨전을 읽으며 병자호란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 하기도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선시대에 천대받던 여성이 나라를 구하는 여걸로 우뚝 서는 모습, 강대국 청나라와 싸워 멋지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 준 '박씨전'은 당시로서는 상처 입은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국문학자들은 '박씨전'을 임진왜란이 소재가 되는 고전 소설 '임진록'과 함 께 훌륭한 군담 소설로 평가합니다. 임진왜란은 물론 병자호란까지 한 작품에 모두 담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대 소설 중에서 여성의 활약상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
허생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조선 시대에는 신분 제도가 무척 엄했습니다. ‘사농공상’이라는 순서를 정해 선비를 제일로 여겼고, 그 다음이 농사일을 하는 농부였으며, 물건을 만들고 파는 기술자와 상인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선비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하루 종일 글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급제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선비가 천한 기술자나 장사꾼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선비는 무척 가난해도 그저 책을 열심히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양 남산 아래 사는 허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허생도 다른 선비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치르기 위해 오로지 글만 읽을 뿐 살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허생의 집은 겨우 비바람을 막을 정도로 초라했고, 우물 옆에 살구나무 한 그루만 외로이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허생의 아내는 허생을 뒷바라지하며 삯바느질로 살림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바느질거리가 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맡은 일이 없어 벌써 사흘이나 굶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생이 계속되자 허생의 아내도 많이 지치고 힘들어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나를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허생의 글 읽는 소리에 갑자기 마음이 상한 아내는 큰소리를 치며 따졌습니다. “다른 이들은 당신보다 공부를 조금 하고도 과거를 보아 벼슬을 하는데, 당신은 날마다 책만 보니 어찌 된 일입니까? 글을 읽는다고 쌀이 나옵니까? 굶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요?” 부인,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난들 왜 배가 고프지 않겠소. “삼 년이라고요? 이제는 석 달 아니 사흘도 못 버티겠어요. 공부가 부족하여 과거를 치를 수 없다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하다못해 뭐라도 해서 살아야 할 것 아녜요.” 아내의 투정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심했습니다. 허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허생은 아쉬운 표정으로 책을 덮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허! 십 년 동안은 글을 읽으려 했건만 칠 년 만에 그만두어야 하다니. 할 수 없지.” 허생은 오랜만에 의관을 갖추고 외출을 했습니다. 허생은 상점이 많은 종로에 나가 한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한양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누구요?” “글만 읽으시는 선비 같은데 왜 그런 걸 물으시는지요? 제일가는 부자라면 아마도 변 생원일 거요.” 허생은 변 생원의 집이 어디인가를 묻고 나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변 생원의 집을 찾은 허생은 문 앞에서 크게 헛기침을 했습니다. “에헴, 에헴!” 그러자 하인이 달려와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허생을 살펴보았습니다. “누구십니까?” “그건 알 필요 없고, 가서 주인께 전해라. 어떤 사람이 돈을 좀 꾸러 왔다고.” “저, 어디 사시는 누구라고 여쭐까요?” “고얀 놈 같으니! 가서 전하라는 대로 전하면 되지 뭐 그리 말이 많으냐?” 허생의 위엄 있는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에 하인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가 말을 전했습니다. 하인의 말을 들은 변 생원은 궁금증이 생겨 밖으로 나와 보았습니다. “뉘신지요? 그리고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나는 남산 아래 사는 허생이라 하오. 장사를 하려는데 돈 만 냥만 꿔 주시오.” 변 생원은 놀랐습니다. 한양에서 제일 부자인 자기를 찾은 사람 중에 이렇게 당당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법 높은 벼슬아치조차 은근히 고개를 숙였지요. 변 생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하인을 시켜 돈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만 냥을 마당에 쌓으니 거의 한 수레나 되었습니다. “자, 여기 있으니 세어 보시오.” 변 생원의 말에 허생은 쌓여 있는 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습니다. “만 냥에서 몇 푼 맞고 틀리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소. 세어 볼 필요는 없고, 기왕이면 이 돈을 안성으로 보내 주시오.” 허생이 집을 나가자 하인이 변 생원에게 물었습니다. “나리, 어찌 처음 본 사람에게 그리 큰돈을 빌려 주십니까?” “그 사람이 백 냥이나 이백 냥을 빌려 달라고 했다면 거절했을 거네. 하지만 당당하게 만 냥을 요구하는 것이나 돈을 세지도 않는 대담함을 보고 빌려 준 것이지. 저 사람은 분명 큰일을 해낼 것이네.” 이토록 낡고 초라한 옷을 입은 사람이 찾아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안성으로 간 허생은 일꾼 십여 명을 모아 후한 품삯을 주며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장터에 나가 과일이란 과일은 보이는 대로 사 모아 주시오. 값은 달라는 대로 줘도 상관없소.” 일꾼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다 생각이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해 주시오.” 다음 날부터 일꾼들은 허생이 시킨 대로 사과, 배, 대추, 밤, 호두, 잣 등 과일이란 과일은 모두 사 모았습니다. 그리고 넓은 창고를 빌려 과일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습니다. “안성에서는 과일 값을 후하게 쳐준다는군.” “돈도 한 푼도 깎지 않고 달라는 대로 준다네.” 과일이 잘 팔린다는 소문을 들은 전국의 과일 장수는 모두 안성으로 모여들었고, 허생은 모두를 사 모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전국의 과일이란 과일은 모두 허생의 창고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과일이 가득 쌓인 창고에서는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지만, 허생은 아무 생각도 없는 듯 그저 주막의 방에서 뒹굴고만 있었습니다. 허생의 창고에서 가득 쌓인 과일이 썩어 가는 것과는 반대로 온 나라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도무지 과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내일 할아버님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과일이 없어 큰일이오.” “과일을 올리지 않고 제사 지낼 수는 없는 법인데, 어디서도 과일을 구할 수 없다니 이게 웬일이오?” “말도 마시오. 나는 열 냥을 주고서 겨우 대추 몇 알을 구했다오.” 사람들은 모이면 과일 얘기를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시대에는 제사 지내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고, 과일 없이는 제사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과일 장수들은 안성으로 허생을 찾아갔습니다. “허 생원! 제발 과일을 파시오.” “값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드리겠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조상님께 제사는 올려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허생은 사람들을 만나 주지도 않고 주막의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 생원, 제발! 내가 다섯 배를 드리겠소.” 상인들이 소리쳤지만, 허생의 방문은 열릴 기미도 없었습니다. “좋소! 열 배를 드리리다.” 그제서야 방문이 열리고 허생이 밖으로 나와 창고를 열고 과일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허생이 과일 장사로 번 돈은 십만 냥이나 되었습니다. 열 배나 남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지만, 허생은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허생은 더 큰 장사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허생이 다음으로 간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허생은 배를 몇 척 사서 옷감과 농기구를 잔뜩 싣고 갔습니다. 과연 허생의 생각은 들어맞아, 가지고 간 옷감과 농기구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렸습니다. 제주도는 섬이어서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뭍에서 만드는 옷감이나 쇠로 만든 농기구 등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가져간 물건을 모두 판 허생은 안성에서처럼 일꾼을 사서 이번에는 제주도의 특산품인 말총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말총이란 말의 갈기나 꼬리 털로, 양반이 쓰는 갓을 만드는 재료였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말을 많이 키우기 때문에 말총이 많았습니다. “대체 이 많은 말총을 사서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일꾼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허생이 시킨 대로 말총을 사 모았습니다. 창고 가득 말총이 쌓였습니다. 허생은 무려 십만 냥어치의 말총을 사들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전국 곳곳에서 야단이 났습니다. 본래 갓이란 망가지기 쉬운 것이어서 얼마가 지나면 새로 사야 하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말총이 없으니 갓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갓을 쓰지 않고는 밖으로 나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에게 갓은 옷의 일부였으니까요. “이것 참 큰일 났군. 어른께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는데 갓이 망가졌으니. 갓을 벗고 갈 수도 없고 어찌할꼬.” “말도 마시오. 어제 김 생원 집에 갔더니 다 떨어진 갓을 쓰고 있더라니까요.” 이렇게 되자 상인들은 제주도로 몰려갔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도 말총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말총이란 말총은 모두 허생이 샀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상인들은 허생에게로 몰려갔습니다. “제발 말총을 파십시오. 돈을 달라는 대로 드리겠소.” 허생은 산 값의 열 배를 받고 말총을 모두 팔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허생은 십만 냥의 열 배인 백만 냥이라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으면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비단옷과 좋은 음식에 하인들을 부리며 살 만도 하련만, 허생은 처음 그대로 다 떨어진 옷에 망가진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건너기 위해 허생은 배를 탔습니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노를 젓는 늙은 사공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혹시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알고 있소?” 사공은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언젠가 왜국으로 가는 배를 부리게 되었는데, 폭풍을 만나 노를 놓치고 정신 없이 사흘이나 떠내려갔지요. 그러다 어떤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았어요. 물고기들도 조용히 헤엄치고 있었고, 사슴이나 여우 같은 짐승도 보았지만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어요. 정말 평화롭고 기름진 섬이더군요. 이런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말을 들은 허생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혹시 그 섬을 다시 찾아갈 수 있겠소?”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여기서 동남쪽으로 백 리쯤 가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내 품삯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어디 한번 그곳으로 가 봅시다.” 돈을 얼마든지 준다는 말에 사공은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갔습니다. 한참 뒤 도착한 섬은 과연 사공의 말대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조용했으며, 기름진 땅은 천 리나 되어 보였습니다. 섬을 둘러본 허생은 다시 뱃머리를 돌려 육지로 향했습니다. 허생은 배에서 내려 변 생원에게 빌린 돈을 갚으러 한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가는데 갑자기 우락부락하게 생긴 산적들이 나타나 길을 막아섰습니다. “목숨이 아까우면 가진 것을 몽땅 내놓아라!” 그러나 허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잘 만났다. 내가 너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겠구나. 너희 두목을 만나고 싶다.” 산적을 만나면 도망을 치거나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할 텐데, ‘너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요? 산적들은 허생의 당당한 태도와 위엄 있는 목소리에 움찔하여 순순히 두목에게 허생을 데리고 갔습니다. 산적 두목과 마주한 허생이 물었습니다. “제일 많이 털어 본 것이 얼마나 되오?” “천 냥쯤 되지.” “부하는 모두 몇이오?” “한 천 명쯤.” “천 냥을 천 명이 나누면 한 사람이 한 냥씩을 가지게 되는 셈이군. 겨우 한 냥을 벌기 위해 산적 노릇을 할 필요가 있겠소?” 허생의 말에 산적 두목이 한숨을 쉬며 답했습니다. “우리도 남들처럼 농사지을 땅이 있고 가축이 있으면 왜 도둑질을 하겠습니까?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못된 관리에게 다 빼앗기고 할 수 없이 산에 들어와 도적이 된 것이지요.” 어느새 산적 두목의 말투는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농토와 가축이 있다면 산적 노릇을 그만두겠소? 애써 지은 농사를 빼앗는 못된 벼슬아치도 없고.” 그렇다면야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요새는 산적 노릇도 힘들기만 한걸요. “그러면 내가 돈을 나눠 줄 테니 농기구와 볍씨, 집 지을 도구, 가축 등등을 사서 한 달 후 부두로 모이시오.” 허생은 직접 산적 한 사람마다 백 냥씩을 나눠 주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한 달 후 부두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각자 소·돼 지·닭 등 가축을 데리고 있었으며, 손에는 곡괭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나 도끼· 끌·대패 같은 도구를 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허생이 돈을 나눠 주었던 산적들이었습니다. 산적들 말고도 부두에는 많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허생이 산적들과 혼인시키기 위해 데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바다에는 배 여러 척이 돛을 편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에는 소·돼지·닭 등 가축과 함께, 벼·콩·팥·감자·깨 등 씨앗, 옷감·솥·그릇 등 생활 용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적어도 일 년은 먹을 수 있는 식량도 실려 있었습니다. “가자! 새로운 나라로.” 허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들은 쏜살같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습니다. 여러 날을 항해한 끝에 배는 어느 섬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허생이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길에 사공에게 물어 알아 둔 섬이었습니다. “이곳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이오. 애쓴 만큼 얻을 것이니 모두 열심히 일하시오.” 허생은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농사지을 사람과 집 지을 사람, 가축을 기르거나 사냥할 사람을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각각 몇 사람씩 짝지어 주고, 그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을 우두머리로 삼아 일하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목공을 하는 사람은 집 지을 나무를 다듬었고, 농기구를 가진 사람은 땅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살 집과 가축을 가둬 둘 우리가 생겼고, 농사지을 땅이 마련되었습니다. 모두 밤에는 충분히 쉬고, 낮이면 씨를 뿌리고 가축을 돌보는 등 열심히 일했습니다. 또한 여인들은 일하는 사람을 위해 밥을 짓고, 흙투성이가 된 옷들을 정성스럽게 빨았습니다. 삼 년이 흘렀습니다. 섬에는 커다란 마을이 생겼습니다. 모두 열심히 일한 덕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했고, 가축들도 새끼를 낳아 아주 넉넉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것을 빼앗기지 않으니 인심도 후해졌습니다. 맛난 음식을 하면 이웃과 나눠 먹었고, 슬프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 힘을 합해 도왔습니다. 벼슬아치 하나 없었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저마다 짝을 찾아 혼인했고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섬이 안정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 허생은 그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허생은 사람들과 작별하고 섬에서 남아도는 곡식과 가축을 배에 싣고 섬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웃인 왜국에 들러 곡식과 가축을 팔아 백만 냥이라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십만 냥만 남기고 나머지는 바다 한가운데에 빠뜨려 버렸습니다. 한양에 이른 허생은 변 생원을 찾았습니다. “안녕하시오. 예전에 돈을 빌려 간 허생이오.” “아, 허 선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소?" “빌려 간 돈으로 처음에는 과일을 샀다가 되팔았소. 그래서 십만 냥을 벌었소. 그리고 다시 말총을 사서 되팔아 백만 냥을 벌었소.” “백, 백만 냥이나!” 변 생원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장사를 했지만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할 큰돈을 허생은 불과 일 년 만에 벌었으니까요. “그 백만 냥을 산적들에게 나눠 주고 가축과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사 오라고 했소.” “그래서요?” “산적들을 데리고 섬에 가서 곡식을 심고 가축을 키웠고, 왜국에 필요한 것을 팔아 다시 백만 냥을 벌었소. 이젠 섬이 안정되었기에 그곳을 떠나 변 생원께 돈을 갚으러 온 것이오.” 그러면서 허생은 십만 냥을 내놓았습니다. “아니, 꾸어 간 돈은 만 냥인데, 어찌 십만 냥을 주시오?” “돈을 빌렸으면 이자라는 게 있지 않소.” “그런데 나머지 구십만 냥은 어떻게 하셨소?” “사람들이 돈 때문에 다투지 않도록 바다에 버렸소.” “구, 구십만 냥을 바다에 버리다니.” 허생의 대담함과 놀라운 장사 솜씨에 감탄한 변 생원은 며칠 후 허생의 집을 찾았습니다. 많은 돈을 벌었으니 커다란 기와집에서 살 수도 있으련만 허생은 여전히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변 생원 아니시오. 웬일이시오?” “허 선비께서 주신 돈을 돌려드리려고 왔소이다.” “빌린 돈을 갚았거늘 그게 무슨 말이오?” “저보다는 선비께서 쓰시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될 듯해서.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 글이나 읽는 선비요.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잠시 나돌았을 뿐이오.” “그래도 가진 돈을 다 제게 주시고 이렇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가끔씩 들러 쌀이나 조금씩 주고 가시구려.” 허생의 말에 변 생원은 깊이 감동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나라에 큰일이 생겨 인재가 필요한 시기가 되자 변 생원은 허생을 추천했습니다. 허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높은 관리가 찾아왔으나 허생은 자신은 글만 읽고 싶을 뿐이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사람이 찾아오자 허생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후 변 생원이 관리와 함께 허생을 찾았으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살구나무 한 그루만이 쓸쓸히 마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학문을 추구한 박지원. 박지원(1737에서 1805)은 조선 후기 정조 때 활동한 실학자입니다. 일찍이 팔촌 형 박명원이 이끄는 사신 일행을 따라 청나라에서 한 달을 머물며 발달된 문물을 접하고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박지원은 예의와 명분만을 따지는 성리학보다는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열하일기입니다. 열하일기에는 청나라의 발달된 과학 문명과 외국의 발달된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등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양반들은 박지원이 품고 있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가진 학자들을 등용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정조의 계획을 방해했습니다. 박지원이 하고 있던 생각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과 같은 젊은 학자들이 더욱 발전시켰는데, 이 학풍을 ‘실학’이 라고 합니다. 박지원은 허생전 외에도 양반전, 호질, 민옹전 등을 지었고, 농업에 관련된 과농소초라는 책도 썼습니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은 한문 소설. 허생전은 박지원이 쓴 한문 소설로, 열하일기에 들어 있습니다. 박지원은 수필체의 문장으로 낡고 부패한 조선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했으며,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는 방법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또한 박지원은 백성의 행복보다는 권력 싸움에 몰두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양반 관리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당시 조선 사회를 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쓰인 박지원의 작품들은 훗날 박지원의 호를 따 ‘연암 문학’으로 불립니다. 밤낮 글만 읽어 무능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던 허생이 뛰어난 장사 솜씨를 발휘하여 큰돈을 번다는 이야기에는 실학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특히 물건을 모두 사 놓았다가 값이 올랐을 때 팔아 이득을 남기는 ‘매점매석’, 일을 적성에 맞게 나누어 하는 ‘분업’등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여러 가지 경제 활동이 잘 설명되어 있어 사람들이 ‘경제’와 ‘과학적 생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처럼 허생전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경제, 과학, 무역 분야를 총망라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춘향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조선 시대 숙종 대왕 초, 전라도 남원을 다스리는 사또에게는 이몽룡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꿈에 용을 보고 낳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지요. 몽룡은 얼굴이 잘 생긴 데다가 어릴 때부터 글을 읽어 학식이 뛰어났습니다. “사또의 아들 이 도령은 장차 높은 벼슬을 할 거야.”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한편 남원에 사는 월매에게는 춘향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월매는 기생이었지만, 나이가 들자 기생 노릇을 그만두고 성씨 선비를 만나 얻은 춘향이를 홀로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 제도가 엄격하여 기생의 딸도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춘향은 월매가 기생 노릇을 그만두고 얻은 딸이기에 기생이 아닌 양반 댁 규수처럼 키웠습니다. 영리하여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즐긴 춘향은, 학식도 갖추었고 효성 또한 깊었습니다. 모두가 흥겨워하는 단옷날이 되자 몽룡도 마음이 들떠 도무지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글공부를 하루 쉬고 즐겁게 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방자야, 나귀에 안장을 얹어라. 단오놀이나 하러 가자.” 몽룡이 하인 방자가 끄는 나귀를 타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서린 오작교가 있는 광한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고, 곳곳에 나들이 나온 어여쁜 처녀들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몸종 향단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춘향도 있었지요. 치마폭을 휘날리며 버드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는 춘향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선녀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방자야, 저기서 그네를 타는 처자는 누구냐?” “이 고을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옵니다. 어미는 기생이지만 춘향이는 양반집 규수처럼 곱게 자랐지요.” 몽룡이 허허 웃으며, 방자에게 춘향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곱디고운 춘향에게 첫눈에 반한 것입니다. “나는 남원 고을 사또의 자제이신 이몽룡 도련님을 모시는 방자라고 하네. 도련님께서 자네를 보자 하시니 어서 가시게나.” “아무리 사또의 자제라도 나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쉬운 사람이 아니네.” 춘향은 이렇게 거절했습니다. 방자가 가서 말을 전하자 몽룡은 춘향이 비록 기생이었던 월매의 딸이지만 몸가짐이 단정한 것을 알고 다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만나자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제야 춘향은 광한루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지요. 춘향을 직접 마주 대하고 보니, 몽룡은 춘향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무척 곱구나. 어떠냐?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놀이도 가는 것이?” 몽룡이 춘향에게 청했습니다. “도련님은 양반 댁 자제이시고 소녀는 기생의 딸인데 어찌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몽룡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내 직접 그대의 어머니를 찾아가 허락을 받을 터이니, 집을 알려 주게.” “정 뜻이 그러시다면 방자를 불러 물으소서.” 몽룡은 밤에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방자에게 춘향의 집을 알아 오도록 했습니다. 춘향에게서 몽룡에 대한 얘기를 들은 월매는 기쁨 반 걱정 반으로 마음을 졸였습니다. 춘향이 사또의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지만, 그만큼 힘들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신분 차이 때문에 춘향은 양반인 몽룡의 정식 아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어 약속대로 몽룡이 찾아오자 월매는 예의를 갖춰 정중히 맞이했습니다. “귀하신 도련님께서 누추한 곳을 찾아 주시니 황공하옵니다.” “광한루에서 춘향이를 보고 마음이 끌려 찾아왔네. 춘향이와 혼인하게 해 주게.” 몽룡의 말에 월매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생이었지만, 제가 낳은 춘향이는 기생이 아닙니다. 양반집 규수처럼 글도 가르치고 기품을 갖추도록 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양반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상대와 혼인하기는 어렵겠지만, 양반 댁 자제의 첩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어허, 내가 언제 첩실로 들인다고 했나? 정실로 삼을 것이네.” “도련님 마음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본래 신분이 다르면 맺어질 수 없습니다. 제 딸 춘향이와 혼인 약속을 한들 도련님 집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그리하면 춘향이만 가엾어지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내 춘향을 반드시 집안으로 들여 정실로 삼을 테니, 내 약속을 믿고 혼인을 허락해 주오.” 몽룡의 굳은 약속에 월매는 춘향과 몽룡의 혼인을 허락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춘향과 몽룡은 혼인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월매와 향단, 방자만이 보는 앞에서 치른 간단한 혼인식이었습니다. 양반의 법도를 따지는 엄격한 몽룡의 아버지가 알면 큰일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걱정으로 어두운 표정을 짓는 월매와 춘향에게 몽룡은 말했습니다. “내가 과거에 급제한 다음 아버님께 춘향이와 혼인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그때는 어쩌지 못하실 것이오. 그러니 오늘은 섭섭하더라도 이렇게 간단히 혼례를 치르도록 합시다.” 그날 이후로 몽룡은 밤낮없이 춘향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이제 막 열여덟이 된 몽룡과 꽃다운 나이 열여섯인 춘향의 사랑은 날로 무르익어 갔고, 두 사람은 함께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너는 칠 년 가뭄으로 물이 마를 때도 마르지 않는 바다가 되고, 나는 어딜 가거나 떨어질 줄 모르고 함께 다니는 원앙새가 되어, 푸른 물 위에 원앙처럼 어화둥둥 떠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사랑아.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몽룡의 아버지가 새로운 벼슬을 얻어 한양으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몽룡은 춘향을 찾아와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춘향아! 아버님께서 벼슬을 새로이 받아 한양으로 올라가시게 되었구나.” “집안에 좋은 일이 생겼는데, 왜 슬픈 얼굴이십니까?” “너를 두고 떠나야 하니 마음이 아파서 그렇단다. 아직 과거에 급제도 못 했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혼인을 했으니, 만약 너를 데리고 가면 아버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요, 앞으로의 벼슬길도 막막하지 않겠느냐?” “그럼 우리가 올린 혼인식은 무엇입니까? 이리 버리실 거면 어찌 그리 굳은 약속을 하셨습니까?” 몽룡은 눈물겨워하는 춘향을 달랬습니다. 그때 장모인 월매가 들어와 몽룡의 손을 잡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나와 말 좀 해 봅시다. 내 딸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니 무슨 일로 그러시오.” “춘향이가 도련님을 모신 지 거의 일 년이 되었소. 그동안 행실이 좋지 않았소? 아니면 예절이 그르던가요?”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이오. 내 딸 춘향이 아니면 못 살겠다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다니, 이래서 처음부터 말렸던 것인데.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내 딸 춘향이 팔자야.” “도련님 가신 후에 내 딸 춘향이가 속병을 앓다가 죽기라도 하면 늙은 이 내 몸은 뉘를 믿고 살란 말이오?” “장모, 너무 몰아붙이지 마오. 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춘향이를 한양으로 부를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 주오.” “어머니, 그만하세요. 제가 투정을 부린 것은 님과 헤어짐이 섭섭해서일 뿐이에요. 도련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돌아오실 거예요.” 춘향은 어머니를 달래고 난 뒤 몽룡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습니다. “한양에 가시더라도 부디 몸 건강히 하시고, 자주 편지나 하옵소서.” 몽룡이 가족과 한양으로 올라간 뒤 남원에는 몽룡의 아버지 뒤를 이어 변학도라는 새로운 사또가 부임했습니다. 변 사또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원에 오자마자 변 사또는 이방에게 물었습니다. “이 고을에 춘향이란 아이가 아주 곱다지?” “예.” “그럼 그 아이를 불러오거라.” “춘향이의 어미는 기생이지만 춘향이는 기생이 아닙니다. 전에 이 고을을 다스리던 사또의 자제 이몽룡과 혼인한 사이이옵니다.” 그 말에 변 사또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어허, 말이 많구나! 기생 딸이 양반집 아들과 무슨 혼인이란 말이냐? 썩 불러오지 못할까!” 춘향은 몽룡 생각에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가 부르는데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변 사또는 첫눈에 춘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 고운 아이로구나! 오늘부터 내 시중을 들도록 해라.” “황송하오나 저는 이미 지아비가 있는 몸이니 그리할 수 없사옵니다.” “네가 인연을 맺은 이 도령은 양반집 아들로서 좋은 집안 처녀를 배필로 맞을 것이다. 그럼 너는 어차피 혼자 될 몸이 아니냐? 내가 너를 정실은 아니더라도 첩실로 맞이하겠다.” “점잖은 사또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이미 지아비가 있는 몸, 또 다른 지아비를 맞을 수는 없습니다.” “어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어미가 기생인 이상 양반집 도령과 맺어질 수는 없다. 그러니 내 말을 듣도록 해라.” “옛말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지어미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혼인을 한 지아비 이몽룡 외의 사내와는 절대 가까이할 수 없나이다.”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나라님의 말을 어기는 것과 같다. 네 얘기를 듣자 하니 괘씸하여 도저히 가만둘 수가 없구나.” “여봐라, 저 건방진 계집을 매우 쳐라.” 변 사또는 처음에는 단지 겁을 주려는 생각으로 매질을 시켰습니다. 춘향이 매를 맞기가 두려워 순순히 말을 들으리라고 여긴 것이죠. 그러나 춘향은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변 사또는 더욱 심하게 매질을 시켰습니다. 결국 춘향은 기절할 때까지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편 몽룡은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과거에서 장원 급제를 했습니다. “여러 선비 가운데 이몽룡의 재주가 으뜸이니라.” 임금은 몽룡을 칭찬하며, 전라도를 순찰하는 암행어사로 임명했습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거지처럼 꾸미고 남원에 도착한 몽룡은 논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살기가 어떠신가요?” “말도 마오. 사또는 날마다 술 마시고 노느라고 정신이 팔려 고을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니 우리 같은 백성만 힘이 들지.” 몽룡이 슬쩍 춘향에 대해 물어보자 농부가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습니다. “변 사또가 이 도령과 혼인한 춘향을 첩으로 삼으려고 했지.” “그래, 사또의 첩이 되었나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사또의 명을 거역해 옥살이를 하는 춘향이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춘향이 버리고 한양 간 이 도령만큼이나 나쁜 놈일세. 썩 꺼져라, 이놈!” 춘향의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파 터벅터벅 산길을 걷던 몽룡은 우연히 방자를 만났습니다. 방자는 춘향의 부탁으로 몽룡에게 편지를 전하러 한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방자는 처음에는 거지로 변장한 몽룡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이내 알아보고는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편지를 펴 보는 몽룡의 손이 떨렸습니다. 서방님 보십시오. 서방님이 가신 후 소식이 없어 궁금합니다. 소녀는 사또의 청을 거절하고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어머니도 제 걱정으로 건강이 말이 아닙니다. 어차피 저는 감옥에서 죽을 몸, 서방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면 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춘향 올림. 편지를 읽은 몽룡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방자도 한숨을 지었지요. “날마다 도련님만 기다리는 아씨가 불쌍해서 어쩌나. 장원 급제 해서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도련님이 이런 거지꼴이 되어 나타났으니, 우리 아씨 이제 살길이 없네!” 월매는 날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춘향이를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지꼴로 나타난 몽룡을 보고 월매는 놀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장원 급제 하여 춘향을 구해 줄 줄 알았던 몽룡이 거지가 되어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우리 집안은 한양으로 간 이후에 망했다오.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돈이나 좀 꾸어 갈까 하고 왔는데, 이 집 형편도 말이 아니로군.” “한양 가서 연락 한 번 없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이제 내 딸 춘향이를 어쩔 것인가?” 그러나 몽룡은 시치미를 뗐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겠으니 먼저 밥이나 주시오.” 향단이 밥상을 차려 주니, 몽룡은 냉큼 달려들었습니다. “밥아, 너 본 지 얼마 만이냐.” 몽룡은 진짜 거지처럼 있는 반찬을 모두 섞어 손으로 뒤적거리더니 단숨에 먹어 치웠습니다. 그 모습에 월매는 더욱 기가 막혔습니다. 몽룡과 월매는 춘향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찾아갔습니다. 몽룡을 본 춘향은 놀라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저 하나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으나, 서방님 모습이 웬일입니까?” “춘향아, 서러워하지 마라.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 몽룡의 말을 듣고 춘향이 월매에게 부탁했습니다. “어머니! 집에 있는 패물을 팔아 서방님께 비단옷 한 벌 지어 주십시오. 그리고 내일은 사또가 생일잔치를 하다가 또 저를 매질할 것인데, 아마도 저는 더 살지 못할 것 같군요. 서방님, 제가 죽거든 서방님이 손수 옷을 입혀 우리 함께 놀던 양지바른 들판에 묻어 주십시오.” 춘향이 슬프게 울자 몽룡은 춘향을 위로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춘향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느니라.” 다음 날 변 사또 생일잔치에는 욕심 많은 관리들이 다 모였습니다. 촛불을 환하게 밝힌 상에는 맛 좋은 술과 요리가 가득했고 사방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거지꼴을 한 몽룡이 잔치에 나타나 변 사또에게 말했습니다. “지나가는 길손인데, 술 한잔 얻어먹읍시다. 대신 내가 시 한 수 지어 올리겠소이다.” 변 사또는 몽룡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는 술을 한 잔 따라 주도록 하고 시를 지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가 쓴 글을 보고 트집을 잡아 놀려 보려는 심보였지요. 몽룡은 술과 고기를 푸짐히 먹고는 종이와 붓을 꺼내어 시 한 수를 써 내려갔습니다. 금으로 만든 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백성의 피를 짜서 만든 것이고, 옥으로 만든 쟁반에 담긴 맛있는 안주는 백성의 살을 베어 만든 것이로다. 잔치를 밝히고자 켠 촛불의 초가 녹아 흐를 때 백성의 눈물도 흐르고, 잔치의 흥겨운 노랫소리 높아질 때 백성의 한숨 또한 깊어지는구나. 그것은 바로 사또의 잘못된 다스림에백성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시를 본 관리들은 겁먹은 얼굴로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야!” 나무도 놀라 떨고 땅조차 흔들릴 듯한 우렁찬 고함을 지르며, 패랭이를 눌러쓰고 사슴 가죽으로 만든 끈이 달린 육모 방망이를 거머쥔 역졸들이 사방에서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슬금슬금 자리를 뜨던 벼슬아치들은 그만 혼이 빠진 듯 정신없이 주저앉거나, 갓 대신 쟁반을 머리에 쓰는 이도 있었고, 양손에 음식을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도망치는 사람들의 발에 차인 북, 장고, 거문고가 요란한 소리를 내니, 그 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더욱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서로 부딪쳐 나동그라지기도 했지요. 서둘러 방으로 도망친 변 사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말의 앞뒤를 바꾸어 외쳤습니다.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암행어사 납시오!” 이어서 어사의 옷으로 갈아입은 몽룡이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섰습니다. “남원의 사또 변학도는 일은 하지 않고 날마다 잔치를 열어 술만 마시며 백성을 괴롭혔으므로 파직한다.” 몽룡은 엄한 목소리로 변 사또를 꾸짖고, 또 명을 내렸습니다. “분명 감옥에는 억울하게 끌려와 갇힌 이도 많을 터이니 죄수들을 모두 데려오라!” 역졸들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중에는 물론 춘향이도 있었지요. 몽룡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춘향에게 물었습니다. “흠, 과연 빼어나게 고운 인물이로구나. 듣기로는 네가 사또의 첩 되기를 거절했다던데, 내가 첩실로 삼자고 해도 거절하겠느냐?” 춘향은 기가 막힌 듯 답했습니다. “어쩌면 남원으로 내려오는 벼슬아치마다 이리도 똑같으시오? 어사또께서는 잘 들으시오.” “천 길 높이 우뚝 솟은 산은 바람이 분다고 무너지지 않고, 사철 푸른 소나무는 눈 내리는 겨울에도 색이 변치 않는 것처럼 소녀의 마음도 절대 변치 않습니다. 부디 그런 억지 쓰지 마시고 차라리 소녀를 죽여 주시오.” 그 말에 몽룡은 부채를 치우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거라.” 고개를 든 춘향은 암행어사가 다름 아닌 몽룡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방님!” 춘향은 기쁨에 겨워 몽룡의 품에 안겼습니다. 몽룡은 임금의 명을 충실히 받들어 나쁜 관리를 쫓아내고 남원을 다시 살기 좋은 고을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양으로 올라가 높은 벼슬에 올랐습니다. 춘향도 물론 몽룡을 따라 한양으로 갔고 둘은 정식으로 혼인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들 셋과 딸 셋을 두고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 춘향전은 유명한 조선 시대 문학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춘향전 역시 다른 설화 소설들이 그렇듯이 언제 누가 썼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무당들의 이야기에서 온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춘향전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로는 일연 스님이 쓴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도미의 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제의 개루왕이 도미 부부의 사랑을 질투해 도미의 처를 빼앗으려다 도미의 처가 재치 있게 위기를 넘겨 실패한다는 내용이지요. 이 이야기는 춘향전처럼 ‘정절’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지배층의 횡포에 대항하는 서민층의 저항 의식도 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리산 산녀 설화, 어사 박문수 설화, 남원 추녀 설화 등이 춘향전에 녹아 있다고 합니다. 춘향전은 이처럼 여러 이야기들이 서로 조금씩 섞이고 녹아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 시대의 춘향가는 이 작품이 판소리로 바뀌어 불린 것입니다. 현재까지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무려 쉰 가지 이상 전해 오는 것만 보아도 춘향전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사랑받아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수긍하는 자연스런 이야기. 춘향전의 이야기 전개는 만남, 사랑, 이별, 시련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순환하는 자연의 사계절과 비슷합니다. 몽룡과 춘향의 만남은 따뜻한 봄, 두 젊은이의 사랑은 뜨거운 여름, 몽룡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떠나며 하는 이별은 쓸쓸한 가을, 변 사또에게서 일편단심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갇히는 춘향의 시련은 추운 겨울에 해당되지요. 한편 조선 시대는 신분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춘향은 사회적으로는 천한 신분이었지요. 하지만 백성들 것을 빼앗아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욕심 많고 못된 양반에 비해 몽룡에 대한 절개를 지킨 춘향은 도덕적으로 훨씬 깨끗하고 우월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결국 인간의 평등함, 더 나아가 인간성 회복이라는 큰 주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춘향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이처럼 자연스럽고 편하며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과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이유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전해 오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
흥부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옛날에 성이 박씨인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의 이름은 놀부이고, 아우의 이름은 흥부였습니다. 아우인 흥부는 착하기 그지없었으나, 형인 놀부는 무척 욕심 많고 심술궂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장이 다섯 개이지만 놀부는 심술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심술보가 있는 놀부는 술 먹고 싸움하기, 동네에서 잘살고 있는 사람 인심 나쁜 동네로 이사 보내기, 힘들게 쌓아 둔 곡식에 불 지르기, 의원의 침통 훔치기, 돈 세는 사람에게 말 걸기, 사기그릇을 가득 싣고 세워 둔 지게 쓰러뜨리기, 우는 아기에게 젖 대신 발가락 빨리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호박에 말뚝 박기 등등 끝도 없이 못된 짓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인 놀부는 아우 흥부를 불러 말했습니다. “네 이놈, 흥부야! 늙어 가는 형만 믿고 집에서 빈둥거리니 꼴도 보기 싫다. 이제부터는 따로 나가 살아라.” 갑작스런 이야기를 들은 흥부는 기가 막혀 놀부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형님, 별안간 나가라뇨? 이제 곧 겨울이 되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놈, 내가 너 갈 곳까지 일러 주랴?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 놀부의 성화에 흥부는 눈물을 흘리며 보따리를 꾸려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욕심 많은 놀부는 흥부를 쫓아내고 부모님이 남긴 집과 재산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헤매던 흥부는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한 채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당장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잠자리는 해결했지만, 가족 모두가 먹고살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흥부 내외에게는 자식들 아홉을 보살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자식들은 배가 고파 밥을 달라 떡을 달라 제 어미를 조르는데, 한 놈이 나앉으며“아이고, 어머니! 배고파 나 죽겠소. 밥 좀 주오.”하면, 또 한 놈 나앉으며“어머니, 나는 호박떡 좀 해 주시오. 따뜻해도 달고, 식으면 식은 대로 단 호박떡 말이오.”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또 한 놈 나앉으며“어머니, 나는 육개장에다가 하얀 쌀밥 좀 말아 주오.”하고, 또 다른 한 놈은“어머니, 나는 삼계탕, 만둣국에 생선구이 좀 해 주시오.”한다. 다른 놈은“이놈들이 음식 타령을 하니 배고파 죽겠구려. 나는 차나 뜨끈뜨끈하게 끓여 주시오.”한다. 이렇게 투정하는 자식들을 보며 흥부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후유! 하는 수 없지. 형님을 찾아가는 길밖에.” 아침 일찍 놀부의 집을 찾은 흥부에게 하인 마당쇠가 쪼르르 달려와 말했습니다. “작은 서방님 아니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는 그런대로 지낸다만, 형님은 어떻게 지내시냐?” “아이고, 말씀도 마세요. 전에 서방님 계실 때보다 더 심해지셨습니다. 이제는 제사상 차릴 때도 음식 대신 돈을 올려놓으십니다.” 마당쇠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습니다. “제사상에 돈을 올려놓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고기, 떡, 밥, 나물이라고 쓴 종이에 돈을 싸서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거죠. 제사 음식 차리는 것이 아까워서 그러시는 모양입니다.” “저런! 그럼, 여태까지 조상님의 혼백을 굶겼더란 말이냐? 답답하구나.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왔다가 형님을 뵙지 않고 갈 수도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이때 마침 놀부가 마당에 나왔다가 흥부를 발견하고 다가왔습니다. “에헴, 에헴. 무슨 일로 왔느냐?” “형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아우 흥부가 왔습니다.” “아우라니 무슨 소리냐? 내가 외아들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난데없이 형님이라니?” 놀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며 흥부를 쫓아내려 했습니다. “아이고,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아우 흥부입니다.” 글쎄, 난 모른다고 하지 않느냐? 썩 꺼지지 못할까? 놀부는 곁에 있던 빗자루를 들어 흥부를 내려치려 했습니다. 흥부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흥부가 몸을 피한다고 들어간 곳은 부엌이었습니다. “형수님! 안녕하셨습니까?” 흥부가 인사를 하자 밥을 짓던 놀부의 아내는 눈을 흘기며 말했습니다. “형수는 무슨 형수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와 돈을 달라 밥을 달라 아우성치니 어디 마음 편히 살 수가 있나? 옜다, 밥이다.” 놀부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밥을 푸던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철썩 소리가 나도록 때렸습니다. 흥부가 주걱으로 맞은 뺨을 만져 보니 밥알 몇 개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째 굶은 흥부는 뺨에서 떼어 낸 밥알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형수님! 정말 꿀맛입니다. 이왕이면 반대쪽 뺨도 때려 주시구려.” 놀부의 아내는 그런 흥부가 얄밉다는 듯 주걱을 싹싹 씻어 내더니 흔들며 말했습니다. “좋아. 더 맞고 싶다 이거지? 얼마든지 때려 주지.” 놀부의 아내는 팔에 힘을 모아 주걱을 잡고 흥부의 반대쪽 뺨을 때렸습니다. 쌀이라도 얻을까 해서 갔다가 억울하게 뺨만 맞고 집에 돌아온 흥부는 마당에 떨어진 제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비는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지만 어디가 불편한지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흥부가 제비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손바닥에 놓고 살펴보니 다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불쌍하게도 다리가 부러졌구나. 내가 치료해 주마.” 흥부는 부러진 제비 다리를 잘 붙이고 천으로 단단히 매어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리가 다 나은 제비는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 흥부네 집 지붕 위를 크게 한 바퀴 돌더니 힘차게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듬해 봄 흥부 내외가 툇마루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제비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리에 천을 매고 있는 것을 보니 작년에 다리가 부러져 땅에 떨어졌던 제비인가 보오.” “어마나! 그렇군요. 봄이 되어 다시 날아왔나 봐요.” 제비는 흥부네 집 지붕 위를 크게 한 바퀴 날면서 돌더니, 부리에 물고 있던 무언가를 떨어뜨리고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흥부는 마당에 나가 제비가 떨어뜨린 것을 주워서 살펴보았습니다. “박 씨로구나.” “다리를 고쳐 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주는가 봐요.” “허허! 그것 참 신통하구려. 어쨌거나 박 씨가 생겼으니 심어나 봅시다.” “그래요. 가을이 되어 박이 열리면 속을 긁어내어 죽이라도 끓여 먹지요.” 흥부 내외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를 정성스럽게 심었습니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에서 나온 싹은 무럭무럭 자랐고 흥부가 사는 초가집 지붕 위에 박이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여보! 아주 큼직한 박이 열렸구려.” 흥부 지붕으로 올라가 박을 땄고, 아내와 자식들은 그것을 받아 마당에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박을 타 볼까?” 흥부는 박 한가운데에 톱을 걸어 아내와 함께 톱질을 시작했습니다.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밥 한 끼 배불리 먹어 보자꾸나.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큰 자식은 저리 가고, 둘째 놈은 이리 오너라. 우리가 이 박 타서 박 속일랑 끓여 먹고 바가지는 장에 팔아 쌀을 사서 밥을 먹자.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여보 마누라! 배가 정 고프거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운차게 당겨 주소.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당겨 주소. 박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흰 연기가 솟았습니다. “에쿠, 놀라라!” 깜짝 놀란 흥부 내외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박에는 궤짝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체 이게 웬 궤짝이지?” 흥부가 궤짝을 열어 보니 하얀 쌀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 쌀이 가득하구려.” “정말이오? 그럼 어서 다른 궤짝도 열어 보아요.” 다음 궤짝에는 돈이 가득했고, 그다음 궤짝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그리고 다음 궤짝에는 색색의 비단이 들어 있었습니다. 박에서 나온 보물로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놀부는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흥부의 집을 찾았습니다. 놀부가 찾아가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 있던 자리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놀부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해서 목을 가다듬은 다음 한껏 위엄을 부리며 소리쳤습니다. “이리 오너라. 흥부 있느냐?” “아니! 형님이 이곳까지 웬일입니까?” 놀부의 목소리를 들은 흥부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반겼습니다. “네가 부자가 되었다기에 정말인가 알아보러 왔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흥부는 놀부가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음식을 차려 대접하면서,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 준 일과 제비가 가져다준 박 씨를 심어 보물을 얻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제가 어찌 형님께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흥부의 이야기를 들은 놀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몇 번이고 확인하고서야 돌아갔습니다. 그것도 올 때와는 달리 빈손이 아니라 흥부에게서 빼앗다시피 한 값진 보물을 한 아름 가지고 말입니다. 그날부터 놀부는 다리 부러진 제비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자 어미 제비가 먹이를 찾아 나간 틈을 타서 둥지에 손을 넣어 새끼 제비를 꺼냈습니다. “착하지? 울지 마라. 내 복덩이야.” 놀부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새끼 제비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가는 다리를 손에 잡고 힘을 주어 부러뜨렸습니다. 그리고 아파서 울어 대는 새끼 제비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다리가 부러졌구나. 내가 치료해 주마.” 며칠이 지나 새끼 제비는 다리가 나았고, 훨훨 하늘을 날아 남쪽으로 갔습니다. 놀부는 하늘을 나는 제비를 보며 노래했습니다. 떴다, 저 제비 보아라. 하늘로 둥둥 떠서 이리저리 날아 보고, 까마득히 높이 떴다 내려와 빨랫줄에 가 앉더니 한들한들 노는구나. 얼씨구! 내 제비가 살았구나. 박 씨 하나만 물어다 주면 성한 다리마저 분질러 주마. 저 제비 보아라. 지지배배 울더니만 펄펄 날아 강남 가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었습니다. 제비 한 마리가 놀부네 집 위를 날아가며 부리에 물고 있던 무언가를 떨어뜨렸습니다. 놀부는 얼른 달려가 제비가 떨어뜨린 것을 주워 살펴보고 말했습니다. 과연 박 씨로구나. 흥부 녀석이 거짓말을 하진 않았군. 좋아, 이 박 씨를 심으면 온갖 보물이 가득한 박이 열리겠지. 그러면 나는 흥부보다 훨씬 부자가 될 거야.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군. 놀부는 뒷마당에 박 씨를 심고 근처에는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놀부네 집 지붕에도 탐스러운 박이 열렸습니다. 놀부는 혹시나 박에서 나오는 보물을 도둑맞을세라 하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아내와 단둘이 박을 따서 톱으로 켜기 시작했습니다. 슬근슬근 톱질하세! 이 박에는 쌀이 가득, 저 박에는 돈이 가득! 그 돈으로 집을 사고, 보물 팔아 논을 사고! 놀부 내외는 신이 나서 장단을 맞춰 가며 톱질했습니다.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이 쪼개지며 흰 연기가 솟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박 안에는 보물 대신 쓰레기만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대체 이게 뭐야?” 코를 찌르는 냄새에 놀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박을 잘못 골랐나 봐요. 다른 박을 타 봅시다.” 아내의 말대로 놀부는 다른 박을 따서 다시 톱질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에서 거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와! 밥 냄새가 난다.” 거지들은 부엌으로 들어가 밥이며 반찬이며 모든 음식을 먹고, 곳간에서 쌀과 곡식을 멋대로 가져갔습니다. “저놈들 잡아라! 아까운 내 곡식을 모두 훔쳐 도망간다!” 놀부는 고함을 지르며 거지들을 잡으려 했지만, 거지들의 빠른 걸음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 아마도 다른 박에서 나올 보물 둘 곳을 미리 마련하기 위해 거지들이 왔었나 봐요. 애써 치울 필요가 없으니 더 좋잖아요. 어서 다른 박을 타 봅시다.” “맞아! 이번에는 아주 비싼 보물이 나올 거야.” 다시 박을 쪼개자 흰 연기가 솟으며 이번에는 험상궂은 산적들이 보기에도 섬뜩한 칼을 들고 나타나 소리쳤습니다. “네가 욕심 많은 놀부로구나. 엄청난 부자인데도 계속 욕심을 부린다지?” 산적의 우두머리는 부하들을 시켜 놀부네 집을 뒤져서 돈과 패물은 물론 값나가는 물건을 몽땅 챙기고는 집에 불까지 지르고 사라졌습니다. “아이고! 망했다. 모든 재산을 도둑맞고 집까지 불에 탔으니 이제 거지보다 못 한 신세가 되었구나.” 놀부 내외는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형님, 형수님! 괜찮으십니까?” 소문을 듣고 달려온 흥부가 놀부의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이제 난 망했다! 돈 한 푼 없고 집도 없는 거지가 되었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동생인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 재산은 형님 재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서 우리 집으로 가십시오.” “제가 주걱으로 뺨을 때린 것도요?” 놀부의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그때 형수님이 저를 때리신 주걱에 붙어 있던 밥알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언제 다시 때려 주세요. 조금 살살 말입니다. 놀부 내외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흥부 내외의 머리 위로 제비들이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형제 사이가 좋아진 것을 기뻐하는 듯 말입니다. 흥부전은 조선 시대 후반에 글로 쓰였습니다. 지역에 따라 흥보전, 박흥보전, 놀부전 등 다양하게 불리고 그 내용도 조금씩 다릅니다. 또한 누가 언제 지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또는 수백 년에 걸쳐서 이어져 내려오며 완성된 이야기를 ‘설화 소설’이라고 하는데, 흥부전도 설화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원래 있던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얘기가 보태지기도 하며 오늘날 전해지는 이야기로 다듬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흥부전의 지은이나 창작 시기는 당연히 알 수 없는 일이지요. 흥부전의 바탕에 깔린 생각은‘권선징악’입니다. 권선징악이란 착한 사람은 복을 받지만,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몰인정한 형 놀부는 가난한 아우 흥부를 돕기는커녕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다 결국은 하늘의 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흥부전은 죄를 뉘우친 놀부가 흥부와 함께 잘 사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나라 옛이야기는 대부분 주인공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마무리는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에 흥부전은 윤리 소설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유한 지주 계급(놀부)이 가난한 소작농(흥부)을 착취하는 사회적 갈등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흥부전이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받는 것은 이름 모를 서민이 겪는 기쁨과 슬픔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조와 과장을 통해 심각하고 절망적인 상황도 웃음이 나오게 표현하는 부분은 많은 사람이 힘든 생활을 이겨 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
금오신화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고려 때 성이 한씨인 선비가 있었습니다. 한 선비는 글을 잘 짓기로 유명했습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선비는 방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푸른 저고리를 입고 관리들이 쓰는 높은 모자를 쓴 두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마당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천마산 박연 연못에 계신 용왕을 모시는 신하입니다. 용왕께서 한 선비를 초대하셔서 모시러 왔습니다.” 한 선비가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찌 서로 통할 수 있겠소? 더구나 용궁까지는 머나먼 길이고 물결도 사나운데 어찌 갈 수 있단 말이오?” “빠른 말을 준비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 가 주십시오.” 한 선비가 두 사람을 따라 문을 나서자 황금빛 안장에 옥 굴레를 쓰고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돋아 있는 말 한 마리가 서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붉은 두건을 머리에 두른 하인이 열두 명이나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인이 한 선비를 부축하여 말에 태우자 용왕의 신하가 앞서서 길을 안내했습니다. 말이 날개를 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한 선비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얀 구름만 보일 뿐 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선비 일행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용궁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한 선비가 말에서 내려서자 문을 지키던 새우와 자라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습니다. 그러고는 한 선비를 조개와 산호로 장식된 아름다운 용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 선비가 용궁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관을 쓰고 칼을 찬 용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았습니다. “어서 오시오. 오래전부터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와 주시니 무척 기쁘오.” “어리석은 인간을 이리 반갑게 맞아 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한 선비가 용왕이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자 문지기가 아뢰었습니다. “손님이 또 오셨습니다.” 새로 온 손님은 세 사람이었는데, 위엄 있는 얼굴이나 행동, 차림새 등을 살펴보니 모두 보통 사람이 아닌 듯했습니다. “이분들은 하늘에서 온 신선들입니다. 한 선비의 문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뵈러 온 것이지요.” 용왕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나눈 한 선비와 신선들이 자리에 앉자 용왕은 궁녀에게 상을 차리도록 했습니다. 곧 음식이 나오는데 한 선비는 생전 처음 구경하는 것으로, 맛 또한 말할 수 없이 뛰어났습니다. 모두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자 용왕은 차를 권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제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혼인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장차 맞는 배필을 찾아 혼례를 치르게 하고, 딸아이 부부를 위한 궁을 따로 지으려 합니다. 그곳에 들보를 올리려 하는데 한 선비께서 상량문을 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상량문이란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그 까닭을 적은 글입니다. 한 선비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붓에 먹물을 찍어 곧바로 상량문을 지었습니다. 한 선비가 글을 써서 바치자 용왕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읽은 신선들도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용왕은 모두에게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녀들을 불러 노래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머리에 구슬 꽃을 꽂은 궁녀들은 넓은 소매를 흔들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어떻습니까?” “제가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름답군요.” “우리 용궁의 놀음은 인간 세상과는 많이 다르지요. 나쁘지 않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용왕은 좌우에 있는 신하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오신 여러 귀하신 분들을 위해 솜씨를 보이도록 하라.” 그러자 한 사내가 일어나 걸어 나왔습니다. 이상하게도 똑바로가 아니라 모걸음질을 쳐서 용왕과 손님들 앞에 나온 사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곽개사라고 합니다. 바위틈이나 모래 속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속은 누렇고 겉은 둥글며, 단단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가위를 가졌지요.” 그 말을 들은 한 선비가 자세히 사내를 살펴보니 다름 아닌 게였습니다. 그러니까 모걸음질을 친 것이었죠. 오늘 귀하신 분들이 오셨으니 부족한 솜씨나마 춤을 추어 보일까 합니다.” 곽개사는 눈동자를 돌리며 팔다리를 흔들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서고, 모걸음질을 치다가 빙글빙글 돌기도 하며 노래를 곁들였습니다. 나는 비록 작은 구멍 속에 살지만, 늘 갑옷을 입고 창을 놓은 적이 없다네. 내 단단한 갑옷은 호랑이도 뚫을 수 없고, 날카로운 가위는 바위도 자를 수 있다네. 거룩하신 용왕님의 기쁜 잔치에 참석하여 흥겨운 춤을 추니 손님들이 박수를 친다네. 물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물고기들은 펄떡펄떡 뛰노네. 곽개사의 흥겨운 춤과 노래에 한 선비와 신선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곽개사가 한바탕 신나게 놀고 들어가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용왕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저희는 산과 들에 사는 정령들이옵니다. 용왕께서 공주님을 위한 새 궁을 지으신다기에 축하드리러 왔나이다.” 이 말을 듣고 한 선비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에서부터 나무의 정령, 바위의 신, 그리고 온갖 짐승들의 혼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여러 훌륭한 분들이 함께하신 자리인 만큼 저희도 부족한 재주나마 펼쳐 기쁨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 어디 한번 놀아 보아라.” 용왕이 허락하자 정령들은 무리를 지어 춤을 추며 노래를 했습니다. 물을 다스려 모든 생명을 보살피는 용왕이시여, 천년만년 기나긴 복을 누리소서. 높은 자리에 앉으신 손님이 지은 노래는 영원토록 불릴 것이니, 옥돌에 깊이 새겨 길이길이 전하리라. 노래가 끝나자 모든 손님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들이 이토록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자 애를 썼으니 한 선비께서 노래를 지어 답을 하면 어떻겠소?” 용왕의 손님인 조강신이 한 선비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럼 부족한 솜씨지만 지어 보겠습니다." 높디높은 천마산의 박연 폭포.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숲을 뚫고 흘러 큰 시내를 이뤘네. 물속에는 달이 잠기고 못 아래에는 용궁이 있어, 가는 안개가 자욱이 끼고 시원한 바람이 부네. 곱게 키운 공주 위해 아름다운 궁을 짓고 흥겨운 잔치를 여니 천지간의 신령들이 인사하고 물고기와 자라들 춤을 추네. 흥겨운 피리 소리와 우렁찬 북소리 어우러지는데 연꽃잎은 붉은 이슬에 젖고 술잔 속에는 무지개가 뜨네. 즐거움 다하여 헤어지려니 모든 것이 한바탕 꿈과도 같아라. “정말 훌륭한 시요. 이 시를 용궁의 보배로 삼겠소.” 용왕이 칭찬하자 한 선비가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아뢰었습니다. “혹시 제가 용궁 안을 좀 둘러볼 수 있겠습니까?” “무슨 부탁을 하시려나 했는데 용궁 구경이라니, 물론이고말고요.” 용왕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신하 둘을 불러 한 선비를 안내하도록 했습니다. 용왕의 허락을 받은 한 선비가 신하들을 따라 용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온통 오색구름에 둘러싸여 있어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제가 곧 구름을 없애겠습니다.” 그 신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힘차게 내뿜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고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한 선비가 주위를 살펴보니 마치 바둑판처럼 평평하고 넓은 세계가 수백, 아니 수천 리나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줄지어 자라고 있었고,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었습니다.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물이 마치 하늘처럼 푸른데, 뭍의 온갖 그림자가 비쳐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선비는 신하들을 따라 물속을 걸어 온통 진주와 구슬로 장식된 탑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탑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한 선비의 물음에 한 신하가 머리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용왕께서 비를 내리시기 전에 하늘에 알리는 곳입니다.” 한 선비가 신하를 따라 일 층에 이르자 훌륭한 옷과 모자가 있었습니다. “이 옷과 모자는 무엇인지요?” “용왕께서 비 내리시는 것을 하늘에 알릴 때 입으시는 것입니다.” 한 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잘 닦여 번쩍번쩍 빛이 나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습니다. “이 거울은 어디에 쓰는 것입니까?” 한 선비가 묻자 신하가 답했습니다. “번개 신의 거울입니다. 거울로 번개를 비추는 것이지요.” 오 층에 올라가자 큰북과 작은북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 선비가 채를 들어 북을 치려하자 신하가 손을 들어 말렸습니다. “이 북을 치면 온 천하가 울립니다. 벼락 신의 북이거든요.” 다음 층에는 대장간에서 쓰는 풀무 같은 물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오? 풀무 같은데.” “예,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입니다. 바람 신이 한 번 풀무질을 하면 세찬 바람이 불고, 두 번 하면 나무가 뽑히며, 세 번 하면 바위가 날아가지요.” 한 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칠 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와 빗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이오?” “빗자루에 항아리의 물을 적셔 한 번 뿌리면 가랑비가 내리고, 두 번 뿌리면 소낙비가 내리며, 세 번 뿌리면 홍수가 납니다.” 한 선비가 고개를 들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니 커다란 문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용의 모습을 새긴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저곳은 무엇입니까?” 한 선비의 물음에 신하가 답했습니다. "저곳은 용왕님께서만 들어가실 수 있는 곳입니다. 저희는 물론 손님께서도 가실 수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이제 그만 돌아가지요.” 한 선비는 황금빛 모래가 깔린 길을 걸어 용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용궁으로 돌아온 한 선비가 용왕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용왕님의 두터우신 덕을 입어 훌륭한 곳들을 두루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합니다.” 용왕은 신하를 시켜 산호 쟁반에 커다란 진주 세 알을 담아 오도록 하여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재미있게 구경했다니 다행이오. 이것은 좋은 글을 써 준 데 대한 고마움의 선물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으시오.” 용왕은 세 신선과 함께 용궁 밖까지 나와 뭍으로 돌아가는 한 선비를 배웅했습니다. 한 선비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날개가 달린 말을 타고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 선비가 눈을 떠 보니 자신은 방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밖을 보니 어느덧 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한 선비는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품속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품속에는 커다란 진주 세 알이 들어 있었습니다. 꿈이 아니라 한 선비는 실제로 용궁에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한 선비는 뛰어난 글을 계속 지어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면 가끔씩 용왕이 선물한 진주를 꺼내 보며 용궁에서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김시습(1435에서 1493)은 조선 세종대왕 때, 당시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시습은 겨우 말을 배울 나이에 천자문을 깨치는가 하면 세 살 때 시를 짓거나 소학 등의 책도 읽어 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세종대왕은 직접 김시습을 불러 어려운 문제를 냈습니다. 김시습이 막힘없이 모두 대답하자 세종대왕은 크게 기뻐하여 상을 주며 “언젠가 네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대궐로 불러 나랏일을 돕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죽고 세종대왕의 아들인 문종마저 일찍 죽은 뒤 수양대군이 나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김시습은 절망 하였습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 후 김시습에게 관직을 내리려 했지만 김시습은 단 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평생을 방랑하면서 단편 소설집 금오신화를 비롯해 산거백영, 매월당집, 십현담요해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천재 김시습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한평생 절개를 지키며 살아갔답니다. 김시습이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독서를 시작한 후 내놓은 금오신화에 실린 작품들은 한문으로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입니다. 금오신화에 실린 작품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신기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다루는 전기 소설의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특징은 설화가 소설로 바뀌는 조선 초기의 문학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지요. 원래 짧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단편 소설집인 금오신화는 20세기 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1927년 최남선이 일본 도쿄에서 간행된 1884년의 목판본을 발견해, 우리나라에서 금오신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찾아낸 이야기는 만복사저포기(만복사 저포놀이 이야기), 이생규장전(이 서생이 담 안의 아가씨를 엿본 이야기), 취유부벽정기(홍 서생이 부벽정에서 취하여놀던 이야기), 남염부주지(남쪽 염부주의 이야기), 용궁부연록(용궁에 초대받은 이야기) 다섯 편뿐입니다. 뛰어난 재능을 펼치지도 못한 채 숨어살았던 천재 문인 김시습과 그의 작품 금오신화의 운명은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최고운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옛날 신라에 최충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학식이 깊고 인품이 훌륭한 최충은 나라에서 벼슬을 받아 문창이라는 고을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아주 기뻐할 일이었지만 최충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인이 물었습니다. “이토록 좋은 날에 왜 그리 표정이 어두우신가요?” “문창에는 여인을 잡아가는 금돼지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있기에 그렇소.” “귀신이라도 함부로 사람을 해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부인의 말에 굳었던 최충의 표정이 비로소 풀어졌습니다. 최충은 문창에 도착하여 관아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일을 마치고 부인과 함께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거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등잔불도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부인은 재빨리 실을 자기 발목에 감고 남편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혹시 제가 없어지거든 발목에 매어 둔 실을 따라오시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바람은 더욱 거세져 최충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얼마 후 바람이 그치고 정신을 차린 최충이 주위를 둘러보니 부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여인을 데려가는 금돼지 귀신이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날이 밝자 최충은 부인이 일러 준 대로 길게 이어져 있는 실을 따라갔습니다. 실은 나무로 가려져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깊은 산의 동굴 안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좁은 입구를 지나니 동굴 안은 뜻밖에 무척 넓었으며,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수풀 속에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그때 집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최충은 행여 들킬세라 살금살금 조심스런 걸음으로 다가가 창문 틈으로 집 안을 몰래 살펴보았습니다. 집 안에는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돼지와 여러 명의 여인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최충의 부인도 보였습니다. 여인들은 소문대로 도술을 부리는 금돼지에게 잡혀 온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어디선가 사람 냄새가 나는걸?” 금돼지가 큰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영리한 최충의 부인은 남편이 자신의 발목에 매어 둔 실을 따라 가까이 왔음을 알고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아마도 제가 잡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간 세계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도술을 부리는 당신이 무엇이 두렵다고 그러시나요?” 최충의 부인이 묻자 금돼지가 답했습니다. “이제 모두 같이 살게 되었으니까 하는 말인데, 실은 나도 무서운 것이 있어.” “어머나! 그게 정말이에요? 대체 뭔데요?” 최충의 부인은 밖에 있는 남편이 듣도록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지?” “혹시 제가 실수로 당신 근처에 가져다 놓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 미리 알아 두고 조심해야죠.” 최충의 부인이 대답하자 금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습니다. “나는 다른 것은 무섭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사슴 가죽을 보면 힘을 쓸 수가 없어.” 최충은 이 말을 듣고 급히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밤이 되자 최충은 낮에 사람을 시켜 구한 사슴 가죽을 가지고 다시 동굴로 갔습니다. 금돼지는 방에서 코를 골며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최충은 살짝 다가가 금돼지에게 사슴 가죽을 덮어씌웠습니다. “무, 무슨 일이냐?” 금돼지가 깜짝 놀라 깼지만 사슴 가죽이 씌워졌기에 도술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최충은 칼을 빼어 꼼짝 못 하는 금돼지의 목을 베었습니다. 최충의 용기와 부인의 슬기로 요사스런 금돼지가 죽고 납치되었던 여인들까지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나 최충의 부인은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최충은 아들에게 ‘치원’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기의 손톱과 발톱이 돼지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불과 하루였지만 부인이 인간 세계가 아닌 곳에 다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최충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저 아이는 귀신의 나쁜 기운을 받았음에 틀림없소. 이다음에 커서 사람을 해칠지 모르니 내다 버리시오!” 최충의 호통에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 길가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길을 지나는 소나 말이 아기를 피해 갔고, 밤이 되면 새들이 날아와 날개깃으로 아기를 포근하게 감싸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최충은 아기를 연못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아기를 연못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연꽃이 피어나 꽃잎으로 아기를 받아 물에 빠지지 않도록 했고, 백학 두 마리가 날아와 날개로 아기를 덮어 주었습니다. “아! 저 아이는 하늘이 내린 아이인가 보구려.” 그제야 최충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기를 정성껏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최치원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어느 날 최치원이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청했습니다. “바닷가에 돌을 높이 쌓아 위를 평평하게 해 주시고, 제게 쇠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주옵소서.” 최충은 최치원이 원하는 대로 돌을 높이 쌓고 쇠 지팡이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단 위로 최치원이 올라가자 하늘의 선인이 내려와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최치원은 낮이면 쇠 지팡이로 모래 위에 글씨를 써 가며 학문을 익혔습니다. 얼마나 글공부를 했는지 몇 년이 지나자 긴 쇠 지팡이는 닳아 없어졌고, 최치원의 학문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편 중국 당나라의 욕심 많은 황제는 신라의 땅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 신하가 반대했습니다. “신라에는 학문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한 이가 많사옵니다. 섣불리 침략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준비를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이 있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자.” 당나라 황제는 달걀을 솜으로 싸서 돌로 만든 상자에 넣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초를 녹여 뚜껑을 열지 못하도록 메운 뒤 신라로 보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했습니다. 당나라에서 돌로 만든 상자를 보내오자 신라에서는 야단이 났습니다. 뚜껑을 열지 않고 상자 안의 물건을 어떻게 알아맞힌단 말입니까? 만약 맞히지 못하면 그것을 트집 잡아 당나라가 침략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이 안의 물건을 알아맞힐 수 있겠는가?” 임금의 탄식에 한 신하가 아뢰었습니다. “승상 나천엽이 학문이 높다 하니 맡겨 보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좋은 생각이로다. 나 승상 있느냐?” “예.” 나 승상이 앞으로 나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대가 학문이 높으니 당나라에서 보내온 이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도록 하라. 단 절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 “아버님, 왜 그리 얼굴이 어두우십니까?” 집으로 들어오는 나 승상에게 딸이 물었습니다. “전하께서 뚜껑을 열지 말고 이 돌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알아맞히라고 하시는구나.” “아니 어찌 사람이 뚜껑도 열어 보지 않고 상자 안에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단 말입니까?” “당나라 황제가 우리를 시험하려고 보낸 것이다. 만약 맞히지 못한다면 당나라는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텐데 큰일이로구나.” 나 승상은 밤새 애를 태웠습니다.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알아내지 못하면 당나라가 쳐들어올 것이고, 만약 뚜껑을 연다면 그것 또한 트집 잡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치원은 나 승상의 집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제가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맞히면 따님과 혼인하도록 해 주십시오.” 나 승상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의지가 굳고 총명해 보이는 최치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습니다. “좋다. 하지만 맞히지 못할 때는 크게 혼날 줄 알아라.” 최치원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상자 안의 둥근 물건은 반은 희고, 반은 황금색이로다. 아침마다 때를 알아 울려고 하지만 아직 소리를 내지 못하는구나. 나 승상은 최치원이 지은 시를 임금에게 바쳤고, 시는 곧 당나라 황제에게 전해졌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도다. 하지만 과연 신라에는 뛰어난 인물이 있음을 알겠구나.” 최치원의 시를 읽은 당나라 황제는 돌 상자를 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상자 안에서 병아리가 삐악삐악 울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래 상자에 넣은 것은 달걀이었지만 당나라에서 신라로, 그리고 다시 신라에서 당나라로 상자가 오가는 동안 여러 날이 지나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최치원이 지은 시에서 ‘반은 희고, 반은 황금색’이라고 한 것은 흰자와 노른자를 말한 것이며, ‘아침마다 때를 알아 울려고 하지만 아직 소리를 내지 못하는구나.’는 닭은 아침마다 울어 시간을 알리는데, 아직 병아리이니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뚜껑을 열지도 않은 채 안에 달걀이 있었고 그것이 병아리가 된 것을 맞힌 데 놀란 당나라 황제는 신하를 불러 명을 내렸습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이 누구냐? 만나고 싶으니 불러오도록 하라.” 당나라 황제의 명은 곧 신라에 전해졌고, 나 승상은 약속한 대로 최치원을 딸과 혼인시킨 다음 당나라로 보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어떤 섬 근처에 이르자 배가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인가요? 배가 나가질 못하네요.” “아마도 이 섬에 산다는 용의 장난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최치원은 갑판에 서서 바다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나는 임금님의 명을 받아 당나라로 가는 최치원이라 하오. 부디 길을 열어 배가 가도록 해 주시오.” 그러자 바다 속에서 흰옷을 입은 소년이 나타나더니 최치원이 타고 있는 배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용왕의 둘째 아들 이목이라고 합니다. 신라 최고의 학자를 모시고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참을 항해한 끝에 최치원 일행은 또 다른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섬은 몇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사람들이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용왕의 아들이니 비를 내릴 수 있을 터, 비를 내려 이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해 줄 수 없겠소?” 최치원의 말을 들은 이목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주문을 외우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굵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순식간에 마른 우물을 채우고, 죽어 가던 식물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섬의 주민들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푸른 옷을 입은 승려가 칼을 들고 나타나 이목을 죽이려 했습니다. 놀란 최치원이 승려 앞을 가로막으며 까닭을 물었습니다. 이곳에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하늘에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었소. 그런데 용왕의 아들인 이목이 마음대로 비를 내렸소. 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른 것이니 죽어 마땅하오. 최치원은 비를 내리도록 부탁한 자기에게 죄가 있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선인들의 도움을 받는 그대의 말을 거절할 수 없구려. 이목을 용서하리다.” 승려가 사라지자 이목은 최치원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습니다. “목숨을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당나라에 도착한 최치원은 이목과 헤어져 당나라 황제를 만났습니다. 당나라 황제는 어려운 문제로 최치원을 시험했지만 최치원은 모두 척척 풀어냈습니다. 또 최치원이 지나는 길에 함정을 파 놓았으나 최치원은 비켜 갔습니다. 밥에 독도 넣어 보았지만 먹지를 않으니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허, 과연 하늘이 내린 인물이로다. 어쩔 수가 없구나.” 며칠 후 과거가 치러졌습니다. 당나라 곳곳에서 모인 선비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학문을 겨루는 과거에 최치원도 참가했습니다. 최치원의 글은 다른 이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 당나라 황제는 최치원을 장원으로 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최치원이 당나라에 온 지도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나라에 불만을 품은 ‘황소’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황제는 최치원에게 군사를 이끌고 황소를 잡아 오도록 명했습니다. 최치원은 황소에게 글을 보냈습니다. 황소에게 알린다. 지금 나는 황제께서 내려 주신 군대를 거느리고 역적을 토벌하려는 것이지 너를 상대로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토벌하기에 앞서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너는 본래 시골에서 살던 평범한 백성이었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어 강도가 되고 또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어지럽히고 말았다. 게다가 흉한 욕심을 함부로 드러내 하늘이 정해 준 황제의 지위를 넘보는 데까지 이르렀다. 황제께서 계시는 도시와 궁궐을 무참히 짓밟았으니 그 죄를 하늘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밝은 해가 온 세상을 비추고 있는데 어찌 도깨비가 제멋대로 활동할 수 있으며, 황제의 군대가 칼을 뽑아 들었는데 역적이 어찌 목숨을 지킬 수 있겠느냐? 지금 내 밑에는 용맹스런 장수가 구름처럼 모여들고,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용사들이 소나기처럼 몰려온다. 네가 그들과 맞서는 것은 마치 활활 타는 용광로 속에 기러기 털을 넣는 것과 같고, 높이 솟은 태산 밑에 깔린 참새알과 같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보내 네 앞에 닥친 위급한 상황을 한 번 더 알려 주는 것이니, 고집을 버리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최치원의 글을 읽은 황소는 벌벌 떨며 스스로 최치원에게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놀라운 문장으로 흉악한 괴수를 단번에 굴복시킨 것입니다. 최치원이 이렇듯 공을 세우자 많은 이들이 최치원의 뛰어난 재주를 시기했습니다. “최치원은 동쪽의 작은 나라 출신인데도 자신의 재주만 믿고 거만하기 짝이 없나이다. 최치원을 멀리 귀양 보내소서.” 결국 당나라 황제의 명으로 최치원은 외딴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양을 가던 도중, 바다에서 금빛 용이 나타나더니 최치원을 등에 태우고는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용은 다름 아닌 이목의 본모습으로, 최치원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최치원이 고국으로 돌아오니 부인 나 씨가 최치원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서방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신라에 돌아온 최치원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치원은 부인과 식구들을 데리고 홀연히 가야산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도 최치원의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
서유기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아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오백 년 전 일입니다.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중국에 있는 화과산 꼭대기에 떨어졌습니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별똥별이 떨어지자 온갖 동물들이 몰려왔습니다. “저게 뭐지?” “글쎄, 난생 처음 보는 건데.” 처음에는 모든 동물들이 관심을 보이며 모여들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흥미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뜨거운 김을 내뿜던 별똥별은 차가운 바람과 비를 맞아 식으며, 모두에게 잊혀진 채 꼼짝도 않고 수백 년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백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쾅! 산을 뒤흔드는 엄청난 소리가 나며 바위가 갈라졌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에서 나온 것은 온몸에 금빛 털이 난 원숭이 한 마리였지요. 바위는 마치 달걀처럼 금빛 원숭이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려 오백 년 동안이나 돌 속에서 지낸 금빛 원숭이는 곧 다른 원숭이들과 어울렸습니다. 어느 날 즐겁게 뛰놀던 원숭이들은 폭포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야! 굉장한 폭포로구나. 과연 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줄기가 너무 세차서 가까이 갈 수 없겠는걸.” 다른 원숭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금빛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폭포 뒤에 다녀올 수 있어.” “네가 갈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만약 내가 다녀오면 어떻게 할래?” “너를 우리의 우두머리로 삼지.” 금빛 원숭이는 용감하게 폭포로 뛰어들었습니다. 엄청난 물줄기 뒤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었습니다. 폭포에서 나온 금빛 원숭이는 다른 원숭 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갔고, 약속한 대로 우두머리가 되어 모두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금빛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이 따오는 온갖 과일을 먹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금빛 원숭이는 우연히 산에 온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동물이로군.” “사람이라고 합니다. 산 아래 살고 있죠.” 나이 많은 원숭이가 답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금빛 원숭이는 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 세상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사는 세상에 내려가 보련다.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니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 사람이 사는 세상에 내려온 금빛 원숭이는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사람이 하는 말도 배우고 옷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산에 ‘수보리 조사’라는 유명한 도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기로 했지요. 며칠 동안 산을 헤맨 끝에 수보리 조사를 만난 금빛 원숭이는 사람 세상에서 배운 예의를 갖춰 절을 한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네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너를 제자로 삼겠다. 그리고 앞으로 너를 손오공이라고 부르겠노라. 하얀 수염을 기른 인자한 수보리 조사는 그날부터 손오공에게 무술은 물론 어떤 모습으로든지 변할 수 있는 일흔두 가지 변신술을 가르쳤습니다. 똑똑하고 용감한 손오공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술법을 다 배웠습니다. “오공아! 이제 마지막 도술을 가르쳐 주마.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법이다.” 수보리 조사가 주문을 외우자 하늘에서 흰 구름 한 조각이 날아왔습니다. 수보리조사는 가볍게 구름 위로 뛰어오르더니 새보다도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야! 정말 멋지구나.” 감탄한 손오공은 그날부터 구름 타는 법을 연습했고, 며칠이 지나자 아주 능숙하게 날아다 닐 수 있었습니다. 모든 술법을 익힌 손오공은 수보리 조사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스승님! 그동안 저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젠 고향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그래, 어려운 술법을 모두 배웠구나. 네가 배운 것을 좋은 일에 쓰도록 해라. 스승과 작별한 손오공은 술법을 써서 구름을 타고 고향인 화과산으로 향했습니다. 몇 년 동안 걸어온 길도 구름을 타고 가니 순식간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얘들아! 내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손오공을 본 원숭이들은 모두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셨습니까? 대장께서 산을 떠난 뒤 어디서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 저희를 괴롭혀서 말도 못 하게 고생을 했답니다.” “뭐라고? 괴물이 우리 원숭이들을 괴롭혔다고? 괘씸한 녀석을 당장 혼내 줘야겠구나.” “안 됩니다. 그 괴물은 몸집이 우리 원숭이보다 열 배는 더 크고 힘도 엄청 세거든요.” “하하하! 염려하지 마라. 일흔두 가지 변신술을 배운 몸이다.” 손오공은 구름을 타고 괴물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놈! 네가 우리 원숭이들을 괴롭힌다는 괴물이냐?” 손오공이 큰 소리로 꾸짖자 괴물은 기가 막힌다는 듯 손오공을 쳐다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손오공은 키가 괴물의 무릎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무술과 변신술을 익힌 손오공에게 괴물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괴물은 한 주먹에 나가떨어지고는 놀라서 그대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제 다시 평화가 왔어요. 역시 멋진 우리의 대장이에요.” 원숭이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손오공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훌륭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게 맞는 무기를 갖고 싶은데, 어디에 가면 구할 수 있을까?” 손오공의 물음에 나이 많은 원숭이가 대답했습니다. “용궁에 가면 있지 않을까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손오공은 즉시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용궁으로 갔습니다. 도술을 익혔기에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요. 용궁 문을 박차고 들어간 손오공은 용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화과산에 사는 원숭이 대장 손오공이라 합니다. 내게 맞는 훌륭한 무기를 얻고자 하니 주시면 고맙겠군요.” 물속에서도 마음대로 활동하는 손오공의 놀라운 술법에 용왕은 벌벌 떨며 무기 창고를 열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손오공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는지 심드렁하게 말했습니다. “쓸 만한 무기가 없군요. 다른 것은 없습니까?” “여의봉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일만 오천 근이나 된 다오.” 용왕은 떨리는 손으로 기둥처럼 커다란 쇠몽둥이를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손오공은 엄청나게 무거운 쇠몽둥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며 말했습니다. “무게는 적당한데 너무 크군. 조금만 작고 가늘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커다랗고 두꺼운 쇠몽둥이가 점점 줄어들더니 알 맞은 크기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의봉이라더니 참 신기하군. 주인이 원하는 대로 변하다니. 좋습니다! 이것을 가져가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무기와 어울리는 갑옷과 신발도 주면 고맙겠습니다. 용왕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황금 갑옷과 가죽신을 꺼내 주었습니다. 황금 갑옷을 입고 가죽신을 신은 손오공은 여의봉을 아주 작게 만들어 귓속에 넣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화과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손오공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머리에 뿔이 난 괴물 둘이 나타나 손오 공을 꽁꽁 묶더니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괴물들은 저승사자였고, 손오공을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이었습니다. 손오공은 수명이 다 되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일흔두 가지 변신술을 익혀 하늘과 땅이 있는 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나를 잡아 오다니.” 화가 난 손오공은 밧줄을 끊고 여의봉을 꺼내 마구 휘둘렀습니다. 그러자 손오공을 잡아 온 저승사자들은 물론 염라대왕도 벌벌 떨었습니다. 손오공은 원숭이의 수명이 적힌 책을 찾아 갈기갈기 찢어 버린 다음 구름을 타고 화과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 화과산에 사는 원숭이 중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죽지 않는 원숭이들이 생겼는데, 이것은 손오공이 원숭이들의 수명이 적힌 책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힘도 세고 술법도 부리는 손오공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보물인 여의봉을 빼 앗긴 용왕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용왕은 하늘을 다스리는 옥황상제에게 이 사 실을 알렸습니다. “용궁의 보물을 빼앗아 갔다니 아주 못된 녀석이로구나. 어떻게 해야 하지?” 옥황상제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지옥의 염라대왕에게서 보고가 날아들었습니다. “손오공이 지옥에 와서 행패를 부렸습니다. 원숭이들의 수명이 적힌 책을 찢어 버려서 저승사자들이 원숭이를 잡으러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니, 용궁도 모자라 지옥에서도 난리를 치다니 이 녀석을 혼내 줘야겠다.” 옥황상제는 이랑신이라는 장수를 불렀습니다. 눈이 세 개인 이랑신은 옥황상제의 조카로, 나쁜 짓을 하거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귀신이나 괴물을 잡는 용감한 장군이었지요. “손오공이라는 원숭이가 용궁과 지옥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니 가서 혼내 주어라.” “네! 알겠습니다.” 옥황상제의 명령을 받은 이랑신은 군사를 이끌고 화과산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괘씸한 원숭이 녀석아! 네가 용궁과 지옥에서 행패를 부렸다고 하더구나. 하늘의 법을 무시한 죄로 네놈을 잡으러 왔으니 순순히 항복해라.” “허허! 이번에는 눈이 세 개나 달린 괴물이 왔네. 어디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시지.” 손오공은 큰소리를 치며 이랑신과 맞섰습니다. “말로는 안 될 녀석이로구나. 에잇! 내 칼을 받아라.” 이랑신은 머리가 셋, 팔이 여섯이 달린 모습으로 변해 손오공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손오공도 똑같이 머리가 셋, 팔이 여섯인 모습으로 변해 용궁에서 가져온 여의봉을 휘둘렀습니다. 하늘의 용감한 장수와 일흔두 가지 변신술을 익힌 손오 공의 싸움은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오공이 싸우는 동안 다른 원숭이들은 모두 이랑신의 부하들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비겁하게 다른 원숭이들은 왜 잡아가는 거냐?” “너뿐만 아니라 원숭이는 모두 죄가 있으니 잡는 것이다.” 원숭이들이 잡혀가자 불리함을 느낀 손오공은 참새로 변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자 이랑신은 사나운 매로 변해 손오공을 쫓았습니다. 산골짜기로 도망친 손오공은 집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꼬리만은 감출 길이 없어 깃대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손오공이 갑자기 사라지자 주위를 둘러보던 이랑신은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하! 원숭이 녀석아, 변하려면 똑바로 변해야지. 세상에 깃대를 밖에 세워 두는 집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랑신은 바위로 변해 집을 부수려 했습니다. ‘이크! 창문은 눈이고, 대문은 입인데 바위에 맞으면 큰일 나겠군. 할 수 없다. 도망쳐야지.’ 놀란 손오공은 다시 독수리로 변해 하늘로 달아났습니다. 한참을 달아나던 손오공은 옥황상제가 있는 궁궐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가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인가? 잘 되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옥황상제를 만나 따져야지.” 성큼성큼 궁궐 안으로 들어간 손오공은 옥황상제를 보자 다짜고짜 따졌습니다. “왜 나를 잡아가려는 거요?” “어허, 네놈이 고약한 원숭이 손오공인가 보구나. 네가 용궁의 보물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지옥에서도 행패를 부렸다기에 혼내 주려 한 것이다.” 옥황상제의 말에 화가 난 손오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의봉 같은 보물은 나처럼 훌륭해야 가질 수 있는 법이오. 그리고 나처럼 훌륭한 이를 오래 살게 하지는 못할망정 저승사자를 시켜 잡아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이때 옥황상제의 참모인 태백 금성이 나와 말했습니다. “손오공은 비록 원숭이지만 오랜 수련으로 도술을 익혀 신선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만약 손오공과 싸운다면 하늘의 군사들도 적지 않게 다칠 것입니다. 차라리 손오공에게 적당한 벼슬을 주어 식구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은 생각이구나. 그러면 어떤 벼슬이 적당할까?” “마침 필마온 자리가 비었습니다.” “되었다. 손오공에게 필마온 벼슬을 내린다. 손오공을 일하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하라.” ‘과연 태백 금성은 내 재주를 알아보고 대접을 하는군.’ 손오공은 자기에게 벼슬을 준다니 기분이 좋아져 어깨를 으쓱하며 태백 금성에게 물었습니다. “필마온은 어느 정도로 높은 벼슬이오?” “높다고 할 건 없지요. 천마를 돌보는 것이니까.” “뭐라고? 말을 돌보는 것이라고? 그러면 마구간 지기라는 얘기 아니오? 이런 괘씸한! 천하의 손오공을 어떻게 보고 마구간 따위를 지키라고 해!” 화가 난 손오공이 여의봉을 꺼내 막 휘두르려는 순간, 옥황상제의 손님으로 와 있던 부처님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손오공! 네가 무엇이 훌륭하단 말이냐?” “나는 일흔두 가지 변신술을 할 수도 있고 구름을 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십만 팔천 리를 날아갈 수도 있으니 당연히 훌륭하지요.” 어느새 거인으로 변한 부처님은 손오공에게 자신의 손바닥 위로 오르도록 했습니다. “네가 갈 수 있는 만큼 멀리 가 보아라. 그래서 내 손바닥을 벗어나면 너는 자유이고, 벗어나지 못하면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좋소. 그까짓 것쯤이야.” 손오공은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구름을 불러 타고 날아갔습니다. 한참을 날아가다 보니 멀리 산봉우리 다섯 개가 보였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세상의 끝인 모양이군. 그러면 내가 다녀갔다는 증거를 남겨야지.” 손오공은 술법을 부려 여의봉을 붓으로 변하게 한 다음, 가운데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손오공 다녀가다.’라고 쓰고 다시 구름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손오공이 돌아오자 부처님이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그래, 너는 어디까지 갔다 왔느냐?” “나는 세상의 끝까지 다녀왔소. 그곳에는 봉우리가 다섯 개나 되는 산이 있었는데, 가운데 산봉우리에 내가 다녀갔다고 써 놓고 왔다오.” 자랑스럽게 말하는 손오공에게 부처님은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운데손가락에 ‘손오공 다녀가다.’라고 써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자신이 쓴 것이었습니다. 손오공은 결국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자,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약속대로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안 돼. 이런 엉터리 약속은 지킬 수 없어.” 손오공은 억지를 부리며 여의봉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손오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부처님을 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틈엔가 부처님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 것입니다. 손오공을 붙잡은 부처님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는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부처님은 손오공을 땅에 내려놓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커다란 산 하나가 날아와 손오공의 등을 내리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산은 마치 나무처럼 뿌리를 내려 손오공을 꼼짝 못 하게 가두었습니다. “아야! 잘못했어요. 그런데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오백 년이다.” “그렇게 오랫동안이나요? 그러면요?” “누군가 나타나 너를 구해 줄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부처님은 산을 다스리는 산신을 불러 말했습니다. “이 원숭이 녀석이 배가 고프다 하면 쇳덩이를 주고, 목이 마르다 하면 쇠를 끓여 녹인 물을 주시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녀석이니 철저히 감시하시오.” 부처님이 떠나간 뒤 손오공은 도망쳐 보려고 애를 썼지만 무거운 산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백 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손오공 앞에 스님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네가 못된 짓을 해서 부처님께 벌을 받고 있는 손오공이냐?” “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요?” “나는 황제의 명을 받아 백성들을 위해 불경을 가지러 천축으로 가는 삼장 법사다. 너를 구해주면 나를 따라 천축으로 가겠느냐?” “물론이죠. 구해만 주신다면요.” 삼장 법사가 주문을 외우자 손오공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산이 사라졌습니다. 자유를 얻은 손오공은 삼장 법사에게 큰절을 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니까요. 손오공이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습니다. “자, 천축으로 가시죠. 말은 제가 끌겠습니다.” 그렇게 손오공은 천축으로 가는 여행의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습니다. |
삼국지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후한이 끝나 가는 영제 때, 나라를 다스리는 조정은 어지러웠고, 돈 주고 벼슬을 산 관리들이 힘없는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아주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강은 차갑구나. 장사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 전국 시대 협객 형가의 노래로 유명해진 역수 강 가에는 작은 초가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학문이 높은 노식이라는 선비가 인재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식은 아끼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내 이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여강 태수로 부임할 터인데, 너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뒷날을 위하여 당부할 말이 있어 부른 것이다.” 단정히 앉아 노식의 말을 듣고 있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입을 열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 부드러운 인상에 맑고 깊은 눈, 두툼한 귀가 어깨까지 축 늘어진 그는 유비라는 제자였습니다. 황실의 먼 친척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벼슬을 했지만 유비는 홀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엮어 생활하고 있었습 니다. “지금 나라는 어지럽기 짝이 없다. 몇 년 전 태평경을 얻었다는 장각이란 자가 만든 태평도에서 생긴 황건적 무리가 전국을 누비고 있으니 큰일이로다. 권세란 재물과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지는 법이다. 이미 말했듯이 태평도 무리 역시 이대로 세력이 불어나면 조정을 얕보게 되고, 마침내는 천하를 넘볼 것이 뻔하다. 이것이 내가 근심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저희가 해야 할 바는 무엇이옵니까?” “곧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엄청난 혼란이 닥칠 것이다. 너희는 이제 내가 없더라도 계속 공부를 하고 힘을 길러 흔들리는 우리 한의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과연 노식의 예상대로 태평도 무리는 곳곳에서 나타나 군사들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머리에 노란 띠를 둘렀기에 황건적이라고 불렸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전쟁 때문에 백성들은 몹시 힘들었지만, 무능한 황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술만 마시며 잔치를 벌여 놀기를 일삼았습니다. 이런 황제 밑에 있는 군대가 강할 리 없었습니다. 군사들은 황건적을 만나면 도망치기 바빴고, 황건적의 세력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시골의 작은 고을 유주를 다스리는 태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을을 지키고자 훌륭한 인재를 모집한다는 방을 붙였습니다. 방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총명한 눈빛에 맑은 인상의 청년은 귀가 어깨까지 늘어질 정도로 컸고, 팔도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다름 아닌 유비였습니다. 유비는 스승 노식의 말에 따라 학문과 무예를 닦는 한편 뛰어난 인물들과 가까이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비는 많은 인물들과 사귀었고 그 가운데 장비라는 호걸이 있었습니다. 장비는 힘이 엄청난 장사인 데다가 무예도 뛰어났지만 술버릇이 고약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장비는 자기를 잡으려는 포졸들을 혼내 주었지요. 그 일로 장비는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고을을 다스리는 태수가 마침 유비와 함께 노식 선생 밑에서 공부한 인물이었기에 유비가 간절히 애원하여 구해 주었습니다. 평소 장비의 뛰어남을 눈여겨보던 유비는 작은 실수로 인재가 죽음을 당한다면 큰 손해라고 여겨 구해 준 것입니다. 이 일로 장비는 유비를 친형처럼 따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동안 갈고 닦은 무예로 황건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해야겠다.’ 유비가 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말했습니다. “유비 형님! 큰일 났습니다. 장비 형님이 누군가와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비는 급히 청년의 뒤를 따라 싸움이 벌어진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고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서는 장비와 이름 모를 사내가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차라리 아름답다고 할 만큼 화려했습니다. 장비가 성난 호랑이 같다면, 긴 수염을 휘날리며 맞서는 상대는 구름에 몸을 반쯤 감춘 용과 같았습니다. 장비가 태풍처럼 긴 창을 휘둘러 공격하면, 상대는 번개같이 청룡도를 움직여 이를 막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유비는 장비와 맞서 싸우는 상대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습니다. “두 분은 잠깐 싸움을 멈추시오.” 유비의 외침에 두 사람은 한 발씩 물러 서서 무기를 거뒀습니다. “형님! 마침 잘 오셨소. 내 이 녀석을 혼내 줄 테니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오.” 유비를 본 장비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어허, 물러서 있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유비는 장비를 호통한 뒤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관 공도 잠시만 노여움을 거두시오. 무예를 겨루는 일은 먼저 시비를 가린 뒤에라도 늦지 않으니까.” 상대가 놀란 얼굴로 유비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대체 누구신데 나를 아시오?” “몇 해 전 노식 스승님 아래서 공부를 하지 않으셨는지요?”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요. 잠깐 다니다가 말았으니까요.” “하루를 배웠더라도 스승은 스승이지요. 그러니 관 공과 나는 동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는 탁현에 사는 유비라고 합니다.” “아, 유 공! 말을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유 공에 대한 소문을 듣고 저도 한번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요. 그런데 이 망나니와는 아시는 사이입니까?” “망나니라니? 이 녀석이 아직 혼이 덜 났군그래.” 장비가 다시 창을 고쳐 잡으며 소리쳤습니다. 유비는 장비를 가로막으며 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제 아우 장비입니다. 뜻이 맞아 몇 해 전부터 사귀고 있지요. 그건 그렇고 두 분은 왜 싸우게 되었습니까?” “장사꾼이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와 때는 나라도 간섭을 않는 법이오. 내가 이곳에 와서 말을 팔려고 했더니, 저 장비란 녀석이 이곳에서는 자기만이 말을 팔 수 있다며 막았소. 그래서 혼을 내 주려 한 것이오.” “물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요. 허나 우리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고 말 장사를 독점하는 대신 나라에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짐승이라도 자기 구역에서는 다름 짐승을 막는 법인데 하물며 장사를 하는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조금 성급했었던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내게 맡기시오. 반드시 창칼을 맞대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니.”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근처 술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무기를 맞대고 싸우던 두 사람이었지만, 둘 다 호걸이기에 유비가 중간에서 화해를 시키자 금세 친해져 술잔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덧 황건적의 행패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못된 무리가 날뛰어 대니 걱정이오. 나 혼자 어쩔 수도 없고.” 관우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수가 붙인 방을 보고 장비를 만나려던 참이었지요. 그런데 이 렇게 든든한 관 공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모두가 하늘의 뜻인 것 같소.” “그렇다면 유 공은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민병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조직적인 훈련을 하여 황건적에 맞서는 것이지요.” 유비의 말에 관우와 장비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습니다. “민병을 조직하여 훈련을 시키자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내가 나라에 세금을 내 가며 말 장사를 독점한 것은 모두 생각이 있어서요. 몇 해 동안 적지 않은 돈을 모았고, 또 전투에서 사용할 말도 충분하니 별 문제는 없소. 다만.” 유비가 말꼬리를 흐리자, 장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다만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참 답답하네요.” “군사들을 지휘할 마땅한 장수가 없었는데, 오늘 관 공과 같이 훌륭한 분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소?” “부족한 사람을 그토록 높이 보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관우의 말을 들은 장비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형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자, 이럴 게 아니라 모두 우리 집으로 옮 겨 한잔 더 합시다. 좋은 술과 안주가 있거든요.” 유비와 관우는 술집을 나와 장비를 따랐습니다. 장비의 집에 있는 넓은 마당에는 복숭아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었습니다. “날씨도 좋으니 마당에서 복숭아꽃 향기를 맡으며 술을 마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술과 안주를 내오겠습니다.” 장비는 곧 향기로운 술과 푸짐한 안주를 내왔고, 세 사람은 복숭아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소이다.” 술을 한 모금 들이킨 뒤 관우가 입을 열었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니 말해 보시구려.” 유비와 장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로를 만나, 뜻을 함께 하기로 하였으니 의형제를 맺으면 어떨까 합니다.” 관우의 말에 장비는 기쁜 얼굴로 답했습니다. “기왕이면 제사상을 차리고 하늘에 알리는 것이 어떻소?” 장비는 서둘러 제물을 준비하여 복숭아나무 아래에 상을 차렸습니다. 제사를 올리기 전에 세 사람이 나이를 비교해 보니 유비가 가장 많았고, 관우, 장비 순이었습니다. 맏형이 된 유비는 제사상 앞에서 엄숙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우렁 차게 외쳤습니다. “저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아우로 맞아 앞으로 변치 않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죽을 때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어 유비는 향을 피우고 절을 했습니다. 관우와 장비도 유비를 따라 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 세 형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큰 잔치를 열고 다음과 같이 알렸습니다. “우리 형제는 군사를 모아 나라를 어지럽히는 황건적과 맞서고자 합니다. 뜻과 용기를 지닌 사람들은 내일 다시 이곳으로 오십시오. 군사 훈련을 받고 나쁜 무리들을 무찌르도록 합시다.” 고을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너도나도 훈련을 받겠노라고 모였는데, 무려 오백 명이 넘었습니다. 또한 농사를 짓는 농민은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가져왔습니다. 옷감을 파는 상인은 군사들의 군복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관우와 장비는 훈련을 맡고, 유비는 모두를 지휘했습니다. 무예가 뛰어난 세 사람은 모두가 훌륭한 스승이자 장수였기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던 젊은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에 훌륭한 병사가 되었습니다. 훈련받는 군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유주의 하늘에 메아리쳤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삼 형제는 군사 훈련을 시키는 한편, 고을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유비는 커다란 두 자루의 칼을, 장비는 길고 무거운 사모라는 창을 만들었습니다. 관우는 창과 비슷하지만 칼날이 달려 적을 벨 수도 있는 청룡언월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보통 사람은 들 수도 없었지만, 관우는 한 손으로 자유롭게 휘둘렀습니다. 어느 정도 훈련을 마치자 유비, 관우, 장비는 유주를 다스리는 태수를 찾아갔습니다. “황건적에게 맞설 민병 오백 명을 데려왔습니다. 훈련도 웬만큼 되어 있으니 황건적과 맞서 싸워도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태수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성 밖 산 아래에 황건적 무리가 모여 있소. 곧 우리 고을로 쳐들어오려는 것 같으니 가서 그들을 막도록 하시오.” “우리 민병대의 솜씨를 보여 줄 때로군요. 반드시 적을 무찔러 보이겠습니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민병 오백을 이끌고 성문을 나섰습니다. 과연 산 아래에는 황건적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유비가 말을 탄 채 외쳤습니다.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고생시키는 반역의 무리들아! 항복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너는 대체 누군데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느냐? 우선 나와 맞서 보자.” 황건적 가운데 장수로 보이는 한 사내가 칼을 빼 들고 달려왔습니다. 이에 장비가 창을 거머쥐고 나섰습니다. “형님! 저런 조무래기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장비의 솜씨는 놀라웠습니다. 창을 몇 번 휘두르더니 상대 장수를 말에서 떨어뜨렸습니다. “와아!” 장비가 상대를 단숨에 꺾자 민병대는 일제히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황건적 대장 정원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정식 훈련을 받은 나라의 군사들도 노란 깃발만 보면 벌벌 떨며 달아나는데, 농민과 장사꾼으로 이루어진 민병대 장수에게 창피한 꼴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정원지는 누구에게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자기가 직접 칼을 빼 들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유비 곁에 있던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움켜쥐며 달려 나갔습니다. “아우! 자네는 이미 적의 장수를 쓰러뜨렸으니 이번에는 내가 상대하지.” 관우가 장비에게 말하자, 장비는 말을 몰아 뒤로 빠졌습니다. 관우가 싸울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정원지는 성난 사자처럼 소리를 지르며 사납게 칼을 내리쳤습니다. “이얏!” “으랏차!” 관우도 이에 맞서 기합을 내뱉으며 청룡언월도를 휘둘렀습니다. 챙챙!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몇 번 나는가 싶더니 정원지는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애당초 관우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와아!” 민병대는 또다시 함성을 질렀고, 그때까지 하늘 아래 자기들 대장이 가장 강하다고 여겼던 황건적 무리는 완전히 혼이 빠진 듯 싸워 볼 생각도 못 하고 무기를 내던지더니 뿔뿔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공격하라!” 때를 놓치지 않고 유비가 군사를 이끌고 달아나는 적을 덮치니, 감히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황건적들은 살려 달라며 항복을 했습니다. 민병대의 완전한 승리였고, 의형제를 맺은 세 사람에게는 서로를 확인하는 값진 기회였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늘 넉넉한 웃음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하던 맏형 유비가 그토록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비는 두 아우의 용맹과 무예를 확인한 것입니다. 민병대 또한 짧은 시간 훈련을 받았지만 염려하던 것과는 달리 눈부신 활약을 했으니 정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태수는 민병대의 첫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수고했소. 덕분에 유주성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소. 그런데 근처 청주성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 왔구려.” “염려 마십시오. 저희가 가서 돕겠습니다.” “오, 그래 주겠소? 정말 용감한 장수들이구려.”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청주성으로 달려간 유비, 관우, 장비 형제는 군사를 나누어 사방에서 적을 공격했습니다. 유비의 뛰어난 전술대로 용감한 관우와 장비가 이끄는 군대는 단숨에 황건적을 무찔러 위험에 처해 있던 청주성을 구했습니다. 유비가 황건적을 무찌른 사실이 나라에 알려지자, 황제는 유비에게 현령 벼슬을 내렸습니다. “아니, 그렇게 많은 적을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웠는데 겨우 현령이라니요?” “장비의 말이 맞습니다. 이까짓 낮은 벼슬은 받지 마십시오.” 관우도 화를 내며 장비의 말에 맞장구쳤습니다. “아니다. 황제께서 내리신 벼슬이니 아무리 낮아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이다.” 유비는 현령이 되어 고을을 잘 다스렸고, 유비에 대한 소문을 들은 훌륭한 장수들 이 유비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훗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뛰어난 전략가 제갈공명을 참모로 두고 많은 훌륭한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촉나라를 세웠습니다. 촉나라는 조조가 다스리는 위나라, 손권이 다스리는 오나라와 함께 천하의 주인이 되려고 서로 경쟁하며, 삼국 시대를 엽니다. 시골에 묻혀 지내던 장수 셋이 복숭아나무 밑에서 맺은 의형제의 결의가 이처럼 큰 업적을 이룰 줄 누가 알았을까요? 때문에 이 세 형제의 의리와 무용담은 지금까지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대륙의 지식인. 나관중은 대략 1300년에서 1400년 사이에 활동한 중국의 문인입니다. 당시 원 나라가 몰락하던 중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스러웠지요. 정의감이 투철 했던 나관중은 농민 군대에 참가하여 부패한 원나라 정부와 싸웠습니다. 농민들로만 이루어진 의병 군대에서 학식이 깊었던 나관중은 자연히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관중이 왕위를 노렸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관중이 이렇게 의병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부패한 정치와 올바르지 않은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건전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삼국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지러운 시기에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이 정의와 용기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나관중은 단지 책상 앞에서 글만 읽기보다는 개혁의 길을 택한 용기 있는 지식인이었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 중국 명나라 초기에 완성된 삼국지는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와 함께 중국의 4대 소설로 꼽힙니다. 원래의 제목은‘삼국지연의’이고, 제목이 같은 진수의 역사책 삼국지를 기초로 하여 어느 정도의 허구를 섞어 창작 해 낸 장편 역사 소설입니다. 삼국지는 오늘날 교양을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인식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국지에 담긴 충성, 의리, 신의, 정의 같은 도덕적인 행동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중요한 인기 비결입니다. 사실 삼국지의 중심 인물인 유비와 관우는 실제로 중국 역사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유비는 촉의 왕이 되었고, 관우는 현재 많은 중국인들이 영웅 신으로 모시는 대상입니다. 이 영웅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인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엮어 예술적인 소설로 완성시킨 것이 삼국지이지요.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 삼 형제가 평화를 위해 겪는 치열한 전쟁과 시련이 주된 이야기를 이루는 삼국지를 통해 영웅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
봉신연의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중국의 전설적인 요 황제가 나라를 다스릴 적에, 하늘에 태양이 열 개나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도 아닌 열 개나 되는 태양 빛으로, 물이 마르고 땅이 갈라졌으며 식물들은 시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아 헤맸지만, 모든 물이 말라 버렸고, 너무도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숲에 살던 사나운 짐승들은 물을 찾아 헤매거나 더위를 피해 다니다가 마을까지 내려와 사람들을 습격했습니다. 열 개의 태양은 동쪽 하늘을 다스리는 준 황제의 아들들로,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준 황제의 아들들은 동해 건너 탕곡 근처에 있는 커다란 뽕나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이들이 한 명씩 한나절 동안만 뽕나무에 앉아 있어서 낮과 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준 황제의 아들들은 열 명이 한꺼번에 뽕나무로 올라가더니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에는 열 개나 되는 태양이 온종일 떠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되었고, 세상에는 밤조차 사라진 것입니다. “황제 폐하, 백성들이 태양 때문에 살지 못하겠다며 궁 밖에서 슬피 울고 있습니다.” 한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요 황제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요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천제께 제사를 지내도록 하옵소서.” “그래, 정성껏 제사를 올려야겠구나.” 제단을 높이 세우고 하늘에 올릴 많은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요 황제는 제단에 올라가 향을 피운 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정성껏 기도드렸습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천제님! 제발 백성들이 예전처럼 편히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요 황제의 기도를 들은 천제는 지혜가 뛰어난 태백금성에게 물었습니다. “준 황제의 아들들 때문에 지금 아래 세상은 야단이로구나. 어찌하면 좋겠느냐?” 태백금성이 말했습니다. “신 가운데서도 젊고 용감한 후예를 불러 일을 맡기심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즉시 후예를 부르도록 하라.” 후예는 활 솜씨가 뛰어난 신이었고, 후예의 부인은 여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상아였습니다. “후예! 요 황제가 기도하고 있구나. 네가 세상으로 내려가서 요 황제를 돕도록 하라.” 천제의 명을 받은 용감한 후예는 아름다운 부인 상아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후예와 상아가 산을 수십 개 넘고 강한 태양 빛으로 바짝 말라 버린 강을 건너 넓은 들판에 도착하니, 타는 듯한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괴물들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후예는 먼저 독수리 머리에 용의 몸을 한 괴물 설유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습니다. 설유가 떨어지자 다른 괴물들이 후예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몸은 새이고 얼굴은 사람인 탁비, 머리가 둘 달린 새 유조,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물고기 문요 등과 맞닥뜨린 후예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화살을 재어 날렸습니다. 후예의 화살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어, 날뛰던 괴물들을 모두 꿰뚫었습니다. 괴물들을 처치한 후예는 다시 길을 재촉하여 동해의 탕곡에 이르렀습니다. 탕곡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있었고, 다리 셋 달린 까마귀 모습을 한 준 황제의 아들들이 가지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천제의 명을 받고 온 후예라고 하오. 여러분 때문에 물이 마르고 땅이 갈라져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도 살 수 없게 되었소. 부디 예전처럼 낮 동안만 세상을 비춰 줄 수 없겠소?” “누가 감히 황제의 아들인 우리에게 명령한단 말이냐? 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고.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오. 그렇다면 나는 활을 쏠 수밖에 없소. 알아 두시오, 내 화살은 결코 목표물을 빗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헛소리 마라!” 준 황제의 아들들은 후예를 비웃으며 더욱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그 뜨거운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사람들과 짐승들이 곳곳에서 쓰러졌고, 바짝 마른 나무들은 금방이라도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하하하! 어떠냐? 우리의 힘이!” 그 모습을 본 후예는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손에 잡고 화살을 재었습니다.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첫 번째 태양을 맞혔습니다. 첫 번째 태양은 땅으로 떨어지며 차갑게 식었습니다. 후예는 계속 화살을 쏘았고, 태양은 차례차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태양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후예는 활에 화살을 재어 겨냥했습니다. “안 됩니다. 저 태양마저 쏘아 떨어뜨린다면 세상은 온통 어두워질 것이고, 동물과 식물은 모두 추워서 얼어 죽을 것입니다.” 상아가 후예를 말렸습니다. “그것도 그렇군. 알겠소. 하나는 남겨 두리다.” 후예는 겨누던 활을 거뒀습니다. 밤낮없이 내리쬐던 태양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식물은 되살아났고 동물도 기운을 차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에는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후예는 칭찬을 기대하며 하늘로 돌아갔지만, 뜻밖에도 천제는 호통을 치며 후예를 꾸짖었습니다. “가서 사람들을 도우라고 했지. 누가 준 황제의 아들들을 죽이라고 했느냐? 준 황제는 아들 아홉이 죽어 지금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다.” “저는 사람과 세상을 위해 못된 까마귀들을 없앤 것뿐입니다.” “이런 괘씸한! 잘못을 빌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네가 무척 잘한 것으로 알고 있구나.” 천제님! 저는 인간을 구한 것입니다. 인간이 모두 죽는다면 하늘에 제사는 누가 올립니까? “시끄럽다. 너는 이제부터 하늘에서 살 수 없다. 당장 신의 옷을 벗고 사람의 세상으로 내려가거라.” 하늘에서 쫓겨난 후예와 상아는 사람들 틈에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신이 아닌 후예와 상아는 구름을 타고 다닐 수도 없었고, 사람들처럼 추위와 더위를 느끼고 밥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을 뽐내던 상아에게는 고생스러운 생활보다 점점 늙어 간다는 사실이 더 큰 걱정이었습니다. 신으로서 하늘에서 살 때는 생명이 영원했으므로 결코 나이를 먹지 않았습니다. ‘아, 이제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처럼 얼굴에 주름이 생기겠지. 하늘에서 살 때는 결코 늙지 않았는데.’ 상아는 날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고, 후예는 그러한 상아를 보며 걱정에 잠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예는 곤륜산에 사는 여신 서왕모가 신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단이란 신이 만든 약으로, 한 알을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고 두 알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후예는 상아가 아름다움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상아를 위해 신단을 구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여보, 내가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 님께 부탁하여 신단을 얻어 오겠소.” “곤륜산으로 가는 길은 무척 험하고 멀다던데, 조심하세요.” 후예는 상아와 작별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곤륜산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험했습니다. 더구나 신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길을 가자니 후예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나무나 바위 위에서 잠을 잤고, 열매를 따 먹거나 작은 짐승을 사냥해서 굶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비록 사람이 되었지만, 예전의 활 솜씨는 여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활이 있으면 후예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산을 몇 개 넘고 강을 몇 개 건넜는지 모릅니다. 후예의 발바닥은 수십 번이나 벗겨지기를 되풀이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곤륜산이 보였습니다. 흰 구름으로 둘러싸여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산은 여신 서왕모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후예는 힘을 다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작은 토끼에서부터 커다란 곰, 사나운 호랑이까지 만났지만, 어느 짐승도 후예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신선이 사는 곳이로군. 짐승들이 덤벼들지 않으니 나도 사냥하지 말고 나무 열매나 먹어야겠다.” 열매를 먹고 흐르는 냇물을 마시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후예는 간신히 곤륜산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서왕모의 궁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후예는 근처 냇물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조심스럽게 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후예가 거룩하신 서왕모 님을 뵙고자 왔나이다.” 후예는 높은 의자에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서왕모에게 무릎 꿇고 절을 했습니다. “그대 이름은 이미 알고 있다. 활을 잘 쏜다지.” “작은 재주일 뿐입니다.” “그대가 동해 준 황제의 아들들을 쏘아 죽인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 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천제의 노여움을 사서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그동안 고생한 것으로 어느 정도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서왕모는 자신이 만든 사람의 편을 들어 준 후예를 돕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천제에게 쫓겨난 후예를 다시 신으로 되돌릴 능력은 없었습니다. 내가 만든 신단 한 알을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고, 두 알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알밖에 없구나. 이 신단을 줄 터이니 가지고 돌아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좋은 날을 택해 아내와 나눠 먹도록 해라.” “정말 고맙습니다, 서왕모 님.” 후예는 서왕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절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신단을 받았습니다. 만약 후예가 신단 네 알을 얻었다면 상아와 두 알씩 나눠 먹고 다시 신선이 될 수 있겠지만, 두 알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한 알씩이라도 먹으면 하늘과 땅이 있는 한 영원히 살 수가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후예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여보, 내가 돌아왔소.” “어머나! 돌아오셨군요.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지요?” 상아가 얼굴에 웃음을 띠며 후예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서왕모 님께 신단 두 알을 얻어 왔소. 한 알을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고, 두 알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이라오. 네 알을 얻었더라면 좋으련만. 그래도 두 알을 얻었으니 한 알씩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을 거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영원히 살 수 있다니 무척 기뻐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신단을 먹읍시다. 나는 잠시 눈을 붙여야겠소.” 한시라도 빨리 상아를 만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달려온 후예는 너무 지친 탓에 눕자마자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후예는 꿈을 꾸는지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거렸습니다. 그 바람에 품에 간직하고 있던 신단 두 알이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놀란 상아는 얼른 신단을 집어 들었습니다. 금빛 신단은 밝게 빛났고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신단을 손에 든 상아는 좋은 향기를 맡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알을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영원히 살 수 있을 뿐 세월이 흐르면 늙을 것 아닌가? 나도 주름이 많은 할머니가 되겠지. 하지만 두 알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했어. 신선은 결코 나이를 먹지 않으니 계속 젊은 모습으로 지낼 수 있을 텐데. 상아는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면 신단 두 알을 다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신단은 두 알밖에 없으니, 후예와 한 알씩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알만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을 뿐 아름다운 얼굴은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겠지요. 자신을 위해서는 두 알을 먹고 싶지만, 신단을 구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먼 길을 다녀온 후예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예는 지금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상아가 신단 두 알을 다 먹더라도 알 수 없겠지요. 결국 상아는 아름다움을 간직하려는 욕심에 혼자서 신단 두 알을 모두 먹고 말았습니다. 상아는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털보다 더 가벼워진 상아는 저절로 떠올라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날아오른 상아는 계수나무 한 그루만 외로이 서 있는 어딘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하늘나라에서는 얼음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달이었습니다. “어머! 내가 어째서 달까지 왔지?” 그때 하늘에서 천제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어리석은 상아야! 그깟 아름다움을 간직하려고 후예가 온갖 고생을 하며 서왕모에게 얻어 온 신단을 혼자 먹어 버렸구나.” “후예가 준 황제의 아들들을 활로 쏘아 죽인 죄는 크지만, 사람을 이롭게 했기에 어느 정도 고생을 시킨 다음 다시 하늘로 불러들이려고 했노라. 하지만 인간 세상에 살다가 갑자기 하늘로 올 수 없기에 서왕모에게 신단을 주어 세상의 나쁜 기운을 씻어 내도록 한 것이었다. 신단을 한 알씩 먹고 얼마 안 있으면 용을 보내 너희를 하늘로 데려오려 했는데, 너는 그만 욕심을 내어 두 알을 모두 먹고 말았구나.” “아! 천제님. 용서해 주십시오.” “이미 늦었다. 이제 너는 아주 흉한 모습이 되어 차가운 얼음 궁전에서 외롭게 지내야 한다. 그리고 네 남편 후예는 신단을 먹지 못했으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사람들 틈에서 살아야 한다.” “흑흑! 모두 제 잘못입니다.” 상아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상아의 아름답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보기 흉한 두꺼비 한 마리만 남아 있었습니다. 중국인의 상상력이 빚어내다. 중국에서 봉신연의는 기서로 불립니다. ‘기서’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마술과 도술 등이 신비롭게 어우러진 이야기책을 말하는데,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도 기서입니다. 괴력을 지닌 삼국지와 수호지의 영웅들, 신기한 도술을 부리는 서유기의 손오공과 요괴들은, 오늘날 판타지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봉신연의는 명나라 때, 육서성이라는 사람이 지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육서성이 봉신연의를 창작했다기보다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모아 집대성했다고도 합니다. 신선과 도사, 영웅이 나오는 기서들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 널리 유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고 불안한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이유에서이지요. 동양을 대표하는 판타지의 원류 봉신연의는 은나라와 주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설화, 도술 이야기가 등장하는 고대 장편 소설입니다. 고대 중국 왕조를 무대로 도사 태공망이 신선 세계와 인간 세계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 책에 실린‘후예와 상아’ 이야기는 봉신연의의 방대한 내용 중 극히 일부분입니다. 봉신연의에는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과 괴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의 모습을 한 열 개의 태양, 독수리 머리에 용의 몸인‘설유’, 몸은 새요, 얼굴은 사람인‘탁비’, 머리가 둘 달린 새‘유조’,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물고기 ‘문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서왕모의 신기한 약‘신단’ 등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 문학 전문가들은 봉신연의를 서양에서 판타지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그리스 신화와 자주 비교하곤 합니다. 그만큼 봉신연의는 중국은 물론 동양을 대표하는 판타지 문학의 원류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지요. |
두자춘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어느 봄날 저녁 당나라 동쪽 수도인 뤄양의 성문 아래에서 한 젊은이가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젊은이의 이름은 두자춘, 얼마 전만 해도 뤄양에서 손꼽히는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두자춘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다른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호화스런 생활을 하며 자랐습니다. 밥을 굶는다거나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지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두자춘은 돈을 흥청망청 썼습니다. 값비싼 보석을 마구 사들였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한 젓가락만 먹으면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마구 쓰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전 한 푼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자춘은 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픈데, 잘 곳도 마땅치 않으니 걱정이로군.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문득 두자춘은 자기 앞에 길게 드리워진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수염이 하얀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낯선 노인은 친근한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날은 저물었는데 밥을 먹지 못해 배는 고프고, 더구나 오늘 밤을 보낼 곳도 없어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래? 어째서 그런 불쌍한 신세가 되었나?” 두자춘은 뤄양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던 자신이 빈털터리가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자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 주겠네. 자네가 앉은 곳에서 일어서면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질 것이네. 그림자 머리 부분의 땅을 파 보도록 하게. 아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네. 어느 틈엔가 노인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자춘은 노인이 한 말을 새겨보았습니다. “내 그림자 머리 부분의 땅을 파 보면 좋은 일이 있다고? 과연 정말일까? 그래, 속는 셈 치고 한번 파 보자.” 두자춘은 달빛을 받아 땅에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그림자 머리 부분의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그다지 깊게 판 것도 아닌데, 나뭇가지 끝에 무언가가 걸렸습니다. 서둘러 더 깊게 파 보니 커다란 궤짝이 나왔습니다. 두자춘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조심스럽게 궤짝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안에는 황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노인이 일러 준 대로 땅을 파서 황금이 가득 들어 있는 궤짝을 발견한 두자춘은 다시 뤄양에서 으뜸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두자춘은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황제도 부럽지 않은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면 온갖 진귀한 음식이 상에 올라왔지만 한두 젓가락만 먹고 모두 버리기 일쑤였고, 외국에서 들여온 값진 비단으로 만든 옷이 아니면 입지 않았습니다. 두자춘이 다시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날마다 찾아왔습니다. 두자춘은 그 사람들과 어울려 잔치를 열었습니다. 두자춘이 여는 잔치는 호화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구하기도 어려운 재료로 만든 온갖 음식과 외국에서 가져온 귀한 술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뤄양에서 제일가는 악사들을 불러 음악을 연주하도록 했습니다. 우스꽝스런 광대와 인도에서 온 마술사의 공연도 열렸고, 잔치가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푸짐한 선물을 주어 보냈습니다. 하지만 깊은 우물도 계속 물을 퍼내면 마르는 법입니다. 두자춘이 제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그토록 낭비를 했으니 재산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두자춘은 다시 돈 한 푼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날마다 두자춘의 집을 드나들며 우정을 자랑하던 사람들이나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여인은 모두 등을 돌렸고, 동전 한 닢 도와주는 사람 없었습니다. 두자춘은 다시 집도 없는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저녁, 두자춘은 뤄양 성문 아래 큰 나무에 기대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삼 년 전에 만났던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젊은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군.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배도 고프고 날도 추운데, 오늘 밤을 보낼 곳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안되었군. 그래, 어쩌다 그런 불쌍한 신세가 되었나?” 두자춘은 전에 노인이 일러 준 대로 땅을 파서 황금이 가득한 궤짝을 얻어 부자가 되었으나, 몇 년 만에 돈을 다 써 버리고 다시 가난하게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드리운 자네 그림자의 가슴 근처를 파 보게.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걸세.” 말을 마친 노인은 예전처럼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황금이 가득 든 궤짝을 얻을 수 있을까?’ 두자춘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두자춘 은 땅속에서 커다란 궤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궤짝 안에는 역시 황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두자춘은 다시 뤄양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쓰라린 경험을 했으면서도 두자춘은 예전처럼 돈을 마구 썼습니다. 두자춘이 돈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었을 때 등을 돌렸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찾아와 우정과 사랑을 얘기했고, 두자춘은 그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황제의 성 못지않게 화려한 두자춘의 집에서는 날마다 흥겨운 잔치가 열렸습니다. 언제나 향긋한 술이 있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겼으며, 즐거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두자춘은 다시 가난뱅이가 되었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깐! 말씀하지 마십시오.” 두자춘은 노인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왜 그러나? 부자가 되기 싫은가?” 노인은 이상하다는 듯 두자춘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부자가 되기 싫은 것보다 사람이 싫어졌습니다.” “오호, 왜 그렇지?” “부자일 때는 날마다 찾아와 우정을 맹세하던 친구나 사랑을 속삭이던 여인도, 제가 가난뱅이가 되니까 얼굴도 비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을 때만 찾는 사람들을 어찌 믿겠습니까?” 두자춘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가난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가?” “그건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 말해 보게.” 두자춘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노인께서는 도술을 익힌 신선이 틀림없습니다. 두 번씩이나 저를 도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만 이제 저는 어르신처럼 도술을 익혀 신선이 되어 보고 싶습니다.” 두자춘의 말을 들은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다. 나는 아미산에 사는 철관자라는 신선이다. 몇 해 전에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영혼이 맑은 듯하여 부자로 만들어 준 것인데, 이젠 도술을 익혀 신선이 되고 싶다니 기특하긴 하다만 신선이 되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알고서 하는 소리냐?” “세상에 쉬운 일은 없겠죠. 그래도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두자춘의 말을 들은 철관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좋다, 네 청을 들어 제자로 삼으마.” “정말이십니까? 고맙습니다.” 두자춘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제자로서 스승에게 예의를 표한 것 이었죠. 신선이 되고 싶다면 내 말을 똑똑히 들어야 한다. 이제 나는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뵙고 올 테니 너는 저 바위 위에 앉아 기다리도록 해라.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 마디라도 한다면 신선이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말을 지켜야 한다. “알겠습니다. 절대 한 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두자춘은 굳은 마음을 품고 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로구나. 그럼 다녀오겠다.” 철관자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라 점이 되더니 곧 사라졌습니다. 두자춘은 스승인 철관자가 시킨 대로 바위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이 뒤숭숭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기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웬 놈이냐?” 두자춘은 놀랐지만 스승의 말이 생각나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없어질 줄 알아라.” 그래도 두자춘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좋다. 네가 이래도 말을 하지 않는가 보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집채만 한 호랑이가 눈에서 빛을 뿜으며 두자춘을 노려보았습니다. 게다가 머리 위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는 엄청나게 큰 뱀 한 마리가 붉은 혀를 날름대며 매달려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두자춘을 덮칠 수 있는 거리로 다가왔고, 팔뚝보다 굵은 뱀도 나뭇가지를 타고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두자춘은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어흥! 쉭! 호랑이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두자춘을 덮치려 했고,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뱀도 이에 뒤질세라 두자춘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두자춘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아 냈습니다. 잠시 후 두자춘은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자신은 호랑이에게 물렸거나 뱀의 굵은 몸뚱이에 감겨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었던 호랑이와 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헛것이었어. 스승님이 나를 시험해 보려 하신 거야.’ 그제서야 두자춘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는 엄청나게 쏟아졌고 번쩍이는 번개는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우르릉 쾅!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자춘이 앉아 있는 바위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벼락이 떨어진 곳에는 불기둥이 치솟았습니다. 굵은 소낙비가 내리는데도 불길은 점점 퍼져 두자춘이 앉아 있는 바위를 둥글게 에워쌌습니다. 불길은 점점 두자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온몸에서 땀이 흘렀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두자춘은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며 비명을 참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불길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한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사람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불길이 잦아들자 그 안에서 키가 거의 성문에 닿을 정도로 큰 거인이 나타났습니다. 황금으로 만든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커다란 칼을 든 거인은 성큼성큼 두자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너는 대체 누구이기에 신선만이 앉을 수 있는 바위에 앉아 있느냐?” 마치 천둥이 치는 듯 커다란 목소리에 고막이 울릴 정도였지만 두자춘은 눈을 똑바로 뜨고 거인을 바라볼 뿐 결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괘씸한 녀석!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다니. 계속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 목을 벨 테다.” 거인은 이렇게 말하며 커다란 칼을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그래도 두자춘이 입을 열지 않자 거인은 힘껏 칼을 내리쳤습니다. 휘익!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두자춘의 목을 향해 떨어졌습니다. 두자춘은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고, 황금 갑옷을 입은 거인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두자춘은 처음에 앉아 있던 바위가 아닌 난생처음 보는 곳에 와 있었습니다. 사방은 온통 뾰족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였고, 넓은 마당에는 많은 귀신들이 흉측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고 곳곳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슬픈 표정을 한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두자춘이 아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두자춘을 보자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귀신들에게 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이곳은 지옥이다. 네가 죽어서 이리로 온 것을 보니 죄가 많은 모양이로구나.” 높은 의자에 앉은 사람이 두자춘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눈이 부리부리했고 턱수염을 길게 길렀으며, 비단옷에 높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인 듯했습니다. “이제 네가 지은 죄를 낱낱이 말해 보거라. 그렇지 않으면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두자춘은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표정을 보니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것 같구나. 좋다, 네가 어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견뎌 낼 수 있는가 보자.” 염라대왕은 뿔이 달린 도깨비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녀석의 어머니가 지옥에 와 있을 테니 가서 데려오도록 하라.”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인이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주름진 얼굴, 자그마한 몸집, 틀림없는 두자춘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어머니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고, 옷도 군데군데 찢겨져 있어 두자춘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두자춘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어머니를 껴안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스승인 철관자의 말을 떠올리며 꾹 참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두자춘을 힐끗 쳐다보더니 귀신과 도깨비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저 녀석이 입을 열 때까지 이 여인을 매우 쳐라.” 염라대왕의 명령에 귀신과 도깨비들은 가시 돋친 몽둥이를 들고 두자춘의 어머니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두자춘은 차마 어머니가 매를 맞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두자춘의 귓가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음성이었습니다. “얘야! 네가 신선이 될 수 있다면 어미는 어떻게 되더라도 괜찮다. 절대 대답하지 마라.” 자신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듣자 두자춘은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 두자춘이 스스로 지른 소리에 놀라 눈을 떠 보니 자신은 여전히 서쪽 성문 앞 바위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자춘 앞에는 언제 왔는지 스승인 철관자가 흰 수염을 날리며 서 있었습니다. “결국 너는 입을 열고 말았구나. 신선이 될 수는 없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다행입니다. 비록 신선이 될 수 없다고 해도 지옥의 귀신과 도깨비들에게 매를 맞는 어머니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두자춘이 대답하자 철관자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일 네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네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도 보살피지 않는 사람이 어찌 신선이 되겠느냐?” 철관자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면 부자가 되는 것도 싫고, 신선이 되기도 틀렸으니, 이제 무엇을 하고 싶으냐? 내가 도와주마.” “무엇을 하든 정직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말을 잊지 마라. 앞으로는 나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철관자는 몇 걸음을 걸어가다가 발을 멈추고 돌아서서 두자춘에게 말했습니다. 마침 생각났는데, 태산 남쪽 기슭에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밭도 딸려 있지. 그곳을 네게 줄 테니 가서 사람답게 살도록 해라. 아마도 지금쯤은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 있을 것이다. 멀어져 가는 철관자의 뒷모습을 보며 공손히 절을 하는 두자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지혜를 얻는다. 중국 당나라 중엽 때 지어졌다고 하는 두자춘전은 문종 때 살던 ‘정환고’라는 사람이 썼다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이복언’이라는 사람이 괴이한 이야기를 모아 펴낸 속현괴록에 실려 있습니다. 일본의 대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이 이야기를 두자춘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속현괴록에는 괴이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이복언이 두자춘전을 실은 이유도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내용 때문입니다. 방탕한 한 청년이 어느 날 신선을 만나 감화되어 신선이 되려는 수련을 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는 갖가지 신비롭고 놀라운 일들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두자춘전은 이런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 두자춘이 세상의 거짓을 깨닫고 참된 진리를 얻어 올바른 인간으로 가야 할 길을 깨닫는다는 결말과 더불어‘모든 것을 잃은 순간 지혜의 눈이 생긴다.’는 교훈도 주고 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삶 두자춘전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에 대한 효입니다. 두자춘은 신선 수련을 하는 도중에 지옥의 귀신과 도깨비들에게 매 맞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입을 열지 않겠다는 철관자와의 약속을 깨지요. 이 대목은 부모 자식 간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줍니다. 신선이 되는 것보다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깨달음입니다. 두자춘전은 우리에게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이야기 중에도 효를 주제로 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심청전, 바리공주, 효녀 지은 등이 있지요.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아버지를 섬기고자 하는 심청,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부모를 살리기 위해 생명수를 찾아 나서는 바리공주, 어머니의 고통을 차마 모르는 체할 수 없었던 두자춘 등을 보면 ‘효’는 나라와 상관없이 중요한 덕목인 듯합니다. |
은하철도의 밤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선생님은 칠판에 걸어 놓은 커다란 별자리 그림에서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여기 연기처럼 흐릿하고 하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조바니는 손을 들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은 날마다 졸리기만 하고 모든 일에 의욕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캄파넬라가 손을 들었고, 다른 아이들도 몇 명 손을 들었습니다. “캄파넬라! 말해 보렴.” 그러나 그렇게 힘차게 손을 들었던 캄파넬라는, 일어서더니 머뭇거리기만 하고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캄파넬라를 보며 조바니는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은하수야. 그래, 캄파넬라도 알고 있을 거야. 언젠가 캄파넬라네 집에서 함께 읽었던 잡지에서 보았어. 그것을 잊었을 리 없을 텐데 왜 곧바로 대답하지 않을까? 맞아, 캄파넬라가 대답하지 않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일을 하느라 수업 시간에 졸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에게 미안해서 그런 거야.’ 선생님이 설명하셨습니다. 이건 은하수예요. 별들이 모인 것이죠. 만일 이 은하수를 강이라고 한다면, 자그마한 별 하나하나는 마치 강물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와 같은 것이에요. 물론 별들은 물고기처럼 움직이진 않아요. 태양이나 다른 별의 빛을 받아 반사하거나 스스로 빛을 내는데, 그 빛이 진공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여 서로 엉켜 보이기 때문에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태양이나 지구도 역시 은하수 속에 떠 있는 별이에요. 별이 많이 모여 있는 은하수는 아주 멀기 때문에 서로 엉킨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거예요. 오늘은 마침 은하 축제일이니까, 오늘 밤에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잘 보세요. 이만 마칩니다. 조바니가 교실 문을 나서자 같은 반 아이 여러 명이 운동장 한 모퉁이에 있는 벚나무 밑에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보나 마나 오늘 밤 은하 축제 때 쓸 초롱을 만들기 위해 개똥참외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친 조바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어느 인쇄소로 향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축제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조바니는 커다란 문을 열고 인쇄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낮이지만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인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조바니는 입구에서 세 번째 책상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남자는 조바니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습니다. “이 글자들을 가져올 수 있겠니?” 조바니는 종이를 들여다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상 아래에서 자그마한 빈 상자 하나를 들고 맞은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핀셋을 집어 들고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작은 활자를 찾아 상자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조바니가 골라 가져간 활자들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종이에 인쇄될 것입니다. 일을 마친 조바니는 은화 한 닢을 받아 빵 가게로 달려가서 빵 한 덩어리와 각설탕 한 봉지를 샀습니다. 조바니는 문 앞에 작은 화분이 놓여 있고 창문에는 커튼이 무겁게 드리워진 자그마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한 조바니는 신발을 벗으면서 물었습니다. “오늘은 아프지 않았어요?” “아아, 조바니! 아주 힘들었지? 오늘은 날씨가 서늘해서 그런지 괜찮았단다.” 조바니는 창을 열었습니다. “엄마, 오늘은 각설탕을 사 왔어요. 우유에 넣어 드리려고요.” “너 먼저 먹으렴. 나는 아직 먹고 싶지 않으니까.” “우유가 없는 것 같은데요?” 조바니는 마루 한쪽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부엌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배달되지 않았나 봐요. 제가 지금 가서 가져올까요?” “아니다. 천천히 가도 되니 염려하지 마라. 그러지 말고 우선 뭣 좀 먹도록 하렴. 누나가 뭔가 만들어 놓고 갔으니까.” 조바니는 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제 생각에 얼마 안 있으면 아빠가 돌아오실 것 같아요. 아침 신문에 올해는 북쪽 고기잡이가 대단히 잘되었다고 쓰여 있었어요. 이제 곧 배가 돌아온대요.” “그래? 하지만 아버지는 그곳으로 고기 잡으러 가신 게 아닐지도 몰라.” “아니에요. 꼭 돌아오실 거예요. 아이들은 아빠가 없다고 놀리지만 캄파넬라는 그렇지 않아요.” 캄파넬라 아버지와 네 아버지는 너희처럼 어렸을 적부터 친구라고 하더라. 오늘 밤은 마침 은하 축제일이니 캄파넬라를 만나 함께 놀려무나. “우유를 가지러 가면서 잠깐 보고 올게요.” “그래, 다녀오렴. 강에는 들어가지 말고.” 조바니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조바니는 휘파람을 불면서 가로수가 늘어선 마을 언덕길을 내려왔습니다. 나뭇가지에는 반짝이는 초롱들이 달려 있었고, 시계방에는 아름다운 네온이 켜져 있었습니다. 진열장 안에는 갖가지 모양의 시계가 있었습니다. 부엉이는 쉴 새 없이 까만 눈을 굴리고, 말은 천천히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별자리 그림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노란색 망원경이 있고, 그 뒤의 벽에는 하늘의 별자리를 온갖 동물로 나타낸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뱀, 물고기, 전갈과 씩씩한 전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조바니는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 저렇게 신기하고 멋진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걸어 보았으면.’ 문득 어머니에게 드릴 우유 생각이 난 조바니는 아쉬움을 남기고 시계방 앞을 떠나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파란 폭죽을 터뜨리며‘켄타우로스, 이슬을 내려 다오!’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조바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피해 목장 옆에 있는 우유 가게로 서둘러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지?”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 듯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습니다. “오늘 우유가 배달되지 않아서 받으러 왔어요.” “지금 아무도 없어 모르겠구나. 내일 오너라.” “꼭 오늘 밤에 엄마가 드셔야 해요. 우리 엄마는 아프시거든요.” “그러면 조금 있다가 다시 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조바니는 인사를 하고 우유 가게를 나왔습니다. 멀리서 아이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캄파넬라도 보였습니다. 조바니는 목장 뒤에서 검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언덕으로 내달렸습니다. 이슬에 젖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탑 옆으로 간 조바니는 차가운 풀에 몸을 던지듯 쓰러졌습니다. 마을에서는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눈을 감자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적 소리 같았습니다. 성냥갑 같은 객차들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창마다 환한 빛이 켜진 채 검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열차. 열차 안에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앉아 있으리라 생각하니 조바니는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문고자리 별이 반짝이다가 갑자기 버섯처럼 넓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면서 마치 억만 개의 별들이 온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은하 정거장, 은하 정거장!”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조바니는 언제부터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열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자리에는 검은 윗도리를 입은 키 큰 아이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뒷모습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조바니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머리를 안으로 넣으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캄파넬라였습니다. 조바니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캄파넬라! 너는 어떻게 여기에 탔니?” “다른 친구들도 모두 열심히 달려왔지만 늦어 버렸어.” 캄파넬라가 대답했습니다. 캄파넬라는 왠지 얼굴색이 파랗고, 어딘가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조바니도 괜스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통을 두고 왔네, 스케치북도 안 가져오고. 할 수 없지. 어머! 다음이 백조 정거장이네. 지도에서 찾아봐야지.” 캄파넬라는 금방 밝은 얼굴이 되어 둥그런 판처럼 생긴 지도를 꺼냈습니다. 지도는 바탕이 검었고, 정거장과 수풀, 샘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조바니가 물었습니다. “이 지도는 어디에서 났니?” “은하 정거장에서 받은 거야. 넌 받지 않았니?” “아, 은하 정거장을 지났었던가? 그러면 지금 우리는 백조 정거장을 향해 가고 있는 거란 말이야?” “그래. 아, 저기를 봐. 마치 달밤 같아.” 캄파넬라가 갑자기 창밖을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달밤이 아니야. 은하니까 빛나는 거야.” 꿈에 그리던 은하 열차를 탄 조바니는 뛰어오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팔을 한껏 뻗어 하늘의 강물에 손을 담그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이 열차는 석탄을 때서 달리는 게 아닌 것 같아. 연기가 나지 않아.” 조바니의 말에 캄파넬라가 답했습니다. “알코올이나 전기의 힘으로 가겠지.” 덜컹덜컹! 작고 예쁜 열차는 바람에 흔들리는 하늘의 숲속을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하늘의 강물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백조 정거장, 백조 정거장입니다. 이십 분 동안 정차합니다.” 안내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우리도 내려 볼까?” “그래.” 조바니와 캄파넬라가 열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희미한 전등이 하나 켜져 있을 뿐 정거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거장을 나오자, 은행 나무가 있는 공터가 있었고, 파랗게 빛나는 넓은 길이 보였습니다. 그 길은 은하와 곧바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봐! 여기는 모두 수정이야.” 캄파넬라가 바닥에 깔린 모래를 한 움큼 손에 쥐고 말했습니다. “정말이네. 그런데 벌써 시간이 다 됐어. 빨리 열차에 타야지.” 조바니와 캄파넬라는 힘차게 뛰어 열차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빨리 뛰었는데 전혀 숨이 차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용서해 주실까?” 캄파넬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조바니도 문득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는 저기 깨알처럼 보이는 별 중 어딘가에서 나를 생각하시겠지.’ “나는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거야.” 캄파넬라의 말에 조바니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너희 엄마는 불행할 일이 없잖아.” “나도 잘 모르겠어. 무엇이든 내가 좋은 일을 하면 행복해하시겠지. 그러면 나를 용서하실 테고.” 갑자기 열차 안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마치 보석처럼 빛을 뿜으며 아름답게 흐르는 은하수 가운데 파란빛을 띤 섬이 보였습니다. 섬의 중앙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열차 곳곳에서 외침이 들려왔고,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섬은 점점 멀어졌고, 열차는 은빛 풀밭과 색색의 꽃밭을 지나더니 점점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앉아도 괜찮겠니?” 낡은 갈색 외투를 입고 흰 천으로 싼 꾸러미를 어깨에 멘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네, 앉으세요.” 아저씨는 꾸러미를 선반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으며 물었습니다. “어디까지 가니?” “저희는 어디든 열차가 가는 데까지 갈 거예요.” “신나겠구나. 이 열차는 못 가는 곳이 없으니까.” “아저씨는 어디까지 가세요?” “나는 금방 내릴 거야. 새를 잡아 파는 장사를 하거든. 이제 백조 정거장 구역의 끝이로구나. 저기 보이는 것이 유명한 알비레오 관측소지.” 창밖을 보니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반짝이는 하늘의 강 한가운데에 검은색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건물 위에는 노란색과 푸른색을 띤, 달처럼 생긴 물체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열차표 검사를 하겠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차장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새잡이 아저씨와 캄파넬라는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보였습니다. 당황한 조바니는 혹시나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습니다. 손끝에 뭔가가 잡혀 꺼내 보니 반듯하게 접은 초록색 종이였습니다. 종이를 받아 든 차장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펴 보고는 돌려주었습니다. “됐습니다. 남십자성에는 오후 세 시에 도착할 겁니다.” 차장 아저씨가 돌아가자, 새잡이 아저씨는 조바니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굉장한 열차표를 가지고 있구나. 그건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통행권이야. 즐겁게 여행해라. 나는 이곳에서 내릴 테니 말이야.” 열차는 해오라기 정거장에 멈춰 섰습니다. 새잡이 아저씨가 내리고 난 뒤 청년과 두 아이가 탔습니다. 붉은 윗도리를 입은 소년은 무엇엔가 놀란 듯 벌벌 떨고 있었는데 맨발이었습니다. 청년은 검은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죠? 정말 아름답네요.” 청년 뒤에 서 있던 갈색 눈의 귀여운 소녀가 말하자 청년이 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온 거다. 이제 아무 걱정 없어.” 그러나 청년은 이마에 깊게 주름이 패었으며, 왠지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두 아이도 피곤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맨발로 서 있던 소년의 발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신발이 신겨져 있었고, 청년은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뒷자리에 있던 아저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오신 겁니까? 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소?” 예. 빙산에 부딪혀서 배가 가라앉았지요.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나는 대학생이며 이 아이들의 가정교사입니다. 외국에 계신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데려가는 길이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거예요. 빙산과 부딪힌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거센 물결이 밀려왔지요. 나는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것을 느끼고서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나무판자를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 보니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조바니와 캄파넬라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바다는 어디였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빙산이 흐르는 저 북쪽 끝의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일하는 사람이 있겠지. 불쌍한 그 사람들을 위해 나는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조바니는 말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일을 당하셨군요.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바르게 살아가는 중에 생긴 것이라면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는 것이겠죠. 자, 사과를 하나씩 먹고 기운을 냅시다." 두시가 되었을 무렵 열차는 어느 작은 정거장에 멈춰 섰다가 다시 출발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조바니와 캄파넬라, 청년 일행만 남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드넓은 들판이 펼쳐졌습니다. 들판에는 머리에 새의 깃을 꽂은 인디언 소년이 활을 들고 힘차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를 쫓아오나 봐." 캄파넬라가 말했습니다. 바람처럼 달리던 인디언 소년은 우뚝 멈춰 서서 활을 쏘았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학 한 마리가 떨어졌습니다. 인디언 소년을 뒤로 한 열차는 내리막길을 힘차게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기울어진 몸을 세우려고 의자를 꼭 잡았고, 조바니와 캄파넬라도 똑같이 하면서 서로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내리막길을 지나 열차가 바로 서자 창밖을 바라보던 조바니가 물었습니다. "저것은 무슨 불이지? 무엇을 태우는 것일까?" 캄파넬라가 지도를 들여다보고서 대답했습니다. "전갈 불이야." "전갈 불이라면 나도 알아." 소녀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전갈 불이란 전갈이 타서 죽은 불이야. 그 불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거야. 몇 번씩이나 아빠에게 들은 적이 있어." "맞아. 저곳의 삼각 표지판이 전갈을 가리키고 있잖아." 캄파넬라가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옛날 발드라 벌판에 전갈이 한 마리 살았대. 조그만 벌레를 잡아먹고 살던 전갈은 어느 날 족제비에게 쫓기다가 우물로 도망갔대. 목숨은 건졌지만, 우물을 벗어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전갈은 기도를 올렸어. 나는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빼앗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족제비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이렇게 도망을 쳤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게 되었다. 차라리 내게 죽은 벌레처럼 나도 족제비에게 내 몸을 맡겼더라면 차라리 족제비는 오늘 하루 배고프지 않게 지냈을 텐데.라고 말이야. 그러자 전갈의 몸은 새빨갛게 타오르더니 하늘로 올라가 어두운 밤을 밝히게 되었대. 열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이제 곧 남십자성이로구나. 내릴 준비를 해라.” 조바니와 공놀이하던 소년이 말했습니다. “난 좀 더 타고 싶어.” 캄파넬라 옆에 앉아 있던 소녀가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지만, 소녀 역시 내리기 싫은 눈치였습니다. “우리랑 같이 가. 우리는 어디라도 갈 수 있는 표를 가지고 있거든.” 조바니가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내려야만 해. 이번 정거장이 하늘나라로 가는 곳이니까.” 청년이 말했습니다. 열차가 하늘의 강 아래쪽에서 빛나고 있는 십자가를 지날 때 사람들은 일어나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열차가 멈춰 서자 청년은 소년의 손을 잡고 내렸고, 소녀는 그 뒤를 따라 출구를 향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없는 자리는 텅 비어 보였습니다. 남십자성 정거장에서 내린 그들이 간다는 하늘나라는 과연 어떤 곳일까요? 조바니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런 캄파넬라의 말에 조바니는 창밖을 살펴보았지만, 희뿌연 안개만이 어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캄파넬라! 우리는 어디든 같이 가는 거야.” 큰 소리로 외치던 조바니는 이상한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캄파넬라가 앉아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혹시 화장실에 간 것일까?’ 조바니는 이렇게 생각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캄파넬라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캄파넬라! 캄파넬라!” 조바니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목이 터져라 친구의 이름을 부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방이 갑자기 캄캄해졌습니다. 조바니는 눈을 떴습니다. 조바니가 있는 곳은 열차 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처럼 언덕 풀 위에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조바니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마을은 아까 모습 그대로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 빛은 왠지 아까보다 더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조바니는 쏜살같이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목장 옆 우유 가게에 들른 조바니가 문을 두드리자 하얀 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오늘 우리 집에 우유가 배달되지 않았어요.” “그래? 미안하구나.” 아저씨는 금방 우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조바니는 뜨거운 우유병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마을에 접어들어 사거리 모퉁이에 이르자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조바니로구나. 큰일이 났단다. 캄파넬라가 강물에 빠졌어. 아이들과 배를 타고 개똥참외 초롱을 띄우다가 그만 물에 빠졌단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조바니는 나는 듯 강가로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 아저씨도 보였습니다. 그때 다리 위에서 시계를 들여다보던 캄파넬라의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틀렸어요. 물에 빠진지 사십오 분이나 지났는걸요.” ‘아녜요. 저는 캄파넬라가 간 곳을 알고 있어요. 저는 캄파넬라와 함께 우주여행을 했어요.’ 이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조바니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뭇거리고 있는 조바니에게 캄파넬라의 아버지가 다가왔습니다. “조바니로구나. 너희 아버지는 돌아오셨니?” 조바니는 희미하게 고개를 흔들기만 했습니다. “어찌 된 걸까? 엊그제 보낸 편지에는 오늘쯤 도착한다고 했는데. 배가 늦어지는 모양이구나. 조바니! 아버지가 오시면 함께 우리 집으로 놀러 오너라.” 캄파넬라의 아버지는 다시 은하수가 가득 비추고 있는 강 하류 쪽으로 눈길을 보냈습니다. 조바니는 빨리 엄마에게 우유를 가져다 드리고 아빠가 돌아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 몸은 자기도 모르게 목장 뒤를 지나 아까 왔던 언덕 위에 서 있었습니다. 조바니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별들이 흐르는 은하수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판타지 작가. 미야자와 겐지(1896에서1933)는 일본의 이와테현에서 태어났습니다. 겐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와 시를 많이 발표했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작품으로 시집 봄과 아수라,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릿집 외에 북극 쥐의 모피, 똘배, 호쿠슈 장군과 의사 삼 형제, 구스코부도리 전기, 은하철도의 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는 시인이자 작가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였으며 농촌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불교의 영향을 깊게 받아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작품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과 사람, 도깨비 등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작품이 많지요. 그런데 이러한 작품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몹시 낯선 것들이라 겐지는 무명작가로 살다가 1933년 서른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죽은 뒤에 은하철도의 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일본 최고의 판타지 작가로서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생명과 우주에 대한 사랑. 은하철도의 밤은 1924년에 쓰기 시작해 10년이 지난 1934년에 처음 출간된,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작입니다. 이 소설은 슬픔과 아픔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 가는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자 신비로운 우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겐지의 다른 작품처럼 은하철도의 밤에도 자연을 바라보는 사랑 어린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동물, 식물, 바람, 구름, 하늘 등 자연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보면 알 수 있지요.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삼는 이 작품에서는 유독 별에 대한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별은 주인공들이 바라는 하나의 이상이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추구하는 해방과 희망의 상징입니다. 한편, 은하철도의 밤은 기차를 타고 광활한 우주를 여행한다는 신비로운 환상이 돋보입니다. 이 같은 기발한 상상력은 이후 많은 창작자에게도 영향을 주었지요. 잘 알려진 만화 은하철도 999도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의 밤을 읽고 감동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
도련님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나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악동 기질 때문에 온갖 말썽을 다 부렸습니다. 게다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고집이 셌습니다. 초등학교 이 학년쯤이었습니다. 하루는 내가 이층에 있는 교실 창가에 앉아서 하늘을 나는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친구가 살살 약을 올리기 시작하더군요. “흥, 허세 부리지 마!! 아무리 뻐겨도 거기서 뛰어내릴 용기는 없지? 넌 겁쟁이야!” 순간 나는 가슴에‘확’하고 불이 붙는 것처럼 화가 났습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창틀로 올라선 나는 그대로 뛰어내렸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고요? 운동장에 쿵 떨어진 나는 그길로 허리가 삐어서 두 주일 동안이나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무사 집안의 후예인 것을 자랑스러워하시는 아버지는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시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겨우 이 층에서 뛰어내리고서는 허리를 삐는 놈이 어디 있냐?” 그 말씀에 나는 또 화가 치밀어서 아버지에게 대들며 외쳤습니다. “두고 보세요! 다음에는 뛰어내려도 허리를 삐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튼 나 때문에 우리 집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이웃 아저씨의 당근밭에서 하루 종일 씨름을 하는 통에 당근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연신 사과하며 당근 값을 물어 주셨지요. 한번은 후구가와 아저씨네 논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흙 속에 깊이 파묻힌 굵은 왕대나무였지요. 근처 논에 물을 댈 수 있게 굵은 왕대나무의 마디를 뚫어 흙 속에 깊숙이 파묻어 그 안으로 물이 흐르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런 원리를 전혀 모르는 나와 친구들은 그냥 재미 삼아 돌멩이와 흙을 왕 대나무 안에 잔뜩 넣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참 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후구가와 아저씨가 뛰어와 노발대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놈의 개구쟁이 때문에 더는 못 살겠어요.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야겠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후구가와 아저씨께 사과하고 돈을 물어 준 것은 물론, 경찰서까지 다녀오셔야 했습니다. 경찰서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나에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너는 분명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야. 틀림없어!”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두고두고 내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나는 장난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나도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무조건 장난을 그만둘 수가 없었답니다. 그즈음 어머니가 아프셔서 가족 모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말썽을 부렸습니다. 하루는 부엌에서 공중제비하다가 그만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으아아악!” 너무 아파 그대로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숨을 쉬려고 하면 가슴이 쿡쿡 쑤셨습니다. 갈비뼈를 크게 다쳤던 것입니다. 편찮으신 어머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당장 나가! 너 같은 놈은 꼴도 보기 싫다.” 나는 구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가족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무척이나 화가 나셔서 나를 친척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형은 재빨리 내 짐을 싸서 나왔습니다. 단 한 사람, 울고있는 나를 위로해 준 사람은 평생 우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해 온 늙은 기요 할멈뿐이었습니다. “불쌍한 도련님, 울지 마세요. 며칠만 지나면 마님도 화가 풀리실 거예요. 그러면 제가 모시러 갈게요.” 바로 그날 밤 나는 친척 집으로 쫓겨 갔습니다. 어머니의 화가 풀리면 곧 집으로 부를 것으로 생각하며 며칠을 기다렸지요. 사흘 뒤 기요 할멈이 왔습니다. 나는 드디어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고 기뻐하며 기요 할멈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기요 할멈은 나를 끌어안고 우는 게 아니겠어요? “불쌍한 우리 도련님! 마님께서 돌아가셨답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형은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늘 어머니를 웃게 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항상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걱정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습니다. 돌아가셨다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차가웠습니다. 나를 본형이 대뜸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어머니를 죽였어! 어머니는 너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형의 뺨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나를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그날 밤 부엌에서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 준 사람은 기요 할멈이었습니다. “아아, 불쌍한 우리 도련님. 도련님 잘못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기요 할멈뿐이었습니다. 기요 할멈은 본래 지체 높은 집안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가문이 기울어져 우여곡절 끝에 남의집살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도련님은 성품이 참 좋으니까 분명히 성공하실 거예요 .”기요 할멈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를 냈습니다. “아첨하지 마. 내가 정말로 성격이 좋다면 기요 할멈 말고 다른 사람도 나를 좋아할 거야. 그런데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아버지가 그러셨어. 나는 분명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라고!” 내가 투덜거리면 기요 할멈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천만에요. 자가용을 굴리고 멋진 현관이 있는 양옥을 장만하실 거예요. 마당에 그네를 만드세요. 그리고 응접실은 하나면 충분해요. 그때도 도련님 곁에 있게 해주세요.” “양옥이든 일본식 집이든 그런 것에 관심 없어. 나는 그런 것 갖고 싶지 않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기요 할멈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은 소리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도련님은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요. 그러니까 꼭 성공하실 거예요.” 나는 기요 할멈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기요 할멈이 나를 몹시 사랑한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육 년째 되던 정월에 아버지마저 중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사월에 나는 사립학교를 졸업했고 형은 유월에 상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형은 한 무역 회사의 규슈 지점으로 발령받아 떠나야만 했고, 나는 도쿄에서 남은 공부를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집과 재산은 모두 형의 차지였습니다. 형은 집과 가구를 자기 마음대로 다 팔아 치운 다음 내게 육백 엔을 주었습니다. 이 돈으로 장사를 하든 공부하든 마음대로 해. 더는 너를 돌봐줄 수 없으니까. 어차피 형에게 신세 질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어정쩡한 보살핌을 받으며 형한테 고개 숙이고 사느니 차라리 우유 배달로 먹고살겠다는 각오까지 했으니까요. 나는 육백 엔으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삼 년 정도 공부하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물리학부 앞에 붙은‘학생 모집’ 광고를 보고 입학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 수학 교사나 물리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꼭 하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싫은 것도 없었기에 그냥 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바로 기요 할멈 때문이었습니다. 형이 규슈로 가고 내가 하숙하게 되자 지낼 곳이 없어진 기요 할멈은 재판소 서기를 하는 마음 착한 조카와 살기로 했습니다. 집을 떠나던 날 기요 할멈은 몇 번이고 내게 당부했습니다. “도련님이 어서 집도 장만하고 결혼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저도 같이 살 수 있죠?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나는 기요 할멈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공부하는 틈틈이 기요 할멈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럴 때면 기요 할멈은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삼 년 후, 나는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졸업하게 되었고, 시골에 있는 중학교 수학 교사로 가기로 했습니다. 기요 할멈은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소식에 감동했습니다. “그것 보세요. 제가 그랬잖아요. 도련님은 꼭 성공하실 거라고요.” 그러나 기요 할멈은 이내 나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기요 할멈, 얼른 돈을 벌어서 도쿄로 돌아올게. 그때와 같이 살아.” 나는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발하는 날, 내가 기차에 오르자 기요 할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차창 밖에서 손수건을 흔들었습니다. “도련님,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인사드릴게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나도 하마터면 울 뻔했으나 꾹 참았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는 속으로 열을 세고 돌아보았습니다. 기요 할멈은 아직도 손을 흔들고 서 있었습니다. 결국 나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교사로 일하게 된 중학교는 아주 외진 시골에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했으며, 학생들은 불량해 보였습니다. 지저분한 교복에 신발을 꺾어 신고 심술궂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 중학교 교장은 검은 얼굴에 콧수염을 길렀고 커다란 눈을 쉴 새 없이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너구리를 닮아서‘너구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교감은 빼빼 마른 소설가인데, 말할 때마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나 외국어를 섞어 쓰면서 잘난 척을 해 댔습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입고 있는 빨간 셔츠도 눈에 거슬렸지요. “에, 빨간색이 몸에 좋답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일부러 늘 빨간색 옷을 입고 다니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교감의 별명을‘빨간 셔츠’라고 지었습니다. ‘요시카와’라는 성씨의 미술 교사는 교감 곁에서 항상 아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카와의 별명을‘알랑쇠’라고 지었지요. 그리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웃는 영어 교사가 있었습니다. 얼굴이 누렇게 떠 있어서‘끝물’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과일이나 채소가 한창 익는 시절이 지나면 시들시들해지는데 그것을‘끝물’이라고 하잖아요. 딱 어울리죠? 나와 같은 수학 교사인 홋타는 건장한 체격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홋타는 대뜸 나를 보더니 반말했습니다. “어이, 신임인가? 나중의 얘기나 좀 하세. 아하하하.” 기분이 상한 나는 홋타의 별명을‘멧돼지’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멧돼지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숙집을 구하지 못한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들어와서 쉬고 있었습니다. 교장이나 교감도, 교사와 학생들도 모두 마음에 안 들지만 어떻게든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기요 할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기요 할멈! 어젯밤 꿈에서 기요 할멈을 봤어. 내년 여름에는 돌아갈 거야. 여기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야. 여기 선생들 별명을 지었어.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 셔츠, 영어 선생은 끝물, 미술 선생은 알랑쇠, 수학 선생은 멧돼지야. 재미있지? 편지를 쓰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편지를 봉투에 넣고 주소를 쓰고 있는데 멧돼지가 찾아왔습니다. “자네가 여관 신세를 진다고 해서 왔어. 내가 좋은 하숙집을 소개해 줄 테니 당장 나가세.” 멧돼지는 얼떨떨해하는 나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언덕 위에 있는 깨끗한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집주인은 골동품 가게를 하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하숙하기로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멧돼지는 나에게 빙과를 사주었습니다. “여기는 정말 숨이 턱턱 막히게 덥단 말이야.” 빙과를 먹으면서 나는 멧돼지를 다시 봤습니다. 무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정한 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 멧돼지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나는 멧돼지와 친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내 교직 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첫 수업 시간 내내 나는 목이 탁탁 갈라졌습니다. 긴장했던 탓이었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은 도무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나는 도쿄 표준어를, 학생들은 그 지방 사투리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너희가 알아듣도록 노력해!” 학생들은 일순간 조용해졌지만 다들 불만스러운 듯 입을 비죽거렸습니다. 겨우 수업을 다 끝냈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교과서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이 문제를 못 풀겠는데요.” 그것은 몹시 어려운 기하 문제였습니다. 나는 끙끙거리며 몇 번이고 풀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풀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음 시간 수업을 해야만 했지요. 결국 나는 손들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다음 수업을 해야 하니까 힘들고, 나중에 가르쳐 줄게.”
뒤돌아 교실을 나서는데 갑자기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박자 맞춰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못 푼대요. 못 푼대요.” 이번에도 나는 참지 못하고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바보들아. 선생님이라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못 하는 것을 못 한다고 하는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 정도 풀 수 있는 실력이라면 월급 사십 엔에 여기까지 올 리가 없지.” “그건 그렇지. 하하하하.” 내가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 멧돼지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젖히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내게 말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자네, 학교에 대한 불평을 너무 입 밖에 내면 못 쓰네. 말하고 싶으면 나에게만 말하게. 세상에는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나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멧돼지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하숙집 주인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숙집 주인은 처음 봤을 때는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뻔뻔스럽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골동품 가게를 하는 하숙집 주인은 염치도 없이 날마다 찾아와 나더러 골동품을 사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시달림을 받는 게 지겨웠지만 다른 하숙집을 쉽게 구할 수 없어, 그냥 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다 보니 다른 교사들과의 생활이나 하숙 생활에도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기로 하자 무서운 것이 없어졌습니다. 멧돼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멧돼지는 너구리나 빨간 셔츠의 말이라 해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말해 버리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멧돼지의 그런 성격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의 관계만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했습니다. 나는 가락국수를 좋아합니다. 특히 학교 근처에 있는 가락국숫집의 튀김 국수가 맛있어서 네 그릇이나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교실에 들어서니 칠판 가득히‘튀김 국수 선생님’이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은 나를 쳐다보고는 ‘와’하고 웃었습니다. “튀김 국수를 먹은 게 뭐가 우스워?” 내가 화를 내자 학생들이 이렇게 놀려 댔습니다. “그래도 네 그릇은 너무했어요.” 점심을 먹고 다음 교실에 들어갔더니 칠판에 ‘튀김 국수 네 그릇. 단, 웃지 말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너희는 이런 장난이 재미있어? 이건 비겁하게 희롱하는 거야. 너희는‘비겁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있니?” 그러자 한 학생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맞받아쳤습니다. “자기가 한 행동 때문에 놀림을 당했다고 화를 내는 것이‘비겁하다’는뜻아닌가요?” 나는 교탁을 내리치며 외쳤습니다. “내 돈 내고 사 먹은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시지!” 그러나 학생들의 장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교실로 들어갔더니 칠판에‘튀김 국수를 먹으면 억지를 부리고 싶어진다.’라고 쓰여 있었으니까요. 나는 드디어 폭발했습니다. “너희같이 건방진 놈들은 가르칠 수 없어.” 나는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교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숙직 근무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고 기숙사 바로 아래층에 있는 숙직실로 돌아와 침대로 들어간 순간 나는 기겁을 했습니다. 사방에서 무엇인가 파득거리며 내게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불을 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림잡아 쉰 마리쯤은 되어 보이는 메뚜기들이 침대에서 벌 떼처럼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바로 그때 위층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와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학생들의 소행임을 알아차린 나는 기숙사로 뛰어 올라가 몇몇 학생들을 끌고 내려와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모두 시치미를 뗐습니다. “아무도 안 넣었다니까요.” “메뚜기가 추워서 침대로 들어간 게 아닐까요? 히히히.” 나는 학생들이 몹시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에 장난을 쳤지만 누가 했느냐고 물으면 한 번도 뒤꽁무니를 빼는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장난에는 으레 벌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벌이 있기에 장난도 재미있게 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장난만 치고 벌은 피하겠다는 것은 비열한 근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런 녀석들이 졸업하고 나서는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거들먹거릴 것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요 할멈은 존경할 만합니다. 교육도 받지 못했고 사회적 지위도 없지만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기요 할멈은 내가 욕심이 없고 기질이 곧다고 칭찬하지만, 칭찬 듣는 나보다는 칭찬하는 기요 할멈이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나는 기요 할멈이 몹시 그리워졌습니다. 하루는 빨간 셔츠와 알랑쇠가 같이 낚시를 가자고 했습니다. 물론 나는 가기 싫었습니다. 죄 없는 물고기를 장난삼아 잡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늘 잘난 척하는 빨간 셔츠와 아부만 하는 알랑쇠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멧돼지가 나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너무 그렇게 뾰족하게 굴면 미움받는다고. 그럼 학교 생활이 더 피곤해지니까 한번 다녀와.”
나는 멧돼지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일요일, 빨간 셔츠와 알랑쇠를 따라 낚시를 갔습니다. 고깃배를 빌려서 낚시했지만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던 나는 중간에 포기하고 배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이때 빨간 셔츠와 알랑쇠가 나더러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홋타가 킥킥킥!” “그래서 튀김 국수를.” “결국 홋타가 학생들을 선동해서 메뚜기를."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나는‘홋타’, ‘선동’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홋타’는 멧돼지의 이름입니다. 멧돼지가 학생들을 꼬드겨 내 침대에 메뚜기를 넣었다는 말이 아닐까요? 내가 튀김 국수를 네 그릇이나 먹은 것을 소문낸 것도 멧돼지라는 말인가요? 빨간 셔츠가 나를 돌아보더니 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어? 하숙집을 구해 주거나 고민을 들어준다고 믿으면 안 된단 말이야.”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다음 날 교무실로 들어간 나는 멧돼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이 모두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던 멧돼지가 경멸스럽다는 듯 내게 말했습니다. “너무하지 않아? 하숙집 주인더러 자네 발을 씻기라고 했다며? 그런 경우가 어디 있나? 자네는 교사들 명예에 먹칠을 했어."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나는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멧돼지를 비난했습니다. “자네야말로 비겁해! 친한 친구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나 만들어 흘리고, 학생들을 선동해서 침대에 메뚜기를 넣었잖아.” 멧돼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내게 달려들었고, 나도 멧돼지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끝물 선생이 우리를 말려 사태는 일단 거기서 끝났지만, 그날로 나와 멧돼지는 절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하숙집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멧돼지가 내게로 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비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자네를 오해했었네.” 옆에 있던 교사들이 놀란 얼굴로 멧돼지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숙집 부부의 말만 듣고 무조건 자네를 의심했어. 어제야 진실을 알았네. 하숙집 주인은 자네가 골동품을 팔아 주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던 거라더군. 내가 큰 실수를 했네. 용서해 주게. 나는 그동안 쌓여 있던 앙금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마을에서 잔치가 열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참석했습니다. 천막 공연장에서 칼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일 났어! 패싸움이다! 중학교와 사범학교 학생들이 싸운다!” 나는 정신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정말로 우리 학교 학생들과 사범학교 학생들이 주먹질하며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닙니까? 나와 멧돼지는 패싸움을 말리려고 아수라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봐! 다들 부끄럽지도 않아? 당장 그만둬!” 그러나 싸움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고 나와 멧돼지는 흠씬 두들겨 맞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학생들은 모두 달아나고 현장에 남은 것은 나와 멧돼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길로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음 날 신문에는 나와 멧돼지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홋타 씨와 최근 도쿄에서 부임한 모 씨가 선량한 학생들을 사주해서 학생들 간에 패싸움을 일으켰다. 학교에서는 멧돼지와 내가 사표를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멧돼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교감의 계략에 말려든 거였어.” 멧돼지의 말은 이랬습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유일하게 빨간 셔츠에게 아부하지 않은 사람은 멧돼지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멧돼지는 빨간 셔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늘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해 대는 성격이었습니다. 또 뒤늦게 부임해 온 나도 멧돼지와 같이 행동했습니다. 당연히 빨간 셔츠는 우리를 쫓아낼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멧돼지를 이간질했던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어제 싸움 났다고 소리 질렀던 목소리도 빨간 셔츠였어.” 그제야 우리는 빨간 셔츠의 간사한 꾀를 알아차리고 분노했습니다. 그날 밤 나와 멧돼지는 빨간 셔츠가 자주 가는 술집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 빨간 셔츠가 알랑쇠와 함께 술을 마시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와 멧돼지는 힘차게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가 멱살을 잡았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빨간 셔츠와 알랑쇠는 우리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벌벌 떨었습니다. “비겁한 놈! 너한테 아부 안 한다고 감히 우리에게 해코지해?” 나는 빨간 셔츠의 배에 주먹을 한 방 먹였습니다. “날마다 아부만 하면서 잇속을 챙기다니, 비열한 놈!” 멧돼지가 알랑쇠를 발로 찼습니다. “잘못했네. 용서해 주게.” 빨간 셔츠와 알랑쇠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나와 멧돼지는 그동안 쌓인 분노를 주먹에 실어 두 사람을 실컷 때려 주었습니다. 녹초가 되어 쓰러진 빨간 셔츠와 알랑쇠를 두고서 우리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다음 날 나와 멧돼지는 그 지긋지긋한 곳을 떠났습니다. 멧돼지는 고향으로, 나는 도쿄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서운함을 애써 참으며 작별했습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기요 할멈 말고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세상살이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쿄에 도착한 나는 그길로 기요 할멈을 찾아갔습니다. 기요 할멈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덥썩 안았습니다. “도련님! 이제 어른이 되셨군요. 이제 저는 걱정이 없어요. 도련님이 늘 어린애 같아서 걱정했는데.” 그 후 나는 도쿄시 철도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집도 장만해서 기요 할멈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현관이 있는 양옥은 아니었지만, 기요 할멈은 더없이 좋아했습니다. 기요 할멈과 나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이월, 기요 할멈이 폐렴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날 기요 할멈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도련님! 제가 죽거든 도련님의 절에 묻어 주세요. 그곳에서 도련님이 가끔 찾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어요.” 나는 기요 할멈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기요 할멈의 곁으로 가겠지요. 기요 할멈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늘 나를 믿고 사랑한 기요 할멈의 힘이니까요. 기요 할멈이 없었다면 나는 끝내 철부지 도련님으로만 머물렀을 뿐 절대 어른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
모모타로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옛날 옛적 깊은 산골에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고, 할머니는 강으로 빨래를 하러 갔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무언가가 물 위로 둥둥 떠 내려왔습니다. “어머나! 저게 뭐지?” 할머니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커다란 복숭아였습니다. “참 크고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로구나. 가져가서 영감이랑 나눠 먹어야겠다.” 할머니는 커다란 복숭아를 건져 광주리에 넣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점심때가 다 되자 할아버지는 땔나무를 주워 산에서 내려 왔습니다. “영감, 내가 빨래를 하다가 복숭아를 건져 왔소. 이리 와서 같이 듭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복숭아를 칼로 자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칼을 살짝 댔는가 싶었는데 복숭아가 반으로 쩍 갈라졌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복숭아 안에 귀여운 아기가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방실방실 웃는 아기를 바라보며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자식이 없어 외로운 걸 아신 하느님이 보내 주신 선물인가봐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도 기뻐하며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요?” 할아버지의 물음에 할머니가 답했습니다. “복숭아에서 나왔으니까 모모타로라고 짓는 게 어때요?” “모모타로! 참 좋은 이름이로군.” 복숭아에서 태어난 모모타로는 할머니가 정성껏 지어 주는 음식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나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제 키도 훌쩍 커서 할아버지를 내려다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청년처럼 덩치는 크지만 모모타로는 날마다 먹고 자기만 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지냈습니다. 아침을 먹고 자다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낮잠을 자다가 저녁이 되면 또 밥을 먹고 잤습니다. “어떻게 된 아이가 날마다 먹고 자기만 할까요?” “안 되겠어요. 내가 마을 젊은이들에게 부탁을 해야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뒤늦게 얻은 모모타로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될까 봐 걱정하여 마을의 젊은이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내일부터 일할 때는 모모타로를 불러서 같이 데러가 주게.” “네, 알겠습니다.” 이튿날 마을 젊은이들이 모모타로를 불렀습니다. “모모타로, 산에 나무하러 같이 가자.” “지게가 없어서 갈 수 없어요.” 모모타로는 이렇게 답하고는 낮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마을 젊은이들이 다시 몰려와 모모타로를 불렀습니다. “모모타로, 오늘은 함께 나무하러 가자!” “도끼가 없어서 갈 수 없어요.” 모모타로는 또 낮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할머니가 화를 냈습니다. “대체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당장 산에 따라 올라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으련다.” 모모타로는 하는 수 없이 하품을 하며 일어나 마을의 젊은이들과 함께 산에 갔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땔나무를 줍고 있는 동안 모모타로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잤습니다. 모두가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고 할 때 모모타로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도 땔나무를 주워 가야지.” “지금부터 땔나무를 줍기 시작하면 너무 늦을 거야.” 젊은이들이 말렸지만 모모타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이게 좋겠군.” 모모타로는 큰 나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두 팔로 끌어안았습니다. “영차!” 모모타로가 힘을 쓰자 굵은 나무가 뿌리째 뽑혔습니다. “아니, 저럴 수가!” 모모타로의 엄청난 힘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모모타로는 그 나무를 짊어지고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 와 할머니는 매우 놀랐습니다. 어느 날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가 모모타로를 불렀습니다. “오랫동안 도깨비가 우리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물건을 훔쳐가고 있다. 소문을 듣자 하니 네 힘이 엄청 세다고 하던데, 네가 가서 도깨비를 혼 내 주거라.” 집으로 돌아온 모모타로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 저는 영주님의 명을 받아 도깨비를 잡으러 도깨비 섬으로 가야 해요.” “도깨비는 힘이 무척 세다던데 걱정이로구나.” “염려 마시고 가면서 먹을 경단이나 만들어 주세요.” 모모타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들어 준 수수경단을 가지고 도깨비 섬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모모타로는 길에서 개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모모타로야, 어디 가니?” 개가 물었습니다. “도깨비를 혼내 주러 도깨비 섬에 간단다.” 모모타로가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들고 가는 것은 뭐니?”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수수경단이야.” “내가 하나 먹고 너랑 같이 가면 안 될까?” 모모타로는 수수경단을 하나 주고 개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잠시 후 모모타로와 개는 원숭이를 만났습니다. “모모타로야, 개와 함께 어디 가니?” 원숭이가 물었습니다. “도깨비를 혼내 주러 도깨비 섬에 간단다.” 모모타로가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들고 가는 것은 뭐니?”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수수경단이야.” “내가 하나 먹고 너랑 같이 가면 안 될까?” 모모타로는 수수경단을 하나 주고 셋은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모타로 일행은 꿩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모모타로야, 개와 원숭이를 데리고 어디 가니?” 꿩이 물었습니다. “도깨비를 혼내 주러 도깨비 섬에 간단다.” 모모타로가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들고 가는 것은 뭐니?”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수수경단이야.” “내가 하나 먹고 너랑 같이 가면 안 될까?” 모모타로는 꿩에게도 수수경단을 하나 주었 습니다. 모모타로는 개, 원숭이, 꿩과 함께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도깨비 섬으로 가려면 배가 있어야 할 텐데.” 모모타로의 말에 꿩이 답했습니다. “뗏목을 만들면 돼.” 모모타로는 엄청난 힘으로 커다란 나무들을 뿌리째 뽑았습니다. 개는 날카로운 이빨로 칡덩굴을 끊어서 물고 왔습니다. 원숭이는 솜씨 좋게 칡덩굴로 통나무를 엮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멋진 뗏목이 만들어졌습니다. 모모타로 는개, 원숭이, 꿩을 태우고 도깨비 섬으로 떠났습니다. 모모타로 일행은 며칠 동안 항해를 계속했지만 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꿩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한 바퀴 돌더니 말했습니다. “배를 왼쪽으로 돌려! 저기 섬이 보인다.” 꿩의 안내로 모모타로 일행은 곧 섬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섬에는 커다란 문이 있는 큰 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도깨비들이 사는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염려 마! 내게 맡겨.” 원숭이는 날쌔게 성벽을 기어 올라가더니 안에서 빗장을 풀어 커다란 문을 열었습니다. 모모타로가 성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도깨비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들은 머리에 뿔이 하나씩 달렸고 눈은 왕방울만큼이나 컸습니다. 모모타로는 도깨비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혼내 주러 온 모모타로다.” “우헤헤! 우리를 혼내러 왔대.” 도깨비들은 모모타로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웃었습니다. “이놈들! 내 칼을 받아라.” 모모타로는 칼을 뽑아 들고 도깨비들을 공격했습니다. “우헤헤! 덤벼 봐라.” 도깨비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고 모모타로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모타로의 힘은 도깨비보다 훨씬 셌습니다. 모모타로가 휘두른 칼에 도깨비의 쇠몽둥이는 우지끈 잘려 나갔고, 모모타로의 발길에 차인 도깨비는 멀리 날아갔습니다. 모모타로는 도깨비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칼과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는가 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멀리 집어 던졌습니다. “안 되겠다. 이놈은 엄청난 장사로구나.” “그래, 도망가는 게 좋겠다.” 도저히 모모타로를 당해 낼 수 없다고 여긴 도깨비들은 달아나려 했습니다. 컹컹! 그러자 개가 달려들어 도망치려는 도깨비들의 다리를 물었습니다. “아이쿠, 다리야!” 원숭이는 쓰러진 도깨비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었고, 꿩은 억센 부리로 쪼아 댔습니다. “으악! 눈을 쪼였어.”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수수경단을 먹은 모모타로와 동물들은 무서운 것을 몰랐고 힘도 무척 세어져 있었습니다. “아이고! 도깨비 살려!” 도깨비들은 비명을 지르며 항복했습니다. 모모타로는 도깨비들을 모두 잡아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물건을 훔쳤다는데, 모두 바다에 빠뜨려 버릴까?” 도깨비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모두 드릴 테니, 제발 한 번만.” 울며 애원하는 도깨비들을 보자 모모타로는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도깨비들은 나쁜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장난으로 그런 것이었거든요. “좋다, 내 이번만은 용서하마.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모타로는 도깨비들이 그동안 모아 두었던 보물까지 얻어 가지고 자기를 도와준 동물들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모타로가 돌아왔어요.” 모모타로 걱정으로 시름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사히 돌아온 모모타로를 보고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모모타로가 도깨비를 무찌르고 돌아오자 영주는 모모타로를 불러 상을 내렸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소년이로구나, 도깨비를 물리치다니. 여봐라! 모모타로에게 큰상을 내리도록 하라.” 모모타로는 영주에게 많은 선물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모모타로는 여전히 밥을 먹으면 자고, 자다 깨면 또 밥을 먹는 게으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예전처럼 혼을 내지 않았습니다. 모모타로가 누구보다 기운도 세고 영리한 아이임을 알았으니까요. 모모타로의 친구가 된 개, 원숭이, 꿩은 할머니가 수수경단을 만들 때면 어느 틈엔가 모여서 침을 흘렸답니다. |
마술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어느 늦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이었습니다. 나는 인력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길을 몇 개 오르락내리락한 끝에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벽돌집에 도착했습니다. 그 집에는 인도에서 온 마술사 마테이람 미스라 선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난 미스라 선생은 하산이라는 유명한 마술사의 제자였습니다. 얼마 전 친구의 소개로 미스라 선생을 알게 되었는데, 평소 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만나 뵙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오늘 연락을 받고 미스라 선생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현관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자 관리인 할머니가 문을 열어 주며 말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손님이시죠? 선생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신다오.” 멋진 콧수염을 기른 미스라 선생은 응접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서자, 미스라 선생은 램프의 심지를 돋워 불을 밝히며 말했습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잠시 후 나는 할머니가 내온 홍차를 마시며 물었습니다. “듣기로는, 선생께서는 혼령의 힘을 빌려 마술을 하신다던데, 그게 정말인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스승께 배운 마술은 더 발전된 최면술이라고나 할까요? 당신도 수련만 하면 할 수 있죠.” “최면술이라. 무슨 겸손의 말씀을.” “정말입니다. 그저 이렇게 하면 됩니다.” 미스라 선생은 탁자 위로 손을 한 번 휘저었습니다. 그러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석유램프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돌던 램프는 점점 빠르게 돌더니 거의 보이지 않았고, 붉은 불꽃만이 마치 막 피어나는 꽃이 화려한 빛을 뿜으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불의 아름답고 신기한 춤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넋이 빠진 듯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딱! 미스라 선생이 엄지와 중지를 튕기며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램프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잡힌 듯 회전을 멈췄습니다.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굉장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지요?” “말씀드린 대로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도 보여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나는 기대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미스라 선생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삼각형을 그린 다음, 꽃무늬가 그려진 탁자 보에 손을 올려놓았습니다. 다음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탁자 보에 그려진 꽃이 향기를 뿜는 한 송이 꽃이 되어 미스라 선생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내가 꽃을 만져 보니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은 진짜 꽃이 틀림없었습니다. 붉은 꽃잎도 초록 잎사귀도 그 느낌이 아주 생생했습니다. 미스라 선생은 빙긋 웃더니 꽃을 탁자 보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꽃은 탁자 보의 무늬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미스라 선생은 벽 쪽에 있는 책장으로 손을 뻗어서 마치 무엇을 끌어당기는 듯한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책들이 조금씩 움직이는가 싶더니 한 권씩 책장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양쪽으로 펼쳐진 책들은 마치 새가 날갯짓하듯 펄럭이며 허공을 날아다녔습니다. 마치 온갖 색깔의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책들이 자유롭게 응접실 안을 날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책들은 한 권씩 우리가 마주 앉아 있던 탁자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순서는 책장에 꽂혀 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척 오래 걸리겠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거든요. 빠른 사람은 한 달 정도면 몇 가지 마술은 할 수 있게 되지요.” “정말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긴 하지요.” “조건이라뇨? 무엇입니까?”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으면 절대 마술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해 보고 물었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정말 저도 선생이 한 것과 같은 마술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요. 그런데 정말 욕심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르쳐 드리지요.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도록 하십시오.” 미스라 선생은 의자에서 일어나 응접실 문을 열고 할머니를 불러 얘기했습니다. “할머니! 손님이 오늘 밤 여기서 주무실 테니까 잠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세요.” 미스라 선생에게 마술을 배운 지 한 달가량이 지났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 친구들을 만난 나는 한 친구의 별장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네 요즘 마술을 배운다던데 우리에게 한번 보여 줄 수 있나?” 별장 주인인 친구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좋아. 하지만 놀라지는 말게.” 나는 의기양양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난로에 손을 넣었습니다. “앗, 위험해!” “큰일 났군.” 친구들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난로에서 꺼낸 내 손에는 불이 붙어 있는 석탄 덩어리 몇 개가 있었습니다. “뜨겁지 않나?” “전혀!” “빨갛게 불이 붙은 석탄 덩어리를 맨손으로 집다니 정말 놀라운데!” 친구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스라 선생처럼 빙긋 웃고는 불이 붙은 석탄 덩어리를 탁자 위 쟁반에 놓으며 말했습니다. “자세히 보게.” 석탄 덩어리는 어느새 번쩍이는 황금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뜨거운 석탄 덩어리를 맨손으로 쥔 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석탄이 황금으로 변했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었겠지요. “이거 진짜 황금인가?” “틀림없어. 확인해 보게.” “손을 데지 않을까?” 한 친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염려 말게. 황금은 뜨겁지 않고 차가운 법이라네.”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황금을 집어 들고 살펴보더니 입을 모아 칭찬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와! 정말 놀랍군.” “진짜 황금이야.” “자네는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겠군.” 한 친구가 부럽다는 듯이 황금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술을 하는 사람은 결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네.” “과연 그럴까? 만약 자네가 욕심이 없었다면 어째서 석탄 덩어리를 다른 것 아닌 황금으로 만들었지? 마음속에 욕심이 있으니, 황금으로 만든 게 아닌가?” 별장 주인인 친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 그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 황금을 우리에게 줄 수 있나?” “안 되네. 그건 진짜이긴 해도 마술로 만든 것이네. 어쨌거나 정상적인 것은 아니니 황금을 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거든. 나도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말이야. 다시 석탄 덩어리로 만들겠네.” “아, 잠깐! 입장을 정리해 보세. 우리는 이것을 다시 석탄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고, 자네는 석탄으로 만들려 하네. 자네가 정말로 욕심이 없다는 걸 증명하려면 내기를 하세. 자네가 이기면 황금을 다시 석탄 덩어리로 만들고, 진다면 우리에게 주게나. 그러면 되지 않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친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안 되네. 마술이란 욕심을 내면 다시는 할 수 없게 된다네.” “그러니까 욕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기를 하자는 걸세. 자네가 내기에 져서 황금을 다시 석탄으로 되돌려 놓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네가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계속되는 친구의 말에 나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대체 무슨 내기를 하잔 말인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전부와 가위바위보를 하는 거야.” 친구의 말에 나도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욕심이 없는 것과 내기는 다르네. 만약 자네들이 지면 어쩔 건가?” 내 말에 친구가 답했습니다. “황금과 같은 액수의 돈을 주겠네. 점점 돈이 욕심날 거라고 나는 장담하네. 자네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하고. 어떤가? 모두 찬성하지?” 그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위바위보!” “허! 내가 졌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과 세 판씩을 했는데, 모인 사람이 나를 빼고 여섯이었으니 모두 열여덟 판을 계속해서 이겼지요. “정말이지 못 당하겠군.” “가위바위보를 하는 데도 마술을 쓰는 거 아냐?” 친구들은 불만 섞인 말을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마술을 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스라 선생도 그런 마술은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까요. 가위바위보가 모두 끝나자, 내 앞에는 마술로 만든 황금은 물론 친구들이 잃은 돈까지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내가 가위바위보에 이겨서 딴 돈은 마술로 만든 황금과 맞먹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판만 더 하세. 모든 것을 걸고 말이야. 나는 이 별장과 자동차까지 걸겠네. 자네는 우리에게서 딴 돈과 황금을 걸게.” 별장 주인인 친구가 화난 듯 말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몹시 목이 말랐습니다. ‘찬물이라도 한 잔 마셨으면.’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친구의 눈에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의 빛이 서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내게도 ‘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탁자 위에 쌓인 돈만 해도 엄청난 금액인데, 거기다가 자동차와 별장까지 가질 수 있다니. 그동안 고생을 해서 마술을 배운 것도 잘살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친구와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고, 나머지 친구들은 숨소리도 죽인 채 손에 땀을 쥐고 우리의 승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가위바위보!” 외침과 함께 우리 둘은 동시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가위를 냈고, 친구는 보를 냈습니다. “어때? 내가 이겼지.” 친구는 고개를 푹 떨구었고,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돈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다음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와 마지막 승부를 겨뤘던 친구는 미스라 선생으로 변해 있었고, 나머지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종이를 오려 만든 조그만 인형 몇 개가 의자에 놓여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욕심이 생겼지요? 그렇지 않나요?” 미스라 선생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황금과 돈, 별장과 자동차까지 모두를 합치면 상당한 액수가 되었기에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마술을 배울 수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당신은 결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마술을 가르쳐 드릴 수 없겠군요. 이만 돌아가십시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미스라 선생의 말은 정확히 내 마음을 읽은 듯했으니까요. 미스라 선생은 할머니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이 주무시지 않고 집으로 가신답니다. 잠자리를 준비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나는 맥없이 터덜터덜 미스라 선생의 집을 나왔습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인력거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하시더니 금방 나오셨네요.” 인력거꾼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내가 한 달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았나 봅니다. 미스라 선생이 할머니에게 잠자리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력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귓가에 미스라 선생의 말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마술을 배울 수 없습니다.” 불운한 천재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뛰어난 두뇌와 재능을 타고났지만 삶은 불행했습니다.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리는 바람에 외삼촌 댁에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정신병은 류노스케에게 평생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자기도 언젠가 정신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성격이 더욱 예민해졌습니다. 류노스케는 도쿄대학 영문과에 다니던 중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작품인 노년을 시작으로 코, 고구마죽 등을 발표해 문단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이후로는 나생문, 어떤 바보의 일생, 톱니바퀴 등을 발표하며 천재 작가라는 칭송을 받게 됩니다. 작가이자 친구인 기구치 히로시는 젊은 나이에 죽은 천재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해 1935년 아쿠타가와 상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아쿠타가와 상은 일본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입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채운 문학.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뛰어난 글재주로 주목을 받았지만, 명예와 권위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명예와 권위가 창작 활동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은둔하다시피 살면서 소설 창작에만 몰두했습니다. 마술에서 마술사 마테이람 미스라 선생은 주인공 ‘나’에게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으면 절대 마술을 부릴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소설을 쓰면서 류노스케가 늘 간직하고 있던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류노스케는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수도자처럼 문학에만 매진했습니다. 아마도 류노스케가 일본 최고의 작가가 된 것은 이런 순수한 열정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서른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류노스케의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새롭게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나생문(라쇼몬)은 일본 최고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영화로 선보여 아쿠타가와 문학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
알라딘과 요술 램프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아주 먼 옛날 아라비아에는 알라딘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알라딘이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재봉 일을 하면서 열심히 알라딘을 키웠습니다. 몹시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알라딘과 어머니는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음식을 나눠 줄 정도로 마음이 착했습니다. 어느 날 알라딘의 집에 낯선 상인이 찾아왔습니다. 화려하게 꾸민 낙타를 타고 온 상인은 자신을 알라딘의 삼촌이라고 말했습니다. 형수님께서는 저를 모르실 겁니다. 어릴 적에 집을 떠나 외국에서 장사를 했으니까요. 형님과는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인데 조금 전 마을에 도착해서야 형님이 돌아 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이제부터 알라딘과 형수님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삼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알라딘은 상인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상인은 알라딘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그동안 알라딘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라딘과 어머니는 상인에 대한 의심을 풀고 한 가족으로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알라딘에게 부자 삼촌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언제나 이웃을 돕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알라딘과 어머니를 좋아했기에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늘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살피던 알라딘이 복을 받은 거야.” 어느 날 삼촌은 알라딘에게 소풍을 가자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같이 숲속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또 네 장래에 대한 계획도 함께 세워 보면 좋지 않겠니?” 알라딘은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섰습니다. 숲길을 거닐던 삼촌은 알라딘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삼촌은 온 세상 구석구석 안 가 본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삼촌처럼 상인이 되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그래, 상인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좋지. 오늘 내가 너에게 보물을 하나 주어야겠구나.” 삼촌은 이렇게 말하면서 어느 나무 아래로 알라딘을 데리고 갔습니다. 나무 주위를 빙빙 돌던 삼촌은 이윽고 한 지점에서 ‘쿵쿵’ 뛰었습니다. 그러자 ‘통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삼촌은 그 근처의 풀을 뽑았습니다. 그러자 청동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문이 드러났습니다. 삼촌이 문을 잡아당기자 어두컴컴한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알라딘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삼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알라딘! 이 동굴에 들어가서 내가 말하는 것을 꺼내 오기만 하면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단다.” 알라딘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오르는 것을 보며 삼촌은 말을 이었습니다.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열매가 열린 커다란 나무들이 있을 거야. 절대 그것에 한눈팔면 안 돼. 조금이라도 욕심내면 큰일이 난단다. 꾹 참고 그 나무들을 지나 옆방으로 가. 거기에 낡은 램프가 하나 있을 거야. 그 램프를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란다. “하지만 삼촌, 너무 무서워요.” 알라딘이 울상을 짓자, 삼촌은 자기 손에서 반지를 빼서 알라딘에게 주었습니다. “이 반지는 삼촌이 아끼는 반지란다. 이 반지를 보며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한다고 믿고 어서 들어가렴.” 알라딘은 삼촌에게 겁쟁이 취급을 받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삼촌의 반지를 끼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동굴 벽에는 사다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알라딘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밟고 내려갔습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커다랗던 동굴 입구가 점점 작아져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야 알라딘의 발은 동굴 바닥에 닿았습니다. 사방이 너무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알라딘은 벽을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힘겹게 동굴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갑자기 눈부시게 밝은 빛이 쏟아져 눈을 감았습니다. 감았던 눈을 겨우 뜨고 앞을 보던 알라딘은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습니다. “오오, 세상에 이럴 수가!” 삼촌 말대로 커다란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나무에는 모양과 종류가 다른 가지가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열매를 본 알라딘은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를 수 없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모두 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푸른 사과는 사파이어였고 붉은 석류는 루비였습니다. 게다가 잎사귀마다 앉은 이슬방울은 자잘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그러나 알라딘은 곧 정신을 차렸습니다. 절대 나무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옆방으로 가라고 한 삼촌의 당부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알라딘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별 갈등 없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몇 걸음을 걸어가자 넓은 방이 하나 나왔습니다. 방 한구석에는 아주 낡은 램프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알라딘은 다가가 램프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낡고 볼품없는 램프였습니다. “과연 이 낡은 램프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알라딘은 낡은 램프를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러나 알라딘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삼촌의 말을 믿기로 했지요. 알라딘은 램프를 소중하게 안고 걸어왔던 길을 도로 밟아서 나갔습니다. 도중에 보석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에 눈길이 갔지만 단호하게 외면하고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저 보석을 어머니께 가져다드리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지만 어머니는 늘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어. 자기가 땀 흘려 얻은 것이 아니면 절대 욕심내지 말라고 하셨지. 어머니 말씀을 따르자. 알라딘은 램프를 허리춤에 넣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동전만 하던 동굴 입구가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동굴 안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열심히 기다리고 있는 삼촌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삼촌! 이 램프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알라딘의 허리춤에서 램프를 본 삼촌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주 잘했다. 알라딘! 어서 그 램프를 다오." 알라딘은 한 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다른 한 손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삼촌, 먼저 저를 좀 끌어 올려 주세요. 올라가기가 힘들어요." "일단 램프부터 달란 말이다. 혹시 램프를 떨어뜨리면 어떡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램프는 제 허리춤에 단단히 매어 놓았어요. 우선 저를 좀 끌어 올려 주세요." 그러자 삼촌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램프부터 달라고 하면 줄 것이지 왜 말이 많아? 당장 내놓지 못해?" 순간 알라딘은 몸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삼촌의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형제라면 나에게 이렇게 하실 리가 없어. 나를 안전하게 먼저 끌어 올려 주는 게 당연한 일인데 삼촌은 그렇지 않아. 오히려 램프에만 더 신경 쓰고 있어.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지? 삼촌에 대한 의심이 생기자 걷잡을 수 없이 무서워졌지만, 알라딘은 야무지게 말했습니다. “먼저 저를 꺼내 주세요. 그러면 램프를 드릴게요.” “좋아! 그렇다면 어디 그 안에서 램프랑 잘 지내봐!” 삼촌은 노발대발하더니 동굴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절그럭절그럭’ 문을 잠그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알라딘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 사람은 삼촌이 아니었어.’ 알라딘은 멍한 얼굴로 공포에 떨면서 사다리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지하의 공기는 축축해 자꾸만 몸이 떨렸습니다. 게다가 공기도 통하지 않는 곳이라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한편 삼촌은 몹시 화가 나서 돌멩이를 발로 차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영리한 놈이었잖아. 제길!” 사실 상인은 알라딘의 삼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상인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흉악한 마법사였습니다. 어느 날 마법사는 숲속 동굴에 요술 램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주 깨끗한 사람만이 동굴에서 램프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오랜 세월 동안 세계 각지를 떠돌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어렵게 찾아낸 사람이 바로 알라딘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알라딘이 욕심 많은 사람이라면 동굴 안의 보석 나무들 앞에서 정신을 잃고 보석을 따는 데 열중하다가 그대로 동굴 안에 갇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라딘은 욕심을 떨쳐 내고 램프만 가져왔던 것입니다. 램프를 생각하니 마법사는 좀 아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별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마음 깨끗한 사람을 찾으면 돼. 알라딘은 그 램프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캄캄한 동굴 안에서 결국은 굶어 죽고 말 거야.’ 그 시각 동굴에 갇힌 알라딘은 막막해졌습니다. 초조해서 손을 비비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에 낀 반지를 어루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 커다란 요정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반지의 요정입니다. 어떤 명령이든 내리십시오.” 그제야 알라딘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것이 요술 반지라는 것을 깨닫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나를 우리 어머니에게 데려다줘.”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알라딘은 어느새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알라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너도 삼촌도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단다.” 알라딘은 어머니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삼촌이 아니에요. 진짜 삼촌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요.” “그래, 맞다. 그 사람이 왜 우리에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네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오다니 신께 고마울 따름이다. 부자 친척이 생겼다고 좋아했지만 사실 그건 온당한 게 아니지. 다시 우리 힘으로 열심히 살자꾸나.” 알라딘은 어머니에게 반지의 요정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정직한 어머니라고 해도 유혹에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집에는 음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삼촌이라고 속인 그 상인 때문에 날마다 잔치를 열었기 때문이지요.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램프를 팔면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한 알라딘은 자기 방으로 가서 램프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램프가 먼지투성이구나. 팔려면 깨끗이 닦아야겠네. 그래야 물건을 사 가는 손님도 기분이 좋을 테니까.” 알라딘은 수건으로 정성껏 램프를 닦았습니다. 이때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아주 커다란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알라딘은 또다시 놀랐습니다. “주인님, 저는 램프의 요정입니다. 무슨 일이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제야 알라딘은 상인이 왜 그토록 램프를 가지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너는 이 램프에 사는구나. 어쩌지? 우리는 먹을 게 없어서 네 집을 팔려고 하고 있었는데.” 알라딘은 무척이나 미안해하며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겠습니다.” 램프의 요정은 이렇게 말하고 사라지더니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상에 온갖 음식을 담아 들고 나타났습니다. “요정아, 고맙긴 한데 이건 받을 수 없어.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음식이 아니니까.” 정직한 알라딘의 성품에 감동한 요정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제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받은 도움을 기억하셨다가 나중에 꼭 다른 사람에게도 베푸십시오. 그러시면 됩니다.” 요정의 간곡한 말에 알라딘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이 음식을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게.” 알라딘과 어머니는 먹을 만큼만 덜어내고 나머지 음식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알라딘은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램프의 요정을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자기가 거만하고 게으른 사람이 될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라딘은 시장에 나갔다가 공주의 행렬과 마주쳤습니다. 가마에 앉아 있는 공주를 본 순간 알라딘은 그대로 심장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공주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 무척 아름다웠으니까요.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이 하루 종일 눈앞에서 어른거려 알라딘은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고민하던 알라딘은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서 말했습니다. “미안한데, 네가 떠나 주었으면 좋겠어.” 램프의 요정은 어리둥절해서 알라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인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그게 아니라, 네가 있으면 자꾸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봐 그래.” 알라딘은 한숨을 쉬며 램프의 요정에게 공주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래서 병이 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램프의 요정은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공주님은 머지않아 하산이라는 욕심 많은 귀족과 결혼하실 겁니다. 아시다시피 임금님께는 공주님이 유일한 혈육이시지요. 그러니까 공주님과 결혼한 사람이 왕이 됩니다. 그러나 하산은 욕심도 많고 흉악해서 백성을 괴롭히는 왕이 될 겁니다. 제가 주인님을 도와 공주님과 결혼하게 해 드리면 주인님은 반드시 훌륭한 왕이 되어서 백성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 그것만 약속해 주시면 됩니다. 요정의 말에 알라딘은 가슴이 뛰었습니다. 고마워. 그러나 나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했고 머리도 좋지 못해. 있는 것이라고는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뿐이야. 이런 능력으로는 왕이 될 수 없어. 혹시 왕이 된다 해도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어.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왕이 최고의 왕이니까요.” 램프의 요정은 이렇게 말하고 사라지더니 이윽고 금 쟁반에 보석을 가득 담아 왔습니다. “임금님께 보석을 이 정도 드린다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알라딘은 궁전으로 찾아가서 임금님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전하! 저는 공주님을 사랑합니다. 부디 공주님과 결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임금님은 알라딘이 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알라딘을 내쫓으려 했습니다. “귀족도 아닌 자네가 우리 공주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임금님의 말에 알라딘은 자신 있게 웃으며 가져간 보석을 내어놓았습니다. 임금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알라딘이 내놓은 금 쟁반에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사파이어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방 안이 훤해질 정도로 광채가 났습니다. 웬만한 귀족들도 갖고 있지 못할 정도로 보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보석이 갖고 싶었지만, 알라딘의 신분이 너무 낮아 망설였습니다. “알라딘, 네 마음은 알겠다. 내게 시간을 다오.” 임금님은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공주와 결혼하기로 한 욕심 많은 귀족 하산이 임금님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임금님, 저 보석은 갖고 싶지만, 알라딘을 사위로 맞이하시는 것은 싫으시지요?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산이 임금님의 귀에 대고 속삭거리자 어느새 임금님의 얼굴에 심술궂은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윽고 임금님이 들어와 옥좌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알라딘과 공주의 결혼을 허락하겠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알라딘은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임금님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알라딘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궁전 맞은편에 더 멋진 궁전을 새로 짓도록 해라. 시간은 많이 줄 수 없다. 오늘 하루 동안이다. 만약 짓지 못한다면 너는 공주와 결혼하기는커녕 보석도 빼앗기고 목숨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알라딘은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 없으면 보석을 여기 놓고 당장 돌아가거라.” 알라딘은 망설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알라딘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뜻을 받들어 궁전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알라딘은 램프의 요정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요정은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내일은 멋진 궁전에서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 램프의 요정은 그길로 어딘가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더니 그날 하루 종일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임금님은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 순간 임금님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궁전 앞에 있는 넓은 공터에 하룻밤 사이 크고 멋진 궁전이 세워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에메랄드 지붕에 알알이 박힌 다이아몬드, 황금으로 만든 성문, 반들반들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벽. 이럴 수가! 내가 사는 궁전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구나. 알라딘이라는 젊은이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능력이 있을까? 아침에 궁전으로 향하던 하산도 새로 만들어진 궁전을 보고는 너무 놀라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새로 지은 궁전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알라딘이 궁전으로 들어오자, 임금님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 알라딘을 힘차게 끌어안으며 외쳤습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구먼. 자네가 공주와 결혼하고 장차 이 나라 왕이 된다 해도 걱정될 게 없겠어. 바로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도록 하게.” 임금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막이 열리더니 아름다운 아가씨가 사뿐사뿐 나와 알라딘 앞에 섰습니다. 바로 공주님이었습니다. 며칠 뒤 새로 지은 궁전에서 알라딘과 공주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멀고 가까운 나라에서 축하 사절들이 몰려오고 한 달 내내 잔치가 열렸습니다. 공주와 결혼한 뒤 알라딘은 요정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알라딘은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을 부지런히 도와주었습니다. 혹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사신으로 가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안의 백성들은 알라딘을 존경하고 칭송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한편 알라딘이 공주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마법사는 램프 장수로 변장하고 궁전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날도 알라딘은 가난한 사람을 돌봐 주기 위해 외출하고 없었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램프를 새 램프와 바꿔 드려요.” 방에 있던 공주는 이 소리를 듣고 알라딘의 낡은 램프가 생각났습니다. “헌 램프를 새것으로 바꿔 준다니, 정말일까?” 공주는 알라딘의 방에 있는 낡은 램프를 가져와 램프 장수로 변장한 마법사에게 내밀었습니다. “정말로 이 낡은 램프를 바꿔 주나요?” “그럼요! 그럼요!” 마법사는 기쁨에 떨며 공주의 손에서 램프를 받아서 들었습니다. 마법사는 램프를 문질러 램프의 요정을 불러냈습니다. 웃으며 나오던 요정은 마법사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법사는 음흉하게 말했습니다. 만약 새 주인인 내 명령을 어기면 네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네가 살고 있는 이 램프를 불에 던져 버릴 거야. 마법사의 협박에 램프의 요정은 몸을 떨었습니다. 아무리 센 요정이라고 해도 불에 들어가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분부하십시오.” 풀이 죽은 램프의 요정이 대답하자 마법사는 거칠게 명령했습니다. “알라딘의 궁전을 내 고향으로 옮겨 줘. 지금 당장.” 램프의 요정은 슬픈 얼굴로 고민하더니 이윽고 마법사의 명령대로 거대한 궁전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마법사의 고향 아프리카로 날아갔습니다. 자기 손으로 주인을 위해 만들어 준 궁전과 공주를 악당을 위해 훔친다고 생각하니 램프의 요정은 더없이 슬펐습니다. 한편 몸이 아픈 사람들을 돌봐 주고 돌아온 알라딘은 궁전이 있던 자리가 허허벌판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주와 궁전이 사라진 것을 안 임금님은 노발대발하면서 알라딘을 죽이려 했습니다. 알라딘은 임금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제게 한 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공주와 궁전을 모두 찾아오겠습니다.” “날 바보로 아느냐? 네가 도망가려고 한다는 걸 모를 줄 알고?” 이때 궁전 밖에서 몹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백성들이 임금님의 궁전 앞으로 몰려와 알라딘을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모두 알라딘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알라딘을 죽이지 마라! 만약 알라딘을 죽이면 우리는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이 광경을 본 하산이 임금님에게 말했습니다. “차라리 알라딘을 추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나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임금님은 화를 겨우 참으면서 알라딘을 나라 밖으로 쫓아 버렸습니다. 추방당한 알라딘은 사막에서 혼자 헤매며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던 알라딘은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졌습니다. 그러자 반지의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알라딘은 몹시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램프의 요정 때문에 반지의 요정을 잊고 있었던 게 미안했습니다. “공주와 궁전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와 줬으면 해.” 그러자 반지의 요정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램프의 요정이 한 일을 제가 뒤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미안해. 그러면 나를 공주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습니다.” 반지의 요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알라딘을 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옮겨다 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정말로 알라딘의 궁전이 있었습니다. 알라딘이 궁 안을 살짝 엿보니 마법사가 공주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까지 결정해. 내 아내가 되지 않는다면 너를 죽여 버릴 수밖에 없어.” 마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름 끼치게 웃으며 방을 나갔습니다. 마법사가 나가자, 알라딘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주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내가 경솔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괜찮아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소.” 알라딘은 공주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방긋 웃더니 알라딘을 커튼 뒤에 숨기고 마법사를 불러들였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당신의 아내가 되겠어요.” 마법사는 매우 기뻐하며 램프의 요정을 시켜 맛난 음식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공주는 상냥하게 웃으며 마법사에게 자꾸 술을 권했습니다. 마법사는 기쁨에 겨워 취하도록 마셔 대더니 결국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법사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알라딘은 마법사를 단단히 묶고는 램프의 요정을 불러냈습니다. 알라딘을 본 램프의 요정은 기뻐 눈물을 흘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주인님을 배신했습니다.” “아니야. 너는 여전히 가장 좋은 친구야. 나와 공주와 이 궁전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 줘.”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램프의 요정은 궁전을 통째로 들어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깬 임금님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졌던 알라딘의 궁전이 하룻밤 사이에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은 알라딘의 궁전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공주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라딘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임금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마법사를 꽁꽁 묶어 데려왔습니다. 그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된 임금님은 알라딘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더욱이 백성들이 알라딘을 잘 따른다는 것을 알고 알라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알라딘은 반지의 요정도 램프의 요정도 불러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일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몇 년 후 임금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알라딘은 왕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난하게 산 터라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알라딘은 백성을 잘 보살피는 지혜로운 왕이 되었답니다. 이집트에서 온 설화. 알라딘과 요술 램프는 아랍 문학의 꽃을 피운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에 들어 있는 한 편의 모험 이야기입니다. 작자와 창작 시기는 모르지만, 그 기원은 이집트의 설화에서 왔다고 전해지지요. 이 작품이 해외에서 처음 번역된 것은 18세기 초 프랑스 인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어디서 듣게 되었는지 확실치 않아서 갈랑이 창작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조탕베르가 파리 국립 박물관에서 두 종류의 복사본을 발견했고, 그중 1703년에 이라크에서 발행된 사본으로 1887년에 출판하면서 천일야화는 서양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는 천일야화에 있는 여러 편의 이야기 중 현재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우리에게는 디즈니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알라딘’으로 더욱 친숙하지요. 천 일 동안 펼쳐지는 환상과 모험의 세계. 알라딘과 요술 램프는 아랍 문학을 한데 모아 정리해 완성했다고 하는 천일야화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일야화는 1703년부터 1713년까지 걸쳐 열두 권의 분량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천일야화는 바람난 아내 때문에 여자를 혐오하게 된 페르시아의 왕 샤리야르가 신하의 딸 샤흐라자드를 만나 삼 년 가까이 매일 밤 듣게 되는 180여 편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환상적인 것부터 사랑 이야기, 우화, 전설 등 무척 다양합니다. 이 이야기는 중세 페르시아의 ‘천 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이 10세기쯤에 ‘천야 이야기’로 불리다가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 때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해외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15세기 무렵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번역도 여러 번 되었는데, 그중 1885년부터 리처드 버턴이 영어로 번역한 것이 가장 잘 알려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보이는 동양적 환상은 서양의 많은 예술가들을 자극했는데, 러시아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세헤라자드’라는 환상적인 교향조곡을 작곡해 높은 음악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
사랑한다면 믿어 주세요 | 의사소통 | 초등_저학년 | 아주 먼 옛날 터키의 어느 마을에 한 청년이 살았습니다. 청년은 성격도 밝고 잘생겼으며 부유해서 친구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차도록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청년이 눈이 너무 높아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청년이 결혼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청년의 세 누이 때문이었지요. 질투가 심한 누이들은 청년이 어떤 여인을 사랑해서 결혼이라도 하려고 하면 무슨 수를 쓰든지 둘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얘야, 저 여자는 마음씨가 고약해 보이는구나.” “얘야, 저 여자가 시집오면 우리 집안은 망할 거야.” 청년은 언제나 누이들의 말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착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가씨도 청년과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정을 아는 사람은 마을에서도 몇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가자 청년도 외로워졌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싶어.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을 해야지.’ 청년이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청년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부엌 창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하얀 우유를 땅에 쏟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아까운 우유를 왜 버리지?’ 궁금한 마음에 청년이 물었습니다. “왜 우유를 버리십니까?” 청년을 유심히 보던 여인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오호, 누군가 했더니 누이들 말만 믿고 산다는 청년이로군.” 청년은 그 말이 몹시 불쾌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청년의 표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했습니다. “이건 우유가 아니라 내 딸이 손 씻은 물이라오. 내 딸은 엄청난 미인이거든.” 여인의 대답에 청년은 가슴이 뛰었습니다. ‘손을 씻은 물이 저렇게 하얗다니, 분명 그 아가씨는 정말 대단한 미인일 거야.’ 청년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내 딸은 아주 미인이라오. 함부로 결혼시킬 수 없지. 게다가 당신 누이들은 아주 심술궂다고 하던데 그런 집에 어떻게 시집을 보내겠수?” 여인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대답했습니다. 청년은 그날 저녁 여인의 집에 금은보화를 보내고 또다시 부탁했습니다. “따님을 꼭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여인은 당황했습니다. 사실 여인에게는 딸이 없었으니까요. 상한 우유를 버리다가 청년을 보자 장난기가 생겨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여인은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습니다. 청년의 집은 부자여서 힘센 하인도 많았습니다. 만약 여인이 자기를 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청년이 하인들을 시켜 혼낼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바에야 그냥 밀고 나가는 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겠지, 뭐!’ 여인은 일단 금은보화를 챙긴 후 결혼 날짜를 잡으며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내 딸은 수줍음을 많이 타니 결혼식 날까지는 얼굴을 보여 주지 않겠어요.” 결혼식 날이 되자 여인은 밀가루 반죽으로 사람 크기의 인형을 만들고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보내 준 마차에 인형과 함께 탔습니다. 마차가 호수 근처를 지날 때 여인은 마차 창문을 열고 인형을 호수로 던졌습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내 딸이 호수에 빠졌어요!” 놀란 청년과 사람들이 호수로 달려왔습니다. 여인은 눈물을 흘렸지만 속으로는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딸이 죽어 버렸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 그런데 청년이 외쳤습니다. “그물을 던져서 시체라도 끌어올려 주세요. 장사를 지내겠습니다.” 그러나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인형은 물에서 완전히 녹을 것이니 여인의 거짓말은 탄로 나지 않겠지요? 그런데 그때 호수 밑에서는 요정 셋이 놀고 있었습니다. 세 요정은 항상 물 바깥으로 나가 보는 게 소원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머리 위로 그물이 내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막상 그물이 내려오자 첫째 요정과 둘째 요정은 몸을 사렸습니다. "땅 위로 나가는 건 역시 무서워." 그러나 호기심 많은 막내 요정은 그물을 잡아당겨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난 세상 구경을 하고 올 거야. 안녕!" "앗! 신부를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물을 건져 올리며 외쳤습니다. "살아 있어요!" "와, 정말 아름다운걸요!"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자 누구보다 놀란 것은 여인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밀가루가 어떻게 살아 있다는 거지?' 청년이 달려가서 아가씨를 그물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물론 그 아가씨는 막내 요정이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지요. 여인은 거짓말한 것이 들통날 것 같자 그대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두 사람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청년과 요정은 한눈에 서로에게 반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워.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아.' 청년은 아름답고 명랑한 요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요정도 청년이 좋았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신부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시체를 찾아 장사 지내 줄 생각까지 하다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가 봐.' 청년과 요정은 서로를 운명의 상대로 여기며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갈 수 없었습니다. 청년의 세 누이가 요정을 모함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얘야, 사실 네 아내는 너보고 아주 못생겼다고 하더라." "얘야, 올케가 동네에 나가기만 하면 네 흉을 본단다." 처음에는 이러한 말을 믿지 않던 청년도 계속되는 누이들의 거짓말에 차츰차츰 아내를 의심했습니다. "당신이 내 흉을 보고 다닌다는 게 사실이오?" 청년이 이렇게 물을 때마다 요정은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런 질문이 자꾸만 반복되자 요정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 속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믿어 주세요.' 그러나 의심이 자꾸 쌓이게 되면 사랑도 식기 마련입니다. 누이들은 끊임없이 요정을 모함하였고, 그럴 때마다 청년과 요정은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급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청년은 요정에게 벌을 주기로 했습니다. "남편을 미워하는 아내는 밥을 먹을 자격도 없소!" 청년은 요정을 골방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누이들은 골방에 갇힌 요정을 보며 키득거렸습니다. "아이 고소해. 저러다 굶어 죽으면 끝이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정은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부도 좋아지고 더욱 건강해졌습니다. 첫째 누이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어느 날 골방을 엿보았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요정이 손가락을 허공에 흔들면서 외쳤습니다. "불아, 붙어라!" 그러자 땔감도 넣지 않은 난로에 불이 붙었습니다. "기름아, 끓어라!" 비어 있던 냄비에서 기름이 잘잘 끓기 시작했습니다. 요정은 자신의 손을 끓는 기름에 넣고 외쳤습니다. "손가락아, 생선이 되어라." 그러자 냄비에서 맛있는 생선 튀김이 튀어나왔습니다. 요정은 생선 튀김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첫째 누이는 아주 어리석은 여자였습니다. 누이는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시험해 보았습니다. "불아, 붙어라! 기름아, 끓어라!" 그러나 난로는 잠잠했고 냄비도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별수 없이 누이는 스스로 난로에 불을 붙이고 기름을 끓였습니다. "손가락아, 생선이 되어라!" 첫째 누이는 이렇게 외치며 냄비에 손을 넣다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끓는 기름에 손을 넣었으니 당연히 심한 화상을 입었지요. 그날부터 첫째 누이는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네 아내 때문에 이렇게 손을 다쳤단다." 첫째 누이가 다친 손을 내밀며 엉엉 울자 청년은 더욱더 요정을 미워했습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당신을 내쫓아 버릴 것이오." 요정은 너무나 억울하고 슬펐지만 조금 더 견디기로 했습니다. 첫째 누이가 다친 후부터는 둘째 누이가 요정을 감시했습니다. 어느 날 요정은 우물물을 긷다가 두레박을 빠뜨렸습니다. 그래도 요정은 놀라지 않고 자기 머리카락을 풀어 우물에 늘어뜨렸습니다. 둘째 누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바보 아냐? 저렇게 해서 어떻게 두레박을 건지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요정의 머리카락은 한없이 길어지더니 결국은 두레박을 잡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요정이 사라지고 나자 둘째 누이는 우물가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당연히 우물 밑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아이, 기분 나빠.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둘째 누이도 첫째 누이만큼이나 어리석었기 때문에 몸을 우물 안으로 점점 더 기울였습니다. "조금만 더......." 그러다 풍덩! 소리가 들렸습니다. 둘째 누이는 그만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첫째와 둘째 누이가 봉변을 당하자 청년은 요정에게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당신이 온 후로 왜 자꾸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거요? 이제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소." 청년의 말을 들은 요정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화가 난 청년은 금고의 문을 잠가 버리고는 요정에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여보, 장을 봐 와야 해요." 요정이 부탁해도 청년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끼니 때가 되면 청년은 첫째 누이, 셋째 누이와 함께 나가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사 먹고 왔습니다. "여보, 옷이 다 떨어졌어요." 요정이 구멍난 옷을 보이며 사정해도 청년은 외면했습니다. 대신 첫째 누이, 셋째 누이와 함께 장에 나가 가장 아름답고 비싼 옷을 사 주었습니다. "흥! 앞으로 네 남편이 너를 돌아보는 일은 없을 거야." 셋째 누이는 아름다운 옷을 자랑하며 요정에게 심술궂게 말했습니다. 첫째 누이도 화상 입은 손을 흔들며 요란하게 웃었습니다. 요정을 꼭 쫓아내고 싶은 셋째 누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셋째 누이는 부엌 안을 엿보았습니다. 청년이 돈을 주지 않아 며칠째 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부엌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밀가루 통에는 상한 밀가루 한 점 남아 있지 않았고 우유병과 기름통도 깨끗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요정은 부엌 한구석 의자에 쓸쓸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심을 받다니 정말 슬퍼. 그냥 호수로 돌아갈까?' 그러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정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무리 자기를 미워해도 요정은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누이들의 모함 때문에 나를 의심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다정하지. 그러니까 오해를 풀면 다시 전처럼 나를 사랑해 줄 거야.' 요정은 이렇게 생각하며 기운을 내기로 했습니다. 요정은 웃으며 발딱 일어서 외쳤습니다. "화덕아! 이리 오너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구석에 있던 화덕이 성큼성큼 걸어서 요정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깜짝 놀란 셋째 누이는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요정이 또 명령했습니다. "불아, 이리 오너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화덕 안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요정은 잠시 불을 쳐다보더니 외쳤습니다. "밀가루 반죽아, 이리 오너라!" 그러자 밀가루 반죽이 들어 있는 커다란 대야가 걸어왔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셋째 누이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정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 안으로 냉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화덕 청소를 마친 요정은 대야에서 반죽을 꺼내 익숙한 솜씨로 화덕 안에 넣었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나면서 빵이 익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누이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맛있는 냄새였습니다. 셋째 누이는 도저히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요정은 다 익은 빵을 화덕에서 꺼내 ‘호호’ 불어 가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셋째 누이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빵을 다 먹은 요정은 침실로 들어가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요정이 잠든 것을 확인한 셋째 누이는 몰래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흥! 네가 한다면 나도 할 수 있어! 두고 보라지.’ 이윽고 셋째 누이는 부엌 한가운데에 서서 아까 요정이 한 것처럼 외쳤지요. "화덕아, 이리 오너라." 그러나 화덕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별수 없이 셋째 누이는 화덕 앞까지 걸어갔습니다. "불아, 이리 오너라!" 그러나 화덕은 불이 붙지 않고 잠잠할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셋째 누이가 직접 불을 지폈습니다. 조금 용기가 꺾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셋째 누이는 외쳤습니다. "밀가루 반죽아, 이리 오너라." 물론 빈 대야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셋째 누이는 하는 수 없이 자기가 밀가루를 사 와서 반죽을 했습니다. 반죽을 다 마친 셋째 누이는 요정이 한 것처럼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으아악!" 외마디 비명 소리를 남기며 누이는 까맣게 타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침 집에 들어오던 청년은 이 광경을 보고 미친 듯이 화를 냈습니다. "도대체 당신과 결혼한 후 왜 이렇게 끔찍한 일만 일어나는 거요?" 며칠 후, 셋째 누이의 장례식을 마치고 청년은 요정에게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악마야! 그렇지 않고서는 내 누이들이 이렇게 다치거나 죽을 수는 없어. 당장 나가, 당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오해를 받는 것이 몹시 가슴 아팠지만 더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요정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예. 당신 말대로 하겠어요. 마지막으로 당신을 위해 저녁이라도 차리게 해 주세요.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요?" 그러나 청년의 마음은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당신이 만든 음식 따위는 먹고 싶지 않소. 외출했다가 돌아올 테니 그 전에 이 집에서 나가시오." 이렇게 말한 청년은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요정은 기름통과 꿀통을 불러 말했습니다. "오늘 남편을 위해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련할 거야. 시장에 가서 꿀과 기름을 사 오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다녀와야 한다." 작은 통 두 개는 달그락거리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집에서 나와 심난한 마음으로 길을 걸어가던 청년은 작은 통 두 개가 사람처럼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그 통들은 눈에 익은 것들이었습니다. "분명 우리 집 부엌에서 쓰는 통들 같은데......." 청년은 조용히 기름통과 꿀통의 뒤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이 따라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름통과 꿀통은 시장에 가서 기름과 꿀을 샀습니다. 웬일인지 시장 상인들은 기름통과 꿀통이 걷고 말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은 돈을 받은 다음 기름통에는 기름을, 꿀통에는 꿀을 채워서 돌려보냈습니다. 기름통과 꿀통은 장을 보고 돌아오면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가씨가 정말 불쌍해." "난 주인님이 답답해. 누이들 말만 믿으시니 말이야." 기름통과 꿀통은 청년의 누이들이 저지른 못된 짓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 누이, 둘째 누이, 셋째 누이까지 모두 요정을 질투했다는 것, 그리고 청년과 요정을 헤어지게 하려고 온갖 이간질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누이들이 내게 그런 짓을 하다니.......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아내만 나무랐구나. 아내는 얼마나 억울하고 슬플까? 청년이 이런 생각을 하며 따라오는 것도 모르고 꿀통과 기름통은 사이좋게 재잘거리다가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꿀통의 뚜껑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미안해, 꿀통아. 아프지?" "아냐. 내가 먼저 장난을 걸었으니 내 잘못이지." 기름통과 꿀통은 서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기름통과 꿀통이 하는 행동을 본 청년은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를 믿지 못했어. 기름통이나 꿀통보다 어리석었어." 청년이 집으로 들어가자 음식을 준비하던 요정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마지막 저녁 식사라도 준비해 놓고 떠나려고 했어요." 청년은 뚜벅뚜벅 다가와 요정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떠나지 마시오. 영원히 나와 함께 있어 주시오." 요정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를 믿어 주시는 건가요?" "그렇소. 지금까지 내가 너무 어리석었소. 용서해 주시오." 그날부터 청년은 아내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했습니다.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았습니다. 유목민의 모순된 태도 유목민은 거친 자연 환경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 보면 적의 눈에 쉽게 띄어 생명을 잃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목민들에게는 두 가지 모순된 태도가 나타납니다. 유목민들은 손님을 아주 후하게 대접합니다. 사는 환경이 거칠고 위험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성격도 있습니다. 아마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경계심을 풀기가 어려워서였겠지요. 터키 민간 설화 사랑한다면 믿어 주세요의 주인공 청년은 아내를 몹시 사랑하지만 누이들 말만 듣고 아내를 의심합니다. 이것은 청년이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유목민의 성향이 나타난 것입니다. 대신 유목민은 한번 친구가 되면 그 우정을 영원히 지킨다고 하지요. 누군가를 믿는 것, 즉 ‘신뢰’는 진실한 사랑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상상의 종족 켄타우로스를 만나다 먼 옛날 유럽 인들은 터키 인들을 ‘훈 족’이라고 불렀습니다. 훈 족은 원래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민이었지만, 목초지의 풀이 부족해져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게 되었지요. 유목민인 훈 족은 말을 잘 타고 아주 용맹스러웠는데 이런 훈 족이 쳐들어오자 유럽 인 들은 ‘반인반마’가 나타났다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는 위는 인간의 모습이고 아래는 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말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훈 족이 유럽 인들의 눈에는 반인반마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터키 문학은 이슬람 교가 들어오기 이전과 들어온 이후가 많이 다릅니다. 터키는 14세기 몽골 족의 침입을 받았고 15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또는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터키 민간설화에는 훈 족, 몽골 족 등의 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또한 강대국으로 성장했던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뛰어난 업적을 이룬 왕가의 이야기가 번성했습니다. |